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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 천성산 내원사(경남 양산시 하북면 내원로 207, 하북면 용연리 291)사찰여행/경상도 2022. 9. 2. 04:23
양산 천성산 내원사
2022 . 9. 2.
2022. 8 . 30. 한국불교대학 목욕봉사 팀 도반 5명이 함께했던 양산 천성산 지역 사찰을 탐방해 보는 힐링여행이다......9시 포항에서 출발하여 양산 천성선 원효암 →양산 천성산 홍룡사 → 대석마을에서 추어탕으로 늦은 점심식사 → 양산 천성산 내원사 까지 즐긴 힐링여행....
오늘 세번째 마지막 사찰 여행지는 양산 천성선 내원사 이다 ...
마을 입구 사거리에서 내원사로 쪽으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자 오른 쪽으로 제법 넓은 천이 보이고, 그 천을 따라 가다보면 비록 짧은 거리이지만 드라이브하기엔 썩 괜찮은 곳이라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천성산 내원사로 향하는 길은 세상의 시름을 달래고 도란도란 낮은 암자길이 속삭이는 작은 이야기, 그 위에 펼쳐진 파아란 하늘이 드문드문 솜사랑을 배달할 때 쯤 차량은 내원사 주차장에 당도한다.
그렇게 얼마가지 않아 매표소가 나온다.
입구에서 바로 매표, 성인 2.000원, 주차비 2.000원
일주문겸 매표소 통과하면 주차장이 바로 있다. 그곳에 주차 후 다리를 건너면 바로 왼편에 산신각이 있다.
심성교 좌측 산령각
일주문을 통과하자마자 내원사 이정표를 따라 오른쪽 산길로 접어들면 바로 왼쪽 길가에 산령각이 자리한다. 청량한 그늘 속 한 줄기 햇살이 산령각 지붕에 꽂혀 있고 700년 된 소나무가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다.
내원사 초입에 자리한 산령각. 산신이 천명의 성인이 날 곳이라 예언한 자리다.
원효가 그들의 머물 곳을 찾아 내원사 부근에 도착하니, 산신이 마중 나와 현재의 산신각 자리에 이르러 자취를 감췄다고 한다.
문무왕 때인 673년 원효대사가 동래 척판암에 머물고 계실 때다. 대사는 당나라의 종남산 운제사(혹은 태화사)에서 수도하던 1천명 대중이 사고를 당할 것을 미리 아시고 ‘해동원효 척판구중(海東元曉 拓板救衆)’이라 쓴 판자를 날려 보낸다. 대중이 공중에 뜬 판자를 보고 놀라 법당을 뛰쳐나온 순간 뒷산이 무너져 절이 매몰되어 버렸다. 위기를 모면한 1천명의 대중은 신라로와 원효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원효대사는 그들이 머물 곳을 찾다 원적산에 이르렀는데, 산신이 마중 나와 “이곳이 1천명이 득도할 곳이니 청컨대 이곳으로 들어와 머무소서”라 하였다고 전한다. 그곳이 지금의 산령각 자리다.
원효대사는 산령각에서 5리쯤 떨어진 곳에 대둔사(大屯寺)를 창건하고 상·중·하 내원암과 89개의 암자를 지어 1천명의 제자를 머물게 했다. 그리고 상봉에서 ‘화엄경’을 강론했는데 지금 그곳은 ‘화엄벌’이라 불린다. 1천명의 제자 중 988명이 이 산에서, 나머지 8명은 팔공산(八公山)에서, 4명은 사불산(四佛山)에서 득도했다 한다. 이후 원적산은 천성산이 되었다.
산신각에서 나와 한참을 다시 차로 이동 한다.
매표소를 지나 본격적인 계곡이 시작된다. 계곡 옆으로 내원사까지 나 있는 길은 계곡은 도로 정비가 아주 잘 되어 있다.
계곡을 곁에 두고 오르면 조잘거리는 물소리, 스치는 바람음악, 숨바꼭질하는 산새들 모두가 정겹다. 길은 양갈래로 도열한 나무들의 열병식을 받으며 그늘을 만들어 시원하게 걷기 좋았다.
산령각에서 내원사까지는 3㎞ 조금 넘는 거리다. 숲은 활엽수와 침엽수가 사이좋게 뒤섞여 빛과 그늘이 동시에 넉넉하다. 자동차 한 대만큼의 너비지만 곳곳에 교행을 위한 배려가 있고, 물놀이하기 좋은 계곡 옆에는 화장실이 자리한다. 간간이 길을 덮치듯 나타나는 기암들은 사천왕처럼 느껴진다. 물은 어찌 그리도 맑은지. 계곡을 건너는 다리마다 멈춰 서서 골짜기에 넋 잃는다. 숨찰 만큼 가파른 길도 아니고 긴장할 만큼 굽이진 길도 아니다. 걸으면 더욱 좋았을 아늑한 승경이다.
이 곳을 찾아가는 길의 풍광은 가히 장관이다. 절 아래 마을입구에서 내원사로 들어가는 다리를 건너서부터 매표소를 지나 내원사까지의 4km가량 뻗어있는 계곡은 제2의 금강산이라 불릴 만큼 그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절벽 사이로 흐르는 계곡 물을 따라 거슬러 오르다 보면 맑은 물과 맑은 공기 그리고 빼어난 경치에 세상의 시름이 다 잊혀질 정도이다. 사시사철 푸른 상록수와 바위, 계곡이 어우러져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특히 이곳의 계곡은 양산천의 발원지로 항상 맑고 투명한 물빛을 유지하고 있다. 더 깊이 들어가면 간간히 웨딩 촬영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야 할 순간이 바로 저 순간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게 계곡을 오르다 보면 매점과 함께 마지막 주차장이 나온다.
매점을 지나면서부터 숲길이 시작된다. 곧게 뻗은 키가 큰 나무 사이로 나 있는 오솔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다보면 길 오른편으로 내원사가 보인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로 경상남도 기념물 제81호로 천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내원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대둔사를 창건하면서 주위에 89개 암자를 두었다고 전해온다. 내원사는 그중 하나였으며 내원사지로 불리어 오다가 내원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6.25때 불탄 것을 1958년 비구니 수옥스님이 재건, 동국제일의 비구니 스님의 기도도량으로 유명해졌다.
옛 하내원인 지금의 내원사는 대웅전, 정려헌, 죽림원, 원화당, 간월당, 심우당, 산령각, 일주문 등 13동에 달하는 불사를 계속해 비구니 선찰로써 사격을 갖춰 나갔다. 또한, 산내 암자로는 금강암, 금봉암, 노전암, 비로암, 성불암, 안적암, 익성암, 조계암 등이 남아 있다.
화산당 수옥화상(華山堂 守玉和尙) 부도비와 부도탑을 만난다...
천성산의 깊은 곳에 내원사가 자리했네 천여 대중 함께 모여 합장하고 청법한 후 정, 덕, 지혜, 두루 갖춰 명문 귀가 선망하되출가입산 스님되어법희스님 시봉타가 내외학을 박통하고 후진양성 업을 삼다. 어느 때는 가르치고 유시에는 연좌하니 제자들이 힘을 모아 이 비석을 세우노니 한국에는 사씨니요, 내원사엔 수옥일세. 원효스님 상정에서 화엄경을 설하실 때 수옥 스님 주산되어 설법교화 하였도다. 세상영화 뒤로하고 선재동자 구법하듯일본유학 마친 후에 고국으로 돌아왔네. 선, 경, 율을 겸수하여 내원사를 중흥하며 배출시킨 선교제자 그 수효가 한량없네. 인도에는 대애도요, 중국에선 정검니며, 억천겁이 지나가도 빛난 행업 영원하리.
공덕비
내원사 사적비
천성산 내원사 일원(경상남도 기념물 제 81호)
내원사 계곡은 영남알프스의 남쪽 주봉인 천성산에서 발원한 계류가 북쪽으로 흐르며 만들어 놓은 계곡이다. 내원사 위쪽에서 내원사 입구까지의 약 6㎞가 아주 아름다운 절경이어서 경남의 소금강이란 말을 듣는 곳이다. 계곡 곳곳에는 작은 폭포와 소 그리고 삼층 바위가 첩첩히 서 있으며 절벽에 "소금강"이란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으며 병풍모양으로 바위가 길게 뻗어져 있어 병풍바위라 불리는 것도 있다.
번뇌 씻어주는 내원사 계곡은 입구부터 풍광이 예사롭지 않다. 내원사 계곡은 양산의 명산 천성산에서 발원한 계류가 만들어 놓았다. 계곡의 옥수(玉水)는 아래로 흐르면서 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도록 영양분을 공급해주고, 바위를 깎아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풍경에 매료돼 찾아든 인간들이 온갖 번뇌를 잊게 했다.
천성산 기슭에 위치한 내원사 아래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아름다운 내원사 계곡. 북동쪽으로는 정족산, 남쪽으로는 원적산, 남동쪽으로는 천성산이 있으며, 그 사이에 있는 여러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용연천과 상리천 등이 되어 서쪽에서 양산천으로 흘러들고 있다.
내원사 계곡은 영남 알프스 남쪽 주봉인 천성산에서 발원한 계류가 북쪽으로 흐르며 만들어 놓은 계곡이다.내원사계곡은 예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정도로 자연경관이 빼어나고 사시사철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 신비한 계곡으로 불리었다. 계곡 곳곳에는 삼층바위가 첩첩이 서 있으며 절벽에 “소금강”이란 글자가 뚜렷이 새겨져 있으며 병풍 모양으로 바위가 길게 뻗어져 있어 병풍바위라 불리는 것도 있다.여름에는 피서객이 봄, 가을, 겨울에는 등산객이 많이 찾고 있고 이곳 산에서 채취하는 도토리로 만든 묵은 맛도 좋을 뿐 아니라 건강식품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아스팔트길이 끝나면 여의교(女意橋) 너머 내원사가 보인다.
내원사 경내로 들어가는 모든 것이 당신의 뜻한 생각 그대로 되라는 여의교(如意橋)를 지나게 된다.
내원사는 비구니들의 참선 도량이다. 다리 이름에서 공간의 성격을 미리 가늠한다. 한쪽에는 ‘일행삼매(一行三昧)’라 새겨져 있다. ‘가고 멈추고 앉고 눕고 간에 항상 곧은 마음을 쓰라’는 엄중한 말씀이시다.
계곡에 자리를 잡은 내원사는 남성적 느낌 강한 통도사와 달리 여성적 느낌이 강하다. 내원사가 비구니들이 정진하는 곳이어서 라기 보다는 밖에서 본 모습이 부드럽고 고운자태를 지녔다.
가파르게 오르면 왼쪽에는 솟을 문이 있지만 ‘내원사’ 현판 걸린 입구에 출입금지 바리케이드가 서 있어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이라, 정면으로 곁의 2층 건물인 원화당 옆구리를 지나 경내로 들어가야 한다.
미끄럼틀처럼 기울어진 길옆에 대숲이 짙다.
천성산의 능선이 사방을 꽃잎처럼 감싸 안은 가운데 10여 채의 건물이 아담하게 자리하고 있다. 참선하고 공부하는 곳이다 보니 대부분이 출입통제다. 대둔사는 창건 후의 고려시대 사적은 전하는 바가 없고 조선시대에 몇 차례 중창되었으나 조선 중엽쯤 이미 거의 다 폐허가 되었다 한다. 그중 살아남은 하 내원이 지금의 내원사다.
갑자기 빗줄기가 강해진다...
내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5교구 통도사의 말사로써 수려한 산수와 6Km에 달하는 아름다운 계곡으로 제 2의 금강산이라 일컬어지는 천성산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1300여년 전 신라 선덕여왕 때 원효성사께서 창건하신 절이다.
1898년 석담유성(石潭有性)선사가 설우(雪牛), 퇴운(退雲), 완해(玩海)등과 더불어 수선사(修禪社)를 창설하여 절 이름을 내원사로 개칭하고 동국제일선원이라 명명한 후 선찰로써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경허선사의 법제자인 혜월선사께서 조실로 주석하시면서 운봉, 향곡선사 등 한국 선종사의 선맥을 잇는 명안종사를 배출한 도량이다.
6ㆍ25사변으로 사원이 전소되자, 비구니 수옥스님의 원력으로 10년 만에 독립된 비구니 선원으로써 새롭게 중창되었다. 그 후 만공스님의 법제자인 법희, 선경스님 등 납자들의 정진처가 되었다. 1979년 도용스님을 입승으로 모시고 18명의 스님들이 모여 삼년결사를 시작한 이후 1999년 여섯 번째 회향을 하였고 지금도 매 안거마다 수십 명의 비구니 스님들이 정진하고 있다.
내원사는 각 건물의 용도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전부가 수행공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수행공간 죽림원
죽림원과 해우소. 원화당
예전에 없던 곳이 생겼다. 1층에는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곳도 생겼고 불교용품 판매처 안에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었다 .
내방객이 가장 편하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은 기념품 가게다. 많은 제약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는 의미일 게다. 가게 옆에 차방이 있다. 찾아오는 이들을 위해 무료 차 공양을 해준다는 얘기를 들었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먼 데 사는 그리운 친구 같은 절집이다.
이곳은 지형을 이용해 아래 1층에는 불교용품을 판매하는 곳도 생겼고 불교용품 판매처 안에 무료로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도 있었고 위 2층의 '정처헌' 건물
금고와 가마솥이 있는 육각정자
경내의 육각 정자 안에 청동 금고(청동북)가 걸려 있다. 내원사 금고(보물 제1734호)는 법고. 범종이나 운판.목어 등과 함께 소리를 내는 것으로 징 모양의 불구(佛具) 중 하나다.
양쪽 모두를 사용할 수 있는 쇠북이라는 뜻에서 금고라 부르고, 한쪽 면만 사용할 수 있는 것을 반자라 하였는데 후대에는 이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내원사의 것은 한쪽만 두드려서 사용하는 것으로 가운데 부분에 이중선을 돌려 안과 밖을 구분하였다.
바깥쪽 원 4곳에 구름과 꽃무늬를 옆면의 위쪽에는 동그란 구멍을 가진 돌출된 귀를 달았고, 내원사 금고 아래에는 고려 선종 8년(1091년)에 금인사에서 만들어진 것임을 알려주는 글이 새겨져 있다. 이 금고는 만들어진 시기가 분명하고 상태도 양호한 편으로 고려 전기의 금속공예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지만 진품은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보관되어 있고 여기에 있는 것은 모사품이다.
내원사 금고 아래는 아주 낡고 큰 가마솥이 놓여있다. 제작연대는 알 수 없지만 내원사 대대로 전해오는 것으로 보고 있다. 완벽한 녹과 뚜렷한 금이, 오래된 고난처럼 여겨진다.
가마솥에는 ‘동국제일선원이라는 명칭에 걸 맞는 눈 푸른 납자(衲子)들이 수도정진(修道精進)하였음을 알려주는 솥’이라 적어 두었다.
금고와 가마솥이 있는 육각정자 옆의 약수
그러고 보니 범종각이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다. 소리 없는 절집 내원사...
대웅전과 다선실
내원사의 큰법당 대웅전의 기둥에는 14연의 주련이 있는데 그 주련의 뜻을 찾아보니
남산석호토한하(南山石虎吐寒霞) 남산의 돌 호랑이는 찬 노을을 토하고
북해니우용벽파(北海泥牛湧碧波)북해의 진흙 소는 푸른 물결을 내 뿜는데,
최후별조수선응(最後別調誰善應)마지막 또 다른 곡조에는 누가 맞장구를 칠까?
설산심처와두타(雪山深處臥頭陀)설산 깊은 곳에 투타를 닦는 스님이 누워있네.
유사주선무사신(有事周旋無事伸)일 있으면 움직이고 일 없으면 기지개를 켜는데
고래상왈본래인(古來相曰本來人)예로부터 상을 일러 본래인이라고 하네.
휴언랍후유한재(休言臘後猶寒在)섣달그믐 후에도 되레 추운 것은 말하지 않으련다.
천도매변별시춘(天到梅邊別是春)때가 되면 매화꽃 주변을 따로 봄이라고 하지 않는가.
금강일갈추정급(金剛一喝抽釘急)금강의 일갈에 단박에 못을 뽑으니
백일청천전영망(白日靑天電影忙)해 밝은 푸른 하늘에 번갯불이 번쩍이네
무가전두관외로(無暇轉頭關外路)빗장 밖 길로 고개 돌릴 틈도 없는데,
안타추색과형양(雁拖秋色過衡陽)가을 빛 재촉하는 기르기는 형양을 넘는구나.
(衡陽:중국 호남성 남동부의 지명으로 남악회양선사를 말한다.)
일엽정오추신조(一葉井梧秋信早)우물가 오동 한 잎은 벌써 가을을 알리는데
남파유자초청청(南坡猶自草靑靑)남쪽 둑의 풀빛은 오히려 더 푸르르네.
내원사의 큰법당 대웅전은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모신 곳이다.
대웅전 불단 좌우로 육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을 표현한 벽화가 있다.
불단 위의 닫집도 장엄하다...
향 불단 우측의 신중탱
.대웅전 옆 외벽 위에는 팔상성도, 아래 심우도.
수곽 불유각. 심우당과 대웅전
수곽 '불유각' 뒤편이 공양간 인듯...
수곽 '불유각'
1층 공양간과 2층 심우당 스님들 수행 공간
2층엔 심우당으로 스님들 공간
내원사가 비구니들의 참선 도량이 된 것은 6·25전쟁 이후의 일이다.
내원사는 전쟁 중 공비들의 방화로 전소 되었다고 한다. 이후 1955년 수옥스님이 주지로 오시면서 비구니들을 위한 선원을 짓기로 뜻을 세우고 1959년 선방인 선해일륜(禪海一輪)을 완공했다. 동국제일선원의 개원이었다. 대웅전 앞에 ‘동국제일선원’이 자리한다.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모질지는 않아서 넘어다 볼 수 있다. 단청이 번쩍번쩍거리는데도 기품이 있다.
1957년 2월 18일에 전후의 어려움 가운데에 중창불사를 시작하였고, 1959년 3월 29일에 선방인 선해일륜(禪海一輪)을 낙성하고 동국제일선원을 개원하게 되었다.
기나긴 세월의 풍화작용속에 대둔사, 상중의 내원암과 89개의 암자는 조선 중엽쯤 이미 거의 다 폐허가 되고 없었으니, 마침내 적막한 천년사지에 새로이 향화를 받드는 감회 어린 순간이었다. 수덕사 견성암에 이어 남방에서도 비구니들이 참선수행토록 그 기틀을 다지게 되었다.
ㄱ자 건물에 '천성산내원사' 현판이 있는 걸로 봐서 이곳이 주 출입로 였을텐데... 내원사 동국제일선원, 출입금지구역이다
솟을 문이 보이고, 선원 건물 멋지다.
대웅전에 서서 산을 바라보면 정말 멋진 풍경이 펼쳐진다 . 천성산에 둘러 싸인 내원사, 정말 운치 있고 마음이 편안해지는 사찰인 것 같다.
오늘날의 내원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이 시기에 이룩한 비구니 수옥(守玉) 스님의 업적이다.
스님은 어려운 시절에 전쟁으로 폐허화된 내원사를 중건하고 단절된 선원을 복원하여, 오늘날 명실공히 내원사를 비구니 수선도량(修禪道場)으로 일구어낸 분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선원으로서 내원사는 근대 경허(鏡虛) 스님의 법제자인 혜월(慧月) 선사가 조실로 주석하며 운봉(雲峰)ㆍ향곡(香谷)ㆍ명안(明眼) 선사 등 한국 선종사의 선맥(禪脈)을 잇는 고승들을 배출하였다. 이러한 수행도량으로서의 가풍(家風)을 이어받아 오늘날에도 ‘동국제일선원’으로서 수많은 비구니 스님들이 깨달음을 향해 정진하고 있으며, 눈 푸른 선승들의 수행공간 구실도 아울러 담당하고 있다.
내원사 경내로 들어서면 다른 유명한 절과는 다르게 그리 화려하지는 않다. 그러나 절내에 들어서면 대웅전과 요사채가 어우러져 편안함이 느껴지는 곳이라 표현함이 좋을 듯하다.
가을바람에 잔잔히 흔들리는 처마 끝의 풍광이 이곳 내원사와는 아주 잘 어울린다. 가까이서는 그리 화려하지는 않아 보이는 이곳 내원사는 천성산 중턱에서 내려다보면 그야말로 산과 조화된 절의 풍광은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고...
내원사는 양산시 하북면 용연리 291번지 일원에 천성산 기슭에 조용히 안겨있는 비구니의 수도도량이다. 특히 이곳은 "도룡농 생태"로 반대했던 내원사 천성산 생태계 파괴를 막기 위해 고속철 천성산 관통반대를 위해 단식농성으로 온몸을 던진 지율스님이 수양하던 곳으로 유명한 천성산 내원사 이다.
지율스님은 2017년 부터 닷새 만에 한 번 버스가 들어오는 마을인 영덕 칠보산 기슭 황토목이 마을에 정착 중이며 저서로는 지율스님의 산막일지가 있다.
갈등은 길었고, 결국 터널은 뚫렸다. 그 터널의 이름이 ‘원효’라 한다. 산의 내상이 어떤 상태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 골짜기는 아주 평화롭고 아름답다.
산의 원래 이름은 원적산이었으나 원효대사의 제자 천명이 이곳에서 득도했다하여 천성산(千聖山)이 되었다 한다. 산은 영남 알프스의 남쪽 주봉이고 북쪽으로 흐르는 골짜기 6㎞는 소금강이라 불린다.
자꾸만 멈추게 되고 자꾸만 휘둘러보게 된다. 너 괜찮으냐고....
가파르게 오르면 왼쪽에는 솟을 문이 있지만 ‘내원사’ 현판 걸린 입구에 출입금지 바리케이드가 서 있어 일반인 출입 금지 구역이라, 정면으로 곁의 2층 건물인 원화당 옆구리를 지나 경내로 들어 갔다가 이곳을 통해 나간다.
출입이 금지된 내원사 선원 입구이다...
이렇게 이문을 통해서 대웅전을 가면 진짜 좋을 듯....
이 문으로 들어가 선원을 볼수 있다면 진짜 좋을텐데...
아쉬운듯 원화당 뒤편 모습을 다시 바라보다가
발길을 돌려 여의교로 향한다.
여의교에서 바라보니 수행자가 자기 자신을 찾아 정진하듯 계곡물도 근원을 얻으려고 소리치며 흐르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불가에서 진리를 말하는 법(法)이란 글자는 ‘물(水)이 흘러가는(去)’ 것이었다.
내원사는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조용하고 아담한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이다.
천성산에 둘러싸여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가득 머금고 있다. 다가오는 가을의 멋진 단풍을 만나고 싶다면 몸도 마음도 쉴 수 있는 내원사로 향하는 것은 어떨까?
한여름에도 뼛속까지 시린 물이 기다리는 내원사 계곡에서 우리는 일상에서 한 발 물러난 자유로움과 편안함을 느끼면서 자연과 수평적으로 인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양산 천성선 원효암 →양산 천성산 홍룡사 → 대석마을에서 추어탕으로 늦은 점심 식사 → 양산 천성산 내원사 까지 두루 볼 수 있었던 양산 천성산 지역 사찰을 탐방해 보는 힐링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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