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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新세계 7대불가사의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페루 2025. 3. 20. 16:23
페루 新세계 7대불가사의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
2025. 3. 20.
2025. 3. 1 ~ 16, 13박 16일 일정으로 중남미 5개국(페루, 브라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멕시코)를 '여행이지' 여행사와 함께 19명 일행 중 막내 여동생과 함께한 여행이다.
2025. 3. 3일 여행 3일 첫번째 여행지 新세계 7대불가사의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로 향해본다....
페루 여행 중 나에겐 숙제처럼 느껴지는 한 곳이 있었다.
나의 버킷리스트 마추픽추 !
마추픽추를 만나기 위한 나의 산 넘고 물 건너 아침 이른 조식 후 5:30 호텔을 출발하여 버스를 타고 25분 이동하여 벅차오르는 하루가 시작된다.
오늘도 고산증 약을 먹는다. 고산증은 몸을 따뜻하게, 특히 머리를 따뜻하게 하는 것이 좋다.
마추피추를 가기위해 머물렀던 우르밤바라는 자그마한 마을은 고도가 높은 만큼 공기도 쾌적했고 마을을 둘러 싼 높은 산이 이른 아침 안개에 싸여 있을 땐 몽환적이기 까지 했다.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마추픽추를 영접하러 가는 날이다. 세계인들의 꿈의 방문지인 그 곳으로 ~
원주민이 사는 작은 시골 마을 우루밤바를 뒤로 하고....
사람 키보다 큰 계단식 밭이 여기에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
오얀타이탐보는 작지만 깔끔하게 정리된 인상을 주는 작은 마을로 마을 전체에 시냇물처럼 순환하는 수로 시설이 정비되어 있다. 유적지 입구에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한 기념품 가게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뒤로 가파른 경사면에 돌을 촘촘히 쌓아 만든 거대한 크기의 계단식 밭이 150m 정도의 높이까지 구획되어 있다. 계단식 밭 하나의 높이가 사람 키와 비슷할 정도로 높으며 지금까지 쿠스코에서 봐 왔던 석조 기술과 다르게 큰 돌 사이사이에 작은 돌들로 틈을 메운 형태로 축조되어 있다.
계단식 밭을 끝까지 올라가면 잉카 제국의 돌담이 둘러진 광장이 나오며 그 가운데에는 높이 4m에 폭이 10m가 넘는 6개의 거대한 돌들이 얇은 돌을 사이에 나란히 세워져 있다. 그 정체에 대해서는 신전의 일부라는 주장이 있지만 아직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오얀타이탐보는 마추픽추로 가는 길목에 있어 아침 일찍 마추픽추에 가려는 사람들이 이곳을 거쳐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로 많이 이동한다.
절벽 호텔
욜란타이 탐보 기차역까지 가는 도중에 올려다보이는 높은 절벽에 ‘절벽호텔’이라는 숙소가 군데군데 제비집처럼 낭떠러지에 달려 있었고 스릴을 즐기는 투숙객들이 개미처럼 절벽호텔을 향해 올라가는 모습이 아스라이 보인다.
400m 절벽에 매달린 캡슐 호텔(Sky lodge)은 122m 절벽 위에 항공우주 알루미늄과 고강도 통유리로 제작된 숙박 시설이다. 체크인하려면, 배낭을 멘 채 암벽 등반을 해야 한다. 도로변 입구에서 쇠줄에 카라비너(karabiner, 암벽 등반에서 자일을 연결하는 금속제 고리)를 건 다음 양손에 힘을 주고 올라야 한다.
TV에서 한 배우가 한참을 끙끙거리며 쇠 발판을 밟고 간신히 올라가는 모습을 보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별이 내리는 밤하늘을 감상하는 기쁨은 수고에 대한 보너스로 느낀다. 불편한 식사와 취침을 한 후 체크아웃을 하고, 내려오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집라인 6개를 옮겨 타고 활강하면 그만이다. 비싼 숙박료를 지불해야 함에도 인기가 많다고 하는데, 세상엔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다시금 TV에서 한 배우가 체험하던 기억들을 소환해 보며 그 기분을 상상해본다...
욜란타이 탐보 기차역으로 이동 한다...
오얀타이는 파차쿠텍왕 시대의 장군으로 왕의 딸과 사랑에 빠져 오얀타이탐보로 피신했다. 화가 난 파차쿠텍은 수차례에 걸쳐 오얀타이 장군을 공격했으나 번번이 격퇴되었고 결국 사랑을 인정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은 마추픽추로 들어가는 길목인 신성한 계곡의 입구인 동시에 군사적 · 전략적 요충지였다.
오얀타이탐보에는 군인들이 묵었던 숙소 · 종교시설 · 창고와 편의시설이 갖춰져 있고 마추픽추와 유사한 형태이다. 기찻길 옆으로는 아마존강의 원류인 우르밤바강이 흐른다.
마추픽추 투어가 시작된다.
마추픽추를 방문하려면 쿠스코에서 우르밤바를 거쳐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에서 기차를 타야 한다.
역 대합실 옆에는 카페도 있다.
대합실 옆 이 집이 커피가 맛있는 집이라고 현지 가이드가 일러준다...
Ollantaytambo에서 아침 일찍 출발하는 Peru Rail 기차를 탄다. 기차는 1시간 40분 거리를 가는 느릿느릿 열차 티켓은 USD 70불부터 USD 500불에 이르기까지 다양했다. 우리는 저렴하면서도 가급적 이른 시간 열차를 선택해서 Aguas Calientes 역으로 향했다.
자유시간을 가진 뒤 6:25 미팅하여
입장원 표랑 여권이랑 대조해서 검사를 하고 기차를 타러 가본다.
기차칸 F칸 동생과 함께 ~
기차를 타 보니 천정까지 개방감을 주었다.
천장에 보이는 산이 안데스 산맥인데 어찌나 높은지 이미 기차를 타고 가는 곳도 해발 2000 m 인데 천장으로 보이는 거면 3000m는 될 거 같고 차 밖으로 보이는 안데스 산맥은 끝내 줬다.
열차를 타니 작은 공연이 이어진다...
그리고 열차는 우기라 많은 흘탕물이 넘치는 우르밤바강을 옆으로 끼고 1:40을 달려 간다...
기차는 사방이 유리로 뚫려있었다.
보이는 산이 안데스 산맥인데 어찌나 높은지 이미 기차를 타고 가는 곳도 해발 2000 m 인데 차창으로 보이는산은 3000m는 될 거 같고 차 밖으로 보이는 안데스 산맥은 너무 멋져 스위스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지루함 없이 1:40 달려 도착한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
Aguas Calientes 역 대합실을 거쳐
Aguas Calientes 역에서 내려 다리를 건너는 중 발견한 마추픽추 버스 타는 줄이다.
Aguas Calientes 역에서 내려 다리 위에서
버스타러 이동하며
Aguas Calientes 역에서 내려 다리
바라본 Aguas Calientes 역 방향 ~
마추피추를 올라가는 공영버스 기다리며 바라본 풍경들 ~
기차에서 내려 버스 타려면 줄 벗어나면 안 된다하여 한참을 대기해서 마추피추를 올라가는 공영버스로 갈아타고
우리는 ‘마추픽추 마을’이라 불리는 ‘아구아스 깔리헨테스’에서 마추픽추를 왕래하는 전용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에서 바라본 마을 풍경이다.
이곳 삼거리에서 좌측 다리를 건너 산으로 진입해서
구불구불 , 아슬아슬한 산길을 몇번이나 휘감으며 올라간다.
마추픽추 역 도착하여 정상으로 이동 약 30분 소요
8:40 셔틀로 바꿔타고 30분정도 꼬불꼬불 산길을 오르니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맞추픽추 주차장 도착이다.
마추픽추 내에는 셀카봉과 삼각대의 반입이 금지된다.
검표소를 통과하여
약간의 길을 걸어간다.
사실 우리 일행이 일찍 길을 나선 까닭은 따로 있었다. 사람들이 몰려오기 전 마추픽추의 를 오르기 위해서다.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모여드는 곳인 데다 하루 입산 가능 인원이 1,500명으로 제한되어 있음으로 서두를 수밖에 없었다.
하이럼 빙엄
그는 빌카밤바를 찾던 중 1911년 잉카인이 세운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발견했다.
황금의 도시를 찾기 시작한 지 200여 년이 지난 1768년 초케키라오가 빌카밤바란 소문이 퍼졌다. 초케키라오는 푸리마 항구에서 가까운 험준한 산속에 있는 유적이다. 1909년 미국 예일대학교의 하이럼 빙엄(Hiram Bingham, 1875~1956)은 빌카밤바를 찾기 위해 아푸리막강 유역의 험한 밀림 속을 탐험하다 초케키라오의 유적을 발견했다. 그곳에는 낭떠러지 위에 우뚝 솟은 궁전과 방형의 제의(祭儀) 광장, 약탈자들에게 짓밟힌 신전들이 있었다.
행정 책임자는 빙엄에게 “이 성채야 말로 잉카제국 최후의 비밀 수도였으며 방대한 재보가 어디엔가 잠들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빙엄도 처음에는 초케키라오가 만코 2세[에스파냐군에게 살해된 아타왈파(Atahualpa)황제의 동생]의 빌카밤바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초케키라오의 지형이 빌카밤바를 묘사한 자료들과 일치하지 않았다. 초케키라오는 빌카밤바가 아니었다.
빌카밤바의 발견에 실패한 빙엄은 1911년 다시 페루를 찾아 탐험을 계속했다. 토착 인디언의 안내를 받은 빙엄은 피사로를 피해 만코 2세가 탈출한 길을 더듬어 나갔고 산봉우리에 있는 폐허의 도시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우리는 인적이 전혀 없는 숲 쪽으로 길을 잡았다. 갑자기 폐허가 된 집들의 벽이 눈에 들어왔다. 잉카 최고의 석조 기술로 지은 집들이었다. ······ 정교하게 다듬은 마름돌들이 정확하게 맞물린 벽들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빙엄이 발견한 이 유적이 바로 ‘마추픽추(늙은 봉우리란 뜻)’이다. 마추픽추는 잉카의 수도 쿠스코에서 우르밤바강(아마존강의 원류)을 따라 북서쪽으로 114킬로미터 올라간 지점에 건설되었으며 해발 2280미터 위치에 있다.
마추픽추는 에스파냐에 정복된 이후 5세기 동안이나 정글 안에 파묻혀 있었음에도 건물들의 지붕을 제외하고는 거의 훼손되지 않았다. 울창한 수림과 뾰족한 봉우리들, 신성한 계곡으로 불리며 우기에는 통과할 수 없을 만큼 지형이 험한 퐁고 보에니케 골짜기가 마추픽추를 외부세계와 격리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남아메리카 중앙에 위치한 마추픽추
빙엄이 마추픽추를 발견할 당시의 모습으로 도시는 폐허가 되어 있었다.
마추피추 입구 도착해 잉카의 석조예술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안티푼쿠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섰다.
복원된 마추픽추의 건물
복원된 마추픽추의 건물로 지붕을 고산지대에서만 자라는 이추로 덮었다.
왼쪽 작은 산봉우리는 후추이픽추(Huchuy Picchu), 바로 앞 탑 모양 지역이 사원지역, 우측 주거지역, 앞쪽 산업지역. 마추픽추 코스는 산업지역으로 들어가 사원지역을 지나 와이픽추 입구까지 간 후 주거지역을 통과하여 나오는 코스이다.
잉카 제국의 절정기에 건설됐으며 가장 놀라운 도시 창조물로 평가받고 있는 마추피추로 우측 봉우리인 와이나픽추(Waynapicchu)는 마추픽추와 연결된 산으로 마추픽추 산보다 높은 2,668m로 남미 원주민의 언어로 '젊은 봉우리'라는 뜻으로 신전과 사제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특별한 유적은 없고 사제들이 거주했던 흔적이 있는 동굴이 있었다. 마추픽추와 별도로 최소 2개월 전에 입산 예약을 해야하고 일일 방문객이 200명으로 제한되며 산세라 가파르다.
마추픽추의 맞은편 봉우리인 마추픽추를 내려다보고 있는 와이나픽추
큰 봉우리는 퓨마, 그 옆의 작은 봉우리들은 날개를 펼치고 있는 콘도르의 형상을 하고 있다.
잉카인들은 신성한 도시의 모든 시설들을 어떤 형상을 표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그것은 날개를 활짝 펴고 날고 있는 새의 모습이다. 와이나픽추에서 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전설에 의하면 인간들은 무질서와 방탕에 빠지기 쉬우므로 태양이 다양한 색깔의 깃털을 가진 새를 보내 영혼들을 위무해준다고 한다.
확대해 본 와이나픽추, 왼쪽으로 달의 신전이 보인다.
12세기 초 만코 카팍(Manco Capac)의 아들 신치 로카(Sinchi Roca)가 그의 누이동생 마마 쿠라(Mama Cura)를 왕비로 맞으면서 잉카는 신화가 아닌 역사시대로 들어선다. 잉카는 로카왕의 손자 마이타 카팍(Mayta Capac) 시대에 지배 면적이 확대되었고 제9대 파차쿠티 유판키(Pachacuti Yupanqui, 1438~1471) 시대에는 인구가 1100만 명이나 되었다.16세기 초에는 안데스산맥에서 태평양 해안에 이르기까지 면적이 100만 ㎢에 달할 정도로 대제국이었고 황제를 정점으로 정치와 사회제도도 비교적 잘 정비되어 있었다.
잉카인들은 읽고 쓰지를 못했다. 그들은 ‘키푸(quipu)’라는 결승문자(結繩文字)를 사용했는데 노끈의 빛깔이나 매듭으로 여러 가지 뜻을 표시했다.
그들은 동물의 힘을 빌리거나 바퀴를 사용하지 않고 도로 · 계곡을 잇는 적교(吊橋) · 농업용수로 · 거대한 성채를 비롯하여 궁전과 신전을 건설했다.
잉카의 의학 · 식물학 지식수준은 대단했다. 잉카에는 의사계급이 있었고 국가가 고용한 약초 채집자들도 있었다. 잉카 의사들은 절단수술을 했으며 응급상황에서는 심지어 두개골에 구멍을 뚫는 수술도 감행했다. 두개골 수술은 아마 뇌가 부풀어 오르는 치명적인 증상의 처방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고대 이집트인들과 마찬가지로 잉카인들은 미라 제작술을 완벽하게 터득하고 있었다.
한편 잉카인들은 제국 안에서 나는 금으로 찬란한 황금문화를 꽃피웠다. 그들은 구리나 놋쇠를 쓰듯이 황금을 사용했다. 태양을 숭배했던 그들은 태양신을 표현하는 데 황금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잉카인들의 문자였던 키푸(quipu), 노끈의 색깔이나 매듭으로 의사 표시를 했다고....
마추픽추 사진에 항상 등장하는 저 봉우리가 바로 Huayna Picchu이다.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 Huayna Picchu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마추픽추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아침과 저녁은 쌀쌀할 수 있어, 방문 시기와 관계없이 여러 겹의 옷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아침과 저녁은 쌀쌀하지만 낮에는 따뜻한 햇볕을 즐길 수 있어 이런 날씨 특성을 고려해 날씨에 맞는 옷 준비를 철저히 하면 더욱 즐거운 여행이 될 것이다.
메인 게이트
망지기의 집에서 바라봤을 때 왼쪽에 있는 마추픽추 유적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오래 전 이 도시로 들어가려면 이 문을 통해서만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잉카의 석조기술로 정교하게 만든 이 문을 통해 마추픽추 유적으로 들어갈 수 있다.
와이나픽추(Wayna Picchu)는 마추픽추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산으로 이곳에 오르면 마추픽추의 전경과 주변 자연을 감상할 수 있지만 입장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에 사전 예약이 필수 ~
마추픽추 여행을 준비할 때는 고도와 날씨를 고려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한데 먼저, 고산병을 대비하기 위해 쿠스코에서 며칠 머물며 적응하는 것이 좋다. 코카 차나 코카 캔디를 섭취하면 고산병 증상을 완화할 수 있다.
마추픽추는 경사가 심한 곳이 많아 걷기 편한 신발이 필수다. 신발은 반드시 편안하고 미끄럼 방지 기능이 있는 등산화를 준비하자. 유적 내부는 돌계단과 비탈길이 많아 안전한 신발이 필수다. 또한, 비가 올 수 있으니 방수 재킷이나 우비도 꼭 챙기자.
햇볕이 강하기 때문에 자외선 차단제와 모자, 선글라스는 필수고 또한, 물을 충분히 가지고 다니며 수분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하고 간단한 간식을 챙기는 것도 잊지 말자. 유적 주변에는 상점이 많지 않으니, 필요한 물품은 미리 준비하기
창고지역(Qolqas Storage)
농경지에서 나온 곡식을 저장해 놓은 창고들로 구성된 지역이다. 메인 광장 및 마추픽추의 경작지 규모로 봤을 때, 이곳에는 약 8,000~10,000명 이상의 사람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꼬불꼬불한 산을 돌아 돌아 산 정상에서 만나게 되는 마추픽추는 높이 5m, 두께 1.8m의 성벽으로 두텁게 싸여 있는 요새 도시다. 잉카 인들은 인구 2만 명이 사는 게 가능했다는 이런 거대 도시를 어떻게 산꼭대기에 정교하게 만들어 놓았을까 ? 그리고 왜 만들어 놓았을까 ?
마추픽추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11년 마추픽추 최초 발견자 미국의 예일대학교 ‘하이람 빙엄’이라는 청년에 의해서였다. 그는 아주 높은 산꼭대기에 환상적인 잉카 도시가 있다는 오래된 기록을 보고 찾아 나섰다가 발견한 것이다. 물론 황금을 찾을 수는 없었지만 세계는 잉카 제국 멸망 후 340년 동안 버려졌던 황금보다 더 귀하고 값진 잉카 제국의 유적을 만날 수 있었다.
비밀에 싸인 공중 도시, 마추픽추
마추픽추는 페루에서 잉카 문명의 흔적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 있는 세계적인 유적이다. 2,300m의 산 정상에, 험준한 계곡과 가파른 절벽에 기대어 숨어 있는 신비의 공중 도시 마추픽추
마추픽추는 가운데 있는 대 광장을 중심으로 상부와 하부로 크게 나누어져 있다.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 도시 못지않게 여러 가지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다. 궁전이 있고, 신을 모시는 신전이 있고 의식에 사용되는 의례품을 저장하는 저장소가 있었다. 또 학교와 공장, 사람들이 살던 집, 묘지, 산을 계단식으로 깎아 옥수수와 약초를 재배하던 경작지도 있었고 천체 관측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건축물도 빼놓을 수 없다.
마추픽추를 두고 사람들은 많은 의문을 품었다. 수십 톤은 되어 보이는 돌들을 잉카 인들은 어디서 어떻게 옮겨 왔는지, 산꼭대기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무얼 먹고 살았는지 말이다. 워낙 풀기 어려운 문제이다 보니 한때는 마추픽추가 외계인의 지구 기지였다는 이야기까지 나왔었다. 금속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정교하게 돌을 잘라 건축 자재로 사용한 것도 외계인이 레이저로 잘랐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산바람을 이용한 자연 냉장고를 개발해서 쓰고 있었다. 고산지대 특유의 환경을 이용한 것이긴 하지만 주어진 환경을 이해하고 응용한 것이다. 서양문명보다 앞서서 음식물을 저장한 흔적이 발견되었다. 이는 서구보다 500년 앞선 기술로 감자를 6년간 썩히지 않고 보관할 수 있었다고 한다.
도시 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잉카인들이 신성시했던 와이나픽추이다.
마추픽추가 주는 의문은 또 있어 마추픽추에서 100구의 미라가 발견되었는데 모두 여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흔히 남자들은 공중 도시 마추픽추의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산 아래에서 스페인 군대와 싸우다 전사하고, 사제로 선택된 ‘태양의 처녀’들만 남아 마추픽추와 운명을 같이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하고 있다.
한가로운 라마들
도시 앞에 우뚝 솟은 봉우리는 잉카인들이 신성시했던 와이나픽추이다.
마추픽추는 잉카인들이 세계를 보는 방식인 상과 하, 우측과 좌측, 남성과 여성, 시간과 공간의 두 기준에 따라 절묘한 위치에 의도적으로 건설되었다. 마추픽추는 와이나픽추(Huayna Picchu)라는 원뿔 모양의 봉우리와 마주보고 있는데 와이나픽추는 잉카인들의 토템으로 신봉하는 두 동물의 형태를 갖고 있다. 와이나픽추 봉우리를 앞에서 보면 퓨마의 형상으로 보이며 좌측에 있는 세 개의 작은 봉우리는 새(콘도르)가 날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잉카인들에게 와이나픽추는 지상과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는 신성한 산으로, 그곳에서 바라보이는 대지에 신성한 도시를 건설한 것이다.
마추픽추의 건축은 잉카 문명의 뛰어난 기술력을 보여준. 이곳은 석재를 정교하게 다듬어 쌓아 올린 구조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테라스 형태의 농경지와 물 관리 시스템이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았던 만큼, 마추픽추의 건축물도 주변 환경과 잘 어우러져 있다.
이곳의 주요 건축물로는 태양신을 모시는 사원, 왕의 거주지, 그리고 다양한 농업용 테라스가 있어 이러한 구조물들은 잉카 문명의 종교적 신념과 생활 방식을 반영하고 있다.
잉카 제국의 도시 마추픽추(machu picchu)는 해발 약 2,430m에 건설된 남미 원주민의 언어로 '늙은 봉우리', '오래된 봉우리'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페루에 있는 잉카 문명의 고대 요새 도시이다. 1450년 즈음에 지어졌고, 80여 년간 거주하다가 1530년대(잉카 명망 1572년) 주민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떠났고, 1911년에 미국의 탐험가 마추픽추 최초 발견자 하이럼 빙엄이 발견했다. 안데스산맥의 깊은 산중 해발 2,430m에 있어 에스파냐(스페인)인들로부터 안전하게 지켜졌다.
마추픽추는 신전, 제단, 집과 밭 등으로 되어있어 종교적, 군사적인 이유로 거주하며 신에게 제사를 지낸 것으로 보이며, 황제의 시중을 들기 위해 약 750여 명의 사람 또는 사제들이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마추픽추 산과 와이나픽추 산 사이에 있는 마추픽추 유적지는 크게 도시 구역과 농경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현재 대부분 건물은 페루 정부에서 관광객들을 위해 복원시킨 것이다. 1983년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지정, 2007년 새로운 세계의 7대 불가사의 중 하나로 선정되었다. 마추픽추는 하루 방문객을 2,500명으로 제한하며 여권 검사를 하며, 와이나픽추는 하루 2번, 1회당 200명의 사람에게만 입장이 허용된다.
Huayna Picchu는 젊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농업지역과 창고와 복원된 마추픽추의 건물과 마추픽추, 마추픽추는 늙은 봉우리
당겨본 마추픽추
마추픽추는 우르밤바 계곡지대의 해발 2,430m 정상에 자리 잡고 있다. 마추픽추는 '나이 든 봉우리'라는 뜻인데, 산자락에서는 그 모습을 볼 수 없어 '공중도시'라고도 불린다. 잉카인들이 스페인의 공격을 피해 산속 깊숙이 세운 것이라고도 하고, 군사를 훈련해서 후일 스페인에 복수하기 위해 건설한 비밀도시라고도 한다.
망지기의 집
망지기 집 위쪽으로 가 볼려면 어퍼 테라스 티켓을 별도로 구매해야 하며 마추픽추 티켓으로는 망지기의 집 아래 전망대까지만 갈 수 있다.
2024년 이전에 갔던 사람들은 이런 제약 없이 다닐 수 있었던 것 같다.
망지기의 집(Guardhouse) 혹은 잉카의 초소(Recinto del Guardian)는 마추픽추 조망. 멀리보이는 산봉우리는 와이나픽추(젊은 봉우리). 마추픽추(늙은 봉우리). 유적지 입장 후 조금 걸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난 오르막 길이 있다. 이 길을 따라 약 20분 정도 올라가면 나오는 포인트. 과거 이곳에서 외곽의 농지, 외부인의 출입 등을 관찰했다고 전해진다.
서쪽 농경지역
경사가 급한 산비탈에 축대를 쌓아 계단식 농경지. 땅을 최대한 활용하여 감자와 옥수수를 심어 자급자족. 외부 침입에 대비한 성곽 역할도 수행. 농사용 물은 수로를 통해 전달되는데, 능선을 따라 수원지로 부터 끌어온 물은 17개의 '물 긷는 곳'에서 쏟아진다.
잉카인들은 전통적으로 지하수가 나오는 곳에서 돌을 이용해 물길을 만들어 식수를 확보했다.
고지의 마추픽추에서는 물을 확보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식수와 농사에 필요한 물을 끌어오기 위해 지하수가 나오는 곳에서부터 돌을 이용하여 고랑을 만들었다. 잉카인들의 돌 다루는 뛰어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수로(Fountains)
2,400m에 위치한 봉우리에 어떻게 물을 끌어왔는지는 아직도 미스터리로 남아있지만, 이곳엔 농경과 식수에 필요한 수로시설이 완벽하게 꾸며져 있다. 물 또한 잉카시절에는 숭배했기 때문에 이곳 물의 원천을 마추픽추의 가장 가운데 두어 소중히 간직했다고 추측한다.
산 위부터 산 아래층까지 물이 고이지 않고 자연스럽게 내려가는 정교한 수로를 만들었다. 비가 아무리 많이 와도 물웅덩이 하나 생기지 않고 전부 식수로 사용했다고 한다. 게다가 현재까지도 그 수로는 특별한 손질없이 여전히 물이 흐르고 있다.
신전지역(Royal Enclousures)
Recintos Principales라고 불리는 도시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물의 신전 등 각종 신전이 모여져 있다.
종교 건축물은 주 광장 둘레에 축조했다. 부조가 새겨져 있고 반원형의 탑이 있는 태양신전, 세 개의 창문이 있는 신전, 제1신전 그리고 ‘왕의 묘’가 그것이다. 왕의 묘는 잉카 최고의 신에게 헌정된 숭배의 장소로 추정하며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왕의 무덤으로 추측되는 곳이다. 왕의 묘는 잉카 최고의 신에게 헌정된 숭배의 장소로 추정하며 무덤은 발견되지 않았다.
신전 지역(Royal Enclousures)
Recintos Principales라고 불리는 도시중심부에 해당하는 곳으로 물의 신전 등 각종 신전이 모여져 있다.
중앙광장은 태양의 신전 뒤에 위치. 의례구역은 세 개의 창의 신전( 잉카 기원 신화중 하나를 상징. 창조의 신 비라꼬차의 명을 받은 여덟 명의 형제자매가 어느 집 세개의 창문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왔는데, 그중 한 명이 훗날 잉카의 초대 왕인 망꼬 까빡이 되었다는 내용)
마추픽추에서 유일한 곡선 모양을 하고 있는 태양의 신전은 세 개의 창문이 있다.
신전지역(Temples Zone)
메인게이트에서 양쪽 창고로 사용했다고 전해지는 방들을 거쳐 깍다만 돌무더기를 지나면 만날 수 있는 작은 광장으로서 세 개의 창문, 해시계 등 신전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정교한 잉카의 석조양식으로 완성된 이곳은 그 당시 이곳이 독립적이고 완벽한 도시구조를 갖추고 있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장소다.
뚫려있는 네모들이 일정하다. 신기해.
마추픽추는 잉카 고전 양식으로 접착제나 몰타르 등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돌과 석재들을 쌓아 만들어졌다.
마추픽추에서 유일한 곡선 모양을 하고 있는 태양의 신전(Sun Tower)
정 동쪽에 창문을 낸 곡선의 타워로, 이곳이 태양신을 위한 제사를 지낼 수 있는 독립적인 도시형태로 완성되어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는 건축물이다. 자연석 위에 석조건물을 세운 것으로 마추픽추 최고의 건축물이다. 건물 상단의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과 그림자를 보고 계절의 변화를 관찰했는데, 이는 파종과 수확 시기를 결정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철제도구가 전혀 없었던 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면도칼 하나 들어가지도 않는 정교한 석조건축, 조각술이 이용되었다.
마추픽추에서 눈에 띄는 것은 천문관측을 위해 특별히 고안된 건축물이다. 하나의 거대한 돌을 깎아 만든 인티와타나(Intihuatana, 케추아어로 태양을 끌어들이는 자리)는 해시계와 유사한데 동짓날(남반구에서는 여름) 하루 동안 사제들은 여기에서 제물을 바치며 태양신에게 제사를 지냈다. 잉카인들은 태양이 두 개의 ‘의자’를 갖고 있다고 믿었다. 북쪽의 주의자와 남쪽의 보조의자가 그것이다. 태양이 남쪽 의자에 자리 잡을 때인 하지가 한 해의 시작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잉카인들은 인티와타나에 이마를 대면 영혼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열린다고 믿었다.
자연석으로 만든 오차가 없는 나침반과 해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아보는 해시계 인티와타나, 태양을 끌어들이는 자리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해시계와 같은 역할을 했다. 잉카인들은 이 돌에 이마를 대면 영혼의 세계에 들어설 수 있다고 믿었다.
돌기둥 모서리를 잇는 대각선 위로 6월의 동지에 태양이 정확하게 통과하도록 설계되어 있고 또 다른 것은 신전 주위 곳곳에 보이는 산의 형상을 본뜬 돌 조각들이다. 바로 뒤로 보이는 아이나비추 산을 비롯한 마추픽추 주변 산을 축소한 것들이라고 해한다.
사원지역을 확대해 보니 보이는 인티와타나(Intihuatana 해시계)
가장 높은 곳에 해당하는 장소로, 동서남북을 완벽하게 나타낸 커다란 돌 하나가 놓여진 가장 신성한 장소다. 태양을 묶는 기둥의 뜻인데, 당시 잉카인들은 태양의 궤적이 바뀌면 큰 재앙이 온다고 믿었기에 이 돌을 이용해 태양을 묶어놓는 의식을 치렀다고 전해진다. 해시계나 천체관측소 역할 주장(춘분과 추분에 햇빛이 비치면 기둥의 그림자가 사라짐)과 주술적 용도 주장(보이지 않는 튼튼한 밧줄이 인티와타나와 태양을 연결)이 있다. 이곳의 조망이 탁월한데, 정면에 와이나픽추, 눈 아래 우루밤바 강과 절벽, 왼쪽에는 계단식 밭이 보인다.
여느 건축물과도 한눈에 구별이 되는 마추피추의 심장 태양의 신전
태양의 신전(Temple of the Sun)은 마추픽추의 가장 상징적인 장소 중 하나다. 이곳은 잉카인들이 태양을 숭배하던 장소로, 정교한 석조 기술이 돋보이는 곳이다.
한 건축가는 마추픽추를 이렇게 노래했다.
“깊고 깊은 계곡 위에 세워진 이 도시는 자연의 우주적 광경이다. 의례 같은 우아함, 그 돌들이 토해내는 영원의 표현 속에 성스러운 장소로서의 중요한 역할이 반영되어 있다. 안데스의 고봉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세계에 보석처럼 꼭 끼워진 잉카인들의 가장 위대한 유물이다.”라고....
침실
공동 마당에는 커다란 맷돌, 부피가 큰 농기구, 연료로 사용하는 라마의 배설물 저장소가 있었고 ‘추뇨(잉카인들의 주식으로 감자 말린 것)’를 만들기 위해 태양과 서리에 번갈아 노출되도록 감자를 널었다. 말린 고기 등은 줄에 매어 집 바깥에 매달았다
보이는 동그라미는 거울이라고 한다.
잉카인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세 계단이 있는데 이는 지하(죽음) · 지상(현생) · 하늘(신)을 의미한다. 신전 근처의 왕의 궁전에는 식당과 거실 등이 있으며
주방과 바위 돌을 이용한 도마
마추픽추에서 유일한 화장실이 있다. 마추픽추에서 유일한 화장실로 왕의 궁전에 있다.
왕의 궁전이라 불리는 건물 밑은 감옥으로 사용된 흔적도 발견되었다. 잉카 사회의 주요 범죄는 도둑질과 거짓말 그리고 게으름이었다. 특히 생활환경이 어려운 산 정상의 마추픽추에서는 자기가 맡은 일을 게을리 하는 것은 전체 공동체의 생존 자체를 위협할 수 있기 때문에 무거운 벌로 다루어졌을 거라고 추측할 수 있다. 여느 건축물과도 한눈에 구별이 되는 마추피추의 감옥
이곳에서 내려와
북쪽으로 난 길을 따라 와이나피추 입구가 있는 곳으로 걸어간다.
대광장과 계단식 밭
메인 광장을 왼쪽에 두고 이동한다.
자세한 목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곳은 이 마을의 제사장급들, 즉 지배자 계층이 거주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해가 뜨는 동쪽에 위치한 이유 또한 가장 먼저 해를 받는 장소에 지배자들이 거주하는 것이 타당했기 때문이다.
귀족 거주 지역에 들어서자 세개의 문이 있는 집에 돌절구로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직경 60cm 크기의 둥근 돌 두 개가 나란히 놓여 있다.
계급사회답게 물과 물자는 상층의 왕/귀족/사제들의 영역을 먼저 거쳐오며, 이후 하층으로 오면서 서민, 노예 등 계급 순으로 제공된다.
망지기의 집과 늙은이의 산 마추픽추산
잉카사람들은 el condor(독수리)를 넘 사랑했나보다. 마추피추를 위에서 내려다본 형상이 독수리모양이란다. 가이드가 보여준 사진은 멀리서 마추피추를 보면 condor 모양이라고 설명을 해주는 거다.
메인광장은 음이 울리게 만들어졌다...
콘도르의 신전은 돌과 석벽 건물의 배치가 자연과 어우러져 날개를 편 독수리 형상. 신전 한가운데 콘도르의 머리가 조각. 세개 통로의 건물을 보면 당시 생활상을 엿볼수 있다. 지배계급과 피지배계급이 함께 거주. 건축술의 정교함에 차이가 있다.위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나온 후 신전을 등지고 위로 계속 올라간다.
제례용 돌(Ceremonial Rock)
마추픽추 도시 북쪽 끝. 와이나피추로 들어가는 입구 근처에 위치한 커다란 돌로 이곳에서도 여러 의미의 제사를 지냈다고 추정하고 있다. 이곳에서 와이나피추를 다녀올 수 있다.
성스러운 광장(Main Square)은 마추픽추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의식이나 행사가 열렸던 장소로 추정된다. 주변에는 거대한 석조 건물이 둘러싸여 있어 잉카 문명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어퍼 테라스 티켓을 구매하지 않으면 여기까지만 올라갈 수 있다.
달의 신전은 유적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와이나픽추 중턱에 위치한다. 천연동굴을 이용해 다섯 군데의 벽감을 만들고 부조를 장식했다. 신전 안에는 거대한 바위의 가운데를 파서 만든 옥좌가 있지만 전설 속의 황금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200여개의 건물이 남아있는 주거지는 상류층이 살던 중앙광장 주변과 벼랑 가까운 곳이나 계단식 밭과 인접해있는 일반인 주거지로 나뉜다. 집과 집 사이의 길은 미로처럼 얽혀 중앙광장이나 산 아래를 향해 뻗어있다.
왼쪽의 강이 보이는데 이곳에서 물을 뜨러 계단을 통해 내려갔다고 한다..
아마존강의 원류 우르밤바강이 아래로 보인다.
우리가 버스타고 구불구불 올라왔던 길도 내려다보인다.
와이나픽추 쪽에 있는 농업지역
망지기의 집과 농경지와 늙은이의 산 마추픽추산
천연석으로 이루어진 콘도르 신전
잉카 사람들이 섬겼던 신 중에서 하늘과 제사를 담당하는 신인 아푸 쿤투르(콘도르의 신)를 상징하는 신전으로 삼각형 모양의 커다란 두 개의 자연석은 콘도르의 날개를, 그 앞에 콘도르의 머리모양을 낸 돌을 두어 콘도르를 형상화했다.
그외 주신전과 신관의 저택이 있다.
주신전은 다각형의 돌로 지어졌으며, 세 방향을 둘러싼 벽에는 17개의 홈이 늘어서 있다.
제례용 돌을 등지고 마추픽추 주거지역과
농업지역을 통과하여 출구로 나간다.
사람들이 살았던 집을 좀 더 자세히 보면 안데스 고원 지대의 둥근 가옥과는 달리 벽돌로 쌓은 양쪽 벽 위에 ∧자형으로 초가지붕을 얹어 놓았다.
우리가 마주하는 지금의 마추픽추는 오랜 세월 동안 복원한 것이다. 물론 당시의 모습 그대로다. 더 놀라운 사실은 현재 발굴된 것이 전체의 30% 수준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나머지 70% 여전히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1911년 발견 당시 두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마추픽추를 안내하는 가이드가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은 ‘~였을 것이다’라는 말이다. 기록으로 남은 역사가 없는 까닭에 마추픽추에 대한 모든 설명은 ‘추정’할 뿐이다. 가아드마다 마추픽추에 대한 설명이 조금씩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누가 왜 이런 험한 곳에 거대한 도시를 만들었을까. 여러 의견이 분분하지만 가장 인정받고 있는 설은 잉카 제국의 초대 황제인 파차쿠티가 세운 여름 별장이라는 것. 그는 우리나라 광개토대왕에 해당하는 왕으로 전쟁을 통해 잉카 왕국의 영토를 확장한 인물이다.
13세기 초에 시작한 잉카문명은 스페인의 침공으로 멸망한 1533년까지 안데스를 중심으로 융성한 문명을 펼쳤는데, 그 전성기를 이끈 황제가 바로 파차쿠티다. 북쪽 해안의 치무와 서쪽의 창카, 정글의 강자 안티 등을 거푸 정복한 파차쿠티는 마침내 1438년 잉카 제국을 건설하는데, 수많은 노예를 전리품으로 거둔 그는 이들을 데려다 마추픽추를 짓기 시작했다. 노예들은 1450년부터 1540년까지, 90년 동안 도시를 만들었다. 여름 별장을 마추픽추로 정한 건 ‘땅과 하늘의 정기를 함께 받을 수 있는 곳’인 데다 쿠스코의 추운 6~7월 날씨에 견줘 한결 따뜻하고 건조했기 때문이다.
2시간 20분 동안 현지 가이드와 함께 관람코스를 따라 도는데, 마추픽추가 생각보다 넓어서 깜짝 놀랐다. 가이드가 없었다면 마추픽추 안에서 길을 잃을 수도 있을 듯 ~
마추피추 입구 잉카의 석조예술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안티푼쿠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간다.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맞추픽추 주차장 에서
다시 마추픽추를 왕래하는 전용버스에 올라 마추픽추 마을’이라 불리는 ‘아구아스 깔리헨테스’까지 30분 이동하여
마추픽추 마을’이라 불리는 ‘아구아스 깔리헨테스’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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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한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마을은 작지만 이쁜 곳이다...
우리가 식사할 광장 근처의 맛집이다...
식사 후 자유시간을 가져본다...
광장의 작은 성당
중심 광장 모습이다.
이쁜 골목도 걸어본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동네 골목골목을 쏘다녀 본다...
다리를 건너
오전에 마추픽추 가는 버스 행렬이 이어지던 곳을 바라본다. 지금은 펑빈 도로다...
아구아스 칼리엔테스를 감싸고 도는 아마존강의 원류인 우르밤바강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역에서 14:00에 미팅하여
마추픽추 아래의 도시인 아구아스 칼리엔테스 역에서 다시 기차 타고 오얀타이탐보 역으로
다시 1시간 40분을 타고 이동한다...
차창가로 아마존강의 원류인 우르밤바강을 바라보며...
오얀타이탐보 역 도착이다....
오얀타이탐보 역 근처에 주차 중이던 우르밤바 버스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4시 10분이다.
신성한 계곡의 중심부이자 잉카시대의 가장 중요한 요새 중 하나인 오얀타이탐보(Ollantaytambo)다. 이곳은 마추픽추로 가는 열차가 출발하는 잉카 트레일의 출발점으로 마추픽추의 관문도시이자 아구아스 칼리엔테스행 열차를 타야하는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新세계 7대불가사의 잃어버린 공중 도시 마추픽추 투어를 마치고 여기 오얀타이탐보를 떠나 이곳에서 해발 3,380m 안데스 산맥의 소금 광산인 수많은 소금 연못이 이룬 장관인 살리네라스 데 마라스 염전(Salineras de Maras)을 보러 40분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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