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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성 위수강 북쪽 언덕의 병산정( 경북 의성군 비안면 동부안길 76, 비안면 장춘리 1046)여행방/경상도 2018. 11. 27. 18:48
의성 위수강 북쪽 언덕의 병산정 (경상북도 의성군 문화유산 21호)
2018. 11. 27.
2018. 11. 22. 고향 동네친구 모친 상문하러 의성 안계농협 장레식장 가면서 들러본 비안향교. 상문 후 조부모님 산소와 엄마산소. 정수사. 장춘리 비로자나불과 병산정을 바삐 둘러볼수 있는 시간이었다...
어렵게 찾을 수 있었던 우리 고향의 문화재인 경북 의성군 비안면에 소재한 장춘리 비로자나석불좌상(경상북고 문화재 자료 304호)을 만나고 장춘리 비로자나석불좌상 찾아갈때 보이던 이웃해 있는 병산정으로 향해본다...
병산정 주차장 입구의 좌우 입석
비안면 장춘리에 있는 병산정(屛山亭)은 비안 박씨들이 조상을 기리기 위해 세운 곳이다.
비안 박씨(比安 朴氏)의 시조는 박우이다. 고려 시대 문하 시중(門下侍中)을 지내고 병산군(屛山君)에 봉해졌으므로 후손들이 그를 시조로 하고 월성 박씨(月城 朴氏)에서 분적(分籍)하여 관향(貫鄕)을 비안(比安)으로 삼았다. 비안현은 병산현(屛山縣)이라는 별호를 가지고 있어 비안 박씨는 병산 박씨(屛山 朴氏)로도 불린다.
박우는 신라의 시조인 박혁거세(朴赫居世)의 33세손이고, 일길찬(一吉湌) 박지상(朴池上)의 25세손이며, 판상시상서(判常寺尙書) 박영주(朴英柱)의 4세손이라 한다. 박우의 아들은 판도판서(版圖判書) 박일(朴逸)이다. 후손으로는 조선 시대 때 대사헌(大司憲) 등을 지낸 박서생, 임진왜란 당시 전공(戰功)으로 선무 원종 공신(宣武原從功臣)이 된 박충인(朴忠仁), 박충인의 아들로서 병자호란에 공을 세운 박효순(朴孝純) 등이 있다. 분파로는 녹사공파(錄事公派), 사맹공파(司猛公派)가 있다. 한편 『조선 씨족 통보(朝鮮 氏族 統譜)』에서는 신라 때 장상(將相)을 지낸 박지생(朴池生)의 20세손이자 고려 시대 사온직장(司醞直長)을 지낸 박종주(朴宗柱)를 시조로 보고 있다.
비안 박씨의 시조인 박우의 후손인 박서생이 중시조이다. 비안 출신으로 세종 대에 이조 참판(吏曹參判)과 대사헌, 안동 대도호부사(安東 大都護府使) 등을 역임하였으며, 자택을 희사하여 비안 향교(比安 鄕校)를 영건하였다고 한다. 당시 비안현은 상주목의 속현이었는데, 박서생이 복현(復縣)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 후 그의 자손들이 대대로 비안현에 거주하였다. 1714년(숙종 40) 경상북도 의성군 구천면 위성리에 세워진 구천 서원(龜川書院)에 배향되었다고 하나, 1868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병산정은 병산 박씨(비안 박씨) 시조 박우와 그 10대 후손 율정 박서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문충공 박서생 비를 과학, 실학의 선구자 의미하는 뜻으로 나라가 위급할 때인 임난 병자호난에 후손인 병애공 충인 아들 북촌 효순 충신 장군의비로 삼발로 넘이 지지 않게 떠 받임 큰 덥개를 국가로 상징 유래 없은 큰 비를 고려 초에 문하시중 병산군 朴瑀 壇 앞에 2013 12월에 세웠고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1046 도리원-안계 가는 새길 좌측에 우둑 서 있다.
율정 문충공 박서생께서 배위 보국 즉 충성을 하신 실학의 선구자로 비석도 현대화를 상징한다. 즉 넘어지지 않은 삼족발 그 위는 국가를 상징하는 7평의 상판 떠받침의 형상이 비석사상 유래없는 일이다.
병자호란에 공을 세운 북촌 박효순(朴孝純) 창의비 (옳음을 크게 행함)
조선 초대 통신사 율정 박서생 기념비
마치 석물같은 두 개의 돌기둥을 큼직하게 세우고 가운데는 ‘조선초대통신사 율정 박서생 기념비’를 두어 세로로 뚜껑을 놓았으니 마치 ‘III자’ 형태의 비석이 되어 있다.
공덕비
사적비
병산정 앞에는 병산군을 기리는‘병산군제단비’가 세워져 있다.
비안 박씨의 시조인 박우의 제단비
절벽 위에 병산정이 있다.
병산정 전면 현판 글씨는 1935년 개축 당시에 이명구씨(세종 아들 안평대군 자손으로 안평동 거주)가 썼다.
병산정은 병산 박씨(비안 박씨) 시조 박우와 그 10대 후손 율정 박서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자이다.
숨 가쁘게 달려온 위천이 100여 년 전까지 비안현청이 있었다. 비안면 서부리 앞을 지나 한걸음 더 동남쪽으로 흐르면서 평풍을 펼쳐낸 듯한 병산 언덕빼기 아래서 쉬어간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의 건물은 허물어지고 현재의 병산정은 1935년에 다시 건립된 것이다.
屛山亭(병산정)과 앞 위수강(비안 낙동강 지류), 의성군 비안면 장춘리 동쪽 300m 위수강 북쪽 언덕 병산정
비안면 장춘리에는 굽이치는 위천을 내려다 보며 날아갈 듯 한, 한 폭의 그림 같은 정자가 절벽 위에 있는데 이것이 바로 병산정이다.
병산정 남쪽 언덕 밑은 위수강으로 옛날에는 소금배가 왕래하던 강으로 1km 동쪽으로 흘러 雙溪쌍계에서 의성 도리원에서 오는 물과 만나서 비안면 사무소-뒤천- 구천-안계-단밀-상주에 합류 낙동가로 흐른다.
위천은 다시 서쪽으로 굽이도는가 하더니만 구미리에서 의성군 봉양에서 흘러드는 쌍계천을 만나 수역을 넓힌다. 그리고 비안면 소재지가 있는 이두리를 지나 용천리를 거쳐 비옥한 들녘을 끼고 구천을 넘어선다. 마침내 상주시 낙정에 이른 위천은 300리 물길을 감춘채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물줄기보다 풍요가 익어 내리는 그 중심에 의성군 비안과 안계가 자리한다.
병산정은 절벽위에 우뚝서 있다. 병산정에 올라서면 의성 위천과 비안뜰을 조망할수 있고 한국전쟁 당시 지휘소로 활용되기도 했다고 한다.
병산박씨 시조 ‘박우’라는 분이 나라에 공을 새워 병산군에 봉해져서 이 곳 땅을 식읍으로 받아 다스렸다고 한다. 박우는 율정 박서생(1371년~1436년)의 9대조 이다. 한 대를 25년씩 계산을 하면 225년 전이니 1146년에 태어나서 50세 정도에 병산군에 봉해졌다고 보면 1196년 정도에 이곳에 정착한 것으로 짐작된다.
병산양수장 있는 곳으로 내려간다.
병산 양수장
屛山壁(병산벽), 병산(비안현)이라는 고을을 다스린다.
'병산벽' 글자는 김용배 초대 비안군수가 1898년 무술년에 박서생 사적비를 쓰면서 같이 새긴 것으로 보인다.
金容培(김용배), 1898년에 초대 김용배 비안군수가 새긴 것으로 짐작된다. 비안군(比安郡)은 1895년에 생겨서 1914년 의성군에 통합되었다. 김용배는 1895년~1899년 사이에 비안군수로 있었다.
위쪽은 金容培, 아래쪽은 屛山壁 이라고 새겨져 있다.
병산양수장에서 동쪽 강가로 난 길을 따라 100m 정도 간 다음 위쪽을 쳐다보면 글자가 보인다.
경북 의성군 비안면에 소재한 장춘리 비로자나석불좌상(경상북고 문화재 자료 304호)을 만나고 경북 의성군 비안면 서부리에 있는 3.1운동 경상북도 시발지 기념공원을 찾다가 병산정이 보여 뜻하지 않게 볼수 잇었던 곳이다.
이제 포항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라 3.1운동 경상북도시발지기념공원은 다음으로 미루고 포항으로 향한다.
고향 동네친구 모친 상문하러 의성 안계농협 장레식장 가면서 들러본 비안향교. 상문 후 조부모님 산소와 엄마산소. 정수사. 장춘리 비로자나불과 병산정을 바삐 둘러볼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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