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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석굴암의 가을사찰여행/경상도 2016. 11. 19. 17:54
경주 석굴암의 가을
2016. 11. 19.
2016. 11. 16 ~17 (1박 2일) 대학친구들과 경주에서 1박 2일 ~
오늘 첫날 일정은 분황사, 대릉원을 보고 양남 대본리로 이동 후 점심 식사 후 이견대에서 문무왕릉을 바라보고 천천히 석굴암으로 이동, 석굴암을 보고 저녁 식사 후 동궁과 월지 야경 관람 후 컨싱턴 리조트 경주점에서 1박 예정이다.
가을의 분황사. 대릉원을 보고 문무대왕릉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가을색이 고운 석굴암으로 이동한다 ...
석굴암 가는 길은 가을색이 곱다..
눈물이 날 만큼 이쁜 가을이다...
이쁜 단풍길을 돌아 돌아 석굴암 주차장 도착이다...
석굴암 주차장에 내리면 바라다 보이는 불국대종각 이다..
저만치에 석굴암 일주문이 보인다..
‘토함산석굴암’ 이라는 현판이 달린 석굴암 일주문
석굴암은 일주문을 지나 노약자도 걸을 수 있는 잘 정비된 산책길 같은 길을 따라 20분이면 갈수 있는 곳이다.
토함산의 경관이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동해의 습기와 바람이 워낙 변화가 심해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사납게 굴다가도 안개와 바람이 걷히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아름다운 소나무와 산봉우리가 한 폭의 동양화 그림처럼 나타나게 되어 동해 바다의 잔잔한 수평선 위로 해가 가득 떠오르고 붉은 태양이 토함산을 넘어 갈 때의 전경이 마치 '토해낸다'할 정도로 그 변화가 심해 지명이 되었다는 설이 유래되고 있다.
모쪼록 동해의 해를 머금은 기운이 부처님 광명으로 발현되는 뜻의 산이름 이다. 여기 토함산에 불국사와 석굴암이 위치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매표소에서 석굴암까지 걸어가며 보는 토함산 숲속 전경이다..
입장료 5,000원의 표를 끊고 석굴암까지 이어진 길을 천천히 산책하며 걸어서 올라간다. 경사가 완만해서 쉽게 걸어 올라갈 수 있었다.
토함산은 날씨가 변화무쌍하여 동해바다에서 불어오는 해풍에 섞인 구름과 안개를 머금고 토해내는 산이다.
석굴암입구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이렇게 도보로 산책을 하듯 약 20분을 걸어 들어가면 저 멀리 산에 고즈넉이 암자가 보이는데 그곳이 바로 석굴암 본존불이 모셔져 있다.
석굴암 마당에서 바라본 좌측의 석굴암과 우측의 수광전을 올려다 본다.
석굴암 마당에서 바라본 석굴암이다.
석굴암(石窟庵)은 대한민국 경주시의 토함산 중턱(진현동 891)에 위치하여 있는 석굴 사찰(石窟寺刹)이다.
신라 경덕왕 10년(751년)에 불국사를 대대적으로 증수할 때 재상 김대성에 의해 처음 세워졌으며, 신라의 건축과 조형미술이 반영되어 있다. 석굴암의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였으나, 일제강점기 이후로 석굴암으로 불리고 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석굴이며, 1913년 이후로 일제가 수차례 해체· 조립· 수리하기 전까지는 원형을 유지하였다.
현재는 부실 복원에 따른 습도 문제로 유리벽으로 막아 보존되고 있다.
석굴암 석굴은 신라 불교예술의 전성기에 이룩된 최고 걸작으로 건축, 수리, 기하학, 종교, 예술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어 더욱 돋보인다. 현재 석굴암 석굴은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으며, 석굴암은 1995년 12월 불국사와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공동 등록되었다.
석굴암 마당에서 바라본 수광전 모습이다...
석굴암 오르는 길을 올라 본다...
석굴암을 오르내리는 양쪽의 길 옆에는 일제때 복원하고 버려진 석재들이 산재해 있다.
석굴암 오르는 길의 석재들..
새로운 부자재로 바뀐 돌들이 그 임무를 다하고 쉬고 있는 것이다.
이 중 대체되지 않은 석물도 발견되어 그 용도에 대해 궁금증을 남기고 있는 석물도 있다고 한다.
왼편의 계단을 따라 현재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는 석굴암 석굴을 보러 간다..
이곳으로 들어가면 석굴암의 아름다움을 감상하실 수 있다.
석굴암이 지어질 당시에는 석굴암 앞에 전각이 없었지만 1960년대에 보수공사를 하면서 석굴을 보호하기 위해 전각을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삼국유사에는 불교의 윤회설에 따라 당시 재상이었던 김대성 자신의 전생의 부모님을 위해 석굴암 석불사를 지었고 현생의 부모를 섬긴다는 뜻에서 불국사를 창건 하였다고 한다.
석굴암 내부 / 사진출처 : 우리역사넷
석굴암 내부로 물론 촬영한건 아이다! 유리벽 넘어로 석굴암을 보고 있으면 딱 이정도 시야가 확보 된다. 본존불의 온화한 미소가 보인다. 근엄하고 웅장한 모습에 정말 오랫동안 쳐다 보고 있었다.
석가모니 끝 깨달음을 얻을때의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 하는데 깊은 감명에 잠긴 듯 하며 불상전체에 생동감이 있어 보인다.
전각 안으로 들어가면 유리벽으로 보호된 석굴암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유리벽 자체가 반사가 심해서 안 쪽의 모습을 뚜렸하게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긴 했지만.....
보호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라도 볼 수 있음에 감사하며....
석굴암은 첫번째 나오는 사각형 모양의 방인 '전실'과 안쪽에 있는 둥근 원형의 '주실'로 나뉘어지는데 사각형은 '땅'을, 원은 '하늘'을 뜻하므로 '천지 = 우주'를 뜻한다고 하며 땅은 인간이 살고 있는 세속, 하늘은 진리를 나타내는 불교의 사상을 표현했다고 한다.
석굴암의 내부는 수학적으로 정확한 비례를 이루고 있는데 사각형의 전실의 너비는 안쪽의 원의 지름과 길이가 같다고 한다.
이 밖에도 수많은 수학적 원리들이 너무 많이 숨어있어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 정도이다.
또한 둥글게 쌓아올린 주실 천장의 중심부에는 천장 덮개돌 '천개석'이 있는데 세 조각이 깨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일연의 삼국유사에 따르면 천개석을 만들다가 세 토막으로 갈라졌다고 씌여 있는데 그 흔적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이라고 한다.
천개석에 얽힌 김대성의 꿈 이야기도 있는데,
본존불을 조각하기 직전에 석굴 천장의 돌 덮개를 만들던 중 갑자기 돌이 세 조각으로 깨져 버려서 김대성이 분을 삭이지 못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천신이 내려와서 덮개를 다 완성시켜 주고 돌아갔다고 한다.
꿈에서 깬 김대성이 석굴암을 보니 꿈에서 본 그대로 덮개석이 원래의 위치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보고 감동하여 천신께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본존불상 머리 뒤쪽에는 둥근 모양의 '광배'가 있는데 '광배'는 부처님의 신비함과 위대함을 장엄하게 표현하기 위해 빛이 비추는 것을 표현한 것인데 석굴암에서는 이 둥근 광배가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키가 작은 사람이 보면 머리 위쪽으로 올라간 듯 보이고, 키가 큰 사람이 보면 아래쪽으로 내려간 듯 보이는데 눈높이가 160cm인 사람의 키 기준으로는 정확히 머리 중앙에 위치해 보인다고 한다.
그 이유인 즉.... 사람의 시선 높이에 따라 발생하는 착시 현상을 줄이기 위해 광배를 정확한 원형이 아닌 약간 길쭉한 타원형으로 만든 과학적 원리가 숨어있기 때문이라 한다.
석굴암 입구에서 바라본 풍경이다..
전각 뒤의 봉분처럼 보이는 곳의 아래에 석굴과 본존불이 있다. 조선 후기 200년 동안 흙속에 묻혀 있었다하니 부끄러운 생각이...
석굴암에서 바라본 수광전 모습이다...
석굴암에서 바라본 전경으로 수광전 아래로 경주시 양북면의 들판과 문무왕릉쪽의 바다가 보인다...
새벽에 이 곳에 서 있으면 동해 일출도 보이겠지?
석굴암에서 수광전으로 내려간다..
수광전 마당에서 바라본 석굴암 전경이다..
석굴암 아래로 수광전이 자리하고 있다..
석굴암 수광전 내부에 모셔진 아미타여래좌상, 협시보살 없이 독존으로 모셔져 있다.
아미타여래좌상 바라보며 좌측으로 칠성탱과 황금빛의 산신과 독성
아미타여래좌상 바라보며 좌측으로 신중탱이 잇었다..
석굴암 수광전 앞의 멋진 석등
수광전 앞마당에 설치된 석탑이 파아란 가을하늘을 베게삼아 혼자 거뜬히 서 있었다.
탑 중간 구멍으로 통하여 가을 하늘을 한번 오랫동안 쳐다 봤다.
수광전 앞에서 내려다본 스님들이 기거하는 보월료
석굴암을 둘러보고 내려오다 보면 보수 과정 중에 교체된 석물들도 전시되어 있다.
수광전에서 스님들이 기거하는 보월료로 통하는 협로이다..
석굴암의 옛 석물들이 있는 쪽에서 바라본 수광전의 모습이다..
감로천이 있는 석굴암 큰 마당으로 내려 간다..
스님들이 기거하는 보월료에는 동안거 기도 중이란 현수막이 붙어 있다..
의외로 석굴암에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전각들이 제법 큰 규모였다..
다시 석굴암 마당에 올라와서 물맛 좋기로 유명한 석굴암 감로수를 마셔본다..
석굴암 앞에는 '감로수'라 불리는 약수도 있는데 석굴암 바로 아래로 부터 흘러나오는 샘물이다. 석굴암은 바로 이 샘물위에 지어졌는데 석굴암을 샘물 위에 지은 이유인 즉.....
여름철 습기가 많은 공기로 인해 돌에 이끼가 끼고 물기가 스며들어 나쁜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막기 위해 신라인들은 조각상들에 습기가 닿지 않게 해서 밖으로 빼내는 방법을 고안했는데 일부러 바닥을 차갑게 만들어서 차가운 석굴암 바닥에 닿은 공기는 바닥으로 가라앉고 이렇게 석굴암 바닥에 고인 습기들이 샘물과 함께 밖으로 흘러내려온 것이 '감로수'라고 한다. 석굴암 바닥이 습기제거제인 것이다.
이 감로수에는 신라 4대왕인 석탈해에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고 한다.
석탈해가 왕이 되기 전...
토함산에 사냥을 나갔다가 목이 말라 부하에게 물을 떠오라 지시 했고.... 부하는 동해가 바라보이는 큰 바위 밑에 맑은 샘물을 발견하고 물을 떴다고 하는데 부하는 물을 가져가던 중... 자신도 목이 말라 먼저 조금 마시자 입이 표주박에 붙어 버렸고 당황한 부하는 석탈해에게 다시는 먼저 물을 마시지 않겠다고 맹세한 후에야 표주박에서 입이 떨어졌다고 한다.
독특한 모양의 손씻는곳이다..
석굴암 마당에서 바라 본 석굴암 바로 아래의 수광전 모습이다.
석굴암이 있는 토함산은 신라 사람들 사이에서 신령스러운 산으로 여겨진 곳이자 군사적인 요충지였다고 한다.
신라 사람들은 도읍지인 서라벌 주위에 위치한 다섯 개의 산(오악)을 신성시했는데....
토함산도 그 중 하나이므로 토함산 정상 동쪽에 석굴암을 세웠다고 한다.
더불어 바다로 들어오는 왜군을 항복시키려는 의지를 담고 있기도 하다.
토함산 석굴과 본존불상은 곧 신라 왕실의 번영와 해적 왜구를 물리치기 위한 국가 안녕의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토암산은 해발이 좀 있으니 거의 단풍은 낙엽되고 이렇게 겨우 몇잎의 단풍만이 가을을 붙잡고 있었다..
다시 석굴암에서 매표소까지 걸어 나가며 보는 토함산 숲속 전경이다..
일주문 도착이다...
석굴암 일주문도 지나고 불국대종각도 지난다..
주차장에서 내려다본 경주 들판과 하늘이 참 이쁘다..
다시 단풍이 고운 이쁜 길을 달려 경주 시내로 내려 간다...
2016. 11. 16 ~17 (1박 2일) 대학친구들과 경주에서 함께한 1박 2일~
가을의 분황사와 대릉원을 보고 문무대왕릉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시 가을색이 고운 석굴암도 보고 저녁 식사하러 불국사 지구의 한정식 식당인 '쑥뿌쟁' 로 이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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