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땀흘리는 표충비와 비각을 보호하는 수호사인 홍제사(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무안리 901-4)사찰여행/경상도 2018. 5. 12. 06:08
땀흘리는 표충비와 비각을 보호하는 수호사찰인 홍제사
2018. 5. 12.
2018. 5. 6 . 사돈들 8명과 함께 촉촉히 비가 내리는 雨요일에 김해. 밀양 일원으로 떠난 여행이다..
김해 장유사. 봉화마을을 보고 밀양으로 이동 후 밀양 만어사를 본 후 삼량진에서 점심식사 후 밀양 사명대사 유적지. 사명대사가 10년간 머물렀다는 대법사를 보고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땀흘리는 표충비와 홍제사로 향해본다..
사명대사가 50대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직접 심었다는 설도 있음) 아름드리 모과나무 한그루가 자라고 있는 영취산 대법사에서 8km 정도 떨어진 땀 흘리는 표충비를 향하여..
삼비문 옆에는 표충비에 대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어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표충비각으로 들어가는 첫 관문인 삼비문 입구
외삼문에 해당하는 ‘삼비문(三碑門)’의 ‘삼비’라는 뜻은 표충비에 기록되어 있는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 세분을 기리는 비’를 일컫는 말이라 한다.
삼비문을 들어서면 넓은 마당이 나타난다. 정면에 보이는 내삼문과 왼쪽의 표충각이 눈에 들어온다.
내삼문을 지나면 표충비가 있는 곳이라 먼저 내삼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삼문을 들어간다...
표충비를 보호하기 위한 표충비각
표충비(表忠碑)는 사명대사의 충절을 기리는 비석으로, 일명 ‘사명대사비’라고도 불린다.
1742년 10월 사명대사의 5대손인 남붕선사가 경상북도 경산에서 돌을 가져다가 현재의 자리(밀양시 무안면 무안리)에 세운 것으로 좌대를 포함한 총 높이는 380cm, 비신의 높이 275cm, 너비 98cm, 두께 56cm의 큰 비석이다.
표충비 안내판
임진왜란 당시 승병을 이끌어 왜병을 크게 무찌르고 일본에 전쟁포로로 끌려간 조선인 3,000명을 환국시킨유정(惟政:泗溟大師)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옛 표충사(表忠寺) 터, 즉 표충사(表忠祠)의 동쪽인 이곳에 1742년(영조 18) 대사의 5대 법손(法孫) 남붕(南鵬)이 경산에서 갖고 온 돌로 건립하였다.
이 비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국가적으로 큰 사건이 있을 때를 전후하여 비석면에 땀방울이 맺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땀방울은 구슬처럼 흐르는데 이것을 두고 밀양 시민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검이라 하여 신성시한다.
‘땀흘리는 표충비’로 널리 알려져 있다.
때로는 비석의 4면에서 여름날 농부의 이마에서 흐르는 구슬땀처럼 맺혀 몇 시간씩 계속해서 흐르다가 그치기도 하는데, 이상한 것은 글자의 획 안이나 머릿돌, 조대에서는 물기가 전혀 비치지 않는다.
이 신기한 현상을 기후 변화에 따른 외기 현상이나 비석 자체의 결로현상으로 보는 등 과학적인 해명을 하고 있다.표충비는 국가에 큰 어려움이나 전쟁 등 불안한 징조를 보일 때에 비석 전면에 자연적으로 땀방울이 맺혀서 구슬땀처럼 흘러내린다 하여 ‘땀 흘리는 표충비’라고 불리기도 한다.
밀양 사람들은 나라와 겨레를 존중하고 근심하는 사명대사의 영험이라 하여 신성시하고 있다.
비석의 정면에는 ‘유명 조선국 밀양 표충사 송운대사 영당비명병서(有明朝鮮國密陽表忠祠松雲大師靈堂碑銘幷序)’를 새기고, 뒷면과 옆면에는 ‘서산대사 비명’과 ‘표충사 사적기’를 음각했다.
비문에는 표충사의 내력, 서산대사의 행적, 사명대사의 행적 등을 4면에 고루 새겨 놓아 서산대사의 제자이기도 한 사명대사가 임진왜란 당시 스승의 뒤를 이어 승병활동을 한 사실, 가토 기요마사와의 담판 내용, 선조 임금의 어명을 받들어 일본에 건너가 포로로 끌려갔던 백성들을 데리고 온 사실 등을 적고 있다. 표충비는 비석 3면에 사명대사, 서산대사, 기허대사의 행적을 기록하여 일명 삼비(三碑)라고도 한다.
밀양 무안리 향나무 (경상남도 기념물 제119호). 표충비 앞에는 향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표충비각 앞에는 특이한 모습의 3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일반적으로 향나무는 위로 향해 곧게 자라는 성질을 갖고 있는데, 이 향나무는 마치 큰 우산을 펴 놓은 듯 독특한 모습이다. 경상남도 기념물 제119호인 이 향나무는 표충비를 세우고 그 기념으로 식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밀양 무안리 향나무
송운대사영당비(松雲大師影堂碑)가 있는 표충비각(表忠碑閣)의 경내에는 가지가 팔방으로 뻗어 있는 특이한 향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향나무는 늘 푸른 큰키나무로 상나무ㆍ노송나무라고도 불리며 4월에 꽃이 피고 둥글납작한 열매가 열려 이듬해 가을에 익는데, 목재는 조각품ㆍ가구ㆍ향을 만드는 재료로 쓰이고, 줄기의 심부분은 약재로 쓰이기도 한다.
측백나무과에 속하는 이 향나무는 높이 1.5m, 가슴높이 둘레 1.1m로, 수관(樹冠)의 모양은 양산을 세워 놓은 듯한 특이한 모습이다.
원래 향나무는 곧게 자라는 성질을 가졌는데, 홍제사의 향나무는 원줄기를 자르고 옆가지를 팔방으로 뻗게 하여 지금과 같은 나무모양으로 다듬고 가꾼 것이다.
이와 같은 향나무는 전국에서 유일한 것으로, 1738년 사명대사(四溟大師)의 5대 법손인 남붕(南鵬) 스님이 표충비를 세우고 기념하기 위해 심은 것이다.
표충비각 왼쪽으로 문을 나가면 곧 바로 홍제사이다..
표충비를 한바퀴 휘이 돌아본 후 바로 옆 홍제사로 발길을 옮긴다..
곧 바로 홍제사의 약수
* 홍제사의 창건과 역사 *
홍제사는 조선시대 승병장인 사명대사(四溟大師)의 표충사당과 표충비각을 보호하기 위해 지어진 사당 수호사찰로 홍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 통도사의 말사이다.
그 연혁은 자세하지 않으나 이곳 무안에 표충비가 세워진 1742년(영조 18)에 사명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사찰로 알려져 있다.
표충비각의 창건주로 사명대사의 5대 법손인 태허당(泰虛堂) 남붕선사(南鵬禪師)가 나라로부터 ‘表忠書院’이라는 사액을 받으면서, 현재의 터에 표충비각을 세우고 그 뒤 사당 수호사찰로 명맥을 유지다가 1838년(헌종 4)에 표충서원이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천유대사(天有大師)의 주도로 재약산 아래 영정사(靈井寺)로 옮겨지면서, 비각을 독자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자그마한 원당과 삼비문(三碑門)을 형성하여 현재의 가람을 형성한 것으로 보인다. 비각의 관리는 표충사 승려가 번갈아 파견되어 담당하다가 일제 때에는 대처승이 허물어진 원당과 요사를 헐고 현대식 법당과 요사를 지어 포교당으로 삼고 비각을 보존하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구연운(具蓮耘) 화상이 비각의 관리를 맡아 비각과 법당을 중수하였으며, 그뒤 거의 폐허가 된 표충비만 남게 되었다. 1977년에는 창건주 한월(漢月) 동조선사(東照禪師)가 홍제사라는 이름으로 재창건 하여 국가의 지원으로 표충비각을 중수하면서 현재의 가람을 이룩하였다. 1978년에 표충비를 보호하는 보호각을 건립하고 그 주위로 담장ㆍ삼비문과 비각을 수호하는 인법당 등을 갖추게 되었다. 이후 연경장엽(蓮耕壯曄) 선사가 경충당을 건립하였고, 1981년에는 현재 요사로 쓰고 있는 인법당을 축대 아래로 내려 현재의 설법보전을 신축하였다.1981년부터 수년간 홍제사 2대 중창주인 정상(淨相) 스님이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의 도움으로, 주법당인 설법보전과 사적비ㆍ범종각ㆍ경충당ㆍ요사 등 현재 홍제사의 가람 기틀을 이룩한 것으로 보인다. 근래에는 표충비각의 수호사찰로 밀양시가 추진하고 있는 사명대사 성역화작업의 중심역할을 하고 있으며, 국가의 중대사나 위기 때마다 표충비에서 땀이 흘러 ‘땀 흘리는 비’를 지키는 사찰로 전국에 알려져 있기도 하다.
홍제사의 법당 홍제사 설법보전
1981년부터 정상(淨相) 스님이 기업인 정주영의 시주로 건립한 주법당이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건물이다.
편액은 구하(九河) 스님의 글씨로 정갈하고 담백한 필체를 느낄 수 있다.
건물 내부에는 ㄷ자형의 불단 위에 금동 아미타여래좌상ㆍ 석조 관음보살좌상ㆍ금동 대세지보살의 아미타삼존이 봉안되어 있으며, 후불탱으로는 근래에 조성된 아미타후불탱과
칠성탱
영가단과
산신탱. 신중탱이 있다
또한 설법보전 내부에는 1978년에 조성된 범종 1구가 있으며, 내벽 측면에는 근대 홍제사의 연혁을 알 수 있는 ‘홍제사창견연대’ 현판이 걸려 있다.
설법보전은 2단의 화강암으로 바른층 쌓기 한 기단 위에 원형의 초석과 기둥을 올린 주심포식 건물로, 3면에 심우도(尋牛圖)가 벽화로 장엄되어 있으며, 포벽과 서까래에는 여래도를 비롯한 당초문이 단청되어 있다.
홍제사 설법보전 앞에서 바라본 홍제사 전경이다.. 좌로부터 표충사당, 삼층석탑, 홍제사 출입문, 종각이 차례로 보인다..
요사 앞의 종각
좌로부터 종각. 경충당. 설법보전
요사 경충당
삼층석탑
삼층석탑, 표충비각 외삼문인 삼비문, 표충서당
홍제사에서 표충비각으로 향하는 옆면 옆 담장 앞의 소원지들..
종무소
표충각
표충각은 삼비문(三碑門)을 지나 표충비각으로 들어가는 삼문 왼편에 있는 사당(祠堂)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건물이다. 이 건물은 재약산 표충사를 축소한 것이며, 1838년(헌종 4) 표충서원이 천유대사(天有大師)에 의해 재약산 아래 영정사(靈井寺)로 옮겨지면서, 비각을 보전하기 위해 지은 원당을 복원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 외부는 3단의 장방형 화강암을 바른층 쌓기 한 기단 위에 원형의 초석과 기둥을 올린 주심포식 건물로, 외벽에는 단청으로 장엄하였으며 건물 전면에는 주련 4기와 ‘표충각’이라는 편액 1기가 걸려 있다.
내부에는 건물 후벽에 붙은 제단 위로 사명대사(四溟大師)ㆍ 서산대사(西山大師)ㆍ 영규대사(靈圭大師)의 3대사 진영을 봉안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보통 서산대사를 중심으로 좌우에 사명ㆍ영규대사가 봉안되나, 이곳은 사명대사의 수호사찰이어서 사명대사의 진영이 중앙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진영은 면 바탕에 채색되어 있으며, 크기는 높이 176㎝, 폭 126㎝이다.
표충각 내부의 좌측에는 박정희 전대통령과 육영수 전 영부인의 초상화를 모셔 놓았다.
홍제사 출입문을 나선다..
외부에서 바라본 홍제사 출입문은 금강역사를 그려 넣었다..
근래 사명대사의 성역화작업으로 가람이 정비되어 공원화 되었다..
2018. 5. 6 . 사돈들 8명과 함께 촉촉히 비가 내리는 雨요일에 떠난 김해. 밀양 일원으로 여행이다..
김해 장유사. 봉화마을을 보고 밀양으로 이동 후 밀양 만어사를 본 후 삼량진에서 점심식사 후 밀양 사명대사 유적지. 사명대사가 10년간 머물렀다는 대법사를 보고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땀흘리는 표충비와 홍제사도 충분히 여행 후 이제 밀양시내를 지나 언양으로 향해서 울주군 봉계면의 소고기 단지 맛집에서 만난 소고기를 구워 먹고 다시 포항로 향해본다..
나에게 여행은 나를 다시 그릴 수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배낭여행, 자유여행 처럼 여행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어떤 여행을 떠나도 낯선 곳 분위기에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나를 찾아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다. 새로운 시각으로 나를 바라볼 수 있다면 일상으로 돌아온 뒤에도 활력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렇게 촉촉히 비가 내리는 雨요일에 떠난 사돈 8명과의 느긋한 여행을 마치고 도착하니 8:40이다.. 오늘은 가까운 곳을 다녀와서 그런지 많이 여행했지만 비교적 빨리 도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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