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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고성 문수암 (경남 고성군 상리면 무선2길 808. 경남 고성군 상리면 무선리 산 182-1)사찰여행/경상도 2019. 10. 30. 10:07
경남 고성 문수암
2019. 10. 30.
2019. 10. 28. 108순레단 '달마야 놀자' 와 함께한 10월 사찰 순례는 경남 고성의 운흥사, 보현암, 문수암, 옥천사로 오늘은 경남 고성의 사찰 길 여행이다..........
경남 고성의 운흥사. 보현암을 보고 나와 오늘 세번째 여행지 문수암으로 이동 이다...
먼곳에서 한눈에 봐도 무이산 중턱에 자리한 문수암이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 문수암은 해발 545.6m의 무이산의 구부 능선쯤에 들어선 절집인데, 여기까지 잘 닦아놓은 ‘갈 지(之)’ 자의 아스팔트 도로가 이어져 있다.
멀리 보이는 철탑이 무이산 정상이고 우측으로 우리가 가야 할 문수암도 바라다 보인다. 한눈에 봐도 무이산 중턱에 자리한 문수암이 범상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짐작할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고성’이라는 지명을 가진 지역이 두 곳 있다. 강원도 고성(高城)과 경남 고성(固城)이다. 강원도 고성이 금강산을 품고 있다면, 경남 고성은 절경의 남해 바다에 안겨 있다. 경남 고성은 선사시대와 중생대 백악기(1억 3,500만 년 ~ 6,500만 년 전) 시대에 공룡들이 뛰어 놀았던 흔적이 지금도 생생하게 남아있는 세계 3대 공룡발자국 화석지 중 하나다. 공룡이 사라진 뒤 이곳은 사람들의 삶터가 되었고, 불교와 유교와 민속이 한데 어우러져 찬란한 전통문화의 꽃을 피웠다. 오래된 한옥처럼 낯선 이들에게도 편안함을 주는 그 곳, 고성으로 사찰순례를 떠나왔다.
소가야 옛 도읍지 고성. 지금은 공룡이 대표 브랜드이지만 옛 도읍답게 고성에는 신라시대부터 천 년이 넘게 그 전통과 맥을 이어오고 있는 오래된 사찰이 많다.
그중 유난히 사람의 발길을 끄는 곳이 바로 문수암이다. 남해 보리암, 여수 향일암과 함께 남해안 3대 기도처로 꼽히는 이곳의 경치는 감히 최고라고 말할 수 있다.암자 문수암. 대한불교조계종 쌍계사의 말사인 이 암자는 신라 신문왕 8년(688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는데 삼국시대부터 해동절경지로 불렸다고 한다.
남해안 절경지 중 하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숨은 보석과 같은 곳. 이곳으로 길을 떠나 보자.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쌍계사의 말사인 문수암은 고성군 상리면 무선리 무이산에 있는 암자로서 신라 신문왕 8년(서기 688년) 의상조사가 창건했다. 창건 이후 이 암자는 수도 도량으로서 많은 고승들을 배출하였고, 산명이 수려하여 삼국시대부터 해동의 명승지로 유명하였으며 특히 화랑도 전성시대에 국선 화랑들이 이 산에서 심신을 연마하였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중창 및 중건의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현존하는 암자는 사라호 태풍때 건물이 붕괴된 뒤에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석벽에는 문수(文殊), 보현(普賢) 두 보살상이 나타나 있으므로 문수단(文殊壇)이라 이름지었다.
기암절벽이 암자 뒷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으며, 산정에 오르면 남해안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마치 군산봉처럼 부침하고 있는 절경을 조망할 수 있어 등산객과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있는 신라의 고찰이다.
왕복 4차로의 국도 33번 상정대로를 따라가다 보면 보현사, 문수암 이정표가 반겨준다. 이내 만나는 무선저수지에는 농사를 기다리는 물이 가득하다. 무이산 문수암 방향으로 길을 따라가면 상점과 넓은 주차장이 있다.
이곳 문수암 가는 길에 있는 보현암을 들린 후 문수암으로 이동한다.
문수암으로 드는 길은 갈지(之)자로 이어지는 제법 가파른 길이지만, 왕복 2차선의 잘 닦인 길이라 차를 타고 편안하게 오를 수 있다.
문수암 입구까지 도로가 포장되어 승용차로 산허리를 감고 돌아 문수암 조금 아래에 있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10분 쯤 가면 문수암이 나타난다. 문수암 바로 앞까지 버스와 차량이 올라가기에 손쉽게 갈 수 있는 암자이기도 하다. 문수암 주차장의 예쁜 해우소
절 입구에 차를 대면 구태여 절집으로 올라서지 않고도 장쾌하게 펼쳐지는 능선에 세워진 거대한 청동 약사보살상 너머로 고성의 앞바다를 바라볼 수 있다. 눈 안에 들어오는 풍경의 규모가 어찌나 큰지 숨이 턱 막힐 정도다. 화장실 옆 주차장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차를 세우고 다도해 풍광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삼국시대부터 해동절경지로 이름난 천년 고찰 무이(武夷山) 산사 문수암에 올라, 바다에 빠져 본다....
길 끝에 차를 세우고 내리면 미처 준비할 시간도 없이 돌구산 넘어로 고성의 자란만과 그 너머의 통영과 남해 일대 바다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경관의 스케일이 어찌나 큰지 이 자리에 서면 누구든 탄성을 터뜨리지 않을 수 없다. 화장실 옆 여기 주차장과 문수암에서 바라보는 보현암 약사여래전은 정말 환상적인 풍경이다.
자란만을 바깥에서 에워싸듯 멀리 능선이 보이는 섬이 통영 사량도이다.
문수암 주차장에 내려 가파른 길을 오른다.
문수암 입구에 서 있는 머리에 작은 돌멩이를 인 목장승이 무표정한 모습으로 여행자를 맞이한다.. 머리에 인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에 불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빼곡하게 쌓여 있는 저 작은 돌멩이 하나하나는 여행자의 작은 소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도 작은 돌멩이 하나를 얹었다. 두 눈을 반쯤 내리 뜬 모습은 해탈의 경지를 넘어서는 표정이다.운무가 가득 짙던 그 3월의 문수암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내며 문수암 주차장에 내려 가파른 길을 올라 가을 가득한 문수암으로 향한다. 문수암 아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걸어서 소형 승용차 주차장을 지나면 5
분 쯤에 문수암이 나타난다.
고성관광안내도
주차장에서 200여m를 걸으면 닿는 곳이 문수암 천불전 앞이다. 절터 주변은 암석지대로 경사가 심한 편이다. 지형적으로 좋지 않은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암자를 세웠을까 궁금증이 인다.
발 아래로 펼쳐지는 그림보다 더 환상적인 모습으로 다가오는 풍경을 기억 속에서 끄집어 낸다. 잠깐 사이에 생기는 어떤 느낌 ? 올망졸망 섬과 푸른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이곳에 왜 절터를 잡았는지를 생각하며...
문수암은 고성군 상리면 무선리 무이산 꼭대기 바로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경남 고성 문수암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작지만 세상을 품은 듯한 기백이 느껴지는 곳이다. 절벽 위에 앉은 법당은 천년세월을 묵묵히 바다만 바라보며 수행하는 고승과 같은 존재다.
소형주차장에서 가파른 언덕을 약 5분 정도 오르면 숨이 차오를 즈음 약수 한 모금으로 숨을 고른다.
한곳을 뚫어지게 응시하면 그곳을 관통하여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까? 바위틈에 새어 나오는 물 한 모금을 떠 마셨다. 물은 만물의 근본이요, 생명이다. 그렇기에 물이 곧 나의 육신이자, 정신이라. 언제부터인가 절을 찾을 때 작은 미물에도 의미를 부여하는 나를 보게 된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이 수행이요, 깨달음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다시 계단을 이용해 문수암 천불전 옆을 올라
문수암 법당을 올려다 본 후
가파른 계단을 올라 암자에 다다르면 제일먼저 눈에 띄는 것은 청담스님의 사리탑을 만난다.
현대 불교정화 운동의 한 획을 그은 청담대선사 부도탑비에 합장한다...
청담스님 탑비문은 운허스님이 썼다.
사리탑을 들어서면 잘생긴 소나무와
석불과 석등이 마련된 전망대가 나온다. 참배객들이 한려수도의 화려한 경관을 조망할 수 있도록 전망대를 만들어 놓은 듯하다.
고성 옥천사에서 출가하고 득도했다고 알려진 청담선사의 부도도 있으며, 문수암을 둘러싼 아래 위와 앞 뒤로는 또 엄청나게 큰 바위들이 자리 잡고 있다.
일반 신도들의 성금으로 1973년에 이 절에서 수도한 이청담(李靑潭) 스님의 사리를 봉안하여 세운 화강암으로 조성되어 있는 청담 대종사 사리탑은 전체적으로 팔각원당형의 부도탑이다. 사리탑은 1973년 10월 25일 주지 정천(正天)스님, 현성(玄惺)스님이 총무로 있을 때 세웠다.
청담스님 열반 후 사리 15과(顆)를 수습, 이곳 문수암에 6과를 모셨다고 한다. 청담스님의 사리탑은 처음 삭발하신 고성 옥천사와 도를 닦는 고성 문수암, 열반하신 서울 도선사 3군데가 있다고 한다..
고성읍 쪽에서 치솟아 오르는 아침 해의 빛살로 묵은 때를 세수를 하고, 남해의 아침 바닷물에 눈을 씻을 수 있음이 참으로 행복한 이곳 청담 큰스님 사리탑에서 바라보는 남해안 풍경은 그야말로 절경이다.
문수암의 규모는 작지만 이 산의 동서남북이 웅장하고 중앙은 우뚝 솟은 명당이라 한려수도의 크고 작은 섬들이 마치 무리진 봉우리처럼 쪽빛 바다 위에 떠 있는 절경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천혜의 전망대로서도 그 명성이 날로 더해가고 있다.
문수암 청담 큰스님 사리탑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 일단 속이 후련해진다.
눈에 선히 들어오는 섬만 20여 개. 코발트빛 남해바다 자란만에 점점이 박혀 있는 섬들의 정취는 두터운 욕심과 찌든 심신을 흔들며 몸을 휘감는 산들바람이 세파에 범벅이 된 몸을 청량하게 해준다.청담대종사 수행 토굴
문수암 남대에는 대한 불교 조계종 종정을 지내신 이청담 스님이 도를 닦은 토굴 위에 사리탑이 있다.
청담대사는 일제 때부터 불교 개혁에 나섰고 6.25 후엔 전국비구승대회를 소집해 불교정화운동을 주도하며 400여 스님과 함께 단식을 하셨다.
해인사 주지, 도선사 주지, 동국학원 이사장을 거쳐 1966년 조계종 2대 종정을 지내셨지만 1969년 불교계 파벌화를 염려하며 종단을 탈퇴하셨을 만큼 내내 곧은 몸가짐으로 한국 현대 불교의 기틀을 마련하신 분이다.
청담스님(1902~1971) 은 진주 출신으로 속명은 찬호, 법명은 순호, 법호가 청담이시다. 연화산 옥천사에서 수계를 받고 청담이라는 법호를 받았다. 1970년 대한불교 조계종의 총무원장과 종정을 두번 역임했으며 불교계에 많은 공적을 남기고 1971년 11월 15일 세수 70세, 법랍 46세로 입적하여 삼각산 도선사 다비장에서 다비하니 오색찬란한 사리15과가 출현하여 출가 본산인 옥천사와 노년에 주석하시던 도선사, 6,25때 10년 동안 수행하시던 문수암 등 3개 사찰에 사리탑을 나누어 봉안하고 탑비를 세웠다.
*청담스님의 따님이자 성철스님의 제자인 비구니계의 원로이신 묘엄스님께서도 2011. 12. 2. 오전 9:05 수원 봉녕사에서 입적하셨다. 세수는 80세, 법랍은 67하(夏)
기암절벽이 암자 뒷편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다.
문수암 사리탑 전망대에서 본 보현암 약사대불
문수암에서 남해안 쪽을 바라보면 맞은편 산꼭대기에 위치한 보현암 약사전은 한려해상공원을 뒤로하고 우뚝 솟은 부처상이 압권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보현암에 모셔져 있는 부처님 불상의 모습이 장엄하게 보인다.
멀리 사량도를 배경 삼아 서 있는 전각과 불상은 보현암 약사전의 약사대불이다.
고성군 상리면 무선리 무이산에 자리한 문수암은 남해안 절경지 중 한 곳이다. 청담 큰스님의 사리탑에서 남해안을 바라보면 보현암의 약사여래대불 뒤로 쪽빛 자란만이 펼쳐진다.
절벽 위에 조금 전에 들린 '천불전'이 있다. 문수암 사리탑 전망대에서 본 천불전
이제 문수암 법당으로 오른다.
법당 방향으로...
법당 가기전 요사 한 모퉁이에 문수암 종무소도 있다.
문수암 '법당' 앞 마당에는 많은 사람들의 소원 등이 달려 있다..
무수한 사람들의 소원과 꿈과 희망을 담은 소원 등이다. 어떤 이는 가족의 행복과 건강을 빌고, 또 다른 어떤 이는 자식의 밝은 장래를 기도한다. '좋은 대학도 가야하고, 좋은 사람과 결혼도 해야 된다' 고 한다. 문득, '좋은 것'이 '어떤 것'일까 궁금해진다.
사찰 앞으로 해안 경관이 있다면 뒤로는 기암절벽이 명물이다. 법당 뒤편으로는 깎아지른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보기만 해도 아찔하다.
어떻게 이런 절벽 아래에 절터를 잡았으며 암자를 세웠을까 궁금증을 갖게 한다.
아쉽게도 현재의 문수암 건물은 1959년 9월 한반도를 덮친 사라호 태풍 때 붕괴된 뒤에 새로 지은 현대식 건물이다. 아무래도 콘크리트로 암자와 전각은 운치가 덜할 수밖에 없다. 중창 및 중건의 역사 또한 전해지지 않는다.
무이산 자락에 있는 문수암이 수많은 세월 동안 제자리에 있는 것은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순응하는 건축을 했기 때문이다. 현대 기술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조금은 불편함이 있어야 편리함에 대한 고마움도 알게 된다.
문수암은 일출의 명소로 알려져 새해 첫날에는 밀려드는 차량과 사람들로 입구까지 장사진을 친다.
'문수암' 편액은 문봉수라는 분이 쓰셨다.
조용하고 한적한 문수암 법당
법당 중앙에 관세음보살님과 후불탱화 향 불단 좌측으로는 신중탱화와 지장보살. 지장보살탱화가 있고 향 불단 우측으로는 유리벽 앞으로 문수보살이 있다....
법당 중앙의 관세음보살님과 후불탱화
수미단에 작은 전각을 씌워 관세음보살상(觀世音菩薩像)을 안치하였다. 관음보살은 두자 일곱치 크기의 목각으로 화려한 보관을 쓰고 버들가지가 꽂혀있는 정병을 손에 잡고 앉아있다.
그 옆으로 새로이 목불개금되어 있는 관세음보살님을 모셨다...
향 불단 좌측 서쪽의 신중탱
신중탱은 중앙에 삼면 팔비의 예적금강이 법륜을 굴리면서 온 몸에 불길이 치솟는 모습을 하고 있다.
법당 안에 걸려있는 신중탱은 면위에 그려져 있으며 청룡이 크게 부각되어 중심에 서 있고 왼쪽 발 앞에 제석천이 합장하고 있다. 무장한 신장들과 모란과 연꽃 가지를 들고 있는 천녀. 많은 성중들이 대치되어 가득차게 그려져 있다.
신중단과 지장단
지장보살님 뒤로 지장탱이 있다.
지장보살은 죽은 후에 육도윤회나 지옥에 떨어지는 고통에서 구원해 주는 보살이다. 지장보살탱화는 지장보살을 주곤으로 하고 그 권속들을 거느리며 시왕들이 배치되어 있다.
목불개금되어 있는 지혜를 상진하는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사자상 위에 앉아 있다.
문수보살상 뒤편 벽은 유리벽으로 유리문을 통해 법당 뒤 문수. 보현보살이 들어갔다는 바위 중간에는 굴이 있어 바위틈 암벽을 바로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법당 외부 벽화이다.
암석에 쌓인 법당의 벽화는 심우도로 선의 수행단계를 토테미즘에서 출발하여 선하게 출생한 인간이 탐.진.치에 물들어 있는 것을 佛牲 즉 인간의 본성인 부처를 찾고 중생 제도에 나서는 벽화가 그려져 있다.
경남 고성의 문수암은 무이산(549m) 정상 바로 아래 비좁은 자리에 들어서 있는 사찰이다. 신라 성덕왕 5년(706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 문수암은 전망이 아주 빼어난 사찰로 알려져 있다. 사찰 뒤로 무이산의 수직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이 무이산 정상에 오르면 남해안이 다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전망을 즐길 수 있다고 한다. 무이산(武夷山)이란 이름도 신라시대의 화랑들이 경치 좋은 이 산에서 무예를 닦았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문수암은 창건에 얽힌 문수보살의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의상조사가 남해 보광산(지금의 금산(錦山))으로 기도하러 가던 길에 상리면 무선리 어느 촌락에서 유숙하게 되었는데 비몽사몽간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내일 아침에 걸인을 따라서 보광산 보다 무이산을 먼저 가보라”고는 홀연히 사라져 잠을 깨니 꿈이었다. 날이 밝아 과연 한 걸인이 나타났는데, 급히 밥상을 갖다 주며 무이산의 주소를 물었더니 무이산에 간다 하기에 함께 동행하게 되었다. 걸인을 따라 무이산 중턱에 오르니 눈앞에 수많은 섬들이 떠 있고, 동. 서. 남. 북 그리고 중앙에 웅장한 다섯개의 바위가 오대(五臺)를 형성하고 있어 마치 오대산의 중대를 연상하게 하였다. 이때 그 걸인이 중대를 가리키며 "저곳이 내 침소다"라고 말하자 한 걸인이 또 나타나서 두 걸인은 서로 손을 잡으며 바위 틈새로 사라져 버렸다. 의상조사는 석벽 사이를 살펴 보았으나 걸인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하게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적인 문수보살상 만이 나타나 있는 것을 보고 의상조사는 홀연히 깨달은 바, 꿈속의 노승이 관세음보살이고 두 걸인이 문수와 보현보살임을 깨달았고 의상조사는 무이산을 두루 살펴 보고는 “이곳은 족히 사자를 길들일 만한 곳이며 이곳 이야말로 산수 수도장이다” 라고 예찬하고 문수단을 모아서 문수암을 세우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는데 지금도 석벽 사이에는 천연의 문수상이 뚜렸이 나타나 보인다고 한다.
오대산 상원사. 경남 고성 문수사. 북한산 문수사. 충북 반야사가 우리나라 문수보살 4대 성지로 널리 알려져 있다.
문수암 암자 뒷편으로 돌아가면 병풍같이 드리워진 바위가 있는데 암벽 바위틈새를 바라보면 문수보살이 보인다고 한다...
대웅전 뒤편 문수보살상이 보인다는 자리에 섰다.
현재도 사찰 뒤의 석벽사이 바위에서 천연의 문수보살상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바위틈에 문수보살상이 보인다고 해서 모두들 고개를 들고 찾고 있는 모습 또한 볼만 하다.
가라진 바위 앞에 불전함이 있고 바위에 동전을 붙이고 기도를 하기도 한다. 이곳이 두 걸인,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사라진 바위틈이라 한다. 바위틈으로 보았을 때 부처님의 얼굴이 보이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암자의 최고 성소(聖所)인 문수단에 서 본다. 희미하게 빛이 들어가는 석벽 사이로 천연(天然)의 문수보살상이 있다는 것이다. 절벽 벽면에 하얀색의 얼룩같아 보이면서 작은 불상이 보인다. 덕을 많이 쌓은 사람만 볼 수 있다던데 어렵게 찾았다. '어떻게 저 작은 틈새 사이에 보살상이 있을까', 신기할 뿐이다. 의상대사를 이곳까지 안내해 성불케 한 문수보살이 계시다니 그저 신비할 뿐이다.
지금도 천연의 문수보살상이 뚜렷하게 나타나 보이는데, 이곳을 문수단이라고 하며, 사람들은 줄을 서 가며 이곳에 기도하고 있다. 백 원짜리 동전에 담은 불심이 암석 벽면에 가득하다.
무이산 자락에 있는 문수암은 그 풍경에 반해 한번 방문했던 사람들은 꼭 다시 찾는 곳이다.
문수암 주변 풍광
저 멀리 바다에서 인 바람이 산중으로 타고 든다. 그런데 이 정도 바람이면 절터에서 울어야 할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풍경소리다. 고개를 하늘로 향해 울음소리가 날 만한 곳을 찾아보니 풍경이 없다. 그 자리엔 풍경을 단 고리흔적만 지키고 있다. 절터에서 듣는 풍경소리는 혼탁한 마음을 깨끗하게 청소해 주는 고마운 존재인데 아쉽기 그지없다.
법당의 앞에도 고성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가 있다... 해맞이 관광 명소로 문수암은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문수암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주변 경관은 설명을 할 수 없는 정도라 한다...
통영의 미륵산, 남해의 보리암과 함께 경남 3대 절경 중의 하나인 이유는 문수암에 올라보면 확인할 수 있다.
무이산 자락에 있는 문수암은 그 풍경에 반해 한번 방문했던 사람들은 꼭 다시 찾는 곳이다. 법당 앞으로 한 폭의 한국화 같은 다도해의 풍광과 높고 낮은 산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사찰에 가면 불상을 보지 말고 불상이 바라보고 있는 곳을 보라 했던 문장이 영상으로 재현되는 곳이다.
문수암 앞마당에서 서쪽 풍경을 본다. 통영으로 가는 33번 국도가 보인다. 저수지는 농업용수용 무선저수지이다.
문수암에서 바라보는 남해바다의 풍광은 탄성을 자아내게 할 정도로 절경인데 의상대사의 뛰어난 혜안으로 창건한 사찰 덕을 후학들이 톡톡히 보고 있으니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법당 앞 전망대에서 고성 앞바다를 내려다본다.
왼쪽 수태산 보현암 너머 바다는 마치 커다란 호수를 연상케 한다. 한려수도의 절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가슴이 탁 트이는 시원함은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이곳의 명 코스이며 바로 앞 자란만에 떠 있는 사량도와 점점이 박힌 조그만 섬들이 뚜렷하게 눈에 들어온다.
오래 머물고 싶어지는 곳이다.
멋진 풍경에다 탄력을 부여하는 건 수태산 자락에다 법당을 짓고 세워둔 보현암의 거대한 청동약사보살상이다.
내륙의 어디쯤에다 이만한 크기의 불상을 세워두었더라면 마뜩잖아 보이기도 하겠지만, 풍경의 규모가 워낙 커서인지 문수암에서 내려다본 보살상은 거슬리지 않는다. 종교적 의미를 걷어낸다면 보살상은 오히려 풍경에다 찍어놓은 작은 악센트처럼 느껴질 정도다.멀리 사량도를 배경 삼아 서 있는 전각과 불상은 보현암 약사전의 약사 대불이다. 자란만을 바깥에서 에워싸듯 멀리 능선이 보이는 섬이 통영 사량도이다. 살아 있음에 감사해진 마음이다...
무이산 절벽 밑에 있는 문수암 '요사채'는 멀리 바라보이는 남해바다의 전망대 같다.
문수암 '독성각'으로 오르는 길.....
법당을 뒤돌아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높은 곳에 독성각이 자리하고 있다.
난간을 잡아야 겨우 오를 수 있을 것 같은 계단 끝에 터를 잡은 독성각은 이곳이 기도처라는 생각을 가지게 만든다.
문수암 독성각은 맞배지붕에 익공식으로 현판은 걸려있지 않다...
문수암 왼쪽으로 깍아지른 듯한 계단을 오르면 암자의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문수암 독성각은 바위틈에 건물을 지었으며 한사람 들어가 기도할 만한 공간이다.
겨우 사람 몇 명이 설 만한 공간에 작은 전각이 있다. 독성각이다. 그런데 편액이 걸려 있지 않다. 비바람에 떨어진 것일까, 세월의 흐름 탓일까. 기와지붕에 떨어진 낙엽은 흙으로 변한지 오래고, 그 위에 핀 잡초는 세월의 나이를 가늠케 해 주고 있다.
이곳에서 잡념 없이 기도를 하면 소원을 정말 다 이루어질 것 같다.
내부에는 불화는 없으며 나반존자님만 모셔져 있다.
독성님, 나반존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로서 아라한과를 얻고, 부처님의 수기를 받아 남인도 천태산(天台山)에 머무르다가 부처님이 열반하신 뒤 말법시대 중생의 복덕을 위해 출현한다.
나반존자는 남인도 천태산에서 홀로(獨독), 선정을 닦고 있는 성자(聖성)이기 때문에 독성 또는 천태존자라 하며 그 전각을 '독성각' 또는 '천태각'이라고 한다.
독성각은 남해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이다 ....
절벽에 조심스럽게 앉은 암자가 나무 사이로 보인다.
두터운 욕심과 찌든 심신을 흔들며 몸을 휘감는 산들바람이 세파에 범벅이 된 몸을 청량하게 해준다.
독성각에 들른 후 발길을 무이산 정상으로 향한다.
독성각 계단 입구의 좌측으로 이동한다. 계단이 아닌 좌측으로 이동하면 무이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여기서 무이산 정상까지는 10분 거리이다.
산신각 계단 왼쪽에 산행로가 열려 있다. 문수암에서 무이산 정상까지는 10분 남짓 오르막을 치면 된다.
통신탑이 보이는걸 보니 무이산 정상이 가깝게 왔나보다....
사찰 뒤로 무이산의 수직 바위들이 병풍처럼 서 있고 이 무이산 정상에 오르면 남해안이 다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무이산이란 이름도 신라시대의 화랑들이 경치 좋은 이 산에서 무예를 닦았다는 이야기에서 비롯된 이름이라고 한다.
아무도 없고 셀카봉도 없어 짧은 팔로 인증샷을 남겨본다.
정상부의 너럭바위와 남해안 다도해의 풍경을 감상하며...
손쉽게 찾아가 바다를 하염없이 바라볼 수 있는 산, 자리를 이리저리 옮겨가며 싫증이 나도록 바다를 바라봐도 좋은 산이 바로 고성의 문수암이 있는 명산 무이산이다.
산정에 오르면 남해안 한려해상국립공원의 크고 작은 많은 섬들이 마치 군산봉처럼 부침하고 있는 절경을 조망할 수 있다.
문수암은 남해 금산(錦山) 보리암(菩提庵), 청도 운문사(雲門寺) 사리암(舍利庵)과 함께 영남의 3대 기도처로 알려져 있다.
늘어진 나뭇가지 사이로 난 작은 계단 하나하나를 밟고 발길을 옮기며 무상에 빠져 보기로 했다. 걷던 길을 잠시 멈추고 제자리에 섰다. 그리고는 눈을 감았다. 일부러 아무 생각이 나지 않도록 머릿속을 비워보려 시도하는 나. 그러나 웬걸, 여름철 잡초처럼 잡념만 머릿속을 뚫고 무성하게 피어날 뿐이다.
다시 계단을 이용해 문수암 천불전 쪽을 내려다보면 빗자루로 쓸어 놓은 듯 정갈한 모습을 보여준다.
천불전 도착이다.
문수암 천불전 전각 1층은 요사이고 2층은 천불전이다.. 문수암 천불전은 팔작지붕에 공포는 익공계, 정면 4칸. 측면 2칸으로 지어졌다.
천불전은 누구나 깨달으면 부처가 될 수 있다는 대승불교 사상을 상징하는 전각으로 천분의 부처님을 모신다. 삼신불과 삼세불. 천불. 삼천불 등 다불사상의 영향으로 조성되기 시작했다.
불단과 양쪽 벽에 모두 석가모니부처님 천분을 모시고 있으며 문수암 천불전 내부 중앙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협시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1천불은 세상이 개벽해 다시 개벽할 때까지 기간, 현겁(賢劫) 동안에 석가모니불에 이르는 1천 부처가 나타나 중생을 구한다는 데서 나왔다. 작은 원불 부처님 1000분마다 아래에 시주자 이름이 붙어 있다.
천불전에서
주차장으로 내려간다...
일설에 따르면 백담사로 가려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전두환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허문도의 고향인 고성 문수암 이곳으로 오려다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권력의 무상함을 본다.
남해바다는 마치 하늘과 같고, 작은 섬들은 구름마냥 바다를 둥둥 떠다니는 착각을 하게 만든다.
성철스님이 한때 이곳 문수암에 머무셨다고 한다.
성철스님이 문수암에 머무르던 때에는 약사전도 없었다. 그때 스님은 6ㆍ25전쟁을 피해 책을 이곳에 봉안하고 조용히 한 해를 보낸 것임을 알게 한다. 전쟁은 수행자가 정진하는 도량을 포화와 총검으로 불태우고 짓밟았다. 수도자들은 보금자리를 잃고 여기저기로 흩어지고 전쟁터에 끌려가기도 했다. 그 전란의 와중에도 수행정신을 버리지 않고 스님들은 난을 피해 남쪽으로 내려와 각자 나름대로의 수행처를 찾아 정진일념을 이어갔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청량산 문수암은 전란을 피하여 조용히 수행하기엔 정말 알맞은 처소였다.
이제 문수암을 내려간다... 무선저수지를 지나
고성 들판을 가로 질러 청담스님이 처음으로 불교에 귀의한 고성의 옥천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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