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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 미술관 그리고 김일엽스님이 주석. 열반한 곳 환희대와 수덕사(충남 예산군)
    사찰여행/충청도 2014. 7. 22. 22:35

    선 미술관 그리고 김일엽스님이 주석. 열반한 곳 환희대와 수덕사  

     

     

     

     

    2014.   7.  22.

     

     


    2014. 7. 21. 06:00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에서 7월 108순례를 충남 예산의 수덕사와 견성암,  서산의 개심사를  가기 위하여 관광 버스를 타고 우리절에서 출발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침 예불을 올리며 예산으로  향한다.

     


     

    ◯  수덕사 가는 길 

     

     

     

     

    상가를 지나 덕숭총림으로 들어선다

     

     

     

     

     

    ◯  수덕사 선문

     

     

     

     

     


     

    건립된 지 오래되지 않았으며 일주문과 구분하여 선문이라고 한다.  '덕수산덕숭총림수덕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총림은 참선을 수행하는 선원(禪院)과 경전을 강의하는 강원(講院)계율을 교육하는 율원(律院)을모두 갖춘 사찰을 말하며,  전국에 5대 총림이 있었으나  최근에 3개 사찰을 추가로 지정하였다

    5대총림으로는  통도사,  송광사,  해인사,  수덕사,  백양사 총림이 있으며  총림의 우두머리를 방장이라고 하며,  주지스님보다 서열이 높다.

     

     

     

    덕숭산 중턱의 수덕사는 백제 때 창건된 고찰로  현재 우리나라 5대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의 본찰로서,   사찰 내에 불교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수덕사는 사찰의 명명성에서 알 수 있듯이 “배움과 덕성을 닦는 도량” 즉 선법(禪法)을 사찰의 정체성으로 삼고 사격(寺格)을 드높여 온 곳으로   경허선사,  만공선사를 중심으로 한국  근대선풍을 진작하여 1984년 덕숭총림으로 승격됨으로써 50여개의 말사를 거느린 기존의 교구본사로의 위상에 선원,  강원을 포함한 종합수도장의 역할을 겸비하였다.


     

     

     

    덕숭총림 수덕사에는 경허, 만공선사의 선지를 받들어  정혜사 덕숭총림선원(비구선원),  견성암선원(비구니선원)등을 비롯하여,   여러 선원에서 많은 스님들이 밤낮을 잊고 참선수행을 하고 있을뿐만 아니라,  매월 음력 그믐날에는 사부대중들이 모여 철야정진을 통한 선수행을 실천하고,  여름철에는 선 실천 수련대회를 갖는 등 선(禪)의 생활화와 선풍진작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수덕사 부도전

      

     

     

     



     


     

     

    산문 지나서 오른쪽에 입구에 있는 부도로  경허, 만공 등 대선사들의 부도탑이 있다

     


     

     



     

     

     

     



     

     

     

    오른쪽 원담 대종사,  중간이 벽초대종사,   왼쪽이 혜암대종사 부도탑이다..

     


     

     

     


    오른쪽 벽초대종사부도탑,   왼쪽 혜암대종사 부도탑


     

     

     

     


     원담 대종사 부도

     

     

     

     

     

     

    수덕사 올라가는 길은 숲속을 걷는것 같았다... 

     

     

     

     

     

     

    수덕사 안내도

     

    수덕사에는 선 미술관이 있어서   선문 지나 수덕사 들머리 입구부터 미술관 올라가는 길 곳곳에 조각들이 있어서 구경하며 올라가기 좋았다.

     

     

     

     

     

     

    보자기 1

     

     

     

     

     

     

     

    얼굴

     

     

     

     

     

     

     가장 하일라이트인 '오줌싸개'다...

     

     

     

     

     

     

     

     

    이런 멋진 글도 바위에 새겨져 있었다..

     


     

     

    보자기 2

     

     

     


    조각 작품을 보면서 걷다가 보니 다시 원담 대종사 부도탑 1기만이 오른쪽으로 자리하고 있다.

     

     

     

     


     

     

     

     다시 조각작품을 감상하며 두어 걸음 걸으면 .....

     


     

     

    일주문 바로 전에 왼쪽으로  수덕사 선 미술관을 만난다.

     

     

     

     

    ◯  수덕사  선 미술관

     

     

     

     

     수덕사 선 미술관 입구의 부처님 조각상이 인상적이다..


     

     

     



     일주문 못가 수덕여관 옆에 수덕사 선 미술관이 419㎡ 규모의 단층으로 지어졌다.

     

     

     

     

     

     



     

     

     

     

     

     

     

     

     

     

     

     

     수덕사 선 미술관을  들어갈때의 반대편에 세겨진 불상을 보며 미술관을 나와 일주문으로 향한다..

      



     

    ◯  수덕사 일주문

     

     

     

     

     

     

     

     

    일주문 직전의 수덕사 안내도

     

     

     

     

     

     

     수덕사 일주문이다..

     

    수덕사는 재미있는 전설을 가진 곳이었다.  수덕 총각의 덕숭처녀를 향한 짝사랑이 만들어 놓은 곳이라 한다.

     

     

     

     


     

    덕숭총림 수덕사에는 경허, 만공선사의 선지를 받들어 정혜사 덕숭총림선원(비구선원),  견성암선원(비구니선원) 등을 비롯하여 여러 선원에서 많은 스님들이 밤낮을 잊고 참선수행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매월 음력 그믐날에는 사부대중들이 모여 철야정진을 통한 선수행(禪修行)을 실천하고 여름철에는 선실천 수련대회를 갖는 등 선(禪)의 생활화와 선풍진작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오래된 가요 중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가 있는데 그 때문에 비구니 사찰이 아닌가 싶지만 그렇지는 않다.   다만, 수덕사의 부속 암자 중에 견성암을 비롯해 비구니들의 참선도량이 있다.

     

    ‘수덕사의 여승’이라는 노래는 꽤 히트를 친 노랜데,   노래 시비를 수덕사 앞에 세운적이 있다는데

    노래 가사가 오해의 소지를 불러 일으킬 문제가 있다고 하여 수덕사에서 스님들이 들고 일어나 시비를 철거했다고 한다.

    노래가사에 ‘속세 .. 울적에...운운 ‘ 얘기로

    이곳에서 정진하는 모든 비구니들이 오해를 받을 소지가 있어 그런지 모를 일이다.

     

    “인적없는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  흐느끼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  속세에 두고온 님 잊을길 없어 /

     법당에 촛불켜고 홀로 울적에  /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산길천리 수덕사에 밤은 깊은데  / 염불하는 여승의 외로운 그림자  /  속세에 맺은 사랑 잊을길 없어 /

    법당에 촛불켜고 홀로 울적에  / 아~~ 수덕사의 쇠북이 운다 “


     

     

     


     

    일주문 안쪽에는 '동방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이 하나 더 있다.

     

    '동방제일선원'이라는 현판은  선문에 걸려 있으며 , '壬寅淸秋 素筌孫在馨' 이란 관지가 있다.

    소전(素筌) 손재형(孫在馨)은 서(書)와 문인화(文人畵)를 모두 잘 했으며,   성당(惺堂) 김돈희(金敦熙)의 제자로 현대 한국 서예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이 글씨는 1962년에 쓴것으로,   당해(唐楷)의 뼈대위에 전서의 화법(劃法)을 담은 소전(素筌) 특유의 원할(圓潤)한 행서이다

     


     

     

     


    일주문 지나 왼쪽으로 이응로 화백의 고택 수덕여관이 있다. 

     

     

     

     

     

     

    1960년 건립, 기둥을 한줄로 세워 만든 문으로 사찰 경내의 시작을 알리는 문.  한줄의 기둥은 세속의 번뇌로 흐트러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가면서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을 상징한다...

     

     

     

    ◯  수덕여관 (이응로 선생 사적지 기념물 제103호)

     

     

     

     

     

     

     

     

     

     

     

     


    수덕사에서 또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바로 수덕여관 이다.

    고암 이응로 화백이 작업을 하던 곳으로,   근대기의 여류화가 나혜석 씨와 여류시인이었던 일엽스님의 이야기가 서린 곳이다.

    나중에는 고암 선생의 부인이 여관을 하였고 최근에는 음식점으로 사용되기도 하였다.

    사적지로 지정된 이곳은 현재 완전히 새로 복원해 고졸한 옛맛은 떨어지지만 당시 신여성으로 논란의 한가운데에 서 있던 선각자들의 애환을 찾아볼 수 있다....

     

     

     

     

     

     


    일주문으로 들어서기 전에 만나는 수덕여관은 우리 미술의 우수성을 세계 속에 드높인 고암 이응로 화백의 사적지이다.   고암 선생이 1944년에 구매하여 한국전쟁 때 피난처로 사용했으며, 수덕사 일대의 아름다운 풍경을 화폭에 옮긴 곳이기도 하다.

     

     

     

     

    수덕사 소유로 규모는 1,54m2이며,  동양 미술의 우수성을 세계속에 드높인 고암 이응로(1904~1989) 화백이  작품활동을 하며 1959년 프랑스 가기 전까지 기거하던 곳이다

     

     

     

     


    일설에는 '수덕사의 여승' 노래의 모델이 이 절 견성암에서 정진했던 유명한 일엽스님(1896-1971)이라는 얘기가 있다.

    본명이 김원주인 일엽스님은 출가 전까지 부모가 중매한 결혼생활에 실패하고 일본 유학까지 한 신여성으로 춘원 이광수를 비롯한 여러 남자들과 염문설을 뿌렸고 일본인’ 오다 세이조’와의 사이에 아들을 하나 두었다.

     

     

     

     

     


    14살때 어머니의 존재를 알고 찾아온 아들에게  ‘너와의 속세의 인연은 끝났다. 너는 절에 왔으니 절 풍속과 예절을 지켜야 한다. 우선 나에게 다시는 ‘어머니’라고 불러서는 안된다. ‘스님’이라고 해야 한다.’며 아들을 내쳤고

    그 후 방학때마다 찾아온 아들을 절앞에 있는 여관에서 자게 했다한다.

    이때 비구니가 되고자 이 여관에서 머물던 일엽스님의 친구 서양화가 나혜석으로부터 아들은 그림공부를 받는다.

     

     

     

     

     

    뛰어난 문필가였던 일엽스님은 뒤에 스승인 만공스님으로부터 ‘글 또한 망상의 근원이다’ 라는 질타를 받고 절필한 후 만년에 ‘청춘을 불사르고’라는 수필집을 낸다.

    경허선사의 제자가 수덕사를 중창한 만공스님이시다...

     

     

    수덕여관은 한국 최초의 여자 서양화가이자 일엽스님과 동갑내기 친구인 동경 유학생출신 나혜석(1896-1946)이 만공스님을 찾아와 중이 되고자 했으나 ‘중노릇을 할 사람이 아니다’라고 거절 당한 후 계속 설득하고자 묵으며 소일거리로 그림을 그리는 중이었다.

    이곳을 이응로 화백이 화가 선배인 나혜석을 찾아오곤 했는데 여기서 나혜석으로 부터 파리생활에 대한 동경을 가지게 되었는 지도 모르겠다...

     

     

     

     

     

     

     

    나혜석이 수덕여관을 떠나자 이응로 화백이 이 여관을 사서 운영을 부인인 박귀희 여사에게 맡기고 본인은 여기에 머물며 주변그림을 그렸다 한다.

    그 후 이응로 화백이 21세 연하인 제자 와 함께 파리로 가는 바람에 안주인인 박귀희여사가 이 여관을 지켰고 동백림 사건으로 남편이 치른 2년 반여의 옥고 뒷바라지를 박귀희 여사가 하게 된다. 이때는 이미 끈질긴 이혼 요구에 남펀의 출세에 지장을 줄까봐 이혼도장을 찍어 준 후였다.

     

     

     

     

     

     

     

    출옥 후 이응로 화백은 이 여관에 머물며 심신을 달래며 너럭바위에 암각화를 새긴다.

    이후 이 화백은 다시 파리로 돌아갔고 두사람은 재회를 하지 못하고 각각 파리(1989)와 한국(2001)에서 임종을 하게 된다.

    남편의 유골이라도 돌려받아 함께 묻히고 싶다던 박귀희 여사의 소망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후 여관은 폐허가 되다 시피 하다가 수덕사에서 사들여 개축을 한 후 영업은 하지 않고 일반에게 전시장으로 공개되고 있다.

     


     

     

     

     

     

     

     

     

     

     

     

     

     

     

     

     

     

     

     

     

     

    일제시대 한국 최초의 여자유학생이자 문필가였던 일엽 스님의 외아들 김태신)이 늦은 나이에 출가하여 '일당'이라는 법명을 쓰고 팔순의 나이에 현재 직지사 중암에 머물며 '어머니 당신이 그립습니다' 자서전을 출간 하였다 하니  연(緣)이라는 것에 숙연함을 느께게 한다.

     


     

     

     

     

     

     

     

     

     

    여관 뒤뜰에 있는 너럭바위에 추상문자 암각화는 그 그림속에 삼라만상 우주의 모든  이치가 들어 있다고 하는 이응로 화백의 암각추상화를 구경했다.

     


     

     

     

     

     

     

     

     

     

     

     

     

     

     

     

     

     

     

     

     

     

     

     

    고암 이응로 (顧庵 李應魯 , 1904.1.12~1989.1.10)

     

     

    호 고암(顧庵)·죽사(竹史). 충남 홍성(洪城) 출생.

    김규진(金圭鎭)의 문하생으로 1925년 이후 선전(鮮展)에 주로 사군자를 출품하여 입선하였고, 8·15광복 뒤에는 단구미술원(檀丘美術院)을 설립하여 후진양성에 힘썼다.

    1948년부터 홍익대학·서라벌예술대학 등에서 교편을 잡는 한편 대한미술인협회 상임위원 등을 역임하였으며, 1958년 파리에 정착하여  1963년 살롱도톤전에 출품하면서 유럽 화단에 알려짐 .

    1968년 제8회 상파울로 비엔날레전에서 명예대상을 획득,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1967년 동베를린공작단사건에 연루,  강제 소환되어 옥고를 치르고, 1969년 사면되었다.

    화풍은 사실적인 남화계였으나 파리 정착 뒤 동양의 서예정신과 문인화정신을 기반으로 서양의 콜라주기법을 혼용하여, 독특한 환상적 기호로써 개성적 화면을 구축하였다. 파리에서 죽었다.

    대표작에 《콤포지션》 《작품》 《군상》 등이 있다

     

     

     

     

     



     

     

     

     

    수덕여관 옆의 솔 숲에서 문화해설사의 수덕여관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우리 도반들....

     

     

     

     

     

     

     

    ◯  수덕사 사적비

     

     

     


    덕산 향토지에 실린  수덕사 창건 설화

     

    홍주마을에 사는 수덕이란 도령이 있었다.   수덕도령은 훌륭한 가문의 도령이었는데, 어느 날 사냥을 나갔다가 사냥터의 먼 발치에서 낭자를 보고 사랑에 빠지게 된다.

    집에 돌아와 곧 상사병에 걸린 도령은 수소문한 결과 그 낭자가 건너 마을에 혼자 사는 덕숭낭자라는 것을 알게 되어 청혼을 했으나 여러 번 거절당한다.

     

    수덕도령의 끈질긴 청혼으로 마침내 덕숭낭자는 자기 집 근처에 절을 하나 지어 줄 것을 조건으로 청혼을 허락하였다.  수덕도령은 기쁜 마음으로 절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탐욕스런 마음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절을 완성하는 순간 불이 나서 소실되었다.

    다시 목욕재개하고 예배 후 절을 지었으나 이따금 떠오르는 낭자의 생각 때문에 다시 불이 일어 완성하지 못했다.   세 번째는 오로지 부처님만을 생각하고 절을 다 지었다.

    그 후 낭자는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으나 수덕도령이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이를 참지 못한 수덕도령이 덕숭낭자를 강제로 끌어 안는 순간 뇌성벽력이 일면서 낭자는 어디론가 가 버리고 낭자의 한 쪽 버선만이 쥐어져 있었다.

    그리고 그 자리는 바위로 변하고 옆에는 버선모양의 하얀 꽃이 피어 있었다. 이 꽃을 버선꽃이라 한다. 낭자는 관음보살의 화신이었으며 이후 수덕사는 수덕도령의 이름을 따고 산은 덕숭낭자의 이름을 따서 덕숭산이라 하여 덕숭산 수덕사라 하였다는 전설이다.

     

     

     

     

     

     

     

    수덕사 사적비가 금강문 바로 왼쪽 아래 솔숲에 자리 하고 있었다...

     

     

     

     

    ◯  수덕사  금강문

     

     

     

     

     

     이 문을 통과하면 모든 악귀가 제거 된다고.....

     

     

     

     

     

     

     

     


     

     

     


     

     

    수덕사에는 금강문, 사천왕문 2개가 다 있다.   대부분의 사찰에는 2개의 문 중 1개만 있다.

     

     

     

     

     

     


     

     

     

     

     

     

     

    2000년에 건립되었으며 불법을 수호하는 두명의 금강역사를 안쪽 좌우에 봉안하고  있다. 

     

     

     

     

     

     

     

     


     

     

     

     

     



     

     

     

     

     

     

     

     

     

     

     

    ◯  수덕사 환희대

     

     

     

     

     

    수덕사  금강문을 지나 사천왕문 오르기 전에 좌측길 바로 옆이 환희대 들어가는 입구다... 

     

     

     

     

     

     

     

     

     

     

     

    수덕사 오르는 길,   느껴보지 못한다면 쉽게 지나칠 것이다.  알지 못한다면 둘러 보지 않을 것이다...  알고 나면 찾을 것이고 느낄수 있다면 환희대의 밝음을 이해할 것이다.   환희대는 그러한 아련한 빛이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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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6년 건립,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으로 김일엽스님이 주석. 열반한곳이다...

     

     

     

     

     

     

    보탑이 보인다.

     

     

     

     

     

     

     

     

     

     

     

    수덕사 견성암에서 수행중이던  김일엽(金一葉) 스님이 말년에 주석하던 곳, 바로 환희대가 있었다.

     

     

     

     

     

     

     

     

     

     

     


     

     

     

     

    보탑 주변의  모습들...

     

     

     

     

     

     

     


     

     

     

    뭉클한 삶의 이야기가 스며 있는 자리 환희대

     

     

     

     

     

     

     

     

     

     

     

    환희대 원통보전

     

     

     

     

     

     

     

     

     

     

     

     

     

     

     

    환희대 원통보전 법당 중앙의 미소가 고운 관세음보살님...

     

     

     

     

     

     

    환희대 원통보전 법당 왼쪽으로 부터...   영가단이다.

     

     

     

     

     

     

    사후 심판모습을 그린 탱화와 독성탱 

     

     

     

     

     

    천수천안관세음보살탱

     

     

     

     

     

     

     

     

     

     

     

    법당 중심의 장엄한 닫집아래 미소가 고운 관세음보살님...

     

     

     

     

     

     

    법당 중심에서 오른쪽으로....

     

     

     

     

     

     

    환희대 원통보전의 내부 벽화가 참으로 장엄했다...

     

     

     

     

     

     

    칠성탱

     

     

     

     

     

     

    신중탱

     

     

     

     

     

     

     

     

     

     

     

     

     

     

     

     

     

     

     

     

     

    환희대 원통보전의 꽃살문이다...

     

     

     

     

     

     

     

     

     

     

     

     

     

     

     

     

    환희대 원통보전의 법당 뒤 추녀끝의 석등행렬...

     

     

     

     

     

     

    환희대 원통보전의 법당 오른쪽의 스님 수행공간이다... 

     

     

     

     

     

     

    환희대 원통보전의 법당에서 바라본 요사

     

     

     

     

     

     

     

     

     

     

     

     

     

     

     

     

     

     

     

     

     

    요사에서 바라본 환희대 원통

     

     

     

     

     

     

     

     

     

     

     

     

     

     

     

     

    수덕사 환희대를 나와 사천왕문으로 향한다..

     

     

     

     

     

     

     

      수덕사 사천왕문

     

     

     

    사천왕문은 1999년에 건립되었으며 불법을 수호하는 외호신인 사천왕상을 봉안하고 있다..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만들어 놓은 사천왕의 현대식 단청문은 오랜 전통의 목조식 대웅전과 어울리지 않는 약간은 답답한 인상을 주었고 고사찰의 허름하면서도 위풍당당함한 인상을 새로 칠한 어색함마저 느끼게 해주어 씁쓸하기는 했다.

     

     

     

     

     

     

     

    사천왕이 있어 악귀를 제거하는 문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길목에 만들어 놓은 사대천왕의 현대식 단청문은 오랜 전통의 목조식 대웅전과 어울리지 않는 약간은 답답한 인상을 주었고 고사찰의 허름하면서도 위풍당당함한 인상을 새로 칠한 어색함마저 느끼게 해주어 씁쓸하기는 했다.

     

     

     

     

     

     

     

     

     

     

    사천왕문 들어서서 왼쪽으로 공덕주 탑비

     

     

     

     

     

     

    사천왕문 들어서서 왼쪽으로 공덕주 탑비 옆으로 견성암 가는 길이 있었는데 우리는 대웅전쪽에서 가기로 한다.. 

     

     

     

     

     

     

    황하정루 오르면서 내려다본 사천왕문이다.

     

     

     

    ◯  수덕사 만공기념관

     

     

     

     

    사천왕문 들어서서 황하정루 아래 오른쪽으로 있으며 수리중이다...

     

     

     

     

    ◯  황하정루 앞 포대화상

     

     

     

     

     

     

    언제나 인상 좋은 포대화상,   수덕사에 오면 요 석상 때문에 웃는다.  특히 부처님 배꼽을 만지는 저 동자승 땜에...

    미륵의 화신인 포대화상상은 2003년에 조성하였다..

     


     

     

     

     


     

    ◯  수덕사 염불원

     

     

     

     

     

    포대화상 뒤로 멀리 보이는 염불원이다..

     

     

     

     

     


    ◯  수덕사  7층석탑 (충청남도의 문화재자료 제181호)

     


     

     


    금강문을 지나 사천왕문을 들어서면 7층 석탑이 나무 그늘 속에 있다.

    수덕사 칠층석탑(禮山 修德寺 七層石塔)은 충청남도 예산군 수덕사에 있는, 일제강점기의 칠층석탑이다.

    이 탑은 1930년 만공대선사가 건립한 석탑으로 기단부 없이 바로 탑신과 옥개석으로 되어 있다. 기단 면석 밖으로 두드러지게 우주를 표현하였고, 면석에는 두께 10cm 정도의 사각 테두리가 돌려져 있다. 탑신부의 옥신은 없는데, 옥신 대신 3개의 정사면체 석재를 주춧돌처럼 놓아 1층 지붕돌을 받치고 있다. 각 층의 면석과 지붕돌은 별개의 돌로 이루어졌고, 면석마다에는 우주와 창방이 표현되어 있으며 지붕돌은 2단의 받침을 가지고 있는데 반전이 매우 심하다. 상층부에는 찰주· 보주· 보륜이 올려져 있다.  대체로 간결하면서도 세련된 느낌을 주는 탑이다 .


     

     

     

     

     


     

     

     

     

     

     

     

     

     

     

     

     

     

     

    코끼리 석등

     

    일주문에서 황하정루에 이르는 구간은 근래 새로 조경되었다.   잔디를 깔고 조경수를 심는, 소위 아파트 공원식 조경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법장대종사 조계종 제31대 총무원장 역임 기념 지석

     

     

     

     

     

     

     

     

     

     

     

     

     

    ◯  수덕사  황하정루와 겸한 근역성보관, 찻집

     

     

     

     

     

     


     

    황하정루(黃河精樓), 대웅전을 보호하고 사세를 안정시키는 전위누각으로, 부처님의 정신이 강물처럼 흐른다는 뜻,  1992년 준공

     

     

     

     

     

     

    계단위로 있는 건물이 바로 황하정루로 성보박물관, 찻집이 함께 있다.

     

     

     

     

     

     

     

     

    덕숭산 중턱의 수덕사는 백제 때 창건된 고찰.   현재 우리나라 5대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의 본찰로서,   사찰 내에 불교박물관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크다.

     

     

    수덕사에는 백제로부터 시작된 이 지역 불교의 원류와 시대에 따른 변화과정을 살펴 볼 수 있는 본, 말사내 불교문화재 1,300여점을 소장전시하고 있는 근역성보관(불교박물관)이 있다.

    황하정루 들어가며 오른쪽 지하 1층에 성보박물관이 있다.    인근 절에서 모은 불화가 많고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의 사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경허스님은 많은 절에서 거의 신처럼 모시고 있다.   생전에 많은 불사를 했기 때문이지만, 그보다도 허허공에게 더 인상 깊은 내용은 그의 선불교에 공헌한 조선 말기의 중흥조라는 위치가 아니라 기행에 있다. 어떤 절에서는 바랑에 고기를 잔뜩 들고 들어가 행사를 마치자 마당에서 삶아 먹기도 하고,  술에 탐닉했다는 이야기와 여자에 대한 스님답지 않은 편력이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떠돈다.   만년에 홀로 묘향산에 들어가 모든 인연을 끊었다는 일화도 아직 스님을 거의 신선인양 떠받드는 요인인지 모르겠다.   만공스님의 세계일화는 너와 내가 둘이 아니고,   산천초목도 둘이 아니며,   이 나라 저나라도 둘이 아니며 세상의 모든 것이 한 송이 꽃이라고 준엄하게 깨우침을 내린다.

     

    2004년에 개관 하였다.  규모는 건평 240평으로 역사관과 일반불교미술실,  경허만공기념관,  중앙홀전시대,  불화,  비조,  멀티미디어관 등 모두 7개 전시실을 갖추었다.

    역사관에는 수덕사대웅전에 소장되어 있던 고려자기와 백제시대 와당,  대웅전을 수리했을 때 나온 부자재와 고려시대 와당 등이 전시되어 있다.    이중 다완과 광구병(廣口病) 등 고려청자는 11세기초 유물로 추정되며,  수덕사 주변 지역에 이를 공급하기 위한 지방가마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시사해 준다.

     

     

     

     

     

     

    황하정루,  대웅전을 보호하고,  사세를 안정시키는 누각이다

     

     

     

     

     

     

     

    덕숭총림 현판 아래로 들어가는 황하정루 천정이 참으로 장엄하다...

     

     

     

     

     

     

     

     

     

     

     

    누각 통로 벽보판의 안내도와 불교 벽보

     

     

     

     

     

     

     

     

     

     

     

     

     

     

     

     

    이제 다왔나 하고 가니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저 계단만 오르면 다겠지하며 신나서 올라가는데.....

    그리고 나타난 또다른 계단...   계단을 오르니 진짜 수덕사가 나온다.    수덕사 경내는 상당히 많은 계단으로 되어있다. 

     

     

     

    '황하정루' 현판이 대웅전을 바라보고 있다..

     

     

     

     

     

     

     

     

    황하정루 2층의 찻집

     

     

     

     

     

    종무소에서 바라본 황하정루

     

     

     

     

     황하정루 옆모습

     

     

     

     

     

     

       대웅전 마당에서 본 황하정루

     

     

     

    ◯  수덕사 백운동,  청운동 요사

     

     

     

     

     

     

    황하정루 건물 좌로는 백운동,   우로는 청운동이라는 요사로 스님들의 처소로 탐플스테이에 활용되기도 한다.

     

     

     

     

     

     

     

     

     

     

     

     

     

     

     

     

    ◯  수덕사   대웅전 앞뜰

     

     

     

     

     

     

     

     

     

     

     

    또 다시 계단으로 대웅전 공간으로 오른다...

     

     

     

     

     

     

     

    대웅전이 있는 축대가 까마득 하다...

     

     

     

     

     

     

     

    쌍사자 석등..   등불을 받치고 하늘로 오른다

     

     

     

     

     

     

     

     

     

     

     

     대웅전 마당에 있는 엄청나게 굵은 느티나무,  역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당신의 소원을 빌어보세요. 그것을 원하면 그것은 당신 것이니!

     

     

     

     

     

     

    31대 총무원장 법장스님 기념식수 소나무

     

     

     

     

     

     

     

     

     

     

     

    수덕사 대웅전 앞뜰

     

     

     

     

     

    수덕사 대웅전 앞뜰에서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열심히 들으며 수덕사를 공부하는 도반들...

     

     

     

     

     

     

     

     

     

     

     

     

     

     

     

     

     

    ◯  수덕사 무이당

     

     

     

     

     

    대웅전 마당 범종각 아래로 2000년 건립된 무이당이 있었다...

     

     

     

     

    ◯  수덕사 범종각

     

     

     

     

     

    대웅전 들어가며  왼편에 있는 범종각

     

     

     

     

     

     

    범종각(梵鐘閣)

     

    종각에는 무게 6,500근,   높이 2.7m,   둘레 4.5m의 청동제 대종이 걸려 있다.

    이 범종은 1973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당시 수덕사 경내에 직접 주조공장을 만들어 성덕대왕신종의 소리를 재현하고자 전통범종 주조기법에 따라 스님들의 참관 하에 제작하였다고 한다.

    또한 이는 해방이후 처음 만들어진 종으로 당시 국내에서 두 번째 크기였다고 하니 범종불사의 규모가 얼마나 방대하였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  수덕사 법고각

     

     

     

     

     

    대웅전 들어가며 오른 편에 있는 법고각

     

     

     

     

    법고각(法鼓閣)에는 불전사물(佛殿四物), 곧  범종· 법고· 목어(木魚)· 운판(雲板) 가운데 범종을 제외한 나머지가 봉안되어 있다.

    법고는 축생의 무리를 향하여,  운판은 하늘을 나는 생명을 향하여,  목어는 수중의 생명에게 소리를 보낸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이는 모두 소리를 통한 부처님의 진리를 중생에게 전해 해탈성불을 염원하는 교화에 의미를 두고 있다.

    예불때 법고 ·목어 ·운판 ·범종 순서로 치게된다.

     

     

     

     

     

     

     

     

     

     

    수덕사 대웅전뜰 한가운데 위치한 법고를 받치고 있는 용, 용고

     

     

     

     

     

     

     

     

     

     

     

     

     

     

     

     

     

     

     

     

    법고를 사이에 두고 운판과 목어...

     

     

     

     

     

     

     

     

     

     

     

     

     

    ◯  수덕사 금강보탑

     

     

     

     

     

    수덕사 금강보탑(修德寺 金剛寶搭)

     

    성역화 중창불사 도중 전탑좌대가 현 위치에서 발견되어 전문가의 고증을 거쳐 탑을 세우고 금강보탑이라 하였다.

    규모는 높이 950cm로 재료는 호강석이며 시대는 2000년 7월에 세웠다

     

     

     

     

     

     

    백제의 전탑자리에 2000년 조성

     

     

     

     

     

     

     

     

     

     

     

     

    수덕사에서 공부하고 계시는 도현스님의 도반스님

     

     

     

     

     

     

     

     

     

     

     

     

     

     

     

     

     

     

      수덕사 조인정사 (祖印精舍)

     

     

     

     

     

    대웅전 앞, 법고각 뒤에  있는 선방인 조인정사(祖印精舍)

     

    조인정사(祖印精舍)는 1916년 만공 스님이 지은 건물로서 부처님의 혜맥(慧脈)을 판단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조인정사라 명명했다.

    본래는 대웅전 정면에 있었다가 최근 보수하고자 해체하였으나, 탑자리가 발굴되어 지금의 위치로 옮겼다.

     

     

     

     

    현재 종무소로 사용중이다..

     

     

     

    수덕사 편액

     

    불기이천구백칠십이년 七月二年 성재 김태석(惺齋 金台錫)이 쓴 예서임을 알 수 있다.   성재(惺齋)는 일찍이 중국과 일본을 왕래 하여 안목을 넓혔으며,  전예(篆隸)는 전각(篆刻)에 뛰어났다.

    청 원세개(淸 袁世凱)의 서예 고문등을 지냈고,  안성 청룡사(靑龍寺)의 명부전(冥府殿) 전서 편액등을 썼다.  

     

     

     

     

     

     

    ◯  수덕사 삼층석탑 (유형문화재 제 103호)

     

     

     

     

    수덕사 3층 석탑은  2층의 기단부를 갖춘 고려시대 양식의 탑이다.

     

     

     

     

       통일신라 양식의 석탑이나 고려 초기에 건립된것으로 추측

     

    수덕사 삼층석탑은 신라문무왕 5년에 건립되었으며,  원효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해지나 통일신라시대 양식을 한 고려 초기의석탑으로 추정된다.

    기단은 2층으로 위층은 4매의 돌로 면석을 조립하였으며, 각 면에는 우주와 탱주가 표현되어 있다.

    지붕돌과 몸돌은 가각 1개의 돌로 되어 있으며,  1층은 5단의 옥개 받침을 하였으나   2. 3층은 3단으로 되어 있다.

     

    상면에서는 1단의 받침으로 그 위에 몸돌을 받고 있으며,  지붕돌은 끝이 치켜 올라갔다.   상대갑석과 지붕돌 및 3층 몸돌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전체적으로 균형미를 갖춘 석탑이다

     

     

     

     

     

     

    ◯  수덕사 대웅전 (국보 제49호)

     

     

    대리석 계단과 신축한 전각들이 이질감을 주지만,   700년 된 대웅전의 조용한 자태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숙연해진다.   고려 충렬왕 34년(1308)에 지어진 대웅전은 부석사 무량수전,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함께 우리나라의 최고 목조건물로 손꼽힌다.

     

     

     

     

     

    1308년(고려 충렬왕 34년) 건립,  지붕 옆면이 여덟팔(八)자 모양인 맛배지붕이며,  정면  3칸 측면 4칸으로  창에 섬세한 빗살무늬가 있다.  출입문은 양 옆면 앞쪽에 있다.

    주심포계 건물이며 공포의 양식이 고려적 양식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건물이 대체로 굵직하고 볼륨있는 목재를 사용하여 안정감이 있고 아름답게 보인다.

     

     

     

     

     

     

     

     

     

     

     

    수덕사 대웅전은 백제식 건축물의 대명사라고 하는 주심포 맛배지붕의 간결하고 장중함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건축이다. 특히 옆면을 보면 이 건물의 특징을 한 눈으로 간파한다. 보와 도리가 맞물려 오르는 기하학적 오름이 가히 예술이다.

     

     

     

     

     

     

     

     

     

     

     

     

     

     

     

     

     

     

     

     

    주심포계 건물로 공포의 양식이 고려적양식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건물이 대체로 굵직하고 볼륨있는 목재를 사용하여 안정감이 있고 아름답게 보인다.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아미타불 , 약사여래불이 협시한  삼존불을 모신 대웅전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禮山 修德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腹藏遺物)과  연화대좌, 수미단 등이다. 2003년 11월 14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381호로 지정되었다.

     

     

    목조삼세불 좌상

     

     

    만공대선사가 전북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政寺)로부터 옮겨 온 불상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불,  아미타불로 현실세계, 동방만월세계, 서방극락세계를 상징한다.

     

    석가모니불은 주존으로서 굽어보는 듯한 자세에 당당한 어깨와 넓은 무릎을 하여 안정되어 보인다.

    육계의 구분이 불분명한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으며, 네모꼴의 각진 얼굴에는 근엄한 듯 부드러운 미소가 엿보인다. 귀는 길어서 어깨까지 늘어졌고, 가늘어진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三道가 뚜렷하다.

    옷은 양어깨를 다 덮는 통견(通肩) 형식으로 오른팔이 드러나게 함으로써 17세기 불상들에서 나타나는 전형적인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손 모양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려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약사불과 아미타불 또한 머리 모양,  얼굴 형태와 귀ㆍ눈ㆍ입ㆍ코의 표현,  양손과 옷주름선의 사실적 묘사 등이 본존불과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약사불이 왼손을 위로 하고 오른손을 아래로 하여 엄지와 중지를 맞댄 채 오른손 바닥에 약그릇을 들고 있는데 비해,   아미타불은 약사불과 손의 좌우가 바뀌고 약그릇이 보이지 않는 것만이 다를 뿐이다

     

    괘불은 야외에서 법회를 할 때 걸어놓고 예배하는 의식용 불화이다.

    수덕사 괘불은 1673년(현종 14) 4월 수덕사에서 조성된 것으로 석가불· 비로자나불· 노사나불의 삼신불(三身佛) 가운데 보신(報身)인 노사나불을 그린 것이다.

    원만보신 노사나불을 독존으로 그린 괘불은 현재까지 밝혀진 것으로는 충청남도 공주 신원사(新元寺) 괘불과 수덕사 괘불 단 2개뿐으로,  괘불 도상에서는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이 괘불은 보신 노사나불이 법신(法身)인 비로자나불을 대신해 석가불의 화신(化身)으로 나타나 성중(聲衆)들에게 설법을 하는 영축산의 모임을 나타낸 영산회상도로 묘사한 것이다.

    보물 제126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7.27m, 세로 10.59m다.

     

     

     

     

     

     

     

    거의 유일한 고려시대 목조연화대좌와 대웅전 건립연대(1308년)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석가모니불이 좌정한 육각수미단.....

    목조삼존불 뒤로 후불탱화인 석가삼불도는 중앙에 석가불, 좌우로 약사불과 아미타불을 모신 것으로 영산회상도, 약사회상도,  아미타회상도를 의미한다.

     

     

     

     

     

     

     

     

     

     

     

     

     

     

     

     

     

     

     

     

     

     

     

     

     

     

     

     

     

     

     

     

     

     

     

     

     

     

     

     

     

     

     

     

     

     

     

     

     

     

     

     

     

     

    내부에는 천장을 가설하지 않은 연등천장으로 되어 있고 과거에는 바닥에 전돌이 깔렸으나 현재는 우물마루가 깔려있다.

    외부에 그대로 노출된 가구에 새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가 간직하고 있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수덕사 대웅전은 건물의 기능미와 조형미가 잘 조화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목조 건축물 중 하나이다.

     

     

     

     

     

     

    지장단 지장시왕도

     

    중생의 사후세계를 관장하는 지장보살과 명부에서 중생들의 ㅚ질을 심판하는 시왕들 그리고 시왕들의 심판을 돕는 여러 판관들과 동자들, 시자들을 모심. 지장보살은 지옥의 고통에서 허덕이는 중생들을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보살이다..

     

     

     

     

     

     

    독성단 독성도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아 최고의 깨달음에 도달한 나반존자.  즉 '독성'으로 스승과 제자 없이 홀로 산중에 들어가 독서하며 불법을 깨우친 성인이다..

     

     

     

     

     

     

    대웅전의 기둥이 세월의 연륜을 느끼게 한다.   모진 세월의 풍파는 이렇게 기둥에도 깊은 주름을 남긴다.  나무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이라 하건만 그 나무 중 하나가 바로 수덕사 대웅전의 기둥이었다.

     

     

     

     

     

    대웅전은 부석사 무량수전보다도 더 오래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로  수덕사는 유일하게 남아있는 백제사찰이라고 한다.  백제사찰은 수덕사 외에는 남아있지 않다고 한다.

     

     

     

     

     

     

    대웅전은  옆에서 보아야 제데로 볼 수 있다..  배흘림..  맛배지붕..  주심포..   멋지고 정교한 그림같다.

     

    간단한 공포구조와 측면에 보이는 부재들의 아름다운 곡선은 대웅전의 건축미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데 특히 소꼬리모양의 우미량(牛尾양)은 그 중 백미로 꼽을 수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기둥 위에 공포가 짜여있는 주심포양식이다.   이와는 대조적인 것이 바로 다포양식으로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가 올라간다.   화려해 보이는 다포에 비해 정갈해 보이는 주심포가 제 눈맛에는 딱이었는데 긴 세월을 견뎌낸 부재들을 보고 있노라면 대견함이 느껴지기까지 하였다

     

     

     

     

     

     

     

     

     

     

     

     

     

    대웅전의 뒷모습이다...

     

     

     

     

     

     

     

     

     

    대웅전 뒤로는 수덕사를 애워싼 커다란 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룬다...

     

     

     

     

     

    고려 때 지은 대웅전은 주심포 맞배지붕으로 그 세련미가 가히 현 시대의 그것을 능가하고 마름모꼴 사방 연속무늬의 창살은 세월의 품위를 아직도 고스란히 전해주기에 충분해 보였다.

     

     

     

     

     

     

    대웅전 두리기둥에 기대어서면 들판과 낮은 산줄기들이 만드는 스카이라인이 눈 아래로 멀리 지나가고 있다.   해발이 불과 300m도 안 되지만, 전망이 시원하고 호방하다.    사람들은 수덕사의 형국을 가리켜,   자좌오향(子坐午向)에 대웅전을 두고,   화국(火局)의 양수(養水)와 장생수(長生水)를 쇠방(衰方)인 정방(丁方)으로 내보내는 명당이라고 한다.

     

     

     

     

     

     

     

     

     

     

     

     

     

     

     

     

     

     

     

     

     

     

     

     

     

     

    ◯  수덕사 관음바위

     

     

     

     

    관음전 앞 백련당 출입구 쪽으로 관음바위가 있었다.. 

     

     

     

     

     

     

    관음보살과 관음바위(소원바위)

     

    이곳은 관세음보살이 현신(現身)하신 전설이 있는 곳.   통일신라 때 관음보살이 수덕각씨 변하여 나타나 이 절을 중창하고는  낙성식 날 버선 한 짝만 남기고 이 바위틈으로 들어 가셨는데,  그 뒤로 이곳에 기도하면 모든 소원이 성취된다고 한다.

     

     

     

      

     

    수덕사의 창건설화와 관련, 수덕사가 관음도량임을 상징하는 청동으로 된 관세음보살님

     

     

     

     

     

     

     관음바위 전설

     

     

     

     

     

     

     

     

     

     

     

     

    관음보살과 관음바위에서 바라본 대웅전모습이다...

     

     

     

     

     

     

     

     

     

     

     

     

    ◯  수덕사 관음전

     

     

     

     

     

     

     

     

     

     

     

     

     

     

     

    관세음보살을 모신 전각  관음전

     

     

     

     

     

     

     

     

     

     

     

     

     

     

     

     

     

     

     

     

     

     

     

     

    관음전 좌측측면이다...

     

     

     

     

     

    관음전 우측측면으로 '지명법사 비'가 자리하고 있었다...

     

     

     

     

     

     

     

     

     

     

     

     

     

     

     

     

    □   한국 33관음 성지

     

    일본에서는 33관음성지를 순례하면 무병장수와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믿음이 전해 내려와 연간 80만 명의 불자가 이 행렬에 참여한다고 한다.

    한국의 33관음성지는 대한불교 조계종이 한국관광공사와 함께 일본의 ‘33관음성지’에 착안해 관음신앙을 중시하는 전통사찰 33곳을 2009년 5월에 확정했다.

    관음신앙은 관세음보살(관음보살)을 신봉하는 불교신앙으로서. 불교의 핵심 사상인 ‘자비’의 상징이다. 관세음보살은 부처지만 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부처의 자리를 버리고 보살이 되어 중생을 구제한다.

    * 33은 관음보살의 33가지 형상을 뜻한다.

    ◇ 한국 33관음성지

     

    ▶ 수도권=보문사(강화)· 조계사(서울)· 용주사(화성)· 신륵사(여주)· 봉은사(서울)· 도선사(서울)

    ▶ 충청권=수덕사(예산)· 마곡사(공주)· 법주사(보은)

    ▶ 전북권=금산사(김제)· 내소사(부안)· 선운사(고창)

    ▶ 전남권=백양사(장성)· 대흥사(해남)· 향일암(여수)· 송광사(순천)· 화엄사(구례)

    ▶ 경북권=동화사(대구)·은해사(영천)·해인사(합천)·직지사(김천)·고운사(의성)·기림사(경주)·불국사(경주)

    ▶ 경남권=통도사(양산)· 범어사(부산)· 쌍계사(하동)· 보리암(남해)

    ▶ 강원권=신흥사(속초)· 낙산사(양양)· 월정사(평창)· 법흥사(영월)· 구룡사(원주)

     

     

      

     

     

    관음전 앞  마당에는 관세음 보살님이 참 아름답게 서 계신다.

     

     

     

     

     

     

     

     

     

     

     

     

     

     

     

    이곳 관음전에는 백련당 입구의 청동관세음보살과  조금 다른 관세음보살님이 계신다.

     

     

     

     

     

     

     

     

    ◯  수덕사 승당인  백련당(白蓮堂)과 청련당(靑蓮堂)

     

    대웅전 앞 삼층석탑 양 옆 좌우로 비치되어 있다...

     

     

     

     

    대웅전 마당에서 본 대웅전 정면에서 우측의 백련당은 우백호 상징, 1926년에 건립,  1993년에 개창 

     

     

     

     

    스님들의 처소

     

     

     

     

     

    백련당에서 大관음사 포항도량 도연주지스님이 수덕사에서 정진하시는 도반스님과 함께한 소중한 시간이시다..

     

     

     

     

    관음전 마당과 대웅전 정면 우측   백련당

     

     

     

     

     

     

     

     

     

     

     

     

     

    수덕사 금강보탑 앞에서 바라본 청련당

     

     

     

     

    스님들의 처소,  대웅전 좌좌청룡 상징,  1974년 견성암 건물을 이전. 축소 건립했다... 

     

     

     

     

     

     

     

     

     

    1997년 청련당을 개축하여 청련당 뒤쪽으로 168평의 공양실을 마련했다...

     

     

     

     

     

     

     

     

     

     

     

     

     

     

     

     

     

     

     

     

    ◯  수덕사 명부전

     

     

     

     

    대웅전 바라보며 우측으로 자리한 수덕사의 명부전이다...

     

     

     

     

     

     

     

     

     

    명부전의 지장보살님과 목각탱

     

     

     

     

     

     

     

    지장 보살님을 중심으로 좌우의 시왕(염라대왕을 비롯한 지옥을 관장하는 열명의 왕)목각탱을 모셨다

     

     

     

     

     

     다른 사찰과 달리 목각탱이 있었고 시왕상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  수덕사 염화실

     

     

     

     

     

     

    명부전 뒤로 수덕사의 전각 중에서 가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는 염화실이다..

     

     

     

     

     

     

     대덕스님의 처소이다...

     

     

     

     

     

     

     

    ◯  수덕사 선원

     

     

     

     

     

     

     

     

     

     

     

     

     

     

     

     

     

     

     

     

    ◯  수덕사 심우당으로  승가대

     

     

     

     

    심우당으로 現 승가대학,  이 건물 왼편으로 등산로가 나 있는 길을 따라 견성암으로 간다...

     

     

     

     

     

     

     

     

     

     

     

     

     

     

     

     

     

     

    많은 사람들 무심의 발자국 놓여진 길엔 숫한 사연들이 강물처럼 넘쳐나고 한 장의 뒹구는 나뭇잎에도 속내 깊은 이야기가 숨어있더라.

    간혹 길가다 마주치는 눈빛 하나 저도 몰래 핏빛 멍울로 저려오는 것은 그네들의 삶이 나의 삶 같기 때문이리니 살아가는 모습들 달라도 마음 모서리 앉아있는 멍울 꽃들은 골수 깊이 스민 내 아픔 같았기에 덧없는 인생 길에서도 자꾸 눈물이 나더라.

    천년의 숨박꼭질 속에 만난 수덕사와 나,   옷깃 스친 여린 만남의 인연 속에 눈부셨던 찰나의 마주침 어찌 소중하다 하지 않으랴 ......

     

     수덕사 승가대학 앞을 지나  견성암으로 일엽스님의 향기를 따라 나선다...


     

     

     

     

     

    견성암 가는 길,  저 다리를 건너 왼쪽 길로 가면 비구니들의 수행도량인 견성암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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