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Today
Yesterday
Total
  • 일상을 잊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월출산 산행기)
    기행문·수필, 그리고 다른 글들.. 2009. 10. 15. 12:58

     

    일상을 잊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월출산 산행기)

     


    지난 1993년 가을산행 후 실로 13년 만에 다시 남도 답사 1번지 영암 월출산으로 산행을 떠난다. 먼 길 산행을 위해 새벽에 일찍 일어나 간단한 아참식사를 하고. 도시락을 준비해서 배낭을 메고 새벽 맑은 공기를 마시며 길을 나선다.  

    먼저 오신 직장동료 선배님, 후배님께 반갑게 인사하고 출발하여 포항의 관문 유강 터널을 지나고 있다.  몇 년 전 까지만 해도 이 터널은 산이었고 형산강변 쪽으로 난 도로인 외팔교로 오고 갔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편리하게 뚫린 터널을 지나고 있다.

    이런 저런 옛 추억과 부질없는 생각을 하다 보니 벌써 차는 남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길가엔 따사로운 가을 햇살을 받은 들녘의 곡식들이 알알이 영글어 가는 결실의 계절을 맞아 가을 들녘들이 우리를 더욱 반겨주는 것 같았다.

    차창가에서 바라 본 먼 산에는 이제 막 단풍이 시작되면서 남도의 가을은 익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진주 남강을 스치며 하동포구 섬진강이 한 폭의 수채화로 다가선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답고 자연 그대로 살아 있는 강이 섬진강이다. 섬진강은 악양들과 함께 박경리의 토지에서 최참판댁 안주인인 윤씨부인이 요절한 남편의 명복을 빌기 위해 구례군 토지면에 있는 백제고찰 연곡사에 들어가 기도를 드리던 중 주지스님의 동생인 동학의 장수 김개주에게 겁탈당하는 무대이기도 하다.

    “섬진강은 보는 섬진강이지 말하는 섬진강은 아니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섬진강을 뒤로하고 미인의 고장 순천을 지나 녹차와 소리의 고장 보성으로 달리고 있다. 보성은 조선말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주역이자 독립문, 독립신문을 만든 독립운동가 서재필 선생님의 고향이다. 생가 마을엔 독립문, 송재 기념관, 조각공원과 주변 주암저수지가 함께 어우러져 많은 학생들이 찾고 있다. 또한 보성 출신으로 소리의 대가 조상현, 성우향, 성찬순 명창들이 중요무형문화재로 활약하고 있다. 보배로운 고장, 보성의 자랑은 역시 차밭이다. 읍에서 조금 떨어진 붓재 정상에서 내려보면 부채꼴 차 밭이 계곡 아래로 굽이굽이 펼쳐지는 녹차 밭이 남해 득량만의 싱그러운 바다를 아우르며 온산을 뒤덮고 있는 풍치는 정말 아름답다.

    초의선사는 녹차 향을 봄빛이 언뜻 스쳐지나가는 듯 하다고 한다. 차는 끓이는게 아니고 달인다고 하는데 차를 달이는 사람의 마음이 녹아지는 것이란다. 요즈음 커피향보다 녹차향이 더 그리워진다. 우리의 일행이 월출산 입구에 닿았을 때 우리 모두가 육중하게 다가오는 검고 푸른 바위산의 준수한 자태에 탄성을 지른다. 완만한 곡선이 산등성이 끊기듯 이어지더니 너른 벌판에 어떻게 저러한 바위산이 첩첩이 쌓여 바닥부터 송두리째 몸을 내보이고 있는 것일까. 꼭 호수위에 아름다운 연꽃 한 송이가 피어있는 것 같다.

    오늘 산행은 천황사 바람폭포로 해서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 정상으로 오르고 하산은 바람재에서 경포대,청소년수련관 쪽으로 내려간단다. 월출산의 명물 바람폭포로 옆의 시루봉과 매봉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는 지상 120M 높이에 길이 52M 폭 0.6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고 긴 구름다리이다.  구름다리를 지나 산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자 기암들이 우리 일행을 환영이라도 하듯이 줄지어 서 있다. 절벽들은 더욱 겁을 주는 것 같다.

     

     

     

     

     

    돌계단, 철계단을 몇 번 오르기를 반복하니 숨이 차다. 너른바위 위에  걸터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고운가을 햇살과 시원한 가을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기분이 너무 좋다.

    통천문을 지나 천왕봉 정상에 올랐다. 가슴이 확 트인다. 스트레스가 한방에 날아간다. 남도의 땅들이 모두 발아래 납작하게 엎드려 인사한다. 저 멀리 땅끝 마을 해남이 아스라이 보이는 것 같다. 정상 바로 아래 바위틈에서 함께한 점심은 또 다른 산행의 진미였다. 일행 중 한명이 가져온 자연산 송이와  소주 한 잔으로 정상주를 건배하며 직원동료 선후배간의 정이 월출산 계곡만큼이나 깊어지는 것 같아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는 행복한 시간이었다. 천왕봉을 뒤로 하고 바람재를 내려서니 정말 시원하다. 신선들이 노는 곳인가 보다. 경포대로 내려서니 길가에 간간이 보이는 단풍들이 빨갛게 물들어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잠시 단풍이 붉게 물든 계곡에서 동료와 함께 발을 씻어 본다. 예부터 선비들은 ‘탁족’을 아주 즐겼다 한다. 탁족은 ‘발을 세탁한다’는 표현이다. 우리 선조들은 계모임의 한 형식으로 오늘날에 야유회 가듯 옛날에는 탁족회가 열렸다고 한다. 하산하여 주차장 모퉁이에 전어, 가자미회의 안주와 준비해 온 소주가 금방 동이 난다. 월출산 기암들이 저물어 갈 무렵 가을을 재촉하듯 BUS는 출발한다. 차창에 기대어 끝없이 펼쳐지는 호남평야를 바라보며 앞으로의 농촌걱정이 앞선다. 농업은 생명산업이고 농촌은 미래요 희망인데...

    BUS안에서는 동료 후배가 앞, 뒤를 서너 번 왔다 갔다 한다. 술이 춤추고 노래가 넘쳐난다. 노랫소리와 함께 BUS는 어둠 속으로 질주한다. 가끔씩은 한데 어울려 일상을 잊고 대자연의 품에 안겨 심취하는 여유가 끝없이 이어지길 바라면서...

     

     


    2006.10월 3째 일요일에 쓴 산행일기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