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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 산내암자 다섯번째, 지족암사찰여행/경상도 2020. 7. 28. 15:50
해인사 산내암자 다섯번째, 지족암
2020. 7. 28.
2019년 11월 초순 가을에 오고 거의 9개월 만에 다시와 보는 해인사이다.......
그때 길상암만 둘러봐서 오늘은 해인사 동쪽암자 5군데와 해인사 큰절도 보고 다시 해인사 서쪽 암자 3군데를 둘러볼 예정이다...
법보종찰 가야산 해인사에는 16개의 산내암자가 있다.
해인사에는 산내암자가 16곳 있는데... 1.해인사 길상암 2.보현암 3.금강굴 4.삼선암 5.금선암 6.원당암 7.홍제암 8.용탑선원 9.지족암 10.희랑대 11.백련암 12.국일암 13.약수암 등 13개 암자는 해인사를 애워싸고 있고 14.고불암 15.고운암 16.청량사 등 3개 암자는 해인사로 부터 다소 멀리 떨어져 있다.
2020. 7. 26. ‘달마야 놀자‘ 회원 18명과 함께한 경상남도 합천군 해인사 암자순례로 약수암. 백련암. 희운대. 지족암. 국일암 등 해인사 동쪽 5암자와 해인사 큰절 그리고 해인사 서쪽암자 중 용탑선원. 홍제암. 원당암 등 해인사 서쪽 3암자 등 해인사 산내암자 16곳 중 8암자와 해인사 큰절을 순례한 부처님 법향 가득한 하루였다...
해인사 동쪽 5암자 중 약수암과 백련암. 희랑대을 보고 일타스님이 주석하셨던 다음 암자인 지족암으로 이동한다...
숲 울창한 오솔길로 연결된 희랑대에서 지족암 가는 길 ~
희랑대 내려와서 지족암 가는 길....
지족암에서 걸어서 희랑대로 갈 경우 지족암 입구 동곡교를 지나기 전 계단길을 오르면 희랑대로 바로 오르는 길이 있다...
일타스님이 주석하셨던 지족암 가는 길은 급 커브의 계속되는 오름길로 승용차로도 험한 길이다...
급 커브 길에서 내리고 차량은 지족암 주차장으로 향하고 우리는 오름길의 일주문으로 오른다....
지족암 주차장 가는 길과 지족암 일주문 갈림길이다...
지족암 일주문 가는 이쁜 돌계단 길 ~
지족암으로 오르는 돌계단 끝에 돌담 사이 일주문은 타원형의 문설주가 곱다.
지족암 일주문이 가까워 진다....
지족암 일주문은 왠지 백련암 일주문을 닮았다는 느낌이다.... 일주문 도솔암 현판은 정도준님 글씨이다.
일주문 사이로 일타스님이 주석하셨다는 지족암이 보인다....
일주문 지나자마자 커다란 돌벽 위로 법당과 진영각이 보인다.
일주문 들어와서 처음 만나는 전각은 산신각이다... 산신각 현판은 소헌 정도준님 글씨이다.
산신각 내부의 산신, 축대 위에 작은 산신각에는 가야산의 여자 산신이 아니라 두 분의 남자 산신이 앉아 지족암을 지키고 계신다.
산문을 들어서면 맛깔스런 돌 축대와 부드러운 흙담 사이에 돌계단에서 바라보면 푸른 소나무와 하늘의 구름 조각이 하얀색으로 아름답다.
일주문 지나자마자 만나는 삼층 석탑석이다.
계단 길 중간에는 신심(信心, 믿음)의 뜻을 가진 해인삼매탑이 있다. 그렇다 서로 믿는 것이 세상을 바꾸는 출발점이 될 듯하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海印寺)의 산내암자이다. 원래는 도솔암(兜率庵)이라 불렸다고 하며,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다.
신라 말에 희랑대사(希朗大師)가 이곳에 머물며 최치원(崔致遠)과 시문을 나누었다고 한다. 그 이후 한동안 암자가 어떻게 유지 되었는지 알려지지 않으나 16세기에 쓰여진 한강집(寒岡集)의 유가야산록과 도세순의 용사일기(龍蛇日記) 17세기 창주문집의 유가야산기 등 유학자들의 문집 속에 지족암을 가보았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 하므로 1796년 관수(官守)스님의 중건 이전에도 사세(寺說)는 계속 유지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1850년에 추담 장노가 주석하다 큰절로 내려간 후 폐허가 되기도 하였으나 1856년에 박문환공(朴文煥公)이 중건 하였고 그 뒤 1893년(고종 30)에 환운(幻雲)이 다시 중건하면서 도솔천의 의역(意譯)인 지족암으로 암자명을 개칭하였다.
그리고 박문환공의 아들인 기돈 거사가 선친을 추모 하기 위해 뜻을 모아 향계를 결성하여 법당에 향과 등 공양이 끊이지 않게 지원 하였다한다.
1913년에는 큰 홍수로 인해 당우(堂宇)가 도괴되어 몇 년간 빈터가 되었으나 고산 혜명 스님이 1915년에 암자를 복원 하였다. 그 이후 1940년 홍송해 스님. 1958년 영월스님. 1963년 정림스님 등이 지족암에 주석 하였다.
1976년 부터 해인총림 율주 동곡당 일타 대종사가 지족암에 주석 하면서 법당을 신축하고 요사채를 크게 증수 하였으며 도량을 대폭 확장 암자의 면모를 일신 시켰다.
1999년에 감원으로 취임한 향적종사는 스승의 대를 이어 2010~2013년에 대대적인 중창 불사를 하였다. 이때에 진영각. 석정당. 삼여정(공양실). 조실채. 산신각 등을 신축 하였으며 해인삼매탑과 동곡교를 건립 하였다.
지족암 들어서며 축대위로 올려다 보아지는 법당 대몽각전과 진영각
지족암 법당인 대몽각전이다. 일타스님이 '꿈을 크게 깨치라'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 한다...
법당 오르기전 향 법당 우측의 '동곡당'은 원주실과 종무소로 사용하고 있었다...
지족암의 다른 당우들도 모두가 일타스님과 관련이 있다. 일타스님의 법호는 동곡(東谷) 또는 삼여자(三餘子)이다.
동곡당은 일타 스님의 법호 동곡(東谷)에서 따온 집이다....
동곡당 현판은 소헌 정도준 예서체 이다.
동곡당 우측으로
'향적주' 현판을 단 공양간이 있다. 주련은 향적스님 글씨
삼여정(三餘亭), 역시 삼여자(三餘子)라는 일타스님의 법호에서 딴 이름으로 세 가지 바쁘지 않는 날에는 차한잔할 수 있는 곳이리라. 차담하기 좋은 곳일듯...
'시간에 여유롭고, 하는 일에 여유롭고, 마음에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라'는 뜻을 가진 삼여정. 일타 큰 스님의 지표이셨다.
삼여정(三餘亭)현판은 향적스님 글씨
공양간 앞에서 언덕 기슭 위에 협문이 있는 지족암 선원과 조실채를 바라 본다.
동곡당을 지나
법당으로 향해 본다...
일타스님은 이곳 도솔암에서 오랜 세월을 함께 하셨다.
지족암은 신라 후기에 세워진 역사 깊은 도량이다.
살아감에 구애받지 않고 분수를 알아 항상 만족함을 알며 살아가라는 동곡당 일타 큰 스님의 유지에 의해 원이름인 도솔암에서 지족암으로 사암명을 바꾼 절이다.
지족암의 옛이름은 도솔암이라 한다.
법당 오르는 길이 참 이색적이다... 좌측 진영각 아래층의 요사와 우측 동곡당 처마가 붙은 담장 사이로
들어서면
법당 표시판을 따르다가
들어서던 방향으로 뒤돌아 본다....
법당 표시판을 따르면 계단을 올르면 대몽각전 측면이 나온다....
법당으로 오르면 바로 보이는 대몽각전의 측면으로 이 현판 글씨는 일타스님의 친필로 '크게 깨달은 집'이라는 뜻의 '대몽각전'
지족암 ‘대몽각전’ 현판과 주련은 소헌 정도전 님 글씨이고 내용은 일타스님의 게송이다. 대몽각전을 바라보면서 일타스님의 게송을 생각해 본다.
頓忘一夜過 (돈망일야과) 몰록 하룻밤을 잊고 지냈으니
時空何所有 (시공하소유) 시간과 공간은 어디로 가버렸나
開門花笑來 (개문화소래) 문을 여니 꽃이 웃으며 다가오고
光明滿天地 (광명만천지) 광명이 천지에 가득 넘치는구나.
크게 깨달은 집 대몽각전은 동서로 길쭉한 방의 끝에 부처님께서 앉아 계신다.
대몽각전에는 신중탱도 보이지를 않고....
한쪽으로 영가단만 있었다...
향 대몽각전의 좌측면에는 '관음전' 현판이 달려 있다.....
대몽각전 앞에서 내려다본 일주문 방향~
지족암에서 바라보면 바로 건너편에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인 희랑대사사 수도햇던 토굴로 전해지는 희랑대가 보인다. 지족암에서 바라 본 가야산.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한다. 정면으로 남산제일봉을 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지족암은 높은 언덕 위에 세워져 있어 멋진 풍광을 제공한다. 대몽각전을 등지고 서면 희랑대가 손에 잡힐 듯하고 가야산의 풍광이 나그네의 발길을 잡는다.
지족암 대몽각전과 진영각에서 바라보니 지붕 선과 어우러진 가야산 젯빛 하늘에 잠시 빠졌다.
법당 맞은편 바위 위에 노송이 자라는 모습은 마치 한폭의 동양화처럼 운치가 있다. 법당에서 건너다보이는 바위에는 ‘南無阿彌陀佛’이라는 각자가 세겨져 있다고 한다...
법당 뒤로 20m 정도 다시 올라서면 바위가 있다.
요것이 지족암의 상징이라고 할까?
지족암을 들린다면 꼭 여기를 와 바야 한다.
평범하게 보이지만 바위 위로 올라가면.. 바위 위에 새겨진 지족암 상징인 부처님의 발자국인 족상이 이채롭다.
지족암 뒷편 산 바위에 양각으로 조각된 불족도(佛足圖)로 석가모니의 발자국을 형상화한 그림.
본래는 중인도 마가다(Magadha)국의 큰 돌에 새겨진 불족적(佛足跡)을 당나라 현장법사가 그려서 중국에 전하였다고 하며, 누구나 이 부처님의 발자국을 보고 존경하고 기뻐하면 한량없는 죄업이 소멸된다고 하여, 예로부터 이것을 만들어 숭배하고 공경하는 일이 유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도 불족도가 처음에는 사성(寫成)되어 신앙되었다고 짐작되나 현존하는 것은 대부분 목판본이며, 드물게는 목판의 판목이 전해지기도 한다. 즉, 불족도 신앙의 유행과 함께 그 수요에 따라 판각되어 널리 유행되었으며, 현존하는 것은 중국 남송의 소흥(紹興) 30년(1160) 연경사(延慶寺)의 입석(立石)에 새겼던 것에 대한 목판 복각본이 알려져 있다.
국내의 모각은 전북대학교 박물관(1812), 서울 삼성동 봉은사 및 양산 통도사 박물관 소장본이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봉은사의 목판은 1857년(철종 8) 복각으로 그 상태나 체제가 가장 좋은 편이다.
목판의 크기는 전체길이 65㎝, 너비 36㎝로서 위에는 ‘석가여래유적도(釋迦如來遺跡圖)’라 하였으며, 그 아래 길이 50㎝, 폭 34㎝의 쌍족(雙足)을 양각하였다. 그림 아래에는 다시 불족도의 유래를 적고 있다. 그림은 평면 위주로 처리되었으며, 그 내용은 대체로 화문(華紋)·만자(卍字)·어형(魚形)·보검(寶劍)의 형상 등 다양하게 표현하였다.
목판의 경우 불족도의 이면에는 108염주도(念珠圖)를 새기고 있는 것이 통례로 되어 있는데, 이 역시 낱낱 염주에 불·보살·천왕(天王)·금강신 및 각종 지옥의 명칭을 열거하고 있어 당시 염주신앙의 형태를 아울러 짐작하게 한다.(백과사전에서)
지족암과 희랑대는 고려 태조 왕건의 스승이 된 화엄종의 고승, 희랑대사와 연이 깊다. 현재 이곳 지족암은 많은 신도들의 불심을 키우는 도량으로 이용되고 있다.
향 대몽각전 우측으로는 일타스님의 진영을 모신 진영각이 있다....
진영각 현판 글씨는 양진니 님 글씨이고 진영각 주련은 원학스님이 스셨다.
진영각에는 일타 스님을 모신 곳이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일타스님께서 유품과 함께 계시는 곳이다.
일타대선사日陀大禪師
율사(律師). 법호는 동곡(東谷) 또는 삼여자(三餘子).
1943년 4월 통도사에서 자운스님을 계사로 사미계 수지했고, 1949년 범어사에서 동산스님을 계사로 보살계를, 자운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1956년 태백산 도솔암에서 남긴 게송은 “몰록 하룻밤을 잊고 지냈으니, 시간과 공간은 어디로 가버렸나, 문을 여니 꽃이 웃으며 다가오고, 광명이 천지에 가득 넘치는구나. (頓忘一夜過 時空何所有 開門花笑來 光明滿天地)” 이며, 1999년 하와이 와불산 금강굴에서 입적하며 남긴 열반송은, “하늘의 밝은 해가 참 마음 드러내니, 만리의 맑은 바람 옛 거문고 타는구나, 생사열반 이 모두가 오히려 꿈이러니, 산은 높고 바다 넓어 서로 침범하지 않네. (一天白日露眞心 萬里淸風彈古琴 生死涅槃曾是夢 山高海闊不相侵)”이다. 이 때의 세수는 71세, 법랍은 58세였다.
1929년 충남 공주에서 태어난 일타스님은 특히 지난 54년 오대산 적멸보궁에서 매일 3천배씩 7일간 기도 끝에 오른손 네손가락 12마디를 연비한 후 태백산 도솔암에 들어가 6년 동안 용맹 정진한 것은 유명한 일화로 전해진다.
60년대 중반부터 해인사 지족암에 주석해 온 일타스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다음 생에는 불법이 미약한 서양, 특히 미국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마치고 한국의 해인사나 송광사에서 수도한 후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파하고 싶다”며 미국에서 환생할 것임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고 한다.
친· 외가를 포함해 41명의 친척이 출가할 정도로 불연이 강한 집안에서 태어난 스님은 문하에 성진, 혜인, 혜국, 향적, 돈관스님 등 1백여명의 상좌와 고목. 선조. 태경. 장적. 성공스님 등 1백 여명의 손상좌를 두었으며, ‘생활속의 기도법’ ‘기도’ ‘자기를 돌아보는 마음’ ‘시작도 끝도 없는 길’ 등 10여권의 신행 안내서를 남겼다.
파도가 심하면 달이 나타나기 어렵고
밤이 그윽하면 등불이 더욱 빛나도다.
그대들에게 마음 닦기를 권하노니
감로장을 기울어지게 하지 말지니라.
일타 스님의 유훈이다.
해인총림 율주와 해인사 주지, 단일계단 전계대화상, 원로의원, 은해사 조실 등을 역임하였다. 일타스님은 원효스님의 수행터의 하나인 경북 팔공산 오도암에서 수행한 바 있다.
부드러운 미소를 띤 일타스님
향 존영 우측의 일타스님 유품
누비동방
일타스님께서 가지고 다니시던 부처님
돌아가실 때 스님은 다음과 같은 열반송을 남기셨다.
一天白日露眞心 (일천백일노진심) 하늘의 밝은 해가 참 마음 드러내니
萬里淸風彈古琴 (만리청풍탄고금) 만리의 맑은 바람 옛 거문고 타는구나
生死涅槃曾是夢 (생사열반증시몽) 생사열반 이 모두가 오히려 꿈이러니
山高海闊不相侵 (산고해활부상침) 산은 높고 바다 넓어 서로 침범하지 않네.
진실한 말로 내 그대들에게 전별을 고하노라.
파도가 심하면 달이 나타나기 어렵고,
방이 그윽하면 등불이 더욱 빛나도다.
그대들에게 마음 닦기를 간절히 권하노니,
감로장을 기울어지게 하지 말지니라
일타스님이 직접쓴 항아리 '일체유심조' 명호
향 존영 좌측의 일타스님 유품
장삼
발우
가사
고요한 절 마당을 보니 수행이 절로 될 것 같다.
일주문과 산신각도 한번더 바라보고....
축대 위쪽에 있는 대몽각전과 일타스님의 진영을 모신 진영각을 내려간다.
마당에서 올려다본 진영각과
지족암의 법당 대몽각전
내려 갈때는 일주문 쪽이 아닌 반대편의 선원쪽으로 내려선다...
‘지족도솔암 知足兜率庵’ 도솔천이란 미륵보살이 머무르고 있는 천상의 정토라 한다. 의역하면 知足天이 되는 셈이다. 현판은 청남 오제봉 님의 행서체 글씨이다.
마당 끝에서 지족암을 바라보고, 내려오는 길에 지족암 오른쪽 건너편 언덕 기슭 위에 협문이 있는 지족암 선원과 조실채를 바라만 본다.
지족암은 자연 깊숙이 어우러진 주변 풍광과 더불어 경탄스럽기까지 하다.
일타스님이 주석하시며 도량의 면모를 갖추었다는 곳이다.
의외로 주차장도 넓은 편이다....
지족암에서 바라본 풍경은 언제나 아름답다.
절벽 축대 위의 위태롭게 서 있는 지족암의 선이 고운 축대와 담을 보면서 어떻게 만족하면서 살아야 할지를 배우지 못하는 중생이 서럽다.
지족암에서 희랑대를 도보로 갈어갈 시에는 동곡교를 지나면 바로 오르는 돌계단 길이 있다...
지족암에서 국일암으로 향해본다... 지족암에서 국일암으로 가는 길은 숲 울창한 오솔길로 연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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