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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주사(충북 보은군)
    사찰여행/충청도 2013. 3. 24. 15:14

    신라시대에 처음 법등을 밝힌  법주사

     

      

     

    2013.  3.  24. 

     

     

     

    2013. 3. 20. 06:20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에서 충청북도 영동군의 반야사, 괴산군 공림사와 보은군의 법주사로 가기 위하여 우리절에서 출발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침 법회를 하며 영동으로 향한다.

    대포고속도로를 달려 경부고속도로 경유해 칠곡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산수 수려한 황간IC를 진입해 2시간 30분을 달려 9시 45분에 반야사에 도착하니 고운 안개비가 우리를 맞아준다....

     

    9시 45분에 반야사에 도착후 조용조용 스님들 공부에 방해가 안되게 사찰관람 후 10시 55분에 공림사로 출발 12시 20분경 공림사 주차장에 버스가 도착했다....

    우리가 준비해간 공양을 공림사 공양간에서 공양후 반야사 순례를 하고 13:30 속리산 법주사로 출발하여 14:20분에 법주사에 도착한다.

     


     

     

     

     

     

    속리사로 이동중 정이품송과 수년(?) 만에 만난다. 그 세월 사이 왼쪽 수형이 다 망가졌네....

     

     

     

     

     

    ○ 속리사를 들어서며

     

     


     

     

     

     

     

    일주문에 도착도 하기전 부터 소원들이 많이 싸여 있다.

     

     

     

     

     

     

     


    길손이 목을 축이기에 충분한 멋진 샘터다

     


     

     

     

     


     

    일주문에 들어설 때는 오직 일심(一心)으로 불법에 귀의해야 하겠다는 마음을 다지며, 세속의 번뇌로 흩어진 마음을 사찰에 들어섬으로써 하나로 모아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다.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이라고 적혀있는 일주문이 보인다.  '호서'는 충청북도 제천의 의림지호를 중심으로 서쪽에 위치한 충청도를 가리키며, 그 중 으뜸의 가람을 알려 준다

     

     

     

     

     


     

    나귀에 불경을 싣고 와서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법주사(法住寺)

     

    사적 제503호.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이다.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그후 법주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찰이 되었다. 고려 숙종이 1101년 그의 아우 대각국사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도 이곳에서 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碧巖)이 중창한 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안쪽의 편액에는 속리산 대법주사(俗離山 大法住寺)라고 적혀 있으며, 제일 왼쪽편에 작은 글씨로

    광무 6년 임인 사월 일 중건 (光武 六年 壬寅 四月 日 重建)이라 적혀있다. (대략 1902년도쯤 될려나?)

     

     

     

     

     

     

     


    일주문을 지나자 커다란 당간지주가 양쪽으로 마주보며 법주사를 찾는 길손을 맞는다.

     

     

     

     

     

     

     

     

    ○ 법주사 초입의 탄성스님과 월산스님의 부도

     


     

     

     


    절로 들어가기 전에 오른쪽으로 못보던 부도가 보여서 자세히 살펴보니

     


     

     

     


    두분의 부도가 있는데 왼쪽에 모셔졌던 탄성스님의 부도와 같이 한 구역을 이루고 있다.  오른쪽에는 불국사에 조실로 계셨던 월산스님의 부도다.  뒤에 보이는 것이 부도비다.

     

     

     

     

     



     

     

     




     


     

    부도군 너머로 암자도 보인다.

     

     

     

    ○ 법주사 사실기비

     


     

     

     

     

    수정교 앞에 있는 비이다.

    조선 현종 7년(1666)에 세운 것으로,  비문은 당시 명망이 높았던 우암 송시열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비문의 내용은 속리산 수정봉 위에 있는 거북바위에 얽힌 이야기에 관한 것으로, 불교와 유교의 관계가 잘 드러나 있다.

     

     

     

     

     

     

     

     

     

    ○ 벽암대사비

     

     

     

     


    벽암대사의 행적을 적고 있다.

    벽암대사는 조선 중기의 승려로 법명은 각성이며 벽암은 그의 호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해전에 참여하였고, 인조 때 남한산성을 쌓을 때에는 8도도총섭으로 임명되어 승려들을 이끌고 3년만에 공사를 완성시키었다.

    인조 14년 병자호란이 일어나 왕이 남한산성으로 천도하자 승려 수천명을 모집하여 호남의 군사들과 함께 적들을 섬멸하였다.

    남한산성으로 향하던 중 전쟁이 끝나 승려들을 돌려보내고 지리산으로 들어갔다.

    인조 24년(1646) 가을 속리산 법주사에서 동문인 희언과 머물렀고, 희언이 화엄사로 가서 입적하자 그도 화엄사로 들어가 지내다가 현종 1년(1660) 86세의 나이로 입적하였다.

     


     

     

     

     

    비는 넓직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운 후, 제법 묵직하고 투박한 머릿돌을 얹은 모습이다. 조선 현종 5년(1664)에 세운 것으로 선조의 손자인 낭선군이 글씨를 썼다.

     

     

     

     

     

     

    하마석을 지나  이 개울을 건너면  금강문이다..

     

     

     

     

    ○ 법주사 금강문

     

     

    하마석을 지나 개울을 건너 금강문앞에 당도했다. 법주사 가람 첫 입구인 금강문이다.

    금강문은 인왕상을 봉안하기 때문에 인왕문(仁王門)이라고도 부른다.  금강문 뒤로 사천왕상을 모신 법주사 천왕문이 보인다.

     

     

     

     

     

     

     

     

     

     

     

     

     

     

     

     

     

     

     

     

     

     

     

    ○ 법주사 천왕문(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46호)

     

     

     

     

     

     천왕문 앞에 선 전나무 두 그루.'뜰에 잣나무로다'라는 이름난 화두와 연관이 있다 한다.

     

     

     

     

     


    금강문을 지나니 눈앞에 천왕문을 호위하는 듯 인상적인 키큰 전나무 1쌍이 우리를 맞는다.

     


     

     

     


    하늘을 찌를듯 키가 큰 전나무 두 그루가 호위하고 있는 사천왕문,  빛바랜 금강문 단청의 색감이 너무 고와 한참을 올려다 보았다.

     


     

     


     

    천왕문 너머 몸을 숨긴 팔상전이 빼꼼히 고개만 내밀고 낯선 방문객들을 염탐하는 듯하다.

     

     

     

     

     


    법주사 사천왕상은 우리나라 최대의 걸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앞면 5칸 옆면 2칸의 비교적 큰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人 자 모양의 맞배지붕집이다.  가운데 1칸은 입구이고 양쪽 2칸은 사천왕상을 2구식 배치하였다.

     

     

     

     

     

    ○ 법주사 청동미륵대불

     

     

     

     

     


    법주사의 이미지라 할만큼 법주사 하면 미륵대불을 떠올린다.

    법주사는 신라 혜공왕 때인 776년, 진표율사가 금동미륵대불을 처음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높이 8m의 기단 위에 25m 높이로 우뚝 선 미륵대불이 법주사에 자리 잡은 것은 불과 40여 년 밖에 되지 않는다.  

    미륵대불이 위치한 곳에는 옛날 산호전(珊瑚殿)· 산호보광명전(珊瑚普光明殿), 또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이라 불리던 법당이 있었다.   이 법당 안에는 신라시대 진표 스님이 조성한 금색의 미륵장륙상이 있어 오랫동안 법주사의 구심적 역할을 해왔었다.   그러나 1872년(고종 9) 경복궁 복원을 위한 당백전(當百錢) 주조란 명분을 들어 흥선대원군은 미륵장륙상을 압수하여 녹이고 말았다.

    이후 1939년 주지 석상(石霜) 스님의 원력과 김영곤(金永坤) 거사의 시주에 의해 미륵불 조성불사를 착수하였으나 완성하지 못하였다.  미륵불을 조성한 것은 1964년에 이르러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시주로 완성하였다.  그러나 시멘트로 조성한 불상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점차 외관이 볼썽사납게 변하였다.  1990년 이를 안타깝게 여긴 주지 월탄 스님과 사부대중들이 힘을 합쳐 지금의 청동미륵대불과 용화전을 완성하였다.  여기에 소요된 청동의 무게는 무려 160톤에 달한다.  점안식 날 하늘에서는 서광이 비추고 머리 위에서는 백호광명(白毫光明)이 치솟아 모든 대중이 환희와 감탄에 젖었다고 한다.  최근 청동 위에 금칠하였다.

     

     

     

     

     

     

    이 상은 미륵불입상으로 통통하고 원만한 얼굴에 머리는 나발로 중앙계주가 있는 육계를 갖췄다.  머리 뒤의 두광은 투각으로 화염문과 법륜, 화불을 장식하였다.  법의는 통견식으로 걸치고 법의자락은 상반신에서는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허리로 자연스럽게 흐르고,  하반신에서는 무릎 밑으로 U자형 주름을 이룬다.  대좌는 복련과 앙련으로 구성된 연화대좌이다.  이 상은 최근 개금불사를 하여 금색의 휘광을 내뿜고 있다.

     

     


     

     

     

     

     



     

     미륵대불의 대좌 아래 지하

     


     

     

     

     

     



     

     


    미륵대불의 대좌 아래 지하에는 반가사유상을 모신 용화전이 마련되어 있고, 그 안에는 중앙의 반가사유상을 본존으로 주변에 전시공간을 만들어 절과 산내 암자 등에 있던 성보를 전시하고 있다.

     


     

     

     


    미륵반가사유상

     


     

     

     


    화강석으로 만든 높이 8m의 기단부 안에는 용화전이 있는데, 미륵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의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용화전 벽면에는 13개의 미륵십선도가 부조되어 있다.

     


     

     

     

     

     


     

     

     

     

     

     

     

     

     

     

     

     

     

     

     

     

     

     

     

     


     

     

     

     

     


     

     

     

     

     


     

     

     

     

     


     

     

     

     

     

     


     

     

     

     

     


     

     

     

     

     

     

     

     



     

     

     

     


    대웅보전 앞의 원숭이의 원조격인듯. 청동미륵대불 지하불당 계단에 있는 원본 원숭이인듯한 돌조각

     


     

     

     

     


     

     

     

     

     

     

    ○ 법주사 팔상전(국보 제55호)

     

     

    팔상전은 법주사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법주사의 풍경을 아름답게 만들어 준다.

     

     

     

     

     

     

    법주사 팔상전은 신라 진흥왕 14년(553)에 처음 건립되었으며, 그 후 임진왜란 때에 불타버려 조선 인조 4년(1626)에 다시 지어졌으며,  최근(1968)에 완전 해체 복원공사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팔상전은 법주사의 5층 목조탑 건축으로 1984년 4월 30일 쌍봉 대웅전으로 쓰이고 있던 3층 목조탑이 화재로 소실됨으로써,  한국 목조답의 유일한 실례가 된 중요한 건축물이다.

     


     

     

      

    그 세월 만큼 문을 닫아 놓은 빗장

     

     

     

     

     


    1층과 2층은 앞.옆면 5칸, 3.4층은 앞.옆면 3칸, 5층은 앞.옆면 2칸씩으로 되어 있고, 4면에는 돌계단이 있는데 낮은 기단위에 서 있어 크기에 비해 안정감을 준다.

    지붕은 꼭대기 꼭지점을 중심으로 4개의 지붕면을 가진 사모지붕으로 만들었으며, 지붕 위쪽으로 탑 형식의 머리 장식이 달려 있다

     

    팔상전의 단청도 빛이 바래 희미한 자취와 드러난 나무빛깔이 고상한 분위기를 연출하는데  서까래 끝에만 선명히 남아있는 단청이 묘하게 매력있다.

     

     

     

     

     

     

    건물의 양식 구조가 층에 따라 약간 다른데, 1층부터 4층까지는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고, 5층은 기둥과 기둥 이에도 공포를 설치한 다포양식으로 구몄다.

    건물 안쪽은 사리를 모시는 공간과 팔상도를 모시고 있는 공간, 그리고 예배를 위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부 기둥과 기둥 사이 4면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면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八相圖)가 모셔져 있으므로 이 5충목탑을 팔상전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전체 높이는 약 22.7m로서 현존하는 한국의 탑 중에 제일 높은 것이라고 한다.

     

     

     

     

     


    팔상전에 봉안된 석가모니불

     

    팔상전에는 중앙 심주를 중심으로 사방에 부처님을 모시고, 뒷면에 탱화를 각 방향 2폭씩해서 석가모니 부처님의 일생을 표현한 팔상도를 모셨다.

    흔히 와불이라고 불리우는 열반상 중에서 제가 본 중 가장 작은 열반상이 아닌가 한다. 보통 와불은 큼직하니  모시니까. 뒤에는 초전법륜상과 쌍림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창

     

     

     

     

     

     


     

     

     

     

     

     목조 오층탑 절집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고 유명하지만 빛바랜 옆면 창호와 기둥과 들보와 단청이 새롭게 아름답다

     

     

     

     

     


     창호지 문 위 귀면상은 ‘용용 죽겠지’ 약을 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오층 전각이 탑처럼 상륜부를 얹고 있다.  너무나 유명한 팔상전이다.

     

     

     

     

     

     

     

     

     

     

     

     팔상전과 미륵대불

     

     

     

     

     

     

    팔상전, 천왕문, 전나무, 금강문이 일렬로 서서 해가 지는 하늘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기도하는 소리가 들릴 듯하다.

     

    금강문, 천왕문을 지나 팔상전, 대웅보전으로 이어지는 가람배치가 '일'자형 배치를 하고 있다.

     

     

     

     

     

     

    ○ 법주사  대웅보전(보물 제915호)

     

     

     

     

     

     대웅보전 앞 보리수 두 그루.

     

    대웅보전은 옛 기록과 기단석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처음 세운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앞면 7칸, 옆면 4칸의 2층 팔작지붕인 대웅보전은 1624년(인조 2년)에 중건하였고 이후 잦은 중수를 거듭하였지만, 조선중기의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어 보물로 지정 되었다.

    현재의 건물은 2005년 10월에 벽암대사가 중창한 이후 400년만에 원형을 복원한 것이다.

     

     

     

     

     

     칠한 지 얼마 안 된 것 같아도 대웅전 단청은 보통 솜씨가 아닌 듯...

     

     

     

     

     

     

     

     

     

     

     

    대웅전은 앞면 7칸, 옆면 4칸 규모의 2층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내부에 모신 삼존불은 벽암이 다시 지을 때 조성한 것으로 법신(法身)비로자나불, 왼쪽에 보신(報身)인 노사나불, 오른쪽에 화신(化身)인 석가모니불이 있다.

     

     

     

     

     

     

     

     

     

     

     

     

     

     

     

    대웅보전  계단 면석에 새겨진 태극무늬와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소멧돌 마지막 계단엔 연꽃을 새겼다.

     

     

     

     

     

     

     1500년 고찰 대웅전 앞 양지바른 자리에 코믹한 원숭이가 겨울 햇볕을 즐긴다.

     

     

     

     

     

     

     

     

     

     

    파란 하늘과 잘 어우러 진다.

     

     

     

    ○ 법주사  약사전

     

     

     

     

     

     

     

     

    법주사 약사전은 원래 20세기초까지는 원통보전 동쪽 정면에 있었다. 지금의 약사전은 최근에 지은 건물이다.

    약사전 중앙 불단에는 약사불 좌상을 독존으로 모시고 뒤에 약사후불탱을 걸었는데 모두 1997년에 조성되었다.

     

     

     

     

     

    약사불은 좌우에 일광(日光),월광보살(月光菩薩)은 없다. 손은 중품중생인을 결하고 왼손에 약함을 들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연화대좌 위에 정좌하고 있다. 볼륨감 있는 얼굴과 신체에서는 현실감이 느껴지고, 통견식으로 걸친 법의는 신체를 따라 비교적 밀착되어 자연스럽게 주름을 형성하고 있다. 머리는 나발로 큼직한 중앙계주를 갖추고, 육계는 평편하고 낮다.

    뒤에 봉안된 약사불탱은 약사회상을 묘사한 것으로 원형의 두광과 신광을 갖춘 약사불 주위로 보살을 비롯한 권속들이 에워싼 군도형식을 취하고 있다.

     

     

     

     

    ○ 법주사 원통보전

     

     

     

    앞면과 옆면이 각각 3칸인 정사각형 1층 건물로 지붕은 중앙에서 4면으로 똑같이 경사진 사모지붕이다.

    지붕 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으로 구몄다.

    단순하지만 특이한 건축양식을 갖추고 있어서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안에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1361호)이 모셔져 있다.

     

     

     

     


     

     

     

     

     

     


     

     

     

    건물 안에는 앉은 키 2.8m의 금색 목조 관세음보살상을 모시고 있다.  관세음보살상은 머리에 화관(花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에는 자비로운 웃음을 머금고 있다.

     

     

     

     

     

    목조관세음보살좌상(木造觀世音菩薩坐像)

     

    좌대 아래 해상용왕(海上龍王)과 남순동자(南巡童子)가 좌우에 합장하고 있는 모습이 특이 하다.

     

     

     

     

    ○ 법주사 명부전

     

     

     

     

     

    명부전은 진영각과 삼성각 사이에 있는 건물인데 맞배지붕 건물이다. 청동미륵불을 조성하면서 삼성각과 함께 지었다. 원래 법주사에는 조선 중기까지만 해도 지장전이라 하여 지장보살을 봉안한 전각이 있었으나, 이후 18세기와 20세기초의 가람에는 지장전이 사라졌다.

     

    건물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데 측면 간살은 좁다. 장대석으로 낮은 기단을 만들고 그 위에 다듬은 원형초석을 놓았다. 기둥은 민흘림으로 다듬은 원형기둥을 세웠고 기둥머리는 창방을 끼운 뒤 다포계 공포를 올렸다. 구조는 간결한 5량가로 결구하였다. 처마는 서까래 위에 부연을 쓴 겹처마를 얹었다. 지붕은 한식기와를 올려 맞배로 만들었으며 기와골 끝은 막새를 끼웠다. 지붕 좌우에는 풍판을 달지 않아 구조가 드러나 있다. 정면은 모두 4분합문을 달고 측면에 외짝 출입문을 설치하여 드나든다.

     

     

     

     

     

    현재 명부전 안에는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을 봉안하였다. 그 좌우로는 각각 5구씩의 시왕상이 있는데 모두 동자상을 대동하였다. 또한 각 2구씩의 판관·녹사·인왕상도 배치되었다. 지장보살상 뒤에는 1996년에 조성한 지장보살도가 있고, 1992년에 주조한 동종도 있다. 명부전 외벽에는 삼면에 걸쳐 지옥세계의 무서운 장면을 벽화로 그렸다.

     

     

     

     

     

     

     

     

     

     

     

     

    ○ 법주사 삼성각

     

     

     

     

    삼성각은 명부전 옆에 있는 건물인데  팔작지붕 건물이다.

     

     

     

     

     

    내부에는 독성탱, 칠성탱, 산신탱을 모셨다.

     

     

     

    ○ 법주사 진영각(眞影閣)

     

     

    정면 7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건물인 진영각은 개산조(開山祖)인 의신조사(義信祖師)를  중심으로 24분의 진영을 모시고 있다

     

     

     

     

     역대 고승들의 영정을 모셔놓은 전각이다

     

     

     

     

     

     

     

     

     

    ○ 법주사 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

     

     

    이 석등은 상대석에 사천왕이 새겨져 있어 사천왕석등이라 부른다.

     

     

     

     

     

    팔상전 서쪽에 자리하고 있는 석등이다.

    전체적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으며,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3단의 받침돌을 두고 위에는 지붕돌을 올리고 있다.

     

     

     

     

    네모난 받침돌 에 아래받침돌은 면마다 안상을 얕게 새기고, 그 윗면은 가운데받침돌을 사이에 두고 윗받침돌과 대칭되게 연꽃을 조각하였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을 두었고, 나머지 4면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신으로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여덟곳의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가 경쾌한 느낌을 준다.

     

    대체로 각 부분의 양식이 정제되어 있고 조각수법이 우수하여,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을 대표할 만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제작시기는 신라 불교미술이 꽃피워진 8세기 중기 이후로 짐작된다.

     

     

     

     

     

    사천왕 석등의 화창(火窓)을 통해 팔상전의 찰주와 보주가 보인다.

     

     

     

    ○ 법주사 쌍사자 석등 (국보 제5호) -  팔상전과 대웅보전 사이에 위치

     

     

     

     

     

     

    법주사 대웅전과 팔상전 사이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석등으로, 사자를 조각한 유물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으며 매우 특수한 형태를 하고 있다.

    넓다란 8각의 바닥돌 위에 올려진 사자 조각은 두 마리가 서로 가슴을 맞대고 뒷발로 아래돌을 디디고 서서 앞발과 주둥이로는 윗돌을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아랫돌과 윗돌에는 각각 연꽃을 새겨 두었는데, 윗돌에 두줄로 돌려진 연꽃 무늬는 옛스러운 멋을 풍긴다.  사자는 현재 남아있는 사자 조각들 가운데 가장 뛰어나 머리의 갈기, 다리와 몸의 근육까지도 사실적으로 표현하였다.

     

     

     

     

    지붕돌은 처마밑이 수평을 이루다가 여덟 귀퉁이에서 위로 살짝 들려 있는데, 꾸밈을 두지 않아서인지 소박하고 안정되어 보인다.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은 8각으로 높직하며, 네 곳에 창을 두어 불빛이 새어나오도록 하였다.

     

     

     

     

    석등을 세운 시기는 성덕왕 19년(720)으로 추측되며, 조금 큰 듯한 지붕돌이 넓직한 바닥돌과 알맞은 비례를 이루어 장중한 품격이 넘친다.

     

     

     

     

    신라의 석등이 8각 기둥을 주로 사용하던 것에 비해 두마리의 사자가 이를 대신하고 있어 당시로서는 상당히 획기적인 시도였을 것으로 보이며, 통일신라는 물론 후대에 가서도 이를 모방하는 작품이 나타났다.

    같은 절에 있는 사천왕 석등(보물 제 15호)과 힘께 신라 석등을 대하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 법주사 석조회견보살상(보물 제1417호)

     

     

     

     

    이 석조희견보살입상은 지대석위에 비교적 큰 향로를 머리에 이고 서 있는 흔치 않은 조각상이다.

     

     

     

     

    희견보살상으로 불리어 오고 있으나 그 유래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 수 없다.

    하부 대석과 신부, 그리고 향로 받침까지가 1석이고 그 위에 발우형 향로가 올려져 있다.

    부처님께 향불을 공양올리는 독특한 조각상이다.

     

     

     

     

    조각은 얼굴 부분이 심하게 파손되었으나, 그 밖의 부분은 비교적 양호하다.

    특히 향로를 받쳐 든 두 팔의 모습이나 가슴부위가 사실적 표현과 함께 배면에 나타난 천의의 표현기법은 절묘하여 같은 경내의 쌍사자 석등을 제작한 동일한 작가의 작픔으로 추정된다.

     

     

     

     

     

     

     

     

     

     

     

     

    향로를 받쳐 든 전체적 구성미나 세부 조각 수법이 독특한 조각상이다.

     

     

     

     

     

     

     

     

     법화경을 공양하기 위해 몸을 불태워 소신 공양을 올렸다는 보살이다.

     

     

     

     

     

     

    ○ 법주사  세존사리탑. 능인전(能仁殿)  일명 적멸보궁(寂滅寶宮) -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32호

     

     

     

     

    세존사리탑. 능인전(能仁殿) 입구

     

    능인전은 담장이 쳐져 있고 대문을 만들어 출입하도록 되어 있다. 이곳은 출입이 제한 되어 있다고 하는데 지금은 출입이 허용된 모양인지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

     

     

     

     

    능인전(能仁殿)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조선 인조 2년(1624)에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법주사 중건시 벽암대사(碧巖大師)에 의해 중창되었다고 한다.

     

     

     

     

     

    법주사 크고작은 전각 중에 가장 강렬하게 기억에 찍힌 집이다

     

     

     

     

    세존사리탑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16호)

     

    고려 공민왕이 법주사에 행차했을 때, 통도사에 있는 석가모니의 사리 가운데 일부를 이곳에 옮겨오도록 하여 세워놓은 사리탑이다.

    8각을 기본형태로 하여, 상. 중. 하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基壇)위에 탑신(塔身)을 올리고 꼭대기에 머리 장식을 얹어 마무리하였다.

     

    기단에서 아래받침돌은 윗면에 비스듬히 경사를 주었고 가운데받침돌은 모서리마다 기둥을 새겼으며 윗받침돌은 솟은 연곷무늬로 장식하였다

    둥근 탑신의 몸돌은 아무런 장식이 없고, 지붕돌은 윗면에 흐르던 급한 경사가 끝부분에 이르러 완만해졌다.

    머리장식은 큼직한 원받침을 두어 그 위에 보주(寶珠:꽃봉우리 모양의 장식)를 얹었다.

    전체적으로 아담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 부도는 고려 공민왕 11년(1362)에 만든 것으로 전한다

     

     

     

     

    삼존불(三尊佛)

     

    여기 모셔진 중앙의 부처님은 수인으로 보아 비로자나불인 것 같다.  좌우엔 석고로 두 부처님을 모셨는데 어느 부처님인지 확실치 않다. 비로자나불이라면 대개 노사나불과 석가모니불을 모신다. 그런데 또 특이한 것은 중앙의 부처님 뒤로 광배가 있을 자리는 창을 내어 사리탑을 보며 참배하도록 되어 있다.

     

     

     

     

    삼존불 좌우에는 16아라한상을이  모셔져 있다.

     

     

     

     

     


     

     

     


     

     

     


     

     


     

     

     

     능인전 전각 처마에 용의 전신을 묘사한 조각도 본다.

     

     

     

     

    능인전 전각 옆에는 사리각이라는 건물이 나란히 있다.

     

     

     

     

     



     

     

    능인전에서 바라본 거대한 바위 모습 뒤로 탑이보인다.

     

     

     

     

    능인전의 오래된 기와의 모습에서 천년 세월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 법주사 자정국존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79)

     

     

     

     

    자정국존(1240~1327)은 국령사. 장의사.법주사 등 여러 사찰의 주지를 지냈으며 도승통이 되기도 하였고, 호는 '보명'이다.

    비는 길쭉한 직사각형의 모습으로 자연암반을 파내어 비몸을 세운 특이한 형태이다.

    비 몸 앞면에는 자정국사에 관한 비문을 새겼는데 아랫부분이 일부 파손되어 있다.

    고려 충혜왕 복위 3년(1342)에 세운 것으로 왕의 명을 받은 이 숙기가 비문을 짓고 전 원발이 글을 썼다.

     

     

     

    ○ 법주사 석련지(국보 제 64호)

     

    법주사 천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이 석련지(石蓮池)가 보인다.

     

     

    돌로 만든 작은 연못으로, 물을 담아두며 연꽃을 띄워 두었다고 한다.

    불교에서의 연꽃은 극락세계를 뜻하며 사찰 곳곳에서 이를 본뜬 여러 형상들을 만날수 있다.

    석련지는 8각의 받침돌위에 버섯 모양의 구름 무늬를 새긴 사잇돌을 끼워서 큼지막한 몸돌을 떠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몸돌은 커다란 돌의 내부를 깍아 만들었는데, 반쯤 피어난 연꽃 모양을 하고 있어 그 쓰임과 잘 어울리며 외부의 곡선과도 아름다운 조화를 이룬다.

    표면에는 작은 연꽃잎을 돌려 소박하게 장식하였고, 윗부분에는 큼지막한 연꽃잎을 두 겹으로 돌린 후 그 안으로 화사한 꽃무늬를 새겨두었다

    입구 가장자리에는 낮은 기둥을 세워 둥글게 난간을 이루었는데, 그 위로는 짧은 기둥을 새긴 후 난간 모양이 되도록 조각해 놓아 마치 난간이 두줄로 된 듯하다.

     

     

     

     

    밑의 난간벽에는 여러가지 무늬를 새겨 놓아 화려함을 한층 더 살려준다.

     

     

     

     

     

     

     

     

     

     

     

    윗난간에 세워진 기둥은 아주 기발한 착상이라 할 수 있는데, 블국사 다보탑에 새겨진 돌난간의 기둥과도 비슷하며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8세기경에 제작된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으로, 절제된 화려함 속에 우아함이 피어나는 아름다운 자태는 석련지의 대표작이라 불리울 만 하다.

     

     

     

     

    ○ 법주사 석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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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석조는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긴 네모꼴의 큰 물통이다

    법주사의 삼천 승려들의 식수를 담아두던 돌그릇이라 한다.

    직시각형 모양으로 아무런 조각을 하지 않은 간결한 모습이며 규모는 길이 4.46m 폭 2.4m로 제법 크다

     

     

     

    ○ 법주사  마애여래의상(보물 제216호)

     

     

    능인전 옆 추래암 암벽에 새겨진 고려시대의 마애불상이다

    이 거대한 바위는 법주사의 명물로 여겨진다. 바위 앞쪽에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마애여래의좌상

     

    높이 약 6m나 되는 큼직한 바위에 볼록 새겨진 이 여래좌상은 보기 드물게 의자에 앉아 있는 의상(倚像)으로 옆에 조각된 지장보살과 함께 법주사의 성격을 알려주는 미륵불상으로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마애불(磨崖佛:암벽에 새긴불상)이다.

     

     

     

     

    암벽에 새긴 천년 고려 마애불은 크기가 금동여래불 5분의 1밖에 안 돼도 기품은 500배도 넘겠지....

     

     

     

     

    금강문과 아주 가까이서 만난 마애불상,  날씬한 허리와 살아있는 손같은 수인이 일품이다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그 옆 바위의 지장보살상.  마모가 심하고 뚜렷하지 않아 모르면 모르고 지나간다.

    마애불 왼쪽의 또 다른 숨은 그림찾기.   법주사의 창건설화가 이 속에 담겨져 있다.

    짐을 싣고 가다 멈춰선 말과 사람. 꿇어 앉은 소와 주인...

     

     

     

    마애불 아래의 공간

     

     

     

     


     

     

    이 마애불이 새겨진 바위는 추래암이라고 불리우는데 옛 사람들이 크게 각자로 생겨 놓았다.

     

     

     

     

     

     

     

     마애여래불상님 옆 커다란 바위에 많은 글이 새겨져 있다.

     

     

     

     

     

     

    ○  하늘 높은 곳에 머리를 내밀고 있는 법주사 당간지주

     

     

     

     

    당간이란 솟대와도 같은 기능을 갖게 되어 신성구역임을 표시하는데 쓰이기도 한다.

      

     

     

     

    철당간지주라고도 하는데 원래 법주사의 당간지주는 고려 초 목종 9년(1006년)에 16 m 높이로 조성되었으나  1866년 대원군이 당백전(當百錢)을 주조한다는 명목으로 사찰의 금속물을 징발하면서 사라졌다.

    현재의 당간지주는 1910년에 조성한 것으로 높이 22 m이며, 1972년에 보수하였다고 한다.

     

     

     

     

     

     

    법주사 철확 (보물 제 1413호)

     

     

     

     

    철확은 무쇠로 만든 솥이다. 법주사에 전하여 오는 말로는 신라 성덕왕때(720~736재위)에 조성하였는데, 당시 법주사가 한창 번성하여  3,000승도가 운집하여 있을 때 장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법주사의 사세가 가장 융성했던 시기에 제작되었을 것으로 보이는 이 철솥은 국내에 전하는 사례가 매우 희귀할 뿐만 아이라 거의 완벽한 조형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 법주사 석상대종사(霜大宗師)와 금오선사(金烏禪師)의 부도와 탑비

     

    마애불 왼쪽 주변에 있다.

     

     

     

     


    부도 2기와 4기의 탑비가 세워져 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석상대종사(霜大宗師)와 금오선사(金烏禪師)의 부도와 탑비다.

     


     

     

     


    대종사석상지탑(大宗師石霜之塔)

     

    정방형의 지대석 위에 찰각형 하대석을 올리고 그 위에 옹기형 탑신을 올리고 그 위해 팔각옥개석을 올렸다.   탑신 중앙에는 '대종사석상지탑(大宗師石霜之塔)'이라는 명문을 새겨 탑의 주인공이 누구인가를 알려 준다.

     

    석상신수(石霜信首,1872~1947)스님은 12년간 법주사 주지를 역임하며 도제양성과 중생구제의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석상스님은 1928년부터 1940년까지 12년간 법주사 주지를 역임했는데 이때 당대 최고의 조각가 김복진으로 하여금 ‘미륵대불’을 조성하도록 했고, 가산 김영곤 불자와 뜻을 같이해 ‘세계에서 제일 큰 미륵불상’ 조성을 추진했다. 이때가 1939년 3월로 일제가 소위 대동아전쟁을 일으켜 조선을 수탈하던 시기였다.  미륵대불을 만들게 된 것은 절망에 빠져있던 조선인들에게 한줄기 희망을 주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금오당태전지탑(金烏堂太田之塔)

     

     

     사각지대석을 5층으로 올리고 그 위에 보련과 앙련의 연화대를 놓은 위에 팔각대석을 놓은 위에 둥근 돌의 탑신을 올리고 탑신 위에는 보주를 올렸다. 탑신 중앙에는 '금오당대전지탑(金烏堂太田之塔)이라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금오대종사부도비(金烏大宗師浮屠碑)

     

     

     

     

    ○ 법주사 범종각

     

     

     


     

     

     


     

    ○ 법주사 종무소

     

     

     

    ○ 법주사 나한전

     

     

     

    지금은 빈 전각이었다.

     

     

     

     

     

    ○ 법주사 요사

     

     

     

     

    궁현당과 요사

     

     

     

     

     

     

     

     

    강원

     

     

     

     

     염화실

     

     

    ○ 법주사 감로수

     

     

     

     


     

     

     

     

     

    ○ 법주사 수정암

     

     

     

     

    마애불을 참배하고 왼쪽 주변을 돌아보니  부도전 옆으로 수정암 가는 길이 보인다. 

     

     

     

     

     

    비구니 도량이라서 초입부터가 출입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수정암과 인접한 곳에 자연석을 이용한 탑과 탑비가 2기씩 서 있다.

     

     

     

     


     

     

     

     

     

     

    이름같이 아름다운 수정암이 정갈하게 자리잡고 있다.

     

     

     


    수정암은 법주사 암자로서 보은군지에 의하면 1914년 張泰守 비구니가 창건하였으며, 1973년 極樂殿과 眞影閣, 요사채 등을 중건하였다.

     

     

     


     

     

     


     

     

     


     

     

     무엇을 기원했을까? 수정암 앞 냇가에는 소원탑이 많다....

     

     

     

     

     


     

     

     

     

    ○ 법주사 찻집

     

     

     

     

     


    ○ 법주사 템플스테이 공간

     

     

     

     

     

    앞의 다리는 능인교(能仁橋)이고 다리를 건너면 법주사 부속건물로 템플스테이를 위해 신축한 건물이다

     

     

     

     

     


     

     

     


     

     

    템플스테이를 위해 신축한 건물이 참 편리 하게 되어 있다..언제쯤일지는 몰라도 한번쯤 여기서  템플스테이를 경험해 보고 싶다...

     

     

     

     

     

    ○ 법주사 전경들...

     

     


     

     

     

     


     

     

     


     

     

     

     

     

     

     


     

     


     

     

     

     

     

     

     

     


     

     

     


     

     

     

     

     

     

     

     

     

     


     

     

     

     


     

     

     


     

     



     

     

     

     


     

     

     


     

     

     


     

     

     


     


     

     

     

     

     


     

     


     

     

     

     


     

     

     

     


    ○ 법주사를 나서며

     

     

     

     


     

     

     

    숲을 끼고 흐르는 계곡물이 너무나 맑아, 지니고 온 세속의 온갖 잡념이 다 비치는 것 같다.

     

     

     

     


     

     

     


     

     

     

     

     

     

     

     

    수많은 유물과 유적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법주사는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유지되어온 사찰로 규모면에서도 거대함을 느껴본다.   웅장함도 함께....

    거대함과 크기에 놀라고 여러 보물들을 보며 또 놀라고.......

     

    신라시대에 처음 법등을 밝힌 법주사,

    그 기나긴 세월의 발자취가 절의 안팎에 수많은 유물과 유적으로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호서 제일의 가람 속리산 법주사(사적 제503호)를 찾아 천년 향기에 한참을 취했다가 초봄이건만 푸르름에 묻힌 아름다운 숲길을 따라 되돌아 나왔다.

    속리산법주사 일원은 명승 제61호로 지정될 만큼 그 아름다움이 빼어난 곳이다.

    몇년전 다녀 갔었던 유물과 유적의 보물창고인 천년고찰 법주사를 다시 돌아보고 나오는 느낌은 또 달랐다.

     

    오늘도 부처님 인연으로 함께한 반야사, 공림사, 법주사  순례를 마치고 16:00에 포항으로 출발하면서 참 많이 감사한 하루였다...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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