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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 고린도 유적지그리스 2018. 6. 3. 16:55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 고린도 유적지
2018. 6. 3.
일행 44명이 테마여행 도린결과 함께한 그리스 일주로 2018. 5. 17 ~ 2017. 5. 28, 12일간 여행이다.
2018. 5. 22. 여행 6일째 날...
오늘은 아테네를 출발하여 고린도 운하와 유적지를 보고 스파르타로 이동으로 이어진다.
고린도로 이동하여 다리 위에서 바라보는 고린도 운하를 보고 오늘 두번째 일정으로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 고린도 유적지로 이동한다...
다리 위에서 운하구경을 대충하고 인근에 있는 이오니아해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 고린도 유적지로 이동한다..
코린도스는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를 잇는 코린도 지협(地峽)에 있었던 고대 도시 였으나 지금은 규모가 축소된 현대적 도시로 변해 있다.
원래 그리스 본토와 펠로폰네소스 반도, 코린트(Corinth)로 분류되던 이 지역은 그리스 남북육상교통의 요지인 동시에 이오니아해(海)와 에게해를 잇는 해상교통의 요지였다.
시(市)의 유적에서 미케네 시대 전기의 도기(陶器)가 발견된 것으로 보아
먼 옛날부터 번영해 온 도시임을 알 수 있다.
이 도시는 로마 시대의 식민지로 재건되면서 번창 했고, 비잔틴 제국 시대까지 어느 정도 번영을 누렸지만 지진과 약탈 등으로 인해 파괴되었고, 중세 이후 점차 쇠퇴하면서 하나의 지방 소도시로 몰락했다. 고대 코린도 시가 지진으로 무너진 후 1858년에 북동쪽으로 약 5km 떨어진 곳에 현대 코린도 시가 건설 되고, 현재는 그리스의 북부와 남부를 잇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리스에는 붉은 색의 유도화와 노란색의 로뎀나무가 지천이다..
멀리 보이는 아크로 코린토산이다.
고린도 유적지 바위산으로 높이는 해발 575m 밖에 안 되나 고대에 세워진 아크로 폴리스로 로마가 요새로 사용했던 산이며 산 정상에는 아프로디테 신전 유적이 있다고 한다.
유적지 뒷편으로 높은 돌산이 있는데 예전에 그리이스 신화 미의 여신인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던 산으로 시지푸스의 신화(형벌)로 유명한 산이기도 하다.
신을 상대로 사기를 쳤던 고린도 왕에게 내려진 형벌로 산꼭대기까지 큰 돌덩어리를 반복해서 옮기게 했다는 신화의 산이다 .
고린도 유적지
B.C. 146년 로마군의 침입으로 폐허가 된 고대 도시국가를 B.C. 44년 로마 황제 시저가 재건한 로마 시대의 유적이다.
코린트시에서 약 8km 떨어진 아크로코린트 산기슭에 있다.
고린도 유적지 주차장 도착이다..
코린도 운하에서 8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아크로코린토스 언덕 주위에는고대 도시의 유적지가 자리 잡고 있다. 유적지에서 미케네 시대 전기의 도기가 발견되었고, 지리적으로 지대가 높고 펠로폰네소스로 들어가는 육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유리한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먼 옛날부터 상업 ·무역으로 크게 번영을 누려 왔음을 알 수 있다.
고린도 아폴로신전 기둥이 보인다. 앞에 있는 것은 글라우케샘의 일부다.
고대 고린도 고고학박물관 표지
기둥 3개만 남아있는 신전은 옥타비아누스 황제가 여동생에게 헌정된 신전이다.
먼저 눈에 들어 온 것은 옥타비아누스 황제의 신전이다.
기둥이 세개가 남아 있는데 기둥의 상단부분이 상당히 화려하게 만들어져 있다.(고린도식)
그는 대 로마의 초대 황제(BC 63~AD 14)였는데 기원전 44년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유언에 따라 그의 양자가 되었다.
안토니우스, 레피두스와 함께 제이차 삼두 정치를 실시 했으며, 여러 차례의 싸움 끝에 로마 제국의 지배자가 되었다.
특히 악티움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로마의 내전 종식을 가져다 준 공로로 기원전 27년에 원로원으로 부터 프린켑스, 아우구스투스라는 칭호를 받았다.
학술, 문예를 장려하여 로마 문화의 황금시대를 열었다.
세 기둥만이 남아 있어도 위풍당당한 기세가 느껴진다! 화려한 아칸서스 잎 장식이 특징이다..
박물관 입구에서 만난 코린트 양식의 '옥타비아 신전' 기둥
고린도 고고학 박물관을 먼저 보고
고린도 박물관의 야외전시장
나와서 다시 야외 유적지로 이동한다..
글라우글라우케 우물, 글라우케는 고린도의 공주이다.
글라우케 우물
커다란 바위의 사각형 건물이 우물인데 글라우케 샘(우물, 분수)에 4개의 저수지로 암벽을 깎아서 만들었다고 한 글라우케 우물에 얽힌 비극이 있다고 하는데..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아이간에게 반해 몰래 납치를 했는데 고린도의 왕 시지프스가 고린도에 도시를 세우려니 물이 없어 강의 신에게 물이 나오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자 강의 신 아소포스는 내 딸을 남치한 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면 샘을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제우스신이 당신의 딸을 훔쳐 갔다고 알려주는 바람에 제우스는 괘씸죄로 돌을 산위에 올리는 벌을 내렸다고 한다.
아폴론 신전이 보인다.
찬란했던 역사는 간데 없고 현재는 7개의 기둥만이 남아 있는 ' 아폴론 신전'에서
아폴론 신전
보이는 기둥은 아폴로 신전이다
도리아 식의 아폴로 신전은 태양신 아폴론을 모시기 위하여 BC 6세기에 38개의 원통 기둥(기둥의 높이는 7.2m, 원주의 직경은 1.8m)으로 세웠지만 현재는 석주(石柱) 7개만 남아 있다.
이 신전은 그리스의 신전 중에서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신전으로 전통적인 도리아식 기둥이며 기둥이 하나의 돌로 된 통기둥이다.
아폴로는 제우스와 레토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그는 어머니 레토의 적인 뱀의 신 파이톤을 활로 쏴 죽이고 돌아오는 길에 판신에게 가서 예언 술을 배워 델피 신전을 차지했다.
그는 음악과 학문을 좋아하는 신이지만 질투가 많았는데 그후 숫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깨달아 "지나치지 말고 분수를 지키라"는 말을 하고 중용을 지켰다.
고린도 유적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B.C. 6세기경에 태양신 아폴론을 모시기 위해 건설한 아폴론 신전으로, 그리스 신전 중 올림피아의 헤라 신전 다음으로 오래된 것이다.
건축 당시에는 38개의 원주로 된 신전이었으나 현재는 7개의 원주만이 남아 있다.
신전 남쪽에는 상점 등의 흔적이 있는 아고라가 있었다.
넓고 번창했던 아고라는 어디로 가고 흔적만 남아 있다.
아치형 문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아고라 광장'의 화려했던 상점들의 잔재들이 여기저기 눈에 띤다. 상점 입구 아치의 맨 위 가운데 돌이 모퉁잇돌로 마지막에 크기가 맞는 것을 끼어야 아치가 완성되며, 성경 등에서 모퉁잇돌이라고 하면 미미하다거나 보조한다는 뜻이 아니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란다.
아고라에는 당시의 화려한 생활과 문란한 도시를 상상케 하는 유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별장과 극장, 상점과 목욕탕, 그릇을 제조하는 곳, 단련장과 개선문 등이 있다.
아치형 문만 남아있는 아고라광장의 화려했던 상점들의 잔재들만 남아 있다. 아고라 시장의 수많은 가게들이 모습으로 그때의 모습을 상상 할 수 있다.
고린도Corinth'는 단어 자체 의미가 '간음하다 fornicate'와 같은 뜻으로 음란이 넘쳐난 도시였다. 이렇게 세속적인 고린도의 위세에도 바울은 굴하지 않고 가장 오랜 기간 머물며 전도했다고 한다.
고린도전서 4장 17절 말씀이 새겨진 돌판이 놓여 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1년 6개월간을 머물며 복음을 전파했던 곳이다.
고린도전서는 바울이 3차 전도 여행때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회에 써 보냈으며, 고린도 후서는 마케도니아에서 써서 보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알려져 있다.
데살로니카 전서와 후서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머물 때 쓰여진 편지이다. 로마서도 고린도에서 썼을 가능성이 높다.
성경에나오는 사도바울이 바로 이자리에서 고린도 전서를 만들게 하는 전도를 한 곳... 사도바울의 표시가 되어 있다.
이곳은 아고라 및 목욕탕이 있었던 자리이다.
아고라(Agora) 광장인데 1세기에도 물론 있었지만 로마인들이 대대적으로 복원한 고린도인들의 삶의 중심지였다.
이 광장 동쪽은 상점들이 들어서 있었고 회랑이 있는 건물들이 있었으며 공중 목욕탕, 공동 화장실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다.
죄인들을 심판하던 장소. 사도 바울도 여기에서 재판을 받았다고 한다.
베마(Bema)광장
사도 바울이 설교하던 장소이며 로마총독 갈리오에게 재판을 받던 장소로 베마강당 자리는 초대교회가 있던 곳이라 한다.
바울이 끌려간 재판정 자리인 베마(Bema)가 남아 있다.
베마란 총독이 연설할 때나 재판할 때 사람들을 내려다볼 수 있도록 돌로 만든 일종의 단으로 높이가 약 5m, 폭이 15m에 이른다.
바울이 재판을 받을 때 묶여 있었던 기둥이라고 한다.
얼굴을 내밀고 기도를 했다는 돌.
바울은 고린도에 도착하여 글라우디오의 명령에 따라 로마를 떠나 이곳에 머물렀던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유대인 부부를 만났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히브리인들의 회당이라는 글이 새겨진 돌조각이 발견되어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울 당시 이곳에 이미 유대인 공동체가 존재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바울은 자기를 찾아온 아굴라 부부와 함께 장막 만드는 일을 하며 고린도에서 1년 6개월 동안 기거하면서 복음을 전했다.
이곳에서 바울은 회당장인 그리스보와 온 가족에게 세례를 베풀었을 뿐 아니라 수많은 사람에게 예수를 영접하게 하는 놀라운 전도의 성공을 거뒀다(행 18:1∼11).
그러나 갈리오가 고린도를 비롯해 아가야 지역의 총독으로 있을 때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유대인들은 바울이 율법을 어겼다고 재판정에 세웠다.
그러나 갈리오는 로마법과 상관이 없는 것을 알고 관여하지 않았다(행 18:12-16).
오늘날 이곳 고린도에는 바울이 끌려간 재판정 자리인 베마(Bema)가 남아 있다.
행 18:17에서는 회당장 소스데네가 이곳에서 매을 맞은 것으로 나타난다. 그후 바울에게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신 고린도 교회 역대 목회자를 나타내는 석판에 소스테네는 4대 목회자로 이름을 올렸다.
고린도 바울이 갔던 길, 로마 군대의 힘으로 만든 돌 길
아마 아덴을 떠난 바울은 에라스도 길을 따라 고린도로 들어왔을 것이다.
예전 창녀촌이 있는 곳에는 멋진 전원주택들이 새롭게 들어서 있다..
보이는 산은 시지푸스의 산이고 그 앞 유적들은 고린도인들이 섬기던 신당들의 폐허이다.
시지푸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야기 인데 시지푸스(Sisypos)는 고린도(Corinth)의 왕이며 오디세우스(Odysseus)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시지푸스는 신(神)에게 벌을 받아 무거운 바위를 산으로 굴려 올리는 형벌을 받는다.
그 바위를 정상에 올리고 나면 그 즉시 바윗덩이는 다시 굴러 내려가고 시지푸스는 다시 내려가 그 바위를 밀어 올려야하는데 그 반복을 끝없이 되풀이 한다는 이야기다.
시지프스가 제우스에게서 벌을 받게 된것은 제우스가 강의 신 아소포스의 딸 아이간에게 반해 몰래 납치를 했는데 시지프스가 고린도에 도시를 세우려니 물이 없어 강의 신에게 물이 나오는 샘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자 강의 신 아소포스는 내 딸을 남치한 자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면 샘을 만들어 주겠다고 해서 제우스신이 당신의 딸을 훔쳐 갔다고 알려주는 바람에 제우스는 괘씸죄로 돌을 산위에 올리는 벌을 내렸다.
고린도 유적지 안에 이런 큰 나무가 있는데 나무에 달린 열매를 가지고 케토릭에서 사용하는 묵주를 만든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염주라고 한다.)
피레네의 셈
신화에 따르면 강의 신 아소보스의 딸 피레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의 사이에 두 명의 아들을 낳았다. 이 샘에는 슬픈 이야기가 전해 오는데, 피레네의 사랑하는 아들이 잘못 날아온 원반에 맞아 목숨을 잃게 되자 슬픔을 이기지 못한 그녀는 매일 눈물로 지새웠고, 결국 눈물이 그녀의 몸을 녹여 그 물로 샘이 생겨났다고 한다.
비교적 잘 복원되어 있는 피레네 샘이다.
아프로코린도산에서 흘러내린 물을 받아 저장했던 '피레네 샘'. 이곳에는 지금도 자연적으로 물이 나오고 있고, 고대에는 저수장으로 이용되었던 장소로 지금도 자연수가 솟아나고 있다.
피레네 샘의 수로이다. 고린도 인들이 상수도원 이었을 것이다.
대중 목욕탕이었던 곳.
아고라와 스토아 그리고 집터
상가 점포별로 석조 칸막이와 돔형 지붕으로 만든 건물들, 지붕은 거의 파손되었으나 칸막이는 그대로 남아 있는 점포들과 시장터가 있다.
또한 지금의 연립 다세대 형식의 주택들로 521년에 지진으로 큰 타격을 입어 중세 이후 쇠퇴하다가 1858년 지진으로 완전 파괴 되었다.
고린도 유적지를 돌아 보고 옛 고린도 유적지 에라스도(Erastus)길을 나간다.
아고라(시장)에서 야외극장을 잇는 돌로 포장된 길이 나오고, 그 길 끝 바닥에는 라틴어로 에라스도(Erastus)가 사비를 들여 이 길을 돌로 포장했다는 글이 새겨진 돌조각을 발견하게 된다고 한다.
아쉽게도 우리 일행은 이 부분을 확인하지 못했다. 에라스도는 고린도의 재무를 담당했던 고관으로 바울의 전도로 기독교인이 된 사람이다(행 19:22).
아덴에서 성공적으로 전도하지 못한 바울은 주님으로부터 고린도에서는 성공할 것이라는 위로를 받았다(행 18:9∼11).
멀리 고린도 서남쪽에 있는 575m의 고린도 옛길, 뒷쪽 아프로디테 신전이 있었던 아크로코린트 돌산이 보인다. 고대 그리스 유적과 더불어 까뮈의 시지프 신화의 배경이 되는 산이다.
마차가 다니는 길 돌이 깔린 '레케이온 거리'
저 멀리 해발 570 m 언덕바위 정상 위에 '아크로코린트 Acrocorinth'가 보인다. 아크로코린트의 아프로디테 신전엔 1,000명의 창기들이 상주하며 고린도로 내려와 상인과 선원들에게 몸을 팔았다고 한다.
고린도 유적지를 정문으로 입장하여 박물관과 유적지를 충분히 둘러보고 유적지 뒷문으로 나와서 후문 바로 인근의 식당으로 걸어서 이동한다.
오늘 점심은 그리스의 음식 수블라키 이다..
그리스의 음식 수블라키
수블라키는 그리스 전통음식 중에 하나로 가장 대중적인 음식이기도 하다. 수블라키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꼬치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수블라키는 고기와 야채를 꼬챙이에 끼워 숯불에 구워낸 음식인데, 굽는 과정에서 기름이 쫙 빠져 담백하고 맛있다.
고린도 유적지 후문 근처의 상가들..
점심 식사 후 고린도 유적지 주차장까지 7분정도 걸어서 이동한다..
아크로폴리스의 모습이 보이고...
고린도 유적지 주차장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고린도 운하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동한다...
이동하면서 바라 본 고린도 유적지 근처의 올리브 나무들...
고린도 유적지를 뒤로하고 운하 유람선 선착장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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