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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 남파랑길 46코스 일부구간(노량대교 홍보관~ 남해 충렬사 주차장)-경남 남해군 설천면
    여행방/섬여행 2025. 1. 29. 16:47

    남해 남파랑길 46코스 일부구간(노량대교 홍보관~ 남해 충렬사 주차장)

     

    2025.   1.    29. 

     

    2025. 1. 26,  가배 산악회와 함께한 남해 남파랑길 46코스 일부구간(노량대교 홍보관 주차장 ~ 남해 충렬사 주차장) 트레킹과 이순신바다공원을 둘러보는  일정이다.

     

    오늘 첫번째 여행지로

    남해 남파랑길 46코스 일부구간(노량대교 홍보관 주차장~ 남해 충렬사 주차장) 트레킹은  노량대교 홍보관 주차장  → 노량대교 홍보관  → 남해대교 (도보) →  남해각 → 노량해정 전망루  →  남해대교 노량 선착장  → 반야용선사  → 남해 충렬사  → 남해 충렬사 주차장 까지 를 걸었다.....

     

     

     

     

     

    하동 들어와서

     

     

     

     

     

     

    노량대교 홍보관 주차장 도착이다.

     

     

     

     

    노량대교로 연결된 도로 아래로 들어서면

     

     

     

     

    노량대교 홍보관이다.

     하동 '노량대교 홍보관'에서 남해군 홍보를 중단한다고 한다.   '남해각 재생사업'이 성공적으로 자리매김하고 '남해대교 관광자원화 사업'이 속도를 내면서 남해각으로 관광 홍보 기능을 집중하기로 했다고.....

     

     

     

     

    노량대교 홍보관 전망대

     

     

     

     

     

     

     

     

     

     

    노량대교 홍보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노량대교

    노량대교(露梁大橋)는 경상남도에 있는 다리로, 남해군 설천면과 하동군 금남면을 연결한다. 국도 제 19호선을 구성하는일반 국도 교량이다. 원래는 제2남해대교였으나, 2017년 말에 정식 명칭 결정을 열었지만 명칭 관련 분쟁으로 인해 2018년 2월 11일 최종적으로 노량대교로 확정되었다.

     

     

     

     

    노량대교 홍보관 전망대에서 바라본 남해대교

    제주도, 거제도, 진도에 이어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인 남해의 관문인 남해대교는 당시에는 동양 최대의 현수교라 불렸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높이 80m의 아름다운 현수교로 1973년 개통되었으며, 고 박정희 대통령이 직접 남해대교를 건너는 등 약 10만의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룬 지방자치 역사상 가장 화려했던 개통식에서도 알 수 있듯이 기대와 환희를 한몸에 받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일컬어지고 있다.

     

     

     

     

     

     

    노량대교 홍보관 전망대가 있는 이곳은 하동군 금남면이다.

     

     

     

     

    노량대교 홍보관  앞을 지나

     

     

     

     

     

     

    노량대교를 뒤로하고

     

     

     

     

     

     

    남해대교로 향해본다...

     

     

     

     

     

     

    노량바다에 그림처럼 떠 있는 큰 목섬과 작은 목섬, 1,000m도 더 되어 보이는 대교아래에 서서 노량해전의 역사를 되새겨본다 .

    500여년 전 철수하는 왜적을 막아서서 이곳 노량바다에서 임진왜란을 마무리하는 노량해전이 벌어진다.

    철수하는 적군의 퇴로를 봉쇄하고 왜군을 섬멸하려는 일념하나로 치러진 최후의 전장에서 왜적선 300여척을 수장시키는 대승을 거둔 끝에 왜군이 쏜 총탄에 이순신 장군이 쓰러지고 그의 마지막 말을 남긴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남해대교를 걸어서 하동에서 남해로 가 보기로 한다...

     

     

     

     

    직접 걸어서 건너갈 남해대교는 다리 위에서 사진을 남겨본다.

     

     

     

     

    남해대교에서 바라보는 노량대교와 바다 위에 그림처럼 떠 있는 작은 솔섬과 굴 양식장, 좁지만 작은 생명으로 가득한 갯벌기리고 여수공단까지도  확인되는 풍경들이다.

     

     

     

     

     

     

    한때는 붉은 남해대교를 걸어가는게 행운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시절도 있었으며 수학여행, 신혼여행 장소로 사랑을 받아 왔다. 

    남해대교가 가로지른 노량해협의 거센 물살은 남해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산증인이요, 역사의 마당이었다.   임진왜란의 마지막 전투인 노량해전이 치러진 곳으로, 남해대교가 놓이기 전에는 남해 사람들은 나룻배를 타거나 도선으로 노량의 물살을 가로질러 다녀야 했다.

     

     

     

     

    남해각 근처에서 바라본 우리가 건너왔던 남해대교

     

     

     

     

    남해각 앞에서 바라본  길건너의 레인보우 누각 전망대 

     

     

     

     

     

     

    남해각은 1975년 해태그룹이 남해대교와 연계되어 건축된 여관과 휴게소의 역활을 했던 건물로 남해대교를 조망할 수 있도록 건립한 남해의 관문의로서의 역할과 휴게공간으로 경관이 뛰어나다.

    한때 신혼여행지이자 수학여행지로 주목을 받는 등 인기가 높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오랫동안 방치됐다.

    남해 사람들에게 정서적으로 매우 상징적인 장소로 44년간의 역할을 다한 후 문화 휴게공간으로 재탄생하여 2019년 군이 남해대교에 서린 추억과 남해각의 가치를 보존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재생사업에 나서면서 다양한 이벤트와 프로그램을 추진해 '남해 여행의 시작과 끝'을 장식하는 새로운 플랫 폼으로 부상하고 있다.

    *1층: 남해대교를 바라보는 전망 좋은 카페

    2층: 남해각 바다도서관 & 남해대교의 여러 자료를 보고 알 수 있는 교육적인 장소. 휴게공간

     

    이곳에서는 남해를 대표하는 관광기념품이 전시·판매되고 있으며 워케이션 공간으로도 이름값을 높이고 있다.

     

     

     

     

    이곳에서는 미술전이 열리고 있었다...

     

     

     

     

     

     

    멋진 수채화전을 덤으로 볼수 있어 횡재한 기분 ~

     

     

     

     

     

     

    남해각에서 내려와

     

     

     

     

    남해대교 아래를 지나

     

     

     

     

    레인보우 누각 전망대로 향해본다... 

     

     

     

     

     

     

     

     

    레인보우 누각 전망대

     

     

     

    레인보우 누각 전망대에서 본 노량대교

     

     

     

     

    레인보우 누각 전망대에서 본 남해대교

     

     

     

     

     

     

     

     

     

     

     

     

     

     

    레인보우 누각 전망대를 내려와

     

     

     

     

    남해대교 아래를 지나 다시 남해각 앞으로 온다.

     

     

     

     

    남해대교를 건너면 남해대교를 조망할 수 있는 휴게공간인 남해각이 있으며, 남해각 주변으로는 벚꽃터널이 가득하다.   주변 관광지로는 남해 충렬사, 남해 척화비 등이 있다.

     

     

     

     

    이순신 호국길을 따라  충렬사로 가보기로 한다.

     

     

     

     

     

     

     

     

    왼쪽 남해대교 노량선착장과 유람선 건어물 매점 사이로 들어가면

     

     

     

     

    남해 반야용선사가 자리한다.

     

     

     

     

    이곳은 세계최초 해상법당인  반야용선사

     

     

     

     

    반야용선(般若傭船)은 수 십 년간 생활 속에서 부처님의 자비와 나눔을 실천해 오면서 불교 해상법당을 통하여 만 중생을 구제하고자 많은 고뇌와 수행 중에 불교 해상 테마파크를 조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입구 3개의 문중 용궁나라 문으로 들어서 본다.

     

     

     

     

    여기는 반야용선사 바깥쪽으로 인등과 기도할 수 있게 자리를 준비해두었다.

     

     

     

     

    반야용선사 바깥쪽으로 바닷가 중앙에 용왕님이 계신고 왼쪽으로 토끼와 오른쪽으로 거북이가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모든 수익금 전액은 전법포교와 불교 홍포 및 사회로부터 소외되고 어렵고 힘든 이웃들에게 희망과 꿈을 심어주는 복지사업에 쓰인다고 한다.

     

     

     

     

     

     

    이 배가 반야용선사인데 물 위에 떠있는 절은 처음 본지라 너무 신기했다.

     

     

     

     

     

     

    반야용선사 절 내부인데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신으로 관세음보살과 용왕을 모셨다.

     

     

     

     

     

     

    부처님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다.

     

     

     

     

     

     

     

     

     

     

     

    반야용선사에서 바라본 남해각

     

     

     

     

    반야용선사에서 바라본 남해대교

     

     

     

     

    남해대교 노량선착장 앞에서 바라본 반야용선사

     

     

     

     

    횟집촌을 지나 중간의 나무 숲이 있는 곳이 남해 충렬사이다.

     

     

     

     

     

     

    뒤돌아본 남해대교

     

     

     

     

     

     

     

     

     

     

     

     

    이길은 이순신 호국길이다...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이순신장군의 유해가 육지로 올라와 노량 충렬사까지 운구 되었던 길이  '이순신 호국길'로 조성되어 있다.   이순신 장군의 유해가 육지로 올라와 가묘를 썼던 노량 충렬사까지 운구되었던 이야기가 깃든 길을 따라 노량 충렬사 입구까지 걷게 된다.

     

     

     

     

    거북선 전시관이 보인다.

     

     

     

     

    거북선 관리실에서 매표와 문화해설도 해준다.   입장료는 500원

     

     

     

     

    남해 거북선 전시관은 여러가지 역사 자료를 고증해서 실제와 가장 비슷하게 만들어졌다고 하고 해군의 교육용으로 사용되다 노후되어 이곳 충렬사 앞으로 와서 전시되었다고 한다.

     

     

     

     

     

     

     지휘관들의 방

     

     

     

     

    아이들이 의상을 입고 사진도 찍을 수 있다.

     

     

     

     

    커다란 나무 노를 움직여 볼 수 있다.

     

     

     

     

    포가 구멍마다 있고 배 안이 꽤 넓다.

    바다에서 싸우는 일본군의 특기가 적의 배로 넘어와 칼로 싸우는 방법이고 우리 군사들은 칼싸움에는 약하고  불리해서 이순신 장군이  배에 지붕을 씌우게 되었을 거라고 해설사 분께서 설명해주었다.

     

     

     

     

    배 안에 있는 부엌,  불이 날까봐 숯으로 밥을 해먹었다. 옆에 있는건 부엌에서 쓰는 물통.  계단이 엄청 가파르고 공간이 좁다.

     

     

     

     

    거북선 전시관을 나와

     

     

     

     

     

     

    충렬사 주차장의 화장실과 문화해설사 사무실이 있는 공간이다...

     

     

     

     

    충렬사 안내도

     

     

     

     

     

    충렬사 주차장의 화장실 내부 멋진 풍경

     

     

     

     

     

     

    충렬사 방향으로 ~

     

     

     

     

    자암 김선생 적례 유허 추모비

    자암 김구 선생은 조선 전기 4대 서예가로 일컬어지는 명필이자 32세에 기묘사화로 남해에 유배된 젊은 시인이엇다.  그는 남해에서 11년 4개월 유배생활을 하면서 70여편의 한시와 경기체가 '화전별곡'을 남긴 남해군 최고의 유배문학인 이다.

     

     

     

     

     

     

    남해 충렬사 안내도

     

     

     

     

    남해대교 아래 노량포구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남해 충렬사(忠烈祠)는 임진왜란이 끝나던 해 마지막 해전인 노량해전(1598. 11. 19)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이다.

     

    충렬사에는 1604년에 선무공신 1등으로 서훈되고 덕풍부원군, 좌의정의 직위가 내려지고, 1613년에는 영의정으로 책봉된 충무공의 구국충정의 얼이 서려 있다.

     

    1973년 6월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보수, 정화되었다.

     

     

     

     청해루 앞의 한글비석

    1948년에 남해군민과 경상남도 초등학생들이 모은 성금으로 한글비를 청해루 앞에 세웠는데 글은 정인보가 짓고 김충현이 썼다.

     

     

     

     

     충무공의 11대손이 되는 이민봉이 1925년에 청해루 누각을 지었다.

     

     

     

     

     

     

     

    남해 충렬사 외삼문을 들어선다.

    1663년 남해 충렬사는 통영 충렬사와 함께 현종 임금이 친필로 써서 내려준 ‘충렬사’ 현판을 받게 되었다.

     

    남해 충렬사는 통영 충렬사와 함께 ‘충렬’이라는 현판을 처음부터 같이 사용해 왔으며 조선시대 인조 임금 때 지어졌다.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의 시신은 이락사에 최초로 안치되었다가 그해 이곳 남해 충렬사로 이장, 안치되었다.

     

    시신을 충청남도 아산으로 운구하기 전에 3개월간 이곳 가묘자리에 안치했다. 1599년 2월 11일 유해가 충렬사에서 군영지인 전라도 고금도를 거쳐 아산 현충사로 운구되어 안장되었다.

     

     

     

     

     

     

    남해 충렬사 내삼문이  보인다.

     

     

     

     

    남해 충렬사비

    사당 경내에는 1948년 정인보가 쓰고 경상남도 도청에서 세운 ‘충렬사비(忠烈祠碑)’가 있다. 충렬사는 1973년 6월 11일 사적 제233호로 지정되었다.

     

     

     

     

    충렬사 건립은 충무공의 순국을 슬프게 느낀 남해사람 김여빈과 고승후가 충무공 사당 건립을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두 사람은 1633년(인조 10)에 한 칸짜리 초가 사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봉안하여 처음으로 제사를 지냈는데 이것이 충렬사의 시작이다.

     

    이정건은 이 사당 앞에 충민공비(忠愍公碑)를 세웠고, 조정에서는 1643년에 이순신에게 ‘충무공’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1658년에 조정에서 어사 민정중에게 명하여 통제사 정익으로 하여금 낡고 초라한 초가 사당을 철거하고 사당을 신축하도록 하여 모습을 갖추었는데 이것이 충렬사의 중건이다.   이때 충민공비는 땅속에 묻었다.  현재 사당 앞에 있는 ‘유명 조선국 삼도 통제사 증시충무 이공 묘비’는 1660년에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쓴 것이다.

     

    1726년에 이곳에 노량서원을 세웠는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서원은 철거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22년 향사 윤기섭과 고준홍 등이 모여 조직한 ‘보존회’의 기금으로 사우를 건립했다. 이들이 사재를 털어 모은 자금으로 사당을 새로 짓고 제사를 지내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49년에 ‘보존회’는 해체되고 남해 충렬사 모충회가 조직되어 현재까지 충렬사를 관리하고 있다.

     

     

     

     

     

     

    내삼문 현판은 1965년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쓴 친필  ‘충렬사’ 와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현판 보천욕일

     

     

     

     

     

     

    사당 앞에 있는 ‘유명 조선국 삼도 통제사 증시충무 이공 묘비’는 충렬사의 연혁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고 중건사유를 자세히 기록한 비석이 있는데 비문은 1661년에 송시열이 글을 짓고 송준길이 쓴 것이고 1663년에 통제사 박경지 등이 세웠다.

     

     

     

     

    1746년 5대손 이언상이 충렬사 곁에 작은 암자 호충암(護忠庵)을 짓고 가까운 화방사(花芳寺)의 승려 10명, 승장 1명을 두어 수직호사로 임명하고 이들이 번갈아 와서 사당을 지키도록 했다.

    현재 경내에는 사당을 비롯하여 비각,  내삼문,  외삼문,  재실,  강당 그리고 일각문, 부속건물, 가묘소 등이 있다.

     

     

     

     

     

     

     

     

     

    이충무공을 기리는 사당

     

     

     

     

    충무공 이순신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

     

     

     

     

     

     

    충민공비

     

     

     

     

    충무공비

     

     

     

     

     

     

     비각 뒤에 있는 가묘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한 나무

     

     

     

     

     

     

    내삼문과

     

     

     

     

    남해 충렬사 외삼문을 나선다.

     

     

     

     

     

     

    남해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관음포에서 순국한 이순신장군의 영을 기리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남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오는 충렬사는 삭막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이다.

     

     

     

     

    충렬사 주차장으로 돌아와

     

     

     

     

     

     

    대기중인 차량에 탑승하여  다음 여행지 이순신바다공원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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