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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명대사가 10년간 머물렀다는 대법사 (경남 밀양시 무안면 무안서로 163-158, 무안면 중산리 1128-1
    사찰여행/경상도 2018. 5. 11. 07:33

    사명대사가 10년간 머물렀다는 대법사   

      

      

    2018.     5.    11.

     

     

    2018.   5.   6 . 사돈들 8명과 함께 촉촉히 비가 내리는 요일에 김해.밀양 일원으로 떠난 여행이다.. 

    김해 장유사. 봉화마을을 보고 밀양으로 이동 후 밀양 만어사를 본 후 삼량진에서 점심식사 후 밀양 사명대사 유적지를 보고 사명대사가 10년간 머물렀다는 오늘의 5번째  여행지인 대법사로 향해본다..





    사명대사 향기를 따라 사명대사 유적지인 사명대사 기념관사당과 생가를 두루 들러 보고  오늘의 5번째 다음 여행지인 표충사의 시발점인 대법사를 향해 본다...


    대법사는 사명대사가 강화사로 일본에 다녀온 뒤인 1605(乙巳) 고향으로 돌아와 선영이 바라 보이는 이곳에 조그마한 초가를 지어 백하난야(白霞蘭若)’이라 하고 선대의 명복을 빌면서 여생을 보내고자 했던 성지(聖地)이다.

    그해 10월 묘향산으로 길을 떠났던 사명대사가 1610년 합천 해인사 홍재암에서 입적하자 밀양유림에서는 대사의 충()이 지극히 커서 불법으로 그 공훈을 보답하기에는 부족하다 하여 백하난야옆에 사당을 창건하고 표충사(表忠祠)라고 하였다.

    1839년 표충사당이 영정사(표충사)로 옮겨가자 그 자리에 옛 사찰의 명맥을 이어 다시 건립된 것이 현재의 대법사하고 한다... 





    주차장에서 위로 올려다보면 3개의 기가 게양되어 있다.   태극기와 2개의 불기(佛旗)..





    이 사찰은 신라시대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후 900년이 지난 어느날 부터 사명대사가 10여년간 머물렀던 곳이기도 한데, 열반 후 그 영정을 모신 곳이라 해서 조정에서 표충사(表忠詞)라는 이름을 하사하며 표충비를 세우고 사당을 세웠다가 후에 영정이 단장면의 현 표충사로 모셔지는 바람에 원래의 이름을 뺏기고 말았다.

    초창 당시 학 3마리가 날아와 앉았다 해서 백하암(白霞庵)이라는 사명으로 불리던 이 사찰은 사명대사의 위상 덕에 오랜 세월 국가의 관심 속에서 중건을 거듭해 왔느나 국난의 영향과 조선조의 억불숭유 정책 등으로 인해 폐사되었다가 1968년 현 조실 지혜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시작된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통해 오늘날의 사격을 갖게 되었다.




    1층은 천왕문, 2층 누각에는 범종루가 있는 천욍문을 지들어선다.




     






    1층은 천왕문을 들어서면 사천왕탱이 나그네를 맞아준다..












    사천왕문에서 바라본 대법사는 최근 중창(重創)을 마무리해 절이 깔끔하고 아담했다.






    절 마당 초입 공양당 앞에 서니 잔잔하던 운무가 순식간에  사찰을 뒤덥는다..





    공양당과 요사





    요사.  보광전. 대웅전과 다층탑이 차례로 보인다..





    보광전 앞의 모과나무


    영취산 대법사에는 사명대사가 50대에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땅에 꽂아 놓은 것이 자라나 잎을 피웠다는(직접 심었다는 설도 있음) 아름드리 모과나무 한그루가 대법사 경내 보광전 앞 마당에 서 있다. 높이가 2m20cm, 굵기는 3m20cm로 나무 밑둥이 어른 두 사람이 양팔을 벌려야 마주 잡을 정도로 우람하다.




    대웅전과 다층탑




    사천왕문 2층 누각위의 범종루이다..















    * 대법사에 전해오는 모과나무 설화 *


     사명대사의 정신이 깃든 이 대법사에 전설과도 같은 이야기 한편이 전해지니 바로 모과나무에 관한 설화이다. 해발 600m 고지에 자리하고 있는 대법사의 중창불사가 한창이던 더운 여름, 사명대사의 지팡이 나무라고 알려진 모과나무가 대웅전을 지으려는 자리 바로 앞을 가로막고 있어 모과나무를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나무 옮기는 것을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였으나 스님은 1주일간 기도까지 드려가며 공사일정을 잡았다. 그런데 인부들이 일하러 오기로 한 그날 새벽 기이한 현상이 벌어졌다. 요사채에서 잠을 자던 지혜스님은 갑자기 산천이 울리는 듯한 소리에 눈을 떴다. 밖으로 나가 보니 적막하기만 한 산중에 갑자기 바람이 부는가 했더니 이내 잠잠해져 다시 방으로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호랑이가 포효하는 듯한 음성이 밖에서 들려왔다. "내가 4백년을 지켰는데 네 마음대로 하려느냐. 나는 절대 안간다." 지혜스님은 등골이 싸늘해졌다. 목소리는 분명 모과나무쪽에서 들려왔다. 후닥닥 밖으로 나가보았더니 8월 한여름철인데 모과나무에서 아주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이토록 기이한 일을 겪게 된 스님은 새벽 6시 공사감독에게 전화를 걸어 나무 옮기는 일을 취소시켰다. 바로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1993810일의 일이었다.





    '대웅보전' 앞에는 '다층석탑'이 있다.








    공양당 옆의 요사



    지금의 선원인 보광전 자리에 있어야 할 대웅보전이 사찰 들머리에서 뚝 떨어진 위치에 자리하고 있다정면 5칸 측면 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인 이 전각은 1998년 대작불사 끝에 완공된 대형 법당이다.




     

    내부에는 1997년 점안한 청동 석가모니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이 삼존불은 중앙에 석가모니불을, 양옆으로 약사여래불과 아미타불이 각각 좌우 협시하고 있는 형태로 이 경우 전각의 격을 높여 대웅보전이라 이름한다후벽으로 1997년 조성한 후불탱이 걸려 있고





     아미타불 좌측 옆으로 칠성탱이 있으며





    대웅보전 양벽에 각각 지장단과 신중단이 마련되어 있다.

















    대웅전 어간 문 위로 나투신 쌍용...






     대법사 대웅보전 문살이 참으로 곱다...









    대웅전 어간 문 위로 나투신 외부의 쌍용...





    대웅전 어간 문 위로 나투신 법당 내부의 쌍용...





    법당 좌측면





    측문





    다포계 팔작지붕 처마가 장엄하다...





    법당 우측면





    대법사에 전해오는 모과나무 설화 이야기를 그냥 무시해버리기에는 현재의 대법사 구조가 참으로 이상하다. 대웅전이 있어야 할 자리에 선방이 들어섰고 모과나무는 그대로 놔둔 채 주전각인 대웅보전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지어졌기 때문이다. 수십억원을 들여 대규모 불사를 하면서 본존불을 모시는 주전각을 경내 중심에서 뚝 떨어진 곳에다 짓는, 전통사찰 건축양식에서 보면 크게 어긋나는 불사를 한 대법사의 이야기는 사명대사의 원력이 작용했다는 것 외에는 달리 설명할 길이 궁색하다.

    사명대사의 혼을 잇고 있는 경남 밀양 대법사는 현재 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회장을 맡고 있는 지혜스님에 의해 불자들이 본분을 깨닫게 하는 청정수행도량으로 거듭나고 있다.  




    대웅보전 앞에서 바라본 대법사 전경이다..















    삼성각


    대웅보전에서 '' 자 위치 계단 위에 자리한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익공계 맞배지붕을 택해 소박함을 표현하고 있다.





    1998년 건립되었으며 내부에  산신탱과





    칠성탱 





    독성탱을 봉안하고 있다.








    사명대사의 지팡이가 자라났다는 모과나무가 보광전 앞을 지키고 있다.










    모과나무 뒤에는 선방인 보광전이 자리하고 있다.







    대법사에는 조계종 원로회의 수석부의장 지천 지혜(智天 智慧) 대종사가 주석하고 있다.   평생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좀처럼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스님이 주석하고 계신 대법사 마당에 서니 설레임과 긴장감이 동시에 교차한다. 





    지혜 스님은 30여 년 제방선원을 다니다가 1969년부터 대법사에서 주석했다. 평생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며 좀처럼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스님을 혹시라도 친견할수 있을까 하는 설렘과 긴장감이 동시에 교차했다.

















    지혜 스님은 보광전 한쪽에 마련된 작은 방에 계셨지만 우리 같은 중생은 감히 친견을 해볼수가 없었다.





    보광전 앞에서 삼배의 예를 갖추며 스님의 강령함을 기도 올린 후 조용히 보광전을 물러 나온다..





    용왕각은 대웅보전과 마주보는 거리가 일직선상으로 적어도 300 m는 족히 되어 보이는 언덕 위에 위치한다.










    정면 3칸, 측면 2칸 익공계 팔작지붕으로 지어진 이 용왕각은 대체로 약수터 등이 있는 곳에 콘크리트 보호각으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각 1칸 씩의 건물을 짓는 다른 사찰에 비해 규모가 꽤나 큰 편이다.

    외부 전면 상부에는 용왕각이란 편액이 있다.







    내부 중앙에는 가로 2m정도 되는 용왕탱 1점이 걸려 있으며 삼성각과 함께 1998년 건립되었다






    용왕각에서 내려다본 대법사에는 운무가 많이 없어지고 대신 용왕각쪽에 운무로 가득하다..









    다시 사천왕문을 나와서...








    넓직한 대법사 주차장에서 위로 올려다 본 3개의 기태극기와 2개의 불기(佛旗)가 게양되어 있는 대법사를 뒤로 하고....  

    오늘 마지막 여행지 땀 흘리는 표충비와 홍제사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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