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해 금산의 보리암(경남 남해군 상주면)사찰여행/경상도 2018. 12. 12. 07:57
남해 금산의 보리암
2018. 12. 12.
2018. 12. 9. 불교산악회 산빛 어울림회원 28명과 함께한 경남 남해 금산 산행 후 둘러 본 남해 보리암 .........
금산주차장 금산탐방지원센터에서 쌍홍문을 지나 이제 보리암이 보이기 시작한다..
음성굴 위로 보리암과 해수관음보살님이 보인다.
높이 2m, 길이 5m 정도 되는 조그만 바위굴. 굴속에 들어가서 바닥을 두드리면 장구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린다고 해서 음성굴이라고 한다.
아래의 보리암 요사 위로 범종각과 설법전인 예성당이 차례로 보인다.
남해바다...
상사암과 향로봉의 웅장한 자태
제석봉과 일월봉을 필두로 바위가 만들어 내는 기이한 풍광을 담아내기 시작한다.
상사암과 향로봉
금산주차장 탐방안내소에서 쌍홍문을 거처 이제 보리암 영역으로 들어선다..
갈림길에선 언제나 우왕좌왕 하는 것이 우리네 삶인데 ~ 어디를 먼저 가야 할까?
어디를 먼저 돌아봐도 차이는 없지만 먼저 보리암 해수관음상을 친견하기 위해 길을 내려선다.
독경소리를 들으며 바다 쪽으로 꺾어 들어 가파른 계단을 내려서면 바다를 보고 있는 순백의 해수관음상으로 내려선다.
원효대사가 이 바위 위에서 화엄경을 읽었다고 하는 좌측의 화엄봉과 웅장하고 위엄있는 모습이 대장을 연상시킨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우측의 대장봉을 거느린 해수관음상과 보리암..
보리암 해수관음보살상(海水觀音菩薩像)은 화엄경의 입법계품에 의하면 관세음보살은 항상 인도의 남쪽바다 가운데 있는 보타락가산에 거주하면서 중생을 제도하는 보살이라고 한다. 이곳의 맑고 깨끗한 연못가 금강보석 위에는 관세음보살이 앉아 중생을 위해 설법하고 있으며, 때때로 선재동자의 방문을 받기도 한다.
바다를 내려다보고 있는 해수관음보살입상은 앙련(秧蓮)의 연꽃대좌 위에 서서 왼손에 정병을 들고 있다. 보관에는 아미타불 좌상이 새겨져 있다.
옷주름표현이 바람에 휘날리 듯하여 생동감이 느껴지는 보살상이다.
이 관음보살상은 1989년에 제작된 것으로 치성을 드리면 효험이 있다하여 요즘 전국 각지에서 수많은 기도객들이 모여들고 있는 곳이기도 한다.
양양의 낙산사, 강화의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관음보살 성지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관음상 옆에 있는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74호)은 원효대사가 가야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갖고 왔다는 파사석(인도에서 출토된다는 돌)으로 보리암 앞에 세웠다는 전설이 있는데 건립 시기는 고려시대. 이 탑에 나침반을 대면 바늘이 제 방향을 찾지 못하고 제멋대로인데 아직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모른다는 신비로운 석탑이다.
신비로운 3층 석탑(三層石塔)은 신라 석탑의 양식을 보이고 있어 신라석탑이라 부르고 있으나, 고려 초기의 작품으로 감정되고 있다. 보리암 앞 바위 끝에 세운 높이 165㎝의 이 탑은 상륜부에 보주(寶珠)만 놓여 있다.
이 탑은 원효대사가 금산에 암자를 들인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 수로 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돌로 세웠다고 한다.
지금도 인도 갠지스강 하류에서 발견되는 이 돌은 자성을 띠고 있다고 한다.
탑은 본래 부처님의 유골인 사리를 봉안한 곳으로 석가모니불이 열반에 드신 후 다비를 통해 얻은 사리를 여덟 나라가 나누어 가지면서 각기 탑을 세워 부처님처럼 모신 것에서 유래한다. 이때부터 사리신앙과 더불어 불탑이 세워지기 시작하는데 탑을 조성하면 무한한 공덕을 얻을 수 있다 하여 유행하게 된다. 하지만 나중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 대신 불경이나 불상 등의 법신사리를 봉안한 탑이 건립된다. 탑의 형태는 재료에 따라 다양한 양식을 갖는데 우리나라는 석탑이 대표적이다.
3층석탑은 보리암이 아슬아슬한 절벽에 걸려 있어서 나쁜 기운을 누르려고 세운 탑이라 한다.
해수관음보살 앞 전망대
보리암 해수관음상 앞에서 내려다본 상주 은모래 해수욕장과 남해바다
해수관음보살 앞 전망대에 서니 발 아래 펼쳐지는 남해 바다의 풍광. 사방으로 후련하게 펼쳐지는 조망이 발길을 잡는다.
우측의 상사바위
멀리 삼불암 근처의 기암들이 보인다.
지나는 곳곳에 눈에 들어오는 기암괴석 풍경이다. 암벽사이로 이태조기단도 보인다...
그 아래 작은 전각 하나가 숨듯 자리잡고 있다. 바로 태조 이성계가 금산에 와서 백일 치성을 드린 끝에 개국의 꿈을 이룬 것을 기념한 선은전이다. 보리암을 다 둘러보고 한번 내려가 봐야 할 곳이다...
멀리 바위 위에 소나무 하나 외로이 선 암봉이 보이고....
대장봉이 아슬아슬한 모습으로 불당을 지키고 선 절묘함은 말로 설명이 어렵다.
기암의 절벽 위에 불당을 비롯해 요사체를 세운 사람들의 의지는 보리암을 관음성지로 만든 또 다른 힘일 것이다.
해수관음성지에서 바라본 서쪽의 좌로부터 향로봉, 제석봉, 일월봉
상사바위와 향로봉. 제석봉
정상 아래 좁은 절벽 위에 걸치듯 들어선 보리암으로 올라선다. 보리암 종각과 보리암의 설법전인 예성당
대장봉과 보리암 종각
범종(梵鐘) 은 청정한 불사에 사용하는 종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석문의범' 에 의하면 종은 명부세계의 중생을 소리로써 번뇌를 끊고 깨달음을 얻도록 일깨운다고 한다.
범종은 지옥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친다. 새벽에는 28번의 타종을 하는데 천상계의 사천왕천에서 비상비비상천까지 28천의 모든 하늘나라 중생들을 깨워서, 부처님의 도량으로 모이라는 의미에서 친다. 한편으로는 인도의 가섭존자에서 중국의 달마대사까지 28대 조사를 위하여 친다는 설이 있다. 저녁에는 육신을 가진 현실의 수행자가 수미산을 통해 들어갈 수 있는 정상이 도리천이다. 즉 현실의 수행자들이 수행자들이 사는 도리천을 상징함으로 하루를 마감하는 의미로 33천을 상징하는 33번의 종을 친다. 그리고 28천+욕계천 아래의 5계(지옥, 아귀, 축생, 인간, 아수라) 라는 설도 있다.
보리암 종각 비천상
설법전인 예성당
2층 구조물 건축에 한 곳에 좌측에는 보리암, 우측에는 앙성 두개의 편액이 걸려 있다.
절벽 끝 바다 쪽으로 축대를 쌓아 지은 예성당은 2층은 스님들이 경전을 가르치고 설법을 하는 설법전이다. 5년 전에 지은 전각인데, 바다 쪽으로 1층은 주지실을 비롯한 스님들 거처 요사체가 있다.
보리암과 암릉의 조화다.
보리암은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尙州面) 상주리 금산 남쪽 봉우리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신문왕 3년인 683년 원효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이라 명하고 절이름은 보광산의 이름을 따서 보광사라 지었다고 한다.
태조 이성계는 조선개국을 앞두고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며 기도를 올렸다고 하지만 어느 산에서도 기도의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고 한다. 영험하다는 지리산을 찾았는데 지리산의 산신마저 아직 그럴만한 인물이 못된다며 돌아가라고 했다 한다.
낙담한 이성계는 지리산에서 아래쪽을 바라보는데 어디선가 서광이 비쳤는데 그 곳이 바로 지금 보리암이 위치하고 있는 남해였다고 한다.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개국하며 보광산 산신의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쌀 것을 약속하고 산 이름을 금산이라 바꾸었다 한다.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에 감사하는 뜻에서 1660년(현종 1) 왕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이라고 바꾸었다. 1901년과 1954년에 중수하였고, 1969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전국의 3대 해수관음 성지 기도처의 하나이며 양양 낙산사 홍련암(강원문화재자료 36), 강화군 보문사와 함께 한국 3대 관세음보살 성지로 꼽힌다.
절벽 끝에 위태롭게 서 있는 보리암 설법전인 예성당
해수관음상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오른쪽 예성당과 왼쪽 보광전, 그리고 중앙의 극락전이 있다.
보광전과 마주하고 있는 설법전인 예성당은 앞에서 보면 단층구조이지만 옆이나 해수관음상에서 보면 2층 구조이다.
삼신산인 고산스님이 쓴 예성당 편액
예성당의 내부이다..
설법전인 예성당 앞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예성당 처마 사이로 보이는 남해바다 "와~" 소리가 절로 나온다.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머물다가 발걸음을 돌려 법당쪽으로 향한다.
오른쪽 예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왼쪽 보광전, 그리고 중앙의 극락전이 있다.
보리암의 주불전인 보광전(普光殿)
보광전은 26평 규모의 전각으로 1969년 지어졌다.
보광전(普光殿) 이란 당호를 가진 법당은 우리나라에서 그 예가 드물다. 보광전은 원래 고대 중인도 마가다국 보리도량에 있었다고 하는 불전의 이름이다.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설하는 아홉 번의 법회 가운데 2회, 7회, 8회가 보광법당회로 이루어졌는데, 아마도 보광전이란 이름이 여기서 유래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7처9회의 장소: 1회 적멸도량, 2회 보광법당회, 3회 도리천, 4회 야마천회, 5회 도솔천회, 6회 타화천회, 7회 보광법당중회, 8회 보광법당삼회, 9회 서다림회)
보광전의 불단에는 목조 감실 관세음보살(木造 龕室 觀世音菩薩)이 모셔져 있다.
반개한 눈으로 참선하는 모습으로 화려한 보관에는 화불이 새겨져 있다. 법의는 통견이며 결가부좌하고 오른손에는 정병을 들고 있다. 좌우에는 남순동자와 해상용왕이 협시하고 있는 관음보살 삼존상이다.
이 관세음보살상은 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보리암의 기도는 하루에 네번을 한다. 한번 시작하면 1시간 30분간 계속된다.
오전 3시반, 오전 9시, 그리고 오후 2시와 6시 반에 시작되는 기도시간에 맞춰 암자에서는 수송차량을 남해 시외버스 터미날에서 운행한다고 한다
장기(長期) 기도를 올리는데, 전혀 불편함이 없도록 요사채를 기도객 위주로 운영한다고 한다.
신중목각탱은 목각에 도금한 것으로 1993년에 제작되었다.
신중탱의 중앙에 갑옷을 입고 깃텔로 장식된 모자(투구)를 쓴 분이 위태천의 동진보살이다. 위태천은 사천왕 중 남방의 수호신인 증장천왕이 거느리는 8대장군 중의 한분으로 사천왕천의 32대장을 대표하는 수령이다. 어려서 동진출가하여 청정한 법행으로 오로지 불법수호를 위해 정진한 결과 부처님께서 호법선신으로 위촉하였다. 좌우협시는 범천과 제석천이고 여러신중들을 배치한 모각 삼존신중탱이다.
보광전에 주전불을 중심으로 향 불단 좌측에 모셔진 지장탱은 석장을 들고 서 있는 지장보살을 도명존자와 무득귀왕이 좌우협시를 이루며 좌우에는 시왕들이 서 있다. 특이한 것은 지장탱 그림의 하단부분에 ‘지옥도’가 그려져 있다.
보리암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전각은 보광전(普光殿)이다.
'빛(光=깨달음)을 널리 펴겠다'는 의미를 가진 보광전은 관세음보살의 중생구제 원력을 현실화 시킨 전각 이다.
보광전은 언제나 들어 갈 자리가 없을 정도로 꽉 차 있다.
보리암은 한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 준다는 영험스럽고, 자비스러운 기도 도량으로 소문난 암자이다.
보광전 벽에 그려진 관세음보살 벽화
법화경 제25품 관세음보살보문품을 보면 일심으로 정성을 다해서 관세음보살을 염송하면 그 음성을 듣고 찾아와 즉시 괴로움을 없애주고 모두를 해탈케하고 소원을 성취하게 된다는 내용이 있다.
옷자락은 바람에 흩날리고 한손은 감로병을 들고, 또 한손은 버드나무 가지를 들고, 그 발아래 동자가 올려다 보는 이분이 '양류관음보살'이다.
동자와 함께 그려진 모습 때문에 사람들은 양류관음 앞에서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기원하지만 그러나 그모습은 보타낙가산에서 선재동자가 양류관음의 설법을 경청하는 모습을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양류관음보살 대부분이 흰옷을 입고 계셔서 '백의 양류관음'으로 불린다.
산신각 하단 쪽, 종작 안쪽 바위 밑의 작은 굴속의 부처님
작은 굴속의 부처님 옆 바위틈의 얼음속 동자스님
예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보광전과 종무소로 활용하고 있는 간성각(看星閣) 사이로 산신각이 있다.
산령각(山靈閣)
산신을 모시는 전각이다. 사찰에 따라서는 산신각(山神閣)이라고도 부른다. 또 삼성각(三聖閣)을 두어 칠성신· 독성(獨星)과 함께 모시는 경우도 흔하다.
본래 산신은 도교에서 유래한 신으로, 불교가 전래되기 전에 많이 믿던 토착신이다. 특히 산지가 70%나 되는 한국에서는 삼국시대 부터 조선 말에 이르기 까지 산신 신앙이 널리 유행하였다. 이 산신이 불교에 수용되면서 호법신중(護法神衆)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산령각 옆 바위 위의 자그마한 부처님들...
산령각 앞에서 바라본 보리암 전각들이 이마를 마주하고 있다.. 보광전. 예성당과 종각
산령각 앞에서 바라본 극락전 보광전. 예성당의 지붕 너머로 남해바다가 바라다 보인다.
산령각은 보리암에서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전각이라 많은 계단을 조심해서 내려간다.
이마를 마주한 간성각(看星閣)과 보광전 사이로 시원한 남해바다가 조망된다...
그 앞에서 내려다본 풍경이다...
간성각(看星閣)
종무소로 사용되는 건물에 걸려있는 "간성각(看星閣)" 이란 편액이다.
전해오는 얘기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은 별을 보는 풍습이 전해져 오는데, 노인성(老人星)이라는 별(일명 남극성)을 보면 장수한다고 믿였다. 우리나라의 남부 해안지역이나 고산지대에서만 가능하였기에, 금산(錦山) 보리암에 "간성각(看星閣)"이라는 당우가 있었을 것이다. 또한 경남 하동지역과 남해지역 주민들은 노인성(老人星)을 보러 다니기 위한 별도의 계를 조직할 정도로 노인성(老人星)을 신봉하였다고 전해 온다. 농번기를 끝내고, 농삿일이 한가로운 11월 하순에서 그 다음해인 1월 사이에 노인성(老人星)을 보는 것이 풍습이었다고 한다.
간성각 옆에 달린 소종은 아마도 공양시간을 알리는 용도일 것만 같다.
간성각 앞의 약수
극락전(만불전)(極樂殿/萬佛殿) 건물의 양식은 정면 5컨, 측면 4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3층 콘크리트 건물위에 조성된 전각이다.
한켠 옆에 세워진 만불당 안의 모습이다.
극락전에 모셔진 목조 아미타삼존불은 1989년에 봉안되었다. 구품인의 수인을 취한 아미타불을 주존불로 모시고, 좌우 협시보살은 보관에 화불이 새겨진 관음보살과 보관에 정병이 새겨진 대세지보살이다. 아미타삼존불의 뒤에는 아미타추불탱이 걸려있다.
중앙에 삼존불이 계시고 양 옆으로 수없이 많은 작은 불상이 모셔져 있다. 모두 만불인 모양이다. 바로 옆인데 이곳을 찾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극락전 처마에 서서 바라 보이는 남해바다
분위기에 취해 한참을 머물다가...
만불전에서 보여지는 전각들...
왼쪽에 전각이 예성당, 우측앞에는 종무소인 간성각, 종무소 뒤로 보리암의 본전인 보광전 이다.
30분 넘게 보리암에서 머물다 태조 이성계의 기도처인 선은전으로 향한다. 보리암은 태조 이성계의 기도처로 알려진 곳이 있기에 그곳을 찾는 분들도 많다.
선은전으로 향하다 바라본 극락전
종무소 옆, 돌계단 위에 표시한 선은전을 찾아가는 표시석이다. 태조 이성계의 기도처에 세워진 전각이 선은전이다.
왼쪽 위에 보이는 선은전에 가려면 엄청 가파른 길을 200m 오르내려야 한다.
이태조기단과 선은전 가는 길... 내려가는 길은 급한 돌계단으로 대나무 숲의 터널로 되어 있었다. 작은 굽이 몇 차례 오르 내리면 전각이 보인다. 빽빽하게 하늘을 가린 대나무 숲을 지나 기도터에 올라서니
선은전 옆엔 이 태조의 제사터로 썼던 제단석이 있다.사람들이 이 태조의 기도발 효험을 보겠다면 올려놓은 돌들이 잔뜩 쌓여 있다. 동전도 많고....
전각과 남해금산 영응기적비 안내문이 보인다. 선은전의 모습이다. 방문객이 거의 없는 아주 조용한 곳이다.
태조 이성계가 관음성지인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하는데 꿈에 산신령이 나타나 “만일 나라를 세울 수 있으면 무엇으로 보답을 하겠느냐?”고 묻는다. 이성계는 이곳 토굴에서 치성을 드리며 "개국의 소원이 이뤄지면 이 보광산에 비단을 둘러주겠다"고 약속했다.
조선을 건국한 뒤 태조는 비단을 내리려다(산을 감싸러면 비단이 엄청 들 텐데!!) 신하들이 만류한다.
“꿈이 이루어지면 보답으로 산 전체를 비단으로 덮겠다”는 약속을 한 이성계는 조선을 건국하고 나서 비싼 중국 수입산 비단으로 산을 덮는 대신 신하들의 건의를 받아들여 산 이름을 비단 금(錦)자를 쓴 금산으로 변경하게 된다.
그래서 훗날 조선 18대 현종이 '비단 금(錦)' 자를 내려 산 이름을 금산으로 바꾸고 보리암을 왕실 소원을 비는 원당(願堂)으로 삼는다.
이 모든 건 역사기록에 나오는 얘기로 선은전 안팎에 그 흔적들이 남아 있다.
작은 가마위에 태조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유리 액자로 되어 사진이 잘 나오지 않는다.
선은전은 잠겨 있지만 유리문을 통해 '태조 고황제 기도처'라고 쓰인 위패가 보인다.그 옆엔 구한말 고종 때 조선 개국 설화를 기념한 비도 서 있지만 사진으로 찍을 수 없었다. 대한제국 때 세운 비여서 위패에 '고황제'라고 돼 있다.
제단석 왼쪽 아래로 날씬한 사람 하나가 겨우 비집고 들어갈 만한 굴이 길게 뚫려 있다.
3m쯤 들어간 굴 끝에 촛불들이 켜 있다. 아마도 이곳이 이 태조가 백일 치성을 드렸다는 곳인 모양이다.
다시 보리암으로 올라와서 바라본 보리암과 기암들..
또한 누군가가 밀면 금방이라도 굴러 내릴 것 같은 저 바위의 절묘함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하다.
보리암 건물 위로 기암괴석 풍경이다.
대장봉과 형리암
인사로 탐방객을 맞이하는 바위, 보리암 뒤편에 우뚝 솟은 웅장하고 위엄있게 창공을 찌르고 있는 대장봉과 허리를 굽혀서 절하는 형리암의 모습이 재미있다.
독경소리를 들으며
계단을 타고 발걸음을 돌려 계단을 올라 정상으로 향한다.
곧 불교 관련 기념품 판매장이 있는 넓은 광장 도착이다.
금산 정상인 망대를 다녀와서 불교 관련 기념품 판매장인 錦山閣으로 다시 돌아왔다.
불교 관련 기념품 판매장인 錦山閣에서 잠시 조망을 즐기다가
중앙의 삼불암과 뒤로 한려수도
보리암 산신각과 대장봉(大將奉) 그리고 형리암(刑吏岩)
보리암을 떠나면서 되돌아본 저 작은 바윗돌 하나. 아슬아슬함의 극치인 형리암 이다.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이제 하산할 시간. 복곡2주차장 가는길..
복곡2주차장 도착이다...
복곡2주차장에서 1,000원 내고 셔틀버스를 탄다...
복곡 제2주차장에서 복곡1주차장까지는 4.2km이다.
셔틀을 타고
복곡1주차장 도착이다.
그렇게 비단 산인 금산의 보리암에서 가족들을 위한 소망을 기도에 담아 정성껏 기도한 후 편안한 마음으로 포항을 향해 달려온다.
'모든 것이 소중하다. 두 팔 벌려 모든 것을 안고 싶다.'
나이 들어 비로소 얻게 된 깨달음이다. 그러지 못하고 산 것이 후회되고 아쉽고 억울해서 터뜨린 웅변이다. 그러니 더 나이 들기 전에, 기운이 좋을 적에 한 번이라도 더 두 팔 벌려 모든 걸 포용할수 있게 많이 안아 보자. 늘 그렇게 살아보자.
오늘도 많이 웃어 행복했던 날에....
.
.
.
.
'사찰여행 > 경상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경산 구룡산 반룡사( 경북 경산시 용성면 용전리 118-2 ) (0) 2019.01.11 청도 대한불교조계종 대비사 (경북 청도군 금천면 박곡리 794) (0) 2019.01.10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장국리에 있는 고운사의 말사 정수사( 의성군 구천면 장국길 195, 의성군 구천면 장국리 386 (0) 2018.11.25 부처님 형상이 연못에 비친다는 불영사(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 , 금강송면 하원리 114-1) (0) 2018.11.06 대한불교조계종 은해사 하양포교당(경북 경산시 하양읍 도리3길 12 ,하양읍 도리리 91-1) (0) 2018.10.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