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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산 청운대 절벽 아래 제일명당, 군위 오도암(梧道庵)을 지나 하늘정원.비로봉 까지(경북 군위군 부계면)사찰여행/경상도 2022. 9. 29. 04:14
팔공산 청운대 절벽 아래 제일명당, 군위 오도암(梧道庵)을 지나 하늘정원. 비로봉까지
2022 . 9. 29.
2022. 9. 27 . 한국불교대학 목욕봉사팀 도반 5명과 함께한 '원효 구도의 길'을 올라 팔공산 청운대 절벽 아래 제일명당, 군위 오도암(梧道庵)과 군위 하늘공원 그리고 비로봉을 쉽게 올라보는 힐링여행이다......
오늘 첫번째 여행은 '원효 구도의 길'을 올라 팔공산 청운대 절벽 아래 제일명당, 군위 오도암(梧道庵) 순례 이다...
군위 오도암(梧道庵) 올라가는 초입에 있는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동산계곡
경북 군위의 동산계곡은 남쪽 끝에 솟은 팔공산의 원시림과 4km에 걸쳐 흐르는 맑은 물이 어우러진 계곡이다. 울창한 숲과 맑고 깨끗한 물, 그리고 곳곳에 작은 폭포들이 시원하고 상쾌한 소리를 만들어낸다.
예로부터 물의 양이 많다고 해서 "멱바우"라고 불리고 있으며 크고 작은 여러 개의 폭포가 계곡 따라 이어져 있어 절경을 더하고 있다.
대구에서 팔공산 한티재를 넘어 군위로 들어가는 79번 지방도로는 멋진 드라이브 코스여서 여름철이면 이 동산계곡을 찾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상주-영천고속도로 동군위IC와 대구를 연결하는 79번 도로 교차로 즈음에서 부터 동산계곡을 따라 하늘정원으로 올라가는 도로에 원효로라는 도로명이 붙어 있다.
군위군은 원효 스님의 구도 정신과 업적을 기리고자 2017년‘원효 구도의 길’을 완공했다.
원효 구도의 길은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팔공산 일원에 조성됐는데, 원효로를 따라 동산계곡을 3㎞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오은사가 나오는데 여기서 모퉁이를 돌아 올라가면 나오는 ‘제2주차장’을 지나 한 굽이를 더 돌면 왼쪽에 화장실과 편의시설을 갖춘 1주차장이 있다.
팔공산 원효구도의 길 등산로 입구는 "원효구도의길 제1주차장"(경북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산 73-3)으로 네비를 찍고 찾아 간다.
널찍널찍한 주차공간과 바로 앞쪽으로는 깨끗한 화장실까지 있는 곳이다. ‘원효 구도의 길 제1 주차장’이 이번 산행의 시점이다.
원효 구도의 길은 오도암, 원효굴로 부터 하늘정원, 팔공산 정산 비로봉까지도 등산이 가능한 코스이다.
한쪽에 화장실이 있는 주차장에서 출발해 주차장도로를 바로 건너 10m 올라가면 오른쪽 구도의 길 이정표 뒤로 산길이 열린다.
오도암, 하늘정원으로 표시된 방향을 따라 등산로 입구가 보이고 등산로 입구에서 부터 오도암까지는 1.5km 하늘정원까지는 2.3km 거리이다.
원효 구도의 길 제1주차장 ~ 오도암 ~ 하늘정원을 잇는 총 2.3㎞는 군위군이 2017년 조성한‘원효 구도의 길’이 있어 팔공산 북쪽에서 탐방할 수 있는 다양한 길이 열렸다.
대구 경북의 명산인 팔공산 오도암 일원에 원효 구도의 길이 열렸다. 원효 구도의 길은 총 2.3㎞이며 주차장~오도암~하늘정원 구간에 조성됐다.
오도암 1.5㎞, 하늘정원 2.3㎞’로 적은 푯말을 따라 들어서면 아치형의 나무문을 지나 작은 언덕을 넘으면 산허리를 따라 곧장 산길이 시작된다.
군위군 쪽 동산계곡을 지나 이번 산행은 경북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오은사 위 원효 구도의 길 제1 주차장에서 출발해 청운정 ~ 오도암 ~ 덱 714 계단 ~ 시자굴 ~ 원효굴 ~ 계단 위 갈림길 ~ 청운대 ~ 다시 갈림길 ~ 하늘정원 입구 삼거리 ~ 하늘정원 ~ 공군부대 옆 ~ 비로봉 ~ 다시 하늘정원 입구 삼거리 ~ 덱 계단을 따라 오도암 ~ 청운정 ~ 원효 구도의 길 제1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약 6.7km로 원점 회귀다.
원효구도길, 들머리 부터 그윽한 맛 일품이다.
가을 산을 즐기려는 산객들이 많음에도 이곳 주차장은 아직 한산하다. 완연한 가을이라 이곳 팔공산의 깊은 산속 아침 공기는 제법 차갑다.
주차장을 나와 바로 이어지는 소나무 숲길은 산새들이 들려주는 노래와 함께 몸과 맘이 정화되는 팔공산의 아름다운 숲길이다.
오도암으로 오르는 길, 팔공산의 고운 풍경에 발걸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원효(元曉, 617~686)스님은 한국불교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고승 중 한 분이다. 스님은 한평생 불교 대중화에 힘썼고, 수많은 저술을 통해 불교 사상의 융합을 모색했다. 스님은 고향인 경북 경산 인근 팔공산 자락의 오도암(吾道庵)에서 몇 년 간의 정진 후 깨달음을 얻는데, 그 유서 깊은 곳에 ‘원효 구도의 길’이 조성돼 있다.
‘해골 물’, ‘요석공주(瑤石公主)’, ‘설총(薛聰)’, ‘화쟁(和諍)’, ‘소성거사(小性居士)’…….
신라시대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원효’의 연관 검색어로 나옴직한 단어들이다. 특히 ‘화쟁사상’은 천 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현대에서도 갈등을 치유하는 해법으로 활용되고 있으니, 원효 스님의 혜안에 감복할 따름이다. 원효 스님의 행장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를 비롯해 비교적 여러 곳에 남아 있다. 당대의 내로라하는 고승이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원효 스님의 행장을 기록한 사료는 ‘고선사서당화상비(高仙寺誓幢和尙碑)’, ‘삼국유사’, ‘송고승전(宋高僧傳)’ 제4권 ‘당신라국황룡사원효전(唐新羅國黃龍寺元曉傳)’, ‘당신라국의상전(唐新羅國義湘傳)’, ‘한국불교전서(韓國佛敎全書)’ 10권 ‘원효국사전(元曉國師傳)’ 등이 있다.
원효 스님 어머니는 품에 별 들어온 태몽 꾸고 스님 낳았는데 617년(진평왕 39) 압량군(押粱郡, 현 경산시) 남쪽 불지촌(佛地村, 현 경산시 자인면) 북쪽의 밤골(栗谷) 사라나무 아래에서 태어났다. 만삭 때 모친이 길을 나섰다가 미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남편의 옷을 나뭇가지에 걸고 해산했다고 한다. 속성(俗姓)은 설(薛)이고, 어릴 적 이름은 서당(誓幢) 또는 신당(新幢)이다. 할아버지는 잉피공(仍皮公, 또는 赤大公)이고, 아버지는 신라 17관등 중 11번째인 내마(柰麻)의 지위에 있던 담날(談捺)이다.
‘고선사서당화상비’에 따르면 스님의 어머니는 별이 떨어져 품속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고 임신했다. 산달이 되어 해산하려 할 때 갑자기 오색구름이 거처를 덮었다고 전한다. 스님의 유년시절에 관한 자료는 거의 없다. 다만 15세 즈음, 집안의 재산을 희사(喜捨)하고 출가했다고 알려져 있다. 살던 집을 사찰로 바꾸어 초개사(初開寺)로 명명하고, 자신이 태어난 사라수(裟羅樹) 옆에 사라사(沙羅寺)를 건립했다고 전한다. ‘송고승전(宋高僧傳)’ 제4권 ‘당신라국황룡사원효전’에 스님에 관한 다음의 기록이 전한다.
곳곳에 오도암을 찾는 이들을 위해 좋은 글귀를 적어 놓고 있어 눈길을 끈다.
원효는 어린 나이에 불법에 귀의해 스승을 따라 학업을 받았는데, 머무는 곳이 일정하지 않았다. ……
삼학(三學, 계·정·혜)에 널리 통하여 저곳(신라)에서 그를 일컬어 ‘만인(萬人)을 상대할 만하다.’고 했다. 정밀한 의해가 신의 경지에 들어감이 이와 같았다.중국 불교문헌에서도 원효 스님을 이와 같이 평가한 것을 보면, 요즘말로 원효 스님은 불교학 연구에 있어 ‘글로벌스타’였던 셈이다.
출가 후 스님은 스승을 따로 정해놓지 않은 채 고승을 찾아다니며 불교를 배우고 익혔다고 한다. ‘삼국유사’ 등의 기록에 따르면 신라 낭지(朗智)· 혜공(惠空) 스님을 비롯해 고구려 보덕(普德) 스님으로 부터 ‘열반경(涅槃經)’과 ‘유마경(維摩經)’ 등의 경전을 배웠다.
원효 스님은 한평생 불교학 연구와 불교의 대중화에 매진했다. 당시 신라에 전해진 거의 모든 경론(經論)에 대한 주석서(註釋書)를 저술했는데, 스님이 남긴 저술의 종류와 수는 학자마다 견해가 다르지만 100여 종 240여 권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중 ‘금강삼매경론(金剛三昧經論’〉,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 ‘기신론별기(起信論別記)’, ‘발심수행장(發心修行章)’ 등 일부만 전한다.
원효 스님은 648년(진덕여왕 2년) 경주 황룡사(皇龍寺)에서 불경을 연구하며 수행하다가 650년 의상(義湘, 625~702) 스님과 함께 당나라 유학을 떠난다. 당시 당나라 현장(玄奘, 602~664) 스님이 인도에서 들여온 불교학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두 스님은 요동(遼東)에서 첩자(諜者)로 몰려 붙잡히면서 첫 번째 유학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신라 땅에서 수행과 학문연구에 매진하던 원효 스님은 661년(문무왕 원년) 다시 의상 스님과 함께 제2차 당나라 유학을 시도하지만, 이번엔 자의로 유학을 포기한다. 그 유명한 ‘해골물’ 일화를 겪고서 말이다. 두 스님은 당나라 행 배를 타기위해 당항성(唐項城, 현 경기도 화성시)으로 가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원효 스님은 오래된 무덤에서 자다가 목이 말라 물을 마시고, 갈증을 해소했다. 아침에 눈을 떠보니 해골에 괸 물이었다. 그때 원효 스님은 ‘이 세상의 모든 현상은 모두 마음에서 일어나며, 모든 법은 오직 인식일 뿐이다. 마음 밖에 법이 없는데, 어찌 따로 구할 필요가 있겠는가.(三界唯心 萬法唯識 心外無法 胡用別求)’라는 깨달음을 얻는다. 이 말을 축약하면 우리도 잘 알고 있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가 된다. 해골물 마시고 ‘일체유심조’ 깨달아 다시 경주로 돌아온 스님은 분황사(芬皇寺) 등에 머물며 ‘화엄경’을 주석하는 등 불경 연구에 매진한다.
도심에선 잘 볼 수 없는 정겨운 흙길이다. 출발지에서 입신시 세족장까지는 오도암을 찾는 신자들과 원효 구도의 길을 탐방하는 사람들의 건강증진 도모를 위해 조성한 ‘맨발로 걷는 길’이 있다. 거리로 얼마 되지 않지만 조금 평탄한 길에 소나무 향을 맡으며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오른 쪽에는 작은 계곡이 있어 흐르는 물소리를 들으며 걸을 수 있어 더 좋다. 입산 시나 하산 시 맨발로 걷다가 발을 씻을 수 있는 두 곳의 세족장이 있으나 별도의 시설로 만든 것이 아니라 계곡물을 이용하는 진 자영적인 형태였다...
세족장을 지나면서 부터는 오르막길이다. 대부분 흙길이지만 곳곳에 야자매트를 깔아 놓은 길도 있다...
원효 스님의 생애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화는 태종무열왕의 딸 요석공주와의 사랑이야기다. 내용은 ‘삼국유사’ 제4권 의해(意解) 제5 ‘원효불기(元曉不羈)’조에 전한다. 스님은 설총을 낳은 뒤 스스로 ‘소성거사’, ‘복성거사(卜性居士)’라고 칭하며 불교의 대중화에 힘썼다. 파계(破戒)를 한 승려였기에 스스로를 그렇게 부른 듯하다.
원효 스님과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설 총은 훗날 이두(吏讀, 한자의 음과 훈을 빌려 우리말로 기록하던 표기법)를 집대성하고 ‘화왕계(花王戒)’라는 명문을 지은 대표적인 학자로, 신라 성인의 한 사람으로 추앙받는 인물이다.
스님은 말년에 경주 고선사(高仙寺)에 머물며 불교 대중화 힘쓰다가, 686년(신문왕 6년) 3월 30일 혈사(穴寺)에서 70세의 나이로 입적했다. 입적 후 설 총이 스님의 유골을 빻아 소상(塑像)을 만들어 분황사에 안치했다고 전한다. 그 옆에서 예를 올리자 상(像)이 홀연히 돌아보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오고 있다.
신라 애장왕(哀莊王) 때 원효 스님의 후손인 설중업(薛仲業)이 당시 실권자였던 각간(角干) 김언승(金彦昇, 뒷날 헌덕왕)의 후원으로 고선사(高仙寺)에 서당화상비(誓幢和尙碑)를 세웠는데, 일부 훼손되긴 했지만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신라와 고려의 후대 왕들도 원효 스님을 존경했다. 원효· 의상 스님을 존경해 시호를 내린 왕도 있다.
‘고려사(高麗史)’ 권11에 따르면 고려 숙종(肅宗)은 1101년에 “원효와 의상은 동방의 성인(聖人)으로 비기(碑記)와 시호(諡號)가 없어 그 덕이 드러나지 않았다. 내가 이를 깊이 슬퍼해 원효는 대성화쟁국사(大聖和靜國師)로, 의상은 대성원교국사(大聖圓敎國師)로 추증하니 유사(有司)에서는 즉시 그들이 살던 곳에 비를 세우고 덕을 기록해 무궁하게 전하도록 하라.”는 조서(詔書)를 내렸다고 한다....
산길을 접어든 지 20분쯤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넌다.
고즈넉한 산길에 태초의 햇살을 받으며 걷는 느낌이 싱그럽다. 화려하게 물들였던 만화경이 아니더라도 이른 가을 정취를 만끽하기에 충분하다. 지금 걷고 있는 오도암으로 오르는 길이 너무나 깨끗했다.
지금 새로 낸 길 위에는 아치형 다리가 생겼고, 돌 의자를 대신해 나무로 만든 근사한 벤치가 있다.
출발점은 평탄하지만 올라갈수록 경사가 급해지고, 호흡도 가빠진다. 그럼에도 오를수록 좋아지는 풍경과 맑은 공기, 가벼워지는 마음은 기쁨 그 자체다. 매번 고승 길을 걸을 때마다 느끼지만, 눈에 보이지는 않아도 깊이 찍혀있는 선각자들의 발자국 위를 걷는듯하여 조심스러우면서도 즐겁다.
구도의 길을 오르는 동안 글귀나 시들이 있어 오도암으로 오르면서 편안히 명상도 가능할 것 같았다.
가파른 코스는 아니지만 중간 중간 오르막길이 있다.
팔공산 오도암 등산코스는 길도 편안하지만 오솔길 느낌으로 고즈넉하고 조용한 길이라 등산초보들을 포함한 남녀노소 모두 쉽게 다녀올 수 있는 코스로 원효구도의 길은 원효대사의 구도정신을 기리며 산행할 수 있는 산길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르는 길은 경사가 가팔라지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다. 작은 계곡을 따라 오르다가 다리를 건너 급경사를 지나 덱 계단을 오르면 작은 지능선이 만나는 지점. 옛길과 새로 낸 길이 합쳐지는 지점쯤에 청운정 정자가 나온다.
정면에 뾰족하게 솟은 청운대가 보인다.
첫번째 데크 계단길을 오르고 어느정도 고도에 올라오게 되니 팔공산 동산계곡 자락과 칠곡군 동명면을 내려다 볼 수 있는 정자도 있었다.
이곳에서 간식타임을 가지며 쉬어간다...
청운정은 잠시 숨을 고르기에 적당한 곳이며 이곳에서 바라보는 전경 또한 멋지다. 팔공산 능선이 보이기 시작하는 경치, 팔공산 동산계곡 자락과 칠곡군 동명면이 발아래로 내려다보인다.
팔각형의 청운정을 지나 편안하고 완만한 능선을 잠시 오르면
당귀 같은 약초와 채소를 심은 텃밭 옆으로 화장실이 나오고
이어 호흡을 가다듬으며 점점 울창해지는 숲길을 따라 한참을 오르면 오도암 입구 사립문을 만날 수 있다. 청운대 절벽 아래에 자리 잡은 아담한 절집이다.
싸립문으로 만들어 진 원효대사님 수도 도장인 오도암
사립문 양쪽 위에 삼각형 형태의 나무를 올려놓고 그 중간에 ‘오도암’ 현판을 걸어 놨다. 여닫이 사립문이 달린 간결하지만 품격이 느껴지는 일주문이다. 문 옆으로 ‘도량 내에선 묵언(黙言) 할 것’이라고 적어놓은 글귀가 붙어 있다.
문을 지나 몇 개의 돌계단을 오르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거북이 형상의 나지막한 돌탑 뒤로 무릉도원처럼 숨어 있는 암자, 소박한 풍요로움이 보인다.
산문을 들어서면 보이는 오도암과 청운대. 오도암은 군위군 부계면 원효길 280-103에 위치해 있다. 전각과 요사채 등 건물 몇 채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청운대의 위용에 탄성을 내지르게 된다. 주위를 둘러보면 팔공산의 힘 있고 웅장한 산세가 한눈에 들어온다.
2016년에 지어진 오래되지 않은 대웅전 뒤 산봉우리가 청운대
1,4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원효 스님의 사상을 배우고 실천하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스님의 행적을 따라가려면 전 국토를 다 누벼야 할지도 모른다. 전국 방방곡곡에 스님이 창건한 사찰이 수두룩하기 때문이다.
팔공산 오도암도 그런 사찰 중 한 곳인데, 오도암은 해발 900m에 위치해 있으며 기암절벽인 청운대 아래 지어진 고즈넉하고 청아한 암자로 이 암자는 스님에게 아주 특별한 도량이다. 오도암은 원효 스님이 654년(무열왕 1년)에 창건하고 6년간 머물며 수행해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원효 스님의 행적을 살펴볼 때, 오도암에서 머문 때는 1차 당나라 유학을 실패(648년)한 6년 뒤부터 2차 당나라 유학 도전(661년)에 나서기 직전까지로 짐작할 수 있다.
적송 숲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있는 절 뒤로 청운대가 하늘을 떠받치듯 신비스럽다. 나는 티 없는 암자의 분위기에 매료되어 마당을 서성이고, 도반들은 어느 새 대웅전 법당에서 백팔 배를 시작하고 있다.
팔공산 오도암 대웅전 내부
약사불을 중심으로 지장보살과 관세음보살 그리고 약사불 앞의 오도암 금동불입상
약사여래불
오도암 금동불입상
향 불당 우측에는 신중단이 있고
향 불당 좌측에는 영가단이 있다.
오도암은 은해사 말사였다가 1960년대 초에 독가촌 폐지에 해당되어 폐사로 남아 있다가 2016년 운부암 선원장 불산스님의 원력으로 천년고찰의 역사를 다시 쓰게 되었다.
선지식 일타스님이 생전에 이곳에서 일주일만 살아보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 했다는 오도암 마당을 나는 훌쩍 바람처럼 달려와 감격하고 있다. 모락모락 연기가 피어오르는 오도암의 언어 앞에서 잠시 시간이 멈춘다.
대웅전 마당에서 보면 1층같은 요사채는 2층이며 1층은 공양간인듯 ... 팔공산 오도암 요사 뒤로 보이는 통신망 철탑이 보이는 곳이 비로봉이다.
요사채 옆에는 어처구니를 잃은 맷돌이 자리하고 있다...
오도암 게시판이다...
일타스님이 썼다는 ‘불인선원(佛印禪院)’ 현판이 토담 벽에 걸려 무구한 그리움을 더한다. ‘부처로 부터 직접 인가를 받은 곳’이란 뜻이다. 원효대사가 머물면서 득도 했다고 해서 오도(悟道)암인데 한때 김유신 장군도 이곳에서 머물렀다고 한다.
팔공산은 기운이 강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통의 수행력으로는 버티기가 힘들다고 한다. 원효 스님은 이곳 청운대 정상 부근의 바위굴에서 6년을 수행했다. 세상 사람들은 원효 스님이 해골 물을 마시고 난 뒤 깨우친 바를 ‘오도’라고 보기도 한다. 틀렸다고 할 수는 없지만, ‘해골 물’ 일화 이전에 오도암에서 각고의 정진으로 일가(一家)를 이루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
요사채 옆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는다. 1층은 공양간인듯한 요사채와 내부가 보이지 않는 토담집은 스님의 수행 공간인 듯, 단호하면서도 고독하다.
요사채와 내부가 보이지 않는 토담집 아래로 산에서 내려오는 물을 모아 생활용수로 이용하고 있었다.
야외에도 약사여래 입상이...
팔공산 오도암 뒤로 보이는 커다란 바위가 청운대다.
오도암 입구로 나와
원효굴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오도암 들어갔던 입구로 나와 계단을 따르든지 만나게 되는데 여기부터가 난코스다. 처음 시작은 완만한 계단 몇 개를 올라 돌아 나가면 오솔길이 이어지지만 5분도 지나지 않아
청운대 절벽 오른쪽으로 하늘로 향하는 천국의 계단처럼 올려다보면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놓여있다. 처음 만나게 되는 계단의 층계는 겨우 100여 개에 불과한데,
하늘정원이 700m 곧 바로 덱 탐방로를 따라 계곡으로 내려섰다가
데크길 이후 잠깐 편안한 오솔길을 지나고 나면
다시 가파른 급경사에 설치한 계단이 나오는데 두 번째 만나는 계단은 무려 741계단이다.
오도암을 지나고 곧 이어지는 원효굴과 하늘정원까지는 참나무 숲 그늘의 가파른 경사 구간이 이어지는 714계의 계단 데크길이 나오게 된다. 능선까지는 714계단을 올라야 한다. 그 유명한 714계단이다.
오르다보면 100계단마다 안내가 되어 있어 그것을 보며 위로 받고 걸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누군가 100계단마다 숫자를 적어 두었는데 오르내리는 많은 사람들이 헤아려보는 번거로움을 덜어주기 위한 배려이겠다. 중간에 작은 안내 표식이 붙어 있다. 한 번에 오르기 힘들기에 중간쯤에 쉬어갈 수 있도록 공간도 마련해 두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수직계단 714.... 714개의 연속된 계단을 오르다 보니 절로 이해되는 원효구도의 길 ~
오도암에서 하늘정원으로 오르는 계단. 전체 714개 계단 중 400개째를 알려주는 표식이 있다.
이제 데크계단 옆으로 청운대가 서서히 보이기 시작한다...
나조차 몰랐던 헛된 욕심에 붙들려 세월을 놓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본다. 계절은 또 쓸쓸히 멀어져 갈 것이다.
코가 바닥에 닿을 듯한 급경사 714개 계단을 한 발 한 발 오르며 도를 닦으며 오르다 보면 원효굴에 가기 전 500계단 즈음에
‘시자굴’로 적은 표지판이 있는데,
자연동굴로 보이는 작은 굴인데 깊이는 고작 1.5m에 불과하고 내력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시자굴 위가 원효굴이니 원효 스님을 보필하던 시자의 공간으로 수행했던 곳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하늘 정원까지는 400n ~
600계단을 지나면
하늘정원과 원효굴로 가는 능선 위 갈림길에 오른다.
갈림길에서 먼저 좌측방향으로 원효굴로 가본다... 원효굴가는 데크
원효굴 가며 바라본 팔공산 비로봉
팔공산 경치를 감상하며 원효굴로 이어지는 데크길을 따라가면 50m 정도 떨어진 원효굴에 금방 도착 ~
6년 바위굴 고행 흔적 고스란히 청운대 절벽에 자리 잡은 원효굴은 불교 대중화 이끈 신라 최고 학승 원효가 6년간 수도해 깨달음을 얻은 수도석굴이다. 접근조차 쉽지 않은 천인절벽에 어떻게 굴을 만들었는지 쉽게 의문이 풀리지 않는다. 팔공산의 천기가 서려 있어 한 시간만 앉아 있어도 정신이 맑아진다는 좌선대 이야기도 결코 빈말이 아닌 듯하다.
원효굴은 정말 어머 어머한 바위 봉우리 중턱에 생겨있는 자연 동굴이다.
만약~ 지금처럼 이렇게 탐방로가 설치되어 있지 않았더라면... 여길 어찌 올라와야 했을지 의아하기까지 했다.
윈효굴 바로 앞 좌선대
원효굴 바로 옆에는 좌선대라 해 한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역시 원효대사가 앉아 수도하였다고 한다.
원래는 까마득한 절벽에 한사람이 간신히 지나다닐 길이 있었지만 현재는 데크를 사용해 편하게 다닐 수 있게 되어있다.
원효굴을 바라보고 왼쪽에는 한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바위가 있는데, 원효 스님이 참선하던 ‘좌선대’라고 한다. 올라가는 것도 어렵고, 올라가 앉는다 하더라도 방심하는 순간 천 길 낭떠러지로 떨어지는 위험천만한 그곳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아있는 원효 스님을 떠올려본다.
원효 스님은 이 원효굴에서 6년 간 수행, 깨달음을 얻었다고 전한다. 원효 스님은 617년 경북 경산에서 출생해 15세에 출가해 수도에 정진했다. 34세에 당나라 유학도중에 해골에 괸 물을 마시고 “진리는 결코 밖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야 한다”는 깨달음을 터득한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원효굴과 장군수, 물이 나고, 겨울에 햇볕도 든다하니 그럴싸하다.
원효굴은 입구의 높이가 80cm, 길이 280cm로 남향이라 여름엔 햇빛이 들지 않고 겨울엔 굴 안까지 들어온다고 한다. 원효굴은 청운대 직벽 속에 들어 있는데 세로로 쭉 뻗은 바위의 4분의 1지점에 위치해 있는데, 비교적 공간이 넓고, 바닥에는 바위틈에서 솟아나는 샘도 있어 굴 바닥에는 물이 솟아나 고여 있다. 이 샘은 신라 김유신 장군이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마신 물이라고 해서 ‘장군수(將軍水)’로도 불린다. 신라를 대표하는 이들이 수행하고 기도한 곳이니 보통의 공간은 아닌 듯싶다.
원효 스님이 수행한 원효굴. 이곳에서 신라 김유신 장군도 삼국통일을 염원하며 기도했다고 하니,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있는 듯하다. 한사람 겨우 들어갈 만한~ 아주 작은 자연 동굴인 이곳에서 원효스님이 득도한 곳으로 유명하니 원효스님은 과연 무엇을 염원했고 또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
굴 위에 작은 불상 하나..
건너편엔 하늘정원 한쪽 사면과 팔공산 정상(비로봉)의 통신탑이 보이고... 옆에는 천 길 낭떠러지의 바위 절벽이라~ 신선들이나 다닐 곳처럼 느껴진다.
원효굴 앞에 앉아 원효 스님이 그랬던 것처럼 팔공산을 바라보노라니 이런저런 상념이 떠오른다.
이곳에서 잠시 쉬며 주변을 살펴본다. 멀리보이는 청운대와 방송국 중계소. 비로봉과 동봉을 비롯한 팔공산 능선의 모습이 압도적이며 데크길에 자라는 소나무의 모습이나 가파른 청운대 암벽 위에 자라는 소나무들도 운치가 있다. 청운대 암벽바위에 붙어있는 도룡 닮은 형상도 신기하다.
다시 돌아온 갈림길에서 하늘정원 방향으로...
원효 구도의 길은 흔들림 없이 평온하다. 어떤 말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 스스로를 맡긴 채 가을로 가고 있었다.
묵묵히 긴장을 놓치지 않고 위로만 향한다. 714계단, 남은 거리가 줄어들수록 환희로움이 가득하다... 나는 무명의 어둠에 갇혀 파닥거리는 스스로를 부축하며 산을 올라간다. 이 가을도 나를 기도하게 만든다.
덱 계단이 있는 하늘정원 입구 삼거리로 714계단 종착점으로 그 다음 부터는 편안하다.
714계단 종착점에서 왼쪽으로 조금가면 청운대 정상이 있고...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5분 정도 가면 청운대 정상이 있고 이곳 바위에 멋있는 소나무가 있어 잠시 들렀다.
청운대 절벽 위에 서게 되고 송신탑이 있는 팔공산 주봉인 비로봉, 서봉, 파계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멋진 전망 터를 만난다.
다시 714계단 갈림길로 돌아와 714계단 갈림길에서 정면으로 나가면
하늘정원과 연결되는 계단이다.
하늘정원까지는 7분 정도 오르면 된다.
군위 팔공산 ‘하늘정원’부계면 팔공산 ‘하늘정원’은 해돋이뿐만 아니라 팔공산의 아름다운 풍광까지 한눈에 감상할 수 있어 사계절 등산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하늘정원은 팔공산 비로봉에서 북쪽으로 600여m 떨어진 부계면 동산리 쪽에 3천750㎡ 규모로 팔공산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 탐방로와 팔공산 제1의 산책로를 갖춘 정원이다. 특히 이곳은 하늘과 맞닿은 높은 곳에 있어 지역을 찾는 탐방객들의 편안한 휴식처라는 의미에서 ‘팔공산 하늘정원’으로 불린다. 그리고 하늘정원 조성을 기점으로 원효대사가 창건한 신라 천년 고찰인 오도암과 원효 구도의 길도 마련돼 있어, 신라 불교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다.
팔공산 나무계단을 따라 수려한 풍광을 즐기며 오르다 보면 팔공산에 자생하는 야생화와 조형물로 꾸며진 하늘정원에 도착하게 된다. 앞에 보이는 중악루 정자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한참을 쉬어간다...
하늘공원 전망대
저 멀리 희뿌연 구름 가까이로 가야산도 전망된다...
청운대도 보인다...
하늘정원 전망대에서 다시한번 내려다보는 경치, 원효굴이 위치한 능선 자락의 바위가 마치 주상절리 같아서 한참을 바라본다.
하늘정원에서 군부대 울타리를 따르면 군사도로와 연결되어 여러개 공공시설의 통신시설을 지나면서 팔공산 비로봉으로 이어진다.
비로봉 가며 돌아보는 하늘정원
지금까지 팔공산 정상인 비로봉(1193m)정상을 오르려면 대구시내 팔공산 남쪽 수태골을 이용하여 힘들게 등반을 하여야만 하였으나, 하늘정원이 개방된 지금은 팔공산 북쪽 군위군 동산계곡을 따라 자동차로 주차장에 도착하여 하늘정원을 향하는 팔공산 나무계단을 따라 야상화와 수려한 풍광을 즐기며 가볍게 소풍하듯 걷기만 하면 금세 정상을 정복하는 편리성을 갖추게 되었다.
비로봉 오르며 돌아본 오도암 위로 청운대가...
비로봉 바로 아래에서 비로봉 방향으로
비로봉이 지척이다..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 정상 도착이다...
2009년 팔공산 비로봉이 일반에게 개방된 이후 2016년 수태골에서 서봉-비로봉-동봉을 오르고 2018년 하늘정원에서 비로봉에 오르고 다시 4년만에 비로봉의 정상에 세 번째로 또 오르는 비로봉, 감개무량이다 ... 안테나 등 각종 방송시설 때문에 자연스러운 풍경이 다소 아쉽기는 해도 대구 근교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이곳 갈림길에서 하늘정원 방향으로~ 하늘정원에서 까지는 1.02km 이다.
하늘정원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푸르름 옷을 곱게 차려입은 청운대 바위를 바라보며 걷는다. 가을의 청운대 단풍은 금강산의 단풍과도 견줄 만하다고 했다...
이제 비로봉에서 하늘정원으로 향해본다. 다녀갔던 2016년과 2018년 가을을 생각하며...
잃어버린 여름이 떠오르고 상큼한 가을이 자꾸만 내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군부대 담장을 끼고 담장 옆 덱 탐방로를 따라 하늘공원으로 간다.
하늘공원을 지나
하늘정원 입구 삼거리다. 왼쪽오도암 방향으로 내려간다.
714계단 갈림길에서 왼쪽 원효 구도의길 오도암 방향으로 ~
714계단 입구를 내려선다...
오름길 보다는 덜 힘든 데크 계단길이 오도암으로 이어진다...
오도암 지나면...
편안한 내림길이다...
오를때 쉬며 간식타임을 가졌던 청운정도 지난다...
나무 다리도 지나고
돌탑도 지나면
세족장이다. 이곳에서 잠시 쉬고 발도 담궈본다. 발 담근지 5분도 되지않아 너무 발이 시러워 더 담구고 있을수가 없다..
세족까지 하고 다시 길을 나서면
몸에 열이 올라 한번 쉬어갈 위치에 벤치가 놓여있다. 그 아래로 가을걷이에 나선 다람쥐가 분주히 움직인다.
산길이지만 비교적 평탄하다. 중간 중간 땀을 식힐 수 있는 나무 벤치와 바위가 있어 쉬어가기도 좋다. 바위 위에는 오도암을 오간 불자들이 쌓은 돌탑이 종종 눈에 띈다. 특히 가을에는 짙게 물든 팔공산 단풍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는 곳이다. 입구에서 오도암까지는 1.2km 정도다.
곧 콘크리트 도로와 만나 다시 돌아온 원효 구도의 길 1주차장이다.
군위군 쪽 동산계곡을 지나 이번 산행은 경북 군위군 부계면 동산리 오은사 위 원효 구도의 길 제1 주차장에서 출발해 청운정 ~ 오도암 ~ 덱 714 계단 ~ 시자굴 ~ 원효굴 ~ 계단 위 갈림길 ~ 청운대 ~ 다시 갈림길 ~ 하늘정원 입구 삼거리 ~ 하늘정원 ~ 공군부대 옆 ~ 비로봉 ~ 다시 하늘정원 입구 삼거리 ~ 덱 계단을 따라 오도암 ~ 청운정 ~ 원효 구도의 길 제1 주차장으로 돌아오는 약 6.7km로 원점 회귀다.
원효대사 구도의 길을 따라 걷다보니 내 마음도 약간은 정화가 되는 듯한 느낌을 받으면서 그렇게 힘들지 않은 산행을 마무리 하고 오늘도 내게 주어진 축복에 감사하며 포항으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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