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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도교 성지 용담정과 최제우 생가, 남사리 북 삼층석탑과 남사리 저수지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 (경북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여행방/경상도 2021. 9. 23. 21:33

    천도교 성지 용담정과 최제우 생가, 남사리 북 삼층석탑과  남사리 저수지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

     

    2021.   9.   23.

     

    2021.  9.   23.  여전히 코로나 사태로 조심스러운 상황이라 정연화 모임 친구와 셋이서 함께한 경주 현곡지구 여행으로  천도교 성지 용담정과 최제우 생가를 보고 준비해간 과일을 먹으며 잠시 쉬다 나오다가 남사리 저수지를 지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호인 남사리 북 삼층석탑을 보고 나와 남사리 저수지 옆에 자리한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까지 보고 이동하여  천연기념물 제89호인 오류리 등나무도 보고 선덕여왕의 사촌으로  제27대 선덕여왕의 뒤를 이은 신라의 두 번째 여왕이며, 신라의 마지막 성골 출신 왕인 진덕여왕릉을 들러보고 또 다시 이동하여 마지막으로  국보 제39호인 나원리 오층석탑을 둘러보고 포항으로 이동하여 유강의 감자바위에서 곤드레밥과 수수부꾸미로 늦은 점심을 먹고 주변에 있는 카페로 이동  수다떨며 오늘 여행 마무리하는 힐링여행이다...

     

    2017년에 와보고 4년만에 다시 와보는 오늘 첫번째 여행지 천도교 성지 용담정과 최제우 생가를 보러 간다...

     

     

     

     

     

     

    용화정 입구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 주차에는 걱정이 없다.

     

    9월의 하순 때 아직은 태양이 따가운 어느 날 두번째로 용담정을 찾아보니 넓은 주차장엔 인적도 드문데 하늘은 너무나 파랗게 물들어 있고 푸른 숲들이 청명하게 길손을 반긴다.

     

    경주의 서쪽 외곽지인 현곡면 가정리에 소재하는 천도교의 발상지이자 수운 최제우가 동학의 진리를 득도한 용담정은 수운의 조부가 아들의 공부방으로 세운 암자로 수운이 천하를 주유하다 돌아와 수도에 전념하던 곳이다. 모두 904구의 가사 형식으로 되어있는 천도교의 경전인 '용담유사'를 집필하기도 한 용담정은 구미산 줄기의 기운을 입어 일명 마룡골이라 부르는 계곡 안쪽에 자리 잡고 있다.

     

     

     

     

     

     

    용담정 안내도와 설명판

     

     

     

     

     

     

     

     

     

     

     

     

     

     

     

     

     

    입구문인 포덕문을 들어서면

     

     

     

     

     

     

    왼쪽에 대신사 수운 최제우의 동상이 있다.

     

    경주시 현곡면 가정리 산63-1에 위치하고 있는 구미산 자락에 동학의 발상지인 용담정이 있다.   동학의 창시자이신 수운 최제우가 한울림의 말씀을 들었다는 용담정을 찾았다.   수운 최제우 선생이 이곳 용담정에서 한울님을 만나고, 한울과 대화를 나눈 과정을 기록한 '포덕문'을 쓰고, 동학을 창시했다.

     

    대신사 수운 최제우 동상은 오른손으로 하늘을 가리키고 있으며, 왼손에는 동학의 경전인' 동경대전'을 들고 있다.

    시천주(侍天主)란 '내안에 한울님을 모셨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즉 한울님이라는 절대의 신이 다른 초월적 공간에 계신 것이 다니라 비로 내 몸에 모시고 있다는 개우침을 수운 최제우 선생이 하고 이를 중요한 가르침으로 삼았던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한울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사람이 곧 하늘(人乃天)이다.   사람을 한울같이 섬긴다.(事人如天)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는 1824년 현곡면 가정리에서 태어났다.  일설에는 수운이 태어나던 날 용담정을 감싸 안고 있는 구미산이 3일 낮밤을 울었다고 전해진다.   수운의 나이 10세 때에 모친이 돌아가시고 17세 때에 부친마저 세상을 떠난 후 21세부터 10년간 전국을 돌아다니며 장사를 하였다.  33세에 양산의 천성산으로 들어가 입산 기도를 시작으로 구도의 길에 들어서서 36세인 1859년 울산에서 경주 용담정으로 귀향하여 이듬해 음력 4월 5일에 한울님을 만나는 종교 체험을 겪은 후 동학의 여러 경전과 수행법을 제정하고 교리의 체계를 세웠다.

    1861년부터 포덕을 시작하였으나 성리학 유생들의 배척과 관아의 체포령에 남원 등지로 피신하였다가 1863년 수운의 나이 40세 때 용담정으로 다시 돌아왔으나 이듬해인 1864년 41세때 관군에게 체포되어 대구 관덕당에서 참형으로 생을 마치게 된다.   동학의 도를 깨친 후 불과 3,4년 정도 포덕하다가 시대를 앞서간 탓에 정도를 어지럽혔다는 죄목으로 죽음을 맞았으나 수운의 사후 1907년에 그 죄가 풀려서 신원이 회복되었다.

     

    수운 최제우의 짧은 생애 중에서도 천도를 깨친 후 불과 몇 년 동안 포덕을 실천했지만 그의 사후 동학은 우리 사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며 역사의 주요 변혁기를 이끌어 왔다.  수운의 사후 30년이 지난 1894년부터 시작된 동학혁명의 주축이 되었던 동학교도들이 한때 300만이 넘을 정도로 교세가 대단하였고, 3.1 독립운동의 대표자 33인 중에서 천도교 대표로 15명이 참여하였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해방 이전의 동학(천도교)의 위상이 얼마나 크게 우리 민중 속에 자리 잡았는지를 알 수 있다.   수운의 '시천주(侍天主)'에서 시작한 종지가 최시형의 '사인여천(事人如天)'으로 이어지고 천도교로 개칭한 손병희에 의해 '인내천(人乃天)'으로 교의화하여 평등 의식과 인간 존중 사상의 대의를 분명히 밝히고 있으니 천도교는 인류 보편 종교로서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우리의 민족 종교가 아닐 수 없다.

     

     

     

     

     

     

    포덕문을 지나 성화문으로 올라가는 길 양쪽으로 잘 가꾸어진 정원을 지나는 길이다.

     

     

     

     

     

     

    용담정까지는 200m ~

     

     

     

     

     

     

       종교시설이라고 보다는 힐링을 위한 숲 같은 느낌....

     

     

     

     

     

     

    수도원

     

    계곡 입구의 넓은 대지에는 수련을 위한 건물들이 들어서고 있어 동학의 새로운 부흥기를 준비하는 것 같았다.

     

     

     

     

     

     

    용담정은 천도교 제일의 성지로 조용히 새소리를 들으며 더 위로 올라가본다.

     

     

     

     

     

     

     

     

     

     

     

    길을 따라서 쭉 올라가면 되는데 양쪽에 숲이 우거지고 왼쪽에는 계곡물이 흐른다.  흐르는 물소리가 넘 듣기 좋다...

     

     

     

     

     

     

    이곳은 관리실이다...

     

     

     

     

     

     

    성화문이 보인다...

     

     

     

     

     

     

     

     

     

     

     

     

     

     

     

     

    성화문을 지나면 왼쪽에 계곡을 두고 따라 올라 간다.

     

     

     

     

     

     

     

     

     

     

     

     

     

     

     

     

    시원한 숲길을 가볍게 산책하는 마음으로 용담정을 오른다.

     

     

     

     

     

     

     

     

     

     

     

    비록 길지않은 감탄이 그냥 나오는 곳으로 시원한 바람이 부니, 숲속의 향이 좀 더 진하게 나는듯 했다ㆍ

     

     

     

     

     

     

    용담교가 보인다...

     

     

     

     

     

     

    용담교 다리를 지나서 올라오니 아름다운 풍경이 펼쳐졌다.  이 멋진 풍경을 전부 사진으로는 담을 수가 없어서 아쉬웠던 것 같다.

     

     

     

     

     

     

    용담교를 지나면 용담이 나타난다. 팔작지붕에 정면 5칸 집이다. 구미산 일대가 1974년 경주국립공원으로 편입되면서 1975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수운 최재우 영정이 안치되어 있고 추모단이 있다.

     

     

     

     

     

     

    최제우는 한국에서 자생한 종교인 동학의 교조이다.   동학은 서양에서 전래한 종교인 '서학'에 대하여 천도교를 이르는 이름이다.   최제우는 세상이 어지럽고 인심이 각박하게 된 것은 세상사람들이 천명을 돌보지 않기 때문임을 깨닫고 한울님의 뜻을 알아내고자 노력하게 되었다.   1860년 종교체험 후, 1861년 포교를 시작하자 많은 신도가 추종하기 시작했다.   교세는 계속 신장되어 1863년에는 신도가 3,000여 명,   접소는 13개소에 달했다.   정부가 동학의 교세 확장을 경계하여 관헌의 지목을 받게 되자 곧 탄압이 있을 것을 예상하고, 그해 7월 최시형을 북접주인으로 정하고 해월(海月)이라는 도호를 내린 뒤 8월 14일 도통을 전수하여 제2대 교주로 삼았다.  1864년 이듬해 최제우는 3월 사도난정의 죄목으로 효수형에 처해졌다.

     

    천도교는 조선 말기인 1860년에 최제우가 만든 우리 나라의 민족 종교이다.   처음에는 동학이라 불렀으나,  1905년에 제3대 교조 손병희가 천도교로 바꾸어 불렀다.   최제우는 조선 말기에 곤궁한 처지에 놓인 백성을 구하기 위해 천도교를 일으켰다. 

    최제우는 20세에 집을 떠나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수도한 끝에, 경주에 있는 용담정에서 천도의 진리인 '무극 대도'를 깨닫고 가르침을 널리 펴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최제우는 '세상을 어지럽히고 백성을 속이는 무리' 라는 이유로 처형당하였다.  이에 제2대 교조인 최시형이 최제우가 지은 경전《동경대전》과《용담유사》를 펴내어 포교의 기틀을 다지고,  교세를 넓혀 나갔다.   천도교는 조선 말기에 일어난 동학 운동에 가담하여 백성을 안정시키고, 서양과 일본을 배척하여 나라를 구하려 하였으나 실패하였다. 결국 최시형마저 처형당하고, 제3대 교조 손병희가 뒤를 이었다.  천도교에서는 한울님을 지극히 공경하면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구원을 받는다고 하는데, 이를 시천주 사상이라고 한다.   또 '사람이 곧 한울님' 이라 하여 누구나 자기가 모시고 있는 한울님을 깨달으면 자신도 곧 한울님이 된다는 인내천 사상을 중심 사상으로 하고 있다.

     

     

     

     

     

     

    좌우에는 병풍이 있는데 우측의 병풍그림은 최제우의 일대기를 그름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여진다.  41세때 대구에서 참형을 당했다고....

     

     

     

     

     

     

    우측의 병풍은 천도교의 경전인 '용담유사'를 ...

     

     

     

     

     

     

    용담정을 지나 뒤쪽 계단을 오르면 용추각이다.

     

     

     

     

     

     

     

     

     

     

     

    용담정 위쪽에 자리한 용추각에는 최제우 선생의 부친인 근암 최옥 선생의 문집 목판본이 보관되어 있다.

     

     

     

     

     

     

     

     

     

     

     

     

     

     

     

     

     

    용추각 옆에는 계곡물이 흐르는데 작은 폭포라고 불러도 될 정도다. 용담정에서 이곳이 가장 시원하다.

     

     

     

     

     

     

    폭포 옆으로 계단을 오르면 약수터가 보인다.

     

     

     

     

     

     

     

     

     

     

     

    약수터

     

     

     

     

     

     

     

     

     

     

     

    계곡물 흐르는 소리와 새소리가 정말 멋진 이곳 물이 정말 깨끗하다.   친구과 함께 시원한 계곡물 앞에서 잠시 이야기도 하고, 힐링하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계곡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아무도 없는 위만 있던 이곳에서 마스크를 살짝 벗고 피톤치드 뿜뿜!

     

     

     

     

     

     

    시원한 약수를 한잔 마시고 천천히 용담정을 내려선다.

     

     

     

     

     

     

     

     

     

     

     

    감탄이 그냥 나오는 곳이다.

     

     

     

     

     

     

     

     

     

     

     

     

     

     

     

     

    힘들지 않고  그리 높지 않아서 쉽게 올라갈 수 있어서 좋았던 곳이었다.

     

     

     

     

     

     

     

     

     

     

     

    성화문도 지나...

     

     

     

     

     

     

     

     

     

     

     

     

     

     

     

     

     

     

     

     

     

    용담정 입구에서 용담정까지는 느린 걸음으로 20분정도는 충분히 갈수 있고, 크게 오르막도 없어서 편하게 산책하면 좋을 것 같다.

     

     

     

     

     

     

    계곡물이 넘~~시원해서 한참을 쉬고 풀향기.피톤치드 맡으며 오늘 하루를 쉬어간다...   종교 성지이지만 너무 좋은 힐링장소여서 기분 좋은 하루 시작이었다.

     

     

     

     

     

     

     

     

     

     

     

    오늘 첫번째 여행지 넓은 주차장이 있어 주차걱정없는 천도교 성지 용담정을 보고 나와  인근의 최제우 생가를 보러 이동한다...

     

     

     

     

     

     

    용담정에서 1km 거리의 최제우 생가 주차장에 도착하니 제법 넓은 주차장과 주차 한편에는 깨끗한 관리실이 자리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올려다본 최제우 생가 전경이다...

     

     

     

     

     

     

     

     

     

     

     

    수운 최제우 유허비

     

     

     

     

     

     

     

     

     

     

     

     

     

     

     

     

    생가 출입문을 들어서면....

     

     

     

     

     

     

    왼쪽으로 농기구등을 보관하는 잿간이 보이고...

     

     

     

     

     

     

     

     

     

     

     

     

    사랑채 이다...

     

     

     

     

     

     

    사랑채 대청마루의  최제우 선생의 약력

     

     

     

     

     

     

    사랑채 중간방  안의 최제우 선생 영정

     

     

     

     

     

     

    사랑채 왼쪽방 

     

     

     

     

     

     

     

     

     

     

     

     방앗간.  안채.  사랑채가 차례로 보인다...

     

     

     

     

     

     

    방앗간은 부엌과 방하나 그리고 방앗간이 있다...

     

     

     

     

     

     

    방앗간의  방

     

     

     

     

     

     

    방앗간

     

     

     

     

     

     

    수운고택 현판을 달고 있는 안채

     

     

     

     

     

     

     

     

     

     

     

    안채 좌측 부터 부엌

     

     

     

     

     

     

    부엌 옆의 방

     

     

     

     

     

     

    대청마루

     

     

     

     

     

     

    안채의 오른쪽 방

     

     

     

     

     

     

     

     

     

     

     

     

    우물과 장독대도 정겹다...

     

     

     

     

     

     

     최제우 생가를 나오며 앞을 보니 구미산이 바로 집앞으로 보이고 참 좋은 곳에 자리한것 같은 느낌이었다.  최제우 생가를 나와  준비해간 과일을 먹으며 잠시 쉬고 나오다가 

     

     

     

     

     

     

    남사리 저수지를 지나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7호인 남사리 북 삼층석탑을 보고 

     

     

     

     

     

    남사리 남 삼층석탑은 꼴짜기 소농로로 한참을 올라야 하기에 생략하고...

     

     

     

     

     

     

    남사리에서 나와 남사리 저수지 옆에 자리한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를 보기로 한다...

     

    가슴을 울리는 중저음으로 대중의 감성을 요동치게 만들었던 배호는,   당시로서는 불치병인 신장염에 걸려 1971년  29살로 아깝게 요절했다.

    활동하는 5년 동안   ‘누가 울어’,   ‘파도’,  ‘울고 싶어’,  ‘안녕’,   ‘0시의 이별’ 등 300곡 남짓을 남겼는데  이 가운데 ‘0시의 이별’은 통행금지 시작 시각에 이별한다는 노랫말 때문에 금지곡이 됐던 끔찍한 에피소드까지 있는 노래다.

     

    “그 시절 푸르던 잎 어느덧 낙엽지고 /  달빛만 싸늘히 허전한 가지 /  바람도 살며시 비켜가건만 /

    그 얼마나 참았던 사무친 상처길래 /  흐느끼며 떨어지는 마지막 잎새.//

     

    싸늘히 부는 바람 가슴을 파고들어 /  오가는 발길도 끊어진 거리 /  애타게 부르며 서로 찾을 걸 / 

    어이해 보내고 참았던 눈물일래  /  흐느끼며 길 떠나는 마지막 잎새.”

     

    배호 노래비가 여기 들어선 까닭은,   배호가 부른 노래 ‘마지막 잎새’  노랫말을 쓴 정귀문씨가 여기 출신이라는 데 있다.   ‘마지막 잎새’는 배호가 숨을 거두기 넉 달 전인 1971년 7월에 음반으로 담겨 나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더했다고 한다.

     

    남사저수지에서 만나는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는 이곳 경주시 현곡면이 고향인 정귀문님이 작사를 했다고 한다.    정귀문님은 조미미의 '바다가 육지라면'도 작사하셨다고.... 

     

     

     

     

     

     

     

    남사저수지에서 만난 배호의 '마지막 잎새 노래비’까지 보고 다음 여행지  진덕여왕릉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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