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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북도 의성군 오지의 왕실과의 인연이 많은 사찰, 지장사(경북 의성군 안사면 월소1길 148, 안사면 월소리 559
    사찰여행/경상도 2019. 8. 21. 09:06

    경상북도 의성군 오지의 왕실과의 인연이 많은 사찰, 지장사

      

      

    2019.     8.    21. 

      

      

    2019.   8.   20.  한국불교대 도반과 함께 경북 의성군의 오지 지역인 안사면의 지장사,  안평면의 옥련사와 운림사 그리고 인근의 누룩바위와 석탑리 방단형 적석탑을 보고 의성읍을 지나 금성면으로 이동하여 의성조문국 박물관과 조문국 사적지. 문익점 면작 기념비 등을   바삐 둘러볼수 있는 경북 의성 오지 지역 여행 시간이었다... 

      

    포항에서 7시에 만나 군위휴게소에 한번 들러 준비해간 아침을 먹고 가장 먼저 경북 의성군의 오지 지역인 안사면의 지장사로 향해본다.


    월소 1리 상월곡(복개) 마을의 서남쪽 끝 부분에는 지장지라는 조그마한 저수지가 있다. 이 저수지의 왼쪽 편으로 난 도로를 따라 골짜기 쪽으로 약 1정도 올라가면 지장사가 있다.






    숙종대왕 친필을 쪼아 만든 지장사표석의 선돌이 선명하게 갈 길을 안내해 준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에 있는 대한 불교 조계종 제16교구 본사 고운사 말사.

    지장사(地藏寺)7세기 경 의상 대사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극락전, 응진전, 의향각, 청풍루, 산신각, 칠성각, 일주문과 10개의 암자를 거느린 대사찰이었다.    이후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알려지지 않는다.





    절집에 오르는 길 양 옆에 서로 마주보며 2기씩 드문드문 서 있는 정겨운 돌탑








    주변의 돌을 그냥 적석(積石)한 것이 아니라 석탑 양식으로 주변의 크고 작은 돌을 탑신과 옥개석으로 구분해 쌓아 절집에 도착할 때까지 길을 안내해 준다.








    이러한 아름다운 풍경이 그 곳에 사는 이를 짐작케 한다....





    1637(인조 15) 세완 대사가 중건하였고, 1652(효종 3)에는 영인 대사가 극락전을 중창하였다.   1666(헌종 7)에 영산전,   1677(숙종 3)에는 청풍루가 중창되었고,   1680년에는 법선이 영산전을 중수했다.   1752(영조 28) 희묵(熙默)이 영산전을 관음전이 있던 자리로 옮겨서 건축했고,  1765년에는 신열(神悅)이 청풍루를 중수하였다.   1838(헌종 4) 성우(性宇)와 영일(永一) 등이 법당과 누각을 중수하였으며,   1847년 영송(影松)이 극락전을 중건하였다.   1861(철종 12)에는 운악(雲岳)이 영각을 세웠고, 1872(고종 9)에 혜운(惠雲)이 응향각을 중창하였다.   1996년에 명부전을 새로 지었다.

    1722(경종 2)에 용안(龍眼성징(性澄)이 작성한 상량문 복장문(腹藏文)에 의하면 그 해에 법선(法禪)[廣湜] 스님이 불화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직지사의 말사였으나 현재는 고운사의 말사이며 지장사에는 승려 2명과 신도 약 200명이 있으며, 신도회를 조직하여 신행과 포교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의향각, 청풍루명부전,   삼성각법당, 요사채선방찻방 등의 전각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성적암과 도장암이 있다.








    지장사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지장사 전경이다...


    지장사는 전하는 사지나 문헌은 전혀 없고 신라 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 전해진다. 절을 둘러 싼 용요산 곳곳에서 출토되는 유적이나 아랫마을에 기왓골(지장사를 지을 때 기와를 굽던 마을)이나 지통골(한지를 만들던 마을)이란 지명을 볼 때 번창했던 가람으로 대중과 선승 선객들의 쌀뜨물이 아래 계곡까지 뿌옇게 내려갔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의 큰 사찰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극락전, 응진전, 명부전, 삼성각 그리고 얼마 전 모셔온 석조 비로자나부처님이 계신 중창할 예정의 허름한 법당과 요사 2동이 현 주지 스님이신 동효 스님의 원력으로 곳곳이 깔끔하게 정비 되고 있었다.





    지장사와 숙종대왕 그리고 왕실과의 인연 


     숙종대왕 친필을 쪼아 만든 지장사표석의 선돌이 선명하게 갈 길을 안내해 주는 지장사는 숙종대왕과 언제 어떻게 인연이 닿았는지 기록이 없어 자세히는 알 수 없다.  1699년 전국적으로 전염병이 돌 때 이곳으로 피했을 것으로 짐작되며 숙종대왕이 다녀간 후 하마비와 어각이 세워졌으나 현재는 하마비만 주차장 입구에 세워져 제 역할을 하고 있다.   1882년 임오군란이 일어나자 명성왕후가 외진 이곳 지장사로 난을 피해있다 무사히 한양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한다.   명성황후의 축원문이 1970년대까지 보관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1715(숙종 41)에 시주(施主)공덕비와 하마비(下馬碑)가 세워졌지만, 지금은 하마비만이 오랜 세월을 지키고 있다.


    1882년 고종의 왕후인 민비가 임오군란(軍亂)을 피해 이곳까지 피난을 왔다가 말이 비석 앞에서 꼼짝을 하지 않자 칼로 말의 목을 베었다는 일화가 남아 있는 하마비도 만만찮은 '역사의 현장'이다.





    연지





    지장사는 지장보살의 원력이 큰 사찰로 인정되어 왕실에서 어려움을 피해 찾을 수 있는 길지의 사찰로 알려진 곳이었다.


    청풍루 누각으로 바로 오를수 있는 길이 마련되지 않아 차도를 따라 올라 요사채 앞쪽으로 진입해야 한다.











    모자 눌러 쓰고 열심히 울력하고 계신 현재 주지 스님께선 얼마 전 허물어져 없어진 청풍루의 복원과 지장사의 옛 구역을 정비하여 사역을 확장하고 옛 부속암자였던 도장암의 귀속을 발원하고 있다.





    절집 바로 앞까지 난 길을 따라 오르면





    공양간과





    감나무아래 잘 정리 된 장독대, 자급자족하고도 남을 텃밭, 그리고 돌확 안으로 꽐꽐 쏟아지는 석간수 한 모금이 감로수가 되어 온갖 세속의 번뇌를 씻어 내린다.




     비구니 스님이 계신 사찰답게 장독대가 윤기가 흐른다.




    장독들이 인상적이다단아한 손길을 느낄 수 있다비구니 스님이 계신 절집은 항상 정갈한 느낌을 많이 받는다. 그래서 기분이 좋다.








    절 곳곳에 남은 석조물들 ~





    공양간 앞에서 내려다본 커다란 나무 두 그루가 지장사의 일주문처럼 그렇게 든든하게 서 있었다...








    곳곳이 잘 다듬어진 너무 정갈한 지장사 ~





    지장사에는 이국적인 느낌의 파초가 참 많았다...





    허물어져 없어진 옛 '청풍루'누각을 다시 복원했다고 한다.





    청풍루 누각으로 허물어져 없어진 청풍루 누각을 2010년에 새로 지었는데 건축과정 중 실수로 처마에 현판을 걸 수 있는 공간이 나오지 못했다고 한다.




     

    청풍루 밑을 통해 경내에 오르면





    중앙에  3층 석탑이 있고, 극락보전, 응진전, 비로전, 명부전이 일직선  상에 건축되어 있다.





    통일 신라 시대로 추정되는 3층 석탑








    지장사 삼층 석탑은 지장사 극락보전 앞 마당에 있다. 원래는 지장사 경내에서 조금 떨어진 북쪽 산기슭에 있었으나, 근래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청풍루와 삼층석탑이 참으로 잘 어울린다.








    지장사 극락보전 앞 정료대


    사찰에서 야간 행사가 있을 때 관솔지나 송진 등을 태워 경내를 밝히는 용도로 사용되는 정료대 이다.





    지장사에는 모든 전각문을 활짝 열어 놓고 계신 스님이 늘 절에 계신다.








    지장사 극락보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지장사 극락보전 불단 위에는 18세기 중반에 조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금동 아미타삼존좌상으로 아미타부처님을 주존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협시를 이루고 아미타삼존좌상 뒤로 후불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주존이신 아미타부처님





    불단 위로는 장엄한 닫집과 용 두마리가 부처님을 호위하고 있다...









    지장사 후불 탱화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지장사 대웅전 본존의 후불 탱화로 봉안되어 있다. 하단의 화기(畵記)는 일부 마멸되어 전문(全文)를 알아볼 수 없지만 광서이십갑사월초십일공이십이일점□□봉안우용산지장사연화질□…증명포운(光緖二十甲四月初十一供二十二日點□□奉安于龍山地藏寺緣化秩□…證明抱雲)……라 기록되어 있다. 1894(고종 31)에 제작된 것이며, 광서 20년 다음 판독되지 않는 한자는 갑오(甲午)’을 임을 알 수 있다.

     

    석가모니불 좌우 협시 보살로는 문수, 보현, 지장, 관음 등 4대 보살을 배치하였으며, 석가모니불의 무릎 아래쪽 협시 보살 옆으로는 사천왕(四天王)이 자리하여 주불을 호위하고 있는 구성이다.

     

    지장사 후불 탱화지장사 신중 탱화가 같은 해에 조성된 작품으로 판단된다.





    옆 벽면에는 개항기 신중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지장사 신중 탱화는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인 신중들을 그린 그림이다. 신중탱화는 법당의 중심부에서 좌우측 벽에 봉안되는데, 지장사 극락보전 본존의 왼쪽 방향인 북쪽 벽에 걸려있다. 제석(帝釋), 동진보살(童眞菩薩)을 중심으로 여러 신중(神衆)의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화기의 일부가 소실되긴 했지만 지장사 극락보전에 함께 봉안되어 있는 월소리 지장사 후불 탱화와 동일 연대의 작품으로 판단되고 있어 1894(고종 31)에 조성된 조선 후기 불화임을 알 수 있다.























    1996년에  새로 지은 명부전은 정면 3,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이 법당의 주불은 지장보살이며 그 좌우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협시로 봉안하며








    다시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한다.








    후불탱화로는 지장보살 뒤에 지장탱화를 봉안한다.

















    명부전은 일반적으로 주불전을 향해 우측편에 위치한다.





     

    지장사 응진전은 정면 3,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내부에는 석가여래 좌상과 좌우보처로 문수. 보현. 관세음. 대세지 보살의 4대 보살과








    16나한상이 있다.











    응진전의 고운 꽃살문











    응진전 앞에서 바라본 지장사 전경이다...











    지장사 비로전에는 석조 비로자나불(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76)이 봉안되어 있다.











    경상북도 유형 문화재 제176호인 의성 월소동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義城 月沼洞 石造 毘盧舍那佛 坐像)이 지장사 비로전에 있는데,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쌍호 초등학교가 폐교되면서 옮겨온 것이다.











    의성 월소동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원래 월소리의 진산인 옛 무례산(옛 물안산)의 동남쪽 중턱에 위치한 이름이 전하지 않는 옛 절터에 있었던 것이라고 하나, 지금은 지장사 전각에 봉안되어 있다. 자연적 풍화 및 인위적인 훼손까지 더해져 불상의 얼굴은 이목구비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마멸되었고, 세부적인 표면 조각도 많이 마모된 상태이다. 두 손을 가슴 앞에 모아 왼손의 검지를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있는 지권인(智拳印)의 수인(手印)을 하고 있어 비로자나불임을 알 수 있다.

     







    의성 월소동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은 불상의 비례나 얼굴 표현, 투박한 옷 주름, 사각형 대좌의 도식화된 연꽃 무늬 등으로 보아 고려 시대 불상으로 추정된다.








    비로전 문살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비로전 앞에서 바라본 지장사 삼성각이다...





    지장사 삼성각은 정면 2, 측면 1, 맞배지붕 건물이다.








    삼성각 내부는 칠성탱을 중심으로 산신과 독성탱을 봉안하고 있다.








    삼성각 내부벽화








    삼성각 외부벽화











    다시 삼성각에서 지장사 본당쪽으로 내려간다...








    선방인 심정당(心淨堂), 마음이 깨끗한 집...








    찻방


    지장사의 찻방으로 이용되는 전각에는 숙종의 친필 지장사(地藏寺)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는데 살펴보질 못해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주지스님이 손수 준비하고 오래 기다려 주신 수박을 고운 사찰을 다 둘러보고야 먹었다.   스님 오래 기다리게 해서 넘 죄송하고 그리고 나그네에게 시원한 수박 주심에 많이 고맙습니다.





    청풍루 아래에서 바라본 지장사에는 전각들이 이렇게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비로전, 응진전, 극락보전,명부전, 심정당.....





    어처구니를 잃어버린 커다란 맷돌 위에는 멋진 용두가...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창건한 지장사는 30년 전만 해도 대처승들이 있던 곳이었다.

    그러나 조계종에서 인수한 뒤 동효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고 부터 크고 작은 불사가 시차를 두고 이루어져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지장사를 나서며





    아쉬운듯 자꾸만 돌아보아지는 사찰이다...
















    그리고 절집으로 오르내리는 길 양 옆에 서로 마주보며 2기씩 드문드문 서 있는 정겨운 돌탑도 지나고





    숙종대왕 친필을 쪼아 만든 지장사 표석의 선돌도 지난다...





    왕실과의 인연이 많은 사찰, 지장사를 나와  40여분을 달려 안평면의 옥련사에 극락보전에 있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55호인 옥련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만나러  달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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