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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 양암정(경북 군위군 소보면 내의길 63, 내의리 629)여행방/경상도 2021. 11. 21. 15:02
군위 양암정(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16호)
2021. 11. 21.
2016. 11. 23. 06 : 06에 오늘의 나로 키워 주신 울 친정엄마가 세상과 이별하셨다 .........
2021. 11. 23일이 다섯번째 엄마 제사인데 수도권의 동생들이랑 오빠와 아버지는 서울 오빠집에 엄마제사 참석하기로 하고 11. 20. 오늘 대구 여동생이랑 나는 고향 동네 엄마산소에서 엄마를 뵙기로 해서 여동생이랑 모이기로 한 날, 일찍 출발해서 산소 가기 전에 포항에서 1:40여분을 달려 군위 북부지역인 소보면의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문화재를 찾아서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14호인 광석재, 15분 거리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6호양암정, 10분 거리의 사과연구소 안에 있는 경북유형문화재 제222호인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둘러보러 했으나 코로나로 사과연구소 출입을 막아 보지 못하고 광석재와 양암정만 들러본 후 동생과 시간 마추어 11:00 가까이 도착한 엄마 산소 옆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그리고 친정 엄마께도 인사드린다. 그리고 안계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같이 먹으며 편안히 쉬다가 14:00에 떠나 각자의 곳으로 돌아가며 나는 다시 군위군 읍내의 북산서원과 5분거리의 남계서원. 10분거리의 군위향교를 바삐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두번째 여행지는 광석재에서 15분 거리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6호인 양암정을 보러 간다.
위천을 따라 휘감아 도는 물결 절벽 위에 세겨진 양암정을 찾아간다. 9:30정도 된 시간인데도 안개는 걷힐 줄을 모른다...
위천을 따라 올라오면 내의2리로 가는 길 모퉁이에 양암정이 있다.
양암정 오르며 바라본 위천
이 양암정(兩岩亭)은 광해군 4년(1612)에 건립하여 고종 5년(1868)에 소실되고 고종 25년에 재건하였다. 서담 홍위(西潭 洪瑋) 선생이 학우(學友)와 더불어 자연을 음미(吟味)하면서 도학(道學)을 연마하기 위하여 세웠다.
양암정(兩岩亭)은 굽이굽이 돌아가는 위천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말 일부러 찾지 않으면 찾아가기 힘든 곳이었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6호인 양암정(兩岩亭)으로, 동서남이 탁 트인 위천(渭川) 옆 바위 언덕 위에 한 마리의 왜가리 앉은 듯한 모습으로 자리하고 있다.
정자는 풍치가 좋은 위천(渭川) 옆의 절벽 끝에 자리 잡고 있는데 주변(周邊)에 토석(土石)담장을 두르고 출입은 우측의 길을 따라 뒤로 돌아 정면으로 들어가게 되어있다.
담장과 담장사이로 나 있는 길을 따라 들어가면 일각문이 보인다.
문의 우측에 내담장과 외담장이 나누어지는 부분 아래에 바위가 있어, 바위 아래에는 양암대(兩岩臺)라고 암각 된 글씨를 불수 있는데, 글씨가 묻힐 듯 지면과 가까이 있어 세월의 흐름으로 바위의 일부가 땅에 묻혀진 것으로 보인다.
담장 너머로 위천인데 안개로 잘 보이질 않는다...
들머리 좁은 일각문을 들어서면 양암정(兩岩亭)이 바로 앞에 서있다.
정자의 규모는 정면 3칸에 측면 2칸 이라고는 하나 작은 규모의 아담한 팔작 기와집으로, 일각을 이루는 담장 안에서는 렌즈 안에 양암정(兩岩亭)을 담을 수 없을 정도이며 앞마당도 좁은 편 이다.
양암정(兩岩亭)의 편액은 오랜 세월 탓에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있다.
양암정에서 바라본 일각문
정자는 크지는 않지만 소박해보여 더 좋다.
비교적 낮은 마루와 잘 다듬어 그 위에 세운 주초에 기둥이 있어 마루와 만나는 모습이며, 양암정(兩岩亭)의 마루는 우물마루이며 정자의 가운데의 후면에 방을 두어, 방의 내부로 뒷면은 벽을 두었고 마루가 있는 삼면은 문을 두어 밝은 편이다.
정자의 규모는 아담하며 나무의 모양 그대로 자연스럽게 살린 모습이 소박하게 느껴진다.
정자는 천연암반 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워, 전면에는 둥근 기둥을 측면에는 팔각기둥을 배면과 방이 있는 내진주에는 네모기둥을 세웠는데, 이렇게 세가지 기둥을 세운 건물은 아주 드믈어 작은 규모의 정자 이지만 "천지인(天地人)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데, "원은 하늘을, 네모는 땅을, 팔각은 사람을 나타 내는 것"으로 도학에 근거하여 기둥을 세웠을 것으로 여겨진다.
양암정(兩岩亭)은 삼면의 마루가 방을 둘러싸고 있는 형태를 보이고 있는데, 이런 구조의 정자는 경상도 지역에서는 찾기 힘드나 전라도 충청도의 일부 지방에서는 흔이 볼 수 있는 구조이다.
양암정은 정자를 가운데에 두고 빙둘러서 물이 잘 빠져 나가도록 배수로를 만들었다.
양암정(兩岩亭)의 마루에서 군위의 젖줄인 위천(渭川)을 내려다 본다.
이곳을 노래한 양암정 제영시(兩岩亭 題詠詩)를 가져와 보았다.
新亭蕭灑壓虛汀 새로 지은 정자 상쾌하고 깨끗하여 빈 모래톱을 누르는데
仰想先靈陟降形 선조들의 넋이 오르내리시는 모습을 상상하며 우러르네.
杖 ? 百年芬馥紫 백년세월 지팡이 짚고 걸으신 곳엔 꽃다운 향기 붉었는데
摩 ? 當日蘚痕靑 오늘에야 더듬어 찾아가니 이끼 낀 자국이 푸르네.
風節姑看富春暮 계절을 잠시 바라보니 풍요로운 봄날이 저무는데
品題不入平原醒 온갖 시제가 떠오르지 않음을 평원에서 깨닫네.
擬將模寫歌其事 계획하건대, 장차 그 사적(事蹟)을 본떠 노래하려 하는데
筆舌追來不暫停 붓이 혀를 쫓아와서 잠시도 멈추지 않네.
양암정(兩岩亭)의 주인인 홍위(洪瑋:1559[명종 14]∼1624[인조 2])는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위부(偉夫) 호는 서담(西潭)으로 군위에서 출생하여, 1588년(선조 21) 사마시에 합격한 뒤 1592년 임진왜란을 맞아 부모를 정성껏 보호하였으며, 이듬해 이원익(李元翼)이 체찰사로 파견되었을 때 수천언의 척화토적책(斥和討賊策)을 진언(陳言)하여 크게 참고하게 하였다.
1601년 생원으로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지평·예조좌랑·성균관전적 등을 역임하였으며, 이어 통제영종사관(統制營從事官)으로 선임되어 통제사를 보좌하여 백성을 구휼하였으며 전비를 강화하는 데 공이 컸다.
다시 내직으로 들어와 춘추관기사관·세자시강원사서·정언·지평 등 요직을 역임하면서 직언으로 시사를 바로 잡았으나, 광해군대에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관직에서 물러나 후생교육에 힘썼다.
그 뒤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후에 다시 벼슬길에 나가 병조정랑·예천군수 등 내외직을 역임 하였으며, 정경세(鄭經世)·장현광(張顯光) 등과 친교가 두터웠고 저서로는 "서담집"이 있다.
군위가 고향인 조선 중기의 문신 서담 홍위 선생의 고향에 와서 머물며 말년을 보낸 양암정을 둘러봤다...
양암정을 나와
양암정과 10분 거리의 사과연구소 안에 있는 경북유형문화재 제222호인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둘러보러 했으나
코로나로 사과연구소 출입을 막아서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보지 못하고
광석재와 양암정만 들러본 후 40여분을 달려 엄마 산소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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