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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깊은 산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사찰, 옥련사(의성군 안평면 옥련사길 130, 의성군 안평면 삼춘리 1011
    사찰여행/경상도 2019. 8. 22. 11:16

    깊은 산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사찰, 옥련사

      

      

    2019.     8.    22. 

      

      

    2019.   8.   20.  한국불교대 도반과 함께 경북 의성군의 오지 지역인 안사면의 지장사,  안평면의 옥련사와 운림사 그리고 인근의 누룩바위와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을 보고 의성읍을 지나 금성면으로 이동하여 의성조문국 박물관과 조문국 사적지. 문익점 면작 기념비 등을   바삐 둘러볼수 있는 경북 의성 오지 지역 여행 시간이었다... 

      

    오늘 첫번째 여행지인 경북 의성군의 오지 지역인 안사면의 왕실과의 인연이 많은 사찰, 지장사를 보고 나와서  40여분을 달려 두번째 여행지인  안평면의 옥련사 극락보전에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5호인 옥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만나러  향해본다....

      




    옥련사는 삼춘리 절골 마을에서 서쪽으로 난 골짜기를 따라 1정도 올라가면 사곡지라고 불리는 작은 저수지의 상부에 자리 잡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평면 삼춘리 봉두산(鳳頭山)에 자리한 깊은 산골짜기에 자리 잡은 옥련사란 이름은 사찰 아래에 있는 연못에서 연꽃이 구슬과 같이 아름답게 피어난다고 한데서 유래한 것이다.


    연못은 지금도 여전히 아름답다. 둑에 올라 바라보면, 양옆으로 산자락을 끼고 세모꼴로 모여 있는 물은 맨 위 뾰족한 자리에 옥련사를 모시고 있다. 옥련사 절집 너머로 머리를 드러낸 천등산 정상도 물에 제 모습을 고스란히 비추고 있고, 푸른 하늘을 둥둥 떠가던 하얀 구름들도 목이 마른지 연못 속에 풍덩 뛰어들었다.





    옥련사 입구 주차장 앞에 저수지가 있다.











    수지와 경계를 이루는 위쪽에 10여대를 주차할수 있는 주차장이 있다.


    주차장 한켠에 있는 해우소는 2016년 최근에 지었고 내부는 완전 현대식으로 되어 있고 실내화를 신고 들어가도록 되어 있다. 내부에 수전이 없고 외부에 세면기가 설치되어 있다.외부에 설치된 세면기는 온도조절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주차장 한쪽의 옥련사 사적 우전기 불사기념비와 옥련사 중건 기념비





    절 입구에는 큼직한 자연석을 다듬어 만든 맷돌이 온전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곡식을 타고 콩을 타서 많은 대중들의 공양 준비에 일조를 했을 맷돌은 이제 할 일이 없어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내쳐진 지가 이미 오래되었다.










     

    옥련사(玉蓮寺)는 경북 의성의 봉두산(鳳頭山)에 남쪽에 자리한 대한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의 말사이다.
    옥련사의 창건연혁에 대해서는 초창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대사가 주월사, 운람사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하는 설과 신라 흥덕왕 때(826~836) 덕운(德雲) 스님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구체적인 근거는 없다.

     

    고려시대에 들어서는 제법 규모가 큰 사찰로 발전하였는데, 고려 공민왕편조(遍照)가 중창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605(선조 38)에 옥건(玉虔)이 삼창했다. 1661(현종 2)1935년에 극락전을 각각 중건하고, 1980년과 1993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1997년에 요사를 신축했고, 근래에는 삼성각과 고불전을 신축했다.







     

    작고 아담한 옥련사 전경





    절 마당으로 들어오는 순간, '옥련사는 8월 말쯤 지금에 와서 보아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조금 전 연못 물속에서 본 구름처럼 뭉게뭉게 피어오른다꿈틀거리는 용처럼 힘차게 가지들을 내뻗은 채 극락전 앞에 좌우로 서 있는 배롱나무 때문이다....





    1997년 요사를 지으며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요사의 좌측 현판에는 快活(쾌활)’이란 추사의 모사글씨가 걸려 있다. 왜 이곳에 추사체가 걸려 있는지 이유는 모르지만 자주 보던 글씨체라 왠지 쉽게 알 수 있다.





    옥련사 종무소





    경내에는 5층 석탑과 극락전, 삼성각, 고불전, 종무소, 요사채 등의 전각이 있다.





    옥련사 오층석탑은 극락전 앞에 있다.

    5층으로 건립된 석탑은 건립된 시기는 미상이지만 전반적인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서는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총 높이는 각종 부재를 포함해 370cm이다.

    2층 기단 위에 4층 탑신부가 있고, 상륜부에는 석등, 하대석 등을 얹어 놓았다. 2층과 3층의 옥신석은 새 돌로 사각형의 자연석을 만들어 복원하였다. 옥개석들도 모두 하나의 석탑에서 수습된 부재는 아닌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비례대칭이 맞지 않는 점 때문에 아마 오층탑이었거나 두 개의 탑을 조합하여 부재의 빠진 부분을 추가해 하나의 탑으로 조립한 것으로 추정된다, 탑구(塔區)의 흔적도 보이고, 기단 갑석이 빈약하여 불균형의 엉성함도 역시 보인다. 허나 석공들의 간절한 불심만은 오랜 세월의 나이와 함께 촘촘히 이끼에 진하게 묻어 있을 뿐이다.
    이 탑의 건립 연대는 알 수 없지만 옥개석 층급 받침이 모두 3단으로 되어 있는 점 등으로 보아 신라 말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본다.











    옥련사 극락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며 기둥은 중간 부분이 굵고 불룩하게 나온 배흘림 기둥을 하고 있는 목조건물로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이라고 한다.





    극락으로 인도하는 아미타불을 모신'극락전'





    서방세계(西方世界)를 관장한다는 극락전(極樂展)은 이곳 옥련사(玉蓮寺)의 중심 전각이다사후세계의 영역이라 푸른색으로 단청을 주로 하기 때문에 조금 경건함이 묵시적으로 내재되어 있다.








    옥련사에서 가장 중심을 이루는 건물은 바로 극락전이다. 극락전에는 서방 극락세계를 주관하시는 아미타부처님을 봉안한 곳으로, 이 건물은 높이 7m, 폭이 6m인 목조와가가 특징이다. 건물의 중간부분이 굵고 불룩하게 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건축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옥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5)


    극락전 내부에는 주존불인 의성 옥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義城玉蓮寺木造阿彌陀如來坐像)이 모셔져 있다. 옥련사(玉蓮寺)에서는 유일하게 문화재로 지정된 유물로서 높이 132cm, 좌우 무릎 폭이 93cm로 곡선미 있는 신체에 통통하게 살이 오른 모습이며 신체가 풍만하고 표정이 부드러우며 전법륜인의 수인 등을 미루어 볼 때 조선시대의 불상 양식으로 짐작할 수 있다.








    삼춘리 옥련사 석불 좌상1961년에 개금하였으며, 대좌는 개금하면서 제작되었다. 전체 높이는 98이고, 앙련 연화 좌대 높이는 30, 복련 연화 좌대 높이는 17이다. 앙련과 복련의 8각 연화 좌대가 간주석 없이 아래위로 포개어 놓은 상면에 봉안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조성된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이 후면에는 1791(정조 15)에 제작된 후불탱화가 있었는데 1998년에 도난당해 현재는 새로운 후불탱화를 모셔 놓았다.








    불단도 장엄하다...





    목조 아미타여래 좌상이 후벽 뒤쪽모습이다.





    1819(순조 19)에 제작된 신장 탱화가 모셔져 있다.














    지장탱화











    특히 내부 천장 그림이 뛰어나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내부의 천장에 그려진 용()과 봉황그림, 들보의 외눈박이 황룡(黃龍)과 눈알이 튀어나와 검은 줄에 붙은 청색 잉어 그림은 다른 사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독특한 것이다.













    극락전 내부 벽화








    극락전 문살





    소종








    옥련사는 비구니 수행 도량으로 승려 1명과 신도 70여명이 있으며 신도회를 조직하여 신행 및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깊은 산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사찰, 옥련사







     

    고불전


    극락전(極樂殿) 옆에 자그마한 전각 고불전(古佛殿)이 있는데 고불전은 정면.측면 모두 1칸의 맞배지붕건물이다.








    극락전(極樂殿) 옆에 자그마한 전각 고불전(古佛殿)에는 일명 미륵불(彌勒佛)이라 부르는 보살을 모셔 놓고 있는데 수인(手印)을 보면 비로자나불 같기도 하다.




     

    마모가 심해 정확하게 지칭 할 수가 없지만 조성 당시에는 아마 수인(手印)을 강조하여 불상의 성격을 분명하게 하였을 것이다.








    고불전 석불좌상


     고불전 안에 통일신라시대 말에서 고려 초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불이 8각 연화 대좌위에 모셔져 있다. 석불은 미륵불로 추정되며 마모가 심해 얼굴과 목 등의 상호나, 법의나 수인 등 전체적인 형체가 뚜렷하지 않다. 두 손은 가슴 앞에 모아 합장하고 있는 형상이며, 가슴에는 만자문(卍字文)이 새겨져 있다.








    극락전 옆에는 연화좌대 위에 모셔진 돌 불상이 있다.

    미륵불(彌勒佛)이라고 전하는데 언제 어디서 어떻게 조성되어 여기에 봉안되었는지는 모르며, 다만 옛날부터 전해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눈과 코는 흔적만 남아있고 굳게 다문 입술과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합장을 하고 있는 그 모습에서 가련한 중생의 염원이 담겨있는 것 같다.








    연화좌대











    삼성각과 나란한 고불전





    고불전 옆의 삼성각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 화려한 단청이 아주 장엄하다.








    삼성각 안에는 칠성탱을 중심으로 산신과 독성탱을 모시고 있다...





    인자한 산신탱











    극락전 옆에서 바라본 종무소 전각





    2014년 준공한 공양간으로 2층을 요사로 사용하고 있다.





    작은 사찰치고는 아주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어 사찰 자체가 더 한적한 분위기로 느껴진다. 무척 조용한 사찰이다.








    공양간 옆으로 보이는 사곡지







    원나라 승녀 보도(普度)의 염불 중 교리와 문구를 모아 지은 연종보감(蓮宗寶鑑)’에는 연꽃을 '연태' 라고 기록을 하고 있다. 염불로 아미타불의 정토에 왕생하는 사람들은 연꽃 속에서 화생(化生)하는데 8엽 연꽃은 네 부처와 네 보살을 합하여 지칭한다네 부처는 4가지 지혜를 상징하고 네 보살은 사섭 ‘(四攝)  :  보살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행하는 네 가지 기본 행위을 상징한다. 연꽃은 또한 네 가지 덕을 가지고 있다는데 향(), (), (),()이 바로 그것이다.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사찰 옥련사(玉蓮寺).  권치 않아도 가보면 마음 또한 맑아지는 사찰, 조급하게 행동치 않아도 기다림의 미학이 있는 사찰바로 옥련사(玉蓮寺)를 말한다.  











    한쪽 곳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이라야 창건한 지 오래 되었다는 것 말고, 내세울만한 것도 없지만 세상 사람들에게서 잊혀지지 않기를 바라는 소박한 마음으로 짬을 내어 나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기억하건 찾아주건 간에 옥련사(玉蓮寺)는 천년의 기나긴 세월을 지켜왔듯이 오늘도 그곳에 있을 뿐 이다.  


    깊은 산에 자리잡은 고즈넉한 사찰, 옥련사를 뒤로하고 인근의 운람사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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