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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화8경 중 전통사찰인 강화 석모도 보문사 (인천 강화군 삼산면 삼산남로828번길 44, 삼산면 매음리 629)
    사찰여행/인천 2024. 6. 8. 08:36

    강화8경 중  전통사찰인  인천 강화  석모도 보문사

     

      

    2024.   6.   8. 

     

     

    2024.  6.  5 ~ 6(1박 2일).  개배 테마여행에서 좋은 사람과 함께한 인천 강화도 여행길이다...

    6.  5일  1일 일정은 포항에서 7시 출발  휴게소 몇군데 들러  차량물결을 헤집고 강화도 제석봉 평화전망대 아래 남북 1.8평화센터에 13:15에 도착하여 점심식사 후 강화도 제석봉 평화전망대,  보문사,  전등사 여행 후 외포항에서 저녁 식사 후 편히 쉬는 일정이고

     

    6.  6일 2일 일정은  외포항에서 아침 산책 후 아침 식사 하고  강화도 본섬 옆 교동도로 이동하여  망향대,  화개정원,  대룡시장을 둘러보는  강화도 본섬과 강화 교동도를 둘러보는 1박 2일  일정이다.

     

    6월  5일 1일  오늘 첫 여행지  남한에서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북한 주민의 생활상을 육안으로 볼 수 있어 이북 실향민과 관광객이 많이 찾는 강화도의 명소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를 나와  두번째 여행지 석모도 보문사로 향해본다..... 

     

     

     

     

     

    강화 본섬에서 석모대교를 타고 석모도로 들어선다...

     

     

     

     

    이곳을 예전에는 배를 타고 차량을 배에 싣고 다니던 곳인데  이렇게 편리하게 석모대교가 놓여져  차창가로 바다를 바라보니  참으로 감개무량이다...

     

     

     

     

     

     

     

    석모도 입구에 들어서서

     

     

     

     

    석모도 만남의 광장도 지나  보문사를 향한다...

     

     

     

     

     보문사를 향한다...

     

     

     

    해변도로를 한참 달리다보면

     

     

     

     

     

     

     

    석모대교를 건너 차량으로 10분간 들어가면  차량에서 낙가산 보문사 눈썹바위가 보인다.

     

     

     

     

    석모대교를 건너 차량으로 15분간 들어가면 보문사 주차장 도착이다.  8년 전에 비대 주차장도 많이 넓혀져 있었다.

     

     

     

     

    그때도 보문사를 들어서며  어수선한 상인들의 행렬이 눈살을 찌뿌렸었는데  지금은 이렇게 잘 정비되어  질서있어 보기 좋았다...

     

     

     

     

    입구 200년된 보문사 관음송 소나무가 나그네를 맞아준다...

     

     

     

     

     

     

     

     

     

     

    잘 정비된 보문사 입구를 들어서면 매표소와 일주문이 저만치 보인다...

     

     

     

     

    보문사의 일주문(一柱門)은 마을이 있는 절 입구 주차장에서 민가와 상가들을 지나서 100여 m를 올라오면 만나실 수 있다.

    일반적인 건축물의 형태는 네 개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지붕을 올리는 것인데, 일주문은 기둥을 일렬로 배치하고 그 위에 지붕을 얹는 독특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일주문이라 불린다.

     

     

     

     

     

     

     

    종단 직영 사찰 보문사의 입장료는 어른 2,000원  중고생 1,500  초등학생 1000원이며 개방시간 : 09:00∼18:00 이다...

    보통의 보물. 국보를 보유한  사찰은  입장료를 국가에서 지원하지만 지방문화재가 있는 사찰은 국가에서 지원하지 않아 문화재 보수 비용을 받고 있다.   이곳 보문사도 인천광역시 문화재라 입장료를 징수하고 있었다...

     

     

     

     

     

     

     

    일주문은 문 밖의 사바세계와 문 안의 부처님의 세계를 나누는 상징 적인 의미가 있다.   또한 일주문을 들어서면서 일심(一心)의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성불하라는 큰 뜻이 있다.

    보문사 일주문은 칸수는 한 칸이고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일주문은 목조건물로이다.

     

     

     

     

    현판에 쓰여진 `낙가산 보문사'라는 글씨는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 선생님의 작품이다.  일주문 현판 글씨는 2007년  작고하고  지금은  계시지 않는 여초 김응현님이 80세에 쓴 작품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위로 약 300m쯤 올라가면 보문사가 나온다. 

     

     

     

     

    오르막 길이다.   이마에 땀이 맺힌다.  올라가는 길에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정말 상쾌한 느낌을 준다.

     

     

     

     

    눈썹바위가 소나무 사이로 언듯 언듯 스쳐 지나간다...

     

     

     

     

     

     

     

    예전에 없던 새로운 전각이 자리하고 있다.

     

     

     

     

     

     

     

    찻집과 불교 용품점을 지나

     

     

     

     

     

     

     

    400년된 은행나무 보호수도 만난다...

     

     

     

     

     

     

     

    8년전에 왔을때는 감로다원 자리였었는데  용이 승천한다.   용왕전을 새로이 불사한듯 ~

     

     

     

     

     

     

     

     

     

     

    석모대교를 건너 차량으로 15분간 들어가면 낙가산 서쪽바다가 굽어보이는 곳에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다.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 부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세우고 보문사라 하였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서 절을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 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낚아 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그 때로부터 이 석굴에 기도를 하면 기적이 이루어져 많은 신도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창건 당시 관세음보살이 상주한다는 산의 이름을 따서 낙가산이라고 하고, 관세음보살의 원력이 광대무변함을 상징하여 보문사라 이름 짓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산과 절의 이름이 모두 관세음보살을 상징하고 있어 보문사가 관음도량임은 창건의 역사부터 시작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후 보문사를 창건한지 14년 만인 649년 석가모니 부처님과 미륵보살 등 스물 두 분의 석상을 바다에서 건져 올려 석굴 법당에 모신 나한전 조성 일화는 유명하며 기도의 영험을 많이 보여 신통굴로 불리기도 한다. 나한전의 역사는 보문사의 역사와 함께 해 왔다고 보아도 틀리지 않는다.

     

    인천 강화도 서쪽의 석모도에 자리하고는 보문사는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이다.

     

     

     

     

     법음루의 목어, 법고, 운판

     

     

     

     

     

     

     

    범종각.  윤장대.  범음루가 나란히 있다.

     

     

     

     

    윤장대는 책장의 일종으로 경전을 넣고 중심에 기둥을 세우고 기둥에 의지하여 원형 또는 다각형의 나무장을 올린 뒤 여기에 경전을 넣고 손잡이로 돌릴 수 있도록 만든다.

    불도를 믿으려 하나 글을 알지 못하거나 불경을 읽을 겨를이 없는 사람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한 번 돌리면 경전을 한번 읽은 것과 공덕이 같다고 한다.

    경전을 넣고 돌리면서 소원을 빌거나 소원을 써서 윤장대 안에 넣고 돌리는 등 소원을 빌 때 사용한다.

     

     

     

     

     

     

     

    `범종각'이라는 현판 글씨는 강화가 고향인 서예가 박세림 (朴世霖, 1924∼1975)의 작품이다.

     

     

     

     

     

     

     

    오층석탑  앞에 위치하고 있는 범종각은 1975년에 지어졌으며, 제작당시 국내 최대의 범종이 봉안되어 있다. 

    이 범종은 1975년 당시 주지인 정수(正秀)스님의 발원으로 조성되었는데 높이 215cm, 밑지름 140cm, 무게 5t이나 된다.   이 범종은 1975년에 고 육영수(陸英修) 여사가 화주하여 모셔진 것으로 유명세를 알렸으며, 조성 당시 국내 최대 규모로 나라 안팎에 화제가 되기도 했다.

     

    범종의 기본 형태는 국보 제36호인 오대산 상원사(上院寺) 동종과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을 조화시켜 도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문사의 중심 전각인 극락보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에 내부 60평 정도의 웅장한 규모로 보문사를 찾는 사람을 반기고 있다.

     

     

     

     

     

     

     

     

     

     

     

     

    상단에는 아미타부처님과 좌우 협시로 대세지보살, 관세음보살님이 모셔져 있고 중단에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다. 또한 상단 뒤편으로 총 3,000분의 옥 부처님이 모셔져 있어 법당에 장엄함을 더 하고 있다.

     

    삼존불 위로는 아름다운 닷집이 조성되어 있으며 천정의 좌우에 각 하나씩 용상(龍像)이 지나다니고, 또 다른 한 쌍의 용상이 전각의 안에서 밖으로 머리를 내미는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극락보전의 멋스러운 처마지붕

     

     

     

     

    전각의 출입문은 채색된 꽃무늬의 문살로 단순한 가운데 소박한 멋을 더하고 있다.

     

     

     

     

     

     

     

    보문사가 한국 33 관음성지 중에서 제 1호 라고 한다.

     

     

     

     

    무설재중전(無說在衆殿)   앞쪽

    극락보전의 맞은편에 현재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는 무설재중전이 있다. 무설재중전은 1995년에 지어진 총 4층 건물로 1층에 종무소가 있다. 종무소에서는 기도 접수 및 인등, 연등 접수 등의 업무를 하고 있으며 사찰의 일정이나 신행상담 등에 관한 내용을 안내해 드리고 있다.

     

    일주문에서  올라 갈 때 보면 4층인데 앞에서는 1층이다. 1층은 종무소, 지하는 공양간과 신도 숙소 세면장등이 있다.  

    종무소 좌측 계단으로 한 층을 내려가면 공양간을 만나게 된다. 공양간은 기존에 노후화 된 시설들을 2011년에 정비하여 내부의 식탁과 공양구를 모두 교체하고 내부 공사를 새로이 하는 등 방문하는 기도 객들의 편의를 위해 세심하게 배려하였다. 또한 불사를 통하여 조왕탱화를 새로이 모시고 뜻있는 신도님이 1년에 걸쳐 정성스럽게 자수를 놓은 해수관세음보살님을 모시는 등 쾌적하고 위생적인 환경에서 공양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마애불로 올라가는 계단길이우측 초입의 스님의 수행처

     

     

     

     

    극락보전의 왼쪽 옆에 마애불로 올라가는 계단길이 있다.   보문사 극락보전에서 에를 드린 후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로 향한다.

     

     

     

     

    마애관세음보살좌상은 대웅전 옆 계단을 따라 10여분을 올라가면 낙가산 중턱의 눈썹바위 아래에 새겨 모셔져 있다.   꽤나 가파른 길이라 계단은 지그재그 식으로 놓여 있다.

     

     

     

     

     

     

     

    중간쯤 오르다보면 계단 불사를 기념하는 `관음성전 계단불사 공덕비'가 중간에 놓여 있다.   공덕비를 지나  마애불로 올라간다.

     

     

     

     

    소원이 이루어지는 길 419계단을 올라간다.

     

     

     

     

     

     

     

    마애불로 오르는 길이 힘들어질 즈음  예전의 용왕단에 도착하게 된다.   중간쯤에 서해바다의 탁 트인 시야가 한눈에 들어오는 계단 옆에 용왕단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 입구로 옮기고 이곳은 용 조형물만 자리하고 있다.

     

     

     

     

     

     

     

    많은 분들이 마애관세음 보살님을 친견하는 걸음에 들러 멋진 서해 바다  사진을 찍는 명소가 되어가고 있다.

     

     

     

     

    삼산면 석모도 낙가산 중턱, 눈썹바위 아래 서서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가파른 돌계단 때문만은 아니다.   섬과 바다와 봄볕이 자아낸 황홀경에 울컥, 목이 막히는 기분이라서 이다. 한동안 발을 떼지 못한 채로 반짝이는 서해 바다를 굽어보았다.   가까이는 소송도와 대성도, 멀리는 주문도가 아물거렸다.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란 아마도 이런 것일 테다.

     

     

     

     

    눈썹바위아래 마애관세음보살(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을 둘러싼 황금 소원등을 올려다 본다.

     

     

     

     

     

     

     

     

    마애관세음 보살님을 친견하는 걸음에 만나는 또다른 서해바다 전망대

     

     

     

     

     

     

     

    마애관세음보살 바로 아래에서 기도접수하는 전각 앞에도 전망이 좋은 곳이다.

     

     

     

     

     

     

     

    마애관세음보살 바로 아래에서 기도접수하는 전각 앞에 바라본 보문사 전경

     

     

     

     

     

     

    총 419개에 달하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제법 다리에 힘도 들고 허리가 뻣뻣해지기도 하다. 이럴 때 ‘관세음보살‘을 마음속으로 나지막이 외우면서 올라가노라면 어느새 관음보살님 앞에 서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8년 세월이 지나 다시 마애관세음보살(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을 친견한다...

     

     

     

     

     

     

     

    마애관세음보살(인천광역시유형문화재 제29호)

    보문사가 관음 도량의 성지임을 가장 잘 상징하는 성보 문화재로서,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는 곳이다.

     

    이 마애관음좌상은 1928년 배선주 주지스님이 보문사가 관음 성지임을 나타내기 위하여 금강산 표훈사(表訓寺)의 이화응(李華應) 스님과 더불어 이곳에 새긴 것으로, 크기는 높이 920cm, 너비 330cm에 달하는 거상(巨像)이다. 크기를 척수로 환산하면 높이 32척에 너비가 11척이 되는데, 이것은 곧 관음보살의 32응신(應身)과 11면(面)을 상징하는 것이다.

     

     

     

     

    관세음보살님은 눈썹바위 아래의 바위 면에 새겨 모셨는데, 눈썹바위가 마치 지붕처럼 돌출되어 있어 비바람으로 부터 관음부처님을 가려 주고 있는 형태다.   

    관음좌상의 모습을 보면,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두 손을 모아 정성스레 정병(淨甁)을 받쳐 들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계신다.  얼굴에 비해 다소 크게 느껴지는 코, 입, 귀는 투박하기는 하지만 서민적이라 보는 사람의 마음도 푸근해지며 정감이 간다.  또 부처님 얼굴에 빠짐없이 있기 마련인 백호(白毫)도 이마 사이에 솟아 있으며,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불의(佛衣)는 양쪽 어깨를 모두 감싸도록 입는 통견(通肩)이 무릎 아래로 흘러내리고 있다.

     

     

     

     

    마애관세음보살은 비록 오래전에 조성되지는 않았지만 보문사가 관음 성지인 동시에 관음기도 도량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중요한 대·소사가 있는 사람들이 이곳에서 정성으로 기도 올리면 소원이 이루어진다 하여 지금도 신도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연화대좌 왼편에는 `조불화응선사(造佛華應禪師)'가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화엄회상필부사왕중(華嚴會上八部四王衆)·나무화엄회 상욕색제천중(南無華嚴會上欲色諸天衆)·화엄회상호법선신중(華嚴會上護法善神衆)' 등의 글씨가 세 줄로 새겨져 있다.

     

     

     

     

    마애관음보살의 입가에도 자비로운 미소가 묻었다.

    보문사를 두고 뭇사람들은 강원도 양양 낙산사,  경남 남해 금산 보리암과 함께 한국 3대 해수 관음 도량이라 일컫는다.   제각기 동해· 남해· 서해를 맡아 중생의 번뇌를 해풍에 씻어 내니, 소위 '기도발'이 좋다는 소문이 자자할 수밖에.

    하늘과 맞닿은 저 바다엔 오늘도 수백, 아니 수만 가지 간절한 소망이 흘러넘친다.

    전등사, 백련사, 청련사, 적석사 등 아름답기로 이름난 절이 여럿인 강화에서도 보문사의 존재감은 특별하다.   635년, 그러니까 신라 선덕여왕 4년에 금강산에서 수행하던 회정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석모도 낙가산에 지어 올린 절이 바로 이곳이다.

     

     

     

     

    눈썹바위에서 바라본 보문사 전경

     

     

     

     

    눈썹 바위에서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서해 바다의 경치는 장관이다.   특히 일몰 경관이 아주 일품이어서 석모도의 일몰은 서해 최고의 낙조 (落照)로 꼽히기도 한다.   수평선 너머로 떨어지는 붉은 해와 노을을 쳐다보노라면 종종 그야말로 무아지경 불심(佛心)의 경지에 들곤 한다는데.....

     

     

     

     

    우리는 다음 일정땜에 만날수 없어 아쉽다.   언제쯤에나 그 멋진 풍광을 만날수 있으려나 ?

     

     

     

     

    다시 아름다운 서해바다를 바라보며 용왕조형물 거쳐 10분을 내려오면 보문사 마당이다.

     

     

     

     

    어부가 돌덩이 스물두 개를 건져 석굴 법당에 모셨다는 나한전 설화,   깨졌다가 말끔하게 붙은 신묘한 옥등잔 전설,   부처님이 임진강 해빙에 표류하던 사람들을 보문사로 인도했다는 일화까지.   축적된 세월만큼 유구하고 풍요로운 이야기가 넘실거린다.

    마애관음보살을 알현하고 내려와 숨을 돌린다.

     

     

     

     

    예전에 없던  오층석탑과 배례석도 새로이 불사되어 있다...

     

     

     

     

    오층석탑과 옆 극락보전 옆에 임시 지장전을 모셨다.

     

     

     

     

    대웅전 하단에 계시던 지장보살님을 별도로 모셔 임시 지장전 내부에 모신 듯 ~

     

     

     

     

     

     

     

    석굴사원과 극락보전 사이의 삼성각의 계단을 올라 본다 경내보다 높게 축대를 이중으로 쌓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돌계단으로 오르내리도록 되어있다.

     

    삼성각(三聖閣)은 나한전 석실과 극락보전의 사이에 위치하고 있고 1960년에 지어졌으며 최근 중수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에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내부 넓이는 처음 지어질 당시는 4평이 조금 못되었으나 지금은 좀 더 확장되었다.   계단 옆에는 최근에 조성한 석등 2기가 양쪽으로 있다.

     

    삼성각 양쪽 내벽에 나한도가 각각 걸려있고 바깥쪽 벽 좌우에도 산신도, 나한도 4폭이 그려져 있고, 정면 기둥에는 오른쪽부터 `영과광대혜감명(靈過廣大慧鑑明)'·`주재공중영무방(住在空中映無方)' `나열벽천임찰토(羅列碧天臨刹土)'·`주천인세수막장 (周天人世壽莫長)'이라 쓴 주련(柱聯)이 각각 걸려 있다.

     

     

     

     

    전각의 안에는 불단은 놓여 있으나 불상 없이 가운데 칠성탱화를 중심으로 산신탱화 독성 탱화가 봉안되어 있다.   불단에 모셔진 칠성탱화 등은 모두 1992년에 봉안된 것이다.

     

     

     

     

    보문사 향나무(인천광역시 지방기념물 제17호)

    석실과 범종각 사이에 있는 큰 바위틈에  향나무가 자라고 있다.   수령(樹齡)이 약 600년 이나 된 노목(老木)으로 크기는 높이 32m, 땅 위 1.2m 부위의 둘레가 2.8m이다. 1.7m 높이에서 원줄기가 동서로 갈라져 둘레가 동쪽 것은 1.3m, 서쪽 것은 1.5m나 된다.   이 향나무는  한국전쟁 당시 죽은 것 같이 보였다가 3년 뒤 다시 소생하였다고 한다.

     

     

     

     

     

     

     

    보문사 맷돌, 절구(인천광역시 민속자료 제1호)

    맷돌은 옛날 절의 스님들이 취사용으로 사용하던 것으로 석실 입구 오른쪽 삼성각 올라가는 계단 옆 화단에 있다. 석재는 화강암이며 전체적으로 돌을 다듬은 솜씨가 부드러울 뿐만 아니라 조각도 정밀 하다. 둥근 모양을 한 밑 부분의 주연(周緣)에는 흠이 널찍하게 파여져 있고, 맷돌질로 잘게 으스러진 곡물이 밑에 받치는 그릇에 흘러 잘 담아지도록 홈통도 알맞은 너비로 파여 있다. 윗돌은 얇게 조성되었으며 역시 주연에 굵직한 테를 양각하고 그 양쪽을 파 놓아 그곳에 자루를 끼워 맷돌을 돌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현재 사찰에 남아 있는 대부분의 맷돌은 웃돌, 즉 상대석만 남아 있는데 보문사 맷돌은 웃돌 뿐만 아니라 아랫돌인 하대석까지 완전히 보존되어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크기도 지름 69cm, 두께 20cm나 되어 보통의 것보다 두 배 가량 된다.

     

    한때 보문사 스님과 수도사들이 300명에 달하였다고 하니 맷돌이 사용되던 시절 보문사가 얼마나 많은 스님과 신도들로 성황을 이루었는지 짐작 할만하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조선 시대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며 맷돌 좌우에 크기가 비슷한 돌절구가 하나씩 있는데 이 역시 맷돌과 마찬가지로 취사용으로 쓰인 듯하다.

     

     

     

     

     

     

     

    보문사 석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석실의 구조를 보면 내부는 천연 동굴을 확장하여 만들었고 입구에 무지개 모양을 한 3개의 아치형 홍예문(虹霓門)을 조성하였다.

     

     

     

     

     

     

     

    석실 입구 예전 용왕 자리에  동자상을 봉안했다...

     

     

     

     

     법왕궁 석실(나한전)내부

    석굴 안은 30평 정도로 넓은 편이다. 석실 안 상단에 세분의 삼존상(석가모니부처님과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님) 과 한분의 송자관음보살님 그리고 이후에 따로 조성한 관세음보살님이 계시고, 19나한님이 모셔져 있다.

    19분의 나한상은 눈썹바위의 마애관음보살좌상과 더불어 보문사의 대표적 성보문화재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보문사가 관음성지인 동시에 나한신앙의 대표적 도량이 된 것은 바로 이 석실에 있는 나한상 때문으로 보아도 틀림이 없다. 그러므로 이 석실 및 석실에 봉안된 나한상이 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만큼 높다 할 것이다.   또한 이 석실은 우리나라에 흔치 않은 석굴사원이기도 하다.

     

    석굴사원의 예는 경주 석굴암, 경북 군위의 삼존석굴, 강원도 속초의 개조암 정도로 우리나라에는 몇 되지 않는 귀중한 예이다. 이 석실의 역사는 보문사 창건 역사와 거의 일치한다. 일화에 따르면 창건 후 14년 뒤인 649년 신라 선덕왕 때 어부들이 고기잡이 나가다 그물에 걸려 올라온 석불 상들을 이곳 동굴에 안치하였다고 하였으므로, 곧 그때부터 석실이 조성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보문사 석실

     

     

     

     

    그 뒤의 역사는 자세한 기록은 없고 다만 조선 후기인 1812년(순조 12)에 한차례. 그리고 1867년(고종 4)에 다시 경산(京山) 화상이 석굴을 보수했다. 근대에 들어와서는 1958년 춘성(春城)선사가 석굴 내부를 좀 더 확장하며 개수하였고, 최근에는 1980년 정수(靜守)스님이 내부를 다시 확장하는 한편 지금의 불단(佛壇) 뒤와 옆에 있는 석 탱화를 조성하였다.

     

    좌우에 모셔진 나한님은 빈도라발라타사 가낙가발차 가낙가발리타사 소빈타 낙거라 발타라 가리가 벌사라불다라 술박가 반탁가 라훌라 나가서나 인갈타 벌나파사 아시다 주다반탁가 가섭 빈두로 이렇게 나한전에는 총 스물 세분의 제불보살님과 나한님이 계신다.

     

    중단에는 석조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고, 불단 양 옆의 인등을 따라 뒤편으로 돌아가면 1980년에 조성된 부처님 탱화가 있다. 불단 뒤에는 1982년의 불단 조성을 기념한 ‘보문사 석굴법당 연기문(普門寺石窟法堂緣起文)’과 ‘법화경 약모게(法華經略摹揭)’가 새겨져 있다. 연기문은 기현(奇玄)스님의 글이고, 게는 법화경의 내용을 쓴 것으로 여초(如初) 김응현(金膺顯)의 글씨다.

     

    나한전은 365일 24시간 스님들의 기도가 끊어지지 않고 계속되고 있어, 누구나 언제든 원하는 시간에 기도를 할 수 있는 나한도량이다.

     

     

     

     

    보문사는 나한전에서 24시간 스님들의 기도가 계속 이어지고 있어 누구나 언제든 기도 할 수 있는 나한도량으로 불자들의 발걸음이 끊어지지 않고 있다.

     

     

     

     

    나한전 조성 일화

    신라 진덕왕 3년, 보문사 아랫마을 어부들은 여느 해와 다름없이 봄을 맞아 고기잡이에 나서느라 분주했다.  만선의 꿈에 부풀어 어부들이 바다에 그물을 쳤다가 올려보니 물고기는 보이지 않고 특이한 형상의 돌덩이가 22개나 그물에 걸려 있었다.   어부들이 자세히 들여다보니 돌덩이들은 사람 모습과 꼭 닮아 있었다.  어부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기이한 석상을 보고 놀랍고 두려운 생각이 들어 바다에 던져 넣고 배를 저어 멀리 떨어진 다른 곳에 가서 고기를 잡기 시작했다.

     

    한참 만에 그물을 다시 걷어 올리자 아까 멀리 떨어진 곳에 던져버린 석상 22개가 그대로 다시 올라온 것이 아닌가?   어부들은 매우 놀라 허둥지둥 그물과 석상들을 바다에 던져 버리고 서둘러 육지로 돌아와 버렸다.   그날 밤 어부들은 모두 똑같은 꿈을 꾸었는데, 맑은 얼굴에 훌륭한 풍모를 한 노스님이 나타나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서천축국(인도)으로부터 왔느니라. 나와 더불어 스물 두 성인이 돌배를 타고 이곳까지 왔는데 우리가 타고 온 돌배를 돌려보내고 물속에 있다가 그대들의 그물을 따라 올라왔더니 두 번씩이나 우리들을 다시 물속에 넣어 버리더구나. 우리가 이곳에 온 것은 부처님의 무진법문과 중생의 복락을 성취하는 길을 전하러 온 것이다. 그대들은 우리가 편히 쉴 수 있는 명산으로 안내해 주기 바라노라. 그 인연과 공덕은 후손들까지 길이 누리게 될 것이니라."

     

    어부들은 새벽녘부터 일어나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며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바다로 나가 어제 석상을 던져 버린 곳에 그물을 쳤다. 잠시 후 걷어 올린 그물에는 어제의 그 석상 스물 두 체(體)가 그대로 따라 올라왔다. 어부들이 석상을 낙가산으로 옮기는데 보문사 석굴 앞에 이르니 석상이 무거워져서 꼼짝도 하지 않아 더 이상 앞으로 갈 수가 없게되자 이곳이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했다. 이때 석굴 안에서는 경 읽는 소리가 나고 은은한 향이 밖으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더없이 편안한 마음을 느끼면서 굴 안으로 조심스럽게 들어가 스물 두 위의 석상을 좌대에 차례로 모셨다. 석가모니부처님과 좌우에 미륵보살, 제화갈라보살과 열 아홉분 나한님을 좌대에 모두 모시고 나니 굴 안은 엄숙하고 신비한 영기(靈氣)가 가득 찬 것처럼 느껴졌고, 마을사람들은 일제히 부처님 앞에 엎드려 거듭 절을 하고 예경을 올렸다.

     

    그날 밤 꿈에 노스님이 다시 나타나 "그대들의 수고로 장차 무수한 중생들이 복을 빌어가게 될 것이다. 그대들에게 먼저 복을 줄 것이니 받은 복을 함부로 쓰지 말며 교만하거나 자만심을 버리라. 악하고 삿된 마음을 일으키게 되면 곧 복을 걷어들일 것이니라. 그리고 그대들에게 효성이 지극하고 복덕을 갖춘 아들을 점지할 것이니라."

     

    노스님은 이렇게 말하고 어부들에게 옥동자를 안겨 주고는 계속 말씀을 이었다. "사람들은 이 노승을 빈두로존자라고 부른다네. 우리들은 석가모니 부처님과 두 보살님을 함께 모시고 왔으니 나와 더불어 나머지 열 여덟 분은 모두 부처님의 수제자들이라네.” 어부들뿐만 아니라 보문사의 스님들도 같은 꿈을 꾸었으며 모두 그 신령스러움에 감탄하였다.

     

    그 후에도 나한전에서는 석굴 법당 앞의 “신기한 약수”와 고려왕실에서 하사받은 “깨지지 않는 옥등잔” 등 신비한 일화들이 많이 있다. 또한 나한전은 기도의 영험함으로 사람들 사이에 신통굴로 불리기도 한다.

     

     

     

     

    와불전은 천인대 위에 조성된 전각이다.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그 크기가 넓어서 천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라 이름 붙여졌다.

     

     

     

     

     

     

     

     

     

     

    와불전은 열반 당시 모습의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셨다.

    전체 신장이 10m이고, 열반대는 13m로 그 규모가 상당하다.  부처님 뒤의 1m 정도의 공간을 통해 주위를 돌면서 참배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보문사의 와불 부처님은 누워 계신 모습과 손의 모양, 불의(佛衣)의 주름 등이 사실적으로 표현 되어있고, 상호(相好) 또한 평안하여 기도를 하는 이로 하여금 마음의 평정을 갖게 해 준다.   운양으로 장식된 열반대는 다른 곳에서는 보기 힘든 아름다운 조각으로 구름의 모양이 수려하고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느티나무는 향나무 옆 와불전 올라가는 계단 입구에 두 그루가 나란히 자라고 있다. 둘 다 수령은 약 290년이고 크기도 비슷해서 높이 16m, 둘레 4.8m 정도이다 현재 군(郡)지정 보호수로 관리되고 있다.

     

     

     

     

    와불전 옆으로 오백나한상과 33관세음보살 사리탑이 조성되어 있다.

    2005년에 조성된 사리탑은 목조 형식의 3층 석탑으로 탑신부 각 층에 11분씩 총 서른 세분의 관세음보살님이 각인되어 있고 관세음보살님 위로 각각 용머리를 배치하고 옥개받침 부분에 처마도리와 서까래를 이중으로 내는 등 세세한 부분까지 표현하여 장엄하였다.

    2, 3층에 난간대와 난간지석을 만들어 넣었고, 상륜부에는 앙화와 보륜, 보주 등 한국 석탑의 양식을 상당 부분 표현해낸 수작이다.

     

     

     

     

     

     

     

    오백 나한상과 33관세음보살, 관음보탑

     

     

     

     

    불교에서 아라한과를 성취한 500명의 아라한상

    33관음 사리탑의 뒷편을 둘러 감싸안듯 오백나한이 모셔져 있다.

    나한이라 함은 아라한과를 증득한 존자를 말하며 열반경에 이르시기를 “아라한과(阿羅漢果)는 저 피안에 이르렀다고 이름하느니라.아라한과는 무학(無學)의 법신(法身)이니,  계율과 선정과 지혜와 해탈과 해탈의 지견(知見)이니라. 이 다섯가지로 인하여 저 언덕에 이를 수 있으므로 저 언덕에 이른다함이며, 저 언덕에 이르렀으므로 스스로 말하기를 나는 태어나는 일이 없고 범행이 구족하고 할 일을 이미 마치었고 다시 생사를 받지 않는다 하느니라.” 라고 아라한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보문사의 오백나한 상은 오백 분의 모습과 표정이 모두 달라 각각의 개성적인 모습을 자유분방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오백나한 봉안 불사가 지금도 진행되고 있어 동참하신 분의 이름을 나한님 좌대에 새겨드리고 있다.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느티나무도 아름답다.

     

     

     

     

    예전의 감로찻집 자리에 새로이 불사한 용왕전

     

     

     

     

     

     

     

    용왕전 내부의 손에는 보주를 들고있는 용왕상

     

     

     

     

     

     

     

     

     

     

    찻집도 지나

     

     

     

     

    여기 보문사는 너무 멀어 한참을 못와 볼 것 같은 멋진 보문사와 작별을 준비하고 일주문으로 향한다...

     

     

     

     

     

     

     

    서해를 굽어보는 마애관음보살 좌상과 석굴사원 등 귀한 불교 유물을 만날 수 있는 보문사에서 수백 년 수령을 자랑하는  아름다운 나무들을 뒤로 하고 일주문을 나온다.....

     

     

     

     

    인상 깊었던 일주문 앞의 예쁜 식당은 8년 전이나 다름 없이 역시 꽃으로 가득하다...

     

     

     

     

     

     

    넓찍한 보문사 주차장에 도착하여 대기중인 차량에 탑승 후

     

     

     

    석모대교를 달리며

     

     

     

     

    배타고 갈매기떼들에게 세우깡을 주며 건너던   바다를 바라보며

     

     

     

     

     

     

     

     

     

     

     

     

     

     

    양양 낙산사, 금산 보리암과 함께 우리나라 3대 해상 관음기도도량인 오늘 두 번째 여행지 보문사를 나와 강화도 본섬으로 들어와 세 번째 여행지 대웅보전의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 나부상(裸婦像) 때문에 세상에 널리 알려지게 된 전등사로 향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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