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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 선운사 (전북 고창)
    여행방/전라도 2018. 6. 18. 10:36

    고창 선운사     

     

     

    2018.     6.    18.

     


    2018. 6.  15 ~ 17 (2박 3일)  우리 부부와 큰딸 내외 손녀 둘 이렇게 6명의 가족들과   함께한 전라도 고창. 군산 여행길 이다...


    제 1일은 11:00 출발하여 청통 휴게소에서 점심식사 후  고창 펜션으로 이동하여 구시포 항에서 저녁 식사 후 숙소에 쉬고

    제 2일은 아침일찍 갯벌에 나가 조개 잡이하고 11:00 경 변산으로 이동하여 변산 채석강에서 바지락 국수랑 바지락 죽을 먹고  하고 방조제를 따라 선유도로 가서 선유도 일대를 보고 군산으로 이동하여 다시 고창 선운사 들러 보고  펜션에서 바베큐로 2일 저녁을 마무리 하고

    3일은 늦잠자고 천천히 출발하여 고창 선운사 근처에서 풍천 장어 구이를 먹고 포항으로 이동하는 일정이다.....


    제 2일  세번째 여행은 선유도. 군산을 거쳐 고창으로 들어오면서 들러보는 선유도 일정이다.... 





    아이들에게 보여 준다고 새만금 방조제를  부안에서 군산까지 달려와서 고창 들어오면서 선운사에도 들러본다.

    선운사는 백제시대 창건하신 검단스님이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 하여 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한다.



    선운산을 도솔산이라고 부른다.일주문 현판에도 '도솔산 선운사'라고 씌여는데 현판은 서예가 일중(一中) 김충현(金忠顯)의 글씨다.











    선운사로 오르면 왼쪽으로 도솔천이 흐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왼켠으로 도도하게 흐르는 냇물과 깊숙하게 그림자를 드리운 숲....그리고 산책하기에 적당한 진입로...이런 풍광을 해치지 못한채 선운사는 그 넉넉함으로 우리를 반겨주었다.














    천왕문(天王門)은 앞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2층 누각 건물인데, 아래층에는 4천왕상이 있으며, 위층에는 종과 법고가 있다.



    조선시대 명필로 이름을 떨쳤던 원교(員嶠) 이광사(李匡師)가 쓴 '천왕문'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다.



    아래층에는 중앙에 통로를 내고 좌우 협칸에 사천왕상을 봉안하여 천왕문의 성격을 가지게 했는데, 위층에는 범종을 두어 범종루의 역할도 겸하게 하였다. 








    선운사 전각 배치도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석등과 만세루가 보인다.

     




    만세루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 53호 )

     

    만세루는 불법을 배우는 승려들의 강의실이다. 백제 위덕왕 24년 (577)에 검단 선사가 선운사를 짓고 남은 목재를 사용하여 지었다는 설도 있고 또 고려시대 건물이라는 말도 있다.

    그러나 지금의 건물은 19세기 말에 보수된 것이다. 이 건물은 비대한 자연목을 껍질만 벗기고 다듬지 않은 채 그대로 사용하여 소박함과 함께 넉넉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다.







     

    아름드리 통나무를 그대로 세워놓은 기둥이 제각각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대웅전 앞 6층 석탑 (전북유형문화재 29호)


    선운사 육층석탑은 선운사 대웅전 앞마당 오른쪽에는 고려시대의  6층 석탑이다. 다층탑에서 6층은 그 예가 없으며, 홀수의 탑이 보편적이다. 상륜부의 이색적인 양식과 문양을 지니고 있으며, 상대갑석이 장엄한 점 등은 14세기의 석탑임을 말해주고 있다.

     

    원래는 9층탑이었으나 성종 이후에 3층이 유실된 것으로 추정된다.





    선운사 대웅전  (보물 제 290호)


    대웅보전은 선운사의 중심 전각이다.


    정면 5칸, 측면 3칸이며 구조는 다포(多包)형식이지만 맞배지붕을 얹은 조선중기의 건물이다. 조선중기의 건축물답게 섬세하고 다포(多包)의 짜임새가 장식적인 걸 볼 수 있다.




    선운사는 도솔산 북쪽 기슭에 있는 절로 신라 진흥왕이 세웠다는 설과 백제 고승 검단선사가 세웠다는 두가지 설이 전한다. 그러나 가장 오래된 조선 후기의 사료에는 진흥왕이 세우고 검단선사가 고쳐 세운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대웅전은 석가모니불상을 모신 곳으로 신라 진흥왕 때 세운 것으로 전한다. 지금 있는 건물은 조선 성종 3년(1472)에 다시 지은 것이 임진왜란 때 불타 버려 광해군 5년(1613)에 다시 지은 것이다.





    선운사 대웅보전 삼존불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불

     

    불단 위에는 흙으로 빚은 소조(塑造) 삼세불을 봉안하고 삼존 사이에는 근래에 조성된 보살입상을 협시로 세웠다. 삼존은 금동석가여래좌상을 본존으로 좌우로 약사여래부처님. 아미타부처님인 삼존불을  모셨다.

    삼존불상 뒤의 후불벽화는 1688년(숙종 14)에 조성한 것으로, 중앙의 비로자나불회도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회상도·약사회상도가 각각 자리 잡고 있다.





    닫집과 중앙의 불단 등은 비교적 간략하고 단순한 모습이다.

    천장에는 사실감이 돋보이는 커다란 운룡문(雲龍紋)이 그려져 있고, 안쪽 천장에는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한 우물천장을 설치하여 구름ㆍ학ㆍ연꽃 등으로 장엄하였다.



     

     

    대웅전 삼존불상 뒤편의 벽화

     






    대웅전 삼존불상 뒤편의 관세음보살 벽화 - 관세음보살의 눈이 신기하게도 움직이는 사람을 따라 다닌다고 한다...

     



     

     

     

    대웅전 삼존불상 뒤편의 벽화





    향 부처님 좌측 서편 벽의 대웅전 신중탱





    향 부처님 우측 동편 벽의 독성과 칠성탱





    향 부처님 우측 동편 벽의 독성과 칠성탱 옆의 부처님





    향 부처님 우측 동편 벽의 독성과 칠성탱 옆의 부처님 우측의 탱화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로,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만든 기둥위의 장식구조가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옆면에는 높은 기둥 두 개를 세워 간단히 처리하였다.

    전체적으로 기둥 옆면 사이의 간격이 넓고 건물의 앞뒤 너비는 좁아 옆으로 길면서도 안정된 외형을 지니고 있다.





    우리 가족들...





     영산전


    대웅전 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선운사 영산전은 석가모니의 일생을 기리고 , 그 행적을 보여주는 전각이다.



    영산전(靈山殿)은 대웅보전의 서쪽에 위치하며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2단의 높은 축대 위에 조성된 영산전의 원래 이름은 장육전(丈殿)이었다. 1471년 처음 조성될 때는 2층 전각 형태로 조성되었으나 1614년에 중건하면서 단층으로 바뀌었고 1821년과 1839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장육전이라 이름은 내부에 봉안된 불상이 1장 6척이나 되는 큰 불상이었기 때문이며, 거대한 불상을 봉안하기 위해서 2층의 누각 건물로 조성했던 것이다.



     

     

     

    영산전 벽화가 너무나 곱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일자집 맞배지붕 건물이다.  익공 형식의 공포(栱包)는 쇠서를 내밀지 않고 초각으로 말아 올린 물익공 형식을 취하고 있다.  상단에 봉황의 머리를 조각하고 화각첨차를 사용하는 등 조선 후기의 경향을 보여준다.

     

     

     

     


    목조삼존불상(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천장은 불상 상단을 닫집 처리하였고 옆의 대웅전보다 간략하며,  뒷면 쪽 고주는 중보까지 올라가는 기둥을 사용하였다.   뒷면 벽까지 넓혀진 중앙의 불단에 삼존불이 안치되어 있고,   좌우측 'ㄱ'자 형의 불단에 16나한상이 안치돼 있다.   불단 가운데에 석가여래상이 안치돼 있고,   좌우측에는 제화갈라보살[提和竭羅菩薩: 연등불, 보광불, 정광불이라고도 함]입상과 미륵보살입상이 협시하고 있다.





     


    석가모니불의 높이는 3m, 협시보살의 높이는 2.4m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이며,  주존은 16각의 난간을 두른 목각연화대좌(木刻蓮花臺座)에 모셔져 있다.   가운데 석가여래좌상은 몸에 비해 머리가 크고 육계는 없으며,  얼굴은 방형(方形)에 가깝다. 목부문 아래에 삼도(三道)가 좁게 표현되어 있고,   통견납의(通肩衲衣)의 간략한 의습에 가슴 밑 군의상단(裙衣上端)이 직선적이다.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서 손 등을 위로 하여 중지(中指)를 무릎에 접하고 있고,   왼손은 손 등을 밑으로 하여 제2지(第二指)와 무지(拇指)를 맞대고 있다.   양 협시보살은 화려하게 장식된 보관(寶冠)을 쓰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있다.


    이 삼존상은 목조불로서는 희귀한 우수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영산전 천정 단청이 장엄하다.
















    영산전 옆에서 본 대웅전





    영산전 앞에서 본 대웅전




     

    명부전


    명부전(冥府殿)은 저승의 유명계(幽冥界)를 나타낸 전각으로, 원래는 지장보살을 봉안한 지장전과 시왕(十王)을 봉안한 시왕전이 별도로 있었던 것을 17세기 이후에 두 전각을 결합하였다.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포는 초익공 형식을 사용하였는데 연봉이 달린 쇠서나 봉황두 형태의 초각 등에서 조선후기의 장식적 경향이 나타난다.

    전면의 중앙 3칸에는 분합문을 설치하였으며, 양쪽 협칸은 상단에 띠살 형태의 창, 하단에 판장문 형태로 마감하였다.



     

     

    명부전 편액

     

     

     

     

    안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무독귀왕이 협시하는 지장삼존상을 비롯해서 시왕상· 사자상· 판관상 등을 봉안하였다.   이 삼존상은 1676년(숙종 2)에 조성한 것으로서,  다소 경직된 모습이 보이나 적절한 신체비례와 온화한 상호가 17세기 조선 후기 조각문화의 절정을 잘 보여준다.   이 밖에 명부전에는 주먹을 불끈 쥐고 악귀를 물리치는 형상의 인왕상 2체와 창을 든 외호신중 2체,  동자상 4체가 봉안되어 있다.

     

     

     

     

     

     

     

     




    조사전 내부에는 일곱분의 조사를 모셨다.







    1500여년전 선운사를 창건한 검단스님을 비롯해 참당사를 창건한 의운. 설파. 백파. 경담. 환응. 석전스님등 일곱분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조사전 계단 위에는 이렇게 많은 돌들이 쌓여 있다. 이 모습이 어찌나 보기가 좋던지...

     







    팔상전


    팔상전의 배치는  영산전 뒤편에 자리하고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후기 양식을 지닌 아름다운 전각이다.







    불단의 중앙에는 근래에 조성한 금동석가여래좌상을 봉안하였으며, 후면벽에는 1901년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과 팔상탱을 봉안하였다.





    상전에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그린 팔상탱화 8점을 보관하고 있다.





    이곳 팔상전에도 1706년에 건물을 중건하면서 함께 봉안한 팔상탱화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팔상탱화는 자취를 감췄고 지금은 1900년에 조성한 2점과 1992년에 새로 조성한 6점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팔상전에는 천룡조각이 이채로운 닫집을 마련하고 석가여래좌상을 주존으로 봉안하였다.   본래 이 곳의 불상은 1707년(숙종 32)에 심경 스님이 봉안한 삼존상이 있었지 만 지금의 작품은 후에 새로 조성한 불상이다.   본존 뒤로는 1901년에 조성한 영산회상도가 있고,  그 좌우로 소형의 나한상을 모셨다.








     

    팔상전 옆으로 산신각이 있다.





    산신당



    영산전 뒤편,   팔상전 옆에 자리한 앞면 3칸,  옆면 2칸의 아담한 맞배지붕 건물이다.  1614년(광해군 6)에 건립된 이래 여러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왼쪽에는 최근의 산신당의 주인인 산신을 그린 산신탱이 봉안되어 있고, 정면에는 절의 창건주인 검단선사와 참당사의 창건주인 의운(義雲) 선사를 하나의 화폭에 나란히 그린 1915년작의 진영을 봉안하였다. 두 사람 사이로 소나무가 있고 호랑이가 도설되어 자칫하면 산신탱화로 오인하기 쉽다.




    산신각은 우리나라 외에는 전세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순수한 한국적 불교신앙의 산물이다. 즉 불교가 수용되기 이전에 존재하던 토착신앙의 산신이 불교에 융합되어 산신신앙으로 등장한 것이다. 달리 말하면 산신각은 한국적 불교의 변용(變容)인 셈이다. 그런데 선운사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절의 창건주를 산신으로 화현(化現)시켜 산신각에 봉안하고 있다.





    동백나무 숲(천연기념물 제 184호)

     

    선운사를 말할때는 동백꽃을 빼놓을 수 없다 하는데 3월말에 왔다면 볼 수 있었을 텐데 만개한 꽃은 보지 못했지만 동백나무숲은 과묵함으로 거기에 있었다.  




    지금보다는 한 겨울 온통 눈으로 뒤덮혀있을 때,   선혈같은 동백꽃을 보는 것이 선운사의 백미라고 하더니 그럴만 했다.   김용택님도' 선운사 동백꽃'을 노래하지 않았는가?  한겨울의 선운사도 참 좋겠다.



    동백나무숲은 선운사 경내지가 시작되는 대웅전으로 부터 400m지점 뒷산에서 부터 시작하여 대웅전 뒷산을 병풍처럼 둘러쳐 16,500㎡에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특히 우리나라 최북방에 위치하고 있는 자생지로 학술적 연구 자료가 되어 1967년 2월 11일 천연기념물 184호로 지정 되었다.





    불교승가대학원



    관음전


    관음전(觀音殿)은 대웅보전의 뒷편 동쪽에 위치하는 정면, 측면 각 3칸의 맞배 지붕 건물이다.




     

     

     최근에 조성한 천수 천안 관세음 보살




     영산전 앞에서 바라본 선운사 전경이다.



    천왕문.불교용품점. 범종루가 차레로 보인다.












    선운사 전통다원 겸 불교용품점





     선운사의 다른 전각들.....스님수행공간,  능인각과 퇴설당








     천왕문으로 나간다.









    천왕문 밖에서 바라본 선운사




     

    선운사 앞의 맑은 물,  선운사를 감싸고 흐르는 아름다운 천(川) 이 있는데 이 천(川)의 이름을 도솔천이라고 한다.





     해탈교에서 바라본 선운사





    천왕문 앞의 해탈교를 지나 데크 길을 따라 간다.








    해탈교를 을 지나 주차장족의 아래로 올라가는 산책로 역시 참으로 호젓하고 좋았으며








    오르 내리는 길 옆으로 흐르는 시냇물이나 키 높은 나무들이 만든 숲 또한 멋지다... 








    자연이 만들어주는 나무 그늘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었다. 도시생활에 찌들려 있던 우리에게는 정말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











    우리 두 꼬맹이들 잘 걷네~








    종종 그전에도 그리고   2012년 10월에도 선운사를 다녀왔으니 벌서 선운사를 다녀 온지도 6년 가가이 되어 가지만  돌아가려니 아쉬움이 남아  선운사를 떠나기가 쉽지가 않다... 









    선운사를 나와서 





    선운사에서 20분 이동하여 숙소인 핀란체 펜션에 도착 한다.





    핀란체 펜션에 도착하여 저녁에는 바비큐를 해 먹을 것이다.





    단독으로 테라스에서 바비큐를 즐길수 있게 테이블과 그릴이 구비되어 있다.








    바다 체험과 더불어 즐거운 바베큐 파티 즐기면서 행복한 고창 여행하면 넘 좋다.








    미리 해감시켜 놓앗던 숙소 앞에서 아침에 캔 조개들...





    이쁜조개들도 구워 본다...





    작은 손녀가 조개를 너무 잘 먹어서 이쁘네...






    지친 심신을 충분히 힐링할수 있는 핀란드식 펜션에서 쉬며 명사십리 조개잡이를 즐겨보며 바베큐도 즐기며 그렇게 여행 2일째의 밤도 깊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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