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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은행나무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천태산 영국사 (충남 영동군)사찰여행/충청도 2014. 7. 16. 18:49
천년 은행나무가 있어 더욱 아름다운 천태산 영국사
2014. 7. 17.
2014. 7. 13. 불교산악회 산빛 어울림에서 함께한 영동 영국사 ........
포항출발(0:00) → 청통휴게소 (아침식사) → 대구 → 김천 → 영동 → 무주 → 적상호 전망대 → 안국사 주차장(11:00) 도착 후 적성산 산행 후 덤으로 가 볼수 있었던 안국사를 뒤로 하고 더 큰 덤으로 갈수 있었던 영동의 영국사다....
◯ 영국사 가는 길
주차장의 천태산 및 영국사 안내도이다.......
영국사는 아래 주차장에서 계곡길을 거슬러 약 1km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더위 속에 짧은 거리는 아니지만 영국사로 향하는 계곡길은 그러한 무더위를 싹 잊게 만들만큼 아름다운 길이다.
요즘 같이 절 입구 코앞까지 차를 이용해서 절 앞에 바로 당도하는 것보다 이러한 숲길과 계곡길을 걸어 들어가는 절길은 훨씬 더 운치있는 발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인들은 그러한 편의 때문에 어쩌면 진짜 여유와 멋을 잃어버린 게 아닐까 싶다............
길옆에 시를 적은 프랭카드가 입구에서 부터 걸려 있다..
영국사 올라가는 계곡에는 예술을 사랑하는 영동 사람들 때문에 시향이 넘쳐나고 있었다..
양산팔경 중 제 1경인 영국사로 들어가는 길목은 무척이나 고즈녁 하였다...
'충북의 설악' 천태산 계곡은 기암절벽과 태고의 천년숲이 심산 유곡의 맑은 물과 장엄한 산세를 이루고 동.식물 서식환경이 우수하여 '충북 자연 환경 명소"로 지정된 곳이다..
넓은 주차장 끝에 보행으로만 가능한 등산로 입구에 영국사의 유래와 천태산 안내석이 나란히 손님을 맞고 있었다.
그리 크지않은 계곡이지만 계곡이 멋스럽다..... 한참을 걸으니 영국사 600m 이정표가 보인다..
천태산 계곡 초입부터 바위와 계곡물소리가 ...
공민왕께서 가히 피난 올만하네....
시루떡을 쌓은 듯한 기암괴석...
가는 길에 삼신할멈바위도 있는데 이곳에서 빌면 아들을 낳게 해주는데 영험이 있다고 한다..
자연을 만끽하며 오솔길을 걸으니 모든 시름이 사라지느 듯 하다..
천태산에서 발원한 물줄기가 계곡을 채우면서 폭포와 여러 비경들을 만들어 놓았다.
충북 영동에서도 역시 아름다운 풍경으로 영동 8경을 내세우는데 그 중에서도 역시 천태산 일원이 영동에서 으뜸되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물이 시원하게 내려오는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삼단폭포도 있다
삼단폭포 옛이름이 용추폭포라는데 가뭄 탓인지 수량이 많지 않아 장관은 볼 수 없었다.
천태산 영국사 계곡을 따라 오르다 보면 무더운 여름날에도 땀이 쏙 들어갈 정도로 시원하기도 하고 또 그늘도 많다. 올라오는 길목에 용추폭포도 있어 시원함을 만끽하며 갈수 있다...
산길은 힘들다는 느낌보다 무더위에도 상큼함을 느낄 정도로 아기자기한 길이었다. 영국사 일주문까지 작은 계곡이 이어진다....
◯ 영국사 일주문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계단을 오르니 언덕위에 일주문이 반긴다..
영국사까지는 길이 평탄해서 산책하는 기분으로 올라가면 고개 마루턱에 최근에 불사한 일주문이 수문장처럼 서있다.
멀리 천태산 암릉이 아스라이 보인다...
올라오는 길목에 폭포도 있어 시원함을 만끽하며 일주문 입구까지 올라오면 고목인 거대한 은행나무가 반겨준다. 은행나무 옆으로 넘어서면 넓은 주차장이 나타나며 영국사 경내가 보이기 시작한다. 일주문을 들어서니 툭 터진 시야에 제법 넓다란 산골짜기가 나왔고 산자락에 영국사가 있었다.
그렇게 15분 남짓 계곡길을 걸어들어가 일주문을 지나면 신기하게 산골짜기 가운데 이처럼 탁 트인 공간이 나오며 천태산 자락이 눈앞에 펼쳐지고 멀리 사찰의 당우들이 눈에 들어온다
암산인 천태산 자락 아래 너른 터에 포근하에 입지하고 있는 절터가 매우 아늑하게 느껴진다
◯ 영국사 은행나무 (천년 기념물 223호)
절 앞으로 아주 오랜 세월을 해묵은 은행나무 한 그루가 자리하고 있다
가까이 가서 수령을 살펴보니 무려 1200년이나 나이를 먹은 오래된 은행나무로 인해 천연기념물 223호로 지정되어 보호를 받고 있다
가을이 되면 아마도 노란빛 은행잎을 절 향하는 길 사이사이 아름답게 뿌려놓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영국사와 함께 국난을 꿋꿋이 이겨낸 나무로, 국가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큰소리로 울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영국사 앞마당에 천년 세월을 버티고 서있는 영국사 지키미 은행나무
영국사는 은행나무 때문에 더 유명해진것 같다...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라 할 만큼 오래된 나무로 우리나라, 일본, 중국 등지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중국에서 유교와 불교가 전해질 때 같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가을 단풍이 매우 아름답고 병충해가 없으며 넓고 짙은 그늘을 제공한다는 장점이 있어 정자나무 또는 가로수로도 많이 심는다.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2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약 31m, 가슴높이 둘레 약 11m 정도이다. 가지는 사방으로 퍼졌으며, 서쪽으로 뻗은 가지 가운데 한 개는 땅에 닿아 뿌리를 내리고 독립된 나무처럼 자라고 있다.
영국사 은행나무는 3그루가 자라고 있다. 원은행나무 한그루, 가지가 바닥에 뿌리를 내려서 두그루,
은행나무 중앙에 씨가 발아해서 세그루.....
소원을 들어 준다길래 몇자적어 매달아 보았다
영국사는 충청북도 영동군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 천태산의 깊은 산속 넓은 대지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의 풍경이 매우 아름다운 곳이다. 창건연혁은 확실하지 않으나 신라 말에 선종과 관련해 창건된 것으로 보이고, 고려 중엽에 대각국사 의천의 천태종을 계승한 원각국사의 하산처가 되면서 크게 번영하기 시작했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에 원각대사가 창건한 절로 원래 이름은 '국청사'였다. 그후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이곳까지 피난을 왔다가 홍건적을 물리치고 개경을 수복하자, '나라를 편안하게 한다'는 뜻의 영국사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
영국사는 527년 원각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하고 고려 문종 때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여 절 이름을 국청사로 정하였다 한다
개경의 국청사와 더불어 지방에 세워진 또 하나의 국청사인 셈이다
국사인 의천이 직접 중창하고 '국청사'라고 사찰의 이름을 정한 것을 보아 고려시대 아주 잘 나갔던 지방의 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른 뒤인 고려 말의 공민왕 연간 원명교체기의 혼란스러운 틈을 타 고려의 개경으로 흘러들어온 홍건적들에 의해 왕은 수도를 뒤로 하고 남쪽으로 피신길에 올랐을 때의 이야기가 전한다.
남쪽으로 피신하던 공민왕은 피난 길에 이 부근을 지나다가 절에서 울려펴지는 독경 소리를 듣고 이곳으로 흘러들어와 이 절에서 국태안민의 기도를 올렸고후에 홍건적과 외적의 침입을 극복하고 나라가 안정되자 사찰의 이름을 '寧國寺' (나라를 평안하게 하는 사찰) 라고 새 이름을 지어 주었다 한다
은행나무를 바라보며 영국사로 오르는 돌계단..
◯ 영국사 만세루
천년 은행나무를 지나 돌계단길을 오르면 만나는 영국사 만세루
영국사는 진입공간이 없다
사찰입구에 도착하니 공터가 주차장의 역할을 하고 있고 약간의 계단위에 만세루가 자리하고 있다
만세루 밑으로 해서 경내에 들어가면 대웅전이 편안ㄹ하게 자리하고 있다..
◯ 영국사 대웅전 (충청북도 유형 문화재 제 61호)
겸허히 고개를 숙이고 모든것을 내려 놓고 들어오라는 겸손을 가르치는 듯한 누각 만세루 아래 계단길을 오르면 대웅전이 나온다. 만세루 루하를 지나니 사찰 안마당이 있고 정면에 대웅전이 보인다.
대웅전은 다포식 맞배지붕으로 조선 중기에 건립되어 고종 30년(1893년)과 1934년 중수하였고. 1980년에 해체복원 하였다.
정면 3칸, 측면2칸의 다포계 맞배지붕. 3출목 7포작 집으로 대웅전은 목조와즙이고 천태산을 배경으로 해서 신좌을향으로 되어 있다.
130cm 높이의 석축 위에 여러 차례 불타고 허물어져서 중창한 나머지, 신라·고려시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조선 중기의 모습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영국사 영산회후불탱 (보물 제 1397호)
대웅전 안에는 보물로 지정된 영산회 후불탱이 불상 뒤로 자리하고 있다
영산회후불탱은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문수.보현 등의 보살과 10분의 제자들이 배치되어 있다.
조선시대 불화 가운데 비교적 제작시기가 빠른 작품으로 17세기 이후 크게 유행한 군도 형식의 전형을 보이고 화기를 통해 불화승이 제작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안은 정면에 삼존불상이 안치되어 있는데 중앙에 석가여래를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을 협시로 모신 삼존여래좌상이 있고, 삼존불 뒷벽에는 후불탱화가 걸려 있다.
동쪽 벽에는 삼장탱화, 서쪽 벽에는 신장탱화가...
뒤쪽에는 칠성· 독성· 상단정신조성탱화가 걸려 있고,동쪽 앞편에 동종이 놓여 있다.
석축 위에는 작은 부처님들로 가득하다...
뒷쪽에서 바라본 대웅전이다...
◯ 영국사 삼층석탑 (보물 제533호)
사찰 안마당 우측으로는 영국사 삼층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대웅전 앞으로 소담한 스케일의 삼층석탑이 자랑하고 있다.
탑신 자체가 너무 작아 조금 갸냘프고 호리호리한 느낌을 들게 하는 탑이다
석탑의 편년은 통일신라 후반 어간으로 짐작을 해 볼 수가 있다
스케일이 줄어들었고 어느 정도 형식화가 진전된 점. 장식성이 강해지고 상층기단에 커다란 안상이 새겨진 점. 몸돌에 비해 지붕돌의 크기가 크게 구성되는 점. 탑신의 문고리 장식 등 이러한 표현은 통일신라 말기에 잘 나타나는 양상들이다
원래 옛 절터에 쓰러져 있던 것을 1942년에 주봉조사가 지금의 대웅전 앞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장대석 4,5개씩을 일변으로 삼고 석단을 구축한 위에 건립하였는데 현재의 사찰방향을 따라 동향을 취하고 있다.
석탑은 신라식 일반형으로 2층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봉안하였다.
지대석은 따로 없으며 하층기단 면석 하단에 굽을 둘러 통식의 각형 받침을 삼았고, 면석은 4매석으로 이루어졌는데 각 면에는 3구씩의 세장한 안상이 조각되었다.
하층기단 갑석도 4매석으로 결구하였는데 상면의 모서리에는 각기 합각이 표시되었고 특히 상단부에 반전의 표현이 있어 주목된다.
상면 중심에는 큼직한 4분원이 각형의 낮은 받침을 각출하여 상층기단을 받고 있다.
상층기단 면석은 널찍한 판석을 각 면에 1매씩을 세워 4매석으로 조립하였고,
각 면에는 우주나 탱주가 없으며 우주 부분가지 꽉 차도록 전면에 1구씩의 큼직한 안상을 음각하였는데 정교한 각 안상의 수법이 주목된다.
상층갑석은 1매석으로 조성되었는데 하면에 부연이 있으며 상면의 네 귀퉁이 부분은 하층갑석 상면과 같이 합각이 뚜렷하다.
상면 중앙에는 원호의 몰딩과 높직한 각형받침을 각출하여 탑신부를 받치고 있다.
탑신부는 옥신석, 옥개석이 각각 한 돌이며, 각 옥신은 양우주가 정연하게 각출되고 초층에만은 1면에 문비가 모각되었는데 문비는 장방형으로서 두줄의 융기석으로 표시하였다.
그리고 내면은 중앙에 세로선을 음각하여 양쪽에 걸쳐 큼직한 좌물쇠 하나가 양각되었고 그 밑으로 양쪽에 한개씩의 둥근 문고리가 조각되어 있다.
탑신의 문고리 장식
각 층의 옥개석은 받침이 4단씩이고 처마에는 낙수홈이 정연하게 음각되었으며, 정면 중앙에 각형으로 1단씩 받침을 각출하여 그 위의 옥신을 받치고 있다.
낙수면은 평박하고 4면의 합각이 뚜렷한데 각 귀퉁이에 곡선이 있어서 다른 탑에 비하여 융기된 인상을 주며, 아울러 네 모서리의 전각에는 반전이 심하게 나타나 있다.
그리고 각 전각에는 중심부와 좌우 양면에 각 1개씩 도합 3개의 충경공이 뚤어져 있는데 그 유퓸은 하나도 없다.
3층 옥개석 윗면에는 각형 1단의 노반받침이 각출되고 그 중심에 지름 7.5cm, 깊이8cm의 찰주원공이 있다.
상륜부는 각각 한 돌로 앙화. 보륜. 보개. 수연등이 남아 있으나 노반은 없어졌다.
앙화는 방형 통식으로서 하면에 각형의 받침이 있고, 상면의 주연에는 복엽의 입상형 양련이 조각되었으며 중앙에 찰주원공이 관통되어 있는데 연판은 각 변 중앙에 1판식, 그리고 네 귀에 1판식으로 도합 8판을 배치하였다.
보륜은 통식의 원형으로서 중앙에 찰주원공이 관통되어 있고, 면에는 8판의 복엽연화문이 조식되었는데 각 판내에는 장식문양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보개는 팔각으로 각 처마가 유려하게 곡선을 이루었고 전각의 반전도 심하여 잘 어울리며 , 그상단에는 山형의 귀꽃이 조각되었는데 귀꽃의 상부는 곧 낙수면의 각 합각과 연결되었고, 그 상부은 十자로 된 각 면에 유려한 화염문이 조각되고 , 정상의 중심에 찰주원공이 관통되었는데 전체의 형태는 통식을 따라 구형을 이루었다.
이 석탑은 기단과 탑신부의 양식수법으로 보아 , 통일신라 말기인 9세기말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 영국사 보리수
대웅전 앞 삼층석탑 옆에는 보리수 나무가 자리하고 있었다...
보리수는 깨달음의 나무로 석가모니부처님께서 이 나무밑에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숭배의 대상이 되었으며 열매로 염주를 만들어 기도와 수행에 사용하고 있다...
◯ 영국사 극락보전
대웅전 좌측으로 극락보전이 대웅전보다 약간 뒤쪽으로 위치하고 있다
극락보전 내 삼존불
아미타불을 주불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장엄한 닫집
측면서 바라본 극락보전
극락보전 외부 벽화
극락보전 앞의 수조속의 부처님
◯ 영국사 산신각
대웅전과 극락보전 사이로 대웅전 뒤쪽에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토속신앙의 본산 산신당.
대웅전 왼쪽 뒤에 있는 산신각 그뒤로 옛 사찰터인지 모를 절터가 있었다
◯ 영국사 요사
요사겸 종무소로 앞 바위 위의 부처님...
극락보전 앞으로 왼쪽으로 가면 만세루 앞에서 좌측으로 난 길과 만나는 좌측으로 종무소 등이 있는 요사가 나온다.
나란히 3개의 편액이 붙어 있는 요사 겸 종무소다...
절 자리가 들어서 있는 입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전각들과 당우들이 들어설 수 있는 곳으로 보여지는데 지금은 대웅전을 비롯한 몇 채의 전각들이 전부이다. 그것도 대개 조선 후기에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그 후의 역사는 그리 알려진 바 없지만 현재 남아 있는 당우들이나 유적들로 살펴보면 고려 초기의 흔적인 삼층석탑과 승탑. 원각국사비를 통해 고려 초기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영화를 누렸던 사찰이었을 것이고 조선 시대를 지나면서 절은 쇠락에 접어들었을 것이라고 추정을 해 볼 수 있다
◯ 영국사 원각국사비 (보물 제 534호)
원각국사비 가는 길이다..
등산로 D코스로 가면 원각국사비, 영국사 승탑, 망탑봉 삼층석탑을 볼 수 있다는데..
영국사의 오른편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두 개의 보물을 더 만나볼 수 있다. 그 중에서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전각 속에 보관되어 있는 영국사 원각국사비 이다.
영국사 경내에는 고려시대 무신정권기 때 활동했던 승려 원각국사의 행적을 새긴 비석이 마련되어 있다
무신정권의 종식되고 원 간섭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원각국사는 이곳 영국사에서 입적하였고 그의 행적을 기록에 새겨 비석을 남긴 것으로 보인다.
현재 비신은 거의 파괴되어 아주 일부만 귀부 위에 올려 있는데 귀부의 규모는 아주 크고 둔중하여 비석의 스케일이 어느 정도였을지 유추를 해 볼 수가 있다.
비신이 파괴되어 그 위에 올릴 수가 없었던 이수는 옆에 따로 놓여 있다 .
비가 점판암 한장으로 올려져 있다. 모양이 재미있다....
원각국사비 뒤로 두 개의 부도들도 아름다운 작품들이다
원각국사비와 두 개의 부도들이 있는 곳에서 바라본 천태산이다...
◯ 영국사 원구형 부도와 석종형 부도
원각국사비 뒤쪽으로 원구형 부도와 석종형 부도가 있다.
우선 형태가 세장한 것으로 우리가 쉽게 이해하는 석종형 부도와는 다른 모습이다. 이것은 오히려 금산사, 통도사의 금강계단의 석종과 몸체 형태가 유사한 면이 있다. 금산사와 통도사의 금강계단의 석종이 언제 만들어졌는가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한 문헌적 근거는 없다.
원구형 부도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5호로 지정되어 있었다
석종형 부도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도도 세월따라 만드는 모양이 달랐던 것 같다....
◯ 영국사 개월암
◯ 영국사 승탑 (보물 제532호)
영국사는 통일신라 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 명종 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고종 때 안종필이 임금의 명을 받아 탑과 승탑, 그리고 금당을 새로 지었다. 절 이름을 국청사(國淸寺)라 하였다가 후에 다시 공민왕에 의해 영국사로 불리게 되었다.
승탑은 영국사 안에서 남쪽으로 약 200m 떨어진 언덕 위에 위치하고 있다. 기단부· 탑신부· 머리장식부로 나뉘어지며 전체적으로 8각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지붕돌의 각 면에는 기왓골을 본떠 새겼는데 처마의 곡선과 잘 어울려서 경쾌한 인상을 준다. 머리장식으로는 복발(覆鉢)과 보주(寶珠)가 남아있다.
기단의 아래받침돌은 바닥돌과 한 돌이고 가운데받침돌은 8각의 면마다 무늬를 조각하여 넣었다. 윗받침돌 옆면에는 한 겹의 연꽃잎을 위아래로 장식하였다. 탑신에는 한 면에 직사각형의 문짝을 새기고 그 안에 자물쇠 모양을 돋을 새김하였다.
이 승탑이 세워진 연도는 절 안의 원각국사비와 연관지어볼 때 고려 명종 10년(1180)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 영국사 나가며 다시 일주문을 향해서...
다시 오솔길을 따라 내려오면 요사와 만세루를 만나고..
은행나무도 만난 후 일주문으로 향한다...
◯ 영국사 망탑봉 삼층석탑 (보물 제535호)
일주문 나가기 바로 전에 우측으로 망탑 올라가는 작은 갈래길이다. 멀지 않은곳에 망탑이 있다길래 호기심에 가보기로 한다
작은 목교도 지나고
한 5분여를 헐떡거리며 오르면 만나는 작은 봉우리는 천태산을 조망하기에는 제격인 곳이 었다 기이한 형상의 바위들도 있었다.
이 탑은 영국사에서 동쪽으로 500m 되는 곳의 망탑봉(望塔峰)이라는 작은 봉우리 정상에 위치하고 있다.
커다란 화강암을 기단(基壇)으로 삼고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형태이다. 기단은 암석 윗면을 평평하게 다듬고 그 중앙에 돌출된 자연석을 그대로 이용하였다. 기단은 기둥모양과 안상(眼象)을 조각하여 형태를 완성하였다. 그 위에 아무런 받침없이 그대로 탑신이 놓여있다.
탑신은 윗부분이 아래부분보다 좁아지는 몸돌을 쌓아올렸다. 1층 몸돌에는 네 면에 무늬없는 문짝모양을 돋을새김하였는데 위·아래가 돌출된 액자형이다.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완만하며, 추녀는 수평의 직선을 이루다가 끝에서 가볍게 들려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1층이 5단이고 2·3층은 3단이다.
탑은 전체적으로 체감률이 일정하지 않지만, 몸돌의 상부를 좁게함으로써 비교적 안정감이 있다. 기단을 한 층으로 하고 기단의 맨윗돌을 생략하는 등 부분적으로 간략화된 고려석탑의 유형을 보여준다. 각 부 양식과 조각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인 12세기경에 건립된 것으로 짐작된다.
◯ 영국사를 내려간다...
영국사 일주문을 뒤로하고...
영국사 일주문에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길이 작은 계곡까지 이어진다.... 산길은 힘들다는 느낌보다 무더위에도 상큼함을 느낄 정도로 이쁜 길이었다.
다시 만난 완만한 경사를 이룬 삼단폭포도 지나
바위 모습은 그야말로 연륜이 많으신 할머니 모습을 하고 있는 소원을 비는 삼신할멈바위도 다시 만나고 드디어 천태산 계곡의 초입을 빠져 나온다...
영동 천태산 자락의 영국사는 그리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지만 닿기 힘든 발걸음과 사찰 내의 아름다운 문화재들로 인해 오래동안 기억될 사찰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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