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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산내암자 아홉번째, 원당암사찰여행/경상도 2020. 8. 1. 05:58
해인사 산내암자 아홉번째, 원당암
2020. 8. 1.
2019년 11월 초순 가을에 오고 거의 9개월 만에 다시와 보는 해인사이다.......
그때 길상암만 둘러봐서 오늘은 해인사 동쪽암자 5군데와 해인사 큰절도 보고 다시 해인사 서쪽 암자 3군데를 둘러볼 예정이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에는 16개의 산내암자가 있다. 해인사에는 산내암자가 16곳 있는데...
1.해인사 길상암 2.보현암 3.금강굴 4.삼선암 5.금선암 6.원당암 7.홍제암 8.용탑선원 9.지족암 10.희랑대 11.백련암 12.국일암 13.약수암 등 13개 암자는 해인사를 애워싸고 있고 14.고불암 15.고운암 16.청량사 등 3개 암자는 해인사로 부터 다소 멀리 떨어져 있다.
2020. 7. 26. ‘달마야 놀자‘ 회원 18명과 함께한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암자순례로 약수암. 백련암. 희랑대. 지족암. 국일암 등 해인사 동쪽 5암자와 해인사 큰절 그리고 해인사 서쪽암자 중 용탑선원. 홍제암. 원당암 등 해인사 서쪽 3암자 등 해인사 산내암자 16곳 중 8암자와 해인사 큰절을 순례한 부처님 법향 가득한 하루였다...
해인사 동쪽 5암자를 둘러보고 해인사 큰절에도 들린 다음 해인사 서쪽 암자 중 해인사와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용탑선원. 홍제암을 보고 가까운 곳에 있는 원당암으로 이동한다...
홍제암에서 나와서
원당암 방향으로... 원당암을 앞두고 ~
원당암 올라가는 길 .....
원당암 향하며 무생교 다리를 건너면
다리 건너 우측의 계곡 옆에 큰 바위가 사리탑이다. 인파당 사리탑은 거대한 자연석 사리탑이다.
인파당 스님은 조선 개화기 시대 스님으로 백련암에 주석하시다 지난 1846년, 열반에 드신 큰스님이다.
평소 도덕이 고매하고 학문과 시에 능통하시어 생존시, 많은 스님들로부터 백낙천의 후신이라는 칭송까지 받았던 분으로공부 또한 깊어 당대는 물론 지금까지도 해인사에서 나신 도인 중 한분이라 존경받고 있다.
스님이 입적하시자 많은 제자들이 모여 다비식을 치뤘다.
살아계시면서도 이미 깨달음이 깊은 도인으로 여러 가지 이적을 보여주신 터라 제자 스님들은 다비식 후에 보여질 인파스님의 사리에 대해 만만치 않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기대와는 달리 다비한 자리를 아무리 뒤져도 사리는 한 과도 나오질 않았다.
예나 지금이나 큰스님들에 대한 평가가 입적 후 남기신 사리의 수와 빛을 발하는 정도 등 눈에 보여지는 것들로 인해 다시한번 재론되는 바, 스님을 모셨던 제자들의 입장에서는 여간 당혹스런 일이 아니었다.
도인 스님의 다비식이었고 잔뜩 기대를 갖고 치러낸 다비식이건만 사리하나 나오질 않았으니 제자들의 허탈감이란 이루 말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날 밤, 제자들이 모여 그간의 스님 행장을 놓고 갑론을박 서로의 잣대를 들이대며 돌아가신 큰스님에 대한 평가를 놓고 시비분별심에 빠져 있을 즈음, 다비식이 있었던 마당에 오색 빛 한줄기가 나타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산으로 내려가는 것을 보게 되었다.
놀란 제자들이 그 빛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니 바로 지금의 자리인 원당암 근처 큰 바위 위였다.
그 상황이 하도 괴이하여 바위를 올라가보니 그곳에 인파스님의 사리가 놓여 있었다.
비로소 제자들은 사리가 있네 없네 하며 일시적이나마 눈 앞에 보여지는 것에 빠져 마음을 혼란시켰던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달았다.
돌아가시면서 까지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시고자 다시 사리로 모습을 나타내시어 분별심을 없게 해주신 스승의 제자 사랑과 생존 시의 큰 업적에도 불구하고 죽음 앞에 다시 조용한 자연으로 돌아가 흔적 없이 바람처럼 묻히고자 했던 도인 스님의 깊은 뜻을 기리고자 제자들은 그 자리 그대로인 큰 바위 위에 구멍을 파고 스승의 사리를 모셨다.
그리고 150년이 지난 10여 년 전, 인파 도인의 자연과 더불어 하나는 삶에 대한 큰 가르침이 흐른 세월만큼 희미해져 가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신 혜암대종사가 비로서 스님의 이름 한 자를 새겨 다시 흔적을 남기시니 공부가 모자란 후대는 다시 한번 인파당 스님의 큰 뜻을 새기게 되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대로인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인파대사의 마음에 반하는 빚을 지었으니 스승을 팔아 공부인으로 거듭나겠다는 제자들의 아름다운 욕심인 바, 후대가 어렵게 빚을 진 그 마음을 이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월간 해인 중에서...
다리 건너 오르막 길을 오른다. 절 입구 거대한 나무가 사천왕을 대신 하는 듯하다....
주차장 앞으로 긴 담장안으로 원응요 요사채 전각이 눈에 들어온다.
원응요 요사 앞에서 바라본 원당암 주차장의 해우소와 전통찻집
산의 비탈면에 자리하고 있는 원응요 요사로 공양간이다...
공양간 옆으로 오르는 길에 있는 심검당(尋劍堂)으로 심검은 '지혜의 칼을 갈아 무명(無名)의 풀을 벤다'는 뜻이다....
심검당 옆에서 바라본 원당암의 중심으로 보광전. 심우당. 염화실. 영단. 심검당이 차례로 보인다...
신라 왕실의 원찰로 세운 원당암은 큰절이었는데 대덕광전과 마주보이는 비봉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는데, 그래서 본디 이름을 봉서사라고 했다.
이 암자는 해인사 창건을 위한 기초 작업장의 역할을 한 것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본 절인 해인사보다도 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또 역사가 오랜 만큼 풍부한 사적과 더불어 몇 차례의 중수 기록을 전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세조임금 때에는 학조대사가 오랫동안 주석했고, 철종 3년 곧 서기 1852년에는 우룡스님이 중수하였으며, 고종 11년 곧 서기 1874년에는 비구니인 성주스님이 또 중수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근대에 이르러 해운스님과 지금 이곳에 주석했던 혜암 큰 스님께서 도량의 면모를 일신하였다.
원당암에는 귀중한 유물과 유적이 전해오고 있는데, 그 가운데에서도 보물 제 518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는 점판석 다층탑과 석등, 그리고 정교하게 안상을 넣은 금당의 축대석 들은 중요한 사적으로 꼽힌다.
심검당 뒤편으로 주불을 모신 보광전이 있고 그 앞으로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제 518호)이 자리하고 있다...
보광전(普光殿) 안에는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향 좌측에는 지장보살을 향 우측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셔 두었다...
향 불단 좌측 벽면 입구에는 신중단이 있다...
향 불단 좌측 벽면 입구 신중단 옆, 향 불단 좌측으로 원당암(願堂庵) 소장 고승진영(高僧眞影) 세분의 존영이 있다 .
원당암 불광전 내부 중심의 불단이다....
향 불단 우측으로 원당암(願堂庵) 소장 고승진영(高僧眞影) 여섯분의 존영이 더 있다 .
합천 해인사(海印寺) 원당암(願堂庵) 소장 고승진영(高僧眞影)은 해인사(海印寺)에 주석했던 선사 11분을 영정으로 조성하여 주법당인 보광전에 봉안하였으나 2분을 큰 절 진영각으로 이운해서 모셨으며 현재 남은 9분의 작품들이다.
진영들은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 제작된 작품으로 파악되며, 그중 취운당(就雲堂) 진영(眞影)의 경우 1853년이라는 기년명과 함께 우희라는 화승의 화풍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기도 하다. 따라서 조선후기 및 해인사(海印寺)에서 제작된 경상도 고승진영의 양식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이 원당암(願堂庵) 소장 고승진영 9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 552-1호 ~ 552-9호 이다...
보광전의 꽃문살로 향 보광전 좌측 문에는 매화나무와 대나무를 ....
보광전 중앙문에는 목단을 중심으로 양쪽에는 소나무와 학을....
향 보광전 우측 문에는 대나무와 매화를 창살위로 돋을 새김하였다....
정교하게 안상을 넣은 금당의 축대석
아담한 보광전 앞에 원당암 다층석탑 및 석등(보물제 518호)이 자리하고 있다.
석등과 석탑 그리고 배례석
해인사의 원당암 안에 있는 다층(多層) 석탑이다. 탑신(塔身)을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靑石塔)으로, 점판암은 벼루를 만드는데 주로 사용되는 석재이다.
땅과 맞닿아 탑의 토대가 되는 바닥돌은 화강암을 이용하여 3단으로 쌓았으며, 그 위에 탑신을 받치는 기단(基壇)과 지붕돌은 점판암으로 구성하였다.
기단은 1단으로 밑면에는 돌아가며 연꽃무늬를 장식하였고, 윗면은 네 모서리에 대리석 돌기둥을 세웠으며, 맨윗돌에는 연꽃무늬를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남아있지 않고 지붕돌만 10층이 쌓여 있다.
지붕돌은 경사진 4면이 매우 평평하고 얇으며 밑면엔 낮은 3단의 받침이 새겨져 있고 처마는 네 귀퉁이에 이르러 위로 살짝 들려 올라갔다.
탑의 꼭대기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노반 (露盤:머리장식받침)이 낮게 있고, 그 위로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만이 높직하게 남아 있다.
청석탑은 대체로 고려시대에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되지만 이 석탑은 신라 말에 만들어져 청석탑의 선구라 할 수 있다.
다층석탑 바로 옆에 위치한 석등... 석등은 점판암과 화강암이 함께 사용되었다고 한다...
석등은 탑의 옆에 있으며, 탑과 거의 동일한 시대의 작품이다. 땅과 맞닿은 6각형의 바닥돌 위에 아래받침돌과 중간받침돌, 지붕돌로 이루어졌는데, 아래받침돌과 지붕돌이 점판암으로 되어 있고 다른 부재는 화강암이다.
현재는 지붕돌 밑의 불을 밝히던 부분인 화사석(火舍石)이 남아 있지 않다. 중간받침돌은 가늘고 긴 편으로 아래위에 상(上)· 하(下)의 글자가 움푹하게 새겨져 있다. 지붕돌은 6각형으로 윗면은 편평하며, 머리장식은 원기둥 모양의 돌 하나가 얹혀있을 뿐이다.
보광전 앞에서 바라본 영단과 심검당. 원응요 요사
보광전 앞에서 바라본 영단
영가들의 선망인 만년위폐 선방인 영단
보광전 . 심우당. 다층석탑. 염화실이 차레로 보인다...
향 보광전 우측의 심우당은 원주실이다....
심우당과 염화실
염화실 옆의 무설설(無說說), 말없이 말을 하다.
보광전 마당에서 바라본 심검당과 원응요 요사 그리고 봉황교와 미소굴
봉황교 옆으로 미소굴 오르는 계단과 함께 혜암스님 기거하시다가 열반했던 미소굴도 보인다...
미소굴 오르는 계단, 폐 기와와 콘크리트, 난간대 까지 잘 만들어져 있다.
미소굴 오르는 입구의 마당 한곁의 원당암 약수
보광전 뒤편 위쪽으로 연결하는 높은 계단으로 올라가면 혜암스님이 기거 하시던 미소굴이다... 혜암대종사가 수행 하시던 곳이며 대종사께서 열반에 드신 장소이기도 하다.
원당암 미소굴 앞에서 바라보는 해인사 가야산
미소굴 건물의 왼편으로 혜암 큰스님이 남기신 법문 중 명언을 후학들이 골라서 세운 비문 ‘공부하다 죽어라’라고 쓴 글씨가 이색적이다. ‘공부하다 죽어라’ 유명한 기도처 답게...
혜암스님 영정이 모셔져 있는 미소굴
미소굴 내에는 원당암에 주석하였던 헤암스님의 존영과 스님이 남긴 사리와 유품을 모시고 있다.
혜암스님은 해인사의 정신적 지주라고 할 수 있는 해인총림 방장(1993~1996년)스님을 지내시고 1999년 4월에 조계종 제 10대 종정스님으로 추대되었다.
미소굴 법당 앞 법어
원당암의 전망 1번지 운봉교에 섰다...
운봉교에 서면 가야산에서 해인사와 원당암의 위치를 한눈에 알수 있다.
미소굴 좌측 원당암에서 제일 높은 곳 전망대인 운봉교에서 바라보는 해인사 전경으로 해인사 적광전 그 뒤의 장경각 지붕과 수미정상탑이 보인다....
원당암을 설명해 두었는데 봉황이 알을 품는 명당자리라 한다.
운봉교는 비상하는 봉황의 모습을 하여 가야산의 웅묘한 정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가야산 최고의 전망대라 한다. 운봉교, 봉황의 알자리가 느껴지는 곳~
운봉교에서 내려다본 원당암 전경, 멀리 상왕봉도 보인다.
원당암 운봉교에서 바라 보이는 달마선원 옆의 원당암에서 제일 높은 정자
전망대 운봉교에서 왼쪽 골짜기로 달마선원을 만나는데 달마선원은 혜암스님께서 생전에 재가불자들에게 참선을 가르치려 만든 시민선방으로 스님께서는 1996년 가을부터 이곳에 머물면서 대중에게 참선을 지도하였다고 한다.
‘선불장’이란 편액이 걸려 있다.
운봉대에서 계단을 내려가면 심검당을 만난다....
심검당에서 바라본 운봉대와 미소굴
심검당에서 바라본 염화실 옆의 무설설(無說說)
심검당에서 주차장으로내려간다. 내려가며 좌측으로는 원당암 입구에 종무소가 있다...
원당암은 상당한 규모를 가진 해인사 1번지 같은 상징적인 암자로 신라 왕실의 원찰로 해인사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녔다. 거대한 나무가 사천왕을 대신하는 입구를 나서....
원당암을 나간다.....
달마선원과 원당암 표시석을 지나고....
홍제교와
수다라 찻집도 지나고
비림도 지나....
홍류동 계곡 옆의 해인사 매표소를 지나 이제 해인사의 동쪽 5암자와 해인사 본 사찰, 그리고 해인사의 서쪽 7암자중 3암자를 무사히 잘보고 오늘 순례를 마감한다...
장엄하고 웅장한 가야산 해인사와 적막하고 고요했던 8임자 여행이 아름답게 마무리 된 것 같아서 즐거웠다.
늘 부처님이 계셔 많이 행복합니다. 관세음보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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