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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니 참선도량 대승사의 부속암자 윤필암(경북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17번지)사찰여행/경상도 2015. 9. 15. 16:40
비구니 참선도량 대승사의 부속암자 윤필암
2015. 9. 15.
2015. 9. 14.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에서 108순례로 이번에는 가까운 경상북도 문경의 윤필암과 대승사 그리고 김용사로 나들이 기도를 출발한다.
경북 문경은 '기쁜 소식을 듣는 곳'(聞慶)곳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경에 갈 마음이 설렌다. 오늘은 어떤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까?
07:00 출발하여 대승사를 10:00에 도착하여 주차 후, 대승사 너머엔 새색시 같은 고운 자태를 감추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 선방으로 알려진 대승사의 부속암자인 윤필암을 걸어서 미리 순례 후 대승사로 간다...
사불산 대승사의 암자인 윤필암(潤筆庵)은 고려 우왕 6년(1380년) 에 각관대사가 창건하였으며, 1645년 서조(瑞祖)와 탁잠(卓岑)이, 1765년 야운(野雲)이, 1806년 취운 종백(醉雲 宗伯)이 각각 중건하였고, 1885년 고종의 명으로 창명(滄溟)이 중건하였다 한다.
윤필암은 고려 나옹화상(懶翁和尙)의 출가처(出家處)이며 수덕산 견성암, 오대산 지장암과 더불어 3대 비구니 사찰이다.
그러나 현재 전하는 모습은 1980년대 대대적으로 건물들을 새로 조성한 것이라 고졸한 옛 멋은 덜하다.
현재 윤필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의 말사인 대승사 부속암자이다.
비록 대승사의 산내 암자라고는 하지만 창건 이래 참선도량으로 명맥을 유지하여 왔으며 여느 사찰규모 정도의 크기와 하안거와 동안거시 많은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로 알려져 사시사철 스님과 신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비구니들의 수도도량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산내 암자 치고는 그 규모가 왠만한 산사의 본절과 맞먹을 만큼 그 규모가 큰 편이다 .
윤필암이라는 명칭은 원효와 의상이 각각 사불산의 화장사와 미면사에서 수행할 때 의상의 이복동생인 윤필이 이곳에 머물렀다 하여 이름지어졌다 한다....
윤필암과 묘적암은 대승사에서 조금 내려간 갈림길에서 차를 타고 이동이 가능하기도 하지만 윤필암 가는 길은 산자락에 나 있어 편안히 걸을 수 있는 길어서 천천히 산길을 즐기며 걸어 보기로 한다.
오른쪽은 대승사, 왼쪽은 윤필암과 묘적암 가는 길, 커다란 소나무가 이정표처럼 서서 잠시 마음을 쉬어가라 이른다...
대승사 윤필암 오르는 길은 대승사 대웅전 옆 산길도 있지만 윤필암에서 대승사로 내려 올때에 그 길로 오기로 하고 넓은 길을 따라 윤필암으로 향한다.
낮인데도 어두컴컴할 정도로 하늘로 쭉쭉 뻗은 전나무와 상수리나무 등이 마치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듯한 분위기다. 이 길 역시 시멘트 길이지만 나무를 오르내리는 다람쥐와 청설모 등을 눈으로 담다보면 땅보다는 나무를 보고 걸을 일이 더 많다.
삼거리에서 왼쪽 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쭉 뻗은 숲길이 나온다.
맨발로 걸을 수 있는 황톳길은 아니지만 길옆으로 늘어선 전나무와 팽나무, 굴참나무 등이 한껏 아름다움을 뽐낸다. 가을 단풍이 절정에 이르면 이 길의 풍경도 노랗고 빨갛게 변한다. 대부분은 차를 가지고 윤필암 입구까지 오르지만 숲길을 제대로 즐기려면 대승사 입구에 세워두고 걷기를 권한다. 아무리 천천히 간다한들, 차 안에서 고개만 쏙 내밀고 감상하기엔 너무 벅찬 풍경이다. 더구나 살짝 땀이 난 피부에 와닿는 가을바람의 느낌을 빼놓고선 철이른 단풍놀이가 심심해지기 때문이다.
얼마간 길을 걸으면 이윽고 두 번째 갈림길에 들어선다.
윤필암과 묘적암. 오른쪽으로 가면 윤필암, 왼쪽으로 가면 묘적암이다. 하지만 여기에선 그리 큰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길이 굽어 잘 보이지 않지만 윤필암은 이정표에서 불과 100여m밖에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묘적암까지는 500여 미터의 산길을 또 올라야 한다. 우리는 윤필암으로...
문경 대승사 윤필암은 청담스님의 딸 묘엄스님이 열네살 꽃다운 소녀시절 출가한 사찰이다.
스님의 회고집 <회색고무신>에는 60여년 전 윤필암에서 발심수행한 묘엄스님의 소박하고 단아한 삶이 가감없이 담겨 있다.
묘엄스님의 <회색고무신>에 실린 크고 작은 에피소드들이 스며있는 듯 정답다.
드디어 윤필암 경내에 도착이다... 상사화와 쑥부쟁이가 반갑게 나그네를 맞는다.
윤필암 입구에 도착하니 입구의 연못에는 거북바위가 있고 거북바위 주변에 금붕어가 반긴다. 기도도량인지라 조용하고 한적하다.
그 연못 위로 사불전이 보인다..
조용하고 깨끗한 윤필암 입구를 들어 선다.
대승사 부속암자 윤필암은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로 비구니 스님들의 선방이다. 비구니 도인으로 알려진 선경 스님이 90년대 중반 열반 전까지 머문 곳이다.
입구 약수로 목을 축이고 마음을 가다듬고...
윤필암은 암자라고 하기엔 규모가 큰 편이다.
1380년 처음 지어진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가 되다가 1980년 초에 아예 모든 건물을 새로 지었다. 그래서 흔히 보아오던 암자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세련된 모습이다.
윤필암은 수덕산 견성암, 오대산 지장암과 함께 3대 비구니 선방으로 유명하다. 비구니 스님들이 머무는 곳이라 조경에 특히 신경을 쓴 모양이다. 워낙 산세가 아름다운 덕분이기도 하지만 곳곳에 꽃을 심고 정원을 꾸며 마치 풍광 좋은 한옥 펜션을 연상케 한다. 사실 윤필암은 꽃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꽤 이름이 있는 곳이다. 여러 종류의 야생화를 모아 매년 전시회를 열고 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윤필암은 ‘꽃보다 아름다운 스님들의 도량’이라는 이름으로 더 자주 불리곤 한다.
스님들의 공부를 방해할 수 없어서 입구에서만 바라보고 약수만 한그룻 마시고서 윤필암 사불전으로 향했다. 윤필암은 암자라 하기에는 큰 규모였지만 암자가 갖는 고요함은 잘 지니고 있었다.
윤필암을 들어 간다. 윤필암은 꽃이 잘 가꾸어져 천상의 화원과 같다. 스님들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지는 듯하다.
아름다운 조경과 너무 조용해서 발자욱 소리도 조심스럽게 느껴지는 도량 윤필암.
대승사에서 약 1.5km떨어진 사면석불 서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윤필암은 아름다운 전각과 주위 풍광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었다.
왼편과 오른편의 산들이 윤필암을 포근히 감싸주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라 우리들이 들어갈 수 있는 전각은 오른쪽의 관음전과 마주 보이는 사불전 뿐이다.
관음전(觀音殿) 건물은 정면 7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큰 건물이다.
정면 7칸짜리 건물 전면에 윤필암이란 편액과 관음전. 적묵당 현판이 같이 걸려 있다.
윤필암에는 관음전과 산신각. 선원 등 다양한 전각을 갖추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전각이 바로 사불전이다.
선경 스님이 열반 때까지 머문 윤필암의 백미는 사불전이다. 사불전엔 불상이 모셔져 있지 않다. 대신 통유리 너머로 산 정상에 서 있는 사면석불을 향해 예불을 올린다.
이 사불전에서 1천일 기도 중인 한 비구니 스님은 "밤에 기도를 하다 보면, 모든 소나무들이 사면석불을 향해 예배를 하고 있다" 면서 "신묘한 일"이라고 말했다.
사불전으로 가는 길목의 아담한 석교는 얼마나 앙증맞고 예쁜지 감히 신발 신고 건너기가 미안할 정도다. 사불전은 장방형 연지를 가로 질러 올라가야 한다.
사불전 가기전 조그만 못 가운데를 건너는 돌 다리... 다리 난간의 사자의 모습이 귀엽다.
윤필암 사불전에도 사불산 정상의 하늘에서 내린 사면 석불을 바라볼수 있게 통유리창을 해 두었다
사불전 뒤편 바위 언덕에는 삼단 연화문 문양으로 피어난 삼층석탑 한 기도 자리하고 있다 .
• 대승사의 산내 암자인 윤필암의 삼층석탑은 사불전(四佛殿) 뒤편에 솟아오른 자연석 바위면 꼭대기에 위치한 탑으로서 옥개석의 연화문양 등 양식상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에 속하는 탑으로 추정된다.
• 전체 높이 2m로서 비교적 아담한 크기의 탑으로 자연 암반을 이용하여 기단 저석 및 하층기단을 형성하고 있다.
• 이 곳에 탑을 만든 이유를 정확하게 알기는 어렵지만 대략 2가지 정도로 좁혀 볼 수는 있겠다. 탑 아래에 사불전이 위치하고 있다. 사불전 안에는 특이하게도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 않다. 왜냐면 사불산 중턱에 사방불 부처님이 계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건물이 있는 사찰을 적멸보궁(寂滅寶宮) 사찰이라 부르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통도사 금강계단, 영월의 법흥사, 정선의 정암사, 오대산 중대, 설악산 봉정암으로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 사찰이라 한다. 이 5곳의 사찰의 중심영역 건물에는 모두 부처님을 따로 모시지 않는다. 왜냐면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기 때문이다.
• 이와 같은 맥락으로 볼 때 윤필암 사불전 뒤편 삼층석탑은 사불산 중턱에 위치한 사불암과 함께 마주보게 하려고 의도적으로 이 위치에 건립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 보인다. 이렇게 마주봄으로써 지세에 맞추어 불상과 탑파의 대칭을 이루도록 한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오른쪽 편은 바위로 되어 있어 강한 정기를 삼층석탑을 세워 기를 누르려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 중 하나는 윤필암의 지세로 볼 때 오른편 산자락은 숲이 우거지고 맥 또한 크며 윤필암을 휘감고 있는 형상이어서 크게 허한 곳이 없지만, 윤필암의 왼편 산자락은 암반층으로 연결되어 있어 위치적으로 허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허함을 채우고, 기를 누르기 위해 암반층이 끝나가는 부분에 삼층석탑을 세워 보완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한다. 특히 탑 옆에 서 있는 소나무가 탑과 함께 멋진 하모니를 연출하고 있어 풍광 자체가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다.
바위 위에 있는 석탑은 풍수적인 비보탑(裨補塔)
"윤필암이 앉은 좌향이 청룡은 튼튼한데 백호쪽이 문득 바위가 끊겨 약하기에 이를 풍수적으로 비보(裨補)하기 위해 탑을 세운 것이다. 그래서 윤필암은 천상 비구사찰보다는 비구니 사찰로 적합한 도량이다."
윤필암 사불전은 유리창을 통해 멀리 사불산 四佛岩을 참배할수 있도록 되어 있다.
법당인 사불전에는 불상을 모시지 않고 전면에 통유리 벽면을 설치하여 법당안에서 사불산 사불암을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윤필암 본전인 사불전에 들어가 보면 부처님이 모셔져 있지 않고 전면벽에 박힌 투명한 유리벽을 통해 멀리 사불산 정상이 보일뿐 법당에 부처님은 모시지 않고 사불산 정상에 부처님이 보인다는 뜻으로 유리벽을 통해 멀리 산위의 부처님께 예불하기 때문이다.
사불전 법당 유등이 독특한 양식으로 빚어진 자기 유등으로 촛대 대신 모두가 유등이다.
사불전에서 바라본 사불산 정상 사면석불
법당 내에 큰 창을 내어 정면 멀리에 보이는사면석불상을 모신다고 한다. 실제로 법당에 들어가서 보니 멀리 사면석불상이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대승사 인근에서는 사면석불상에 대한 불심이 예전부터컸다고 한다. 사면석불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3호로 지정되었다.
유리 앞에 서자 사불산의 광경이 꽉 들어찬다. 그런데 그 모습 중에 유난히 눈에 띄는 바위가 있다. 이 바위가 바로 사불암이다.
<삼국사기>에 기록하기를, 붉은 천에 싸인 바윗덩어리가 하늘에서 떨어졌고, 그 네 면에는 불상이 새겨져 있었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신라 진평왕이 몸소 찾아와 예를 올리고 바위가 떨어진 곳 밑에 절을 창건하였으니, 이 절이 대승사이고, 그 바위가 바로 사불암인 것이다. 공덕산이 사불산이란 다른 이름을 가지게 된 것도 이 때문이다.
사불전에 불상이 없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유리에 비친 사불암의 마애불이 바로 불상인 것이다. 바위를 직접 가져다놓을 수 없음에 이렇게 기발한 생각을 한 것이다. 사람들은 유리에 비친 사불암을 보거나 법당 안에서 사불암을 우러러보며 마음속에 부처를 그린다. 말하자면 사불암은 이 산 전체의 불상인 셈이다.
윤필암 법당 사불전의 장엄한 천정
계단을 올라서자 도착한 윤필암 사불전에 참배후 사불전에서 바라본 경치는 정말로 절경이었다.
사불전에서 내려다본 윤필암의 전각들 절 전체가 고요하고 깨끗하다
윤필암 전경이 비구니 스님들의 선방답게 조용하고 고즈녁하다 .
관음전 뒤쪽의 전각은 출입이 금지되어 있다. 스님들이 용맹정진하시는 중이시다.
사불전에서 내려다 본 관음전과 선원
사불전에서 바라본 입구쪽 연못이다.
관음전을 지나 작은 다리를 건너야 사불전을 오른다. 이 암자에서는 사불전이 더 신성하다는 뜻이 담긴 듯도 하다.
윤필암의 전각을 대표하는 사불전 . 기암과 나무에 둘러싸인 사불전은 위용도 당당하다.
윤필암 관음전 주련
白衣觀音無說說 백의관음무설설 자비하신 백의관음 설함 없이 설하시고
南巡童子不聞聞 남순동자불문문 지혜로운 남순동자 들음 없이 듣는구나
甁上綠楊三際夏 병상녹양삼제하 감로병 위 푸른 버들 언제나 여름이요,
巖前翠竹十方春 암전취죽시방춘 바위 앞의 푸른 대숲 온 누리가 봄빛일세.
관음전 안의 관음보살상과 후불탱화
관음전 부처님 위의 장엄한 닫집
관음전 불단 바라보며 오른쪽의 영가단
관음전 마루의 신중탱
관음전 마루의 내부벽화
관음전 마루의 천정 단청
정면 7칸짜리 건물 전면에 윤필암이란 편액과 관음전. 적묵당 현판이 같이 걸려 있다.
정면 7칸짜리 건물 전면 중앙에 윤필암이란 편액
관음전 편액
적묵당 편액
관음전 좌측의 적묵당 뒤쪽은 선원으로 출입을 금하고 있었다.
적묵당 앞의 스님들이 정성들여 키운 고운 화분들..
사불전 앞에 있는 불유
관음전 우측의 공양당이다.
수수한 모습의 관음전과 다르게 단청도 화려한 사불전
곳곳에 꽃을 심고 정원을 꾸며 마치 풍광 좋은 한옥 펜션을 연상케 한다. 특히 봄에 온통 야생화들이 일제히 만개하면 암자가 잔치집을 연상한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비구니 선방의 하나인 윤필암은 만공선사의 제자로 비구니 선맥을 연 법희 선사와 본공· 인홍 등 내로라 하는 비구니 선승들이 거쳐간 곳이다. 지금도 매년 여름, 겨울 안거 때면 20여명의 선객들이 참선 수행을 하는 대표적인 비구니 참선 도량이다.
윤필암은 정갈한 비구니들의 살림살이가 느껴질 만큼 경내가 깨끗하게 정돈되었다.
깊은 골짜기에 있는 음터인데도 불구하고, 비구니 스님들의 정성에 의해 아주 양명한 기운이 느껴질 만큼 빛이 났다.
관음전 뒤 사불선원 앞 마당에 있는 삼층석탑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596호)
윤필암 선원 앞 추정 삼층석탑은 옥개석과 옥신석의 형태로 보아 전형적인 고려 초기에 해당하는 석탑이며 2층 옥개석 까지는 원형을 유지하고 있으나 3층 옥신석과 옥개석이 깨어져 정확한 형태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윤필암은 비구니 도인으로 알려진 선경 스님이 90년대 중반 열반 전까지 머문 곳이기도 하다.
선경 스님은 일자무식에 얼굴까지 박색이었다고 하고 19살에 시집을 갔지만 첫날밤에 서방으로부터 소박을 맞았다고 한다. 그 후 충남 공주 마곡사 영은암에 출가했는데, 예산 수덕사 견성암에 가면 비구니들도 참선을 공부할 수 있다는 소문을 듣고, 무작정 수덕사로 만공 선사를 찾아가 "화두를 달라"고 했다.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만공은 "네까짓게 무슨 공부냐“ 면서 "일이나 하라"고 공양간으로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선방에 보내 공부를 시키면서 자기는 부엌데기로 부려먹기만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그러다 선경 스님은 견성암에 이어 두번째로 비구니 선방을 연 이곳 윤필암까지 찾아와 대승사 조실 스님에게 "화두를 달라"고 졸랐다고 한다.
그러자 선경 스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대승사 조실 스님도 "네까짓게 무슨 공부냐" 면서 "일이나 하라" 고 했다.
그렇게 구박을 당하면서 사정사정해 겨우 선방에 앉게 된 선경 스님은 "시집가서 서방에게 첫날밤에 소박맞은 이래 절에서도 끊임없이 구박만 받는 것이 너무도 서러워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고 한다.
그러나 소리 내어 울면 천신만고 끝에 들어간 선방에서 남의 공부를 방해한다 해서 쫓겨날까 두려워 소리도 내지 못한 채 손수건을 빨래 짜듯이 짜내면서 눈물을 흘렀다고 한다.
그렇게 일주일 가량 눈물을 쏟은 뒤 어느날 하얀 종이 같은 것에 까만 글씨가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일자무식인 선경 스님이 그 글자를 알 리가 없었다.
그때부터 그 글자에 대한 의문 때문에 잠이 오지 않았다고 한다. 저절로 그 글자가 화두가 된 것이다. 그렇게 화두에 일심을 모은 며칠 뒤 그의 기억의 필름에 전생이 훤하게 비쳤다고 한다.
그는 전생에 속리산 법주사에서 살았는데, 아주 지식이 출중하고, 잘 생긴 비구 스님이었다고 하는데 자신의 용모와 지식을 뽐내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네까짓게 뭘 알아!" 라고 힐난했다고 한다.
그러다 파계했던 그 비구 스님은 열반 직전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 모든 진리는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로 돌아가는가) '라는 화두를 참구했는데, 선경 스님의 기억 필름 속에 그 화두가 나타났던 것이었다.
선경 스님의 전생을 내다봤던 만공선사와 대승사 조실 스님이 당시 스스로 전생의 업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전생에 그가 사용하던 말투대로 "네까짓게 무슨 공부야!" 라며 힐난 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필암은 둘러볼 수 있는 공간이 한정되어 있다. 스님들의 수행도량이기에 관음전 뒤로는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된다. 하지만 ‘발길을 돌려주세요. 스님은 공부 중’ 이란 애교 섞인 문구 덕분에 기분 좋게 발길을 돌린다.
부처님 만나고 내려가는 길..
솔솔 불어주는 바람이 있으니 발걸음은 가볍고 마음은 편안하다. 비구니들의 암자라서 그런지 유난히 단아해 보이던 윤필암을 한 바퀴 둘러보고 대승사를 향했다.
윤필암에서 대승사로 가는 길은 윤필암 측면에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1km 정도 걸어 가기를 권하고 싶다....
윤필암 가는 산모퉁이 길에 주인 없는 부도탑 같아 보이는 대승사 牛 부도
나무 하나 돌 하나도 정갈하게 한 데 어우러진 한 식구처럼 도열한 윤필암에서 장군샘으로 넘어 가는 산길 옆 숲엔 '우(牛)부도'가 있다.
절 중창 때 소리없이 짐을 실어 나르고 불사가 끝나자 몸을 벗어버렸던 소를 기린 부도로 우리나라에서는 드물게 소를 대상으로 조성한 것이라 한다.
어느 스님의 부도 처럼 평범한 부도이지만 큰 비가 내리면 빛을 발한다는 전설과 함께 전해져 온다.
대승사에서 윤필암으로 향하는 중간 지점 즈음에 길이 두 갈래로 나뉜다
한 쪽 길은 윤필암에서 대승사로, 다른 한 쪽 길은 가파른 산길로 이어지는데 대승사쪽으로 내려서지 말고 위로 치고 올라 이 산길을 향해 15분 정도 걸으면 대승사의 창건설화를 담고 있는 사방불을 만날 수 있다.
사불암쪽 방향 윤필암에서 대승사 가는 중간 . 장군수 팻말, 가는 길목에 장군수 약수 한모금....
장군수 약수 주변의 흩어져 있는 석재들...
사불암까지는 오롯에 오르막 길이다. 그래도 먼길이 아니다.
조용함을 즐길수 있는 것이 또한 이 길의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도 없다. 등산로와 등산객이 있기는 하지만 윤필암 가는 길과는 달라서 이쪽으로 오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 하다.
400m 쯤 숨이 가빠질 때쯤이면 사불암 바위에 도착이다.
윤필암에서 30여분 산을 타고 올라 사불바위에 오르니 마치 하늘에서 떨어지듯 아래 바위와는 분리된 비석 같은 바위의 앞뒤 좌우에 불상이 도드라져 있었다. 바로 삼국유사에도 나와 있는 사불바위다.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403호로 지정되어 있는 사면석불에 올랐다.
정상에 홀로 서 있는 사불바위, 그 이름은 바위 네 면에 부처가 새겨져 있다고 해서 붙여진 것이다. 하지만 한면을 제외하고는 모두 세면의 부처님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는 부처님들의 흔적은 오랜 세월의 비바람에 다 마모되어 형상이 희미하다.
사면불 바위에서 바라보니 대승사 산내 암자인 묘적암과 윤필암이 마치 동화 속의 집처럼 숲 속에 숨어 있었다.
사불암을 내려서니 윤필암에서 대승사로 이어지는 산길 갈림길에 도착이다.
윤필암에서 초록이 물든 산모퉁이를 돌아 사불암으로 오르는 삼거리를 지나 10여분 거리에 위치한 대승사로 내려 선다.
심산의 정기를 받은 듯이, 부처님의 은덕을 받은 듯이, 가벼운 마음으로 조붓한 산길 따라 산 모통이를 돌아 비구니 절집답게 가지런히 정돈되어 단정한 윤필암을 벗어나 대승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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