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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가 많은 사찰, 의성 고은사(경북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 단촌면 구계리 116)사찰여행/경상도 2022. 8. 29. 05:07
문화재가 많은 사찰, 의성 고은사
2022 . 8 . 29.
2022. 8 . 23. 108사찰 순레단에서 11명이 함께했던 의성 지역 사찰과 문화재를 탐방해 보는 힐링여행이다......9시 포항에서 출발하여 의성 대곡사 → 대곡사 산내암자 적조암 → 운람사 → 점심식사 남원 추어탕 → 고운사 →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 → 의성 탑리 오층석탑 → 논산식당에서 저녁 식사 까지 의성에서 즐긴 힐링여행....
오늘 세번째 여행지인 운람사를 보고 나와 다시 길을 달려 남원 추어탕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오늘 의성여행 네번째로 의성읍을 지나 일주문을 향하는 흙길이 너무 고운 의성 고운사를 만나볼까 한다...
등운산 고운사라고 씌여 있는 '산문'을 지나서 일주문 까지의 울창한 숲길이 반갑게 반긴다.
다른사찰에 비해 입장료를 받지 않는 고운사는 마을로 부터 3km정도 떨어져있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울창한 숲길로 되어 있다. 풀과 나무의 향기를 맡으면서 일주문을 향해 걷는 흙길은 자연스런 산림욕을 하면서 걷는 느낌이 들었다. 숲길 주변에는 소나무와 많은 활엽수들이 눈에 띈다.
등운산고운사 중창 사적비
수월대선사비
도원대종사, 함홍대종사, 수월대종사 부도
국보팔만대장경 원조각성대종사 역경증의강해 공적비조
등운산 기슭에 위치한 고운사는 661년(신라 문무왕 1) 의상대사가 창건했으며, 대학자인 최치원(崔致遠)이 여지대사, 여사대사 등과 함께 가운루와 우화루를 세우고 이를 기념하여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高雲寺)라 개칭했다고 한다.
고운사는 948년(고려 정종 3)과 1018년(현종 9)에 중창했으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을 승군의 전방기지로 사용하여 식량을 비축하고 부상한 승병들에 대한 뒷바라지를 해준 곳이다.
석학으로 이름 난 함홍선사가 이곳에서 후학을 지도할 때는 무려 500명의 대중스님이 수행하기도 했다. 사찰 건물은 1835년에 소실된 것을 만송대사, 호암대사, 수열대사 등이 중창했다. 1970년대에 건물 일부가 다시 소실되었다.
고운사 입구 좌측 언덕에 용왕각과 백련암으로 백련암은 공양간이다.
의성 고운사의 '조계문' 편액을 달고 있는 일주문은 사찰의 입구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이다. 가장 아름답고 한국적인 일부문을 꼽으라면 고운사의 일주문을 추천하는 이들이 많다.
민흘림 기둥 2개를 세워 팔작지붕을 올린 익공계 형식의 일주문, 세속의 세계를 벗어나 연화장의 세계로 들어서는 첫번째 관문인 일주문은 기둥이 한 줄로 나란히 서 있는 것에 유래하였으며 일심(一心)을 상징한다. 일주문 뒤로 '천왕문'이 보인다...
일주문 들어서며 우측 언덕으로 화엄승가대학원과 화엄문화 템플관 입구이다..
일주문 근처의 고운사 안내도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넓은 광장 앞에 고운사 안내도와 천왕문이 보인다.
천왕문 앞의 고운사 안내도이다.
의성 고운사 '천왕문'
정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협 칸을 두어 양쪽에 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1936년에 천왕문을 이건 하였다. 60여개의 말사를 관장하는 거대한 사찰이다.
고불전은 천황문 바로 뒤쪽이 위치하며 오래된 석불을 봉안해 놓은 아주 작은 전각으로 그 요철 모양의 구조가 특이하다.
고불전 내부에는 오래된 석불을 봉안하고 있다.
무설전과 가운루
사찰 입구 쪽에서 바라본 구름 위의 누각 가운루 모습
일주문을 통과하여 맨 먼저 나타나는 건물이 신라 말 학자인 최치원이 세운 누각인 가운루로 옛날에는 이 누각 아래로 계곡물이 많이 흘러내렸다. 그래서 계곡에 잠기는 부분에는 돌기둥을 놓고 그 위로는 나무 기둥을 이어서 누각을 받쳤다. 이제는 예전처럼 물이 흐르지 않아 본래의 진가는 발휘하지는 못하지만 건물 자체의 정교한 아름다움은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가운루에서 바라본 우화루와 범종각
가운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지붕 옆면이 여덟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의 익공계 중층 누각이다. 왜란 당시 승병활동의 공간이였던 가운루는 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151호로 지정되었다.
흘러내리는 계류 위에 걸쳐 앉은 가운루는 누(樓)형식의 건물로 조계문과 천왕문을 들어서면 서향한 정면이 바로 보인다. 이 건물은 후대에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리라 여겨지는데, 1676년(숙종 2)과 1717년의 중수기가 남아 있다.
건물의 전면과 양 측면은 판벽으로 구성되었고, 전면 중앙 3칸에는 가운데 설주가 있는 쌍여닫이 판창문이, 남측면에는 판문으로 된 출입문을 두었다. 북측면의 동쪽 칸에 치우쳐서 누각을 오르내리는 계단이 나무로 짜여 있고 양여닫이 판문을 달아 누에 들게 하였다.
동향인 배면은 계자각(鷄子脚) 난간을 돌려 개방하였다. 계곡 바닥 암반에는 둥글고 긴 초석을, 지면에는 막돌 덤벙주초를 두어 누하주를 세우고 우물마루를 깔아 누 상주를 설치하였다.
기둥은 약한 배흘림이 있는 두리기둥으로 하였고, 주두(柱頭)의 바깥쪽은 초익공으로, 안쪽으로는 초각된 보아지로 들보를 받쳤다. 그러나 건물 네 귀의 우주(隅柱 : 모서리기둥)는 2익공으로 짜여져 있다.
지붕가구는 5량가로 들보 위에 두꺼운 판재를 포개놓아 중도리와 종보를 받았으며, 종보 위에는 고졸한 모양의 화반과 첨차를 직교하여 마루도리를 올려놓았다.
전체적으로 보아 조선시대, 특히 중기의 양식이 지배적이기는 하나 각 부분의 세부형식이 각기 다른 시대의 수법을 보이고 있어 몇 차례의 중수과정을 짐작케 하고 있다. 그러나 초익공계 건물에 귀기둥만 2익공으로 꾸민 점이나, 산지 가람에서 계류 위에 꾸민 누형식 등은 흔치 않은 예이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었다는 구름 위의 누각 가운루(駕雲樓)에서 바라본 우화루(雨花樓)와 범종각
가운루(駕雲樓). 정면 맞배지붕의 이층건물인 우화루(雨花樓) 카페와 범종각
후원과 우화루 그리고 가운루
가운루 옆에 서 있는 최치원이 세운 우화루 벽엔 커다란 호랑이가 그려져 있는데, 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달라지는 걸작이다.
우화루의 "호랑이 벽화"는 살아 있는 호랑이라고 소문이 나있다. 조선시대 중기에 그려진 그림으로 눈이 어딜가도 따라오는 특이한 살아 있는 벽화라고 한다.
'우화루'는 카페로 사용 중이다...
범종각
가운루와 후원
무설전은 큰 방 한 개로 이루어진 건물로 수련대회나 기도 시 방문객들의 숙소로 사용된다.
무설전 좌측으로는 열반당으로 옛날 스님들이 노령으로 거동이 힘들어지면 이 건물에 기거하다가 운명을 맞이하였다. 현재는 상주대중의 숙소로 사용된다.
이곳은 일주문 좌측에 보이던 곳으로 대향각과 백련암 .용왕각이 있는 영역이다...
대향각으로 원래 연수전 옆에 있던 건물로 1999년도에 현 위치로 이전하여 해체복원했다. 현재 포교사 사무실과 숙소로 사용된다.
대향각과 백련암
백련암은 원래 조사들의 진영을 모시던 장소로 현재는 수련회나 재가불자들의 선방으로도 사용되고 백련암 아래층은 공양간이다..
백련암 아래층 공양간
공양간 뒤로 용왕각
대향각과 백련암을 뒤로하고
후원을 지나 우화루 쪽으로 이동하면 극락전과 종무소 그리고 우화루 카페가 있다...
만덕당과 극락전 그리고 종무소로 사용 중인 낙서현
극락전은 아미타부처님과 관세음ㆍ대세지 두 보살을 모시고 있는 법당이다. 현재의 대웅보전이 신축되기 전까지 고운사의 큰법당 역할을 하던 유서 깊은 건물로 소박하면서 절제되고 또한 엄중한 기상을 엿볼 수 있다.
극락전에 봉안한 관음상은 천해(天海)가 꿈에서 본 것과 똑같은 불상을 송도 대흥산(大興山)에서 찾아내어 고운사로 옮겨 봉안한 것이라고 한다.
1695년 도청(道淸)과 선조(禪照)가 극락전에 아미타불과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여 이전의 관음상과 함께 삼존불상을 구비하였다.
향 극락전 우측 전경
향 극락전 좌측 전경
우화루와 스님들의 공양장소이며 간혹 회의장소로도 쓰이는 만덕당과 극락전
종무소와 우화루 카페 그리고 만덕당
고운대암과 종무소로 사용 중인 낙서현
종무소와 우화루 카페 그리고 고운대암, 고운대암은 역대 고운사의 가장 큰스님이 주석하는 건물이다. 현재 주지스님의 처소이며 1999년도에 중수하였다.
'만세문' 현판이 붙은 연수전의 솟을 대문
연수전의 구조는 만세문 현판이 걸리 솟을 대문에 사방 담을 쌓고 가구식 기단에 겹처마 형식의 팔작지붕이다. 또한 연수전은 평면 형태가 사찰의 여타 전각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억불숭유시대에 사찰내에 배치된 왕실과 관련된 유물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건물은 만세문(萬歲門) 안쪽에 좁은 마당을 두고 축선에 맞추어 건립되었다. 만세문을 중심으로 연수전을 네모나게 에워싸는 토석담[土石墻]을 쌓았는데, 뒤로 갈수록 높게 층단을 두었다. 낮은 담장의 높이에 비해 높은 기단 위에 자리하였으므로, 산자락을 배경으로 위엄을 가지면서도 개방적인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만세문은 전형적인 솟을삼문으로, 앞면에는 3단의 계단을 둔 한벌대의 기단을 구성하였으며, 방주초석 위에 원기둥을 설치하여 앞면 3칸, 옆면 2칸의 주칸[柱間]을 형성하였다. 대보의 가운데 아랫부분에는 높이가 낮은 네모난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두고서 도리통에 판장문(板長門)을 달았으며, 인방재 윗면에는 홍살과 화반을 설치하였다. 가운데칸인 어칸에는 초익공 구조를 두고, 좌우의 퇴칸[退間]에는 민도리 구조를 적용하였으며, 모든 도리는 모를 접은 납도리이다. 어칸과 좌우 퇴칸 사이에 층단을 둔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금단청(錦丹靑)을 적용하였다. 앞면 어칸의 창방(昌枋) 윗부분에는 ‘만세문(萬歲門)’이라고 쓴 편액이 걸렸다.
연수전(보물 2078호)
연수전은 1902년 고종의 기로소 입소를 기념해 1904년에 세운 기로소 원당이다. 기로소(耆老所)는 70세 이상 정2품 이상의 문관을 우대하기 위해 설치한 기구로, 국왕의 경우 60세를 넘으면 기로소에 입소한다. 조선시대에 걸쳐 기로소에 입소한 왕은 태조, 숙종, 영조, 고종 등 4명에 그친다. 고운사 내에 있던 영조의 기로소 봉안각의 전례를 따라 세워진 대한제국기의 황실 기념 건축물이다.
본전 건물은 3단의 다듬은 돌 석축 위에 있으며, 정면 3칸 옆면 3칸의 단층 팔작집으로, 정사각형(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이다.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완만한 곡선의 용마루와 내림마루의 끝부분에는 각각 망와(望瓦)를 설치하였다. 지붕면의 끝선은 와당을 가진 수막새와 암막새로 마감하였고, 동서의 합각부는 기와 조각을 쌓은 회벽으로 마감하였다.
한 가운데 자리한 중앙 칸을 어첩(御帖) 봉안실로 삼았고 둘레에 퇴(툇간)를 두었다. 이(二)익공식의 공포를 사용하였는데, 각 중앙 칸에는 기둥사이에도 1구씩의 익공을 두고 있다.
기둥머리 이상의 부분에 화려한 금단청을 하였다.
전체적으로 화려한 금단청을 하였고, 천장에는 다른 곳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용과 봉, 해와 달, 학과 일각수(一角獸, 유니콘과 비슷한 상상 속 동물), 소나무와 영지, 연과 구름 등 다양한 주제의 채색 벽화가 가득하다.
앞면에는 숫대살을 구성한 사분합창이 달렸다.
실(室)의 남쪽 칸에는 문틀을 세우고서 들어열개 사분합문을 달았는데, 윗부분은 판벽으로 만들고 ‘연수전(延壽殿)’ 편액을 걸었다.
천장에는 남쪽에 1쌍의 청룡 그림과 함께 나머지 부분에는 16마리의 봉황이 그려져 있다.
향 연수전 우측 측면, 동 옆칸은 아랫부분에만 판벽을 두고 윗부분에는 남쪽으로 치우치게 살창을 달았다.
건물은 전체적으로 화려하게 금단청을 하였는데, 특히 실의 안팎에는 창호를 제외한 판벽과 천장에 왕실의 위엄을 상징하는 벽화를 그렸다. 곧 동쪽 면에는 중인방 아랫부분의 판벽에 연꽃과 해, 한 쌍의 거북을 그린 연화도(蓮花圖)가 있고, 윗부분의 창선에는 ‘용루만세(龍樓萬歲)’의 글귀와 함께 좌우에 태극무늬를 그렸다.
향 연수전 후면인 북쪽 칸은 중인방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을 판벽으로 구성하였고, 실 안에는 북쪽으로 벽장형 감실(龕室)이 설치되었다.
북쪽 면에는 중인방을 기준으로 위아래에 각각 장생도(長生圖)가 있는데, 윗부분에는 매화나무와 달, 한 쌍의 학, 영지버섯 등을 그렸으며, 벽화를 그린 시기가 1904년임을 알 수 있는 글귀가 적혀 있다. 아랫부분에는 소나무와 해, 일각수(一角獸)가 그려져 있으며, 태평세월을 알리는 글이 있다.
향 연수전 좌측 측면, 서 옆칸은 아랫부분에만 판벽을 두고 윗부분에는 남쪽으로 치우치게 살창을 달았다.
서쪽 면에도 판벽과 창선에 각각 구름과 달, 한 쌍의 용을 그린 운룡도(雲龍圖)와 함께 태극무늬 가운데 ‘봉각천추(鳳閣千秋)’의 글귀가 쓰여져 있다.
태극무늬
전체적으로 규모가 작지만 황실 건축의 격에 어울리는 격식과 기법, 장식을 가지고 있는 수준 높은 건축물이며, 그 기능과 건축 형식의 면에서 다른 예를 찾아보기 힘든 귀중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솟을삼문 형식의 연수전 정문인 만세문과 사방에 담장을 두어 사찰 내의 다른 구역과 구분되는 독립된 구획을 이루고 있다.
건물은 등운산 골짜기를 따라 형성된 사역(寺域)의 요사채 영역에서 남남서향으로 자리하고 있다. 18세기 중반에 왕실의 계보를 기록한 어첩을 봉안하려고 건립되었는데, 그 뒤 불탔다가 1902년에 다시 건립되었다. 지금 걸려 있는 편액은 1904년에 김성근(金聲根)이 칙서를 봉안하면서 제작하였고, 이 때 현재 남아 있는 벽화도 제작되었다.
고운사에 있는 조선후기 어첩(御帖)을 봉안하기 위해 건립된 사찰건물.유교건물. 시도유형문화재이다. 이 건물의 기단은 18세기 중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며, 1902년에 다시 건립된 지금의 건물에는 조선 후기의 건축 기법에 충실하면서도 높은 위계를 반영한 장식 기법이 잘 적용되었다.
이 건물은 조선 영조 20년(1744)에 왕실의 계보를 적은 어첩을 봉안하기 위하여 건립 되었으며, 1887년 극락전 등 다른 전각들과 함께 중수되었다.
대웅보전은 고운사의 큰법당이며 1992년도에 완공된 50평 규모의 전각이다.
대웅보전의 두 용두
석가모니불과 문수보살ㆍ보현보살을 모시고 있는 고운사의 큰법당이며 대중의 조석예불과 사시불공 등 모든 의식과 법화가 이루어지는 고운사 신앙의 중심지이다.
법당안에는 신중단과 조사진영을 모신 조사단, 선망조상의 위패를 모시는 영단이 있다.
고운사 대웅보전의 조사단에는 조사진영이 모셔져 있다.
대웅보전 마당에서 바라본 사찰 전경이다...
대웅보전 옆에 약사전이 자리한다...
약사전에는 약사여래부처님을 주불로 모신다.
약사전 내부의 석조여래좌상(보물 제246호)과 신중탱
불상 높이 79cm, 대좌 높이 72cm, 광배 높이 134cm. 불신·광배·대좌가 모두 완전한 상태이다.우견편단으로 법의를 입고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굴암 본존상 계통의 상으로 오른손 끝이 떨어져나갔다.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불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네모난 얼굴에 이목구비가 작게 표현되었고 이마에 백호공이 큼직하게 뚫려 있다.
어깨가 넓고 허리가 잘록하며 결가부좌한 다리의 폭도 넓어서 양감있는 신체를 표현하고 있으나 목을 짧게 조각해 자세가 움츠리고 앉은 듯 경직되어 있다.
법의는 몸에 밀착되어 있으며 옷주름이 얇은 층단형의 평행선으로 처리되어 도식적이다.
대좌는 3단의 8각연화좌로 이중연판이 큼직하게 조각되고 별다른 장식이 없는 것이 불신에서 볼 수 있는 단순한 조형과 상통한다. 반면에 보주형(寶舟形)의 광배는 그 안에 이조선(二條線)으로 두광과 신광을 표현하고, 얕은 부조로 매우 화려하게 장식했다.
둥근 형태의 두광과 신광 안에는 보상당초무늬가 장식되어 있고, 바깥의 주변에는 불꽃무늬가 자연스러운 선으로 표현되어 있는데,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 석조비로자나불좌상(石造毘盧舍那佛坐像)의 광배와 매우 흡사하다.
불신과 옷주름 표현의 경직성과 도식화 경향으로 미루어 9세기 정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통일신라 후기에 유행한 항마촉지인 불좌상 중에서는 비교적 우수하다.
도선국사께서 조성하신 석불(보물 제246호)은 균형잡힌 몸매와 인자한 상호, 비교적 완벽한 보존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운사의 모든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 되었다.
연수전 옆에는 연지암이 있다.
연지암은 원래있던 연지암을 헐고 1997년에 확장하여 지은 건물로 그 앞에 작은 연못이 있었다. 소임을 보는 스님들의 숙소와 차실이 있다.
명부전. 적묵당. 아거각
명부전은 보수중이었다...
명부전은 사후에 인간이 심판받는 장소를 형상화 한 곳으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있으며 염라대왕을 비롯한 열 대왕과 그 권속들이 조성되어 있다. 이 건물은 약 300년 전에 세워진 법당이다.
고운사는 해동제일지장도량이라 불리는 지장보살 영험성지이다. 옛부터 죽어서 저승에 가면 염라대왕이 고운사에 다녀왔느냐고 물었다고 하는데 지장보살님의 원만자비하신 풍모는 물론이거니와 명부십대왕의 상호와 복장도 다른 사찰에서는 보기 힘든 위엄과 정교함을 자랑하는데 이번에는 볼수 없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약사전 옆의 적묵당.아거각
적묵당은 1990년에 세워진 건물로 객실이고 아거각은 원래 서산대사의 진영을 모시던 영각이었으나 현재는 스님의 숙소로 쓰인다.
명부전 뒤의 삼성각
명부전을 보수중이라 주변이 복잡하여 삼성각은 줌으로 당겨보고 갈수는 없었다..
삼성각은 민간신앙인 산신ㆍ칠성과 나반존자(독성대왕)를 탱화로 조성하여 모신 전각이다. 원래 없던 것을 1998년도에 새로이 지었다
적묵당.아거각.약사전 연수전. 연지암이 차례로
대웅전 옆의 언덕배기에는 전통 깊은 수도선원 고금당이 자리잡고 있으며 그옆에는 나한전이 있고 나한전 앞에는 있는 높이 2.5m의 단정한 맵시를 자랑하고 있는 고운사 3층석탑이 있다.
고금당 선원
나한전 앞의 삼층석탑( 경북문화재 자료 제28호)
삼층석탑은 현재 나한전 앞에 자리 잡고 있다.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렸으며, 아래층 기단에는 희미한 안상(眼象) 무늬가 보이고,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이 조각되어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 비해 2층부터 급격히 줄어들고 있으며, 각 층의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의 조각을 두었다. 약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에서 치켜 올림이 크지 않고, 밑면에 1층은 4단, 2·3층은 3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 머리장식받침돌), 복발(覆鉢: 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뒤집혀진 앙화(仰花: 활짝 핀 연꽃모양 장식) 등을 올린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석재가 많이 닳아 있고, 아래층 기단이 특히 심하다.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양식을 따르고 있지만, 줄어든 규모나 지붕돌의 조각양식 등에서 시대가 조금 내려간 모습들이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의 작품으로 추측된다.
삼층석탑에서 내려다본 고운사 전경이다...
나한전은 응진전 또는 영산전이라고도 불리우는데 16나한을 봉안하였으며 그 가운데는 석가모니불을 모셔 놓았다. 이 건물은조선 중기에 세워졌다. 건물을 이전하면서 16나한을 모셨고 전각의 이름도 바뀌었다. 불상은 우리나라에 보기 드문 지불(紙佛)로 매우 원만한 상호를 보여준다.
나한전 옆으로 고금당 선원
'출입금지' 팻말이 엄격함을 보이는 스님들의 참선 수행하는 공간 고금당 선원
고금당 선원은 서산, 사명, 전강 큰스님들이 거쳐간 활구 참선 도량이다. 특히 1980년 주지로 부임하신 현봉 근일 대종사께서 용맹 정진 도량을 만들어 대중을 지도하여 오셨다. 지금의 고금당 선원은 1990년 새로 옮겨졌으며 지금은 조실 스님의 지도 하에 면벽 참석 납자가 끊이질 않고 있다.
고운사 전각들이 오밀조밀 이마를 마주하고 있다..
범종각과 우화루 카페. 종무소. 극락전. 고운대암이 차례로...
법고ㆍ범종ㆍ목어ㆍ운판의 사물(四物)이 설치되어 있다. 조석예불에 그 소리를 내는 종각과 현재 사찰의 사무를 보고 있는 낙서헌은 종무소이다.
가운루(駕雲樓)와 우화루(雨花樓) 카페 그리고 종각
가운루와 우화루
열반당과 적묵당 그리고 가운루, 이제 고운사를 충분히 순례 후 천왕문으로 이동한다...
천왕문과 고불전
천왕문 사이로 일주문이 보인다...
일주문을 지나오면 고운사 순례는 끝이난다.
1906년 안동· 예안· 의성· 지례· 선산· 금산· 용궁· 비안· 군위· 의흥· 청송· 진보· 순흥· 봉화· 영천군 등에 있는 사찰에 대한 관리를 종무원(宗務院)에서 부여 받았다. 1912년 30본산(本山)의 하나가 되었으며, 1913년 2월 사찰령(寺刹令)에 의하여 고운사 본말사법(本末寺法)이 시행되면서 경상북도 내의 46개 사찰을 말사로 관장하였다.
그동안 갈증으로 10여년 만에 다시 찾은 고운사는 역시 내게 많은 위안과 편안함을 선사해 준다.
충분히 고운사 이곳 저곳을 누벼보고 이제 의성 여행 다섯번째로 의성 관덕리 삼층석탑으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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