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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곳에 자장암이 있다
    기행문·수필, 그리고 다른 글들.. 2010. 5. 3. 16:30

     

     

    그곳에 자장암이 있다

     

    2010. 5. 3.

     

     

    살다가 복잡한 문제가 생겨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에는 까마득한 절벽에 외발로 선 듯하다. 그런 날에는 운제산 자장암으로 가자.   신라 승려 원효와 혜공이 두 마 리 물고기의 생환(生還)을 위해 법력으로 겨루었다는 오어지(俉魚池)에 들러 머리라도 식혀볼 일이다.   오어사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덜 받은 자장암(慈藏庵)에 발을 슬 며시 들인다면 더욱 좋을 듯싶다.

     차를 몰고 포스코를 지나 포항시 남구 오천읍에 들어선다.   오어로를 달려 항사교를 문득 건넌다.   핸들을 꺾으니 원효교가 물러나고 헤공교가 달려온다.   허공에 흐르는 구름이 무주처(無住處)이듯 잠깐 스치는 풍경들이다.

    오어사 입구에 차를 댄다.   관광명소 근처에는 평일인데도 관광차 두대가 보인다.   그 맞은편 오어지에는 현수교 가설공사가 한창이다.

    고개를 들어 정상 482m인 운제산을 바라본다.   운제산은 원효가 원효암과 자장암을 왕래하기 위해 힘들어 구름다 리를 만들어 오갔다하여 구름 운(雲),  사다리 제(梯)자를 써서 지은 이름이라고 하며, 신라 2대 남해왕비 운제부인 (雲帝夫人)의 성모단(聖母壇)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 도 한다.

    내킨 김에 불도량 오어사에 발을 내딛어 대웅전 부처님전에 잠시 합장하고 안내문을 읽는다.   포항시 남구 오천읍 항사리 삼십사 번지에 자리잡은 오어사는 신라 26대 진왕 때 창건 되었다고 한다.

     

     

     

                 

     

     

     

    오어사에는 꼼꼼히 뜯어볼 만한 유물들이 많다.   먼저 대 웅전은 경상북도 문화재 88호다.   대웅전 오른쪽 건물인 유물전시관에는 국가 제정 보물 1280호인 동종(銅鐘)한 구와 원효대사가 사용했다는 삿갓,  염불계 비문,  운제산 단원 발원문을 새긴 비가 보존되어 있다.

     

    유물전시관을 기웃거리다가 대중 공양간 가까운 곳에서 기와불사를 돕는 보살 앞에 선다.   기와장 한 장과 펜을 받아 정성스럽게 이름자를 적어본다.

     

    오어사에는 딸린 암자 두 채가 있으니 그 이름은 원효암과 자장암 이다.  

    낙엽들이 쌓인 맑고 찬 계곡을 건너 원 효암으로 오르는 산길은 600m이고, 절벽 꼭대기에 단정히 앉아 있는 자장암으로 오르는 산길은 150m다.   등산 좋아 하는 이들에게는 이 정도쯤이야 평지 밟듯 만만할 터,  육체와 정신에 비만 증세가 보여 인생을 가끔 다이어트로 여기는 이들에게는 두 산길이 짧을 수도, 길수도 있겠다.

     오어사를 바라보며 원효와 자장의 삶을 알음 알음이로 저울질 해본다. “누가 자루 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느냐, 네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겠다”며 파계한 인물이 원효라면 “하루 동안 계를 지니다 죽을 지언정 계를 파하고 백 년 살기를 원치 않노라”고 선언한 인물이 자장이다.   요석공주 사이에 설총을 얻은 뒤 민중 속에서 무애가를 부른 인물이 원효라면 처자를 버린 뒤 사부대중(四剖大 衆)을 교화한 인물이 자장이다.

     

    마음먹은 대로 오어지 상류 계곡건너 원효암은 남겨두고 관광안내소 바로 위쪽 산길을 따라 자장암에 오르며 풍경 몇과 마주친다.   산길 초입에는 부도 일곱 기가 서 있다.   부도에는 한자가 새겨져 있는데 비바람에 삭아서인지 식 별이 잘 되지 않는다.   산길에서 만난 대나무와 적송은 제 자리를 지키며 묵묵하다. 운제산 자생 산벗꽃은 여기저기 흐드러졌다.

     한 번도 등산한 적이 없는 사람인양 가파른 돌계단을 올라 15분쯤 헉헉거리며 걸어 올라왔다 생각한 곳에 자장암 이 모습을 드러낸다.   암자 입구 계단에 올라서니 1층에는 승려들 수행처가,  2층과 3층에는 대성전.  대웅전이 있다.

     

     

     

     

     

    까마득한 절벽에 자리 잡은 자장암

     

    안내문 ‘보궁 가는 길을 따라 자장암 왼쪽으로 돌아 몇 발자국 걸어가자‘부처님 진신사리탑’이 나왔다.

    자장암은 고소공포증도 없이 까마득한 기암절벽 위에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삼매에 든 듯하다.   낭떠러지 오어사 와 오어지는 맑게 트여 시원하다.   저 멀리 원효암으로 오 르는 산길 또한 여유 있게 보일 즈음 한 생각을 일으키니 산 위쪽은 안심입명(安心立命)의 길이다.  방하착(放下着) 이라 하였느니.   세상 잡사를 잠시 내려놓자 절벽이 비로소 편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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