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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쿠스코 잉카 건축의 거대한 석조 유적 삭사이와만 요새페루 2025. 3. 19. 13:16
페루 쿠스코 잉카 건축의 거대한 석조 유적 삭사이와만 요새
2025. 3. 19.
2025. 3. 1 ~ 16, 13박 16일 일정으로 중남미 5개국(페루, 브라질,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멕시코)를 함께한 여행이다.
2025. 3. 2일 여행 2일 두번째 여행지로 페루 쿠스코 여행의 출발점인 아르마스 광장으을 나와 고산증에 시달리며 천천히 헉헉거리며 골목길을 올라 전세버스가 주차된 곳으로 이동하여 다음 2일 세번째 여행지 고대 잉카 유적지 그 목적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잉카 건축의 거대한 석조 유적 삭사이와만 요새를 관광하러 이동한다....
아르마스 광장으을 나와 잉카 건축의 거대한 석조 유적 삭사이와만 요새를 향하며 차창밖으로 내려다본 쿠스코 시내 풍경 ~
쿠스코 시내 2km 북쪽 언덕에 위치한 거대한 돌 유적지 삭사이와만(Sacsaywaman)으로 향한다.
고대에 지어진 가장 완벽한 석조 건축물이자 미스테리한 석조 건축물, 삭사이와망 입구로 들어선다...
퓨마 모양의 쿠스코 머리에 해당하는 삭사이와만
이곳이 해발 3650m
고대 잉카 유적지 관광지로 그 목적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잉카 건축의 거대한 석조 유적 삭사이와만 요새에 선다.
삭사이와만의 석벽 유적
쿠스코를 지키는 성벽 삭사이우아만
삭사이우아만(Sacsayhuamán)은 쿠스코 북쪽 언덕에 위치한 거대한 성벽으로, 쿠스코를 방어하기 위해 지어진 요새이다. 거대한 바위들로 구성된 이 성벽은 각 돌이 서로 맞물려 있는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 일부는 무게가 100톤에 달하기도 한다.
삭사이우아만은 잉카 제국의 군사적 방어시설일 뿐만 아니라 제례와 의식을 치르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이곳에서 잉카의 주요 축제인 인티 라이미(Inti Raymi) 축제가 열렸으며, 오늘날에도 이 축제를 기념하는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고...
삭사이와만 11각 돌
해발 3,700m에 있는 삭사이와만은 쿠스코를 둘러싼 산 위에 있는 성이다.
퓨마를 땅의 신으로 여긴 잉카인은 코스코 도시를 퓨마모양으로 만들고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삭사이와망을 만들었다고 한다.
수백 톤에 이르는 거대한 거석을 이용하여 만들어진 곳으로 유명하다.
돌 중에서 가장 큰 것은 높이 9m, 무게가 350톤에 달한다고 한다.
큰 바위를 쌓은 벽이 지그재그 모양으로 3단으로 건축되어 있는데 길이가 360m에 이른다.
잉카인의 저항 숨결이 남아 있는 삭사이와만 유적지
잉카인들이 스페인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싸운 요새이다.
밤에 싸우지 않는 잉카인의 전통을 이용하여 스페인 군이 밤에 삭사이와만에 침입해 잉카의 군대를 몰살했다는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해마다 우리나라 동지에 해당되는 6월 24일이면 '인티라이미' 라는 태양축제가 크게 열린다. 태양 축제는 잉카의 옛 수도 쿠스코 중앙광장에서 시작해서 삭사이와만에서 끝난다.
옛날부터 태양신에게 한 해의 풍작을 기원했던 제사 의식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삭사이와만은 15세기 후반 잉카의 정복왕 파차쿠텍(Pachacuteq) 때부터 건설하기 시작해 그의 후계자인 투팍 유팡키(Tupac Yupanqui) 때 완성됐다고 한다. 쿠스코 시내에서도 볼 수 있는 석벽과 같은 축조기술을 볼 수 있지만, 그 규모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큰 돌은 높이 10m, 무게 100톤에 이를 정도로 어마어마하다. 스페인 정복 후 자신들의 대성당이라든지 총독관저 같은 건축물을 지을 때 이곳의 돌들을 가져가 사용했다고 한다. 그렇게 가져가고도 이 정도로 남아 있으니 원래 규모는 훨씬 엄청났을 것이다.
성벽처럼 거대한 석벽이 축조되어 있는 이곳을 두고는 쿠스코를 방어하기 위한 요새였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어 보이지만, 쿠스코 시내 전체를 내려다보는 중요한 의식용 성전이었다는 설, 저수지가 있는 쿠스코 시의 관계시설이었다는 설도 있다. 퓨마를 숭배했던 잉카인들이 쿠스코 시를 퓨마 모양으로 만들었는데, 그 머리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이 삭사이망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 때문에 단순한 요새를 넘어서 신전과 같은 종교적 의미를 지닌 장소로 추정하기도 한다.
삭사이와만은 잉카군이 스페인군과 사활을 걸고 전투를 벌인 격전지였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 쿠스코가 스페인군의 지배 아래 들어간 뒤 꼭두각시 황제로 임명된 망코 잉카(Manco Inca)는 쿠스코를 탈출해 병사들을 모아 쿠스코 탈환에 나섰다. 잉카군은 유리한 전세에도 삭사이와만에서 있었던 몇 차례 전투에서 패배하면서 계곡으로 후퇴해야 했다. 그 뒤 밀림을 근거지로 삼아 저항을 이어갔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잉카는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에 존재하던 가장 큰 제국이었다. 케추아어로 타완틴수유라 불렀는데 이는 ‘사방(네 지역)을 다스리는 제국’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타완틴수유는 수도였던 쿠스코(‘배꼽’ 즉 ‘세상의 중심’이라는 뜻) 동쪽의 안티수유, 쿠스코 서쪽의 콘티수유, 쿠스코 남쪽의 쿠야수유, 그리고 쿠스코 북쪽의 친차이수유로 구성되어 있었다. 제국을 다스리는 군주를 사파 잉카(Sapa Inca: 케추아어로 ‘유일한 왕’이라는 뜻)라고 불렀는데 서양에서 이를 따서 잉카제국이라고 이름 붙였다. 잉카는 13세기 초 페루의 한 고원에서 기원했는데 1438년 즉위한 파차쿠티와 그의 아들 유팡키 황제 때 본격적으로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했다. 1527년 무렵 잉카제국은 지금의 에콰도르, 페루, 남서 중앙 페루, 북서 아르헨티나, 북부 칠레, 콜롬비아 남부지역 등 안데스 산맥을 중심으로 광범위한 지역을 차지했고 인구는 900만명(최소 600만명에서 최대 3,750만명까지 다양한 주장이 있음)에 달했다.
그러나 잉카제국도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정복과 함께 새로운 운명에 처하게 되었다. 콜럼버스가 히스파니올라, 자메이카, 푸에르토리코, 쿠바 등 카리브해 지역 섬들을 정복한 이래 유럽의 정복자들이 황금의 땅 아메리카로 몰려들었다. 1519년 멕시코 테노치티틀란(멕시코시티) 공격에 나선 에르난 코르테스가 1521년 아즈텍 제국을 정복하면서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에 대한 식민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코르테스의 아즈텍 정복 소식은 유럽인들의 탐욕을 부추켰다. 코르테스보다 더 탐욕스럽고 훨씬 더 잔혹했던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1524년, 1526년 두 차례 원정대를 이끌고 남미지역으로 향했고 그 과정에서 황금제국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 정복욕을 불태웠다. 1532년 잉카제국의 정복에 나선 피사로는 마침내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는데 성공한다.
피사로가 잉카제국의 침략에 나섰을 때 잉카제국은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분열돼 있어서 저항력이 약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적으로 많은 국가들이 멸망할 때는 외부의 공격도 공격이지만 내분으로 무너지기 일쑤다. 잉카제국의 붕괴도 내분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 내부가 단결돼 있었다면 8만명의 군대를 가진 잉카제국이 겨우 몇 백명의 군대에 그처럼 쉽게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유럽인들의 속임수와 모략도 중요했다. 거짓과 기만, 기습공격으로 황제 아타우알파를 사로잡은 피사로는 황금을 요구했다. 약속대로 아타우알파는 방 가득 황금을 채워주었지만 피사로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황제를 화형에 처했다. 피사로는 1533년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를 점령하고 1535년 리마를 건설해 남미지역의 식민지 건설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하지만 정복자들 사이에 내분이 발생하면서 피사로의 말로 또한 좋지 않게 끝났다. 피사로는 자신의 오랜 동료였던 알마그로를 제거해 주도권을 장악했으나 1541년 알마그로의 부하들에게 살해되고 말았다.
잉카제국을 정복한 유럽인들은 그 지역의 주민과 토지를 사적으로 지배했다. 국가나 제국 차원의 체계적인 통치가 아니라 중세의 낡은 봉건 지배체제나 마찬가지였다. 스페인 지배자들은 엔코미엔다(encomienda)라는 가혹한 조세‧조공 체제를 만들어 원주민들을 착취했다. 정복지의 최고 지배자인 스페인 국왕은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직접 통치할 수 없었다. 국왕을 대신해 현지 정복자들에게 원주민을 ‘보호’하고 기독교로 인도, 개종하는 임무를 주는 대신에 원주민들로부터 공납과 노동을 강요할 수 있는 절대권한을 주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통제가 없는 상황에서 절대권력을 갖게 된 현지 통치자들이 선한 통치를 할 리가 만무했다. 탐욕에 눈이 먼 정복자들의 가혹한 노동 착취와 조세, 그리고 체벌이 난무했다. 정복자들은 “신은 하늘에 있고, 국왕은 먼 곳에 있다. 따라서 여기서는 내가 내리는 명령에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면서 원주민을 노예처럼 부려먹고 착취했다.
죽어서도 아름다운 쿠스코 시내를 바라 본다.
삭사이와만 언덕 쿠스코 시내를 향해 서 있는 예수상
한쪽으로 거대한 예수상이 서 있는데 그 자리는 피사로와 스페인 군대가 가톨릭으로 개종하지 않은 잉카인들을 모두 학살한 장소이다. 훗날 이에 대한 참회의 뜻으로 페루 교회 측에서 예수상을 세웠다.
줌으로 당겨본다... 거대 예수상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곳 ~
삭사이와만이 나타난다. 푸카 푸카라와 마찬가지로 쿠스코의 요새 역할을 했는데 사람의 키를 훌쩍 넘는 엄청난 크기의 거석을 사용해 축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난다. 먼 옛날 잉카인들은 독수리와 퓨마, 뱀이 각각 하늘과 땅, 지하를 지배한다고 믿었다. 쿠스코는 땅을 지배하는 퓨마의 형상을 하고 있는데 그중에 삭사이와만은 퓨마의 머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쿠스코 전체를 내려다볼 수 있는 요새이자 감독의 역할을 했다고 추정한다.
삭사이와만에서는 매년 6월 태양의 축제인 인티 라이미(Inti Raimi)가 열려 옛 잉카 제국의 영광을 재현하는데 이는 남아메리카의 3대 축제 중 하나로 손꼽히는 큰 행사이다.
고대 잉카 유적지 관광지로 그 목적이 수수께끼로 남아있는 잉카 건축의 거대한 석조 유적 큰 규모를 자랑하는 삭사이와만 요새에서 거대 예수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삭사이와만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걸어가면 다음여행지 잉카제국의 제례장이었던 켄코가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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