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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남루(경남 밀양시 중앙로 324, 밀양시 내일동 40)
    여행방/경상도 2020. 5. 22. 22:56

    보물 제147호 밀양 영남루(密陽 嶺南樓)

     

    2020. 5. 22.

     

     

    2020. 5 . 22. 간만에 딸이랑 함께한 밀양 여행이다..

    08:00 포항 집을 떠나 경주. 언양을 거처 밀양으로 국도를 타고 이동해 본다... 때로는 고속도로를 씽~ 달리는거 보단 국도를 달리며 차창풍경을 눈여겨보는 재미도 솔솔하다.

     

    밀야 표충루, 밀야읍성을 둘러보고 영남루 바로 옆에 있는 밀양 아리랑시장에서 백종원 3대천왕 돼지국밥 방영되엇다는 밀양 아리랑시장 맛집 ‘돼지국밥 단골집’에서 돼지국밥 먹고 위양지를 산책 후 꼬불꼬불 좁은 산길을 위태롭게 올라 화악산 운주암을 두루 돌아보면 많이 행복한 하루였다...

     

    오늘 첫 번째 일정으로 밀양 영남루에 올라본다...

     

     

     

     

      

    포항에서 밀양으로 가는 길

     

     

     

     

    밀양강에서 본 영남루 풍경이다.

     

     

     

     

     

     

     

     

     

     

     

     

     

     

     

    영남루 올라가는 계단

     

    계단과 함께 계단 중간을 사선으로 장애인이 다닐 수 있는 경사로를 만들어 놓았다매우 이색적으로 보이면서도 좋은 아이디어 같다.

     

     

     

     

    계단을 오르면 영남루 경내에 들어서는 일주문을 만난다.   영남루 안내문 앞에서 바라본 영남루 일주문,  코로나 영향으로 일주문 앞부터 사회적 거리를 두고자 사진으로는 보기싫지만 중간에 경계를 만들어 들어갈때는 우측으로 나올때는 조측으로 나오도록 밀양시에서 조치를 해두었다.

     

     

     

     

    영남루 안내문 앞에서 바라본 영남루 본루와 침류각

     

    영남루에는 능파각(凌波閣) 침류각(枕流閣)이라는 2채의 부속건물이 있는데 그 중 낮게 위치한 침류각은 3단계로 낮아지는 계단 건물로 연결되어 있어 전체 외관에 변화와 조화를 추구한 점이 주목된다.

     

     

     

     

    영남루의 아름다운 건축물 바라보기만 해도 좋다.

     

     

     

     

    영남루는 밀양강을 발아래에 둔 높은 절벽 위에 자리 잡고 있어 영남루에서 강을 끼고 내려다보는 경치뿐 아니라 강 남쪽에서 바라보는 영남루의 경관 또한 시원스럽다.

     

     

     

     

    계단위로 영남루 일주문이 보이고 영남루 본루와 우측 침류각....

     

     

     

     

    일주문을 지나 초입에서 바라본 영남루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구조이다.   마당에서 바라본 영남루 본루 정면

     

     

     

     

    보물 제147정면 5, 측면 4칸의 익공식(翼工式) 겹처마 팔작지붕건물기둥의 간격을 넓게 하고, 마루바닥을 높여, 웅장하면서도 시원한 느낌을 주고 있다.   밀양강가의 절벽 위에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잘 어울리게 지은 조선시대의 누각 건축물이다.

    조선시대에 밀양군의 손님을 머물게 하던 밀양도호부의 객사  부속건물로, 손님을 접대하거나 주변 경치를 보면서 휴식을 취하던 건물이다. 처음 지어진 것은 고려시대로, 그뒤 여러 차례의 소실과 재건을 거듭하였다.

    원래 그 자리에는 신라 경덕왕 때 세워진 영남사(嶺南寺)라는 절이 있고 절의 종각으로 금벽루(金壁樓)라는 작은 누각이 있었는데, 고려시대에 절인 영남사가 폐사되고 흔적인 누각만 남아 있었던 것을 1365(공민왕 14) 밀양군수 김주가 누각을 새로 짓고 절의 이름을 따서 영남루라 하였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1460(세조 6)에 중수하면서 규모를 크게 넓혔으며, 임진왜란 등을 거치며 선조 때 소실되었던 것을 1637(인조 15) 다시 지었고 여러 차례 증축, 중건 등을 거치다가  마지막으로 1844(헌종 10) 불에 탔던 것을 당시 밀양부사 이인재(李寅在)에 의해 마지막으로 재건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좌우의 건물들과 층계와 복도로 연결되어 건물의 배치에 변화를 주면서도 균형을 유지하였고전체적 규모는 한결 더 웅장해져 영남제일루의 명성에 어울리는 면목을 갖추게 되었다.

     

     

     

    넓은 강을 옆에 낀 절벽 위에 남향으로 있다. 세부적으로 조선시대 말기의 건축양식을 지니고 있는데출목(出目)을 갖춘 3익공식의 공포구성과 공포 주변에 새겨진 부재의 장식 수법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 외부로 뻗은 쇠서(牛舌)에 연꽃 또는 연봉 장식이 첨가되고 판재화(板材化)3익공의 내부도 초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밖에 고주(高柱) 위에도 복잡한 장식이 중첩되며 용머리를 장식한 충량(衝樑)이 올라와 있다.

    전체적으로 부재도 크고 기둥 간격도 넓으며 중층(重層)으로 되어 우리나라 건축 중에서는 크고 우람한 외관을 갖추고 있다.

    더욱이, 건물 서편에 작은 부속건물이 딸려 있고 지붕이 여러 단으로 낮아지면서 연결되어 독특한 외관을 구성한다.

    빼어난 경관과 건축미가 조화를 이룬 건물의 하나이다. ‘동국여지승람에 이 건물을 노래한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여러 문인들의 시가 전해지고 있다.

     

     

     

     

    영남루 안내도

     

     

     

     

    영남루  배치도... 이 단순한 구성에도 고저장단이 분명한 음률을 가지고 있다...

     

     

     

     

    이층 누각형태의 영남루는 좌청룡 우백호를 거느리듯 동쪽의 침류각과 서쪽에 능파각이라는 부속 누각을 거느리고 있다..

    영남루의 본 건물로 영남루는 본루와 동쪽 좌측의 능파각(凌波閣)서쪽 우측의 침류각(枕流閣)으로 세동의 건물과 연결이 되어 있다.

     

     

     

     

    마당 쪽에서 본 본루와 우측의 침류각

     

    영남루의 또 하나의 소루인 침류각, 숙소기능을 한 침류각은 정면 3,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지붕집이다.

     

     

     

     

    영남루 본루 정면

     

    영남루 정면에 영남루편액과 강좌웅부(江左雄府)‘교남명루(嶠南名樓)‘라는 2개의 현판과 함께 나란히 걸려 있다.

    보통 건물 머리 부분에 다는 것을 편액이라 하고 1개의 건물에 편액은 하나만 걸 수 있고 현판은 여려 개를 걸 수 있다....

     

     

     

     

    영남루글씨는 구한말의 명필 성파 하동주(星坡 河東洲)가 쓴 글이고  영남루편액 좌우로 나란히 걸려 있는 강좌웅부(江左雄府)‘교남명루(嶠南名樓)‘ 현판은  귤산 이유원(1814~1888) 글씨로 오른쪽 강좌웅부(江左雄府)가 새겨져 있고 왼족 현판은 교남명루(嶠南名樓)가 새겨져 있다.

     

    '강좌웅부(江左雄府)'낙동강 좌측의 아름다운 큰 고을 즉 밀양을 달리 이르는 말이고  '교남명루(嶠南名樓)'문경새재 이남의 이름 높은 누각이라는 뜻이니 역시 영남루의 넉넉함을 담은 표현이다 여기서 교남은 경상남북도를 통 털어 일컫는 말이다.

     

     

     

     

    본루와 좌측의 능파각

     

     

     

     

    영남루는 본루 양쪽에 날개처럼 작은 소루를 거느리고 있어 더욱 화려하고 웅장해 보인다.   강을 바라보고 섰을 때 왼쪽이 능파각이다.

     

     

     

     

    현재 영남루를 관람하려는 사람들은 왼쪽 능파각으로 해서 본루를 올라가 경치를 즐기도록 되어 있다영남루 대청마루로 올라간다.

    대청마루에서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한다.  관리하시는 분이 늘 깨끗이 청소한다고 말씀 하신다....

     

     

     

     

    능파각 마루의 '영남루 시문과 현판 들여다 보기'

     

     

     

     

     

     

     능파각 현판은  단기 4290년 배수환(裵綉煥)이 썼다.

     

     

     

     

     

     

    능파각(凌波閣)은  파도를 막는 집이란 뜻으로 큰 물결이 누각을 칠 때 막아주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되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짜리 익공식 팔작지붕집으로 본루와 마찬가지로 중층을 이루고 있으며 2층 두 칸은 온돌방이고 오른쪽 한 칸은 마루로 비워 마루를 통해 본루로 통하도록 돼 있다.

     

     

     

     

     

     

     

    능파각 앞에서 바라본 영남루는 단청도 화려하고 구조도 특이하여 더욱 웅장하고 고풍스럽게 보인다.

     

     

     

     

    영남루 대청 누각

     

     

     

     

    스물네개의 커다란 기둥이 떠받치는 넓디넓은 마르는 연회장으로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정면 처마 안쪽 영남루 내부의 '영남제일루(嶺南第一樓)' 현판글씨는 1842년 영남루를 중수할 당시 밀양부사였던 이인재의 첫째아들 이증석(李憎石)이 11세에 쓴 것이라고 한다.  '영남제일루'영남 최고의 누대라는 뜻이다

     

     

     

     

     

     

     

     

    영남루의 현판이 걸린 정면의 내부에 붙여진 강과 누대가 어울려 한폭의 그림과 같다.’ 는 의미의 강성어화(江城如畵)의 글쓴이는 알 수 없다.

     

     

     

     

     

     

     

    영남루에서 바라본  천진궁

     

    영남루 마당에도 코로나로 사회적 거리를 두고자 관람 방향을 안내하고 사람들이 겹치지 않게 밀양시에서 조치를 해 두었다...

     

     

     

     

    영남루에는 여러 현판이 걸려 있다.

     

    '현창관(顯敞觀)'영남루에 오르니 온 사방이 높고 넓게 나타난다는 것을 뜻하는 말이고 '용금루(湧金樓)'는  '높은 절벽에 우뚝 솟아 있는 아름다운 누각'이라는 의미...

     

     

     

     

     

    용금루(湧金樓)

     

     

     

     

    현창관(顯敞觀) 

     

     

     

     

     

     

     

    영남루 누각에는 역사의 흐름을 조명해 볼 수 있는 당대 명필가들의 작품들이 편액으로 즐비하게 남아 있다.

     

     

     

     

     작품명 :영남루(1872년),   하연(河演 1376~1453) 진주 사람으로 자는 연량(淵亮), 호는 경재(敬齋)

     

     

    영남루는 낙동강 동쪽 하늘에 있어

    왕명 받기 전부터 명승지라 들었네.

    발 걷으면 달 오르고 바람이 들며

    난간에 기대면 솔개 날고 물고기 뛴다.

    한 시내는 일천 뙈기들에 굽이치고

    두 골짜기는 일만 그루의 숲을 나누었구나.

    한스럽다 강하의 침석을 깔지 못하니

    어찌 홀로 서늘한 곳에 자리 펼치리

     

     

     

     

    작품명 : 영남루(1847),  이원(1368~1429) 자는 차산. 시호는 양헌(襄憲)

     

    우뚝한 누각 영남 하늘에 높이 올려 놓아서

    심리의 빼어난 경치 눈앞에 다 보이네.

    고요한 낮 여울소리 베게 머리에 이어지고

    해 비끼자 솔 그림자 뜰 가에 떨어진다.

    농부의 바쁜 봄 일 마을마다 비 내리고

    들 객점엔 아침밥 짓느라 곳곳이 연기로다.

    지난날 선군께서 이곳을 지나셨는데

    부끄럽다 소자가 다시 잔치여는 것이.

     

     

     

     

     

     

     

    본루와 침류각을 연결하는 층층계단  월랑 

     

    본루 오른쪽에 위치한 건물로 침류각(枕流閣)이고 본루와 침류각을 연결하는 통로가 월랑이다월랑은 두 건물을 연결하는 층층계단을 만들고 그 위에 지붕을 얹은 것으로 그 모습이 매우 율동적이고 영남루 전체를 웅장하게 보이는 역할도 하고 있다.

    영남루의 침류각과 본 누각 사이를 달월()자형의 계단형 통로로 연결하여 건물의 배치와 구성에 특징을 배가 시켰는데, 웅장한 기풍으로 인해 당당하면서도 회화적인 아름다움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층층계단 위로 지붕을 연속으로 얹은 것이 매우 율동적으로 보인다.  이로써 본루가 한층 더 웅장해 보이는 극적인 효과를 얻고 있다. 

     

     

     

     

    침류각으로 내려가는 나무 계단인 월랑(月廊)

     

    영남루 동쪽 오른쪽의 침류각과 연결된 계단이 보인다.

    영남루와 침류각 사이에는 다 월()모양의 목재게단 월랑이 있다.   3단으로 단 차이가 나는 구조로 연결되어 있다.

    영남루와 부속건물인 침류각은 나무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이 계단은 경사가 급하다이런 달 월()자형의 층층각 계단형 통로는 영남루 건물의 배치와 구성에서도 독특한 특징이다.

     

    영남루에서 계단을 내려가 침류각으로 갈 수 있지만 현재는 출입이 통제되고 있다. 계단의 지붕이 독특하다.

     

     

     

    영남루 내부의 '영남제일루' 현판 글씨 바로 곁에 걸려 있는 '영남루(嶺南)'란 현판 글씨는 계묘년(1843) 영남루를 중수할 당시 밀양부사였던 이인재의 둘째아들인 이증석의 동생인 이현석이 7세에 썼다고 한다. 획의 굵기로 미루어 보아 또래아이가 감당하기 힘든 큰 붓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돼 서예가들 사이에도 불가사의로 여겨진다. 아마도 글 선생의 도움을 받지 않았을까 추측된다고 한다.

     

     

     

     

    문인들의 현판

     

     

     

     

    영남루의 현판들은 이곳에서 내려다 보이는 빼어난 경치 또한 주변과 조화를 이룬 누각의 풍광을 읊은 것들이다.

     

     

     

     

     

     

     

    영남루 누각에서 바라보면 황학을 탄 신선도 부럽지 않을 듯한 뷰가 내방객을 사로잡는다...  영남루의 조망영남루에서 바라 본 밀양시내의 모습이다.

     

     

     

     

    해가 비치는 이 시간에도 크고 웅장해서 그런지 충분히 영남루는 멋졌다그리고 영남루에서 바라보는 강도 참 아름답다.   영남루에서 바라본 밀양강~

     

     

     

     

    영남루 앞에는 낙동강 지류 밀양강이 흐르고 있다.

     

     

     

     

    야경이 멋있다는 영남루.  영남루의 야경을 사진으로만 봤는데 포항으로의 귀가 시간 때문에 해가 질 때까지는 기다리지 못했다.

     

     

     

     

     

     

     

    영남루 내부 천정에는 용 두마리가 서로 바라보고 있다...

     

     

     

     

     

     

     

     

     

     

    강가쪽의 '영남루(嶺南樓)' 글씨는 송하 조윤형 씀

     

     

     

     

     

     

     

    3단 계단 월랑

     

    밀양강에 임한 절벽 위에 위치하여 웅장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그 경관이 수려하여,  1931년 당시 조선총독부에서 조선의 16경을 선정할 때 영남루가 그 16경 중에 하나로 선정되었다고 한다.

     

     

     

     

    스물네개의 커다란 기둥이 떠받치는 영남루

     

     

     

     

     

     

     

     

     

     

    우리나라 3대 누각 중 하나인, 밀양 남천강 옆 아동산에 위치한 영남루는 보물 제 147호로 진주의 촉석루평양의 부벽루와 함께 우리나라의 3대 누각으로 손꼽힌다.

     

     

     

     

     

     

     

     

     

     

    영남루 맞은편엔 만덕문과 천진궁이 자리하고 있다.

     

     

     

     

     

    마당에 늘어선 돌비석 옆으로 천정궁으로 들어서는 만덕문(萬德門)이 세워져 있다.   마당을 사이에 두고 영남루와 마주보고 있는 만덕문은 천진궁의 출입 정문이다.

     

     

     

     

    천진궁(天眞宮)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 제117호로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의 영정과 역대 8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곳이다.

     

    영남루와 마주 보고 있는 천진궁은 옛 객사 건물의 하나였다고 한다원래 현종 6(1665) 년에 건립된 이 건물은 역대 왕조 시조의 위패를 모신 공진관의 부속 건물로 사용되었으나 1722(경종 2)부터 공진관을 대신하여 위패를 보관하며 객사의 기능을 담당하였다.

     

    1957년 대종교 산하단체인 단군봉안회에서 이 건물의 이름을 천진궁이라 하였고, 그 안에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의 영정과 역대 8왕조(부여, 신라, 고구려, 백제, 가야, 발해, 고려, 조선)의 시조왕과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이 건물은 건축적 가치에 앞서 이렇게 신성한 곳을 1910년 경술국치 때 일제가 조선 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역대 시조의 위패를 땅에 묻고 이곳을 일본 헌병대 감옥으로 사용하였다는 점에서 민족의 수난사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또 해방 후 이를 복원하려는 지역민의 노력도 단지 옛 건물의 복원이 아니라 민족의 정통성 회복을 추구하고자 하였던 이지방민의 민족정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천진궁은 정면 3측면 2칸의 단층 팔작의 주심포식 건물로 대리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높은 기둥을 세워 건물의 권위와 웅장함을 더하였다.

     

     

     

     

     

    단군이래 역대 8왕조 시조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천진궁(天眞宮) 내부,   천진궁은 남쪽을 향해 중앙에 단군의 영정과 위패를,

     

     

     

     

     

     

     

    오른쪽 서쪽 벽에는 부여· 고구려·  가야의 시조· 고려 태조의 위패를...

     

     

     

     

    왼쪽 동쪽 벽에는 신라· 백제시조 왕과· 발해 고왕,· 조선 태조의 패를 각각 모시고 있다.

     

     

     

     

     

     

     

     

     

     

    도가의 개조인 노자를 신격화하여 부르는 태상노군’, 인간의 생로병사를 주관하는 신령을 칭하는 칠원선군흔히 줄여서 칠성이라고도 한다.   옥황상제의 명을 받아 인간 세상에서 출산을 돕고 산모와 갓난 아기를 보호하여 자식 갖기를 원하는 부인에게 아기를 점지하는 신을 뜻하는 삼신을 높여 부르는 삼신제왕을 새긴 비석이 천진궁 옆에 세워져 있다.

     

     

     

     

    1957년에 대대적인 수리와 함께 천진궁으로 이름을 바꾸고 정문을 만덕문이라 하였다이후 매년 봄 음력 315일 어천대제(御天大祭), 가을 음력 103일 개천대제로를 지내고 있다.

     

     

     

     

     

     

     

     

    천진궁 입구인 만덕문 왼쪽에는 밀양박씨의 시조인 밀성대군의 묘단을 둘러싸고 서거정님의 멋진 글들이 전시되어 있다...

     

     

     

     

     

     

    천진궁 입구인 만덕문 왼쪽에는 밀양박씨의 시조인 밀성대군의 묘단이 있다.   밀성대군은 신라 경명왕의 장남으로 이곳이 그의 묘지로 추정된다.

    입구의 양쪽에는 해태가 앉아있고 비석에는 밀성대군지단이라 새겨져 있는데 고종의 아들인 의천왕의 글씨라 한다.

    비석 앞에는 무인석이 시립해 있고 그 앞에 사자상 보이는데 친일파 박춘금이라는 자가 기증했다고 한다.

     

     

     

     

     

     

    영남루 뒤편으로 가면

     

     

     

     

    밀양아리랑 노래비가 보이고, 영남루 아래쪽으로는 밀양강으로 나가는 길이 있는데 이곳에 밀양의 또 하나의 컨텐츠인 아랑사가 있다.

     

     

     

     

     

     

     

    언덕 위에 작곡가 박시춘 선생의 동상과 옛집이 있다.

    우리 가요계의 거목 박시춘(1913~1996, 본명 박순동)은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다. 선생은 유년시절부터 유랑극단을 따라다니며 여러 악기를 연주하다 작곡의 길로 들어섰다. 선생의 대표곡으로 물방아 사랑, 신라의 달밤, 애수의 소야곡, 이별의 부산정거장, 전선야곡, 굳세어라 금순아3,000여 곡을 작곡하여 한국 가요의 뿌리이자 기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1982년에는 대중가요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 보관장을 서훈 받았다. 20015월 밀양시에서 선생의 음악세계를 높이 기리기 위해 이곳에 선생의 옛집을 복원하였다.

     

     

     

     

    그리고 산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사명대사 유정의 동상도 보인다.  그리고 조금만 더 오르면 밀양시가지를 한눈에 내려다 볼수있는 밀양읍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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