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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방의 베니스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여강고성
    중국 - 운남성(여강) 2019. 5. 2. 21:00

    동방의 베니스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여강고성  

     

     

    2019.    5.    2

     

       

    2019. 4. 26 ~ 5.  1,   5박 6일 일정으로 북경 경유 여강. 호도협  여행이다.   

     

    2019.  4.  27.  여행 2일째날 북경 출발 여강공항 도착 후, 여강 국제공항에 도착하여 가이드 미팅 후 여강시내로 이동하여 속하고진, 차마고도 박물관, 여강고성,  만고루를 둘러보는 일정이다.

     

    여행 2일째날 네번째 일정으로 속하고진을  여행 후 동방의 베니스로 불리우는 여강고성으로 이동이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속하고진을 두루 둘러보았다.





    우리를 태우러 올 차를 오기를 기다려...








    다음 여행지 여강고성으로 이동한다...

     










    아까 만난 모태통 동상을 지나








    이 로타리를 지나면 여강고성인듯 ~








    동방의 베니스로 불리우는 아름다운 여강고성의 입구이다...














    여강 나시족 자치현은 서남쪽 끝 고원지대 오지라고 한다그 오지중의 변방에 찬란히 빛나는 보석, 여강고성이 위치하고 있다.





    고성에서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골목마다 휘감아 도는 수로다.

    중국에 대한 선입견 중 하나가 지저분하다는 것인데, 여강은 도시 전체가 깨끗하다.

    수로에 흐르는 물도 바닥을 훤히 비춰낼 정도로 맑다.





    주민의 58%인 나시족이 여강고성에서 옛날 문화를 그대로 전수한 채  살고 있어,1997년에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재 되었다고 한다.

    고성 북쪽에 위치한 옥룡설산의 만년설이 녹은 물이 지하로 흘러 들어 흑룡담이란 연못으로 모이고, 수로를 통해 고성으로 공급 되는데, 골목마다 수로도 함께 있어 동양의 베니스라고도 불리 운다.






    수로를 흐르는 물은 멀리 보이는 눈 덮인 옥룡 설산의 만년설이 흘러내린 물이라 그런지 시리도록 차고 투명하다.








     옛 건물에 새 대문 - 대문에 있는 캐릭터는 요즘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이라고 요즘아이가 알려준다.








    식당주인이 한국인으로 리장으로 여행왔다가  리장사람과의 로맨스로 주저 앉았다는 ..   꽤 큰 규모의 식당이다.








    리장의 출발은 물레방아 다리부터 시작된다.

    중국의 장쩌민 주석이 직접 썼다는 글씨가 돋보이는 하얀색 벽을 일별하고 안쪽으로 들어간다.





    뒤에 보이는  '세계문화유산 여강고성(世界文化遺産 麗江古城)'이란 문구는 장쩌민 前 주석의 친필이다.





    여강고성의 초입에 있는 옥하(玉河, Yuhe) 광장


    리쟝 고성은 일명 따옌젼(大硏鎭)이라고도 불리운다. 송나라말 원나라 초인 1253, 후비리에가 남쪽으로 쳐들어 와서 따리(大理)를 정벌할 무렵, 리쟝에 이르러서 병영을 세웠다. 명나라때에 이 성읍은 규모를 갖추었고, ()씨 성을 가진 투쓰(土司)가 통치하였다.  고성의 북쪽에는 의샹산, 사자산등이 있어서 북쪽으로부터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을 막아주어 겨울에도 그다지 춥지 않다. 위롱설산으로부터 흘러내리는 신선한 물은 여러 갈래로 나뉘어 고성 곳곳을 흐른다. 이 물줄기들로 인해 리쟝의 독특한 정경을 보여준다.





    조용하고 포근한 느낌의 여강 고성 시내,  여기는 여강고성의 랜드마크인 대형 물레방아.





    옥룡설산에서 빙하가 녹아 설산을 거쳐 온 물이 여기서 부터 고성의 마을로 흘러 들어간다리쟝고성이 세계적인 관광지가 되기 이전에도 이 물레방아가 있었을까?

    강택민의 친필인 '세계문화유산 여강고성'이 있는 이곳에서 단체사진 찍고...







     

    麗江古城! 운남성의 古都 여강(리장)속의 옛날 거리!

    , 청시대부터 이어져 온 고건물이 즐비하다.   이곳은 오랜 옛적부터 차 상업무역의 중심지였다.   운남성 대지진 속에서도 살아남아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동파문자(상형문자)


    인류가 사용하는 마지막 상형문자로 동파교의 경전인 ‘동파경’을 기록하기 위해 창안된 것이다. 지금도 여강의 상점 간판엔 한자와 동파문자가 나란히 적혀있다.





    동파문자(상형문자)로 쓴 부적을 매달아 놓은 곳





































    여강고성 대문





     맑고 깨끗한 여강, 고성 시내의 풍경을 천천히 도보관광 한다.





    중국 4대 고성 중 하나라고 하는 리장고성은 다른 곳과는 달리 성벽이 없이 트여있는 특이한 구조다.
    전해지는 말로는 이 지역 통치자가 황제로부터 목()씨 성을 하사받았는데, 한자로 자 주위에 성곽을 쌓으면 곤할 곤()’자가 되어 일부러 담을 쌓지 않았다고 한다.
    ()씨 성을 가진 통치자가 거주했던 곳은 '목부(木府)'라는 거리로 조성되어 있다.





    여강고성이 세계문화유산임을 알리는 정문의 표지석





    가옥들은 대부분 2층 이상을 넘는 것이 없고 거리로 삐죽 나온 지붕의 처마들이 반들반들한 돌바닥과 잘 어울린다.

    바닥에 깔려 있는 돌은 큰 도로일 경우 큼직큼직한 반면 막힌 도로나 작은 샛길로 들어가면 크기가 작아진다.








    소방용 양동이









    길은 잘 다듬어진 돌이 질서 정연하게 깔려 있고 고풍스러운 옛 중국 가옥이 들어차 있다.





    중국의 古都는 물 친화적이다.   여기도 흑룡담을 거쳐 흘러내린 물이 수로를 따라 구석구석 성내를 휘감아 흐르도록 설계되어 있다.







    수로 주변의 꽃나무는 맑은 물 때문인지 사철 고운 꽃을 피워낸다.








    돌길을 터벅터벅 걸어서 고성 길을 계속 진행하면 다양한 생필품 가게며 유유자적의 심정으로 거니는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여러 가지 다양한 물건을 파는 상점들을 구경하다 보면 어느새  옛날 차마고도의 상거래 중심지였다는 고성의 중심 사방가(四方街)’에 이르면 옛 모습은 절정에 이르고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고건물들은 한족, 장족, 백족 등 여러 소수민족들의 문화를 아우른 나시족의 독특한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고성 내 사거리인 사방가(四方街)를 중심으로 음식점이며 술집, 노래방, 기념품 가게 등이 빽빽이 들어차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여강 고성은 사방가(쓰팡지에)라는 광장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이름처럼 동서남북 네 방향으로 길이 이어지는 교통의 요충지.





    고풍스러운 건물이 옹기종기 모인 리장 고성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많은 여행객이 몰려들었다. 더러는 리장 고성을 두고 심하게 상업화됐다는 의견들도 있지만, 이곳은 태생부터 차마고도의 출발지로 계획된 상업도시였다.





    고성의 사방가 광장


    현재의 여강 고성은 사방가라는 고성의 중앙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길이 나있는 모습으로 길 양쪽은 상가들이 점령을 해 버려 자연스럽게  골목이 만들어 졌다.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이어지는 여강은 지도가 없으면 길을 잃기 십상이다.

    사실 지도가 있어도 이 길이 저 길 같고, 저 길이 이 길 같아 길을 찾기는 힘들다.

    하지만 애써 길을 찾을 필요는 없다.

    곧 익숙해지는데다 어디를 가나 살고 싶을 정도로 편안하고 멋진 풍경이 펼쳐지고, 낯선 거리라도 여행객이 있고 이들을 맞이하는 레스토랑과 카페가 있기 때문이다.








    벚꽃마을(사쿠라)이란 식당이다.





    사쿠라 주인장 (김명애 중국 사람과 결혼한 한국인 : 여강에 있는 두명의 한국인 중 한명)은 요즘 아이 키우느라고 가게에 잘 안 나온단다.

    주인장 김명애에 대한 소개는 한비야의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 4권 몽골 / 티베트편 237쪽 참조)




     

    전통의상을 한 모델들이 촬영을 하고 있어 얼른 찍어본다...

















    마치 베니스의 골목길 같은 곳 ~





    '동양의 베니스'라는 별칭답게 여강고성의 모든 집들은 물길을 앞치마처럼 두르고 있다.
    차갑지만 부드러운 것이 물의 속성이다.
    물이 있는 풍경은 그 부드러움으로 지친 영혼들의 안식처가 된다.
    300여 개가 있다고 알려진 다리에는 곳곳에 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떠날 줄을 모른다.





    고성 바로 옆의 헤이룽탄공원의 호수에서 흘러든 물이 수로를 따라 굽이 돌아서 동양의 베니스라고 불리기도 한다. 물길을 따라 만들어진 골목골목에는 작은 찻집과 객잔레스토랑, 기념품 숍이 빼곡하게 들어차 일 년 내내 활기가 넘친다.








    1996년 이 지역을 강타한 리히터규모 7의 지진으로 당시 300명이 사망하고 16천명이 부상당하고 이 지역에 있는 신시가지의 콘크리트 건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반면 구시가지의 남아있던 나시족의 목재전통가옥들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하는데 이를 계기로 세계의 유명건축가와 문화연구가들이 이지역에 주목하기 시작하자 중국정부는 황급히 구시가지의 전통가옥복구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유네스코가 여강일대 전 지역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였고 덕분은 현재의 여강고성은  운남성에서 제일 유명한 관광지가 되었다.
    지진대참사가 오히려 도시의 운명을 바꿨다.





    골목 끝을 돌아서면 우리의 옛 정취를 느끼게 하는 무엇이 있다언제나 아름다운 골목의 한 지점에는 풍경처럼 사람, 사람이 있었다.








    재래시장을 거쳐, 여관골목, 민가 등을 둘러본다. 재래시장은 청과, 생선, 육류, 잡화 등으로 구분되어 비교적 잘 정돈된 느낌이고, 의외로 여관이 많다. 가이드 말로는 중국 각지에서 관광객들이 모여들어 여관이 성업 중이라고 한다. 여관의 급도 다양하여 호텔보다 비싼 곳도 많다고 한다.





    고성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기와를 얹은 중국식의 고가(古家),  돌이 깔린 바닥마을을 흐르는 수로가 어우러진 생경한 풍경이 펼쳐진다.

    유럽에 중세 마을이 있다면 아시아의 중세가 이런 곳이구나 하고 감탄하게 된다.





    여강고성의 골목길은 자동차가 없으니 정말 좋다 그리고, 그냥 멋없는 시멘트 건물의 숲에 익숙한 우리에게 고풍스런 목재 건물들은 더 운치있게 보인다.





    여강은 중국 소수민족들이 옹기종기 모여 산다는 운남성 중에서도 서북부 고원지대에서 옥룡설산을 뒤로하고 있는 아름다운 도시이다. 해발 2,400m의 고지대에 위치하며 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인 납시족들의 오랜 터전이다.








     고성의 전망이 가장 좋다는 만고루로 가는 길











    만고루 방향으로 향한다...
















    구시가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보호받을 정도로 문화적 가치가 높은 곳이다. 시가지 전체를 감싸는 전통의 느낌, 자유로운 분위기, 소수민족의 땅이라는 이미지는 여행자들이 여행에서 느껴보고 싶은 것들을 모두 갖춘 곳이다.











    중국에서 유일하게 성벽이 없는 고성으로도 유명하다. 당시 리장의 통치자의 성이 목씨였는데 이곳에 성벽을 두르면 곤란할 곤자가 되어 성벽을 두르지 않았다는 설이 전해지지만, 일절 전쟁하지 않은 나시족의 고성에 굳이 성벽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야기도 설득력 있다.








    여강( 丽江 리장) 사자산 만고대(万古楼완고루) 입구와








    사방가(四方街쓰팡지에) 식당 옥상에서 바라본 고성(丽江古城리장고성)의 전통가옥들의 모습으로 마치 우리나라 한옥마을을 보는 것 같다.








    여강( 丽江 리장) 사자산 만고대(万古楼완고루) 입구에서





    만고루로 향하지만 만고루는 별도 포스팅 하기로 하고 ...





    여강고성을 내려다 본다...





    성벽이 없는 이 오래된 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신비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꼽힌다이곳은 나시족의 심장부이면서 동파문화가 발원했던 발원지이다.












     상가에서 천을 직접짜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나시족 여인의 베짜는 모습...





    한참동안 꼬불꼬불한 고개를 내려오다 야크를 만난다.. 여기서는 말 한필에 울나라 돈으로 약 20~50만원,  소 한마리 약 300만원, 야크는 한마리에 자그마치 1,000만원씩이나 한다고 한다...





     현지음식점의 애돼지통구이





    나시족은 모계사회로 알려진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로, 점점 그 숫자가 줄어들고 있어 그들의 문화도 사라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그곳에서는 모계사회인 나시족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데, 가사일 부터 사회적인 일까지 모든 일을 도맡아 하는 여자들과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남자들을 쉽게 발견 할 수 있다.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라 자칫 작은 곳이라 생각할 수 있으나 오히려 도시의 면적은 대리보다도 더 크며, 뒤로 서 있는 설산과 그 뒤에 흐르는 금사강(今沙江)때문인지 마치 유럽의 스위스를 연상시킨다.





    여강 고성...  유네스코가 마을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여강고성은 고풍스러운 목조 가옥들이 100여 채 모여 독특한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골목길마다 반들반들하게 다듬어진 붉은 색 역암이 깔려 있고, 곳곳에 매달려 있는 홍등이 밤이 되면 불을 밝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한다.





    떡이란다.





    주로 동판문자 전문점, 천연 염료를 이용한 옷가게, 소수민족 상품 등이 대세를  이룬다.








    우리나라 장구를 세워놓은 것과 비슷한 이 악기도 리장고성에서는 빼놓을 수 없다.
    음악을 틀어놓고 그 음악에 맞추어 윗면을 두드리는 타악기다.
    아래쪽을 다리 사이에 끼우고 평평한 면을 두드리는 이 악기의 이름은 페이주어꾸(非洲鼓)란다.
    '非洲'는 아프리카인데 그럼 이 아이의 고향은 아프리카인가 ?
    악기의 모양도 독특하지만 색채가 아름다워 일단 시각적으로 눈길을 끈다.





    리쟝고성의 골목은 정말 아름답다








    즐비한 기념품 가게에서 아기자기한 여강 특유의 기념품을 구입할 수 있는데 관광객이 많은 곳이라 그런지 가격은 저렴한 편은 아니지만 기념으로 한두 개쯤 사는 것도 좋을 듯싶다.












    화관 파는 아가씨(?)


    머리에 저 화관 하나씩 쓰고 다니는 젊은 여자들이 의외로 많이 보인다.






    북과 기타







     

    나시족은중국의 56개 종족 13억 인구 중에서 가장 학력이 높고(조선족이 2), 정치가, 학자, 예술가의 비율도 가장 높다.

    예를 들면, 인구 4천만 명이 넘는 윈난 성을 다스리는 최고 위직인 성장(成長)도 인구 겨우 24만 명밖에 안 되는 나시족 출신이다.

    나시족은 아주 오랜 옛날부터 주위에서 가장 높은 문화를 가진 유서 깊은 종족이었다.

     

    외부세계와 단절된 절해고도와 같은 천험의 땅에서 이 같은 문명을 꽃피웠다는 것은 환경을 고려하면 기적 같은 일인 것이다.








    시내의 고성(古城)은 사방가(四方街)를 중심으로 하고 있는데,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고성은 송대에 처음 조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동방의 베니스'라 불릴 만큼 운치 있고 아름다운 곳이다.





    고성의 중심은 사방가이다

    사방가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어진 수많은 골목들이 800년의 역사를 지닌 여강 고성의 미로와 같은 전통 가옥의 숲, 마을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가느다란 실개천이 눈길을 끈다.









    마을의 구석구석을 연결하는 수로는 여행객의 눈길을 끄는데, 인근의 옥룡설산 만년설이 녹아 흘러내리는 물이다. 이 수로덕분에 여강은` ‘동방의 베니스`’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여강 고성은 고성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성벽은 없었다.








    그곳에는 차마고도 시절의 영화가 살아 있는 메초장이 있었고, 천 년을 넘겼다는 작은 우물이 있었다. 차 마고도 시절 무역이 이루어졌다는 사방가도 천년의 세월을 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방인의 눈길을 바쁘게 했다.











    신비롭고 아름다우면서도 소박한 소수민족의 순수성 때문에 여행자들의 가장 동경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여강고성은 시간을 가지고 천천히 여행하여야 할 가치가 있는 곳으로 아테네, 파리 등 유명도시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이기도 하다.





    먹자골목......   확실히 규모가 크다.....



























































     

    카페 거리





    개를 들면 하얀 모자를 쓴 것 같은 옥룡설산(雪山, 해발 5596)의 만년설, 내려다보면 골목을 허리띠처럼 감고 흐르는 운치 있는 물길과 제각기 다른 개성을 갖고 있는 나시족의 전통가옥, 그리고 800년이 넘었다는 반질반질한 돌길, 물가의 실버들 ......




    사랑의 옛거리,  젊은 한쌍이 만나서 차와 술을 마시며 사랑을 나눌 수 있는 테마가 있는 거리...








    송조 때 건립했는데 지금까지 근 천년의 역사가 있는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적인 역사 문화명승이다. 총면적은 7.425평방km이고 인구는 약 30만인데 그중 나시족이 57.5%를 차지한다.

    수수하면서 고풍스러운 건축풍격과 우아한 예술구조로 전국에 널리 알려졌다. 성내의 옥천수는 도시를 지나가며 많은 집들을 흐른다. 길마다 수로가 통하고 집집마다 문 앞에 푸른 물이 흐르고 있다. 어느 거리나 골목이나 모두 다 작은 다리가 있고 그 밑으로는 맑은 물이 흐른다.









    고성의 미는 또 그 지리환경의 자연과 잘 어울리는데 있다.

    고성 서북 30km인 곳은 해발 5596m인 지금까지 정복하지 못한 옥룡설산 및 얼음이 녹아 흐르는 하천으로 유명하다옥천수는 수, , 3대 주류로 나누어 고성구에 흘러들어가 몇 갈래의 도랑으로 갈라져서 수망과 오화석으로 깔아놓은 도로망이 서로 교차되게 한다.

    많은 중외 건축학자들의 칭찬을 받으며 '고원의 옛 소주', '동방의 베니스'라는 칭호를 받았다지금까지 줄곧 무수한 세계의 관광객들이 고성설산에 매혹되어 수수하면서 고풍스럽고 자연적이며 우아한 고성에서 떠나기를 아쉬워한다.








    미로와 같은 전통 가옥과 버드나무가 각 길마다 어우러져 있고 개천 양옆으로 소수민족들의 카페촌은 밤이면 축제를 연다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감동 애니메이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이 리장 고성이다거리의 분위기건물의 생김새 모두 만화 속 장면과 고스란히 일치한다.   1997년에 고성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는데고성 내 유구한 역사를 간직한 목조 건물들의 건축기법 때문이다못을 쓰지 않고 기둥과 들보를 끼워 맞춰 지은 가옥들은 1996년 리장 대지진을 용케 버텨내 세계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








    여강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여강고성이다.

    64개의 골목길, 354개의 수로와 다리로 구성된 나시족의 여강고성은 물길을 따라 자연스럽게 도시가 만들어지고, 소수민족의 다양한 특성이 아름답게 어우러져,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여강을 끼고 옥룡설산 밑 해발 2,400m에 있으며 기후가 여름에는 너무 덥지 않고 겨울에는 많이 춥지 않으며 연 평균 기온은 12.6. 일년 강우량은 950mm이라고 한다.








    의원(병원 보건소),  건물 외벽이나 벽화가 예전 그대로 남아 있다.








    야크의 각종 제품을 파는 전문점이다.





    초상화를 그리는 가게도 있다.








    앞쪽부터..  식수용,  과일.야채 씻는 물,   빨래하는 물


    농경시대에 한 샘물을 삼안으로 나누어 일안을 마시는 물로 쓰고 남은 이안으로 쌀과 채소를 씻고 남은 삼안으로 빨래를 하였다. 한번의 물을 세 번 사용하는 슬기다. 나시인들의 뛰어난 물관리 지혜와 환경보호의식이 잘 나타나 있다


    물이든 뭐든 자연을 함부로 다치지 않는게 리장 나시족(納西族)의 생활 규칙이다. 나무를 벨 때도 먼저 나무한테 "미안하다"고 몇 번 머리를 조아린 뒤에야 마지못해 벤다고...





    마을 북쪽의 샹산 아래에서 강물이 3개로 나누어져 마을 안으로 흘러 들어온다. 이곳에 사는 나시(納西)족은 3개의 우물을 사용하는데 맨 위의 것은 먹는 물로 중간 것은 야채 등을 씻는 물로 맨 아래의 물은 빨래 하는 물로 사용한다고 하며 총 300여 개 돌로 만든 다리가 있다고 한다.

    3가지 용수를 사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곳을 지나는데 식수와 과일.야채 씻는 곳, 빨래하는 물로 나누어진 곳의 재미있는 형상을 보며 간다.





    이 우물은 식수용이다.





    예전 우물





    금빛을 띤 물고기 한 마리가 우물을 지킨다.








    눈길을 어디에 두어도 구도가 잡히는 풍경이 나온다.




     

    또한 이곳은 1253년 원나라 쿠빌라이가 대군을 이끌고 운남에 진공하여 대리국을 정벌할 때 병영을 세웠던 자리였으며 이때 원나라의 쿠빌라이군이 금사강의 협곡을 건느지 못하여 애를 먹을 때 나시족이 양의 가죽을 벗긴 뒤 바람을 불어넣어 강에 띄워 원나라의 대군이 강을 도강할 수 있도록 도왔다고 한다. 그래서 대리국의 백족은 자기들의 멸망을 도운 나시족과는 원수처럼 결혼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1382년 리장을 통치하던 지방관 아자아(阿甲阿)가 명나라에 귀속하자, 명태조 주원장은 아자아 일족에게 무()씨 성을 하사하고 여강 일대 주민을 다스리는 지방호족인 투사(土司)에 임명했다고 한다.









    저녁이 되면 음식점마다 자리가 없을 정도로 붐빈다.





    우리도 멋진 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어느 여행기를 보니 이곳은 에니메이션 영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배경이 된 곳이며 '세계 일주 바이블'이란 책에서 연인을 위한 사랑이 깊어지는 여행지 2위로 나온 장소리고 한다.








    이곳은 성벽이 없는 고성으로 반들반들하고 깨끗한 응회암으로 된 좁은 골목길에 손으로 직접 지은 흙과 나무로 된 전통 가옥이 줄 지어 있으며, 골목 골목으로 흐르는 수로 위로는 작은 다리들이 얹혀져 있다.





    성벽이 없는 이 오래된 성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신비하고 평화로운 곳으로 꼽힌다이곳은 나시족의 심장부이면서 동파문화가 발원했던 발원지이다.





    나시족의 독특한 문화로 나시족은 그들만의 세계 유일한 상형문자인 동파를 사용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습성이 남아있다. 국가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백사벽화를 비롯하여 납서동경음악은 동파문자와 함께 세계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진귀한 보물이다.





    그림처럼 보이는 이들의 문자는 동파문자라고도 불리는데 담과 벽을 장식하기도 하고, 이를 문양처럼 기념품에 새겨 넣기도 한다.

    동파문자는 아직도 사용하는 몇 안 되는 상형 문자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나시족의 자랑은 의사소통 수단으로 고유의 상형 문자를 만들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상에는 2백개 가까운 독립 국가가 있고. 수천의 종족 집단이 살고 있지만 자기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는  국가나 민족은 우리 한민족을 포함해 손가락에 셀 정도 밖에 안 되는 사실을 고려하면 나시족의 문자 사용은 얼마나 장한 일인가?

    더욱이나 나시족이 동파라고 부르는 이 문자의 역사는 1천년도 넘는다니 과연 나시족이 얼마나 높은 문화 종족인지 알 수 있다.

     

    나시족의 유래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티베트 쪽에 살던 민족이 1,400여 년 전 윈난 성에 정착을 했다고 한다.

    나시족은 아직도 통용이 가능한 상형문자인 동파문자가 전해지는 것도 자신의 문화를 지키고자 하는 정신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또한 소수민족 중에서도 나시족은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하다.

     

     동파(東巴)라는 말은 동파문자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뜻이다.

    나시족이 쓰는 동파문자는 중국의 상형문자 만큼이나 오래된 것으로, 3,600년의 역사가 있다고 한다. 이 문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올라 있을 만큼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상형문자인 동파문자는 대략 2,012개의 문자가 있다고 한다.





    여기서도 나시족이 쓰던 동파문을 곳곳에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성 내 곳곳에 이런 수로가 있다...





    리장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시가지 이곳저곳을  관통해서 흐르는 시냇물.

    거대한 웨룽쇄산에서 눈이 녹은 거울같이 맑은 물이, 리장의 운치를 한층 정갈스럽게 보이게 한다.





    여강(리짱 麗江)을 아름다우면서 동시에 로맨틱하게 만드는 것은 다름 아닌 오래된 구시가.

    그 아름다움은 유네스코에 의해 마을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이 된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다.

    구시가는 중국 전통의 건축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고풍스럽고바닥에 돌을 평평하게 깔아 다른 곳과는 걷는 맛이 다르다.





    사방가(四方街)의 중심..





     간판을 자세히 보면 동파상형문자 병행 표기가 아직도 많다.





    고성의 사방가(광장 같은 곳),  나시족의 공연이 있기도 한다.





    여강고성은 800년 역사를 가진 나시족의 중심지로 1997년도에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 등재었으며, 사방가는 여강고성의 중심으로 옛 차마 마방들의 물자 교역 중심이었다.






    여강에는 여강만의 색깔이 있다.

    수로에 비치는 모습도 그렇고 색다른 옷차림을 한 나시족도 그렇다.

    나시족의 문화는 특히 독특하다.





    게다가 마을을 흐르는 작은 개울은 점점 수량이 줄긴 하지만 마을의 운치를 더 해준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양쪽을 잇는 석조 다리와 그런 다리를 비춰내는 개울은 여강을 다시 찾고 싶은 곳으로 만든다.





    낮인데도 골목마다 사람이 많긴 많다.   밤 만큼은 아니라도..........





    나시어로 진사강이 머리를 돌리는 곳이란 뜻을 지닌 여강은 한때 차마고도의 중심지로 무역과 상업이 활발하게 이루어 진 곳이기도 하다.


    이곳은 성벽이 없는 고성으로 반들반들하고 깨끗한 응회암으로 된 좁은 골목길에 손으로 직접 지은 흙과 나무로 지은 전통가옥들이 줄지어 있으며 골목골목을 흐르는 수로 위에는 작은 다리가 얹혀있다.

    시내 중앙 광장에 사거리는 고성의 중심가로 예전부터 상인들이 교역을 하던 곳이며 고성 안의 얽혀있는 수많은 골목들이 모두 이곳으로 통하게 되는데, 낮에는 교역시장이 서면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게 된다.

    또한 중심으로 사방으로 개천이 흐르기 때문에 개천을 따라만가도 시내를 다 돌수가 있다.





    여강고성의 초입에 있는 옥하(玉河, Yuhe) 광장으로 다시 나온다.





    옥하광장에 있는 토담 앞에서





    보존이 잘 되어 있는 성벽의 벽돌 모자이크











    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여








    버스를 타고








    여강의 우리가 묵을 호텔로 왔다...















    여강에서의 첫날을 묶을 호텔이다... 

    오늘 본 여강도 멋졌지만 앞으로 여강에서의 여행이 무척 기대되고 가슴설레인다...  내일의 더 멋진 여행을 위헤 충분한 휴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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