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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군위 북산서원(경북 군위군 군위읍 대북길 207-3, 대북리 370)
    여행방/경상도 2021. 11. 22. 09:59

    군위 북산서원

     

    2021.     11.    22. 

       

    2016.   11.   23. 06 : 06에 오늘의 나로 키워 주신 울 친정엄마가 세상과 이별하셨다 .........

     

    2021.   11.   23일이  다섯번째 엄마 제사인데 수도권의 동생들이랑 오빠와 아버지는 서울 오빠집에 엄마제사 참석하기로 하고 11. 20. 오늘 대구 여동생이랑 나는 고향 동네 엄마산소에서 엄마를 뵙기로 해서 여동생이랑 모이기로 한 날,   일찍 출발해서 산소 가기 전에  포항에서 1:40여분을 달려 군위 북부지역인 소보면의  사람들이 별로 찾지 않는 문화재를 찾아서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214호인 광석재,  15분 거리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16호양암정,  10분 거리의 사과연구소 안에 있는 경북유형문화재 제222호인 위성리 석조약사여래입상을 둘러보러 했으나  코로나로 사과연구소 출입을 막아 보지 못하고  광석재와 양암정만 들러본 후 동생과 시간 마추어 11:00  가까이 도착한 엄마 산소 옆의 할아버지. 할머니께 인사드리고 그리고 친정 엄마께도 인사드린다.   그리고 안계 식당에서 맛있는 점심 같이 먹으며 편안히 쉬다가 14:00에  떠나 각자의 곳으로 돌아가며  나는 다시 군위군 읍내의  북산서원과 5분거리의 남계서원. 10분거리의 군위향교를  바삐 둘러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늘 세번째  여행지는  동생과 헤어진 후 30여분을 달려 군위 북산서원에 도착한다... 

     

     

     

     

    네비로 북산서원을 치고 오는데 길을 잘못 찾아 한참 돌다가 겨우 입구를 찾아 들어서니 산길로 가라한다...

     

     

     

     

    산길을 조금 오르니 군위읍에 이런동네가 있나 싶을 정도로 멋진 절강 장씨 집성촌 경상북도 군위읍 대북리 전경을 만난다...

     

     

     

     

    서원 마당 앞 외삼문에서 정면으로 담은 北山書阮(북산서원)

     

     

     

     

    북산서원  마당 우측 한쪽에 자리한  장해진선생과 정부인 의령남씨 묘비

     

     

     

     

    여느 사원과 마찬가지로 외삼문이 굳게 잠겨 있어 담장 너머로 서원을 기웃거려 본다...

    북산서원은 절강 장씨 (浙江張氏)의 시조 (始祖) 장해빈(張海濱)을 봉향하고 있다.   1684년 창건하였으며 건물은 총 6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군위에 정착하여 세거해 온 절강 장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장해빈은 중국 항주 (抗州) 조강현(鳥江懸) 출신으로 조선 선조 정유재란 때 장수로 와서 귀화한 뒤 군위에 정착, 세거(世居)하였다.

     

     

     

     

    외삼문 제사에 쓸 제수를 보관해 두는  곳 그리고 북삼서원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으로 팔작지붕에 민도리 형식이며,  좌우로 한 칸씩 협실을 두고,   정면에는 누마루를 두었다.   강당 앞 우측에는 장해빈의 신도비가 자리하고 있다.

     

     

     

     

    강당에는 ‘북산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장해빈 신도비

     

     

     

     

    장해빈은 절강 장씨의 시조이자, 군위 입향조이다.

    명나라 항주도 금화부 오강현(烏江縣)에서 태어나 23세 때 정유재란에 조선 지원군 장수로 참전한 뒤 명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군위에 남아 정착하였다.   조정에서 혜민서 참봉과 율봉도 찰방을 제수했으나 사양하며 나가지 않았다.   고국을 그리며 뒷산에 대명단을 쌓고 황제 기일에는 서쪽을 향해 절했다고 한다.   사후 1751년(영조 27)에 왕명으로 후손들의 부역이 면제되었으며,  1892년(고종 29)에 가선대부 병조참판 겸동지의금부훈련원사에 증직되고, 부인 의령남씨는 정부인으로 추증되었다.

     

     

     

     

     절강장씨 시조이자 군위 입향조 장해빈이 심은 것으로 전해지는  회화나무가 현존하고 있다.

     

     

     

     

    강당 북측에 2개의 사당이 병렬로 위치하고 있다.   작은 사당에는 편액이 없고,   우측의 그보다 큰 사당에는 ‘경화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경화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맞배지붕에 이익공양식을 취하고 있다.   

     

     

     

     

    서측 편에 있는 작은 사당은 정면 1칸,  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맞배지붕에 풍판을 설치하였으며 민도리형식이다.

     

     

     

     

    북산서원 관련 기록으로는 전 혜능참봉(前惠陵參奉) 이중철(李中轍)이 지은 「북산서원신도비명(北山書院 神道碑銘)」이 있다.   경화사에 장해빈의 위패를 봉안할 때 이휘령(李彙寧)이 지은 「경화사장공봉안문(景華祠張公奉安文)」과 「상향축문(常享祝文)」은 『고계집(古溪集)』에 수록되어 있다.

     

    삼십년간풍이토(三十年間風異土)에

    팔천리외월동휘(八千里外月同輝)라

    화음이변명구폐(華音已變明裘弊)하니

    수식양강구포의(誰識楊江舊布衣)오

     

    삼십년간이나 이역 땅에서 세월만 보냈는데

    팔 천리나 떨어진 저 달빛은 한결같이 다 같구나

    고향나라 소식도 끊어지고 고향의 의복 풍속 다 변했으니

    돌아간들 그 누가 나를 절강 사람으로 알아주리오.

     

     

     

     

     

     

     

     

     

    시조이자 입향조를 제향하기 위해 절강 장씨들의 집성촌에 건립한 조선 후기 문중서원의 대표적인 사례이자 동시에 명나라사람으로 조선에 정착한 귀화인을 제향한 조선시대 흔치 않은 서원의 하나이다.

     

     

     

    명나라 사람으로 조선에 정착한 귀화인을 제향한 조선시대 흔치 않은 서원의 하나인 북산서원을 충분히 돌아본 후 승용차로 5분 거리에 있는 오늘 네번째 여행지인 남계서원으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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