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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경남 남해시)사찰여행/경상도 2013. 7. 21. 22:44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처의 하나인 보리암
2013. 7. 20.
2013. 7. 19. 한국불교대학 도솔산악회와 함께한 금산 산행 후 들러본 보리암.........
이번이 3번째인 보리암 순례길이다...
짙푸른 나뭇가지 사이로 합장한 마음이 걸렸다. 굽어보는 해수관세음보살상 뒷모습이 그윽하다. 멀리 다도해가 일렁였다. 남해 금산 보리암이 가슴에 담긴 순간이다.
봉수대에 오르면 사방이 막힘이 없다. 금산 정상에서 내려다 보이는 보리암
보리암
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雙磎寺)의 말사이다. 683년(신문왕 3)에 원효(元曉)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 산 이름을 보광산(普光山)이라 하고 초암의 이름을 보광사(普光寺)라 하였다.
그 뒤 이성계(李成桂)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왕조를 연 것을 감사하는 뜻에서 금산이라 하였고, 1660년(현종 1)에는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願堂)으로 삼고 보리암이라 개액(改額)하였다.
그 뒤 1901년에 낙서(樂西)와 신욱(信昱)이 중수하였고, 1954년에 동파(東波)가 중수하였으며, 1969년에는 주지 양소황(梁素滉)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으며 현재는 능원 스님이 주지로 계신다....
남해금산 정상에서 바라본 미조항쪽과 상주 해수욕장 전경이다. 아기를 안고 앉아 있는 엄마의 모습’을 닮은 2개의 섬에는 ‘미륵이 돕는다’는 뜻의 미조(彌助)라고 한다....
금산 정상 즈음에 도착하여 담은 한려수도의 모습이다. 섬이 참 많은 것이 남해안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상 전망대에서 상주해수욕장, 보리암, 화엄봉을 바라본 전경이다.
보리암 불교용품점에 다다르면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도량이 눈에 들어온다.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태조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다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금산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갖 기이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형리암과 대장봉
형리암은 외부인 출입을 금하고 있다..
계단을 내려서면 바로 드넓은 바다가 보인다.
한참을 걸어 목마름을 샘물 한모금으로 해결하고 이내 바다를 내려다 본다.
그러고 보면 샘의 물은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다. 상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산 정상부위에 이렇게 물이 나온다는 것이 마냥 신기하다.
보리암에서 내려다 본 남해 상주 은모래 비취 해수욕장이다.
고즈넉함이 느껴지는 보리암 보광전
보광전 당호의 법당은 흔치 않다고 한다. 원래 고대 중인도 마가다국 보리도량에 있었다고 하는 법당 이름이다. 부처님께선 적멸도량과 보광법당회, 도리천회, 야마천회, 도솔천회, 타화천회, 보광법당중회, 보광법당심회, 서다림회 등 9번 법회를 열고 ‘화엄경’을 설했다. ‘깨달음(=빛, 光)을 널리 펴겠다’는 법당 이름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대목이다. ‘화엄경’ 입법계품엔 관음보살이 상주하며 중생을 제도한다는 인도 남쪽 보타락가산이 등장한다. ‘화엄경’과 관음보살, 보광전이 그리 낯설지 않는다.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향나무로 만든 관세음보살에 개금불사를 했다. 입과 몸 그리고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면 '칠난삼독'을 씻어준다는 보리암 관세음보살의 왼쪽에는 남순동자, 오른쪽에는 해상용왕이 모셔져 있다.
보광전 목각탱
보광전 탱화
보광전 벽화
보광전과 간성각이 맞닿아 있다....
장엄한 보광전 공포
보광전과 처마가 닿아있는 보리암 범종
보리암 범종 비천상
보리암 범종은 독특했다. 경봉 스님 글이 새겨져 있었다. ‘원음종(圓音鐘)’이다.
남해 금산의 끝 간 데 없는 경치에(南海錦山無限景)
하늘가 구름 밖 이 소리 퍼져 가네(天邊雲外此鐘聲).
삼라만상이 모두 다른 것 아닐진대(森羅萬象非他物)
한마음 나지 않아 여전히 미명일세(一念不生猶未明).
일승원음(一乘圓音)이다. 불이문 통과한 구도자의 법열이 소리로 화해 울린다고 한다. 아직 불이문에 이르지 못한 구도자에게 용기와 청량을 북돋고 일주문 바깥에서 허덕이는 중생 번뇌를 씻어주기 위함이다. 부처님 원음을 대신해서 토해내고 있는 게다. 모두 제각기 자신 귀로 불음을 듣는다. 마음 그릇에 따라 불음을 담는다. 기우는 해가 범종 그림자를 도량에 길게 드리웠다.
보광전과 마주한 예성당
보리암 예성당으로 설법전 같은 곳인 듯 했다.
예성당 내부
예성당에서 내려다본 남해 바다
보광전과 예성당 사이에 섰다. 종각 그림자가 발치에 와 닿았다. 인연 그림자다. 7월 18일 오후 2시, 머리 위의 해, 보광전과 예성당 사이 그리고 객. 인연 따라 곧 사라질 게다. 등산객들이 지나쳐 갔다.
해수관음상으로 가면서 바라본 보리암
해수관음상으로 가면서..
소원을 빌면 이뤄진다는 해수관음보살상
보광전 맞은 편 바위 끝에 있는 해수관음상
파도처럼 밀려든 번뇌가 깎아버린 신심이라도 절절함은 남았을 터다. 남을 위한 기도는 불구덩이였던 자신 마음 한 자락에 연꽃 핀 연못이 자리하리라. 잠잠한 바다에 일렁이는 파도는 번뇌에 다름 아니다. 해수관음이 고해인 사바를 품듯 다도해를 안았다. 풍랑 같은 번뇌가 관음보살 품에서 숨을 죽였다.
해수관음상과 대장봉의 어울림이다
방향 잃어버린 신심으로 참배했지만 해수관음은 미소 지을 뿐이었다.
금산 제1전망대라고도 불리는 해수관음상은 참배객들이 끊이지 않았다. 헬리콥터로 이곳에 이운될 때 찬란한 서광을 내뿜었던 해수관음이다. 자신이 아닌 사랑하는 인연들을 위한 기도만 들어준다는 보리암 해수관음이다.
누구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누구나 찬 바닥에 무릎 꿇고 이마를 맞댔다. 탑돌이도 빼놓지 않았다. 누구를 위한 기도일까.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엔 마음속으로 관음보살을 간절하게 염원하면 불구덩이가 연못으로 변하고 성난 파도가 잠잠해진다고 했다.
보리암 3층석탑(경남 유형문화재 제74호)
해수관음상 옆, 보리암 앞 바위 끝에 세워져 있는 3층탑은 높이가 2.3m로서 신라탑의 양식을 간직하고 있으며, 상륜부에는 보주(寶珠)가 놓여 있다. 원효대사가 이곳에 사찰을 세울 때 건립했다고 하나 학자들은 고려 초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고 있다.
가락국의 허 황후가 인도에서 가지고 온 돌로 탑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실제로는 화강암으로 된 석탑이다.)
나침반 바늘이 남쪽 대신 북쪽을 가리키는 자기난리(磁氣亂離)현상을 삼층석탑에서 볼수 있다고 한다. 나쁜 기운을 누르고 약한 기운을 돋우는 일종의 비보(裨補)라고 한다.
해수관음 앞엔 보리암전 3층 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74호)이 덩그러니 놓였다.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약한 기운을 보충하는 성격을 지닌다 했다. 전설에 따르면, 683년(신문왕 3) 원효대사가 금산에 처음 절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 수로왕비 허태후가 인도에서 가져온 석재로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해수관음상 앞에서 바라본 남해
상주 해변의 둥그런 해안선과 해안선 주변의 께끗하게 이루어진 마을 까지 정말 남쪽나라의 보물과도 같은 아름다운 정경이 시원하게 눈 아래 펼쳐져 있다.
남해 보리암의 기도처에서 바라보는 저 아랫마을 상주은모래 해안은 언젠가 발표된 한국의 33대 명당지로 선정된 바 있다.
스님 수행공간이다....
산영각은 보광전과 종무소 전각 사이를 지나 보광전 뒷편 계단으로 오른다...
산영각에서 바라본 보리암 전각
산영각에서 나가며....
보광전 옆에 위치하며 간성각으로 종무소로 이용 되고 있는 전각
'극락전' 현판이다.
극락전 현판의 만개의 불상을 모셔 놓은 법당이다...
산과 바다의 절경이 한데 어우러지는 금산의 보리암!! 어디서 찍어도 정말 그림 같았다.
보리암 극락전과 공양간
보리암 내 조선 태조 이성계의 기도처 방향 표식이다.
신은전
영응기적비
선은전에서 내려다 본 남해 바다
나라를 얻게 해 달라고 빌 정도로 경치가 빼어난 곳이다. 이런 경치 좋은 곳에서 기도를 했으니 나라를 얻을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남해 금산 이태조 선유 추념각
이태조가 기도한 것을 기념하는 전각이라는 뜻인데 전각은 온데 간데 없고 새김돌만 있다. 많은 세월이 흐르면서 모진 병화에 남아 난 것이 없음을 보여준다.
이성계가 여기에서 기도를 하고 산신의 영험를 받았다고 한다. 영험한 곳인 모양이다.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고 기도 발을 받은 이 산의 이름을 금산(錦山)으로 했다고 한다.
태조이성계 기도처(100일을 수행기도정진)
입구가 제몸으로도 겨우들어감, 4m정도 굴길이안에 2사람이 겨우 앉을 수 있다
다시금 둘러보는 보리암 전경들이다...
기도 후 보리암에서만 맛 볼 수 있는 절벽차(巖茶)는 언제쯤 맛볼수 있을런지?....
보리암 절벽에서 자라는 암차는 사람의 힘으로는 딸 수 없을 정도로 힘이 든다고 한다. ‘딸 때의 고생한 것을 생각하면 손이 떨려 주전자에 차 잎을 넣을 수가 없다’는데 차향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
‘해수관세음보살이 상주하는 남해 금산 보리암'을 떠올리면, 사람들은 신앙적으로는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이라고, 자연 풍경적으로는 해돋이 명소라고 자랑한다. 그러므로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관음도량이지만, 지금 다시 한 번 보리암을 찾는 것도 기도라고 생각한다.
보리암은 한 가지 소원은 반드시 들어주는 영험스럽고 자비스런 기도 도량이다. 사람들은 소원을 기원하기 위해 기도하러 보리암을 찾는다.
기도도량으로 가는 발길은 두 갈래다. 하나는 속세의 온갖 탐욕과 집착과 망상을 떨치고 해탈에 이르는 깨침을 위한 기도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여러 가지 소원과 바람을 부처님의 가피로 이루겠다는 복 빌러가는 기도의 길이다.
이 두개의 길이 보리암에는 가득하다. 그 길은 기도하는 사람만이 알고 있으며, 기도하는 사람만이 선택하는 것이다. 보리암 창건설화의 주인공인 원효스님은 금산이 마치 방광 하는 듯 빛나 이곳에 초옥을 짓고 수행하였다. 또 다른 주인공인 장유선사는 금산의 천태망상의 변화에 매혹되어 이곳에 터를 잡고 인도 아유타국에서 모시고 온 관세음보살을 모셨다고 한다. 창건설화의 두 주인공 수행공덕으로 기도객들은 영험을 받고 있다. 조선의 개국조인 이성계는 이곳에서 새로운 왕조를 열게 해달라는 백일기도를 드리고 소원을 성취하였다.
나는 어떤 길을 선택할까? 아니면 먼저 기도부터 할까?............
짙푸른 녹음이 싱그럽고 기운차다. 여름내 영양분을 축적하며 다음해 싹이 움틀 기운을 품고 있어서다. 짙은 녹음이 하나 둘 낙엽되어 떨어질때면 봄을 예고 하겠지....
나뭇가지가 잘려나가도 뿌리가 깊으면 새움이 돋아난다. 우리가 숨 쉬는 일을 그만두지 않는 것처럼 생명 있는 존재의 한결 같은 삶이다.
대신불약(大信不約)이다. 큰 믿음은 약속을 하지 않는다. 겨울 가면 봄이 온다 약속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겨우내 찬바람과 눈, 비를 견딘 보리암 고목들. 천년 풍설과 생명 다한 사연들을 품었다. 그리고 새싹이 터 다시 만년을 잇는다.
잎 풍성한 나뭇가지 사이로 해수관음 앞에서 기도하는 이들이 보였다. 보리암 해수관음을 찾는 기도객 신심도 약속을 하지 않는다. 천년 번뇌와 망상이 나고 죽는 사연을 품은 마음엔 다시 신심이 싹 터 만년을 이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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