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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산 부석사(충남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길 243, 부석면 취평리 154-1)
    사찰여행/충청도 2025. 2. 22. 14:35

    서산 부석사

     

    2025.   2.    22. 

     

     

    2025.  2.   19 ~  2.  21(2박 3일).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포항 출발하여  충남 서산으로  이동하여  서산 부석사만  들리고  안면도를 제외한 온통 태안만 둘러보는 일정으로

     

    25.  2.  19.  1ㅇ일 여행은

    서산 부석사를 보고 태안으로 이동 후 태안 안흥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갈음이 해변,  안흥도 들어와서 안흥산성 & 태국사, 안흥 나래교를 걸어보고  국립태안해양 유물 전시관 & 신진도, 마도 일몰로 마무리 하고 

     

    24.   2.  20.  2일 여행은 

    태안 무량사,  신두리 사구센터 & 신두리 해안사구, 두움습지,  원풍식당에서 점심식사 후  학암포 해변,  천리포해변,  물닭해변 산책로,   만리포전망타워 & 만리포 해변,  연포해변을 여행 후 펜션  도착 후  휴식이고   

     

    25.   2.  21.  3일 여행은 

    태안동학농민혁명 기념관,    홍주사 & 태안동문리 마애삼존불 입상,  태안 백화산 산수길, 시골밥상에서 점심 식사 후  태안 파도리의 해안경관을 둘러보고  3일간의  여행을 마무리하고 포항으로 향해보는  서산.  태안 서해안 겨울 마중 여행길 이다.

     

    1일 여행 첫 여행지는

    포항 출발하여  충남 서천으로  이동하여 1월 24일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보관돼 있는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부석사로 옮겨진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오는 5월 5일 부처님 오신 날까지 100일간 부석사 설법전에서 친견할 수 있다하여  먼저 서산 부석사 부터 들러 보기로 한다.....

     

    10년만에 와보는 서산 부석사에 오늘은 어떤 기쁨이 기다리고 있을까 ?

     

    충남 서산의 부석사를 아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서산의 '돌이 떠있는' 사찰 부석사(浮石寺)는 부석면의 '섬이 날아와 산이 된' 도비산(島飛山) 자락에 들어앉아 있다.

    도비산(島飛山)은조선 태종이 충렬대군과 군사 7천명을 이끌고 사냥과 군사 훈련을 하던 곳이라고 한다. 

    경북 영주의 부석사(浮石寺)와 한자까지 똑같은 서산 부석사이건만 흔하게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곳. 규모는 작지만 사찰에 오르면 나무숲 사이로 서해의 바다까지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하고 소박스러운 절이다. 

     

    부석사는 서산시 부석면 취평리의 도비산에 위치한 고사찰이다.

    부석사의 창건연대는 신라 문무왕 17년(677)에 의상대사가 지었으며 그 뒤 무학대사가 중수하였다고 전한다.

    1995년도에 부석사의 극락전이 노후 되어 해체 복원 공사시 극락전의 대들보 속에서 발견된 기록문으로 보아 문무왕 때 창건, 일제 말에 중수된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현재 부석사에 현존하는 건물은 극락전,  안양루 그리고 같은 건물로 연결된 심검당,  목룡장이 남아 있다.

     

     

     

    도비산 부석사 일주문   

     

     

     

     

    일주문 안쪽으로 '삼일수심도량'의  현판 하나가 더 보인다.

     

     

    금강문

     

     

     

     

     

     

    금강문의 금강역사

     

     

     

     

    사방에서 울어대는 바람소리며, 고운 자태를 뽐내며 서 있는 나무들 ,  그리고 미소로 사람들과의 소통을 기다리고 있는 고목에 이르기까지 숲 속의 모든 사물들은 침묵 속에 순례자를 맞이하는 것 같았다.

     

     

    부석사는 전국의 사찰중 산사체험을 가장 활발히 하는 곳으로도 유명해 사시사철 체험단이 끊이지 않는다.  눈속에 파묻혀 발길이 끊기는 한겨울에도 그렇고, 가만히만 있어도 땀이 물처럼 흐르는 한여름에도 산사체험은 쉼이 없이 펼쳐진다.

    서산의 자랑인 천수만 철새탐조도 산사체험과 같이 이루어지고, 산사음악회도 열며 절과 사람이 더욱 가까워질수 있도록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보통 부석사를 떠올리면 배흘림 기둥에 우리나라 최고의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이 있는 영주의 부석사를 연상하게 되는데 서산 부석사도 그에 못지않은 역사를 간직한 고찰이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께서 창건하여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서산의 부석사에는 의상대사와 관련된 애틋한 사랑이야기까지 얽혀 있어서 오래된 수목과 어우러진 경내를 걸으며 사색하기에도 제격이다.

     

     

    높다란 나무기둥으로 받들어 세운 운거루인데 이 운거루와 나란히 선 듯한 전통다원인 도비산다원 또한 부석사를 부석사답게 하는 특별한 곳이다.

     

    절에서 나오는 길이건, 절에 들어가는 길이건 꼭 지나치게 되어 있는 이곳은 다원 자체가 부석사라는 절과 하나처럼 어우러지며 그대로 풍경이 된다.  조용하게 울리는 음악소리를 따라 다원 안에 들면 밖에서 보는 느낌과는 또 다른 모습이다.  커다란 통창으로 산아래가 훤히 내려다 보이고, 통창 바로 앞에 의자에 앉아 있노라면 저멀리 천수만의 넉넉한 자태도 눈을 가득 채워버린다.

     

    특히 창 밖으로 보이는 운거루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차 한잔을 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편안하고 행복한 마음이 들어버린다.

    햇살이 좋은 날에는 햇볕이 가득 쏟아져 들어오고, 그렇게 날이 좋은 날이면 창밖의 풍광까지 덤처럼 얹을 수 있으니 한없이 앉아 있고 픈 곳이 되어 버린다.

    자리도 많지 않게 다섯자리 정도.  너무 넘치지도, 그렇다고 너무 부족하지도 않게 소박하다.   차맛도 좋다. 

     

    부석사 신도들이 운영을 하고 있는데,  이곳에서 내주는 모든 것을 직접 만든다.  식혜도 직접 담가 내어주고, 매실차는 발효가 잘 돼 그 맛이 달지도 않게 입에 감긴다.  대추차는 대추를 갈아 그 맛이 묵직하고 깊다.   정성껏 고른 재료를 정성껏 발효시키고 끓이고 내어주는 그 맛이 좋아 부석사를 찾으면 덩달아 꼭 들리게 되는 곳이다.

    ‘텅비어 있으면 남에게는 아름답고, 나에게는 고요합니다’라고 쓰여져 있는 도비산 다원 글귀가 그윽한 차맛의 끝에서 여운을 길고도 깊게 남겨준다.

     

     

    금강문을 들어서 돌계단을 오른다.

     

     

    부석사는 넓게 펼쳐진 천수만 들판과 담수호를 마당으로 삼고 도비산중턱에 자리한 오랜 전통을 간직한 사찰로 의상대사의 창건 설화를 가지고 있는 고찰이지만 현재 남아있는 가람의 규모는 크지는 않다.

    경내에 들어서면 아주 편안한 기운이 감돌고 왠지 모르게 긴장이 풀리고 마음의 여유를 갖게 한다.

     

     

    극락전은 안양루를 넘어 부석을 바라보는 가람 배치이다.

    법당으로 지어진 극락전은 옆으로 심검당을 끼고 어깨를 나란히 하고 누운 소형태의 가람 배치는 아주 편안하다.  

    위엄을 갖추려 요사채나 다른 전각과는 단차를 두는 보통의 가람 배치가 아니고 상하의 구분을 두지 않고 어우러지는 평등심을 요체로 구성한 독특함이 찾는 이의 마음을 편하게 하여 극락이 내 마음에 있다는 깨달음을 주는듯 하다.

     

     

    지금은 천수만 간척사업으로 바다는 부남호 호수로 변했고 너른 간척지가 펼쳐져 있다.

    옛날엔 바로 산 밑까지 바닷물이 들어와 출렁거렸을 것이다.  무상하다.  생각해보니 심검당과 요사채 건물이 누워있는 소라면 눈앞에 펼쳐진 서해는 소가 드러누운 마당인 셈이다.

    서해바다를 마당으로 끌어안고 드러누운 소가 부석사인 것이다.   담대하고 장쾌하지 않은가.  절집 하나를 앉혀도 자연과 서걱거리지 않으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깊어지고 아득해지는 지혜를 아는 우리 선인들의 안목이 놀랍기만 하다.

     

     

    심검당 아래에는 마르지 않는 약수가 있는데, 누워있는 소모양 아래에 있다고 해서 우유(牛乳)약수라고도 한다.

    마을에 전하는 이야기로 100여 년 전에 부석사에 약수가 끊어져 이상하게 여겨 스님들과 마을사람들이 부석에 가보니 누군가 몰래 무덤을 썼기에 주인을 찾아 무덤을 파고나니 다시 약수가 솟았다고 한다.  그래서 부석사와 부석간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통하는 것을 알았다고 한다.

     

     

    큰 법당이라고 하지만, 소박하고 작은 극락전 앞에 서서 절을 바라보면 목룡장과 심검당이 하나로 이어진듯 펼쳐져 절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모양은 누워있는 소의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심검당 아래의 약수는 우유(牛乳) 약수라고 하고,  법당 옆의 큰 바위는 소뿔의 형상을 하고 있다.  법당 건너편 개울 아래에는 소가 마실 물이 흐르는 구수통(여물통)이 있는데,  이 구수통에 물이 계속 넘치면 부석사에서는 먹거리 걱정이 없다고 한다.

     

     

    심검당 건물에는 20세기초 이 절에 머물며 부석사를 선풍도량으로 거듭나게 한 만공선사 (滿空 1871~1946 조선과 일제 강점기의 승려이자 독립운동가) 의  ‘부석사(浮石寺)’ 현판이 걸려있다.

    낙관에 칠십옹이라 했으니 칠십 먹은 노인네의 겸손한 글씨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산전수전을 다 겪은 선승의 필력이 도저한 경지를 이루고 있어 말할 수 없는 힘을 느끼게 된다.

     

     

     

     

    인중지룡(人中之龍)을 길러내는 곳이라는 종무소로 사용중인 ‘목룡장(牧龍莊)

     

     

    “노을 물든 텅 빈 절 / 무릎 안고 졸다 / 소슬한 가을바람 놀라 깨어 보니 / 서리 맞은 단풍잎만 뜰에 차누나.” - 경허선사

     

     

    신검당과 나란히 붙은 요사채엔 만공선사의 스승인 경허선사(鏡虛 1846~1912 한국 근현대 불교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선승)의 현판 글씨도 걸려있다.

    목룡장(牧龍莊)이라 하니 ‘용을 키우는 집’ 이란 뜻인데 용이 되어 의상대사를 따라온 선묘 낭자를 기리는 뜻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룡장(牧龍莊)’과  ‘심검당(尋劒堂)’  현판은 근세의 대표적인 선승인 경허대사가 쓴 글 이다.

     

     

     

     

    중심법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길게 이어져 있는 목룡장과 심검당 큰방은 누워 있는 소의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심검당 아래의 약수를 우유(牛油)약수라고 하고, 법당 옆의 큰 바위는 소뿔의 형상을 하고 있다.

     

     

    지혜의 검을 찾는 곳이라는 ‘심검당(尋劒堂)’

    목룡장과 심검당은 내부가 연결되어 있다.

    요사채를 보면 약간 ヘ 모양으로 꺾어져 있는데 관음전 쪽 부분은 종무소로 사용중인 목룡장이고 오른쪽 부분은 신검당이다.

     

     

    부석사는 뚜렷한 역사적 기록은 많지 않지만 677년에 의상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극락전’의 상량기와 1330년 우리 부석사에서 조성된 아름다운 관세음보살님이 지금 일본의 대마도 관음사에 모셔져 있다가 잠시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천년 고찰의 흔적을 확인 할 수 있다.

    조선시대 무학스님이 중창하고,  근대에는 한국선불교를 중흥시킨 경허,  만공 대선사들께서 이 도량에 머무시며 수행정진 하셨다.

     

     

    심검당과 요사채 건물에는 길게 이어진 툇마루가 놓여 있다.   경허선사나 만공선사나 옛날 어느 땐가 바로 이 자리 툇마루에 나와 앉아 가끔은 꾸벅꾸벅 졸기도 하면서 문득 이렇게 눈앞에 펼쳐진 서해 바다를 말없이 바라 보았을지 모른다.

    왕벗꽃이 피는 봄에 방문 한다면 더 오래 쉬고 싶은 곳일테다...

     

    극락전 앞에는  안양루(安養樓)가 있는데, 극락전이 부처님의 집이라면 안양루는 극락세계 대중들의 머무는 곳이 되겠다.  영주 부석사의 안양루는 2층인데 서산 부석사는 단층이었다.

     

     

    여염집 같이 수수한 서산 부석사의 중심 법당 '극락전'은 고려시대의 건축양식에 따라 정면 3칸,  측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으며 아미타불이 모셔져 있다.

    1995년에 해체 복원하면서 일제강점기때 수리한 내용을 담은 기록이 발견되었다.

     

     

     

     

    극락전에 봉안된 삼존불

    극락전에는 의상대사께서 선묘낭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절로서  아미타불을 주불로 모신 곳이다.    불상은 아미타불을 주불로 하여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관음전의 칠성탱과 신중탱

     

     

    관음전의 지장보살과  영가단

     

     

     

     

    현재 도비산에는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부석사를 쉽게 찾아갈 수 있으며 서해 바다가 한눈에 바라보이는 전망을 가져 많은 관광객들로 부터 각광을 받고 있다.

     

     

    안양루 옆에  앉아서 전망을 내다볼 수 있는 나무로 된 탁자와 의자들을 풍족하게 만들어 두었다.  탁자와 의자들은 방문객들을 위해 마련하였다.

    길에서 오고가는 지친 몸과 마음을 충분히 쉬어갈 수 있기를 바라는 부석사 식구들의 마음이다.  한 모금의 약수도 좋고 자판기의 커피라도 흠씬 즐기고 갈 수 있었으면 하는....

     

    이곳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풍경을 따라가다보면 시선의 맨 끝에 천수만이 있다.  도비산은 안개가 잘 끼는 곳이라 탁 트인 천수만의 풍경을 선명하게 보기는 다소 어렵지만, 운이 좋아 부석사 밑으로 도비산 자락을 타고 넓은 평야를 가로질러 천수만으로 이어지는 풍광을 마주할 수 있었다.

     

    탁트인 전망에서 천수만. 부남호를 바라보며 쉬어 갈수 있는 공간이 있다니....

     

    서산 부석사는 사찰의 규모는 작지만,  부석사에 오르면 나무 숲사이로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아담하고 멋진 절이다.

    전각 어느 곳에서 바라보든 천수만 일대 간척지와 부남호. 그너머 안면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듯 하다.

     

     

    다른 계절에는 요사채 오르는 계단 옆에 이름 모를 들꽃들이 무리지어 화사하니 피어 있었는데 이 계절에는  계절속에 숨은건지 들꽃들은  보이질 않는다.  편안하고 고요하다.

     

     

    서산 부석사는 경북 영주의 부석사와 이름이 같아 혼동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곳 부석사는 영주 부석사 처럼 유명하거나 큰 규모의 사찰은 아니지만,  그 창건 설화와 역사는 희한하게도 영주 부석사와 똑 같이 전해 온다.

    의상스님과 선묘낭자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  바다에 떠 있는 부석,   소박한 사찰의 규모,   그리고 중국을 마주보는 절의 위치가 오히려 더욱더 사실감을 높게 한다.

     

     

    금종각과 설법전 그리고 그 앞의 부도 몇기

     

     

    종각 입구의 용의 머리가 특이한 종각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금종각이라는 이름처럼 너무나 장엄하다.

    종각 주련에 ‘일체중생성정각(一切衆生成正覺)’ 이라 쓴 글귀가 마음에 들어와 앉는다.   모든 중생이 바르게 깨닫게 되기를 간절히 빌고 또 빌 뿐이다.  

    부디 돌계단길 하나에서도 소박하고도 자연스러운 멋을 추구했던 선인의 뜻을 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여 부석사의 소박하고도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이 오래도록 보존되고 이어지기를 말이다.

     

     

     

     

     종각 우측의 설법전

     

     

     

     

    설법전 내부의 관세음보살을 중심으로 용왕과 남순동자 그리고 오른쪽으로  647년만에 돌아온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이 자리한다.

     

     

    설법전 내부 전경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상을 직접 눈으로 보기위해 잠시 들렀다. 고려시대 만들어진 금동관세음보살상 보물급 문화재 불상이지만 100일 후에는 아쉽게도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야 된다.

     

     

    서산 부석사(주지 원우 스님)는 1월 24일 대전 국립문화유산연구원에 보관돼 있는 서산 부석사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을 부석사로 옮기는 이운·고불식을 봉행했다.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오는 5월 5일 부처님 오신 날까지 100일간 부석사 설법전에서 친견할 수 있다.  친견 시간은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다.  

     

     

    서산부석사금동보살좌상

    높이 50.5㎝. 일본 쓰시마 섬(對馬島) 도요타마무라오츠나(豊玉村小網)의 관음사 소장.  복장품 조사를 통해 1330년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부석사에서 현세에 재난을 없애고 복을 누리며 내세에 아미타정토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30여 명의 발원에 의해 주존불로 조성되었음이 밝혀졌다.

    대좌와 광배를 잃었으나 불신의 상태가 양호한 편이며, 길상좌에 수인은 하품중생인을 취하고 있다.

    보관이 없어져 높이 틀어올린 보발이 보이며 풍만한 얼굴에는 미소를 머금고 있다.   보살상이면서 불의를 입고 있는 것이 특이하며 고려 후기에 유행한 불상 형식의 특징인 띠매듭이나 금구장식도 표현되어 있다.   화려한 목걸이와 두 무릎에 보이는 영락장식에 의해 보살상임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당시 보살상들의 일반적인 특징이다.  연대가 확실한 고려 후기의 보살상 중 가장 이른 예로, 장곡사 금동약사불좌상(1346) 또는 문수사 금동아미타불좌상(1346)과 같은 양식 계열에 속한다.

     

     

     

     

     

     

     

     

    647년 만에 서산 부석사로 환지본처한 고려 금동관세음보살좌상은 2025년 5월 5일까지 부석사 설법전에서 친견할 수 있다. 

    "강제로 우리 곁을 떠났던 관세음보살님이 647년 만에 우리 앞에 계신다. 647년 만에 돌아오신 보살님을 100일 동안 부석사에 모시고 100일 봉안을 마중물로 삼아 영원히 서산 부석사에 나투시도록 온 힘을 담아 노력하겠나이다.” (부석사 발원문 中)

     

     

     

     

    설법전의 측면과 후면

     

     

    설법전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오른쪽으로 오르면 산신각과 더 올라가면 만공굴이 있고 왼쪽으로 가면 마애불이 있다.

    오솔길로 연결된 경내는 시골스러움이 있어서 좋다.  산신각에 오르는 길이 동화 속처럼 아련하게 펼쳐 졌다. 

     

     

     

    이 절에서 최고의 명당이라던 산신각은 한지붕 세가족 이다.  가운데는 산신각. 왼쪽은 용왕각,  오른쪽은 선묘각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산신각 내부에는 산신님을 중심으로 우측에는 선묘낭자, 좌측에는 용왕님이 모셔져 있다.

     

     

     산신각 옆으로 30m가면 만공선사가 들어가 수도를 했다는 만공토굴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나온다.

     

     

    만공선사가 수행했다는 굴도 보존이 잘 되어 있다.

     

     

     

    부석사에 들 때마다 느끼는 것은 모든 것이 자연과 어우러질 때 그것이 가장 아름답다는 것이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자연을 지배하지 않고,  자연과 동등하게 하나 되어 안기는 부석사는 언제가도 참 편안하고 아름다운 곳이다.  

    옛 사찰이 넌지시 전해주는 고즈넉함, 그리고 어느 순간 새소리 하나 조차도 끊긴 적막함 한가운데 들어 앉은 듯한 고요함,  꾸미지 않은데서 오는 소탈한 소박함.  이 모든 것들이 자연의 정취와 한껏 어우러져 몸도 마음도 소의 우유라 하는 약수물에 씻기우는 그런 기분이다.

     

     

    산신각에서 내려 오며 바라본 설법전의 뒷쪽 모습이다.

     

     

    법당 좌측으로 조금 내려 오면 작은 요사가 있는데,  이곳은 주지스님의 처소이고 우측  2층 집이 한 채 있는 일화당(一花堂)인데,  이 곳은 원래 스님들의 수행처로 지어졌지만 스님들이 선원에 가셨을 때에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이 머물고 있다.  부석사에서는 일화당 2층의 전망이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부석사는 절 곳곳이 모두 자연이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지만, 이곳에 머무는 스님들이 가장 전망이 아름답다고 하는 곳은 우측 전각인 템플스테이를 하는 곳으로도 쓰이는 일화당 2층이라고 한다.

     

     

    오래된 것은 아니고 근자에 형성한 것으로 보이는 부석사의 마애불 이다.

    서산에 있는 ‘백제의 미소’ 마애삼존불을 기대하고 본다면 허망하다.  부석사의 마애불은 웃지 않고 근엄한 표정이다.  웃는 것도 부처님 마음이다.  하긴 사람도 가지각색이니 부처님도 가지각색인게 더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른다.

     

     

     

     

    마애불에서 내려 오며 바라본 설법전의 뒷쪽 모습이고 우측으로   '향적당' 현판을 단 공양당이 자리하고 있다.

     

     

    수많은 이들이 저마다의 소원을 빌며 붙여놓은 동전들...

     

     

    극락전을 왼쪽으로 돌아서 마애불과 산신각에 오르는 돌층계 길도 편안하고 도처가 그러하다.  이렇듯 완만하고 느슨한 산세를 닮은 기울기로 산사를 찾는 이들을 편안히 끌어안는 동선과 조경의 자연스러움이야 말로 충청도 절집이 지닌 백미가 아닐 수 없다.

     

     

    다시 돌아본 산신각 가는길이 참으로 정겹다...

     

     

    돌계단길 한 쪽에 스님 모습의 석상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데 스님의 온화한 표정이 만공스님인 듯 따뜻하고 다정해 보인다.  절을 닮은 것인지 자연을 닮은 것인지 석상을 새긴 석공의 마음이 그러한 것인지 석상 하나까지도 소박하고 편안하다.  과연 충청도 절집답다.

    입구 한쪽에 쇠뿔 모양의 비석이 서있다.  소의 머리 뿔에 해당하는 자리에 맞추어 뿔 모양의 돌을 앉힌 것이다.   모르는 이는 모른 채로 지나가겠지만 아는 이에겐 흥미로운 일이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다.

     

     

    관음전 좌측에 있는 부석사 글씨를 달고 있는 뾰쭉한 바위는 소뿔형상으로 와우뿔에 해당한다고 한다.  큰 바위는 소의 뿔 모양을 하고 있는데 이 모습 역시 절 건물의 전체적인 모습과 어우러진 특별한 형상이다.

    우리 선인들은 전각하나 땅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고 생명을 부여하여 동등한 삶을 영위하였던 자연평등사상을 엿볼 수 있다.

     

     

     

     

     

     

     

     

    정진선원과 요사 사이  옆의 연못 돌다리가 특이하다.

    요사채와 템플스테이 선원 사이에 작은 연못이 있고 연못 안에 수련이 무리지어 자라고 있었는데 지금은 텅빈 연못이다.  이곳에도 머지않아 연꽃잎들이 아름답게 피어날 것이다. 그때를 위해 아직은 몸을 낮추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리라. 이채롭게도 물 위에 떠있는 관음상은 왠지 바다의 용이 된 선묘 낭자의 느낌이 든다.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선묘 낭자는 관음보살의 현신이 아니었을까 ?

     

     

    요사채 오른쪽 언덕에는 템플스테이 선원이 있다.

    영주 부석사와 한자의 뜻까지 같은 서산 부석사는 템플스테이로도 유명하다.   템풀스테이를 운영하는 정진선원이다.

     

     

    적당히 배치된 바위 아래 어느 여염집 같은 수수한 당옥과 그 주위를 안정감 있게 보호해 주는 노거수들의 조화.   정말 이렇게 한적한 산사에서 마음 풀어 놓고 힐링이라는 것을 해봄직하다.

     

     

     

     

    사찰에 많은 고목들이 그 품위를 자랑하고 있다.

     

     

    한참 일본과 분쟁이 붙은 예전에 부석사에 모셔 있던 금동 관세음보살님이 일본 관음사에서 밀수꾼에 의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유물을 본래의 서산 부석사에 모시기 위한 법적 싸움을 벌이고 있다.  꼭 금동 관세음보살님을 부석사 본래의 자리에 모셨으면 하는 바램을 모아  본다.

     

     

    유홍준 교수는 영주의 태백산 부석사를 일러  ‘사무치는 마음으로 가고 또 가는 절집’ 이라 하였지만 내게는 서산의 부석사가 그러하다.

    영주 부석사와 같이 높고 아득한 격을 지닌 절은 아니지만 서산의 도비산 부석사는 충청도의 여느 절집들이 대개 그러하듯이 여염집처럼 편안하고 느슨하게 자연의 품 안에 들어 앉아 있어 드러나지 않고 요란하지 않게 사무침을 자아낸다.   아니 사무치기 보다는 그냥 애틋하다고나 할까.   애틋하고 또 애틋하여 나는 다시 이 절집을 찾곤 한다.

     

    아마도 머지않아 또 하릴없이 부석사를 찾아 오고야 말 것이다.

     

     

     

    도비산 아래 펼쳐진 부남호와 간척지를 내려다 보며 꼭 금동 관세음보살님을 부석사 본래의 자리에 모셨으면 하는 바램을 모아  보며 서산 부석사를 내려 간다.  그리고 태안으로 길을 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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