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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 형상이 연못에 비친다는 불영사(경북 울진군 금강송면 불영사길 48 , 금강송면 하원리 114-1)사찰여행/경상도 2018. 11. 6. 18:47
부처님 형상이 연못에 비친다는 불영사
2018. 11. 6.
2018. 11. 5. 남편이 러시아 여행 중인 시간을 이용해서 가을빛이 고운 날 나 혼자만의 여행으로 울진 지역의 불영사와 봉평 신라비. 죽변항. 성류굴, 배잠사지 당간지주. 구산리 석탑. 월송정을 둘러본 여행길 이었다...
오늘 첫번째 여행지는 05:30 포항을 출발해 7번 국도를 달려 가다가 아침에 희망을 품고 떠오르는 해맞이도 하면서 불영계곡을 거쳐 불영사에 도착이다..
5:30 이른 아침 포항을 출발하여 굽이굽이 해안길 오른 편은 일망무제의 동해 바다가 펼쳐졌다.
흰 포말을 일으키며 해안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마치 백마들이 하얀 갈기를 세우고 푸른 초원을 달려오는 듯했다.
희망찬 태양이 바다위로 솟아 오른다...
잠시 멈춰 서서 우리 가족들을 위한 작은 소망하나를 기원해 본 후...
다시 길을 달려 7번국도를 벗어나서 봉화.춘양간 국도로 접어들어 멋진 불영 게곡을 달려 간다...
울진에서 불영게곡을 지나 불영사까지 이동하는 동안 단풍든 계곡과 산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아무도 없는 텅빈 도로를 달리며 멋진 풍경을 감상한다...
07:50 한적한 불영사 주차장 도착이다...
이른 아침이라 매표소에는 사람이 없고 성인 어른 입장료는 2,000원이다. 입장료는 불영사에서 불전으로 올려야 할듯...
일주문
아름드리 통나무를 깎아 머리를 수놓은 오색금단청이 투명한 아침햇살을 받고 한결 반짝거린다. ‘천축산 불영사’를 알리는 일주문이 사찰초입 부터 활짝 두 팔을 벌리고 맞이한다.
불영사 일주문을 지나 산문에 닿는 고요한 숲길은 세간의 번잡함을 털어 버리기에 적당한 수행길이다.
나무 그늘이 울창한 짙은 단풍길을 한참이나 걸어가면 계곡의 양쪽에 걸쳐 놓은 커다란 다리가 떡하니 앞을 가로 막는다.
10년만에 다시 찾은 불영사이다. 초입의 다리에서 보는 게곡의 풍광이 무척 수려하다.
불영교는 새로 단장한 대리석 다리로 특별히 눈여겨볼 것은 못되는데, 다리 위에서의 조망이 좋아 나도 난간에 앉아본다. 아래를 굽어보니 구불구불 이어지는 산과 물의 조화가 산태극 수태극을 이루어, 마치 한 폭의 동양화를 펼쳐놓은 듯 장쾌하고 웅장하다.
불영계곡 일원 (명승 제 6호)
답사에 있어서 늘 느끼는 것이지만 빠르고 편리한 것을 추구하기 보다 조금 더 에둘러 가고 조금 더 천천히 많은 시간을 머물게 되면 더 많은 것이 보이게 마련이다.
특히 절을 향하는 진입에 있어서는 옛 사람의 마음으로 천천히 길을 걸어보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도 한다
이렇게 아름다운 계곡을 끼고 도는 길이라면 더 말해서 무엇하랴...
대전에서 오셨다는 강선생님 부부를 만나 서로 사진도 찍어주며 이런저런 대화를 이어간다.. 여행지에서 이렇게 좋은 여행 동무도 만나는 법이다..
불영교에서 바라본 불영계곡
불영계곡에는 유려한 곡선도, 아찔한 폭포도 없다. 굵은 필치로 힘차게 그려나간 듯 담백하고 절제있는 직선이 바로 불영계곡이다. 원래 계곡은 근남면 행곡리에서 서면 하원리까지 약 15㎞에 걸쳐 이어진다. 계곡 주변에는 신라시대 고찰 불영사를 중심으로 광대코바위, 주절이바위, 창옥벽, 명경대, 의상대, 산태극, 수태극 등 30여 곳의 명소들이 펼쳐진다. 계곡 바닥과 주위 암반은 모두 화강암으로 오랫동안 풍화 침식되며 만들어졌다.
불영사는 절 자체가 지닌 고즈넉한 멋스러움도 좋지만 일주문을 지나 불영계곡을 따라 절까지 이어진 길도 무척 아름답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면, 거창하게 해탈까지는 이르지 못해도 쓸데없는 아집은 미련 없이 실어 보낼 수 있다.
국도변 주차장의 일주문에서 불영사 대웅전 앞마당까지 약 500m의 진입로가 특히 인상적이다.
소나무가 듬성듬성 자라는 바위 벼랑에 물든 단풍이 가을의 완연함을 말해준다.
불영교를 건너면서 부터 나타나는 고목 숲길은 불영사의 텃밭까지 이어진다.
불영사 가는 중간쯤에 불영교를 지나면 상류에서 내려오는 계곡물을 만날 수 있는데 계곡수는 수량도 많고 유속도 빠르다.
천축산 바위에 새겨진 불영(부처님 그림자)이 연못에 비치는 불영사는 천년 고찰이자 마음속에 찌들었던 홍진을 털어내는 도량이다. 이 도량 옆에는 한국관광공사가 9월의 가볼만한 관광지로 추천한 불영계곡이 길게 뻗어 있다.
아름드리 붉은 소나무들을 바라보며 ‘과연 울진이구나’ 연신 감탄을 한다.
금강송이 양쪽으로 뻗어 있는 사찰 진입로
계곡을 지나 불영사 가는 길목에는 붉은 색을 띄고 있는 금강송들이 하늘을 찌를듯 빼어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일제 강점기 이지역 일대의 금강송을 모조리 베어내 일본으로 가져가 사찰등을 건립하는데 썻다고 하는데 당시 목재로 사용가치가 떨어지는 어린 금강송이 광복 이후 계속 보존되어 약 100여년 안팎의 금강송만이 현존하는 것으로 보인다.늘씬한 미인이 서있는 듯한 금강송도 눈길을 끈다.
일주문에서 사찰로 이어지는 ‘명상의 길’은 금강송 솔향과 비경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깊어가는 가을 정취와 함께 불영사를 찾는 이들의 잊지 못할 추억의 길이 된다.
불영사까지 가는 명상의 길, ‘명상의 길’이라는 팻말이 붙은 숲길은 오로지 걸어서만 갈 수 있다.
불영사 입구에 있는 명상의 길. 이 곳을 천천히 걸어가면 깊은 명상에 빠질 것 같다.
명상의 길을 따라 금강송이 일주문처럼 서 있는 양성당 혜능선사의 부도로 향해본다.
그 길 곁 구석에 조선시대 초기 불영사에 주석했던 승려 '양성당 선사'의 승탑이 마련되어 있다.
곁에 자리한 탑비의 기록을 살펴보면 그는 울진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출하가여 중종 연간에 입적하였다 전한다.
양성당 선사와 관련해서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하고 있다.
숙종의 계비였던 인현왕후가 기사환국을 겪으면서 왕비의 지위에서 쫓겨나 서인이 되었을 때 5년이라는 세월을 눈물로 보내다가 마침내 자결을 결심하고 독약 그릇을 앞에 놓고 울다가 잠이 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꿈속에서 백발의 노승이 나타나 자신이 천축산 불영사에 있는 승려이며 '3일만 더 기다리면 반드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사라졌다고 한다.
그녀는 이 꿈을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3일을 더 기다렸더니 희빈 장씨가 쫓겨나게 되고 다시 왕후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이후 꿈속에 나타난 노승의 흔적을 찾아 불영사에 수소문을 해봤더니 그 모습이 200년전 입적한 양성당 선사의 화상과 같았다고 한다.
그리하여 인현왕후는 그 은공을 갚기 위해서 불영사를 중심으로 한 사방 10리 내의 토지를 불영사에 시주했다고 전한다.
양성당 혜능선사의 부도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62호)
경상북도 울진군 금강송면 하원리 불영사에 있는 조선 후기 양성당 선사 혜능의 부도.
불영사 부도는 지대석, 기단석, 탑신의 3석으로 구성되었으며,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석종형 부도로서, 전체 높이 176.5㎝이고, 탑신의 폭은 83㎝이다. 전체적인 형태는 평면 방형의 지대석 위에 원형의 기단석을 각각 별도의 돌로 놓고 그 위에 일석으로 만든 종형의 신석과 보주형 상륜을 올렸다.
지대석은 대강 치석한 방형 대석으로 별다른 조식이 없다. 기단석의 옆면에는 8판의 중복련(重伏蓮)을 양각으로 장식하였으며, 상부에 원형의 탑신 받침을 호형으로 각출하여 신석을 받고 있다. 신석은 평면 원형으로서 하단이 약간 좁은데, 복부로 올라가면서 넓어졌다가 상부에 이르면 다시 하단과 같이 좁아진다.
신부 측면에는 장식이 없고 하부에는 6판의 앙련(仰蓮)을, 상부에는 14판의 복련을 장식하였으나 매우 형식적이며, 그 윗면에는 호형 1단의 원형 받침을 각출하여 상륜을 받았다. 상륜 하부에는 1단의 원대(圓帶)를 조각하였고, 그 정면에 연봉형의 보주를 조출하였는데 장식은 없다. 신석과 보주는 동일석으로 조성되었다.
양성당 선사의 부도 비문은 조선 후기 학자 최석정(崔錫鼎)이 지었다.
불영사 부도를 보고
숲길을 들어서니 오랜 고목사이로 만발한 단풍들이 살짝 고개를 내민다.
‘명상의 길’을 걸어서 간다...
그렇게 ‘명상의 길’과 금강송길을 거닐다 보면 불영사 사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15분 정도를 걸으면 불영사의 마당 가까운 곳에 당도하게 된다.
고사된 굴참나무 그루터기
부도를 나오면 1300여년의 세월을 버티다 쓰러진 굴참나무에 사람들이 신성한 돌을 쌓아 만든 돌무지가 있다. 일종의 신앙의식인 셈이다. 불영사를 지은 의상대사가 심은 나무라고 한다.
1964년 1월 31일에 천연기념물 157호로 지정되었다가 고사(枯死)되에 1969년에 천연기념물에서 해제되었다.
양성당 선사의 승탑을 지나 얼마 걷지 않으면 계곡 사이에 너른 평지가 나타나고 불영사의 전각들과 당우들이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이 험준한 산에 풋풋한 흙길이 있다는 것도 신기한데 갑자기 앞이 환해지면서 너른 공터가 나온다. 당황스러운 건 10년 전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매한가지다.
깊은 산중이라도 8:30 해는 이미 중천에 떠오르고 있었다.
낮은 담장 너머에는 청납당. 법운당. 희운당 등의 스님 수행 공간 전각이 보인다.
불영사의 돌담. 낮은 담장은 실제 담장의 역할보다는 공간을 구분하는 정도인 것 같다.
첩첩 산중의 계곡 사이에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된 넓은 평지가 매우 특이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고추와 배추. 무 등 여러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불영사의 매력은 비구니 스님들이 직접 농사를 짓는다는 것이다.
고요하고 정갈한 불영사를 걷다 보면 선사의 평온함이 일상을 잠시 내려놓고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불영사는 여느 산간 사찰과 달리 석축과 계단을 통해 올라가는 진입구조를 지니고 있는 것이 아니고 남원의 실상사나 완주의 송광사와 같은 평지 가람의 느낌이 강하다.
사찰의 전면으로는 너른 연못이 자리하고 있는데 여름에는 온통 고운 연꽃과 노란색 어리연이 피어나 호수를 장식한다고 한다.
연못에 가득 담긴 천축산과 불영사 햇살이 맑게 빛나는 가을 아침, 일주문서 20여 분을 걸어 들어오면 비교적 큰 연못이 눈에 제일 먼저 들어온다. 부처님 그림자가 비치는 연못이다.
불영사 전각 안내도
불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서 울진군 천축산에 자리하고 있다.
불영사는 1379년에 작성된 「천축산불영사기(天竺山佛影寺記)」에 651년(신라 진덕여왕 5) 의상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그러나 당시 의상대사는 26세였고 당나라 유학 전이므로 창건 시기는 신빙성이 떨어진다. 다만 경내에 남아 있는 3층석탑과 대웅보전의 석축 등을 참고할 때 적어도 통일신라 또는 고려 초기에 이미 사찰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
불영사에 관한 기록은 거의 전하지 않아 창건 이후 고려시대까지의 연혁을 알 수 없다. 1933년에 제작된 사적비(事蹟碑)에 따르면 1396년(태조 5) 화재로 소실되어 이듬해 재건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1578년(선조 11)에는 성원(性元)법사가 영산전과 서전(西殿)을 세우고 임진왜란 후에는 법당과 동서 선당을 세웠다고 한다. 불영사는 17세기에 지속적인 불사를 통해 많은 건물들이 세워졌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1720년(숙종 46)에 화재가 발생하여 영산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들이 소실되었고 1725년(영조 1)에 중창하였다. 이후 일제강점기까지 여러 차례 중창과 중수를 거쳐 지금에 이른다. 불영사란 이름은 서쪽 산등성이에 부처님 형상을 한 바위가 절 앞 연못에 비치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불영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651) 의상이 세웠다고 전하는데, 당시 이곳 연못 위에 다섯 부처님의 영상이 떠오르는 모습을 보고 거기 살던 용을 쫒아낸 뒤 절을 지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태조 5년(1396) 나한전만 남긴 채 화재로 모두 불에 타버렸고 임진왜란 때에도 영산전만 남기고 모두 불 타 버렸던 것을 훗날 다시 짓고 많은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대웅전으로 향하는 길에 설법전.청풍당이 보인다..
청풍당
청풍당 담장아래 은행나무를 찾았더니 부러져 부처님을 조성하게 해준 나무는 또 다시 새 생명을 열심히 키워내고 있었다.
청풍당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공간과 공양을 준비하는 공양간이 있는 요사채이다.
호수를 곁으로 돌아 들어오면 설법전을 지나야 불영사의 대웅전마당에 당도하게 된다.
울진 불영사에서 볼거리가 또 있다. 절 마당 한 쪽 언덕에 군락으로 펼쳐진 금강 소나무다. 하늘을 뚫을 듯한 기세로 서 있는 금강 소나무는 한 겨울에도 푸른빛을 잃지 않을 정도로 꼿꼿한 기상을 자랑한다. 종무소에 비치된 팸플릿에 ‘마음 닦기 좋은 곳, 佛影寺’라고 쓰여 있듯이 이 도량은 산사의 평온함과 설명할 수 없는 여유로움, 천년 고찰의 숨결을 모두 느낄 수 있는 아름다운 불국토이다.
대웅전 바로 앞의 설법전
불영사는 대웅보전 영역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선원과 무위당 등이 자리한다.
대웅전 오른쪽 옆에는 1995년 신축한 천축선원이 있다.
근원을 굳이 따지자면 현 주지 일운 스님이 1978년부터 조그만 선방을 운영해오다 개축한 것이다. 일년 내내 운수납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으로 전국 비구니 선원 중 규모가 큰 대표적인 선원이다. 불영사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1년에 두 차례씩 안거 해제일 3일 전에 재가불자 1백여 명에 문호를 개방해 안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3일 동안 스님들과 똑같이 오후불식과 묵언수행 해야된다.
설법전 좌측 앞에 난 길에 저멀리 보이는 울타리로는 천축선원. 무위당. 청풍당이 있다.
설법전에서 바라본 앞마당. 석탑을 둘러싼 ㅁ형 배치가 포근하게 느껴진다.
절 마당은 그리 넓지 않은데 제일 안쪽 중심 되는 터에 주불전인 대웅보전이 놓여 있고 그 앞으로 삼층석탑이 그 좌우로 요사와 승방이 놓여 있다.
황화당
향 대웅전 우측의 전각으로 울진 현감인 백극재라는 사람이 이 건물에서 환생했다고 해서 환생전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
설선당
설선당은 향 대웅전 좌측의 전각으로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는 선방이다.설선당은 안쪽 작은문으로 들어가면 응향각(凝香閣)이 있다.
대웅보전 앞에는 무영탑이라 불리는 삼층석탑과 배례석(拜禮石)이 자리잡고 있다.
탑 앞에 단정히 놓인 배례석에 한 줄기 연꽃이 피어오른다. 수백 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배례석에 곱게 피어난 연꽃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불영사 3층석탑(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35호)
불영사 삼층석탑은 원래 황화실 옆 동쪽에 무너져 있었다가 1977년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되었으며 일명 ‘무영탑’이라 하는데, 신라 하대에 널리 만들어진 형식이다.
불영사 삼층석탑은 이중기단에 삼층의 탑신을 쌓아올린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의 석탑 양식을 지니고 있다.
전체적으로 탑의 스케일은 작아졌고 탑의 전체적인 부분에 형식화가 나타나는 점. 옥개석의 처마 끝에 반전이 심하게 일어나는 점을 통해 불영사 삼층석탑의 제작 시기는 부연이 없고 아담하지만 전체적으로 고른 균형을 이루고 있어 신라 석탑의 전형 양식을 잘 계승한 고려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탑 뒤로 대전에서 오신 강선생님.
팔작다포집으로 18세기 건물로 추정되는 대웅보전(보물 제1201호)에 시선이 꽂힌다.
대웅보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기단은 지형의 높낮이에 맞춰 조성하였는데 4면의 구성이 서로 다르다. 정면은 잘 다듬은 면석과 갑석을 사용하고 하부에 돌거북으로 장식하였으나 나머지 면은 장대석 또는 막돌을 사용하였다. 초석은 자연석을 사용하였으며 그 위에 민흘림이 있는 원기둥을 세웠다. 공포는 외3출목 내4출목 구조이다. 주간포는 정면의 경우 매 칸마다 2조씩 배치하였으나 배면은 가운데 칸에만 2조를 놓고 좌우 협칸에는 1조를 놓았다. 측면은 모든 칸에 1조씩만 배치하였다. 첨차는 교두형(翹頭形)이다. 1·2·3제공은 끝 부분이 하늘로 향하는 앙서형(仰舌形)인데 초제공과 2제공은 연꽃을 조각한 반면에 3제공은 연봉오리를 조각하였다. 4제공은 익공형(翼工形)이고 5제공은 운공형(雲工形)인데 정면 가운데 칸은 용머리를 조각하였다. 귀공포에서는 귀한대를 1마리 용으로 조각하여 장식성을 높였다. 제공은 건물 내부에서 4단까지 장식이 없는 교두형으로 처리하였다. 그러나 5제공은 주상포(柱上包, 기둥 위에 놓이는 포작)에서 용머리를 조각하였고 주간포에서는 삼분두(三分頭)로 처리하였다.
불영사 대웅보전(보물 제1201호)
대웅보전은 불영사의 주불전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집이다. 현재의 건물은 1725년에 중건되었다.
대웅보전은 언제 창건되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02년(선조 35)에 인섬장로(印暹長老)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1629년(인조 7)에 중수하였으나 1720년(숙종 46) 화재로 인해 또다시 소실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1725년(영조 1)에 중건한 것이다. 1750년(영조 26)과 1810년(순조 10)에 서까래를 보수한 이후 1905년(광무 9), 1993년 등 여러 차례 수리를 거쳤지만 큰 변화는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산회상도 앞의 삼존불은 불영사의 600년 된 은행나무로 만들어 2002년에 새롭게 봉안한 불상들이다.
대웅전 내부에는 석가모니불을 본존불로 오른쪽은 문수보살, 왼쪽은 보현보살을 모셨다.
석가모니 부처가 인도의 영취산에서 설법하는 모습을 화려한 색채와 세밀한 묘사로 표현한 영산회상도(보물 제1272호)
불영사 영산화상도(보물 제1272호)
대웅보전 안에는 석가여래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고 그 뒤로 영산회상도가 걸려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축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는 법회를 열었는데 그 때의 모습을 묘사하여 그린 그림이 영산회상도이다.
이 영산회상도는 영조 9년(1733년) 굉원 · 명준 · 순일 등 6명의 화원과 스님들이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림의 중앙에는 법화경을 설법하고 있는 석가모니 부처를 크게 그렸고 그 주변으로 십대보살· 십대제자· 범천과 제석천· 사천왕· 신장상 등이 둘러선 군도 형식의 구도를 갖추고 있다.
불영사 영산회상도는 아름다운 채색과 정밀한 묘사가 돋보이며 보존 상태가 양호한데다 탱화가 제작된 절대연대를 알 수 있어 조선 후기 불화를 연구하는데 매우 가치 있는 작품이라 한다.
대웅전 신중탱화(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23호)
불영사 대웅보전에 봉안되어 있으며 그 그림의 형태는 삼베(麻) 바탕에 채색한 것으로 전체 크기는 세로 230.5cm, 가로 236.2cm이다. 팔곡병풍을 배경으로 상단에는 제석과 범천을, 하단에는 위태천을 중심축으로 좌우에 무장의 천룡팔부중(天龍八部衆)을 묘사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가장 많이 애용되었던 것으로 신중도 중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색채는 적색과 녹색이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 반면 돋보이는 청색과 흰색의 남용으로 인해 화면이 밝아졌으나 차분한 느낌을 유지하고 있다. 화면 하단의 화기(畵記)를 통해, 1860년(철종 11)에 금어(金魚)인 의운 자우(意雲 慈友, 1856~1873년 활동) 등 5인의 화원에 의해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향 삼존불 좌측의 독성탱
독성탱 아래의 함에 담긴 나한상(?)
향 삼존불 우측의 함 속의 것은 무엇인지?
천장은 중도리를 기준으로 안쪽은 우물천장으로 구성하고 바깥쪽은 빗천장으로 처리하였는데 조각이 화려하다.
가장 주목할 점은 건물에 색을 칠한 단청 부분이다. 이 부분은 바깥쪽은 다시 칠하여 원래의 모습은 잃었으나 안쪽은 예전의 형태가 그대로 남아있다. 천장에는 벽뿐만 아니라 건물을 지탱하는 굵직한 재료들에 그림을 그린 기법들이 수준 높게 평가되고 있다. 격조 높은 불교 그림과 건축양식, 단청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는 조선 후기의 건축물로 알려져 있다.
불영사 대웅전 가구 구조(架構構造)는 1고주(高柱) 5량 형식이다. 고주는 예불공간을 넓게 쓰기 위해 배면 중도리 위치에 맞춰 측면 기둥열에서 약간 뒤쪽으로 물려 세웠다. 대들보와 툇보는 공포 위에 놓이며 대들보와 툇보가 만나는 부분의 하부에는 고주를 세워 받쳤다. 대들보 위에는 조각이 화려한 포대공을 짜서 종보를 결구하였으며 종보 위에는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쳤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처마는 서까래와 부연을 사용한 겹처마이다.
대웅전 후벽에 쌍 여닫이 문이 있다..
대웅전의 장엄한 외부 단청
이 절의 동쪽에는 삼각봉(三角峰), 아래에는 좌망대(坐望臺)와 오룡대(五龍臺), 남쪽에는 향로봉(香爐峰)·청라봉(靑螺峰)·종암봉(鐘岩峰), 서쪽에는 부용성(芙蓉城)·학소대(鶴巢臺), 북쪽에는 금탑봉(金塔峰)·의상대(義湘臺)·원효굴(元曉窟)·용혈(龍穴)이 있는데 모두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천축선원. 무위당. 청풍당. 대웅전 전각이 경겹게 이마를 마주하고 있다..
대웅보전은 특이하게도 돌거북 조각 한 쌍이 기단을 받치고 있다.
대웅전 기단아래 축대 밑에 있는 한쌍의 석구(돌거북)가 발길을 잡는다.
불영사 대웅보전은 돌 거북 조각 한 쌍이 받치고 있다. 이 석물은 불영사 창건당시의 것으로 전해지는데, 천축산의 강한 화기(火氣)를 억누르기 위한 풍수 비보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불영사가 있는 자리가 화산이어서 그 불기운을 누르기 위해 물에 사는 거북을 조각해 넣었다고 한다. 지금도 거북 조각 한 쌍은 목만 빠끔히 내민 채 무거운 대웅보전을 받들고 있다.
대웅보전 아래 머리를 불쑥 내민 돌 거북이 바닷사람들의 극락인 용궁으로 중생을 이끌 반야용선의 뱃머리로 어디 거북이만한 신물이 또 있을까?
대웅보전 에 묻힌 돌 거북이 한 쌍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커다란 법당 하나를 온몸으로 짊어지고 어디론가 힘차게 기어가는 모습이다.
바닷가에서는 예로부터 거북이가 바다를 지키는 영험한 동물로 모셔졌을 터, 절집마당에서 뿌리 깊은 우리 문화의 원형을 다시금 찬찬히 되짚어 보았다.
대웅보전이 자리한 중심 영역은 3층석탑이 세워진 마당을 감싸고 있어 아늑한 느낌을 주고 있다. 3층석탑을 중심으로 북쪽에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남쪽에는 설법당, 동쪽에는 황화실, 서쪽에는 설선당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바로 앞의 설법전
설법전 내의 전경이다..
향 대웅전 왼쪽 뒤편에 있는 산신각은 다른 전각에 비해 규모가 작아 보인다.
산신각 내의 산신탱
산신각 옆에서 바라본 불영사의 가을 ~
향 대웅전 좌측 옆 승방인 설선당의 축대를 돌아 명부전 가기 전의 수각
수각과 범영루범영루의 불전사물 중 목어와 운판
불영사의 고운 가을 ...
담장에도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향 대웅전 좌측 옆 승방인 설선당의 축대를 돌아가면 명부전이 다소곳이 자리하고 있다. 단지 걸음 몇 보면 끝날 이길이 왜이리 숨막힐 듯 아름다운지 나는 알 수 없다.
불영사 명부전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고 있다.
이들 중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문 입구에 장군(將軍)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尊像)을 갖추게 된다.
또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이다.
지장보살 위 천정의 용
명부전은 일반적으로 대웅전을 향하여 우측 편에 위치 한다..
명부전 옆으로는 불영사를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의상대사를 모시기 위해 의상전을 마련해 놓았다. 의상전 옆에는 유난히 붉은 단풍이 자태를 자랑한다.
의상전에는 역대 고승 5분의 존영을 모셔 두었다...
조선 숙종 때, 장희빈의 계락에 의해 폐위되어 자결을 하려던 인현왕후의 꿈에 불영사의 스님이 현몽하여 목숨을 구하고 복위되자 그 은혜에 보답코자 불영사 사방 십리의 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고운 단풍나무사이로 응진전이다. 응진전은 개인적으로 불영사 전각중 가장 마음에 든다. 연못을 바라보며 야트막한 주위 산세에 안겨있는 응진전의 유치도 탁월할뿐더러 건물이 주는 고색창연함은 여행자의 마음에 깊은 적막마져 들게 한다.
984년 해체 · 보수가 이루어 질 때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그에 따르면 '선조 11년(1578) 이후 다섯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다'라는 명문 기록이 나와서 불전의 조성연대를 15세기 초·중반 정도로 연대를 추정하고 있으며 원래는 영산전이었다고 한다.
불영사의 응진전은 정면 3칸 · 측면 2칸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인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을 올린 건물로 불영사 경내 서쪽에 남향하여 세워져 있고 규모가 매우 아담하다.
그런데도 기둥과 기둥 사이에 공포를 더하여 화려함을 추구하였고 맞배지붕 측면에는 박공을 대었다.
그러한 박공 안쪽으로도 다포작은 올렸는데 매우 특이한 경우가 아닌가 싶다 .
기둥에는 배흘림의 흔적이 남아있는데 이 또한 오래된 건축에서 볼 수 있는 장치이다 .
울진 불영사 응진전 (보물 제730호)
연못의 깊숙한 곳, 다소곳한 모습으로 불영사의 경내 여러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다포계 홑처마 맛배집으로 조선 중기 초엽의 건물로 추정되는데 당초에는 영산전이라 불렸던 옛집인 응진전이 돌아 앉았다. 응진전은 3칸짜리 작은 건물인데 가운데 칸만 문을 달고 양 옆은 벽체로 꾸몄다. 옅은 안료로 색을 칠했는데, 불그스레한 연분홍 빛이 마치 새색시의 수줍은 볼을 연상케 한다.
한 눈에 봐도 고식적인 건축 양식을 잘 지니고 있는 이 건물은 임진왜란이 발생하였을 때도 불에 타지 않고 남아 있게 되어 현재까지 제 모습을 잘 이어오고 있다
건물 내부에는 바닥에 마루를 깔았고, 출입구를 제외한 벽면에 빙 둘러 불단(佛壇)을 마련하였다. 불단 위에는 중앙에 한 단 높게 본존불(本尊佛)인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아난·가섭과 을 모셔놓았으며, 불상의 좌우에는 흙을 구워 만든 16나한상(十六羅漢像)을 배열하였다.
벽체 위의 목조 가구(架構)에는 녹색을 주조로 한 단청이 칠해져 있고, 포(包) 사이의 조그만 벽[包壁]에는 불상 그려져 있다. 건물의 크기에 비해 큰 대들보가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고, 그 위로 가운데는 소란반자로 마감한 우물천장을, 둘레는 빗천장을 가설하였다.
귀기둥 위의 귀공포는 맞배지붕 건물에서는 드문 것으로서, 불영사 응진전에서 4면에 공포를 두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며, 팔작지붕 건물에서와 달리 처마를 받치는 구실을 하지 않으므로 특징적인 짜임새를 보이고 있다.
공포의 첨차나 쇠서[牛舌] 등에 조선 초기의 제작수법이 남아 있고 짜임새도 치밀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조선 중기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응진전의 천장 역시 매우 오래된 목조 건축의 아취가 잘 담겨 있다.
화려한 단청으로 장식했지만 단청들은 색이 많이 바랬고 더러는 또 지워졌다.
천장을 살펴보면 건물 크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매우 큰 대들보가 천장을 가로지르고 있는데 천장 가운데에는 사각의 틀 속에 아름다운 연꽃들을 새겨 넣었다.
건물 안쪽은 천장 속을 가리기 위해 우물 정자 모양을 천장으로 꾸몄다.
건물에 남아있는 단청은 안쪽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조선 중기의 문양을 살펴볼 수 있다.이러한 점을 통해 볼 때 불전 내부를 화려하게 장엄하기 위해서 노력의 흔적이 많이 엿보인다.
응진전 옆으로 정면 3칸의 맞배지붕인 칠성각이 보인다..
칠성각 내부에는 칠성탱이 있다.
범영루 바로 앞이 불영지 연못이다.
불영사의 경내를 돌아본 후 다시 불영지의 운치스러운 풍경을 만끽해 본다.
연못 주위를 탑돌이 하듯 돌아본다. 물과 흙. 풀. 아무것도 잡히는게 없다. 물은 이미 안과 밖의 경계가 없다. 불영사는 물속에도 있고 물 밖에도 있다. 내가 믿고 있는건 내가 만든 또 하나의 허상일 뿐...
연못은 이제 경계가 아니라 연속이다. 발아래 밟히는 잡초의 촉감이 그대로 전해진다. 바람에 날리는 연못 냄새, 이따금 울어대는 산새소리, 따스한한 가을 나는 꿈을 꾸고 있다.
불영사에서 가장 바깥쪽에 자리한 극락전
극락전 편액의 글씨는 부산 금정산 범어사와 대구 팔공산 동화사의 현판을 쓴 해서 김성근 선생이 쓴 것이라 한다.
극락전 안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존으로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있다.
해우소와 극락전
따스한 햇살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있는 단풍잎에서도 빛이 나는 것 같다.
범영루를 배경으로 불영지 연못가에 조성된 하얀색 야외 불상, 바위 위에 앉은 ‘우유 빛깔’ 부처님은 부드러운 미소를 짓고 있다.
연못 너머로 보이는 범영루
불영사 초입의 스님 수행공간 전각들....
산 정상에 부처 형상의 바위
불영계곡은 ‘불영사’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신라 진덕여왕 5년(651)에 의상대사에 의해 세워진 불영사의 본래 이름은 ‘구룡사’였다. 부처 형상을 한 뒷산 바위가 절 마당 연못에 비쳐 ‘불영사(佛影寺)’로 이름이 바뀌었다. 날씨가 맑은 날이면 이 광경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정말 외경심이 들 정도로 장엄하다.
불영지에서 바라 본 부처님 바위 인 불영암(佛影岩)과 그 앞에 작은 바위는 부처님의 제자가 설법을 듣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두 손을 모은 채 깊이 합장하는 부처바위의 모습은 경이로움을 준다.
불영사 연못에 천축산의 그림자가 잠든다. 누구든 불영계곡 불영사에서 정성을 한껏 다한다면, 부처님의 그림자가 언젠가는 마음 속 작은 연못에 잔잔히 어릴 날이 오지 않을까?
부처 형상을 한 뒷산 바위가 맑은 날이면 선명히 비치는 불영사 대웅전 앞 연못의 풍경은 한 폭의 맑은 수묵화가 연상될 정도로 풍광이 뛰어나다.
연못 뒤로 펼쳐지는 불영사의 전각들이 너무 조화롭게 배치되어 있다. 순간 평온한 기운이 이 공간을 가득 메우는 것 같다.
그렇게 호수를 따라 사찰을 한 바퀴 돌아보는 동안 절이 앉아 있는 터가 참 좋다는 생각이 든다 .
불영계곡이 휘감아 돌면서 자연스럽게 '산태극 수태극'의 형태를 지니게 된 명당터에 그것도 사방을 둘러 보아도 온통 첩첩 산중인 산기슭 안에 감추어진 너른 터에 자리한 절이 참으로 아늑하게 느껴진다.
내가 돌아온 연못을 돌아보니 산 그림자가 따라온다. 가을의 나른한 꿈을 꾸었던가? 오랜 시간이 흘렀으리라. 오늘만은 시간을 잃어버리고 싶다.
연못 앞으로 와 보면 더욱 운치스러운 풍경이 기다리고 있다. 불영사의 가을 모습은 너무나 아름다워 잘 균형 잡힌 수채화 같은 느낌이다.
천축산 깊숙한 곳에 자리한 불영사는 비구니 스님들의 참선 도량이라 정갈하다는 느낌이 가득하다. 아니 한 폭의 수묵화를 보는 것처럼 담백하다. 고즈넉하면서도 정갈해서 찾는 이의 마음조차 차분하게 만든다.
수려한 주변경관을 배경으로 멋스런 사찰의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불영사의 연못은 어리연으로 가득차 부처의 그림자가 비춰드는 풍경은 살펴보지 못했지만 불영사가 지닌 아름다운 사찰의 모습과 문화재들로 인해 언젠가 또 찾아와 보고 싶은 사찰로 기억될 것 같다.
1933년에 제작된 불영사 사적비(事蹟碑)
이곳저곳 아무 곳에서나 들어와도 된다는 듯 막힌 곳이 없는 듯한 느낌과 편안함으로 다가온 불영사에는 아름다운 꽃들과 단풍이 피고지고 있었다.
속살을 채우고 있을 연못가의 부들도 고운 구절초 더불어 꽃이 되는 곳, 불영사 고요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편안함이 함께 하는 좋은 도량이 또 하나 가슴속으로 들어앉은 날이였다.
이렇게 생각지도 못했던 곳에서 부처님 도량을 찾는 행운을 만나면 그 기쁨은 배가 되어 돌아오고 어둠이 내려앉은 불영사 숲길을 걸어 나오며 인연이란 단어를 다시 한번 더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이였다.
남편이 러시아 여행중이라 틈새 시간을 이용한 여행길, 생각지도 않게 만난 여행동무인 대전에서 오신 강선님 내외분과의 인연도 되집어 보며 이렇게 10년만에 다시 와보게 되었던 불영사는 아름답고 고요함이 잔잔히 흐르는 사찰이라 더욱 좋았다.
낮은 담장 너머에는 들어올때 보았던 청납당. 법운당. 희운당 등의 고운 스님 수행공간 건물이 다시 보인다.
눈 앞에 보이는 풍경에 또 다시 잠시 걸음을 멈췄다.
산사에서 다시 일주문으로 내려가는 길은 남도의 깊숙한 길처럼 평탄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숲에 감추어져 있다.
금강송이 양쪽으로 뻗어 있는 사찰 진입로를 내려간다...
‘한국의 그랜드 캐년’으로 불리는 불영사 옆에 위치한 ‘불영계곡’(명승6호)
도량을 지나 본 일주문으로 들어가는 길에서만이 불영계곡의 참모습을 만날 수 있다. 넓고 깊은 불영계곡은 발품을 팔아 제대로 걸어봐야 ‘한국의 그랜드캐년’이라는 별명이 왜 붙었는지, ‘대동여지도’서 비단 금 자를 써서 ‘금계천(錦溪川)’이라 왜 명명 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
불영교 계곡 오른쪽 깍아지른 듯한 절벽위로 오랜 풍파를 견디고 우뚝 솓은 기암절벽과 금강송이 조화를 이뤄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장면이다.
다시 지나가는 불영교
불영교에서 바라본 불영계곡
불영사를 둘러보고 내려오는 길에서도 가을의 느낌을 제대로 느낄수 있었다.
그렇게 아끼듯 천천히 걸었건만 벌써 불영사 일주문 도착이다..
불영사에서 여행동무 했던 대전 거주하시는 강선생님 내외분과 인사하며 일주문 주차장에서 울진으로 향해본다..
깊은 계곡 깊은 곳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불영사의 멋스러운 풍광을 보며 여유로움이 감도는 불영사에서의 느긋한 시간이었다. 이제 불영사를 떠나 불영계곡을 지난다..
불영계곡을 내려오다 만난 선유정...
선유정에서 내려다본 단풍든 불영계곡과 산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그렇게 한참을 선유정에서 머물다가...
다시 불영계곡을 내려간다...
아름다운 불영계곡을 내려가다가 만난 울진.현동 도로 준공기념비도 만나본다...
지난 1985년 불영사계곡을 지나는 36번 국도가 개통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그전까지는 오지 중의 오지였다. 지금은 자연을 벗 삼아 드라이브하기에 좋은 곳이다.
울진.현동 도로 준공기념비 앞 불영계곡에 자리한 불영계곡 캠핑장도 지난다..
무더운 여름철에 한번쯤 와서 쉬어가고 싶은 곳이다...
불영계곡을 지나 울진까지 이동하는 동안 단풍든 계곡과 산의 모습이 너무 아름답다.
울진을 대표하는 관광지인 불영사 계곡은 맑은 물과 울창한 숲이 조화를 이뤄 천혜의 자연경관을 제공한다.
울진.현동 도로를 따라 가을 산맥을 배경으로 해서 수목의 화려함이 뚝뚝 떨어지는 길을 달려 울진을 지나 다시 7번국도를 만나 죽변항 이정표를 따르다가 죽변항 못가서 만나는 울진 2번깨 여행지 봉평 신라비를 만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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