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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릉 대관령 옛길 너머 깊은 산속에 울창한 송림속 첩첩산중 예쁜 보현사(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 보현길 396, 성산면 보광리 1171 )
    사찰여행/강원도 2025. 1. 11. 08:18

    강릉  대관령 옛길 너머 깊은 산속에 울창한 송림속 첩첩산중 예쁜 보현사

     

     

    2025.   1.    11. 

     

    2024.  12.   30 ~ 2025.  1.  3(4박 5일).  참 좋은 사람들과 함께한 

    24. 12. 30.  1일 여행은

    포항 출발하여 강원도 고성으로 이동하며 강릉 용연사,  강릉 주문진 항을 들러 고성 포유 리조트 도착 후 저녁식사 후  휴식하고

     

    24. 12. 31.  2일 여행은 

    고성 7경인 송지호 둘레길과 고성 왕곡마을,  고성 간성 전통시장에서  점심식사,   고성 대진포항에서  여유롭게 보내는  고성일대를 둘러보는 여행으로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로  이동 후  저녁식사 후  휴식이고   

     

    2025. 1. 1.  3일 여행은 

    고성 6경인 통일전망대,  건봉사 탐방 후 건봉사에서 떡국으로 점심 공양 후  백도해변.  송지호 해변.  고성 오션 뷰 고비치 5311 카페,  능파대,  아야진 해변을  보는  고성일대를 둘러보는 여행을 마치고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로  이동 후  저녁식사 후  휴식이고   

     

     

    2025. 1. 2.   4일 여행은

    속초 사잇길 5길인 속초해변길,  대포항,  설악항 & 해맞이 공원,  동명항 부두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사 후 영금정을 보고 만석 닭강정 본점에서 닭강정과  속초 수제 맥주 구입 후 속초 일대를 둘러보는 여행을 마무리 하고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로  이동 후  저녁식사 후  휴식이고   

     

    2025. 1. 3.   5일 여행은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에서 체크 아웃  후 강릉으로 이동 후  강릉 보현사,  정동진 해변,  정동진 해변 근처의 '부산 덕이 순두부 전문점'식당에서 늦은 점심 식 사 후 5일 여행을 마무리하고 포항으로 향해보는 연말 마무리 연초 시작  겨울마중 여행길  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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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1. 3.   5일 여행은

    고성 포유 리조트 숙소에서 체크 아웃  후 강릉으로 이동 후 첫여행지는

     대관령 옛길 너머 깊은 산속에 울창한 송림속 첩첩산중에 예쁜 보현사가 있어 그 곳으로 향해본다.....

     

     

     

     

     

    4박한 설악 포유리조트를 나와....

    강릉IC에서 나와 오른쪽 성산(城山) 방향으로 2㎞ 가량 직진하면 성산면 삼거리가 나온다. 거기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대관령 방면의 옛길을 따라 가면 된다. 고속도로에서는 잘 보이지 않아서 지나치기 쉬우므로 주의해야 한다.

     

     

     

     

    대관령 옛길을 따라 가다 보광리로 가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계곡을 끼고 4㎞가량 들어가면 보광초등학교(지금은 폐교됨)가 보이는 다리가 보이고 이 다리를 지나면 이 곳이 보광리 입구이다.   마치 영화 속에서 한적한 시골마을 찾아가는 장면을 연상하는 길들이 이어진다.   보광리 입구에서 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완만한 산길을 5㎞ 정도 올라가면 보현사 입구를 알리는 석물들과 부도밭이 나타난다.   이제 약 300m가량만 더 나아가면 아름다운 사찰, 보현사가 나타난다.

     

     

     

     

    보현사는 대관령과 선자령 바로 아래 자리하여 산세가 높다보니 주변 경관이 뛰어난 편이다. 이런 깊숙한 산속의 사찰이 많은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바라보니 담벽 아래로 계단이 있어 올라보니

     

     

     

     

    지상선원 석실굴이 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2005년 발굴하여 2007년 복원불사를 마친 ㄱ자 큰 전각이  지장선원(地藏禪院)과 선불장(選佛場)이라는 2개의 현판이 걸려있고 담장 축대가 어마어마하다....  담장의 담쟁이가 잎이나면 무척 이쁠거 같다.

     

     

     

     

     

     

    신라시대 650년부터 시작되어, 조선시대를 거치고, 한국전쟁에서도 큰 피해가 없었던 사찰이지만 중창과 중수를 거듭하며 규모가 상당히 커진 절이다. 현재도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강릉시 성산면 보현길 396 보현산(普賢山)에 자리한 보현사(普賢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月精寺)의 말사로서 보현사는 대관령과 선자령 바로 아래에 자리하여 산세가 높은 만큼 주변 경관이 뛰어나고, 대웅전· 영산전· 지장전· 삼성각. 금강루 등의 전각들이 법식에 맞게 자연과 잘 어울려 있어 산사의 그윽한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보현보살이 창건하셨다는 설화가 전하는 보현사는 650년(진덕여왕 4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에 의해 창건되었다.   또한 889년(진성여왕3년)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지장선원(地藏禪院)이란 이름으로 크게 중창되면서 보현사가 제대로 된 사찰의 모습을 갖추고 번창하게 되었다.

     

     

     

     

    자신의 빛을 감추고 세상의 흐름에 맞춰 겸손하게 행동하는 지혜를 상징하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이라고 쓰인 바위를 지나 드디어 보현사의 경내에 들어서게 된다.

     

     

     

     

    보현사는 높은 산과 계곡에 둘러싸인 대관령 기슭에 위치해 있다. 경내에 낭원대사오진탑(보물 제191호)과 낭원대사오진탑비(보물제192호)가 있으며,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으니 여유와 힐링의 시간을 가져보기에 좋은 곳이다.

     

     

     

     

    깨끗하게 지어진 템플스테이 건물이 먼저 보인다.  최근에 중수하여 시설이 좋다고 한다.

     

     

     

     

     

     

    낭원대사탑비(보물제192호)

    길 오른편에 보물 제192호로 지정된 낭원대사탑비가 있다.

     

    보현사에 남아 있는 낭원대사(834∼930)의 탑비로, 대사의 출생에서부터 경애왕이 대사의 덕을 기려 국사로 예우한 사실 및 입적하기까지의 그의 행적이 실려 있다.  대사가 96세로 입적하자 왕은 ‘낭원’이라는 시호와 '오진’이라는 탑이름을 내리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린 모습이다.  용의 머리를 갖춘 거북받침돌은 등에 6각의 벌집 모양이 채워져 있고, 중앙에는 구름무늬로 장식한 높은 비좌(碑座:비를 꽂아두는 부분)가 마련되어 있다.

    머릿돌은 밑면에 연꽃을 새기고 그 위로 여의주를 다투는 두 마리의 용을 힘차게 조각해 놓았다.

    꼭대기에는 석탑에서처럼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과 1단의 보륜(寶輪:바퀴모양의 장식)을 갖추고, 화염에 싸인 보주(寶珠:연꽃봉오리모양의 장식)를 얹고 있어 특이한 모습이다.

     

    대사가 입적한 지 10년 뒤인 고려 태조 23년(940) 세워진 비로, 비문은 당대의 문장가인 최언위가 짓고, 서예가인 구족달(仇足達)이 글씨를 썼다.

     

     

     

     

     

     

     

    탑비는 보수중인지 철제 보호각에 싸여있다.   특히 머릿돌이 묶여 매달려 있다.   세월의 흔적으로 거뭇해진 모습과 매달려있는 머릿돌에 찡한 마음이 든다.

    통일신라시대에 보현사를 중창했던 낭원대사의 일대기를 기록한 비석인데, 귀부와 탑신, 그리고 머릿돌에 해당하는 이수(螭首)가 비교적 잘 갖추어져 있다.

     

     

     

     

    보현사의 가람배치는 중정식(中庭式) 산지가람배치(山地伽藍配置)를 따르고 있다.중정식 가람배치란 가운데 마당을 중심으로 전각들이 배치된 모습이다.

     

     

     

     

     

     

    금강문 입구에는 금강역사의 모습이 벽면과 문에 그려져 있다.

     

    절 입구에서 바라본 금강루로 금강루는 1991년 지어진 전각으로 보현사 경내로 들어서는 문(門)이자 누각(樓閣)이다.   정면5칸, 측면2칸이며 팔작지붕으로 되어있으며, 현재는 조사당과 무인다실로 활용되고 있다. 

     

     

     

     

     

     

     

     

    금강루(金剛樓)를 들어서니 사찰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계단 위에서 동자승이 합장미소로 맞이해준다.

     

     

     

     

    금강루(金剛樓) 아래의 계단을 통해 경내로 진입하면 정면으로 대웅보전과 영산전이 배치되어 있으며 좌우로 지장전, 수선당, 보현당이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전각들이 중정(마당)을 중심으로 배치되어 있으니 산지가람 중 사동중정(四棟中庭)형과 비슷한 형태를 보이고 있다.

    사동중정형의 가람배치는 주불전, 문루, 좌우요사채의 4개 전각이 가운데 마당을 감싸고 있는 가람배치를 말한다. 금강루와 대웅보전이 일직선상에 놓였으니 가람배치의 중심축역할을 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금강루를 통해서 진입하면 규모는 크지 않지만 예쁜 대웅보전이 정면에 보인다.

     

     

     

     

     

    금강루 2층 조사당에는 보현사를 창건하신 자장율사와 사굴산파의 종조이신 범일국사 그리고 범일국사 제자이신 낭원대사 등 3분의 진영이 모셔져 있다.

     

    금강루 주련

    白日不照夜 백일부조야    밝은 해도 밤에는 비추지 못하고

    明鏡靡炤後 명경미조후    밝은 거울도 뒤는 비추지 못하네

    爾然本眞如 이연본진여    그러나 본래의 진여는

    圓明常寂照 원명상적조    두루두루 항상 고요히 비추네.

     

     

     

     

    자장율사(慈藏律師, 590년~658년)은 신라의 스님 650년에 보현사를 창건하였다.

     

    범일국사(梵日國師, 810년~889년)은 신라의 스님이며, 낭원대사의 스승이다. 신라 구산선문 중 사굴산파를 처음 만들었다. 시호는 통효대사(通曉大師)이며, 탑호는 연휘(延徽)이다.

     

    낭원대사(朗圓大師, 834∼930) 보현사를 중창하였으며 지장선원을 세우고 많은 후학들을 가르치셨다.

     

     

     

     

     

     

     

     

     

     

    금강루와 요사 수선당

     

     

     

     

    금강루.  수선당. 삼성각.  지장전.  영산전.  대웅보전이 차례로...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은 조선 초기의 건축 양식으로, 영동 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절이라고 한다.

     

     

     

     

    수선당. 삼성각.  지장전.  영산전.  대웅보전이 ...

    오래된 전각들을 중심으로 가람배치의 형태를 추정한다면 대웅전과 금강루를 잇는 축을 중심축으로 보현천을 바라보는 남향이었으며, 과거에는 보현천 주변의 산길을 따라 사찰 경내로 진입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주변 지형의 경사가 급한 편이지만 보현사 주변의 평지규모가 비교적 큰 것으로 보아 사찰의 규모도 컸던 것으로 유추된다. 산의 능선에도 부속암자였을 것으로 보이는 암자터가 남아 있다.

     

     

     

     

    대웅보전을 마주 볼 때 오른쪽에 있는 큰 요사채로 종무소인 보현당은  정면 7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1986년에 세워졌는데 처음에는 한 건물 안에 큰방, 요사, 부엌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으나 최근에 불사를 거치면서 큰방과 요사, 종무소로 사용되고 있다.

     

    중앙의 큰방 가운데 모셔진 ‘보현사 목조보살좌상(木造菩薩坐像, 보현보살)’은 고려시대의 보살좌상으로 조성된 작품으로 추정되며, 2021년에 보물로 지정되었다는데 보지를 못했다..

     

     

     

     

     보현당에는 18.84년에 창동에 사는 당시 신동인 여재복(呂在卜)이 10세 때 써놓은 보현사 편액이 걸려있다.

     

     

     

     

     

     

    보현당 주련

    浦團兀兀欲何爲포단올올욕하위  방석에 우뚝 앉아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更問深山老古錘갱문심산노고추  깊은 산속 선지식에게 다시 한번 물어보라

    空山雨雪無人境공산우설무인경  텅빈 산 눈비 내려 사람도 경계도 없는 곳에서

    驀地相逢是自家맥지상봉시자가  문득 만나고 보니 바로 자기 자신이네

    何處是忙何處閒하처시망하처한  어디가 바쁜 곳이며 어디가 한가로운 곳이던가?

    浮生常在兩分間부생상재양분간  사람들은 언제나 이 두가지에만 머무르네.

    若知忙裡眞消息약지망리진소식  만약 바쁨 속에 있는 참 소식을 안다면,

    不必求閒棲碧山불필구한서벽산  뭣 하러 푸른 산중에 살면서 한가로움을 찾으리!

     

     

     

     

    종무소가 있는 보현당의 뒤편으로 공양간이 있어

     

     

     

     

    정갈한 장독대도 자리한다.

     

     

     

     

    보현당 뒤편으로 2013년과 2014년에 걸친 중창불사를 통해 지어진 건물인 오관당은 후원(부엌) 겸 식당, 템플스테이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불가(佛家)에서는 공양(식사)를 할 때 ‘오관게(五觀偈)’라는 게송을 읊으면서 식사시간도 자신을 돌아보는 수행의 시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식사를 하는 이 건물이름도 오관당(五觀堂)이다.   오관당 편액은 월정사 회주이신 현해스님께서 쓰셨다.

     

     

     

     

    그 아래로 템플스테이공간이 되고 있는 오관당과 지장선원, 선불장이 있다.  이곳에서 동해쪽을 바라보면 강릉시내와 바다가 보인다. 

     

    오관당 아래로 내려가면 2005년 발굴하여 2007년 복원불사를 마친 ㄱ자 큰 전각이 나오는데, 지장선원(地藏禪院)과 선불장(選佛場)이라는 2개의 현판이 걸려있다.

    이 지장선원은 낭원대사가 889년 이후 보현사로 오시면서 후학들을 가르치기 위해 선원으로 만든 전각이다.

     

    선불장(選佛場), 부처를 뽑는 곳이라고 해석되는 이 편액은 다른 사찰의 전각에서도 종종 볼 수가 있다.  부처가 되는 일을 달리 표현하면 열심히 공부하여 과거시험에 급제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다만 속세의 과거시험과 달리 부처가 되는 공부는 마음이 텅 비어 공(空)해야만 급제를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선불장의 의미를 보여주는 게송이 하나 전한다.

     

    현재는 전통건축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가지고 현대식 설비의 편의성을 갖춘 공간으로 전통문화를 배우고 지친 현대인들의 휴식과 자기돌봄의 시간을 갖는 템플스테이를 위한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드넓은 동해바다의 일출과 대관령의 청량한 공기를 멀리 나가지 않아도 방안에서 즐길 수 있는 묘미가 이 선불장에 있다.  멀리 강릉시내와 바다까지 보인다고...

     

     

     

     

    보현당과 대웅전 옆으로 온다.

     

     

     

     

     

     

    대웅보전 앞마당에는 대웅보전 계단 바로 앞에 탑대신 오래된 일부 부재가 없어진 석탑이 놓여 있고, 세월의 풍파를 못이긴 석조 사자상(獅子像)도 있다.  이 사자상은 아마도 석등의 간주석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탑부재와 사자상 등 석물들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한 때는 탑과 석등 등을 갖춘 위엄있는 가람으로서의 사세를 이루었을 것으로 보인다.

     

    대웅전의 어간으로 오르는 계단 앞에는 석사자상과 탑의 부재, 석등의 부재 그리고 2019년에 대웅전 해체복원 시 발굴과정에서 나온 조각난 비로자나불상이 모셔져 있다.

    부재들은 9세기 ~ 10세기에 만든 작품들이다.

     

    석사자상은 세월의 풍파로 알아보기 힘들지만 사자가 직립하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부처님을 향한 뜨거운 장엄을 보여주고 있다.  사자상은 엉덩이와 뒷발을 땅에 붙이고 허리를 곧게 세워 머리를 하늘로 향하여 세운 형태이다. 대좌(臺座)는 양 뒷발과 엉덩이가 붙은 자리 주변으로 둥글게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전체 높이는 56cm이고, 현재 앞발과 머리가 심하게 훼손되어 정확한 용도는 알 수 없으나 석등의 간주석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석탑부재는 연화문이 조각된 방형(사각형)의 석등 하대석 부재 위에 놓여 있다.  원래의 자리는 대웅전 앞 중정(중앙마당)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탑신석은 좌상인 사방불이 모각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면 1층 탑신석이 확실하고, 위의 옥개석은 탑신석의 폭과 최하단의 옥개받침 너비의 비율, 남아 있는 옥개석 2점의 체감율을 계산하면 1층 옥개석이 확실하다고 보여진다.   옥개석 사이에 있는 부재는 노반석이 거꾸로 끼워져 탑신석처럼 사용되고 있으며, 위층의 옥개석은 윗면에 찰주공이 있으므로 3층 옥개석으로 보는 것이 맞을듯하다.  가장 위에 놓인 부재는 복발로 반이 갈라진 상태이다.  옥개석은 전각부분이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을 정도로 심하게 파손되었으며 옥개받침은 4단이다.

     

    그래서 원형은 3층 석탑이었으나 현재는 2층만이 남아 있는 탑의 부재들이다.  기단은 모두 없어졌고 옥개석 2점,  탑신석 1점, 노반(露盤)과 복발(覆鉢)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강릉시 방내리와 강릉시립박물관에는 1층 탑신에 사방불이 모각된 탑과 탑부재가 남아 있는데 이들 탑부재와 보현사 경내의 탑부재를 참조하여 신라 말의 사찰의 규모와 보현사의 원형을 상상해볼 수 있다.

     

     

     

     

    소원등도 달아본다.

     

     

     

     

     

     

    보현사 대웅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 37호)

    보현사 대웅보전(大雄寶殿)덧서까래 구조로 이 건물은 처마를 받쳐주는 공포를 기둥 사이에도 설치하는 다포식 건물로 기단은 장대석을 4단으로 쌓은 네벌대 기단이며 초석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한 덤벙주초이다. 기둥은 초석에 맞추어 기둥의 밑면을 깎는 ‘그랭이질’을 하여 세웠다.

    대웅보전의 공포는 다포식으로 기둥 위에 주상포, 기둥과 기둥 사이에 주간포, 그리고 모서리에 귀포를 배치하였다.

     

    대웅보전편액의 글씨는 연선(蓮仙)이란 분이 남긴 명필이다.

     

     

     

     

     

    보현사 대웅보전 석조 아마타 삼존불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67)

    전각 안에는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아마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전각의 이름이 대웅전이라 전각과 부처님이 일치하지 않지만 이러한 일은 조선후기에 흔히 발견된다.  아미타부처님의 수인임에도 석가모니불의 수인과 비슷했기 때문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왼손은 전형적인 아미타부처님의 수인을 하고 있다.  머리에는 상투처럼 생긴 육계와 머리의 경계가 불분명하고 소라처럼 생긴 모발이 촘촘하게 표현되는 등 전형적인 17세기 불상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부처님의 왼편에 계신 보살의 보관에 작은 아미타불이 표현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관세음보살이 분명하며, 맞은 편 보살은 대세지보살이 된다.   이를 보면 중앙의 부처님은 아미타불임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성수법을 보면 삼존이 동시에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는데, 불행히도 복장유물은 대부분 도난을 당했는데, 다행히도 조성기는 남아 정확한 제작시기가 1691년 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대웅보전 내에 모셔진 아미타삼존불상은 조선후기에 조성된 원만상으로 불교신도뿐 아니라 일반인에게도 친근한 상을 갖추고 계셔서 많은 참배객이 이어지고 있다.

     

     

     

     

    향 불단 우측으로 지장탱과  1799년에 조성한 신중탱화 한 점이 전해져 오고 있다.

     

     

     

     

    향 불단 좌측으로 감로탱이 있다.

     

     

     

     

     

     

    강릉 보현사 대웅보전은 보현사의 주불전으로 1831년 중건된 건물이라는 것이 해체수리과정에서 확인되었다.   이후 적어도 2번의 수리가 더 있었다는 것이 기록과 건물에 남은 흔적을 통해 확인되었지만 그럼에도 중건 당시의 모습을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하고 있는 건물로 평가할 수 있다.

     

     

     

     

    대웅전 좌측으로는 삼성각과 지장전.  목우당. 영산전이 있다.

     

     

     

     

     

    보현사 대웅보전의 왼쪽에 있는 영산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으로서 1955년에 중건하였다고 합니다. 편액과 주련은 불교계 대강백 탄허 큰스님께서 쓰셨다.

    영산(靈山)은 영취산(靈鷲山)의 준말로서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셨던 법회장소 또는 법회의 모습을 말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영산전은 주로 석가모니부처님을 중심으로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제자상들을 함께 모셔 법화경 설법상을 묘사하기도 하고, 주위로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묘사한 그림인 팔상도를 모시기도 한다.

     

    영산전 주련

    나반신통세소희 那畔神通世所稀 나반존자님께서 신통력으로 세간의 중생들을 기쁘게 하심이며,

    행장현화임시위 行藏現化任施爲 행적을 감추시고 나타내고 화현하시고 베푸심을 자유롭게 하심이며,

    송암은적경천겁 松巖隱跡經千劫 소나무와 바위에 흔적을 감추시길 천겁동안 하시면서,

    생계잠형입사유 生界潛形入四維 인간계에 형태를 감추고 사유사방에 몸을 나투시다...

     

     

     

     

     

     

    보현사 영산전에는 석가모니부처님과 제화갈라보살, 미륵보살로서 이루어진 석가삼존불상을 모셨고, 제화갈라보살은 과거불이신 연등불이시고, 석가모니불은 현재불, 미륵보살은 미래불이니 과거, 현재, 미래의 삼세불을 모셔놓은 것이다.

     

     

     

     

    석가삼존불상 그 좌우에 16나한상과 양 끝에 범천, 제석천, 2구의 사자(使者)가 봉안되어 있는데 모두 흙을 빚어 만든 소조(塑造)상이다.

     

    강릉시 보현사 영산전(靈山殿)에 봉안할 목적으로 1882년에 제작한 십육나한도는 2014년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1호로 지정되었다. 월정사 성보박물관 소장.  십육나한은 깨달음을 얻어 아라한과(阿羅漢果)에 이르렀으나 미륵(彌勒)이 올 때까지 열반(涅槃)에 들기를 미룬 채 이 땅에 남아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이롭게 하는 소임을 맡은 16명의 불제자이다.  나한은 십육나한, 십팔나한, 오백나한으로 무리를 이루어 신앙화 되는데, 그 중 십육나한은 나한의 성격이 가장 집약되어 있는 구성이라 할 수 있다.  보현사 십육나한도는 십육나한의 특성이 잘 반영된 조선 말기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현재 두 폭만이 남아 있다.

     

     

     

     

    나한(羅漢)은 최고의 깨달음(아라한과)을 얻은 성자(聖者)를 일컫는 말로서 부처님 당시의 제자님들이다. 16분의 나한상은 각각의 특징에 맞게 다른 형상을 하고 있다.

     

     

     

     

    나한상에 끝부분에 앉아 계신 분은 범천으로 힌두교의 최고신인 ‘브라흐만’이고, 직부사자는 지옥사자들로서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죽은 자의 선악행실이 적혀있다고 한다.

     

     

     

     

    나한상에 이어 끝부분에 앉아 계신 분은  제석천이고 제석천은 전쟁의 신에 해당되는 ‘인드라’인데 두 분 모두 불법에 귀의하여 불교의 호법신(護法神)이 수용되었다.  감재사자는 지옥사자들로서 들고 있는 두루마리에는 죽은 자의 선악행실이 적혀있다고 한다.

     

     

     

     

    지장전은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으로서 1955년에 지어졌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지장전 편액은 월정사 회주이신 현해스님께서 쓰셨다.

     

     

     

     

    현재 지장전에 모셔진 지장보살상은 대웅보전에 모셔져 있던 것을 2015년에 삼성각을 지장전으로 개축하면서 현재의 지장전으로 모시었다.

     

    지장보살님은 이미 여래의 경지에 도달하셨으나 육도(六道, 지옥· 아귀· 축생· 수라· 인간· 천상)의 중생, 그 중에 특히 악도(惡道)에 떨어져서 헤매는 중생과 지옥의 고통을 받으며 괴로워하는 중생들 모두가 빠짐없이 성불하기 전에는 자신도 결코 성불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고 성불을 미루신 보살님이다.   그래서 이미 성불한 분이나 다름이 없어서 대원본존(大願本尊)이라고 부른다.

     

    지장보살상 뒤편의 지장시왕탱화는 2017년 봄에 칠보탱화로 모셨으며, 지장보살상의 좌우에는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협시로서 서있다.

     

     

     

     

    그리고 양 옆으로는 영구위패단을 조성하여 선망부모 조상님들의 극락왕생을 발원하였다.

     

     

     

     

     

     

    지장전 측면

     

     

     

     

    지장전  후면

     

     

     

     

    지장전 편액과 주련은 월정사 회주이신 현해스님께서 쓰셨다.

     

    지장전 주련

    장상명주일과한 掌上明珠一顆寒  손바닥 위의 한 알의 밝은 구슬 차갑지마는

    자연수색변래단 自然隨色辨來端  저절로 빛깔 따라 분별이 뚜렷하구나.

    기회제기친분부 幾回提起親分付  몇 번이나 들어 보이며 친히 알려주려 했건만

    암실아손향외간 暗室兒孫向外看  미혹한 중생은 바깥만 내다보네.

     

     

     

     

    지장전 뒤편에 있는 삼성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건물로서 안에는 칠성, 독성, 산신을 모셔 놓고 있다.

    지금의 건물은 2015년에 중창불사를 하면서 신축하여 기존 삼성각에 있던 탱화들을 보현당으로 모시고, 새롭게 칠보로 만든 탱화를 모셨다.

     

    삼성각 주련

    靈通廣大慧鑑明 영통광대혜감명 영통하고 큰 지혜 거울처럼 밝으시고

    住在空中映無方 주재공중영무방 허공에 머물러 비추지 않음 없네.

    羅列碧天臨刹土 나열벽천임찰토 이어진 푸른 하늘 불국토에 임하시고

    周天人世壽算長 주천인세수산장 천인 세상 두루하여 수명을 관장하네.

     

     

     

     

    가운데 모셔진 칠성탱화는 치성광여래를 중심으로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이 좌우 협시보살로 서있고 윗부분에는 7여래가 아랫부분에는 칠원성군이 그려져있다. 칠성탱화는 북두칠성을 불교의 호법신으로 수용하여 그려진 탱화인데 치성광여래는 북극성, 7여래는 북두칠성,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은 각각 해와 달이 신격화된 것이다. 그리고 칠성이 도교식으로 의인화 된 것이 칠원성군이다. 예부터 자식이 없는 이들이나 자식의 수명을 비는 이들은 칠성님께 기도를 했다고 한다.

     

    왼쪽에 모셔진 분은 독성님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독성탱화 앞에 있는 독성상이다. 긴 눈썹과 살짝 미소 지은 얼굴만 내어 놓고 흰색의 천으로 머리에서부터 온몸을 감싸고 있는 독성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이다. 말세 중생의 복전(福田)이라고 알려진 독성(獨聖)이 구체적으로 누구를 말하는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독성(獨聖)을 나반(那畔)존자라고 부르는데 부처님 제자 중에 빈두로(賓頭盧) 존자일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산신탱화를 모셨다. 산신탱화에는 호랑이가 항상 그려져 있는데 산신이 호랑이를 바로 의인화한 것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호랑이는 산에서 최상위 포식자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존재로도 많이 믿겨져 왔으므로 불교의 호법신으로 수용되었다.

     

     

     

     

    삼성각 옆 우측으로 목우당은 2015년에 신축한 정면3칸 측면2칸의 맞배지붕인 전각으로서 요사채로 사용 중이다.   목우는 ‘소(牛)’로 비유된 ‘마음’을 길들이는(牧) 곳이라는 뜻이니 역시 수행을 하는 공간이라는 뜻이다.

     

     

     

     

    삼성각 옆엔 아담한 5층 석탑으로 많은 이들의 간절한 염원이 적혀 있는 소원지를 볼 수 있다.

    대관령의 바람을 느낄 수 있는 이곳에서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소원을 한자 한자 정성스럽게 쓰며 자신의 꿈을 향해 한발 더 나아갈 수 있는 행복이 가득한 곳이다.

     

     

     

     

    대웅전 마당에서 바라본 영산전. 대웅전. 보현당

     

     

     

     

    대웅전과 보현당

     

     

     

     

    금강루를 지나 사찰마당에 올라설 때 왼쪽에 있는 수선당은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1990년전 까지만 해도 함석집으로 되어 있었으나 1991년 새롭게 불사하여 정면4칸 측면2칸으로 지었다.  2015년에 건물이 증축하고 보수하여 지금의 정면5칸 측면2칸으로 되었다.

     

    요사채는 요사라고도 하는데, 요사(療舍)란 사찰 내에서 전각이나 산문 외에 스님들의 생활과 관련되는 건물을 총괄하여 부르는 명칭으로서 큰방, 선방, 사무실, 후원부엌, 창고 외에 수각(水閣)과 해우소(解優所)까지 포함된다.  불가에서는 오래 전부터 요사채에 붙이는 이름으로 심검당(尋劍堂),  적묵당(寂默堂),  설선당(說禪堂),  해행당(解行堂),  수선당(修禪堂),  목우당(牧牛堂) 등의 명칭이 주로 사용되는데 각각의 명칭들이 대부분 수행과 관련된 의미를 담고 있다.

     

    수선당은 ‘선(禪)’을 닦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수선당 주련

    諸法從本來 제법종본래   이세상 모든 법은 본래부터

    常自寂滅相 상자적멸상   항상 스스로 고요하고 청정하므로

    佛子行道已 불자행도이   수행자가 이와 같이 수행하면

    來世得作佛 내세득작불   오는 세상에 성불하리라.

     

     

     

     

     

    수선당 앞에서 바라본 수선당. 지장전. 영산전.  대웅전. 보현당

     

     

     

     

    수선당 앞에서 바라본 영산전.  대웅전. 보현당

     

     

     

     

    수선당 옆에는 동정각(動靜閣)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 종각이 있다.

    동정각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사모지붕의 목조건물로, 1970년 초에 신축한 것이다.   건물은 계단석이 있는 기단 위에 원형초석을 두고 그 위로 두리기둥을 세워 다포를 받친 모습으로, 사면이 개방되어 있다.   원래는 지금의 위치와 비슷한 곳에 있었는데 금강루 옆으로 이동을 하였다가 2016년에 다시 지금의 자리로 돌아오게 되었다.

     

    동정각 안에는 1977년에 주조한 대종이 있으며,  현판과 편액은 탄허스님께서 쓰셨다.

     

    주련

    마하대법왕 摩訶大法王   거룩하고 위대하신 법왕님은

    무단역무장 無短亦無長   짧지도 또한 길지도 않으시며

    본래비조백 本來非皁白   본래 검지도(黑)않고 희지도(白) 않지만

    수처현청황 隨處現靑黃   모든 곳에 근기따라 황청으로 나타나신다.

     

     

     

     

    동정각  벽을 끼고  낭원대사탑 가는 길 초입이다.

     

     

     

     

     

     

    낭원대사탑 오르는 길에 바라본 길상원은 2019년에 신축한 정면5칸 측면2칸의 팔작지붕으로 스님의 요사채로 사용중인 전각이다.

     

     

     

     

     

     

    낭원대사탑 오르는 길에 바라본 보현사 목우당. 영산잔. 대웅전.지장전 그리고 삼성각

     

     

     

     

     산으로 올라가는 이 길을 따라 몇 분을 걸으면 보물 제191호로 지정된 낭원대사탑이 있다.

     

     

     

     

     

     

     

     

    200m  정도의 낭원대사탑 오르는 길이 잘 단장되어 있다.

     

     

     

     

    길을 만든지는 얼마 안 되어 보이는 듯 ~

     

     

     

    남쪽에서 바라본 낭원대사 부도탑(보물 제191호)

    보현사에 자리하고 있는 낭원대사의 사리탑으로,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무너져있던 것을 사찰입구에 복원해 두었다가, 1991년 다시 원래의 자리인 산꼭대기 주변으로 옮겼다.

     

     

     

     

     

     

     

     

    서쪽에서 바라본 낭원대사 부도탑

    탑신(塔身)을 받치는 기단(基壇)은 세 개의 받침돌로 이루어져 있었으나, 지금은 가운데받침돌이 없어져 아래받침돌 위에 바로 윗받침돌이 얹혀있다. 탑신의 몸돌 한쪽 면에는 문 모양과 자물쇠 모양을 새겨 두었다. 지붕돌은 두터운 편이며, 경사가 급하고,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꽃장식을 얹었던 흔적이 남아있다. 지붕돌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낭원대사탑비가 고려 태조 23년(940)에 건립되었으므로, 이 탑도 이 때 같이 세워놓은 것으로 보인다.

     

     

     

     

    북쪽에서 바라본 낭원대사 부도탑

     

     

     

     

    동쪽에서 바라본 낭원대사 부도탑

     

     

     

     

     

     

    잘 정비된 길을 내려간다.

     

     

     

     

     

     

     

     

    이곳에서 동해 쪽을 바라보면 강릉시내와 동해바다가 보인다...

     

     

     

     

     

     

     

     

    보현사 낭원대사朗圓大師 부도를 다녀와

     

     

     

     

    금강루 앞을 지나

     

     

     

     

     

     

     

     

    대관령 높은 산과 계곡에 둘러싸인 대관령 기슭 선자령 아래에 위치하여 산새가 깊고, 쉴새없이 물소리를 들을 수 있으며, 사찰 자체의 꾸밈이 상당히 예쁜 절로 맑은 날 동해바다까지 볼 수 있었던 울창한 송림 속 첩첩산중 사찰 예쁜 보현사를 뒤로하고 다음 여행지 정동진 모래시계공원으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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