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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수정사-경북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420, 금성면 수정리 1사찰여행/경상도 2019. 11. 20. 10:59
의성 수정사
2019. 11. 20.
2019. 11. 16. 대구여동생이랑 고향 동네 엄마산소에 모이기로 한 날, 일찍 출발해서 산소 가기 전에 관수루, 낙단보와 생송리 마애보살 조사상을 들러본 후 동생들과 시간 마추어 도착한 엄마 산소에서 할아버지.할머니께 인사드리고 그리고 친정 엄마께도 인사드린다. 그리고 안계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같이 먹으며 편안히 쉬다가 14:00에 떠나 각자의 곳으로 돌아가며 나는 다시 금성면의 탑리 5층석탑과 인근 금성면의 사찰 수성사를 바삐 둘러볼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마지막 여행지 의성 금성면 수성사를 보러 간다.
영천이씨 집성촌인 산운마을을 지나 초록이 짙은 숲길 따라 가다보면 하늘빛이 참 예쁘다. 굉장히 파랬다. 저기 우뚝 솟아있는 산이 바로 금성산이다.
수정사 들어가는 입구의 저수지
수정사 들어가는 들머리 길은 참 예쁘다.
저수지는 많이 메말라 있었다. 정자골과 노적봉에서 내려온 물이 용문지, 수정사 가는 길 저수지에서 잠시아주 약한 숨을 고르고 있다.
이 안에 들어오니, 굉장히 선선하다.
노적봉, 여행객의 발길 조차 볼 수 없는 고요함만 밀려오고 인기척 조차 느낄 수 없다. 앙상한 나무 숲길 따라 가다보면 작은 사찰이 보인다. 역사가 꽤 오래된 흔적을 경내 이곳저곳에서 무심히 지나온 세월을 느낄수 있다.
수정사 가는 길, 사찰 입구까지 승용차를 타고 가도 전혀 문제가 없다. 한참을 더 올라갔는데 절 입구에서 도로가 갈라지는데 오른쪽 길은 사찰마당으로 바로 오르는 길이고 왼쪽 도로는 주차장으로 가는 길이라 왼쪽 길로 주차장으로 간다...
입구에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다.
이곳이 수정사 절 주차장에 있는 약사여래불 옆의 약수물이다.사람들은 절 밑 수도시설까지 해 놓은 곳에서 물을 떠간다. 약수 원천은 대광전 바로 양 옆에 있고 그 물을 당겨 절 입구 주차장에 약수터를 마련해 놓고 있다. 수정사는 약수가 유명하며, 비봉산과 수정사를 둘러싸고 있는 금성산은 예로부터 가뭄이 심할 때 기우제를 지내던 영험한 곳이라고 한다.
새로 조성한 듯 말끔한 불상 ( 손에 약합을 들고 있으니 약사여래인 듯 ~ )이 주차장 옆의 약수 주변에 자리하고 계신다. 이 수정사는 금성산과 비봉산 사이에 위치하여 금성산의 기운이 약수로 변하여 절 밑 바위틈에서 샘물로 솟아나고 있으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와서 그 물을 받아 가고 있다. 그런 까닭으로 ‘물 수(水)’자, ‘맑을 정(淨)’자 -’수정사‘라고 한다. 맑은 물의 절, 맑은 마음의 절이라 할 수 있겠다.
맑은 샘물 한 모금을 마시고 청정한 인간 본심을 되찾는 인연을 맺어본다...
신라시대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의성 수정사는 신라 신문왕 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사찰. 금성산 계곡에 위치하고 있으며 깊은 골짜기 사이로 수정같이 맑은 물이 흘러내리는 개울가에 지어져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이다.
수정사의 창건에 관해서는 신라 신문왕 때 의상(義湘)대사가 ‘수량암(修量庵)’이라는 이름으로 건립하였다고 하는 구전만 있을 뿐, 조선 중기까지 전하는 사적이 없어 상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에는 수량사(水量寺)라고 나와 있으나, 신경준(申景濬)이 편찬한 『가람고(伽藍考)』에는 ‘지금은 수정사라고 부른다’고 나와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당시에 유정(惟政)이 머물면서 금성산(金城山)에 진을 치고 왜적을 격퇴했다. 절의 규모가 컸으나 1835년(헌종 1) 큰 불로 대광전만 남기고 모두 탔다.
그 뒤 구담 전홍(展鴻) 스님이 옛터 위쪽 지금의 자리에 중창하였다. 1965년 이래 6년 동안 월산(月山)스님이 중수하여 요사와 월영루, 격외선원, 사명영당, 영지, 축대 등을 세웠다. 1973년에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성견(性見) 스님이 대광전을 중수하고, 향각(香閣)을 중건하였다. 이어 1993년 주지 총혜(聰惠)스님이 명부전과 범종각을 새로 짓고, 산신각과 설선당(說禪堂)을 수리하였다. 1999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고, 2001년에 요사를 새로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
건물로는 대광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월영루, 격외선원, 사명영당, 산신각, 설선당, 요사채 등이 있다.
수정사에는 이렇다 할 문이 없었다. 이 계단이 일주문 역활을 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자연석으로 쌓은 계단을 밟고 오르는 감촉이 ‘자연’스럽다... 거대한 석축사이로 난 계단을 밟고 절집에 오른다. 돌계단은 크고 작은 막돌을 박아 넣고 조성한 것인데 가지런한 장대석으로 치장한 계단보다 오히려 더 정감이 간다. 저 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
또 약수터, 절 마당 가장자리에 위치한 공식 약수터이다. 약수 원천은 대광전 바로 양 옆에 있고 그 물을 당겨 절 마당 구석에 약수터를 마련해 놓고 있다.
밑에서 물 받지 말고 위에 올라와 물을 마셔보면 물맛이 조금 다름을 느낄 수 있다.
깊은 산중에 있고 타 지역 사람들에게 그리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수정사는 작지 않은 절집이다. 10동 안 팍의 건물이 있는데 계단을 오르면 정면의 명부전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요사가 있다. 계단 올라 첫눈에 들어오는 풍경, 입구에 들어서면 종무소가 보이고 명부전이 제일 먼저 눈에 들어 온다. 대부분 대웅전, 대광전이 첫눈에 들어오는데... 잠시 당황을...
범종각, 1993년 주지 총혜(聰惠)스님이 범종각을 새로 짓고, 1999년에는 범종을 조성하였다.
사찰 크기에 비해 범종이 무척 거대하다.
보통 두 마리인데 여기는 사방으로 네 마리의 포뢰가 울고 있다.
격외선원을 끼고 왼쪽으로 돌면 수정사의 중심 법당인 대광전을 중심으로한 공간이 펼쳐진다.
요사에 수정사 현판이 걸려 있고
요사채의 뒤틀린 기둥은 싸리나무라고 하는데...
명부전 앞 장독대와 요사
수정사 '월영루'
월영루는 백년정도 된 건물인데 월영루라는 현판으로 보아 누각이었던 것 같으며 지금은 1층처럼 보이는 단층 팔작집 일뿐이다.
대광전과 마주한 전각 월영루
수정사 '사명영각'
사명영각은 팔작지붕에 앞면4칸 옆면 2칸 규모의 전각이며 전각 안에는 사명대사의 진영과 역대 고승의 진영이 모셔져 있으며, 요사겸용으로 쓰이고 있다.
유물로는 유정의 영정을 비롯하여 응규(應奎), 전홍의 영정 등이 있다는데 볼수가 없었다.
대광전을 오르는 돌계단과 양쪽 옆에 있는 돌의 모습들은 어느 너덜지대에 있는 것처럼 꾸민 이유는 뭘까?
많은 사찰을 다녔지만 주불전에 오르는 계단을 이렇게 꾸민 곳은 어디에서도 보지 못한 모습이다.
밀양 만어사 아래 수 많은 돌무더기가 펼쳐진 모습이 있는데, 얼핏 그 광경의 축소판인 듯한 모습 ~
수정사의 주불전인 대광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으로 이익공의 주심포계 건축물로 1840년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한다.
시간과 정성이 부족해서 이렇게 만들지는 않았을 텐데 ~
이걸 설계한 이는 대체 어떤 생각으로 이런 축대를 만들 생각을 했을까...
대광전 올라가는 계단과 계단사이의 간격이 일정하지 않고 불규칙하고 앞뒤 길이가 신발 길이 보다 짧고 수평도 제대로 맞지 않아서 오직 한사람만 오를 수 있는 좁은 돌계단 ~
난간도 없어서 한눈팔다 가는 자칫 넘어지기 십상인 계단은 위를 쳐다보면서 정신을 집중해야 오를 수 있다. 아마도 경건한 마음으로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무언의 암시인 것 같기도 하고... 만든 이의 뜻은 바로 이런 것 아니었을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생각을 해 본다.
좌측원수(源水)이다.
우측원수(源水)이다.
수정사 원담 약수터 앞에 있는 글귀가 눈에 들어온 표지판 ‘물에게 배울 일’...
기단 앞부분을 잡석으로 채우고 가운데에 삐뚤삐뚤한 돌계단이 이어진 이곳 좌우 돌무덤 사이로 예닐곱 그루의 나무도 심어 놓았다.
대광전 옆 계단쪽을 돌아보는데 나무를 피해 양 갈래로 쌓은 축대가 멋스럽다.
1973년에는 정부의 보조금으로 성견(性見) 스님이 대광전을 중수하고, 향각(香閣)을 중건하였다.
수정사 대광전에는 본존불이신 석가여래불이 모셔졌고, 좌 우 협시불로는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모셔져 있다.
대승불교에서는 비로자나불, 노사나불, 석가모니불을 법신, 보신, 화신의 삼신불(三身佛)로 이야기 한다.
일반적으로 비로자나 부처님을 주불(主佛)로 모신 전각을 대적광전, 혹은 대광전이라 한다.
수정사의 경우 편액은 ‘대광전’이지만 주불은 석가모니부처님이어서 서로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대방광불화엄경에 의하면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성취하신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설하실 때 온 우주에 광명을 널리 놓으시며, 비로자나 법신불로 나투셨다.
그러므로 수정사의 주불은 역사적 실존 인물인 석가모니불(化身)인 동시에 불생불멸의 진리의 몸이신 비로자나불(法身)을 표상하고 있다. 상대유한과 절대무한, 시간과 탈시간(脫時間), 역사와 신화가 둘이 아니면서 서로 중첩되어 있는 법계연기(法界緣起)의 도리를 나타내고 있다 하겠다.
향 주불의 왼쪽에 계시는 분은 미륵부처님(Maitreya Buddha)으로서 보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미륵보살이다.
향 주불의 오른쪽에 계시는 분은 과거 세상 부처님이셨던 연등불(Dipamkara Buddha)로서 보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제화가라보살’ 혹은 줄여서 ‘가라보살’이라고 한다. 연등불을 산스크리트어 ‘디팡카라 붓다’라고 하는데 이를 중국어로 ‘제화가라(提華竭羅)’라고 표기한다. 과거 연등불, 현재 석가모니불, 미래 미륵불을 한 자리에 모심으로서 과거. 현재. 미래 삼세가 서로 연속되어 중첩되어 있으면서도 각각이 별개인 화엄연기의 도리를 나타낸다 하겠다.
과거. 현재. 미래 삼세가 우리의 마음 위에 건립되어 있으나, 그 실체를 찾아보면 텅 비어 있기에 본래 자유이며 본래 청정하다. 그러한 경지에서 자비심을 일으켜 생명에 대한 봉사를 끝없이 실천하므로 과거. 현재. 미래 삼세를 무궁무진하게 창조해 낸다고 한다.
향 주불의 왼쪽에 계시는 분은 미륵부처님(Maitreya Buddha)으로서 보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미륵보살이다.
본존불이신 석가여래불
향 주불의 오른쪽에 계시는 분은 과거 세상 부처님이셨던 연등불(Dipamkara Buddha)로서 보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으므로 ‘제화가라보살’ 혹은 줄여서 ‘가라보살’이라고 한다.
대광전 향 삼존불 좌측으로 칠성단이 있다.
삼존 불단
칠성단
향 삼존불 우측의 신중단
불단 위 천정의 공포와 천정
대광전 소종
대광전 고운 문살
대광전 좌측 출입문쪽
대광전 협칸 삼합문 빗살문양
수정사 대광전 어칸의 삼합문의 빗살문양
대광전 우측 출입문쪽
명부전 앞에서 바라본 대광전
대적광 앞에서 바라본 요사와 월영루 우측의 사명영각
대광전의 측면과 후면
대광전 뒷편의 산신각과 돌탑
수정사 산령각 밑에는 마모된 형태와 이기 낀 모습에서 세월의 흔적이 묻어난 연대를 알 수 없는 5층석탑은 어느 절에 있는 것과는 비교가 안 될 만큼 보잘 것 없는 듯하나 여기에는 수많은 중생들의 소원을 빌었으리라.
키가 170여cm 밖에 안 되는 소탑으로 기단이 맞긴 한듯 한데 일부가 땅에 묻히고 1층 탑신 받침이 없는 석재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렸다.
4층 탑신은 있는지 없는지 구분이 안 된다.
많이 훼손되었지만 크기에 비해 층급 받침도 제법 뚜렷하게 새겨진, 공 들여 만든 흔적이 보인다.
그 탑 옆에는 소원을 비는 돌이 있는데...
앞에 놓인 타원형 석재는 용도와 명칭이 뭘까 어딘가에 가면 저런 돌을 들어서 사람 마음을 시험하는 곳이 있던데 설마 그런 건 아닐테고 ~
수정사 맨 위쪽에 자리한 '산령각’
작은 집에 작은 툇마루 ~ 대개 어느 절집이나 그렇듯 산령각은 아주 아담하여 귀여울 지경이다. 그 작은 집에 반퇴를 두었는데 어쩌면 여기에 걸터앉아 절마당과 그 너머 전망을 보기 위한 것이 아닐까? 하는 부질없는 생각을 해본다.
안에 걸려있는 산신도는 근래에 조성된 것이라 한다. 산신령과 동자는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지만 호랑이는 산신령에 몸을 내준채 딴 짓을 하고 있다.
작은 집에 작은 툇마루 ~ 잠시 엉덩이 붙이고 앉아 앞산 늦은 단풍을 바라보다 일어섰다.
4층 지붕돌 위에 와송 한 그루가 촛불처럼 서 있다.
앞에서 볼 때는 몰랐는데 옆에서 보니 피사의 사탑처럼 앞으로 넘어질 듯 불안해 보인다.
대광전 옆 산신각 앞의 이 전각은 무슨 건물일까 ?
대광전 옆 이름모를 전각을 지나 내려오다 뒤돌아 본다...
수정사 창고도 참 이쁘다.
이 돌담길로 오르는 대광전길은 또 이리도 이쁘다...
명부전 자연을 이용한 축대위에 1993년 주지 총혜(聰惠)스님이 명부전을 새로 지었다.명부전은 대광전과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좌상을 비롯하여 시왕상이 모셔져 있다. 지장보살 뒤에 걸려있는 지장시왕도는 1821년에 제작된 것이라 한다. 지장보살좌상은 조선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돌로 만들었지만 개금되어 있다.
지장보살 옆 시립한 존자와 시왕상.동자상도 모두 조선 후기에 돌로 만든 것으로 채색한 것이다. 채색을 해 놓아서 얼핏 석조불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다른 사찰과는 다르게 문 안쪽 좌우에 역사상이 없다. 그거 찾아보는 소소한 재미도 있는데~
종무소 건물 옆 벽면이 수정사의 게시판인 듯 ~
신 공양간인 대중선원
사찰 진입로를 조망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정자
이렇게 가을은 나무에 달려 있지를 못하고 잎을 떨군채 바위틈에 이쁘게도 자리잡고 있다...
참 이쁘다. 이 계절이 ...
숲에 오면 나는 숲이 되고 나무가 되고 바위도 되고 물도 될 것이다.
입구에 마련된 넓은 주차장이 너무 황량하다. 너무 조용해서....
여행객의 발길 조차 볼 수 없는 고요함만 밀려오고 인기척 조차 느낄 수 없는 곳에서 나만의 상념에서 빠져나와
수정사에서 물에게 배우고 간다. 그냥 물처럼 거스리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벚꽃이 만개했을 때 찾아 왔더라면 멋진 풍경을 보았을 것인데.... 조금은 아쉬웠다. 작고 아담하며 고즈넉하기 까지 한 수정사는 낙엽이 덜 졌을 시기에 다시 와보고 싶은 산사였다.
수정사를 나선다.
수정사란 절 이름답게 길가 계곡 옆으로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들리는 건 속삭이는 계곡의 노래 소리 ~
이렇게 살아있음은 참으로 축복이다.
오늘도 친정엄마 산소에 들러 엄마도 만나고 고향이지만 그동안 못 가보았던 몇군데를 밟아볼수 있었던 소중한 하루를 오늘도 알차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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