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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층 목탑과 아름다운 정원이 매력적인 산사 진천 보탑사 (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641,진천읍 연곡리 483 )사찰여행/충청도 2024. 7. 27. 11:51
3층 목탑과 아름다운 정원이 매력적인 산사 진천 보탑사
2024 . 7 . 27.
2024. 7 . 21~23 (2박 3일) 비봉산악회와 함께했던 인천 옹진군의 백령도와 충북 진천의 보탑사를 보며 즐긴 힐링여행이다......
7.21. 01:00 포항을 출발해서 휴게소 몇군데 들려 06시 인천 여객선 터미널 주차장에 도착하여 준비해간 등산식으로 아침 식사를 하고 2박 3일 1일째 일정으로
2024. 7.21. 09:30 인천 여객선 터미널에서 코라아 프라이드호를 타고 소청도. 대청도 경유하여 배를 타고 13 : 25 백령도로 들어와서 1일 일정을 마치고....
* 두째날 오후 백령도에서 대청도로 가서 대청도에서 1박 후 여행 마무리하는 일정이었는데 밤새 상황이 바뀌어 3일째 날은 배가 인천에서 안 뜰것 같다는 통보로 백령도 여행을 끝으로 오후에 인천행 배를 타야하는 상황으로 대청도는 또 미룰수 밖에 없는 상황히 되었다.
해서 2일 일정은 아침식사 후 모든 짐을 챙겨 차에 싣고 나머지 백령도 여행을 마치고 점심 식사 후 백령도 용기포항여객터미널에서 코리아 프라이드 타고 인천연안여객터미널로 돌아와 인천 숙소에서 숙소 배정 후 자유로운 저녁 식사를 하고 여장을 풀고 즐겁고 알찬 여행 2일째의 하루를 마감하는 일정이다.
여행 3일째 아침, 아침식사 후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3층 목탑과 아름다운 정원이 매력적인 산사 진천 보탑사로 향해본다.
아침식사 후 8 : 20 여전히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가운데 3층 목탑과 아름다운 정원이 매력적인 산사 진천 보탑사로 향해본다.
인천을 떠나 휴게소 들리고 인천을 떠난지 3시간만에 진천으로 들어선다....
도심을 벗어나 국도를 달린다.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시골마을을 지난다.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 소음조차 숨죽인다. 숲길에 들며 뒤엉킨 마음도 맡겨버린다. 구불거리는 좁다란 산길 위에서 너울거리는 계절을 느낀다. 비로소 그 땅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이다.
좁다란 숲길을 따라 산 밑을 지나면 길 옆의 계곡이 물소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산 아래 정갈한 사찰 보탑사( 寶塔寺)가 조용히 앉혀져 있다.
넓은 주차장과 큰 까페도 있는 곳에서 바라본 보탑사 전경이다.
나무다리 건너 웅장한 성 입구 같은 길을 오르면
보탑사 천왕문 앞에는 400년 가까이 된 보호수가 자라고 있다.
폐허의 절터에 다시 절집을 일으켜 세우기로 한 건 1991년부터였다. 절집 자리를 궁리하던 그때의 기준은 무엇보다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였으리라. 사람의 기억이 사라진 절터를 지켜온 유일한 생명체인 까닭이다.
대략 400년 세월을 살아온 것으로 짐작되는 이 나무를 마을 사람들은 옛 스님이 심어 키운 나무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절집이 언제 폐사했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이야기의 신빙성은 떨어진다.
나무는 높이 18m까지 자랐는데, 중심 줄기는 3m쯤 높이에서 여러 개의 굵은 가지로 나눠지며 사방으로 고르게 펼쳤다. 나뭇가지 펼침 폭은 동서로 26m, 남북으로 21m에 이를 만큼 넓어서 나무 한 그루가 드리우는 그늘은 천연의 쉼터를 이룬다.
사실 이 정도의 연륜과 규모를 갖춘 느티나무가 희귀한 건 아니다. 그러나 느티나무로서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기억이 사라진 폐허의 터에서 잊어진 기억의 실마리를 짚어보게 하는 생명체라는 점에서 한번 더 바라보게 한다.
우리나라 산천에는 사찰이 참 많다. 으레 사찰하면 많은 사람들이 오래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아무래도 오랜 세월 동안 불교가 우리 생활에 많은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찰들이 오랜 세월 같은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다. 조선 시대 숭유억불 정책으로 도심에 있던 많은 사찰들이 깊은 산으로 쫓겨났고, 산불로 전각이 불타면서 다시 세워지기를 반복하다 보니 생각보다 역사가 깊지 않은 사찰도 많다.
모든 생물에 생로병사가 있듯, 보이지 않는 모든 존재에도 생명이 피어났다가 지기도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던 사찰이 사라졌다가 최근에 생명을 새로 얻은 곳이 충북 진천에 있다. 현재 어떠한 사찰보다도 아름다운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 사찰이 보탑사다.
보탑사는 고려시대에 사찰이 있었다고 기록만 남아있던 자리에 지광, 묘순, 능현 스님 외 여러 분들이 1996년부터 2003년까지 많은 정성과 노력을 기울여 완성한 사찰이다. 그러나 보탑사 입구에 있는 400년 넘는 큰 나무를 입구에서 보게 되면 최근에 지어진 사찰이라는 생각을 잊게 한다. 이 자리에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던 사찰이라는 착각을 준다.
‘진천 보탑사 느티나무’는 2003년에 불사를 마친 새 절집 ‘보탑사’의 풍광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절집에 들어서려면 나무 곁의 돌계단을 오르며 자연스레 나무를 바라보게 된다. 나무는 절집의 사천왕문을 마주하고 섰는데, 마치 예전부터 바로 이 자리에 절집의 정자나무로 서 있었던 양 자연스럽다.
계곡 끝에는 보탑사라는 운치 좋은 절이 들어서 있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의 보탑사는 아홉 개의 봉우리가 병풍처럼 펼쳐져 연꽃이 피어난 듯 아름다운 모습의 연곡리에 자리하고 있다.
절 입구 천왕문 앞에 300년 된 보호수도 있고 전체적으로 고찰 느낌이 풍기지만 불과 20 ~ 30년 전에 들어선 절이다.
주차장 뒤로는 수련원이 보이고 중간으로는 3층 목탑과 범종각 그리고 오른쪽으로는 천왕문이 차례로 보인다.
보탑사는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에 위치한 비구니 사찰이다.
보탑사는 1996년 고려시대 절터로 전해지는 곳에 삼국시대 목탑 건축의 전통을 잇는 3층 목탑을 세웠으며 목탑은 연곡리 보련산 연꽃 터전 중에서도 연꽃수술에 해당한다고 하고 지광, 묘순, 능현 스님의 발원으로 창건됐다.
기원하는 마음으로 지은 3층 목탑이 유명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로 보탑 외에도 천왕문, 범종각, 법고각, 지장전, 영산전, 적조전, 해행당, 삼소실 등이 갖춰져 어느새 대가람의 면모를 자랑하고 있다.
보탑사 안내도
천왕문
비가 내리는 가운데 '보련산 보탑사' 라고 적힌 천왕문을 지나 보탑사로 들어간다.
천왕문의 사천왕상을 지나...
천왕문 뒤에서 사찰을 올려다본다.
계단을 좀 더 오르니 7각의 범종각과 9각의 법고각 사이로 3층 목탑의 모습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한다.
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오르니 계단 양쪽의 소나무와 어우러져 저 멀리 보일 듯 말 듯 한 목탑의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서면 범종각과 법고각이 나란히 멋스러움을 뽐내고 그 안쪽으로는 이곳에서 자랑하는 목탑이 자리하고 있다.
천왕문을 지나자 저 윗쪽으로 한 쌍의 종각이 보인다.
7각의 범종각과 9각의 법고각이다. 육각정, 팔각정은 흔히 들어봤어도 7각, 9각은 좀 생소하다.
9각의 법고각과 7각의 범종각
9각의 법고각
7각의 범종각
고려시대 절터에 조성된 보탑사의 자랑거리는 신라시대 황룡사 9층 목탑과 같은 방식으로 지은 3층목탑이다.
연곡리 절터는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에 이르는 큰 절터로만 전해 왔는데, 그 중심에 삼국 시대 목탑 건축의 전통을 잇는 삼층 목탑을 세움으로써 새롭게 되살아났다.
이 곳이 보탑으로 보탑사의 주전각이다.
보탑사가 주목받는 이유는 신라시대 황룡사 구층 목탑을 모델로 한 삼 층 목탑 양식이기 때문이다.
3층 목탑은 보탑사의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신라시대 황룡사 9층 목탑을 모델로 하여 1992년 대목수 신영훈을 비롯한 여러 장인들이 참여한 불사에 참여하여 1996년 8월 3층 목탑을 완공하였다.
우리나라 현존 목탑 중 가장 크고, 국내에서 유일하게 3층까지 걸어서 내부를 오르내릴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는 목탑이라는 점도 특별하다.
탑 속은 계단을 통해 1~3층으로 연결돼 있다. 통층이 아니라, 각각 독립된 법당이다.
황룡사 9층 목탑을 모델로 만든 총 높이 52.7m(목탑 33.3m. 상륜부 20.8m) 강원도 소나무로 못을 사용하지 않고 목재를 끼워서 맞추는 전통방식을 고수하여 지었다고 한다.
목탑을 떠받치는 기둥만 29개에 이른다. 1층은 법당, 2층은 법보전, 3층은 미륵전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라시대 이후 사라진 목탑을 재현했다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다. 이름은 목탑이지만 사람이 올라갈 수 있어서 현대적으론 빌딩과 비슷한 구조다.
못을 사용하지 않은 전통방식으로 지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빼어난 건축물이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석탑이 발달한 문화라 목탑이 귀한데 그나마 남아있는 보은 법주사 팔상전이나 화순 쌍봉사의 대웅전은 사람이 올라갈 수 없는 구조라 비교가 어렵다. 3층이지만 상륜부까지의 높이는 무려 52.7m에 달한다. 요즘 아파트로 치면 14층 높이다.
3층 목탑 서방 출입문 쪽으로는 극락보전. 수다라전. 대자보전 편액을 달고 있다.
올라가는 계단은 네 곳에 있었지만 우리는 출입문인 극락보전 계단을 이용했다.
계단에 연꽃이 피어 있다. 한 쪽은 봉오리, 한 쪽은 활짝 만개한 연이다. 구품연화대 일런가 ? 연꽃송이 사뿐사뿐 즈려 밟으며 금당 문을 들어선다.
보탑사 통일대탑은 겉모습만 특이한 게 아니라 내부구조도 다른 사찰과 많이 다르다. 보통 법당은 정면에 하나의 불상을 모시지만 통일대탑 1층엔 찰주(擦柱, 불탑의 중심기둥)를 중심으로 각 방위별로 동서남북으로 각각 동방 약사여래, 서방 아미타불, 남방 석가여래, 북방 비로자나불과 협시불 등 사방불을 모셨고 그런 이유로 방향마다 각기 다른 현판이 걸려 네 방향의 보탑 이름이 다 다르고 심주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셨다.
그 둘레에는 999개의 간절한 발원이 담긴 백자 원탑이 모셔져 있고 찰주는 999개의 석탑으로 장식해 통일대탑까지 1,000개의 탑이 완성되도록 했다.
보탑 1층 서방 대세지보살. 아미타여래. 관세음보사살
1층 남방 지장보살. 석가모니불. 미륵보살
1층 동방 월광보살. 약사유리광불.일광보살, 선정인을 하고 있는 약사불의 손에 약함이 있다. 금당에 들어서 삼배를 올리곤 수박을 찾아 사방불을 돌아가니 수박이 보인다.
중생의 고통을 없애준다는 동방 약사불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저 수박은 초파일에 올려둔 것으로 동지 날 팥죽과 함께 먹는다고 한다.
팥죽도 팥죽이지만 저 수박 한 조각 먹으려는 사람들로 동지 날 보탑사는 장사진을 이룬다고 한다. 반 년 이상을 저렇게 있어도 상하지 않는다니, 정말 신통하다.
수박은 사방 불 중에서도 약사불 앞에 놓여져 있다.
1층 북방 보현보살. 비로자나불. 문수보살
1층 법당 칠성탱
1층 법당 신중탤
1층 법당 소고
1층 법당 서방과 남방사이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다.
1층 법당을 통해 미륵전 윤장대로 오르는 계단이 있다. 계단은 살짝 가파르니 조심하고 올라가는 계단과 내려오는 계단은 반대쪽에 있다.
올라가면 보이는 소원 성취대로 2층 법보전 윤장대
2층 법보전은 윤장대를 중심으로 네 모퉁이 방향에 경전인 법화경을 모셨다. 법보전에는 축을 달아 두었지만 회전은 하지 않도록 만든 책장인 윤장대(輪藏臺)를 두고 팔만대장경 번역본을 안치했고,
총 9t의 돌판에 한글 법화경을 새겨 놓았다.
보련산 보탑사, 보배 연꽃 속에 보배 탑을 세웠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곳은 법화도량이다.
법화경 견보탑품을 보면, 석가모니 부처님이 법문하시는 장소에는 다보여래께서 그 말씀을 증명하고 찬탄키 위해 보탑이 솟아오르게 된다.
실제로 보탑법당 2층은 온통 법화경을 담은 윤장대와 암층 네 벽에는 세계 각국의 보탑 사진으로만 꾸며져 있었다.
겉보기는 3층이지만 각 층 사이에 2개의 숨겨진 층(암층)이 있는 것도 특징이다. 한옥에서 천장과 지붕 사이 공간에 다락을 만드는 것과 같은 이치다. 2층 암층으로 올라본다.
몇 계단 더 올라 2층 암층으로 가면 보탑사의 역사를 담아둔 보탑 사진이 전시되어 있다. 보탑 전시관
1~2층 사이 공간은 불상의 머리 위라는 점을 감안해 개방하지 않고 있지만, 2~3층 사이 암층은 전시실과 강연장으로 유용하게 사용한다. 겉에서 보이지 않아 암층이라 하지만 일반 가정집보다는 천장이 높아 전혀 불편함이 없다.
네 벽에는 세계 각국의 보탑 사진들이 전시돼 있다.
2층 암층에서 3층으로 올라간다.
3층 미륵전에는 장엄한 금동 보개 아래 미륵3존불이 봉안돼 있다.
3층 미륵전은 석가세존께서 열반에 드신 후 새로운 정법 시대를 여실 미래불인 미륵삼존불을 모신 법당이다.
2층 법보전과 3층 미륵전의 문을 열면 주위로 마루 난간을 설치해 탑돌이를 할 수 있도록 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지금은 통제가 되고 있고 평시에는 문을 닫아 놓은 점이 아쉽다.
3층에서 주위를 내려다보면 연꽃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는데 그 느낌을 알수 없어 많이 아쉽다..
2층과 3층에는 탑돌이를 할 수 있는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데 사람들이 많이 몰리면서 지금은 통제가 되고 있다. 3층에서 주위를 내려다보면 연꽃 가운데에 서 있는 느낌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진다.
보탑 법당 1층으로 내려와
금당 문을 나선다. 다시 연꽃송이 즈려 밟으며...
보탑 서방 극락보전앞에서 바라본 스님들의 수행공간 해행당과 시원한 약수가 맛있는 불유각. 지장전이 차례로 보인다...
법당에서 나와 3층 목탑 남방으로 돌며 눈을 돌려 뒤를 바라보니 법고각과 범종각이 보인다.
불교용품 판매점 미소실과 영산전도 보인다...
남방 대웅보전. 법보전. 미륵보전
동방 약사보전. 삼장전. 용화보전
동방 약사보전. 삼장전. 용화보전과 지장전
이곳을 전통 건축 전시장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를 알고 보면 건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언뜻 봐서 쉽게 알 수 없지만 보탑사 부속건물의 지붕은 다양한 각을 적용하고 있다.
“나에게 전통건축가로서의 긍지를 갖게 한 작품을 딱 하나만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보탑사라고 이야기할 것이다.” 1974년부터 수많은 한옥을 지어온 문화재 보수 기술자 김영일씨가 ‘한옥, 사람이 살고 세월이 머무는 곳’(청아출판사, 2014)에서 자신 있게 밝힌 대목이다.
동방 약사보전. 삼장전. 용화보전과 북방 적광보전. 보장전. 도솔타전 그리고 지장전
약수가 맛있는 불유각과 북방 적광보전. 보장전. 도솔타전과 서방 극락보전. 수다라전. 대자보전, 학의 날개 짓처럼 우아하면서도 화려한 단층은 고 한석성 단청명인의 작품이다.
보탑사 통일대탑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3층까지 올라갈 수 있게 만든 목탑이다. 우리시대 문화재급 한옥전문가들의 기술력이 응축된 작품이다.
1991년 공사를 시작해 3층 목탑을 짓는데 5년이 걸렸고 2014년에야 부속건물 공사까지 마쳤으니 완공까지 꼬박 23년이 걸렸다.
내력으로만 보면 천년 고찰이 수두룩한 한국불교건축사에 명함도 못 내밀 신생 사찰이지만 보탑사에는 신영훈 초대 한옥문화원원장, 단청명인 고 한석성, 도편수 고 조희환을 비롯해 도공, 와공, 석공, 야철장, 조각장 등 문화재급 한옥전문가들의 집념과 기술력이 응축돼 있다.
목탑을 한바퀴 탑돌이 하고 다시 서방 극락보전. 수다라전. 대자보전 앞이다.
불교용품점 미소실
영산전 앞에는 양초를 판매하고 있다.
영산전
이곳을 전통 건축 전시장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를 알고 보면 건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언뜻 봐서 쉽게 알 수 없지만 보탑사 부속건물의 지붕은 다양한 각을 적용하고 있다. 영산전은 8각이다.
보탑 극락보전 건너편이 영산전이다.
이 곳 영산전은 참 독특하다. 일렬로 나한상이 놓여 있지 않고, 마치 영산이며 천태산 바위 여기저기에 좌선하고 계신 듯 더욱 자연스럽다.
영산전 내부모습으로 500명의 나한들이 둘러앉아 부처님의 설법을 듣는 모습을 재현했고 다양한 형태와 크기의 500 나한상으로 장식되어 있다.
영산전의 500나한은 신도들이 기증한 것으로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인데, 방향도 맞추지 않아 그야말로 야단법석이다.
통일대탑의 위용에도 불구하고 보탑사는 근엄함과는 거리가 있다.
부속건물 주위는 웬만한 정원 못지않게 꽃과 나무로 어우러져 있고, 그것도 모자라 갖가지 야생화를 모은 대형 화분으로 통일대탑 주변을 장식했다.
은은하면서도 화려한 단청이 바닥에 떨어진 듯, 절간을 한 바퀴 돌고 나오면 봄날 꿈길처럼 아련하다.
보탑사 3층 검은 석탑
영산존 옆에는 검은색 벽돌로 조성한 삼층석탑이 보였다. 흙으로 구워 만든 벽돌로 쌓아올린 탑, 전탑이다.
기단부는 밝은 회색빛 화강암으로 3층으로 이루어진 탑신부는 흑색 전돌, 상륜부는 금속으로 금빛 개금된 보탑사 사경전탑...
보탑사는 화사함이 느껴지는 사찰이다. 그중에서도 다른 사찰에서는 볼 수 없는 검은 석탑과 상륜부의 황금색은 보탑사 어느 것보다도 쉽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다. 작은 동산 위에 있는 검은 3층 석탑을 보고 있자니, 사찰이 아닌 조각 공원에 온 듯한 느낌을 받는다.
보탑사가 3층 검은 석탑을 어떤 의미로 만들었는지 너무 궁금하다. 탑의 기단부터 일반적인 탑의 모습과는 다른 형태를 가지고 있어, 보탑사가 기존의 불교를 이어가면서도 새로운 것을 도입하고 변화시키려는 느낌을 받는다. 가람배치의 축선에 떨어져서 석탑이 있다. 기단은 화강암, 탑신은 흑색 전돌, 상륜부는 금속으로 되어 있다.
해행당은 스님들의 요사채로 사용되는 건물로 앞에는 작은 연못에 부처님이 연못 중앙에 계신다.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아담한 처소 앞에도 자잘한 꽃들이 텃밭을 채우고 있다.
보탑사라는 아름다운 정원에 심취해 있다가 이곳이 예전 고려시대 사찰이었음을 보여주는 3층 석탑을 봤다. 웅장하지는 않지만, 오랜 세월 이 자리에서 부처님이 모셔지고 사라지는 과정을 묵묵히 지켜봤음을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기저기 닳고 떨어져 나간 만큼 3층 석탑이 오랜 시간 이 자리에 있었음을 알게 한다.
3층 목탑 뒤편으로 조경이 잘 되어 있어서 산책하기에 좋았다. 보련산 깊은 곳에서 뿜어져 나오는 시원하고 맛있는 약수가 있는 지붕(수각)이 원형인 불유각에서 시원한 약수도 한 모금 마시고 해행당과 불유각 좌측 소나무 너머로
진천 연곡리 석비(보물제 404호)를 만나러 간다. 여름 날씨가 변덕을 부린다. 그렇게 쏟아지던 비가 잠시 개이고 반가운 햇살이 보인다.
보탑사 한쪽에 있는 보호각에는 비문 없는 백비가 있다.
높이 3.6m로 고려시대 초기에 조성된 석비인데 문화재적 가치가 높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비문이 원래 없는 것인지 닳아진 것인지 알 길은 없으나 비문이 없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더 많은 상상과 호기심의 나래를 펼치게 만든다.
거북받침 위에 비신을 세우고 비머리인 이수를 얹은 일반형 석비로 비문이 없어 일명 백비(白碑)라고 불린다.
받침돌 조각인 거북이의 미소에 나도 따라 미소 지어본다.
거북모양의 받침돌은 얼굴 면이 손상되어 말머리같이 되었으며 머리와 앞 발톱이 파손되었다.
거북 모양의 받침대에 비 머리 이수에는 아홉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물려고 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조각하였다.
거북모양 받침돌의 머리 형태와 비의 규모에 비해 얇은 몸, 옆으로 긴 네모꼴의 이수 형태 등 고려 초기 양식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건립 연대나 양식에 있어 월광사 원랑선사비와 비견되는 작품이다.
등 무늬는 정교하게 조각되어 단아한 느낌을 주고 비몸을 받치는 받침 부분의 연꽃무늬는 잎이 작으면서도 양감이 있어 아름다운 느낌을 준다.
연곡리 석비(보물제 404호)를 만나고 나니 헐 ~ 다시 쏟아지는 비.... 불유각 앞에서 바라본 보탑사 전경이다.
무엇보다도 온 천지에 꽃들이 가득하다. 봄. 여름과 가을에도 쉬지 않고 피어나는 꽃들을 볼 수 있는 절이 보탑사다. 목탑 주변은 경계석이나 담이 없고 야생화를 가득 담은 대형 화분들이 풋풋하게 자리 잡고 있다.
보탑사 지장전은 고구려 장수왕릉(장수총)을 방하여 재현해서 만들었다고 한다. 뒷부분이 땅 속에 묻혀 있는 반지하 구조이다.
보탑사 지장전 업경대는 지옥에 있는 염라대왕이 중생의 죄를 비추어 보는 거울로 금속이나 나무로 제작되었다.
지장전에 이런 예쁜 쪽문이
북방 적광보전. 보장전. 도솔타전
보련산 보탑사 3층목탑 안 북쪽 비로자나불과 지장전 지장보살님이 서로를 바라보고 계신다.
보탑사는 지장전· 영산전· 산신각 등을 건립하고 2003년 불사를 마쳤다고 한다.
지장전 옆 고요한 분위기의 보탑사 경내 돌계단을 오르면 산신각 가는 길이다...
산신각은 너와지붕을 얹은 귀틀집 형식으로 지었다는데 내가 본 산신각 중 제일 특이하고 예뻤다.
산신각 내부에는 인자한 할아버지 모습의 산신님과 옆에 호랑이가 모셔져 있다.
소나무 그늘 아래 미륵보살 반가사유상
고구려 시대에 제작되어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반가사유상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속에 둘러싸인 반가사유상은 또 다른 의미와 아름다움을 전해준다.
연꽃잎을 우산처럼 쓰고 있는 모습으로 의자에 걸터앉아 왼쪽 다리는 내리고, 그 무릎 위에 오른쪽 다리를 얹은 자세와 손끝을 뺨에 살짝 대어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을 표현한 보살상이다.
삼소실
보탑사는 아름다운 정원 또한 유명하다. 다양한 꽃과 나무가 정성스럽게 가꾸어져 있으며, 특히 봄에는 철쭉과 모과꽃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경치를 선사하지만 지금은 나리꽃과 해바라기. 이름모를 야생화가 만발한다.
보탑사 주지스님의 처소인 삼소실 지붕엔 너와를 얹었다.
보탑사는 진천의 산 속에 위치하여 조용하고 평화로운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도시의 소음을 잠시 잊고 마음의 안정을 찾기에 좋은 곳이다.
도량 곳곳이 참 정갈하단 표현이 맞을 거 같다. 굳이 비구니 스님들의 도량이라 설명하지 않아도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반가사유상 앞에서 바라본 보탑과 영산전. 불유각. 지장전이 차례로 보인다.
반가사유상 앞에서 바라본 적조전과 보탑
적조전
적조전 와불 열반 적정상으로 적조전의 와불은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가 열반에 들기 직전의 모습을 표현한 열반상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부처가 열반한 쿠시나가라의 풍경을 벽화로 그려 놓아 사실성을 강조했고 벽에는 인도의 벌판을 표현해 놓았다.
열반상은 누워계신 부처님으로 와상(와불) 이라고도 한다.
격조전 입구의 석불과 와불상의 평온한 표정은 꽃과 자연 속에서 제 몫을 보여주니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진다.
곽씨쌍부
부처님이 열반하신 후, 입관하였다.
부처님의 제자인 가섭존자가 다른 곳에 갔다가 입관 후에 돌아와서 예배드리니 부처님이 관 밖으로 발을 내보였다는 의미의 곽씨쌍부. 부처님의 두 발의 조각이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극락조를 탄 동자승이 하늘을 나는 모습, 아름다운 여인이 풀피리를 부는 모습 뿐만 아니라 용 조각까지 화려하면서도 아름답고 특색있게 열반상 천장 부분에 조각되어 있다.
적조전 좌측 벽화
적조전 우측 벽화
적조전 고운 문살
적조전 앞에 부처님 발자국이 새겨져 있다. 보탑사 불족석으로 석가모니의 발자국을 돌에 새긴 것이다.
부처의 열반상을 모신 적조전 앞에는 대형 불족석(佛足石)이 눈길을 잡는게 발자국 안에 물이 고이면 안에 새겨 놓은 물고기가 헤엄치는 듯한 착시를 일으킨다. 다양한 모습 속에 질서와 조화, 위트까지 담으려는 건축가의 의도가 곳곳에 배어있다.
만뢰산(혹은 보련산, 612m) 자락에서 흘러내린 계곡은 위압적이지 않고 아늑함이 느껴진다. 올망졸망한 산자락에 둘러싸인 지세가 꼭 한 겹 두 겹 피어나는 연꽃잎을 닮았다. 저수지를 지나 약 1km 정도 좁은 도로를 오르면 길이 끝나고, 이 산골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웅장한 건물을 만난다. 대부분 산사는 숲과 나무에 가려져서 있는 듯 없는 듯 하지만 42.73m, 아파트 14층 높이의 보탑사 3층 목조건물은 단박에 눈길을 사로잡는다. 공식명칭은 ‘보련산 보탑사 통일대탑’, 신라의 황룡사 9층 목탑이 삼국통일을 기원하듯 남북통일의 염원을 담은 이름이다.
1974년부터 수많은 한옥을 지어온 문화재 보수 기술자 김영일씨의 주장에 따르면 탑이 세워진 곳은 연꽃의 한 가운데 꽃술에 해당하는 지점이다.
타임캡슐이 보관된 통일대탑 상륜부에는 동자승 4명이 천상에서 줄을 매고 목탑으로 내려오는 장면을 연출했다.
통일대탑에는 현재로선 확인 불가능한 비밀도 숨어있다.
3층 미륵전 위 불탑의 꼭대기 부분에 능엄경· 법화경 등 불교 경전과 사적기(寺跡記)를 보관한 타임캡슐을 넣었는데, 불기 3000년인 서기 2456년에 공개할 예정이다.
432년 후 보탑사가 어떤 모습일지, 후대에 어떤 평가를 받을지 자못 궁금하다.
공양간
법고각과 범종각
이곳을 전통 건축 전시장으로 만들고 싶었다는 그의 의도를 알고 보면 건물 하나하나가 예사롭지 않다. 언뜻 봐서 쉽게 알 수 없지만 보탑사 부속건물의 지붕은 다양한 각을 적용하고 있다. 범종각은 7각, 법고각은 9각 지붕이다.
법고각과 범종각을 내려와
천왕문을 나선다.
충북 진천읍 아홉 봉우리가 연꽃잎처럼 감싼 곳이라는 연곡리에 위치한 보탑사는 유난히 연꽃과 인연이 많은 도량이었다.
연곡리의 연, 보련산의 연, 그리고 절 이름을 따온 묘법연화경 ‘견보탑품’의 연, 우리 마음에 피운 연까지 합하면 보탑사에서 우리는 셀 수 없는 연을 만나고 피우고 품었다.
그리고 400년이 넘는 나무도 올려다본다...
나에게 보탑사가 오랫동안 인상에 남아있던 이유는 아름다운 정원 같은 분위기였다. 보탑사라는 사찰이라는 분위기보다는 꽃이 만발한 정원이었다.
만뢰산이 보탑사를 품에 안고 있는, 세상 어느 곳보다도 넓은 면적을 가진 아름다운 정원이었다. 보탑사만이 아니라 만뢰산을 포함하는 큰 정원은 싱그러움으로 내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행복을 아낌없이 받을 수 있게 했다.
사찰의 정취가 느껴지면서 다양한 조각품을 감상하고 고택을 산책하는 듯한 마음으로 마음의 편안함과 여유로움을 안겨주는 평화로운 사찰이었다.
진천 보탑사는 사찰이면서도 아름다운 정원 혹은 고즈넉한 고택을 방문한 듯한 느낌이었다.
충분하지 않은 시간에 면밀히 다 둘러보기엔 부족했지만 사찰 여행으로의 진천 보련산 보탑사는 최고였다.
진천 보련산 보탑사에 정원은 간결하면서도 그 계절에 맞는 꽃들이 방긋 눈맞춤 해 주는 곳이었다.
산속의 정원이 바로 여기 있었다. 여느 사찰들처럼 규모가 웅장하거나 근엄한 모습이 아니다. 평온하고 아늑하다. 불자가 아니어도 편안히 꽃 속에 머물다 가려는 여행자들이 조용히 오간다. 온통 꽃과 나무들로 어우러진 경내를 걷다 보면 사찰이 아니라 어느 조용한 고택에 온 듯도 하다.
봄빛 화사한 초봄부터 사계절 꽃 피우는 보탑사, 그 사찰 뜰을 거닐며 소원도 빌어보고 싶은 곳, 보련산 자락 깊은 산속에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은 보탑사는 사계절 언제든 나서볼 만한 곳이다. 요즘 장마철로 오늘은 비가와서 우리팀 외에는 찾는이 없어 더 조용하고 좋았던 보탑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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