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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창건설화가 있는 곳, 대승사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8번지)
    사찰여행/경상도 2015. 9. 16. 20:56

    아름다운 창건설화가 있는 곳, 대승사

     

     

     

     

    2015.  9.  16.

     

     

     

     

    2015.  9.  14.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 에서 108순례로 42명이  이번에는 가까운 경상북도 문경의  대승사와  윤필암 그리고 김용사로  나들이 기도를 출발한다.

    경북 문경은 '기쁜 소식을 듣는 곳'(聞慶)곳이란 뜻이다. 그래서 그런지 문경에 갈  마음이 설렌다. 오늘은 어떤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까?

    07:00 출발하여  대승사를  10:00에 도착하여 주차 후,   대승사 너머엔 새색시 같은 고운 자태를 감추고 있는 비구니 스님들의 수행처 선방으로 알려진 대승사의 부속암자인 윤필암을 걸어서 먼저  순례 후 아름다운 창건설화가 있는 곳 대승사로 와서 12:00 공양간에서 점심공양 부터 하고 대승사를 천천히 돌아 보러 간다...

     

     

     

     

     

     

     

     

    사불산 대승사’라는 표석을 보고 산길을 오른다.

     

     

    대승사는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사불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대승사의 창건 설화로

     사불산의 본래 산명은 공덕산이었다.   그러나 <삼국유사>권3  <사불산; 굴불산; 만불산>의 내용에 따르면 “죽령 독쪽 백여리 지점에 높이 솟은 산봉우리가 있는데,  진평왕 9년 갑신년에 홀연히 사면 10자 정도되는 큰 돌이 사방에 불상을 새겨 붉은 비단에 싸여 하늘로 부터 산의 꼭대기에 내려왔다.   왕이 이 사실을 듣고 수레를 타고 가서 예경하고 그 바위 곁에 절을 지어 대승사라 하였으며, <법화경>을 독송하는 망명(이름을 밝히지 않은) 비구를 청하여 절을 주관케 하였더니, 그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고 돌에 공양하여 향화가 끊이지 않았다.   산을 덕산, 또는 사불산이라 하였다.   비구가 죽자 장사지냈더니 무덤 위에서 연꽃이 나왔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이 절은 ‘천강사불하고 지용쌍련’의 설화로서 더욱 잘 알려져 있다.

    하늘에선 부처가 하강하고,  땅에선 깨달음의 상징인 연꽃이 솟아오른 전설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대승사에 오면 그 고적하면서도 아름다운 분위기에 반하게 된다.

     

    임진왜란 때 전소된 뒤 법당 등 전각을 신축하였다고 한다.  철종 대에 다시 난 불로 명부전과 응진전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자 각종 전각을 중건하였고,  1872년 극락전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1956년 또다시 화재로 대부분의 건물이 소실되었고 1966년에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래된 전각은 명부전,  응진전,  극락전에 불과하나 전반적으로 건축물이 전반적으로 우람하고 지붕선도 복잡하며 지붕을 인 낮은 담이 전각마다 둘러싸고 있는 특징을 보이고 있었다.

    아직도 공사는 진행 중이었으며 뒷산을 배경으로 계단식으로 건물이 배치되어 있는데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극락전· 나한전· 시왕전· 선원· 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묘적암· 윤필암· 상적암 등이 있다.

    윤필암에는 사불전이 있는데 적멸보궁처럼 따로 불상이 없고 사불산 정상을 행한 유리창만 있다는데 정상에 있는 사불바위를 향해 참배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승사는 현재 금동관음보살좌상 등 보물 3종,  명부전 지장탱화 등 경상북도유형문화재 7종 등의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고 한다.

     

     

     

     

     

    승용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정도로 좁은 길 양쪽으로 끝간 데 없이 이어지는 울창한 송림만 있을 뿐이다.  

     

     

     

     

     

     

     

     

     

     

     

     

     

    수려한 계곡도 없다.  길을 잘못들었나 하는 생각이 스칠 때쯤 일주문이 길손을 반긴다.

     

     

     

     

    대승사 일주문을 만났다.  '四佛山 大乘寺(사불산 대승사)’란 편액이  걸린 일주문으로 들어가는 길은 전나무와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어 한가로움을 한껏 맛보게 한다.  대승사는 일주문이 특이하다. 

     

    기둥 보다 지붕이 커서 다소 불안정해 보이는 ‘사불산 대승사'의 일주문을 들어선다.

     

     

     

     

     

    측면은 풍판이 있고 그 아래는 보조 기둥과 함께 판벽으로 되어 있는 특이한 일주문이다.  이렇게 만들어 놓은 일주문은 처음 본다.

     

     

     

     

    일주문은 둥근 기둥을 한 줄로 세운 다포형식으로 겹처마에 맞배지붕을 올린 1칸의 문이다.  기둥이 나란히 세워져 있는 것은 일심(一心)을 상징한다고 한다.  일주문은 부처님의 세계를 들어서는 첫번재 관문으로 절입구에 세워진다.

     

     

     

     

    일주문 들어서서 주차장 맞은편 오른쪽에 보이지 않던 전각이 새로이 자리하고 있었다.

     

     

     

     

    대승사에선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만물이 '대승(大乘·큰수레)'에 함께 타고 부처로 화현하고 있다.  사불산 품 안에 넉넉하게 자리잡은 대승사. 아담한 절이다.   숲에 둘러싸인 암자같는 느낌이 든다.

     

    현재 대승가람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명부전, 극각전, 명부전, 응진전, 삼성각,  서원, 요사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쪽에 총지암을 새로 지어 선방으로 사용하고 있다.

    부속 암자로는 유명한 나옹혜근 스님의 출가 암자이자 성철스님이 정진했던 묘적암,  비구니 선원으로 이름난 윤필암, 그리고 보현암이 있다.

     

     

     

     

    주차장 한편에는 예전에 없던 찻집과 토산품점도 문을 열고 나그네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주차장 옆에는 무료 찻집이 다소곳이 서서 누군가 와 주기를 기다리고 있다.   "어서오라" 인사하는 사람도 차를 타주는 사람도 없는 무인 찻집,   늘 준비되어 있는 뜨거운 물을 받아 스스로 차를 우려 마시고 찻값은 본인이 알아서 성의껏 내면 되는 곳이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더 올라 절 마당에 들어서면 시원한 전경이 들어오고, 산세와 전각이 아름답게 조화를 이룬 대승사 전경이 펼쳐진다.

     

     

     

     

     

     

    대승사의 외로운 석탑

     

     

     

    대승사 입구 일주문을 지나 주차장에서 걸어 올라오니 좌측 언덕에 3층 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탑의 훼손이 심하다.   내가 보기에는 기단 벽면의 우주와 탱주로 보아 통일신라 시기의 탑이 아닐까로 추정되는데.  1층 탑신에는 감실을 깊게 파고 불상을 안치해 놓았다.  작은 부처님이 있는 곳은 원래 감실 부분이 아니었을까?

     

     

     

     

     

     

     

    입구에 있는 비석. 사적비

     

    개석이 이수이면 비좌는 귀부여야 하는데 귀부가 아니어서, 어울리지 않는  작품으로 보인다.

     

     

     

     

    대승사 앞의 늘어진 은행나무

     

     

     

     

     

     

     

     

    그리고 우측으로는 공양간이 자리잡고 있었다. 

     

     

     

     

     

     

     

     

    먼저 공양간에서 점심 공양부터 하고 대승사를 둘러 보기로 한다.

     

     

     

     

     

     

     

    공양간의 조양신

     

     

     

     

     

     

     

    맛나게 공양 후 대승사를 찬찬히 둘러 본다.

     

     

     

     

     

     

     

     

    일주문 지나서 위치한 백련당 회랑 솟을 대문이 사대부 가옥의 구조로 만들어졌다.

    대승사에서는 연중 템플스테이를 하는 곳이다.   이곳 사찰체험은 자기가 프로그램을 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선원 스님들의 참선 프로그램을 따를 수도 있고,   행자수업을 해보는 프로그램도 있다. 자기 실정에 맞게 일정을 짜고 실천하면 된다.

     

     

     

     

     

     

     

     

    대승사 백련당

     

    사대부의 고택이 연상되는 듯한 백련당으로 개자자들의 참선, 정진 하는 선방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탐플스테이 숙소이다.

     

    백련당은 범종루와 일주문 사이에 위치한 전각으로 다른 사찰에서 거의 찾아 볼수 없는 모습을 하고 있다. 이는 예전의 대승사를 기록한 사적에 근거하여 최근에 중건한 건물이다.

     

     

     

     

     

     

     

     

    공양간 위로 시선을 끄는 아름다운 전각이 있어서 가 보니 총지암이 있었는데 수행중이라서 출입금지였다.

     

     

     

     

    대승선원 큰방 건물 말고도 또 하나의 선방이 있다.

    대승사의 공양간 위로 오른쪽 어깨 죽지쯤에 앉아 있는 총지암이 그것이다.   원래 이 건물은 조실 월산스님이 주석하던 곳으로 스님 입적 후 1997년 동안거부터 선방으로 삼았다.   정면 5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30평 정도이며 수용인원은 8-10명 선이다.

     

     

     

     

    명부전 뒤에서 바라 본 총지암

     

     

     

     

    돌계단을 오르니 만세루가 보인다.  이 누각을 지나면 대웅전 부처님을 친견할수 있다.

     

     

     

     

    만세루는 굽은 나무를 그대로 사용하여 오히려 운치가 있어  보였다.

     

     

     

     

    대승사 종무소

     

     

     

     

     

     

     

     

     

     

     

     

    만세루 왼쪽의 범종각

     

     

     

     

    대승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범종각

     

     

     

     

     

    2007년에 건립된 범종각

     

     

     

     

     

     

    범종루 아래쪽에 황금빛 종이 설치되어 있다.

     

     

     

     

     

     

     

     

     

     

     

     

     

     

     

     

     

     

     

     

     

     

     

     

     

     

     

     

     

     

     

     

     

     

     

     

     

     

     

     

     

    계단식 구조로 당우가 서 있어 대웅전도 계단 너머로 보인다.  숲에 둘러싸인 암자라는 느낌이 든다.  특히 대웅전 뒤 노송이 운치가 있다.  경내는 조용하고  한적하다.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에 마음마저 정화될 듯하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에 다포형식으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측칸의 창호는 4분합의 문을 달았으며,  어칸은 6분합의 문에 꽃살을 장식하였다. 용마루의 치미는 수호의 역활을 하는 용머리가 조각되어 있다. 천정은 반자로 마감처리하였고 바닥은 마루를 깔았다.

     

     

     

     

     

     

    목각아미타여래설법상 및 관계문서(보물 제575호)

     

    대웅전 안에는 금동 삼존불좌상(金銅三尊佛座像)이다.   탱화도 그림이 아니라 조각이다.

     

     

     

     

     

    대웅전 불단 오른쪽 용은 여의주를 왼쪽 용은 물고기를 물고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대승사의 대표적인 문화재는 대웅전 목각탱이다.   목각탱은 부처님 뒤로 걸리는 탱화를 그림 대신에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것이다.   나무에 부조 '투조 기법' 으로 고스란히 조각해낸 대형 작품이다.   황금색이다.   화려하면서도 섬세하다.   목각탱은 예천의 용문사와 상주 남장사 등 전국 7곳에 있지만 대승사에 있는 것이 제일 크다.

     

     

     

    목각 후불탱(木刻後佛幀)

     

    대웅전에 모셔진 후불탱화인 목각탱화는 전국에 있는 목각탱화 중 가장 섬세한 아름다움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이 목각후불탱화는 나무를 깎아 돋을새김을 하고,  중앙에는 광배와 연꽃을 새겨 넣었다.   그리고 별도의 나무로 깎은 아미타불이 안치되어 있다.  대단한 작품이라는 느낌이다.

    이 목각탱화는 길이 3.6m, 폭 2.7m, 두께 25∼30cm이다.   원래는 영주 부석사에 있던 것을 옮겨왔다고 한다.  아미타불을 중앙에 배치한 이 목각탱화는 좌우로 5단에 걸쳐 협시상을 배치하고 있는데,  좌우에 3구씩 4열에 맞추어 좌우대칭으로 배열하였다.

     

     

     

     

     

    목판 고부조(高浮彫)에 금박을 입힌 것으로 총 11개의 판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 경북 영주시 부석사(浮石寺) 무량수전(無量壽殿)에 있었던 것을 1862년(고종 14)경 현재의 위치로 옮겨왔다.

    후불탱(後佛幀)은 보통 불상의 뒷면을 장식하는 종이 또는 비단바탕의 탱화를 말하지만, 목각불탱은 나무조각으로 되어 있어 주목된다.

    특히, 이 목각불탱에는 여러 존상(尊像)의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명문(銘文)이 있다.

    주불을 중심으로 8대 보살과 2대 천상(二大天像),   2대 천자,  사천왕,  그리고 6대 성문상(六大聲聞像)의 존상도로 되어 있다.

    주불은 아미타여래,  좌우 협시(脇侍)는  관음과 세지(勢至) 보살이다.

    그리고 6대 보살은 문수(文殊)·  보현(菩賢)·  제장애(除障碍)·  금강장(金剛藏)·  지장(地藏)·  미륵(彌勒)보살,   2대 천자는 일궁(日宮)·  월궁(月宮)천자,   6대 성문은 석가의 10대 제자 중 가섭(迦葉)·  아난(阿難)·  사리불(舍利佛)·  목건련(目犍連)·  부루나(富樓那)·  수보리(須菩提)이다.

     

    원래 부석사 무량수전에 있던 것인데. 1862년 화재로 소실된 대승사의 법당을 새로 지으면서 부석사에서 목각탱을 옮겨왔다고 한다.  뒤에 부석사에서 반환을 요구하여 시비가 일게 되었는데, 1876년에 대승사가 부석사 조사전의 수리비용을 대주기로 하고 소송을 마무리 지었다고 한다.   함께 지정된 다음의 관계 문서4매는. 부석사의 이러한 분쟁으로 야기된 4건의 문서로서,  이중 3종의 등장은 대승사가 관에 인증을 받기 위한 소지의 일종이고,  완의는 두 사찰 사이의 분쟁을 마무리 지으면서 합의한 내용을 적어둔 약속문서 이다.

     

     

     

     

     

    대웅전 부처님을 바라보며 왼쪽으로 1906년 조성된 신중탱화(神衆幀畵)가 봉안되어 있다.

     

     

     

     

    대웅전 부처님을 바라보며 오른쪽의 영가단 

     

     

     

     

     대웅전의 불단을 장식한 목각의 조형물 불단 무늬,  극락을 나타낸다고 한다

     

     

     

     

     

    대웅전 안의 불단도 문양이 매우 아름답다.

     

     

     

     

     

    대웅전 내부 벽화

     

     

     

     

     

     

     

     

     

    대웅전의 꽃 창살도 볼 만하다.   대웅전 문의 꽃창살 무늬

     

     

     

     

     

     

     

     

     

     

    대웅전의 포작도 특이하다.

     

     

     

     

     

     

     

     

     

    대웅전 용마루 처마에 물고기를 물고 승천하는 용

     

     

     

     

     

     

     

     

     

     

     

     

     

     

     

     

     

     

     

     

    대웅전 계단 옆의 등주

     

    오늘 관심을 가지고 보려교 한 것이 이것이다.  등주는 우리말로 하면 불심지인데 다른 사찰에서는 보지 못한 것이라 매우 흥미가 있었다.  자세히 보니 초 모양으로 석등을 대신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듯 하다.

     

     

     

     

     

     

     

    대승사 대웅전 주련

     

                       楊柳稍頭甘露灑  양류초두감로쇄    버들가지  끝으로  감로수를 뿌리시고

                       蓮華香裏碧波寒  연화향리벽파한    연꽃의 향기 속에 푸른 파도 서늘하네.

                       七寶池中漂玉子  칠보지중표옥자    칠보의  보배못에  옥동자를  띄우고

                       九龍口裡浴金仙  구룡구리욕금선    아홉 용 물을 뿜어 부처님몸  씻겼다네.

     

     

     

     

     

     

    대웅전 옆의 소전대가 참 독특한 양식이다.

    상층에는 용(?)과 사람의 형상을 한 도자기로 마감을 해 두었는데...저 사람은 누굴 형상화 한 것일까?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청련당, 우측에는 대승선원이 자리잡고 있다.

     

     

     

    대웅전 우측에는 근대 고승들이 정진했던 대승사 대승선원인 쌍련선원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주지스님이신 대진스님께서 선원장을 겸하고 계신다고 한다.

     

     

     

     

    법당 우측에 있는 승방, 기도 정진중이라 출입 통제이다.

    대웅전 우측의 선방인 대승선원은 외부인의 접근을 차단하였기에 불사한 기왓장을 덮은 담장 너멇 바라만 보았다.

     

     

     

     

    대승선원에는 ‘하늘에서 네 부처님이 내려오고 땅에서 쌍련이 솟아 올랐다.’는 ‘천강사불 지용쌍련’ 현판이 걸려 있다. 현대의 명필 시암 배길기 선생이 쓴 글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경에 대승사에는 유일강원이 개설되어 근대의 큰 인물을 배출하였다.

    근현대사에서 최고의 석학으로 칭송받는 권상로,  안진호가 모두 대승사 강원에 적을 두었었다.   대승사 유일강원에는 전국 13도에서도 가장 우수한 학인들이 모였다고 한다.

    대승선원은 공덕산을 뒤로 한 채 옆에 대웅전을 거느리고서 아주 단정하게 앉아 있다.   지극히 평화로우며 적정하고 말끔하다.  

     

     

     

     

    쌍련선원 정면에는 월산스님이 쓴 ‘대승선원’현판이 있다.

    대승선원 큰방 건물은 H자형의 독특한 모습으로 정면 8칸의 팔작지붕에 건평이 106평이며 약 40명 정도 수용할 수 있다.   이 건물은 1960년대에 퇴경 권상로 선생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승사 금동보살좌상(보물 제991호) 

     

    대승사 선실(禪室)의 주존불(主尊佛)로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할 뿐 아니라 특히 돋을 새김이 선명한 영락(瓔珞) 등은 이 시대 불상조각의 기법과 양식적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불상의 작자나 유래는 미상(未詳)으로 1981년 불상대좌(佛像臺座)에서 발견된 관음개금원문(觀音改金願文)에도 개금기(改金記)만 있다. 소야리의 미면사가 폐사될 때 대승사로 이전 봉안된 것이라고만 전한다.

     

     

    성철스님은 1944년 동안거와 이듬해 1945년 하안거를 경북 문경 대승사(大乘寺) 쌍련선원(雙蓮禪院)에서 지냈다.  지금은 대승선원이라 한다.  여기서는 평생도반 청담스님과 같이 있었다.

    스님은 당신 도반의 둘째 딸을 이때 발심 출가시켰다.  1945년 단오날이었다.  인순의 나이 14살.  현대 한국 비구니계의 거목(巨木) 묘엄스님은 이렇게 스님이 되었다.

    “나는 (계를 설하기 위해)법상에 안 올라가는 사람인데,  순호스님 (청담스님을 당시엔 순호스님이라 했다)  딸이니까 내 딱 한번 사미니계를 설한다.”  법상에 오른 성철스님은 청담스님 딸 인순이를 앉혀놓고 계를 설하기 시작했다. “첫째는 이 명(命)과 목숨이 다하도록 일생동안 산목숨을 죽이지 말 것이니,  능히 이를 지키겠느냐?” “능지(能持, 능히 지키겠습니다)”

     

    한국 최초 비구니 강사 묘엄스님,  선지식으로 우뚝 서

     

    이렇게 5계와 10계를 다 설한 후 성철스님은 “이제 그대는 사미니가 되었으니 법명은 묘할 묘(妙)자, 장엄할 엄(嚴)자, 묘엄이라 할 것이다.”  이때 인순의 나이 14살.   현대 한국 비구니계의 거목(巨木) 묘엄스님은 이렇게 스님이 되었다.

     

    묘엄스님의 일대기를 책으로 펴낸 작가 윤청광(尹靑光)은 <회색고무신>으로 이름한 이 책에서 이렇게 써 놓고 있다.

     

    “일제시대의 움츠러들고 변질된 불교를 바로 세우고자 열반에 드는 순간까지 불교정화를 외치던 청담스님.  그는 노모(老母)의 원을 들어주기 위해 하룻밤의 파계를 행한다.  그렇게 해서 이 세상에 태어난 딸은 그 출생의 사연 때문인지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받으며 성장하게 된다.  일제치하,  정신대(지금은 일본군 종군위안부라 부른다) 에 가지 않기 위해 딸은 아버지를 찾아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의 큰 스승을 만나게 된다.  친구의 딸에게 불교,  역사,  교양 등을 손수 가르쳐주고 ‘묘엄’이라는 법명을 내려준 성철스님.   딸은 아버지 청담스님과 스승 성철스님의 바람대로 우리나라 비구니계를 바로 세우고 비구니들의 스승이 되기 위한 고된 수행길에 나선다.

     

    청담스님, 성철스님뿐만 아니라 경봉스님,  운허스님,  동산스님,  효봉스님,  향곡스님,  자운스님 등 내로라하는 큰스님들의 가르침을 받으며 딸은 한국 최초의 비구니강사가 된다.  그 후 딸은 동학사,  운문사에서 비구니강원을 이끌었으며 지금은 봉녕사 승가대학 학장으로서 우리나라 비구니계의 뿌리가 되었다.”

     

    <회색고무신>은 청담스님의 딸,  성철스님이 제자인 묘엄스님의 일생을 그리고 있다.

    “스님의 딸로 태어나 오늘날 우리나라 비구니계의 큰 스승이 된 묘엄스님은 어쩌면 청담스님과 성철스님이 남긴 가장 큰 사리가 아닐까.” (<회색고무신> 2002년 시공사 刊)

     

     

     

     

     

     

     

    선원 스님들이 묵언 수행중인 선원.   겹처마에 팔작지붕 건물이다.  눈썹처마가 아름답다.

     

     

     

     

     

    얼마 전엔 3·7일 정진 (21일동안 잠도 안자고 하는 수행) 중이던 선승이 깜빡 졸다가 머리를 탁자에 부딪혀 크게 찢어졌지만,  일단 절 밖으로 나가면 다시 선방으로 돌아올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병원에 가지 않은 채 선방에서 바늘로 살을 꿔맨 채 목숨을 건 정진을 이어갔다고 한다.   대승사엔 이렇게 '네 부처(사불)'가 하늘에서 하강하기 전 하늘을 감동시킬 만큼 몰래 쌓은 대승보살의 '공덕'이 있다. 

     

     

     

     

    대웅전 왼쪽에 대승사 주지스님이신 대진스님께서 계시는 청련당이 있다.

     

     

     

     

     

     

     

     

    대웅전앞의 대승사 노주석(경상북도 유형문화재 407호)도 엄청 크다

    대웅전 앞 마당에는 석탑. 석등은 세워져 있지 않고 밤에 관솔을 피워 마당을 밝혔다는 노주석 두 개만이 그 역할을 잊어 버린채 세워져 있다.

     

    형태는 사각형 지대석을 놓은 뒤, 사각기둥을 한가운데 세우고 그 위에 받침이 있는 화반을 올려놓았다.  오랜 세월 사용되면서 화반 일부가 금이 간 부분이 있으나 비교적 완형을 유지하고 있으며, 형태가 질박하여 조선시대 불교미술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간주에 새겨진 명문을 통해 1729년이라는 제작연대와 공인의 이름을 알 수 있어 불교공예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라고 한다.

     

     

     

     

    사방이 탁 트인 사찰에서 경내를 조용히 걸어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과 바람 소리, 마음을 편하게 하는 경 외는 소리,  말간 하늘.   이 모든 게 어우러져 마음의 평안을 가져온다. ​

      

     

     

     

    먼 산을 그윽하게 바라보고 그보다 가까운 경내를 둘러본다.   파란 하늘과 빛바랜 기와가 오래된 친구처럼 잘 어울린다.  ‘무엇을 해야 하나’ 하고 조급하거나 어리둥절하지 않아도 된다.   지금 이 순간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대승선원  그 아래쪽에는 매우 오랜 역사를 간직한 듯한 극락전과 명부전을 비롯한 전각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조성연대가 오래되어 보이는 대승사 극락전

     

     

     

     

    극락전(極樂殿)은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이곳 대승사 극락전에 고려불상의 기준작인  금동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보물 제1634호)가 봉안되어 있다고 한다. 

     

     

     

     

    문경 대승사 대승선원 안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중앙의 금동 아미타불

     

    극락전 안에 모셔저 있는 금동아미타여래좌상은 보물 제1634호로 지정 되어 있다.

    금동 아미타여래좌상을 본존으로 하여 목조 관음․대세지보살상을 협시로 봉안하였다.  1648년 의현 대사가 이 극락전에 아미타불상과 관음․ 지장보살상을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전하지만 지금의 삼존상은 근세작이다.  삼존상의 뒤로는 후불탱을 봉안했다.

     

     

     

     

     

     그리고 칠성탱을 봉안하였다.

     

     

     

     

    장엄한 극락전 천정 단청

     

     

     

     

    대승사 극락전 외벽이 나무 벽으로 조성되어 있다.

     

     

     

     

     

     

     

     

     

     

     

     

     

     

     

     

     

     

     

     

     대승사 명부전

     

    명부전(冥府殿)은 선당의 오른쪽에 있는 맞배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의 건물이다.

     

     

     

     

    안에는 목조 지장보살상을 본존으로 하고 좌우 협시로 소조 도명존자상과 무독귀왕상을 봉안하였다.

     

     

     

     

     

     

     

    그 주위로 시왕상 10위, 판관․사자․인왕상 각 2위 등을 모셨는데 모두 목조이다.

     

     

     

     

     

     

     

     

     

     

    명부전의 지장탱화는 경북문화재545호

     

     

     

     

    안타깝게도 석등은 우리것이 아닌 일본식이었다.

     

     

     

     

     

     

     

     

     

     

    대승선원 뒤편으로는 삼성각과 응진전 등이 있고 그 옆으로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서 있었다.

     

     

     

     

    응진전  옆으로의 새로운 전각들....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에 익공형식이며,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근래에 조성된 건물이다. 창호는 빗살무늬로 전면의 양 측칸은 1분합의 문이며, 어칸은 2분합의 문을 달았다.

     

     

     

     

     

     

     

    삼성각 내부

     

     

     

    좌로부터  산신탱

     

     

     

     

    칠성탱

     

     

     

     

    독성탱

     

     

     

     

    삼성각 내부 벽화

     

     

     

     

     

     

     

     

     

     

     

     

     

    대승사 삼성각 우측의 웅진전

     

    응진전(應眞殿)은 대웅전 오른쪽 상단에 위치하며 팔작지붕에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건물이다.

     

     

     

     

     

    안에는 5단의 불단을 마련하여 가장 윗단에 최근에 석고로 조성한 석가여래 삼존불좌상을 모셨다.

     

     

     

     

     사람의 손으로 직접 조성하여 모신 독특한 오백 나한상

     

     

     

     

    삼존상의 좌우와 아래에는 25㎝ 높이의 오백나한상을 가득히 봉안하였다. 또한 소조(塑造) 제석․범천상과 목조 좌성군(左聖君)․우성군(右聖君)도 모셨다

     

     

     

     

     

     

     

     

     

     

    응진전 주련

     

    觀音竹繞菩提路   관음죽요보리로   관음죽이 깨달음길 보리로를 둘러싸니

                      先超苦海有慈航   선초고해유자항   고해를 건네주는 자비의 배  있음이요,

                      羅漢松圍般若臺   나한송위반야대   나한송이 지혜자리 반야대를 에워싸니

                      立絶俗塵憑慧劍   입절속진빙혜검   속된 번뇌 즉시 끊음 지혜의 칼 의한다네.

     

     

     

     

     

     다시 대웅전 마당으로 돌아와서 만세루를 내려간다..

     

     

     

     

     

     

     

     

     

     

     

     

    대승선원도 다시금 돌아 보고..

     

     

     

     

     

     

     

     

     

     

     

     

     

     

     

     

     

     

     

     

    백련당을 지나

     

     

     

     

     

     

     

    대승사 주차장에 이른다.

     

     

     

     

    주차장 우측으로는  탐플스테이 할때 이용하는 도자기 체험장도 있었다.

     

     

     

     

     

     

     

     

     

     

     

     

    아름다운 창건설화가 있는 곳 대승사 이제 마무리 하고..

      

     

     

     

    아쉬운듯 일주문을 향한다.

     

     

     

     

    산문을 나설때에야 비로소 일주문 뒷면의 불이문이란 현판이 보인다.

     

     

     

     

    ‘불이문’은 사찰에서 3개의 관문중 마지막 단계로 깨달음에 이르는 문이란 뜻으로 일주문 뒤에 걸어 놓은 뜻은 이 산문을 지나며 ‘불이’의 뜻을 알고 나가라는 의미일 것이다.

    ‘불이’란 ‘둘이 아나라 하나’라는 뜻이다.   너와 내가,  세속과 불국정토가,  삶과 죽음이,  번뇌와 깨달음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이고 석가모니의 법도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뜻일 것이다.

     

     

     

     

     

    모두 상대적 구별을 넘어서 너와 내가 둘이 아나라 하나임을 알려주어 도반의 손을 꼭 잡아본다. 짙 푸른 녹음으로 아름다운 산풍경과 절집 풍경을 가슴에 담으며 일주문을 빠져나와 뭇 세상으로 향한다.

    사랑도 내려놓고, 미움도 내려놓고, 성냄도 내려 놓고, 탐욕도 내려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

     

    아름다운 창건설화가 있는 곳 대승사를 나와서 같은 문경 운달산의 다른 사찰 김용사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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