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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소금강산 중턱에 있는 작은 사찰인 백률사(경북 경주시 동천동)사찰여행/경상도 2020. 5. 1. 21:04
경주시 소금강산 중턱에 있는 작은 사찰인 백률사
2020. 5. 1.
2020. 4. 29. 지인과 둘이서 경주여행을 한다...
신라 4대 탈해왕릉과 표암재를 보고 소금강산으로 오른 다음 굴불사지로 내려와서 백률사를 거쳐 다시 탈해왕릉으로 돌아와 신라 26대 진평왕릉, 설총묘를 보고 미담한정식으로 식사 후 41대 헌덕왕릉을 돌아보고 헌덕왕릉 근처에서 쑥도 뜯고 행복한 하루를 보낸 날이다.....오늘 세번째 일정으로 경주국립공원 소금강지구에 속해있으며 근처에 탈해왕릉과 백률사 등의 유적이 있고 마을에 인접해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인 소금강산을 산행 후 이제 하산하며 이차돈의 순교 사찰인 백률사로 향해본다...
소금강산 정상에서 굴불사지로 하산하는길, 굴불사지가 100m 남았다...
경주금강산이라 불리는 작지만 아름다운 산 초입에서 100m쯤 굴불사지를 지나 산길로 계단을 200여m 올라가면 절이 나온다.
가파른 계단이지만 올라가는 길이 꽤 운치 있는 길이다.
백률사로 이어지는 탐방로에는 곳곳에 기암들이 보인다.
호젓한 오솔길을 따라 산길을 오르면 대한불교 조계종 제 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인 백률사가 나온다.
백률사로 오르는 숲속길에는 소금강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도 보인다...
백률사 입구의 이쁜 풍경이다.
백률사에 도착하여 풍경을 담아 본다.
신라 법흥왕14년(527)에 불교의 전파를 위하여 이차돈(異次頓)이 순교를 자청했을 때 그의 목을 베자 흰 피가 솟았고, 잘린 목은 하늘 높이 솟구쳐 올랐다가 떨어졌는데, 바로 그 떨어진 곳이 지금의 백률사 자리였다고 한다.
이를 본 사람들이 슬퍼하여 다음 해 법흥왕15년에 그 자리에 절을 세우니 그 절이 지추사 였다가 훗날 '백률사'로 이름이 바뀌었다고 전한다.
백률사 범종과 백률사 현판을 달고 있는 요사
백률사 범종에 새겨진 이차돈 순교 모습
백률사 동종에 새겨진 조각만이 백률사가 순교자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사찰이라는 유일한 흔적으로 남아있다.
백률사 대웅전은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4호로 임진와란때 불타고 다시 지었다고 한다...
백률사 대웅전 내부의 세분의 부처님, 삼존불
대웅전 부처님 위의 장엄한 닫집
지장보살님이 계시는 영가단 한켠에 모신 '이차돈' 존영
이차돈의 순교 당시의 나이는 약 22세~26세로 추정한다고 한다.
이차돈은 자는 염촉, 염도, 거차돈, 처도라고 했다. 습보 갈문왕의 증손이며, 속성 박씨였다.
법흥왕의 가까이서 보좌하는 근신(近臣)으로서 벼슬은 내사사인(內史舍人)이었다.
대웅전 향 불단 좌측의 지장탱과 영가단
대웅전 향 불단 우측의 신중탱과 신중단
대웅전 불단 뒷편의 16나한상
장엄한 대웅전 천정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국보 29호)
이차돈을 추모하기 위해 헌덕왕10년(818)에 세운 순교비와 금동약사여래입상이 전해졌지만 이젠 더 이상 친견할 수 없는 ‘전설 속의 성보’일 뿐....
원래 백률사에 있던 것을 백률사를 떠나온 때는 일제강점기인 1930년으로 알려져 있다. 백률사 대웅전에 봉안돼 있다가 경주박물관 전신인 경주고적보존회에서 전시를 위해 옮겨간 뒤, 80여년이 지났지만 ‘함흥차사’다.
원래는 백률사 대웅전에 통일신라시대 3대 금동불상이라고 할 수 있는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이 모셔졌었다고 한다.
높이 1.7m로 현존하는 통일신라시대 금동불상 중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금동불상이다. 현재는 약단지를 쥔 손이 없지만, 옛 사진에 약단지를 들고 있는 모습이 남아 있다. 원래는 전체적으로 금도금을 하였던 것을 후대에 금도금이 없어지고 불상에 채색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백률사 대웅전 맞은편 법당 앞 탑 세울 자리가 없어서 자연 암벽에 탑을 조각한 재치가 돋보이는 마애삼층석탑(바위에 새긴 3층 석탑),
예전에는 보기 쉬웠는데 지금은 법당 보조시설로 그 모습을 보기가 약간 불편해졌다.
백율사 대웅전 앞은 변변한 석등 하나 조차 놓을 수 없을 정도로 좁고 앞은 높은 암벽으로 막혀 있다.
절 자체가 단탑이나 쌍탑을 조성할 만큼 여유있는 면적을 갖고 있지 못하나 신라인들은 이러한 자연을 교묘히 이용하여 불심을 높였으니 절 앞에 놓여야할 석탑을 바로 이 바위에 새겨 놓은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바위에 새긴 것으로 보여지지만 신라인들은 바위 속에 있는 석탑을 찾아 밖으로 드러낸 것일지도 모른다.
탑의 높이는 320cm이고 얕은 돋을새김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상륜부를 갖춘 마애탑으로서 독립된 탑에 비추어도 손색이 없는 훌륭한 것이다.
그런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마모되어 기단부와 1층탑신석 외의 탑신과 옥개부분은 뚜렷하지 않으나 형체는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이며 상륜부는 비교적 뚜렷하게 남아 있다.
이층 기단 위의 삼층석탑에는 옥개받침이 네 개이며 층급간의 비례도 정형적인 신라탑과 같다.
탑의 중앙부에는 누구의 소행인지 알 수는 없으나 글씨를 새겨 탑을 파손해 놓았다.
대웅전 뒤쪽에 자리한 삼성각
삼성각 내부에는 독성. 칠성. 산신탱을 모셔 두었다...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백률사 대웅전 전경
삼성각에서 내려다본 백률사 전경
백률사 요사채 겸 종무소
서봉당
백률사 종무소. 공양간
주지스님이 거처하시는 전각을 지나면...
이름 모르는 참 독특하게 고운 꽃이다...
부지런한 벌들은 열심을 꿀을 모으고 있다...
백률사를 내려간다...
백률사를 갈 때는 돌계단으로 올라가고, 절 참배 후 대나무 숲을 걸어 나오는 것도 해 볼만 하다.
대나무 숲에서 부는 바람소리와 숲의 향기와 대나무 숲에서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 소리도 모두 아름다움으로 받아 들이고 싶다.
백률사를 내려오며 맞이하는 대나무가 울창한 백률사 죽림길, 하늘을 향하여 꼿꼿하게 솟은 죽림속 백률사를 나는 말없이 어슬렁거렸다.
푸르름이 있는 대나무 숲을 걸어 나오면, 길을 따라 산을 내려오며 사색에 잠겨 보고 싶을 만큼의 분위기를 띄워주는 산책로였다.
사찰에는 울창한 대나무 숲이 그나마 속세의 소음과 띠끌을 덜어주는 것 같다.
대숲에 이는 바람소리는 언제 어디서 들어도 참 청량하다.
백률사에서 내려가는 숲속길, 가파른 계단이지만 내려가는 길이 꽤 운치 있는 길이다.
백률사에서 굴불사 절터로 내려가는 숲속길, 백률사에서 내려가는 계단 끝에 고운 초록 사이로 경덕왕때 세웠던 사면불이 있던 굴불사 사면불상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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