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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적사(경남 산청)사찰여행/경상도 2013. 5. 20. 10:00
암자 같은 사찰 '심적사'
(문수성지 지리산에 모셔진 500 나한도량 심적사이다.)
2013. 5. 21.
2013. 5. 19. 07:00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 포항도량"에서 경남 산청의 지곡사와 심적사, 그리고 대원사로 가기 위하여 관광 버스를 타고 우리절에서 출발한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아침 법회를 하며 산청으로 향한다.
대포고속도로를 달려 구마고속도로 경유해 거창휴게소에서 잠시 휴식 후 경치좋고 인심좋은 산청을 들어서서 지곡사에 도착하니 엷은 운무가 우리를 맞아준다...
지곡사에 도착 후 성전 주지스님의 안내로 사찰 관람 후 귀한 법문까지 듣고 덕원스님이 주지로 계시는 심적사로 향한다
내리 저수지 길을 따라 산길과 숲길을 끝도 없이 들어가면, 길 끝나는 곳에 암자 같은 사찰 '심적사'가 있다.
이절은 허준선생의 스승이신 유의태 선생이 머물렀던 곳이라고도 하고 '허준' 드라마 촬영지였다고도 한다.
주지스님인 법경스님이 여의주를 들고 육조 혜능대사와 손을 잡는 선몽을 꾸고 그 힘들다는 나한도량을 중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지곡사에서 산길로 15분 정도를 가면 심적사가 나온다.
◯ 심적사(深寂寺)를 향해...
표지석 이다.
응석봉 골짜기 깊숙한 곳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심적사가 인상적이다.
응석봉(해발 1,099m)은 글자 그대로 곰바위 산이다.
산의 모양새가 곰을 닮았다 하여 곰바위산으로 부른다.
1983년에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응석봉은 지리산에서 흘러온 산이면서도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산이라고 한다.
심적사는 경남 산청군 산청읍 내리 1127번지, 응석봉 기슭에 위치한 전통사찰이면서 천년고찰이며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 말사이다.
심적사에 대해서는 그 창건연대가 기록에 남아 있는 것이 없지만 통일신라 때 국태사(國泰寺, 지금의 지곡사)의 암자로 지어졌다고 전한다. 연대는 929년(경순왕 3)이라고 한다.
창건 이후의 역사는 1610년(광해군 2)에 운일(雲日) 스님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은 중건을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추파 홍유(秋波泓宥, 1718~1774) 스님이 쓴 「산음심적암기(山陰深寂庵記)」를 보면 한동안 어려웠다가 1630년(인조 7)에 중건했음을 알 수 있다. 그 뒤에 설봉(雪峰) 스님이 연이어 보수를 거듭하다가 1749년(영조 25)에 자신과 한암(寒巖) 스님이 이곳에 머물면서 전각의 중창을 계획하여 지방관리로 추정되는 이언상(李彦祥)의 시주로 제법 커다란 규모로 중수를 하였다고 전한다.
◯ 심적사 추파당 대사 부도 및 석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8호)
조선시대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서, 조선시대 후기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석종형 부도와 석비로 석비의 비문내용이 뚜렷하여 조선 후기 경남지역의 석조물과 금석문 연구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부도는 ‘구연탑(九淵塔)‘이라고 새겨져 있는데, 부도 상단에는 연꽃봉오리형의 보주가 반원형으로 돌출되어 있고 그 아래쪽에는 첨형의 단판계앙련 형식의 13판 연화문이 장식되어 있으며, 그 위쪽으로는 판 끝이 둥근 5판 연화문을 배치하고 있다
◯ 심적사 한암대사부도 및 석비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389호)
조선시대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자료로서, 조선시대 후기에 일반적으로 보이는 석종형 부도와 석비로 석비의 비문내용이 뚜렷하여 조선 후기 경남지역의 석조물과 금석문 연구에 대한 학술적 가치가 있다.
동체부의 뒤쪽 한면이 일부 훼손되었으나, 석비 등 나머지 내용은 양호한 상태이다. 석비의 내용에는 심적사에 진영을 모셔 놓았다는 기록이 있다.
심적사 조금 못미쳐 위치한 부도전. 한암대사와 추파대사의 부도와 부도비이다.
계속된 오르막길을 지나야 심적사가 보인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심적사의 모습이다........
◯ 심적사 미륵반가유상
다리를 건너니 아름다운 반가사유상이 순례객들의 소란스러움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깊은 생각에 잠기신 채 그저 조용히 말없이 생각에 잠겨 계셨다.
미륵반가유상
심적사에는 일주문도 없고, 금강문 .천왕문도 없다. 미륵반가유상이 있는 곳이 심적사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미륵반가유상은 부처가 태자였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하여 중생구제라는 큰 뜻을 품고 고뇌하는 태자사유상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지리산 웅석봉 아래의 심적사는 높은 지대에 자리하고 있다.
심적사(深寂寺)의 요청으로 먼저 공양부터 해달라는 당부의 말씀에 따라 공양간으로 향한다...
◯ 심적사(深寂寺) 종무소 및 공양간
전각의 앞쪽은 종무소이고 뒷쪽은 공양간이다...
공양간의 조양신
맛난 공양시간....
스님들의 법명이 적혀진 자리에 잘 정돈 되어진 공양그릇
◯ 심적사 대웅전
대웅보전 앞마당에 들어서니 올라갈 때의 힘들다는 생각은 잊고 사찰 뒤로 펼쳐진 아름다운 산세와 아래로 펼쳐진 풍경에 올라올 때의 힘들었던 마음은 바람에 날려보내고.....
여기도 석가탄신일 지난지 이틀인데 아직도 축제분위기다....
1992년에 중건된 심적사의 대웅보전
심적사는 통일신라 경순왕3년(929년)에 창건하여 여러차례 중수하였으며 조선 인조7년(1630년)에 중건하였으나 한국전쟁 때 모두 불에타서 폐사 위기에 있었던 사찰의 전각은 근래에 복원되었다고 전해진다.
시원한 감로수 한 모금에 갈증을 해결하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대웅보전 편액 좌우로 두 마리의 용이 호위하고...
장엄한 닫집아래로 삼존불이
대웅전 신중탱
대웅전 신중탱에 성철스님의 증명이...
삼존불 좌우로 16나한님들이.....
영가단
대웅전 동종
대웅전 장엄한 닫집
천정에는 학들이 나라다니고
대웅전 현판쪽의 천정에는 ...
벽면탱화
작년 2012년 7월에 부임한 덕원스님 말씀에 의하면 성철스님이 출가전 유년.청년시절을 심원사에서 보내며 부처님 제자로서의 발심터가 심원사라 한다.
인생은 아주 잠깐이다.
'간절심'으로 기도하면 소원성취 이루어진다. 마음 알아차리고 살아가며 마음공부 하다보면 업장소멸이 된다.
모양새. 유명새에 끄달리는 중생놀음 하다보면 부처님이 나투셔도 알아 보지를 못하더라...
어려울때 베풀고 발심하여 번뇌. 망상이 가득찬 마음 내려 놓자.
모든것은 머무름이 없다. 늘 흘러간다.
사람과 승부도 머무름이 없고 세월도 머물지 않고 흘러간다. 영원할것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 규칙적인 생활하면서 가까운 사람 - 가족.이웃 - 에게 잘해주자.
마음속에는 부처와 악마가 있어 부처의 말을 들의면 부처가 되고 악마의 말을 들으면 악마가 되니 부처의 말을 들으며 실천하자는 심적사 덕원 주지스님의 말씀....
덧붙여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행복합니다.' 를 실천하고 살자 하셨다...
대웅전 밖의 용두와 대웅전 안의 용꼬리가 이어져 있었다.
장엄한 대웅전의 처마와 공포.단청....
◯ 심적사 산신각
대웅전 좌측에 위치한 산신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으로 칸을 질러 오른쪽에는 신당이라했는데 내부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산신님을 특색있게 함속에 안치해 두었다...
◯ 심적사 범종각
◯ 심적사 심적선원
심적사 마당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다.........
◯ 심적사 오백나한전
대웅보전 앞 마당에서 본 나한전의 모습
심적사 오백나한전 옆 삼층석탑
전설의 나한(현재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산청읍내 심적정사에 모셔져 있다)이 모셔졌던 심적사에 2002년 서부 경남에서는 최초로 500나한을 모셨다고 한다.
백두산이 뻗어 내린 산줄기가 우리나라 남단에 와서 또 한 번 큰 산으로 우뚝 솟은 산이 바로 지리산이다. 산청 지리산 웅석봉 기슭에 서부경남지역의 최고 나한도량 심적사가 중생들의 원을 듣고 뜻을 이루어 주기 위해 고요히 숨 쉬고 있다.
오백나한전에는 석가모니불과 좌우 협시불로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모셔져 있다.
오백나한님의 얼굴을 뵙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인자한 모습, 익살스런 모습... 등등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푸근한 모습들이다.
심적사는 서부 경남지역에서 영험한 나한기도 도량이라고 전한다.
나무로 500명이 넘는 각기 다른 표정의 모습을 어떻게 만들수 있는지 참으로 경이롭다....
황매산과 가야산이 시원스레 펼쳐지는 심적사와 나한과의 인연은 특별하고 끈질기다. 나한암에 있던 나한을 한때 심적사에 모셨던 인연으로 긴 세월 동안 모진 풍파에 절이 폐사가 되다시피 하고도 지금껏 그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강원도 어디에서 모셔왔다는 전설의 나한은 6.25 동란을 피해 한 때 절이 산청읍내로 옮기게 되었는데, 이곳이 지금의 심적정사가 되었다. 이때 모셔진 22나한님은 지방문화재로 지정되어 심적사로 돌아오지 못하고 심적정사에 그대로 봉안 되어 있다.
하지만 나한이 머물고 싶은 곳은 지리산 웅석봉 골짜기였을까? 1991년 심적사 복원 불사가 큰 염원으로 이루어지면서 오백나한을 새로이 모시게 되었다. 2006년 현재 주지스님인 법경스님이 여의주를 들고 육조 혜능대사와 손을 잡는 선몽을 꾸고 그 힘들다는 나한도량을 중건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 모든 인연들이 새로이 불사를 이루어 제3의 창건을 한 심적사에 나한의 큰 원력이 숨어 있기에 가능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오백나한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중생들의 뜻을 이루기 위해 모셔진 21세기 나한도량 심적사에서 두 손을 모으고 정성을 다해 기도를 올리면 마음에 묻어둔 소망 하나쯤은 분명 얻어갈 것이다.
이곳 심적사 주지스님의 선몽에 의하여 1991년에 오백나한님을 이곳에 모셨다고 했다.
심적사 오백나한전의 벽과 천정의 장엄한 단청
심적사 오백나한전 우측 측면
심적사 오백나한전 좌측 측면
심적사 오백나한전 뒷쪽
◯ 심적사 선방
심적사 선방에는 12분의 스님이 용맹정진중이라고 한다..
심적사 선방 내부
◯ 심적사 요사
◯ 심적사 전경
앞을 보아도 뒤를 보아도 온통 산으로 둘러쌓인 첩첩산중에 들어 앉은 심적사
◯ 심적사를 내려가며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것들....
쉼없이 달려온 2013년 5월 하고도 19일인 지금............
나는 잠시 멈추어 본다......
그리고 .....이곳......
심적사에 머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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