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제50호로 지정된 도갑사 해탈문은1473년(성종4)에 중건하였으며,좌우에 금강역사상이 안치되어 있다. 우측의 나라연 금강역사
문수보현동자와 금강역사 상이 해탈문 좌우에 있다. 우측의 문수동자상
좌측의 밀적금강역사
좌측의 보현동자상
도갑사 목조 문수·보현동자상(보물 제1134호)은 지금은 도선대사 성보박물관에 보관중이라 한다. 지금 이것은 가품이다...
해탈문 현판 안쪽에 또 다른 해탈문 글씨가 있었는데 고 박정희대통령의 친필 이었는데 지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 중이라 보이지를 않고 지금은 해탈문 안쪽에는 '월출산도갑사' 현판을 달고 있다.
해탈문을 지나면 널찍한 공간 너머로 광제루가 보인다.
도갑사의 불이문 격인광제루는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의 중층 누각건물이다. 광제루에 인접해 좌우로 각8칸과10칸의 길다란 건물이 늘어서 있다.
광제루 누각아래를 지나면
광제루 입구... 대웅전 앞 전경으로 안쪽에 오층석탑과 대웅보전이 그리고 좌측으로는 대 좌측으로 도갑사 미소당이 있고 우측으로는 심검당이 있다 ...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광제루로 근래에 새로 지었으며‘광제’란‘널리 중생을 제도 한다‘ 는 뜻이다.
광제루 들어서서 우측 건물이 다각실로 템플스테이 때 숙소로 사용한다..
광제루 들어서서 좌측 건물이 종무소이다.
영암 도갑사 석조(靈岩 道岬寺 石槽)로 전라남도의 유형문화재 제150호 이다.
도갑사에 있는 석조는 큰 돌의 내부를 파서 물을 담아 쓰거나 곡물을 씻는데 쓰는 일종의 돌그릇이며, 물을 채워 연꽃을 심는 그릇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석조는 화강암을 재료로 하여 만든 작은 통나무배와 같은 모양으로, 안쪽 밑바닥에는 물을 뺄 수 있도록 배수구를 갖추었다.
크기는 길이467cm,폭116cm,높이85cm이다. 특히‘강희21년 임술’이라 새겨진 글자는 석조를 만든 시기가 숙종8년(1682)임을 알려 주고 있다.
도갑사 넓은 마당에는 대웅보전과 오층석탑, 근래에 조성한 2기의 석등과 오래된 노거수가 있다.
대웅보전 마당에서 바라본 대웅보전과오층석탑(보물 제1433호)
현재 도갑사 대웅보전과 해탈문 사이 앞마당에 있는 석탑으로 중축선에서 약간 동쪽으로 비껴 있다. 동남쪽으로 오래된 큰 나무가 있어 탑이 후대에 이곳으로 옮겨진 것을 짐작할 수 있다. 2002년 이전에는 기단 하부가 지하에 매몰되어 있었으나 목포대학교에 의해 이루어진4차 발굴기간인1999년9월에 세진당 뒤편에서 일제시대 도면에 있었던 석탑 자리를 확인하였으며 그곳에서 하층기단과 하대갑석을 수습하였다. 조사 내용에 의하면 이곳도 원 위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이후2002년2월에 발견부재를 보강하여2중 기단의5층석탑으로 복원하였다.
규모가 큰데 비해 상,하층 기단과 탑신의 결구법이 서로 다르고 전체적으로 투박하며 소박하다.
비교적 큰 규모임에도 전체적인 체감률이 자연스러워 안정감이 있다.그러나 각 부재가 투박하고 결구법이 균제되지 않았으며 규모에 비해 기단부의 비중이 낮아진 점은 시대적 하강을 보인다.각 구성 부재가 비교적 온존하여 도갑사의 고려시대 역사를 알려 주고 있다.
8각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고 있는 석등으로 대웅보전 앞에2기가 나란히 서 있다.
도갑사 마당에는 커다란 노거수가 있어 그늘을 제공함은 물론이고 다른 전각들과 어울려 멋진 풍경을 만든다...
향 대웅보전 우측으로 자리한 2006년 복원한 심검당은‘마음을 여는 곳’이라는 뜻이다.
심검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현제 템플스테이 사랑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향 대웅보전 좌측으로 도갑사 미소당이 있다. 미소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현재 승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미소당 옆에는 도갑사 주지스님의 거처인 香茶閣 (향다각)이 있다.
1981년 복원한 대웅보전의 정면... 1977년 참배객의 부주의로 화재발생. 대웅보전이 소실되었다가 재건하였다.
대웅전의 꽃창살과 창살아래 십이지신의 조각이 눈길을 끈다.
250여㎡에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로 지어진 대웅보전은 건축형태는 와부중층, 내부통층, 온칸 몰림 방식에 건축양식은 조선 초기 다포식 팔짝지붕에 막새기와를 얹어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이뤘다.
대웅보전 후면의 꽃살문과 외부벽화, 대웅보전 후면의 모습으로 후벽에는 창문 2개와 여닫이 문도 있다.
미소당. 대웅전의 측면과 국사각
대웅보전 우측으로 국사각과 수미왕사 비각이 보인다.
대웅보전 우측의 국사전으로 향해본다.
대웅보전 우측 후면에 있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 건물인 국사전(國師殿)이다. 국사전 안에는 도선국사와 수미왕사의 진영이 봉안되어 있다.
좌측의 도갑사 수미왕사 진영(靈岩 道岬寺 守眉王師 眞影), 중앙과 우측의 풍수지리를집대성한영암 도갑사창건주도선국사진영(靈岩 道岬寺 道詵國師眞影), 수미왕사와 도선국사의 진영 원본은 도갑사 성보박물관에 있고 이것은 진본이 아니다.
수미왕사 비각 앞에서 바라본 국사전 측면
국사전 우측의 수미왕사 비각
대웅전 동쪽 뒤편 국사각 옆으로 조선세조때 왕사로 책봉되었던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을 적은 정면3칸 측면2칸의 겹처마팔작집인 수미왕사비각이 있다.
수미왕사비는 도갑사의 오늘을 있게 한 중창주 수미대사를 기념하기 위한 것으로 비의 건립은1629년(인조7)에 시작하여1633년(인조11)에 완성하였다.수미왕사의 활동과 내역을 적은 비로 비석의 높이만2m,총 높이는3.5m이다.
도갑사 수미왕사비는 영암출신 수미왕사의 활동과 내력이 기록된 비인데,비문에 따르면 수미왕사는 조선 세조때의 승려로13세에 도갑사에서 출가했으며,그 후 법주사 등으로 다니며 경전공부를 하다가 도갑사로 돌아와 황폐한 절을 중창했고 불경언해 기구인 간경도감에서 불경을 번역하는 일을 하였고,이 후 세조는 그에게 묘각이라는 호를 내리고 왕사로 책봉했다고 한다.
대웅전 바로 뒷쪽 축대 위에는 천불전(千佛殿)이 자리하고 있다...
이 천불전은 1977년 대 화재 이후에 복원된 옛 대웅전 건물이었으나, 2009년에 중층의 대웅전 건물을 신축한 이후 천불전으로 바뀌게 된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천불전 법당에도 옛 대웅전에 있던 약사여래. 석가여래. 아미타여래로 구성된 석가모니 3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삼존불 뒤로 은행나무로 조각한 1,000 분의 작은 부처님들을 모시고 있다.
천분의 부처님이 각자의 표정을 짓고 있는 ‘천불전’
천불전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
천불전과 명부전 사이에는 삼층석탑이 보인다.
삼층석탑
명부전은 정면 4컨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대웅보전 뒤쪽 1단 높게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71년에 정비된 것이다.
‘명’이란 보고 들을수 없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명부’란 지옥을 의미하므로 지장보살과 시왕을 모신 전각을 ‘명부전’이라 한다.
명부전 안에는 명부세계의 주인공인 지장보살과 도명존자.무독귀왕. 10구의 시왕상.판관.녹사.사다.금강역사 상을2체씩 봉안했다.
명부전 향 불단 좌측의 시왕들...
명부전 향 불단 우측의 시왕들...
명부전 향 불단 우측의 금강역사와 소종
명부전 향 불단 좌측의 금강역사
대웅전 왼편의 천불전 후면에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맛배지붕집인 산신각이 있다
2006년 건립한산신각은 월출산의 영험한 정기를 다스린다는 산신을 모신 곳이다.
산신각 내부에는 상당히 규모가 큰 1936년에 조성된 산신탱화가 걸려 있다. 여러 사찰에서 본 산신탱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산신의 얼굴도 인자해 보인다.
산신탱 좌우로 멋진 나무 뿌리로 만든 목각 부처님이....
대웅전을 왼편 뒤로 돌아서면 명부전과 산신각 사이로 이처럼 아담하게 꾸며 놓은 '도갑 탐방로'가 나온다. 이 길은 도갑사에서 출발하는 월출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의 입구이기도 하다.
등산로를 따라서 조금 들어가면 왼쪽 언덕 아래에 운치 있는 작은 정자가 있다. 용수폭포 옆 벽간정
정자에 붙어 있는 ‘푸른 산골 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벽간정(碧澗亭)이라는 작은 편액이 운치를 더해 준다.
용수폭포
울창한 숲이 주위를 애워 싸고 있고 난간 아래로는 깊은 계곡이 있고, 사시사철 물이 흘러내리는 아름다운 용수폭포가 있는데, 어두컴컴한 분위기를 만들어 한여름에는 시원하다 못해 추울 것 같은 느낌이 들어 피서지로는 손색이 없을 것 같다.
벽간정이라는 이름의, 육각형 모양의 정자가 눈에 익은 듯해서 기억을 되살려 보니 창덕궁 후원에 있는 관람정(觀纜亭)과 크기나 모양이 비슷했다.
대웅보전 뒤편을 지나 미륵전으로 가는 길은 양쪽으로 나무가 자리 자라있는 기분 좋게 걷기 좋은 숲속길이다.
용수폭포를 지나 미륵전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용화교 다리를 건너면....
조금 뒤에 만나는 갈림길... 왼쪽으로 돌아가면...
왼쪽으로 미륵전으로 향하는 계단이 나타 나는데
올라가는 돌계단 그 끝에 용화문(龍華門)이라는 현판이 붙은 아담한 문이 나타난다. 미륵전 입구이다.
용화문은 미륵전 앞에 세워진 문으로 미륵세게로 들어가는 문을 의미한다. ‘용화’란 ‘미륵정토’를 의미한다. 따라서 용화문은 미륵세계로 들어가는 입구라 할수 있다.
미륵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아담한 전각이다. 전각의 4방으로 다양한 불화들이 그려져 있고, 단청이 화려한 아름다운 전각이다. 석불좌상이 있는 미륵전 본당의 문살도 아름답다.
미륵전 전면에 걸린 현판 글씨는 호남 일대에서 명성을 떨치고 있는 학정 이돈흥 선생의 글씨다. 서체가 강하면서도 화려함을 느끼게 한다.
광배는 주형광배로 몸 전체를 감싸고 있으며 머리 뒷부분에는 연화무늬가 새겨져 있고, 광배 정상부와 머리 양 옆으로 화불이 있고 그 주변에는 불꽃무늬가 둘러싸고 있다. 이 불상은 얼굴의 세부표현이 예리하지 못하고 전반적으로 평면성이 강조된 신체표현 등에서 고려 초기의 철불좌상이나 마애불좌상과 양식적으로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미륵전에는 1986년에 조성된 신중탱이 있다.
용화문을 나와서...
계곡을 따라 산 쪽으로 200여 m를 올라가면왼쪽 널찍한 터에 부도전과 '도선국사비각'(道詵守眉碑閣)이 나타난다.
도선국사비의 앞 전경
제작하는데 18년 걸린 도선국사비 (보물 제1395호)는 도갑사 부도전(浮屠殿)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비(靈巖 道岬寺 道詵國師 碑)는 1653년에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전라남도 도갑사에 세워졌다.
남북국 시대 신라의 승려인 도선국사의 행적과 더불어 비의 건립 과정이 상세히 기록한 석비이다.
영암 도갑사 도선국사 비(靈巖 道岬寺 道詵國師 碑)는 1653년에 전라남도 영암군 도갑사에 전라남도 도갑사에 세워졌다.
남북국 시대 신라의 승려인 도선국사의 행적과 더불어 비의 건립 과정이 상세히 기록한 석비이다.
비신은 화강암이며 전후 면에 글씨가 음각되어 있고 측면에는 여의주를 물고 하늘을 향하고 있는 두 마리 용을 정교하게 조각하였다. 전체적으로 매우 생동감 있고 힘차게 표현되었다.
미술사적 측면에서 귀부의 사선문(斜線紋)과 비신 측면의 운룡문(雲龍紋)이 특히 훌륭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기록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를 구비했으며 높이 517 cm 규모의 석비이다.
도선대사 비는 비문에 의하면 1636년(인조 14)에 건립을 시작하여 1653년(효종 4)에 완성한 것으로 18년간 걸린, 조각의 솜씨와 비문의 필치가 섬세하고 우수하여 주목을 끈다.
보통은 용의 머리를 하고 있는데 이곳은 입에 여의주를 물고 고개를 살딱 돌린채 고개를 들어 절이 있는 쪽을 바라보고 있는 형성의 거북머리이다.
앞뒷발에는 고기의 비늘과 같은 문양을 새겼다.
비석 머리에는 머리를 양옆으로 처든채 뒤얽힌 용이 조각되어 있다.
비문은 크게 전면의 비문과 후면의 음기로 구분되는데 전면의 비문은 찬자(撰者)와 서자(書者)가 각각 다른 두 개의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 전면 상단에는 전서체로 “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 비명)”이라 제액을 만들었으며, 당시 형조판서인 김광욱(金光煜)이 썼다.
비의 좌측 비문은 영의정 이경석(李景奭)이 지었으며, 글씨는 예조판서 오준(吳竣)이 썼다. 이 비문은 총 16행 714자(자경 4∼5㎝)이며 비제(碑題)는 “월출산 도갑사 도선국사 수미대선사 비명 병서(月出山道岬寺道詵國師守眉大禪師碑銘幷序)”이다. 전면 우측의 비문은 총 10행 512자(자경 2∼3㎝)로서 비면 상하를 모두 채운 것이 아니고 비면 중간에서 시작하였다. 찬자는 홍문관 예문관 춘추관 관상감사인 이경석(李景奭)이며, 글씨는 홍문관 제학 오준(吳竣)이 썼다. 좌면의 비문과 음기의 찬자는 각각 홍문관 부수찬 이수인(李壽仁), 홍문관 교리 정두경(鄭斗卿)이다.
월출산하 도선국사 비는 거북의 등 위에 연꽃대신 연잎을 새겨 놓았으며,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비지만 규모가 장대하고 조각이 섬세하다,
돌거북의 도톰한 등에는 가장 자리가 말린 연꽃잎이 새겨져 있다.
비신 옆에 새겨진 운용문
보통 비는 한 사람만을 대상으로 하는데 반해 이 비는 비명이 도선국사와 수미선사 두 사람의 공동명의로 되어 있다. 비문의 내용은 주로 도선국사에 관한 것이며, 수미선사에 대해서는 천순(天順) 원년(1457)에 도갑사를 중창한 내용이 전하고 있다.
이 비는 이만한 거대한 규모의 비를 만드는 데 18년이 소요되었음을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 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주고 있으며, 조선 후기 서예와 조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도선국사비 옆에는 도갑사 부도전이 있고 부도전 입구의 출입문인 진화문 이다.
큰 스님들이 입적한 후 사리와 유골을 안치한 곳으로 도갑사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모아1985년에 지금의 위치로 이전 복원하여 부도전을 조성하였다.
도갑사 부도전으로 부도탑들의 모양이 서로 다르다.
부도는 대부분 조선시대에 조성한 것으로 형태는 종형과 팔각원당형이 있는데 양식적으로 뛰어난 작품은 아니지만 절을 거쳐간 고승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전부 11기의 부도 가운데에 주인공을 알 수 있는 것은 영백당과 서령당 부도 뿐이다.
다시 만나는 월출사 오르는 숲길 입구를 지나 도갑사로 내려온다.
다시 대웅전 앞 마당에서 한참을 서성이다가....
광제루를 나와
해탈문을 지나고
일주문을 향해 내려간다.
일주문을 지나면 다시 사바의 세상으로....
주차장에서 바라본 도갑사 입구 전경이다.
2019년 도갑사를 다녀 왔으니 5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도갑사는 여전하다. 늘 부처님 품안에 함께할수 있어 많이 행복한 불자이다.....
오늘도 산사에서의 충분한 힐링을 하며 앞으로 살아 갈 사바세계에서 큰 힘을 얻어보며 도갑사를 나서 다음여행지 나주 산림자원 연구소로 달려가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