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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남화의 성지 진도 운림산방(전남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여행방/섬여행 2024. 7. 17. 21:52
전통남화의 성지 진도 운림산방 (국가지정명승 제80호)
2024. 7. 17.
2024. 7. 11 ~ 14 (3박 4일). 가족여행으로 함께한 진도 여행길이다...
3박 4일 일정으로 진도 쏠비치 리조트에서 편히 쉬며 진도를 둘러 볼 계획이다.
2024. 7. 12. 진도여행 둘째 날 ~
쏠비치 호텔 & 리조트 진도를 출발해서 오늘은 고려 삼별초의 배중손(裵仲孫)장군이 용장성을 쌓을 때 조성한 것으로 전해 오는 삼존불이 모셔진 용장사와 삼별초 옛 궁궐터 용장성, 쌍계사와 쌍계사 상수림, 전통남화의 성지 운림산방, 고려 후기 삼벌초를 이끌고 대몽항쟁에 나선 왕온의 묘, 진짜 옛날에 와 있는 듯한 거친 성곽 진도 남도진성, 윤고산 사당 등 진도의 여행지를 둘러보기로 한다....
2024. 7. 12. 진도여행 둘째 날 세번째 여행지는 전통남화의 성지로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을 보낸 화실로,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 운림산방으로 간다....
쌍계사에서 쌍계사와 운림산방이 함께 사용하는 주차장으로 돌아와서
바로 붙은 남종화의 본향 운림산방으로 향한다...
몽연각 (판매장 및 체험장)
매표소
입장료는 성인은 2,000원 청소년은 1,000 어린이는 800원이다.
휴관일 매주 월요일
문의 1588-9601 / 061-540-6286
관리사무소
먼저 소치1. 2관 부터 보기로 한다.
소치 허련의 3대손인 남농 허건이 1982년 할아버지의 생가를 복원한 곳이다. 한국 남종화의 성지이자, 호남 화맥의 뿌리로 불린다.
진도 여행의 이유가 되기에 충분한 이야기가 있는 곳이다.
운림산방은 우리나라 남종화의 대가로 꼽히는 소치 허련의 삶과 작품, 그리고 그로부터 시작되어 누대로 이어지고 있는 화맥을 보며 놀라게 되는 곳이기도 하다.
생소한 단어 두 개가 등장했다.
‘남종화’와 ‘화맥’이 그것이다.
남종화란 조선시대 때 전문화가(화원)가 아닌 사대부 문인들이 만들어 간 화풍을 말한다.
화맥은 화풍의 전승을 말하는데, 남종화의 대가인 소치 허련에서 시작된 그림 가문이 오늘날 5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전시장은 소치1관과 2관 두 곳이 있는데 소치와 후손들의 작품, 가문의 이야기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소치1관(소치기념관)
소치2관 (소치 후손 작품관)
소치2관 (소치 후손 작품관) 부터 가본다.
소치2관(소치후손 작품관)
제2기념관은 소치에서 시작해 5대까지 이어진 허씨 일가의 화맥을 한데 모은 곳이다. 전 세계적으로도 유일한 장소가 아닐까 싶다.
특히 제2기념관엔 미디어 아트를 구현한 공간이 크게 마련돼 있어 눈길을 끌었다.
소치 5대 일가가 그린 모란, 매화, 대나무 등을 디지털 이미지로 화려하게 재현한 작품이다. 화면에 손을 대면 꽃잎이 봄비처럼 공중으로 우수수 흩날린다.
5대까지 이어온 화맥
소치 허련은 남농뿐 아니라, 2대손인 선미산 허은, 미산 허형, 3대손인 남동 허건과 임인 허림, 4대손인 임전 허문, 5대손인 동원 허은, 소정 허청규, 허진, 허재, 허준 등 대를 잇는 그림 가문의 화맥을 이루고 있다.
2대 미산 허형 (1862~1938)
매화
비천
계산양우
고사귀로. 추강조어. 설중귀사. ?
파초. 소나무
포도
3대 남농 허건 (1908~1987)
남종화는 몰라도 남농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남농은 허련의 3대손으로 이름은 ‘건’이다. 남농은 1908년에 태어나 1987년에 죽었는데, 그는 조선의 남종화를 현대에 이어준 대가로 인정받음은 물론 오늘의 운림산방을 복원하는 데에도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다.
3대 임인 허림 (1917~1942)
4대 임전 허문 (1941~)
5대 허진 (1962 ~ )
5대 소정 허청규(1962 ~)
5대 허재 (1973~)
5대 허준 (1976 ~)
5대 동원 허은 (1946~)
2대 미산 허형, 3대 남농 허건, 임인 허림, 현존 작가인 4대 임전 허문과 5대 오당 허진 등의 한국화 수작을 신축 기념관에 모아놨다. 정통 조선 남종화에서부터 5대 허씨 화원의 현대 작품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감상했다.
소치2관(소치후손 작품관)을 보고 소치1관(소치기념관)으로 이동한다.
소치1관(소치기념관)
소치1관(소치기념관)인 기존 기념관은 소치의 시·서·화만 오롯이 감상할 수 있도록 재단장했다.
5대까지 이어온 화맥
소치 허련은 남농뿐 아니라, 2대손인 선미산 허은, 미산 허형, 3대손인 남동 허건과 임인 허림, 4대손인 임전 허문, 5대손인 동원 허은, 소정 허청규, 허진, 허재, 허준 등 대를 잇는 그림 가문의 화맥을 이루고 있다.
영상 보면서 담은
운림산방은 소치 허련이 벼슬을 내려놓고 고향인 진도로 내려와 그림과 글쓰기를 하며 자신의 삶을 다듬었던 곳이다. 그게 1856년의 일이었는데, 당시에는 소허암 또는 운림각으로 불리기도 했다.
진도 쌍정리에서 1808년에 태어난 허련은 청년기에 접어들면서 해남으로 건너가 대흥사 초의선사로부터 학문을 배우는 한편 스스로 인격 수양에 힘썼다고 한다. 또한 윤선도, 윤두서 등 조선시대 명문 사대부였던 해남 윤씨의 녹우당에서 화첩을 보며 그림과 화풍을 익혔고 초의선사의 추천을 받아 추사 김정희의 제자가 되어 본격적인 서화 공부를 하게 되었다. 소치라는 아호 역시 추사가 내려 주었다.
기록에 의하면 소치 허련은 김정희에게 사사한 후 조선 24대 왕 헌종의 총애를 받았다고 한다.
헌종이 소치의 그림과 학문, 그리고 인간 됨됨이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자신을 위한 그림 작업을 하겠다는 소치에게 자신의 벼루에 먹을 갈아 그리라 허락했고, 소치는 감히 임금의 벼루에 먹을 직접 갈아 ‘화중지왕’이라는 작품명의 ‘모란꽃’을 바쳤다고 한다. 꽃 중의 꽃, 꽃의 대왕으로 불리던 모란을 그린 것은 임금에 대한 존경과 충성심의 발로였던 것으로 보인다. 왕의 사랑을 듬뿍 받던 소치 허련은 그림뿐 아니라 왕실의 고서화를 해설하고 평가할 정도로 당대 최고의 지식인 화가로 인정받았다.
소치 허련은 선면산수도, 김정희 초상화, 묵모란, 파초 등의 대표작 외에도 인물, 노송, 노매, 모란, 괴석 등을 그린 작품들도 많이 남겼다. 그는 갈필 즉, 마른 붓질로 산수화를 즐겨 그렸는데, 그의 스승 김정희의 작품에서는 세한도를 제외하고는 갈필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을 빗대어 생각해 보면, 갈필은 소치 허련의 독자적 화풍이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소치 허련은 추사 김정희를 비롯해 다산 정약용의 제자인 초의 선사와 동시대를 살았던 인물이다.
추사가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를 따를 자가 없다”고 극찬했지만, 진도 변방의 몰락한 명문가 출신인 소치는 끊임없이 중앙 화단에 입성하려고 애썼다.
몇 안 되는 소치 연구자들에 따르면 “허련이 당시 주요 유배지의 하나인 진도에서 태어났다는 사실은 그의 인격· 의식 형성은 물론 인생 전반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김정희와 같은 대학자의 높은 평가는 한없는 자부심이 되었고…
중앙 화단에의 집착은 그의 주유 경로가 오직 서울과 그의 고향인 진도, 한때 그가 살았던 전주와 서울을 왕래하는 것만으로도 극명히 드러난다”.
기록에 의하면 진도의 명주로 꼽히는 홍주는 허련 집안의 가주였다고 한다. 연산군 시절 폐비 윤씨 사건을 둘러싸고 사림에 대한 대대적인 박해를 피해 허씨 가문이 진도로 이주하면서 지역주로 정착했다는 설(說)이 전해진다.
운림산방에는 소치 허련과 후손들의 작품들도 전시되어 있는데, 세대의 흐름이 엿보이는 작풍을 엿볼 수 있었다.
소치1관(소치기념관)에서 이동하며 바라본 소치화실과 소치고택
연지
집 앞에는 오각형의 연못을 만든 뒤, 천원지방(天圓地方)의 원리대로 못 한가운데에 작은 섬을 두고 그 위에 배롱나무를 심었다.
진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해발 485m의 첨찰산 봉우리를 차경 삼아 살포시 앉아 있는 운림산방은 일지매(一枝梅)를 비롯해 백일홍, 목련 같은 봄꽃을 감상하기에 제격이다.
운림산방 앞에 있는 연못은 한 면이 35m 가량되며, 그 중심에는 자연석으로 쌓아 만든 둥근 섬이 있고 여기에는 소치가 심었다는 백일홍 한 그루가 있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을 보낸 화실로,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이다.
첨찰산 첩첩산중에 아침.저녁으로 피어 오르는 안개가 구름숲을 이룬다는 운림산방. 산방 마루에 걸터 앉아 운림지를 내려다본다.
운림산방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선생(1808~1893)이 말년에 거처하며 여생을 보냈던 화실이다.
이곳에는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며 초가집과 소치기념관, 진도역사관 등이 있다. 영화 “스캔들 조선남여상열지사”의 배경이 되기도 하여 더욱 유명하다.
이곳에서 소치(小痴)는 미산(米山) 허형을 낳았고 미산이 이곳에서 그림을 그렸으며 의재 허백련이 미산에게 처음으로 그림을 익힌 곳이기도 하다. 이와같이 유서깊은 운림산방은 소치(小痴) - 미산(米山) - 남농(南農) - 임전(林田) 등 5대에 걸쳐 전통 남화를 이어준 한국 남화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소치화실에서 바라본 소치1관 (소치기념관)
소치 고택
소치 허련의 3대손인 남농 허건은 조부가 말년의 삶을 보낸 초가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그 앞에 정면 5칸짜리 맞배지붕의 정갈한 한옥을 지어 자신이 기거했다.
소치 영정실 (운림사)
양천 허씨 진도중파 문중제각
운림산방과 연결되어 쌍계사 상록수림
운림산방과 쌍계사 샛길
운림산방, 쌍계사 상록수림이 한데 어우러진 이곳을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다.
운림산방 바로 위 첨찰산 쌍계사 상록수림은 잎 넓은 나무들이 울창한 우리나라에서도 몇 안 되는 숲길이다.
소치 허공 기적비
운림산방의 결정적 매력은 고목이 되어버린 배롱나무, 팽나무 등 거목들과 아름다운 정원이지만 소치가 살았다는 초가, 화실, 소치의 영정을 모신 운림사 등 아름다운 건축물들도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매표소를 지나
남도 전통 미술관 가는 길 ~
남도 전통 미술관
조선시대 남화의 대가였던 소치 허련 선생이 말년을 보낸 화실로, 연못과 정원이 어우러진 아름다운 곳 운림산방을 충분히 보고 주차장으로 나와 다음 여행지로 고려 후기 삼별초를 이끌고 대몽항쟁에 나섰던 왕온의 묘로 향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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