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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고성 1경인 건봉사사찰여행/강원도 2025. 1. 7. 13:32
강원도 고성 1경인 건봉사
2025. 1. 7.
2024. 12. 30 ~ 2025. 1. 3(4박 5일).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24. 12. 30. 1일 여행은
포항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으로 이동하며 강릉 용연사, 강릉 주문진 항을 들러 고성 포유 리조트 도착 후 저녁식사 후 휴식하고
24. 12. 31. 2일 여행은
고성 7경인 송지호 둘레길과 고성 왕곡마을, 고성 간성 전통시장에서 점심식사, 고성 대진포항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고성일대를 둘러보는 여행으로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로 이동 후 저녁식사 후 휴식이고
2025. 1. 1. 3일 여행은
고성 6경인 통일전망대, 건봉사 탐방 후 건봉사에서 떡국으로 점심 공양 후 백도해변. 송지호 해변. 고성 오션 뷰 고비치 5311 카페, 능파대, 아야진 해변을 보는 고성일대를 둘러보는 여행을 마치고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로 이동 후 저녁식사 후 휴식이고
2025. 1. 2. 4일 여행은
속초 사잇길 5길인 속초해변길, 대포항, 설악항 & 해맞이 공원, 동명항 부두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사 후 영금정을 보고 만석 닭강정 본점에서 닭강정과 속초 수제 맥주 구입 후 속초 일대를 둘러보는 여행을 마무리 하고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로 이동 후 저녁식사 후 휴식이고
2025. 1. 3. 5일 여행은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에서 체크 아웃 후 강릉으로 이동 후 강릉 보현사, 정동진 해변, 정동진 해변 근처의 '부산 덕이 순두부 전문점'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 사 후 5일 여행을 마무리하고 포항으로 향해보는 연말 마무리 연초 시작 겨울마중 여행길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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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 1. 3일 대한민국 최북단 6.25의 아픔을 느낄수 있는 곳인 강원도 고성 6경 통일전망대를 나와 그리고 길을 달려 3일 여행 두번째로 다음여행지는 고성 8경 중 1경인 건봉사로 향해본다. 11년만에 다시와보는 건봉사이다...
포항에서 너무 멀리 있어 좀처럼 가 보기가 쉽지 않던 우리나라 4대 고찰 중 하나인 강원도 고성군 거진면 냉천리에 위치한 금강산 건봉사는 진부령과 대대삼거리 중간에 들어서 있는 고찰이다.
건봉사는 금강산이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한 해발 910m인 건봉산에 자리하므로 특별히 '금강산 건봉사'로 불리고 있다.
이름만 들어도 설레이는 금강산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는 건봉사는 군사분계선 내에 있는 관계로 주변경관이 오직 길 하나만 있을 뿐 썰렁했다. 군사지역에서만 느껴지는 정적이 엄습한다...
강원도 고성군 거진읍 냉천리 건봉사는 아미타 도량으로 금강산 남쪽 자락에 위치하고 한국전쟁 전만해도 한국 4대 사찰중 하나이고 강원도 제1의 사찰로서 설악산의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거대했다.
건봉사는 신라 법흥왕 7년(520)에 아도화상이 "원각사"로 창건 후 발징화상이 중건, 정신 .양순이 염불만회를 열어 염불만회의 효시가 되었다.
고려초 도선국사가 절 서쪽에 봉황새 모양의 바위가 있다하여 "서봉사"로 이름을 바꾸고 1358년 나옹이 중건하고, "건봉사"로 개칭함. 1464년 세조가 행차하여 자신의 원당으로 삼았으며 이후 왕실의 보호를 받는 큰 사찰이 되었다.
사찰 구역은 아직도 민간인 통제구격이지만 1988년부터 건봉사를 출입하는 길만 통행이 자유로워졌고 현재의 사찰 모습은 1989년 이후 복원된 것이다.
건봉사는 워낙 방대하여 아직도 전체 복원은 요원한 실정이다. 당시의 흔적으로는 금강저가 생겨져 있는 불이문(不二門)(문화재자료 제35호)과 홍예형 다리인 능파교(보물 제1336호), 비 11기와 50여기의 부도를 모아 놓은 부도밭 등이 남아있다.
큰 사찰답게 부도탑과 비들도 200여기에 달하였으나, 여기저기 방치되다 문화재급 석물들은 대다수 도난을 당해 1980년대 사찰입구에 한 곳으로 모아 보전하고 있다.
건봉사 주차장에는 만해 한용운과 사명대사를 기리기 위한 '만해한용운 기념관'과 '사명당 의승병기념관'이 있다. 건봉사에 가면 함께 둘러보면 좋다.
건봉사에는 임진왜란때 사명대사에 의한 의승병봉기처이기도 했던 것을 기념하기 위한 '의승병기념관'이 운영되고 있다. 건봉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의승병을 기병한 호국도량이며, 독립운동가이자 시인이었던 한용운의 당호인 만해를 받은 곳이기도 하다.
만해 한용운은 백담사에서 출가하였으나, 1907년 건봉사에서 최초 안거수행 이후 만화선사로 부터 전법을 받으면서 만해라는 당호를 받음으로써 출가 본산은 건봉사가 되는 셈이다. 사명대사는 젊어서 신묵화상을 따라 건봉사에 머물렀으며, 승병기 이후에도 왜국에 탈취되었던 통도사의 사리 일부를 찾아 건봉사에 봉안한 이유로 건봉사에 기념관을 건립한 것이라고 한다.
사명당의 승병 기념관
불이문 좌측에는...
한국전쟁의 전화 속에서도 살아남은 불이문이 내방객을 반긴다.
1920년 건립된 건봉사 중문인 불이문 (강원도 문화재 자료 제 35호)은 한국전쟁의 포화속에서도 유일하게 살아남아 건봉사의 옛날을 증언해 주고 있다.
글씨는 조선말의 유명한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글씨다. 기둥을 바치고 있는 네개의 돌 기둥에는 불법을 수호하는 하늘신(제석천)의 무기 금강저를 조각하여 잡것의 출입을 금하고 있다. 이 문 너머가 부처님의 세계다. 불이 즉 둘이 아님은 차별이 없는 평등의 세계인 고로...
금강저(90cm)가 새겨진 불이문 돌기둥으로 불이문은 보통 기둥이 두갠데... 여긴 4개다. 사천왕문을 따로 건립하지 않고 금강저를 음각하여 사찰수호의 기능 까지 보탠거라 한다. 특이하게도 기둥에 새겨진 금강저가 이집을 지켜주었는지도 모른다.
서기1465년 세조 임금이 건봉사를 원당으로 삼은 뒤 어실각을 짓고, 전답과 친필 동참문을 하사하였다고 전한다.
그 후 1878년 4월 3일 큰 불로 인해 3183칸이 전소되었으나 여러차례 복원 작업을 통하여 1911년에 9개 말사를 거느린 31본산의 하나가 되었다.
임진왜란 때에는 사명대사가 의승병을 기병한 호국도량이었으며 당시 통도사에 있던 부처님 진신 치아사리를 왜벙이 일본으로 가져간 것을 사명대사가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다시 찾아와 이곳에 봉안하였다.
또한 구 한말(1906년)에 '봉명학원'을 설립하여 개화사상과 신문화를 받아들인 관동지방교육의 도장이 되었으나 그 후 일제에 의해 강제 폐교 되었다.
이 지역은 한국전쟁 중 휴전 직전까지 2년여에 걸쳐 아군 5, 8, 9사단 및 미군 제 10 군단과, 공산군 5개 사단이 16차례의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 건봉산 전투 전적지이며, 이 때 건봉사는 완전히 폐허가 되었으나 1994년 부터 대웅전, 팔상전, 염불만일원, 종각, 사지 등이 각각 복원되었고 지금도 사찰복원이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 전쟁전 건봉사는 총 642칸과 보림암 등 124칸의 18개 부속암이 있었다고 한다.
종각의 위치가 법당하고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은 옛날 사찰 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케 해 주는 것 같다.
종각입구에 세워진 나무아비타불 석주로 석물이외의 모든 것은 전화에 인멸 되었던 것을 요즘 다시 복원 관리하고 있었다.
불이문을 지나면 왼쪽으로 솟대 모양의 돌기둥을 만나게 되는데 높이가 3m로 규모가 꽤 크며 나무가 아닌 돌로 만들어졌지만 꼭대기에 봉황이 앉아 있어 솟대라고 하는 이도 있다. 돌기둥이 서있는 부분은 널직한 공터로 되어 있는데, 과거 건봉사의 번창했던 규모를 짐작케 한다.
건봉사의 '건봉'이라는 이름은 바로 금강산 관음봉 자락에 있는 봉암의 형태에서 따왔다고 하며 극락을 안내하는 영물이 바로 봉황과 용이기 때문에 이곳에 봉황을 새긴 것은 극락으로 빨리 안내하기 위해서라는 의미가 있다 한다...
봉서루가 보인다. 능파교 앞에서 바라본 대웅전 영역이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능파교 (보물 제 1336 호)
극락전 영역과 대웅전 영역의 계곡을 잇는 능파교는 무지개 모양의 돌다리로 자연지형을 잘 이용해 조선 숙종 38년(1708년)에 축조했다.
우리나라 돌다리의 아름다움을 잘 표현하여 보물제 2336호로 지정되었으나 몇년전 보수공사를 하다가 무녀져 내리는 바람에 옛맛을 잃어버렸다. 능파(凌波)란 사바세계의 고통을 부처님의 지혜로 헤쳐나간다는 뜻이다.
능파교인 이 돌다리는 건봉사의 수많은 건물터 중에 그래도 형상이 제대로 남아있는 것으로 주위 풍경과 잘 어울려 아름답다.
고성 건봉사의 대웅전 지역과 적멸보궁 지역을 연결하고 있는 무지개 모양의 다리로, 규모는 폭 3m, 길이 14.3m, 다리 중앙부의 높이는 5.4m이다.
다리의 중앙부분에 무지개 모양의 홍예를 틀고 그 좌우에는 장대석으로 쌓아서 다리를 구성하였는데, 홍예는 하부 지름이 7.8m이고 높이는 기석의 하단에서 4.5m이므로, 실제 높이는 조금 더 높다.
조선 숙종 34년(1708)에 건립된 경내 불이문 옆의 '능파교신창기비(凌波橋新創記碑)'에 의하면
이 다리가 숙종 30년(1704)부터 숙종 33년(1707)사이에 처음 축조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영조 21년(1745)에 대홍수로 붕괴되어 영조 25년(1749)에 중수하였고, 고종 17년(1880)에 다시 무너져 그 석재를 대웅전의 돌층계와 산영루(山映樓)를 고쳐 쌓는데에 이용하기도 하였다.
규모가 비교적 크고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는 다리로, 축조연대와 건립자 등을 알려주는 비석을 갖추고 있어 홍예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능파교에서 바라본 입구쪽의 냇가 풍경
능파교에서 바라본 적멸보궁 쪽의 냇가 풍경
능파교를 지나면 새로 지어진 건물들과 함께 금강산 건봉사가 자리 잡고 있다.
능파교를 건너자 입구에 십바라밀석주가 양 옆에서 호위하고 있다. 다른 사찰에서는 보지 못했던 모습이다. 십바라밀은 이승의 번뇌를 해탈하여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기 위한 10단계의 수행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한다.
누각 봉서루 앞에는 두개의 돌 기둥이 서 있는데, 각각의 기둥에는 초승달, 가위, 원 등 다양한 문양이 다섯개씩 새겨져 있다. 이는 불자가 불법을 닦아 이승의 세계에서 해탈의 세계로 나아가는 10개의 단계 '10바라밀'를 상징한다고 한다
대웅전 입구에 있는 봉서루
추녀의 들림을 잡아주는 강다리아래를 지나
봉서루 입구에서 바라 본 대웅전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 본 봉서루
봉서루를 지나면 부처님 치아사리를 보신 전각과 대웅전. 명부전. 종무소가 차례로 보인다...
향 대웅전 우측에는 만일염불원으로 종무소. 불교옹품점이 있다.
봉서루를 지나면 절 마당에 중심부 북쪽끝에 위치한 석가모니부처님을 주존으로 모시고 있는 대웅전을 만난다.
대웅전에서는 마침 2025년 새해 1월 1일로 사시 예불중이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불공에 동참하고 있었다.
석가모니불을 주존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협시불로 한 삼존불
대웅전 신중탱
대웅전 감로탱
설악산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렸던 사찰이 건봉사이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가 승병들을 훈련시켰는데 그들이 공양할 쌀을 씻은 물이 개천을 따라 10리도 넘게 흘러 갔다고 한다. 건봉사가 위치한 건봉산에 큰 불이 난 것은 1878년으로 그때 건봉사의 건물 중 3천칸이 소실되었다.
대웅전 앞 냉천약수 장군샘은 무색, 무미, 무취의 광천약수로 유명하며 임진왜란 당시 국난극복을 위해 사명대사가 전국의 승려를 모아 건봉사에서 훈련시키며 이 물로 씻고 음용케 하여 질병을 퇴치했다고 전해진다.
향 대웅전 우측으로는 명부전이 자리한다.
명부전에는 지장보살과 많은 위폐를 봉안하고 있었다...
향 대웅전 좌측의 부처님 불치사리 5과를 모신 전각
부처님 치아 진신사리의 장엄한 모습...
명부전과 종무소 사이로 가면 공양당이 있다...
공양당에서 제공하는 떡국을 맛있게 먹었다...
그리고 다시 대웅전 마당으로 가서
대웅전 옆 명부전 뒤길로 오르면 건봉사 등공대 가는 길인데 1시에 등공대로 갈수있다고 하는데 지금이 10시 30분으로 너무 오래기다려야 해서 패스하기로 한다. 예전 기억을 더듬으며...
대웅전 영역을 뒤로하고
봉서루를 나와
적멸보궁으로 가는 길의 계단 위 포대화상 옆에 두 개의 기둥이 보이는데... 2개의 연못을 지칭하는 표석인 것 같다
적멸보궁 가는길에 '龍蛇活地'로 용과 뱀이 상생하니 사부대중도 화합하라는 뜻을 담아 조성하였다 한다.
이곳은 탬플스테이 공간이다...
건봉사 300년 된 소나무로 산내의 전각들이 화재로 소실되는 과정에서 이 소나무는 살아남아 300년 세월동안 한결같이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다.
템플스테이 공간에서 산신각 부터 가보기로 한다.
예전 낙서암 지역의 산신각과 불교용품점
산신각에는 많은사람들의 기도공양물이 가득하다...
이제 건봉사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자리한 적멸보궁으로 가보기로 한다...
도굴 당했던 12과중 8과를 일본으로 부터 반환받아 5과는 대웅전 옆 전각에, 그리고 사리3과를 모신 석가세존 진신치아사리를 친견 할 수있는 적멸보궁이다...
신비로운 우담바라꽃을 친견한다.
오른쪽으로는 금박으로 새긴 금강반야바라밀경이 보인다....
사리탑전으로 불단에는 방석만 있고 부처님은 모시지 않았다. 바로 뒤의 금강계단에 부처님 진신이 계신 까닭이다. 유리 창 밖 보탑에 새로 만들어 봉안한 부처님 진신치아사리 3과가 탑에 봉안되어 있다...
향 진신사리탑 우측의 모습
이곳은 통도사의 금강계단을 모디파이 하였다.
진신사리탑은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불사리와 치아사리를 약탈해간 것을 사명대사가 일본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되찾아온 뒤 세운 것으로 이로부터 석가의 치아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을 만들게 되었다.
새롭게 조성된 사리탑, 왠지 낯설기만 하다. 세월의 무게가 더 많이 필요 하려나 ?
향 진신사리탑 좌측의 모습
적멸보궁 영역 안에 오른쪽에는 독성각이 자리 하고 있다.
독성각 전각 안에는 독성존자가 재미있게 조성되어 있다.
적멸보궁 안에서 밖으로 본 전경
적멸보궁을 뒤로하고
예전에 없었던 전각 극락전에 도착한다.
2020년 복원불사한 극락전 내부모습으로 염불만일기도를 꾸준이 이어가고 있다...
건봉사 대웅전 일원 모습으로 건봉사는 가운데 개울을 중심으로 동쪽에 대웅전 영역, 북쪽에 불사리를 모신 사리탑 영역, 서쪽에 극락전 영역등으로 사역이 펼쳐져 있어 그 경내가 매우 넓지만, 지금은 대부분이 주춧돌과 기단 등 돌로된 유규만이 남아 옛 영화를 말해주고 있다. 다행히 최근에는 대웅전 영역과 사리탑 영역. 극락전 영역의 일부만이 복원되었다.
종각의 위치가 법당하고 많이 떨어져 있는 것은 옛날 사찰 의 규모를 미루어 짐작케 해 주는 것 같다.
범종에는 ‘평화의 종’이라고 새겨서 분단의 아픔을 울려 퍼지게 한다.
이곳 건봉사는 이미 옛날부터 호국불교의 요람이었다. 분단의 현장 가운데에서 평화의 종을 울리고 있는 건봉사는 어느 곳 보다 민족의 아픔을 함께하는 현장이었다.
건봉사 대웅전 영역도 지나
불이문을 나와 사바세계로 나간다...
건봉사 불이문 옆의 이 팽나무는 강원도 기념물 제 51호로 지정된 건봉사지 내에서 약 500년 동안 자라왔던 나무로 한국전쟁중 766칸의 건봉사 사찰이 소실되었으나 유일하게 남아있는 불이문을 지켜주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성군에서는 건봉사를 지켜주는 상징목으로 2008년 12월 12일 보호수로 지정 관리하고 있다.
아미타 도량으로 금강산 남쪽 자락에 위치하고 한국전쟁 전만해도 한국 4대 사찰중 하나이고 강원도 제1의 사찰로서 설악산의 신흥사와 백담사, 양양의 낙산사를 말사로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거대했던 고성 8경 중 1경인 건봉사를 나와 다음여행지 송지호 해변으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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