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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흥사(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사찰여행/경상도 2019. 10. 28. 19:46
경남 고성 운흥사
2019. 10. 27.
2019. 10. 28. 108순레단 '달마야 놀자' 와 함께한 10월 사찰 순례는 경남 고성의 운흥사, 보현암, 문수암, 옥천사로 오늘은 경남 고성의 사찰 길 여행이다..........
오늘 첫번째 여행지 경남 고성의 운흥사 이다...
포항에서 경남 고성으로 향하다가 들러본 거창휴게소이다...
거창을 지나...
진주도 지나 고성으로 접어든다...
운흥사로 들어가는 호젓한 산길을 지나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 441번지 운흥사로 들어가는 입구의 운흥사 주차장 도착이다.
당시 절의 규모는 현존하는 산내암자인 천진암과 낙서암을 비롯하여 아홉군데의 암자가 있었고 곳곳에 남아있는 절터와 대형 멧돌 그리고 전방 1km 떨어진 언덕에 고승들의 사리가 안장되어 있는 부도가 있는 것으로 미루어 보아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되고, 임진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효종 2년(1651년)에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새로 불사된 일주문 아래를 지나니
길 옆에는 부지런한 동백이 벌써 꽃망울을 피우고 있었다...
절집 주차장에서 운흥사로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에는 오래된 벚나무가 있어 봄에 오면 꽃비가 내리는 풍경을 만날수 있을테지?....
운흥사 보광전 주변의 가을 풍경은 바라볼수록 아늑하기만 하다.
적벽 위에 세워진 운흥사 보제루
육중한 석벽 위에 정면 7칸의 보제루가 웅장하게 서 있었다. 보제루는 절에 따라 만세루·구광루라고도 하나, ‘두루 모든 중생을 제도한다’는 뜻에서 ‘보제루’라는 명칭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보제루 아래에는 이렇게 계단이 있다.
이 계단을 올라가기 전에 고개를 들면 바로 이런 풍경이 반긴다.
근래에 조성된 삼층석탑 위로 대웅전이 보인다.
보제루는 운흥사의 중심 불전인 대웅전의 정면에 위치하고 있어 대체로 모든 법요식은 보제루에서 행하고 있다.
‘보제루’편액은 쌍계사 총림 방장이신 고산스님의 필적이다.
보제루에서 바라본 운흥사 전경이다...
운흥사(雲興寺)는 경남 고성군 하이면 와룡리 와룡산(臥龍山) 자락의 향로봉 중턱에 위치한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로 신라 문무왕 16년(676년)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
일설에는 고려 충정왕 2년(1350년)에 창건되었다고도 한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유정(惟政)이 6천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이곳에서 왜군과 싸웠다. 또 이 때 이순신이 작전을 세우기 위해 이곳을 세 번이나 방문했다고 한다.
왜군이 불을 질러 모두 불에 탄 것을 1651년(효종 2년) 법성(法性)이 중창하였다.
.대웅전과 일직선상의 근래에 조성한 삼층석탑
중심으로 대웅전을 바라보며 왼쪽의 범종루는 법고.범종.목어.운판 등 사물을 모신 전각으로 범종루 뒤편 향로봉 자락이 멋지다.
범종루에서 바라본 보제루
범종루 편액의 관자를 보면‘三神山人果山’이라고 기록하고 있어서 이 편액도 쌍계총림 방장이신 고산스님이 남긴 필적이다.
범종루의 범종과 법고
년에 만든 범종이 있었으나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밀반출되었다고 한다..
목어
범종루 처마 공포가 참으로 근사하다.
범종각 뒤로 운흥사를 안고 있는 향로봉(해발 579m)이 지척에 있다. ‘고성의 겉살과 속살을 찾아서’(고성문화원 발행)에 따르면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고문헌에 향로봉의 지명은 용이 굽이쳐 누운 것으로 보인다 해서 와룡산이었다고 기록돼 있는데 일제강점기인 1918년 3월 30일 발행한 지도에 운흥사 아래 와룡마을 이름은 그대로 두고 와룡산만 향로봉으로 바꾸었다고 했다. 향로봉의 지명을 원래 이름인 와룡산으로 바꾸는 것이 진정한 일제 잔재 청산 작업이라고 했다.
중정을 중심으로 대웅전을 바라보며 우측에 위치한 요사채와 대웅전 일직선상의 보제루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요사와 보제루
범종각에서 바라본 요사와 삼층석탑 그리고 보제루
운흥사 대웅전으로 오르는 돌계단을 다리 아플 만큼 올라 가야한다.
보제루 마당에서 대웅전으로 오른다...
보제루 정면에 묵직한 풍채의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다포형식의 대웅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석탑과 보제루
운흥사 '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
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건물로 크기에 비해 기둥이 대단히 높아 건물이 실제보다 더 커 보인다.
기둥은 민흘림과 배흘림이 섞여 있는데 배흘림기둥은 굵기나 곡선의 비율이 안정되어 있어 아름답다.
건물의 장식은 단순하게 처리했지만 장식물의 간격이 일정하고 기둥과도 적절히 조화를 이루고 있다.
운흥사는 비교적 인적이 드문 와룡산 깊은 산중에 자리하고 있는 까닭에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병 6,000명을 이끌고 왜적과 싸운 곳이기도 하다.
내부의 모습은 외부에 비해 훨씬 화려한데 중앙을 향해 피어오르듯 처리한 장식은 미려함을 더해준다.
대웅전 안에 모셔진 삼존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을 봉안하였다.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는 약사여래와 아미타부처님을 봉안하였다.
대웅전 중앙의 석가여래부처님과 후불탱화 영산회상탱, 후불탱화인 영산회상탱은 근래에 그린 것이다.
운흥사 대웅전의 아미타부처님과 후불탱인 아미타불회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7호)
대웅전의 아미타탱과 약사탱은 사본이며 진본은 하동 쌍계사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대웅전의 아미타탱은 서방 극락세계를 주관하는 아미타부처를 묘사한 탱화로, 화면 가운데 주불인 아미타부처를 크게 배치하였다. 아미타불은 양어깨를 모두 덮고 있는 옷을 입고, 오른발을 왼무릎에 얹고 있는 길상좌(吉祥坐) 모습이다. 그림의 맨 위부분에는 아미타부처의 말씀을 듣기 위해 모인 여러 성중(聖衆)의 무리가 표현되어 있으며 그 아래로는 흰옷(白衣)을 걸친 관세음보살을 위시한 아미타 8대 보살과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상이 있다.
운흥사 대웅전 약사여래와 약사탱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8호)
대웅전의 아미타탱과 약사탱은 사본이며 진본은 하동 쌍계사 박물관에 소장하고 있다.
운흥사 약사탱은 왼손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 약사부처를 가운데에 크게 배치하고, 약사부처 주위로는 맨 윗부분에 팔부신중을, 그 아래로는 머리에 화려한 보관을 쓴 보살들을 그렸다. 그리고 화면의 맨 아래 부분에는 좌우로 각각 2분씩 불법을 지키는 사천왕상이 배치되어 있다. 연꽃대좌에 앉아 있는 약사부처는 양 어깨를 모두 감싼 옷을 입고 오른 발을 왼무릎에 올려놓은 길상좌(吉祥坐)의 자세로 큼직한 키모양 광배를 갖추고 있다.
부처가 거처한다는 수미단을 상징하는 불단 위에는 각각의 닫집을 씌움으로써 신성성을 더해주고 있다.
운흥사는 17세기의 유명한 금어(金漁 :불화를 그리는 스님)인 의겸스님이 이곳에 머무르면서 작품활동을 하였으며 제자들을 길렀으므로 당시 최대의 금어 양성소로 이름을 날렸다고 한다.
운흥사에는 의겸스님이 그린 여러점의 고급 불화가 남아 있다고 한다. 대웅전 안에 미타탱화, 약사탱화, 감로탱화, 관음수월도가 있다.
법당의 불단과 대좌(佛壇과 臺座)
불단(佛壇) 상단(上檀), 수미단(須彌壇) 위에는 대좌를 올려놓고 불보살을 안치하고 대좌 앞에는 향로, 촛대, 화병, 화방(花枋) 즉 願牌, 佛名牌, 殿牌, 疎筒, 위패 등이 놓인다.대좌 즉 須彌壇은 獅子座, 蓮花 座(불, 보살), 荷葉座(아라한), 巖座(인왕. 팔부중), 生靈座(사천왕) 등이 있다.
운흥사 원패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289호)
원패(願牌)는 왕실의 수명장수를 기원하는 기원패로서 왕의 패 (主上殿下壽萬歲), 왕비의 패 (王妃殿下壽齊年), 세자의 패 ( 世子低下壽千秋) 모두 3점이다.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왕의 패에는 황룡을 새기고, 왕비의 패에는 봉황과 구름무늬를 새겼으며, 세자의 패에는 용과 새의 무늬를 새겨 놓았다. 섬세한 조각이나 정교한 문양을 새긴 기법과 장식적인 면에서 조선후기 불교예술의 우수성을 엿 볼수 있다.
천장은 층급을 두고 중앙을 높게 처리함으로써 거대한 공간감을 느끼게 하였다.
수미단에는 수미산을 상징하는 도상들과 문양이 등장하는데 장방형의 가구 모양으로 직사강형의 칸 속에 연화문(굴마라. 분타리. 가마라), 모란, 국화, 안상문, 운문, 만자문, 각양 각색의 꽃, 당초문, 九山八海를 상징하는 날짐승(오리. 학 등)과 사자, 호랑이, 코끼리, 사슴, 담비 등의 동물들, 물고기, 가재, 게, 거북, 개구리, 잠자리와 상상의 동물인 용과 봉황, 아미타어(人頭魚身), 가릉빈가, 스님과 동자, 동자집연경, 천리마, 비천상과 도깨비 형상 등이 나타난다.
게는 집착을 버리라는, 새우는 백년해로 장수를 상징하는듯...
수미산을 상징하는 도상들과 문양으로 동자는 노승에게 공양물을 올리고 호랑이는 소나무 뒤에서 놀고 소년은 엎드려 잠자고 있다.
모란잎 위에 개구리가 앉아 놀고 동자는 옆구리에 망태기를 차고 오른손에는 모란줄기를 잡고 왼손위에는 잠자리가 놀고 있다
풍성한 포도송이는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듯... 물고기는 정진을 ~
동진보살과 예적금강이 함께 그려진 신중탱
신중탱 안쪽의 칠성탱
향 불단 우측의 전경이다...
대웅전 마루는 마루 틀을 짜고 그 사이에 넓은 널을 짧게 잘라 끼운 우물마루는 소박하면서도 고급스런 분위기를 자아낸다.
전체적으로 보아 이 대웅전은 조선 후기 다포계 맞배집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다.
대웅전 내부 향 불단 우측으로는 독성탱. 수월관음도· 감로탱화가 차례로 있다.
운흥사 감로탱화(雲興寺甘露幀畵)-(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56)
운흥사 대웅전 감로탱화는 조선 중기 이후에 불화를 잘 그리기로 이름난 의겸이 그린 것으로 보아지며 당시 일반인들의 생활상이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효(孝) 사상과 결합하여 크게 성행한 감로탱화는 조상의 극락왕생을 위해 그린 불교그림으로, 부처를 극진히 대접하여 조상의 영혼이 지옥세계로부터 구제되기를 간절하게 기원하는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은 크게 세부분으로 표현되었다. 그림의 맨 윗부분에는 불·보살의 모습이 표현되었고, 중간에는 부처님께 올리는 여러가지 음식을 차려 놓은 성반(盛飯)이 마련되어 있으며, 그 아래에는 먹지 못해 고통받는 아귀왕과 함께 지옥장면, 싸우는 모습, 형틀에 묶여있는 모습, 광대패놀이, 호랑이에게 쫓기는 모습 등등 인간이 그 업보에 따라 겪게 되는 갖가지 장면들이 묘사되어 있다.
감로탱화는 아래 부분에 당시의 풍속을 살펴볼 수 있는 그림이 있어 당시 사회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운흥사 수월관음보살도 (보물 제 1694호)
고성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1730(영조 6)년 조선후기에 의겸이란 수화승이 이곳 운흥사를 맡아서 삼세불도와 삼장보살도를 함꼐 제작할때 같이 제작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한다. 이 불화를 조성 할 때는 행종과 채인이 함꼐 참여하였다고 한다. 이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보타락가산에 유희좌 자세로 앉아 있는 관음보살로써 화면하단에는 용녀와 용왕이 등장하는 등 머리에 입상의 화불을 모신 보관을 쓴 관음보살은 오른손으로 바위를 짚고 왼손에 무릎에 올렸고 변형된 유희좌의 자세로 암반위에 앉아있는 형상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 그림 화면 좌측에는 선재동자가 있고 이 우측에는영의주를 받는 용녀와 용왕이 함께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관음보살도는 18~19세기에 벽화로 그려진 수월관음도 도상으로 이어진다. 이 고성 운흥사 관음보살도는 수묵담채풍이 잘 드러나고 있으면서 처다 보면 처다 볼수록 차분해지는 그런 그림이다.
삼베에 채색, 크기 292 x 206 cm, 조선후기 관세음보살도 작품 중, 최고의 품격을 자랑하는 수작으로 손꼽힌다. 관세음보살의 자비가 섬세하고도 화려한 필치로 구현되었다. 1998년에 새로운 것으로 바꾸어 걸었다.
독성탱
운흥사 목판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184호)
경남 고성군에 있는 운흥사는 모두 16종 194판의 불교관련 문헌 목판을 소장하고 있다. 이 목판들은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초에 새겨진 것들로 대승경전과 불교의식관련 문헌들이다. 이 가운데 정토신앙의 근본경전인 아미타경은 세조 10년(1464)에 간경도감에서 간행된 것을 숙종 28년(1702)에 다시 그대로 새겨 간행한 복간본이다. 거의 대부분의 판들이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어 조선 후기 절의 목판인쇄문화와 운흥사의 격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대웅전 뒤벽에 걸려있는 궤
괘불탱을 넣어두는 궤는 대웅전의 뒤벽에 걸려 있는데 대웅전의 뒤편에 문을 달아둔 것은 이 궤를 운반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괘불궤는 운흥사 영산회상 궤불탱을 담았던 보관함이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세 번이나 본국으로 가져가려다가 심한 풍랑으로 가져가지 못했다고 한다.
뒷면에 휴정과 유정의 진언(眞言), 영조의 어인(御印)이 새겨져 있다.
괘불을 보관하는 궤는 뚜껑 윗부분 일부가 결손된 것 외에는 보존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괘불탱 조성 1년 뒤인 조선 영조 7년(1731)에 만들어진 이 궤는 '만·왕·십자(卍·王·十字) 및 범자(梵字)' 무늬가 투각되어 있는 궤 부착의 정교하고 다양한 형태의 금속장식 또한 보기 드문 예로 당시의 금속공예 연구에 귀중한 예라 할 수 있다.
운흥사 영산회상 궤불탱 및 궤(보물1317호)
입상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여러 존상을 화면 가득 그린 영산회괘불탱은 본존불을 화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리고 그 양옆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배치했다. 화면 상단에는 관음보살과 세지보살, 2구의 타방불이 자리했다. 이 괘불탱은 조선 영조 6년 (1730년)에 승려화가 의겸(義謙) 등 20명이 그린 불화로서 가로 768㎝, 세로 1,136㎝에 이르는 대작이다. 신체 비례가 적당한 인물의 형태와 이목구비의 표현, 조화롭고 밝은 색채의 사용, 세련된 필치의 화려하고 정교하고 다양한 문양, 주된 인물을 중앙에 크게 그린 다음 기타 인물을 뒤로 물러나게 배치하는 구도법 등은 의겸의 특징적인 표현수법으로서, 국보급 탱화와 비교해 봐도 손색이 없다.
대웅전 옆 출입문 입구 풍경
운흥사 대웅전 문살
운흥사 '대웅전(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82호)'
향로봉이 시원스레 조망된다.
향 대웅전 우측으로는 명부전이 있다.
운흥사 명부전은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조선시대 건출물로 대웅전 옆에 자리한다.
명부전 목조조각상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88호)
안에는 조선시대 후기에 조성한 지장보살좌상을 중심으로 목조상으로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리고 시왕상 10위 등이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목조로 만들었다.
시왕은 삼존의 양 옆으로 나란히 배치되어 있는데, 그 사이사이로 판관, 녹사, 시자, 금강역사상 및 동자상 각 2위 등이 있다. 이 명부전 조각상들은 조선시대 후기의 양식을 잘 간직하고 있다.
도명존자는 지옥보살의 지팡이를 들고 있고 무독귀왕은 문관 차림이다.
산신각에서 바라본 명부전
명부전 앞 소대
운흥사 산신각은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이 뒤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운흥사 산신각내 산신탱
산신각으로 오르는 계단 옆의 석비
산신각에서 바라본 석탑과 보제루
향 대웅전 좌측의 인법당 형식으로 되어 있는 운흥사 '보광전’편액이 걸려있는 요사채는 보수 중이었다.
보광전 옆의 수조
영산전 오르는 계단옆의 대형 맷돌로 미루어 보아 운흥사가 예전에는 상당한 규모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영산전 앞의 괘불대, 이곳 괘불대에 영산회상도를 걸고 임진왜란 때 산화한 승병과 의병의 명복을 비는 영산재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고 한다.
운흥사 '영산전(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147호)'
영산전은 조선 영조7년(1731)에 중건된 것이라고 한다.
영산전에서 임진왜란 때 산화한 승병과 의병의 명복을 비는 영산재를 매년 거행하고 있다고 한다.
운흥사 영산전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를 하고 들보5량으로 조성된 겹처마 맞배지붕의 조선시대 목조건물이다.
정면 가운데 칸은 좌우 협칸 보다 넓게 만들어 쌍여닫이 빗살창과 띠살창을 달아 대칭적이게 하였다.
영산전(靈山殿) 편액 글씨 왼쪽에 1753년(영조 29)에 해당하는 ‘건륭18년’ 글씨가 적혀 있어 이 때 처음 지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안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 석가여래삼존상(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불)을 봉안하고 석가여래삼존상 뒤로 최근에 조성한 후불탱이 있다.
안에는 최근에 조성한 금동 석가여래삼존상(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제화갈라보살과 미륵불)을 봉안하고 16나한이 좌우에 봉안되어 있다.
부처님을 모시는 뛰어난 16명의 제자들이 있어 이들을 16나한이라고 한다. 나한전은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좌우로 16나한이 자유자재한 형상으로 배치되어 있다.
건물의 천정은 가운데를 높이고 하나의 우물천정을 조성하였으며 바닥은 우물마루를 깔았다.
전체적으로 아담하고 단정한 모습인데, 조선시대 후기에 지어졌다가 최근에는 1936년에 중건되었다.
협칸 창호가 빗살과 띠살이다.
영산전에서 바라본 대웅전
영산전 옆 한 켠에 옹기 종기 장독대가 넘 보기 좋아서 한 컷 ~
영산전 한쪽 옆 보광전 뒤편에 자리잡은 정갈하고 소담스런 장독대의 모습이다. 돌담이 동그랗게 둘러쳐저 있는 원형 장독대는 돌과 황토를 층층이 쌓아올린 후 기와를 덮었다. 자연과의 조화를 바탕으로한 원형 장독대는 향토적 서정성이 담긴 공간을 보여주고 있다. 층층이 쌓아올린 이 장독대는 사찰의 생활문화를 한눈에 살펴볼수 있는 좋은 문화유산이라 생각된다.
장독대 앞의 보수중인 보광전의 후면
장독대 앞의 오래된 아카시아나무
다시 대웅전 마당으로 내려서서
돌계단을 내려가서 보재루 마당으로 향한다.
보제루 아래로 내려서니 서늘한 가을 바람이 불어온다.
봄에는 아름다운 꽃이 피었을 것이며, 여름에는 매미들의 쉼터인 푸르름이 그리고 가을에는 멋스러운 단풍이었을 ~ ~
앙상한 가을나무 사이로 하나씩 둘씩 돌계단을 내려가며 아름다웠던 날들을 상상해본다.
성급한 동백도 안녕 ~
새로 불사된 일주문을 지난다.
운흥사 산내 암자로는 절에서 와룡산 정상쪽으로 300m 떨어진 곳에 천진암이 있고, 천진암에서 200m 위쪽에 낙서암이 있다.
운흥사를 나서니 하이저수지가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는데 이 시골에도 저수지에 태양열지열판을 설치해 놀았다.
운흥사에서 내려가는 호젓한 산길이다
내가 본 운흥사는 어느 시골집의 풍경을 보듯 졍겨움이 묻어 나던 곳이였다.
옹기 종기 장독대... 주변의 경치...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마다 모두 운치가 있을 듯 ~
이제 운흥사를 나와 인근의 보현암과 문수암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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