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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도량 수덕사 견성암(충남 예산군)
    사찰여행/충청도 2014. 7. 23. 18:50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도량 수덕사 견성암

     

     

     

     

     

     

    2014.   7.  23.

     

     

    2014. 7. 21. 06:00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에서 7월 108순례를 충남 예산의 수덕사와 견성암,  서산의 개심사를  가기 위하여 관광 버스를 타고 우리절에서 출발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침 예불을 올리며 예산으로  향해 수덕사를 관람 후 견성암으로 향한다... 

     

     

     

    ◯  견성암 가는 길 

     

     

     

     

      

    사천왕문 들어서서 왼쪽으로 공덕주 탑비 옆으로 견성암 가는 길이 있었는데 우리는 수덕사를 다 보고 대웅전쪽에서 가기로 한다.. 

     

     대웅전바라보며 왼쪽의 승가대학 건물  왼편으로 난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면 비구니 스님들의 정진도량인 '견성암'을 만날 수 있다. 견성암은 현재 80여분의 비구니 스님들과 이제 막 스님이 되기 위한 첫 발을 내딛고 있는 행자 스님들이 함께 구도의 시간을 보내고 계신 곳이다.

     

     

     

    수덕사를 충분히 둘아본 후  심우당인 現 승가대학,  이 건물 왼편으로 등산로가 나 있는 길을 따라 견성암으로 이동  한다...

     

     

     

     

     

     

     

      견성암 가는 길,  저 다리를 건너 왼쪽 길로 가면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인 견성암이 나온다

     

     

     

     

     

     

     

    견성암은 일제강점기에 여성운동가이며 시인이자 수필가이고 언론인이기도한  일엽스님이 수도를 한 암자이다.  수덕사에서 10분도 안걸리는 곳에 위치 한다.

     

     

     

     

    아기 자기한 등산로를 따라 화소대로 해서 견성암으로 향한다...

     

     

     

     

     

     

     

     

     

     

    화소대 이다.  화소대는 2000년 에 건립되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31대 총무원장 법장스님의 영정이 모셔진 곳이다...

     

     

     

     

    수덕사에서 견성암으로 가는 길은 솔향 그윽한 숲길이다.

     

     

     

     

    원담스님이 쓰신 표지석!

     

     

     

     

    일엽 스님이 계셨던 수덕사 견성암은 한국 최초의 비구니 선원이다.   세속적으로는 1966년 송춘희 씨가 부른 절세의 가요 ‘수덕사의 여승’으로 이 절은 더욱 유명해졌다.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 길 없어 /  법당에 촛불 켜 홀로 울 적에  /  아~ 수덕사에 쇠북이 운다’ 는 애절한 가락 때문에 속인들은 감동했지만, 이 절의 스님들은 수행에 방해가 된다며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바 있었다.

     

     

     

     

    견성암은 수덕사의 부속암자로 수덕사에서 산꼭대기의 정혜사로 가는 도중 서쪽 산중턱에 있다.

    1908년 만공(滿空)월면(月面)이 창건이후,  한국 최초의 비구니 선방이 들어서면서 비구니들의 수행처로 알려졌으며,   만공스님으로부터 법을 인가받아 비구니 법맥을 중흥시킨 법희(1887~1975)스님을 비롯해,   개화기의 여류시인 일엽(1896~1971)스님,   일타스님의 누나인 응민(1923~1984)스님등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했다.

    지금도 안거때면 1백명 안팎의 선객들이 모여들 만큼 구도열이 높다

     

     

     

    200여m 완만한 산굽이를 돌아서니 조용한 산중턱에 거창한 위용 현대식 건물 3동(본당,  동선당, 서선당)이 층층히 고층으로 들어 앉아 있다

     

     

     

     

    우리나라 최대의 비구니 선방이라는 견성암에 들린다.   여기도 조용하고 적막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부산한 비구니들의 움직임이 가끔 느껴진다.   대규모 연수시설 같은 암자에서 비구니들은 일 년 아니 이 년 삼 년 계속 정진한다.

     

     

     

     

    마당 한켠에 수도승처럼 서있는 소나무 그늘에 서서 잠시 땀을 식히노라니 학승 두어분 조산한 걸음을 끝으로 숨막히도록 정적 감도는 고요한 산사 강원이다.

     

     

     

     

    견성암(見性庵)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부속 암자로 수덕사에서 산꼭대기의 정혜사로 가는 도중 산중턱에 있다.

    1908년 만공(滿空) 월면(月面:1871∼1946)선사가 창건하였는데,  창건 당시에는 정혜사 동쪽에 지어진 초가집이었다.   이후 한국 최초의 비구니 선방이 들어서면서 비구니들의 수행처로 이름났다.

    일제강점기의 여류시인 김일엽(金一葉: 1896∼1971)이 1930년대부터 수도를 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930년 도흡이 중창하였고, 1965년 벽초가 법당을 2층으로 세워 인도식으로 꾸몄다.

     

     

     

     

    견성암 동선당

     

     

     

     

    지리산 대원사와 수덕사의 견성암과 석남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비구니 참선수행 도량으로  견성암은 본관, 동관, 서관의 3동,  2층 건물 뒤 관음전으로 구성된 비구니 선원이다. 

     

     

     

     

    견성암 동선당 1층에는 종무소가 있었다...

     

     

     

     

     

     본당 2층에서 바라본 동선당 서쪽측면으로 관세음보살 벽화

     

     

     

     

    견성암 서선당

     

     

     

     

    비구니들이라고 해서 특별히 다른 것은 없다.   맡은바 임무를 다하고 울력을 하며 구도를 위해 공부하며 항상 기도하고 정해진 과업을 해결하는 것이 스님들의 하루 일과인 것이다.

     

     

     

     

    본당 2층 법당에서 관음전 가면서 내려다본 서선당 공양당 뒤 장독대가 참으로 정겹다...

     

     

     

    일엽스님은 일본유학파 신여성으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던 한국 최초의 여류문인이며 "청춘을 불사르고 " 등의 저서가 유명하며, 33세의 나이로 만공스님의 문하로 출가, 1971년 76세로 입적하였다.

     

    시인이자 수필가이고 언론인이기도  일엽스님은 목사의 5남매중 장녀로 태어났으나 12세 때 동생이 죽고 이어서 나머지 세동생과 부모님도 사망하여 고아가 되었다.

    이화여전 졸업후 22세 때, 40세의 돈많은 장애인 노교수와 결혼하여 일본 유학을 다녀온 뒤 이혼하고,

    다시 일본인과 사랑에 빠졌으나, 애만 낳고 결혼은 못하고,  조선에 돌아와 부인과 아이가 버젓이 있는 유부남 시인 임노월과 결혼,   다시 이혼,  독일유학파 백성욱과 동거,  춘원 이광수 사랑,   대처승하윤실 사랑..... 등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불가에 귀의했다.

     

     

     

     

     견성암의 본당과 좌측의 서선재다...

     

     

     

     

    본당 2층에서 내려다본 스님 출입 문이다...

     

     

     

     

    법당 내부에 부처님 뒤로 아미타불탱화가 모셔져 있다.

     

     

     

     

     

     

     

    칠성탱화가 모셔져 있다.

     

     

     

     

     신중탱화

     

     

     

     

     

     

     

    법당에서 관음전으로 가는 길이다...

     

     

     

    본당 2층 법당에서 바로 다리를 관음전으로 연결해 놓았다...

     

     

     

     

     

     

     

     

     

     

     

     

     

    관음전내의 탱화

     

     

     

     

     

     

     

     

     

     

    견성암 편액

     

    견성암에 걸려 있는 '견성암' 편액은 근대 한국 선의 중흥조인 만공 월면(滿空 月面 1871. ~ 1946) 선사께서 쓰신 글씨이다.

     

     

     

    견성암 주차장 주변 마당에 노송과 견성암 앞 산의 전경들...

     

     

     

     

     

     

    ◯  견성암을 내려간다..

     

     

     

     

    견성암을 나와 아름다운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수덕사 심연당. 완월당등의 템플스테이 운영관 옆으로 해서 금강문쪽으로 내려 간다...

     

     

     

     

     

     

    ◯  견성암을 나와서 수덕사를 내려가며..

     

     

     

     

     

     

     

    수덕사  일주문도 지나고...

     

     

     

     

     

     

     

     

     

     

     

     

     

    수덕사 입구의 이쁜길을 따라 선문으로 내려간다... 

     

     

     

     

     

     

     

    수덕사와 견성암을 내려와서 주차장에서 점심공양후 서산의 개심사로 향한다...

     

     

    수덕사의 저녁 범종소리가 참으로 일품이라하니 예불 소리도 꼭 들을 겸 만공스님,   일엽스님,   이응로화백,   박귀희여사,   나혜석화가,   일당스님의 연이 얽힌 수덕사도 다시 돌아볼 겸 언제 한번 일정을 잡아 다시 한번 더 덕숭산을 다녀오고 싶다.

    그리고 이미 입적하셨지만 만공스님을께 시공을 초월해 만난다면  ‘김일엽은 불제자로 받아들이고 나혜석은 안받아 들이신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었습니까?’  하고 감히 여쭤보고 싶다.

     

    오늘도 부처님과 인연 있어 한참만에 다시와 보는 고찰 수덕사를 뒤로 하며 많은 감회가 겹친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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