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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이 아름다운 경산의 팔공산 환성사 (경북 경산시 하양읍 사기리 150)사찰여행/경상도 2018. 10. 29. 19:45
대웅전이 아름다운 경산의 팔공산 환성사(環城寺)
2018. 10. 29.
2018. 10. 28. 가을빛이 고운 날 나 혼자만의 여행으로 경산 지역의 환성사와 환성사 산내암자 성전암, 대한불교 조계종 은해사 하양포교당, 하양향교, 육영재 등을 둘러본 여행 길 이었다...
오늘 첫번째 여행지는 09:30 포항을 출발해 대구.포항 고속도로를 달려 청통 IC를 진입해 와촌을 지나 하양 진입 후 환성사 주차장 도착 후 보물인 아름다운 대웅전을 만나본다...
하양 소재지에서 북쪽을 달려간다...
환성사 가는 길은 비교적 도로가 잘 되어 있는 편이었다...
환성사 입구의 극락교를 건너 약간의 오르막 길을 오르면 확 트인 공간에 환성사가 있다.
극락교 아래로는 팔공산에서 흘러 내려온 맑은 물이 흐른다...
절 입구 주차장에 주차 후
일주문 아래에 있는 환성사 도로시주 대공덕비와 명부전 중창시주 대공덕비
일주문 앞의 석조 수조와 석물들....
가장 먼저 반기는 입구 환성사 일주문 석주의 모습이다.
환성사 일주문 앞의 사찰 설명판
일주문의 돌기둥 넷은 예전의 석주가 그대로 남아 있던 것이고, 지붕은 근래에 얹어졌다고 한다.
보통 일주문은 두개의 기둥인데, 네개의 기둥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지나 다녔을지 짐작케한다.
돌기둥 중 안의 두 기둥은 팔각기둥이며 밖의 두 기둥은 네 면으로 된 사각기둥이다. 석주 +자형에 목재를 끼워 넣었다.
입구의 일주문은 자연석 덤벙주초 위에 기다란 네 개의 돌기둥을 일렬로 세우고 맞배지붕을 얹었다. 이익공의 다포식 공포를 짰으며, 양쪽 지붕의 합각 부분에는 풍판을 달았다. 양산 통도사·부산 범어사·강릉의 낙가사에도 돌기둥 일주문이 있으나, 통도사나 범어사의 일주문보다 그 규모가 크다.
일주문에서 바라보면 신라시대에는 왕성했던 환성사를 상상하게 된다.
일주문 들어서서 좌측에는 조선시대 부도 밭
환성사 부도군
절 앞의 넓디 넓은 터에 자유 분망하게 자리 잡은 모습은 무심히 지나기 쉬운 외진 곳에 숨겨져 있는 다른 부도군에 비할 수 없이 많은 눈길과 관심이 닿을 수밖에 없어 부도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에술적 조형물처럼 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도 탑들이 세워져 있는데 그 속에 불상도 세워져 있는 특이한 모습이다.
약사여래불 좌상은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정되며 머리와 대좌는 새로이 만든 것이다.
이 절 20m 아래쪽에는 비석 3기와 부도 6기로 이루어진 부도밭이 있다. 비석의 내용이나 부도들의 주인은 알 수 없지만 석종형·원구형 등 조선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짐작되는 이 부도밭은 옛날 전성기 환성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부도에서 바라본 환성사 전경이다...
참 단아한 사찰 환성사 이다...
환성사(環城寺]는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팔공산(八公山)에 있는 사찰이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하기리 팔공산 기슭에 있으며, 835년(신라 흥덕왕 10)에 왕사 심지(心地)가 창건하였다. 산이 성처럼 절을 둥글게 둘러싸고 있어서 환성사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전한다.
1635년(인조 13)에 신감(神鑑)이 중창하고, 1897년(광무 1)에는 긍월(亘月)이 다시 세운 것이 오늘에 이른다.대웅전과 명부전· 심검당· 수월관(水月觀)· 산신각·천태각 등이 남아 있고 부속암자로 성전암이 있다.
이밖에 삼층석탑과 돌화로, 일주문 돌기둥, 부도전 등이 남아 있다.
일주문 들어서서 우측에는 환성사 설화를 담고 있는 용연이라는 연못이 있다. 용연은 2005년 7월에 조성되었다는 표지석이다.
일주문 들어서서 우측 옆에는 예쁜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뭔가 사연을 담은 연못처럼 물길을 잇고 있다.
환성사 전설의 못 용연.. 옛날에 이 못을 메워서 절의 기운이 쇠락했다고 한다.
고려 말 환성사에 큰불이 나 거의 폐사에 이른 적이 있는데,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절 입구에는 자라처럼 생긴 자라바위(또는 거북바위)가 있었는데 창건주인 심지는 "이 바위가 있는 한 절이 번창할 것"이라 예언하였다. 자라바위 덕분인지 하루가 다르게 신도가 늘어나면서 번창하였다.
고려 때에는 대선사(大禪師)가 난 것을 기념하여 일주문을 세우고, 대웅전 앞에 커다란 연못을 팠다. 선사는"연못을 메우면 절이 쇠락할 것"이라고 예언하였고, 승려들은 선사의 유지를 받들어 연못을 잘 돌보았다.
그러던 어느 해, 신도들이 너무 많이 찾아오는 것이 귀찮아진 주지가 자라바위의 목을 잘라버리도록 하였다.그러자 연못이 핏빛으로 물들었고, 이를 기이하게 여긴 신도들이 더 많이 몰려들었다. 이를 또 성가시게 여긴 주지의 명령으로 연못을 메우기 시작하자 연못 속에서 금송아지 한마리가 슬피 울며 동화사로 날아가 버리고 연못을 다 메우자 절 전체에 불이 붙기 시작하여 대웅전과 수월관만 남긴 채 모두 태워버렸다. 이후 선사들의 예언대로 신도들의 발길이 뚝 끊어졌다고 한다.
'용연'에서 바라본 환성사
환성사와 세월을 함께하고 있는 고목들이 색동옷을 입고 있다.
이 바위가 '거북바위'... 환성사의 쇄락에 대한 설화를 담고 있다.
옛 전설을 되살릴 수 있는 거북바위와 연못의 발원이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용연을 지나서 커다란 은행나무를 거쳐 올라 오면 수월관을 마주하게 된다.
흙과 돌로 만들어진 담장이 터져 있고 그 중앙에 이층 누각인 수월관이 있다
수월관은 이 절의 문루인데, 예전 대웅전 앞에 있던 연못에 잠긴 달을 수월관에서 바라보는 풍경이 가히 일품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다.
팔작지붕에 정면 5칸의 2층 다락집이다. 앙옆에 돌담장을 나즈막하게 쌓았고,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수월관으로 들어선다.
수월관 누하주는 산지형을 이용하여 기둥의 높이를 앞. 중간. 뒤를 다르게 하여 자연을 존중하였다.
수월관 밑의 돌계단을 밟고 오르면 환성사 대웅전(보물 제562호)이 보인다.
수월관 아래 계단으로 보이는 삼층석탑과 대웅전
환성사 수월관 옆모습
수월관 2층 마루에 올라 바라보는 환성사의 경내모습이다.
수월관 2층 마루에 올라 바라보는 환성사의 대웅전쪽 경내모습이다.
환성사 수월관 뒷모습
환성사 대웅전을 중심으로 아래단의 향 우측의 요사로 차방으로 사용중이다...
3층석탑이 보이고 대웅전 그리고 아름다운 수월관이 마주하고 있는 마당에 도착한다.
환성사 대웅전을 중심으로 향 우측으로는 요사, 향 좌측으로는 심검당을 두어 수월관과 함께 ㅁ자형을 이룬다.
수월관을 지나 대웅전 앞마당으로 들어서면 특이한 돌기둥 두개가 자리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정료대(庭燎臺)라고 부른다. 궁궐이나 서원, 향교, 사찰 등 넓은 뜰이 있는 건물에서 밤에 불을 밝히기 위해 설치한 시설물이라고 한다.
환성사 심검당(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84호)
심검당은 향 대웅전 아래단 좌측 옆에 있는 강당(講堂) 건물로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정면 3칸, 측면 3칸에 겹처마의 맞배지붕이며, 근래에 양와(洋瓦)로 새로이 단장하였다. 고려 말 조선 초 시대의 건축양식을 띤 심검당은 은해사 영산전(靈山殿)보다 먼저 건립되었다고 하는데, 1976년에 해체 중수되었다.
심검당 좌측 내부에는 관음보살을 모시고 있다.
장대석 1단의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았으며 정면의 쪽마루는 나중에 설치한 듯 하고 창과 문도 새로이 고친 듯 하다.
명부전 앞 마당에서 바라본 심검당 후면과 잘 생긴 굴뚝이다.
대웅전 마당의 좌.우 2개의 정료대(庭燎臺)
환성사 석탑과 대웅전
환성사 석탑
석탑은 일명 연화탑이라고도 부르는데, 상층 기단부 갑석과 초층 탑신 사이에 별석(別石)으로 된 매우 큰 괴임돌을 받친 매우 드문 형태를 하고 있다.
본래의 모습은 3층탑이었는데, 어떤 이유로 이렇게 변형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옥개석과 탑신부가 기단부위에 거꾸로 놓여있는 것은 확실하다. 개성만점이다.
석탑이 대웅전과 일직선이 아니고 조금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대웅전 앞 마당의 대웅전과 수미단의 설명판
환성사 대웅전(보물 제 562호)
대웅전은 환성사의 중심 건물로 남향하고 있으며, 자연석 기단 위에 둥근 기둥을 세워 정면 5칸, 측면 3칸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겹처마 팔작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부분에 장식하여 짜는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이다. 기둥은 가운데만 굵고 높거나 크지 않고 건물의 앞면과 옆면 길이가 거의 같기 때문에 매우 안정된 비례를 이루고 있다.
내부에는 어칸(가운데 칸)의 뒤쪽으로 화려한 불단이 설치되었는데, 목공예적인 장식으로 아름다우며, 불상 위로는 운궁(구름모양)으로 장식된 보개(보살상의 머리 위를 가리는 덮개의 일종으로 불교의 장엄구)를 설치하였다.
소란(본바탕에 파거나 또는 가느다란 나뭇조각을 따로 대어서 턱이 지게 만든 물건)반자가 짜여져 높직하게 올려다 보이며 장중하게 느껴진다.
1976년 부패된 목재를 갈아내고 고색단청(古色丹靑)을 하였다.
건물의 구조나 단청이 대체로 예스러움을 지니고 있는 건축물이다.
석가모니부처님을 본존으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했다.
환성사 대웅전 신중탱
환성사 대웅전 수미단(경북유형문화재 439호)
내부에는 뒤쪽으로 화려한 불단이 있는데 목공예적인 장식으로 아름답다. 1976년 낡은 목재를 갈아내고 단청 무늬와 퇴색된 색채에 비슷하게 보수하였으며, 바깥쪽 단청은 새로 칠하여 옛 것과 새 것의 색이 섞여있다.
수미단은 상중하 3단 12칸의 족대로 짜여진 장방형 구조이다. 아래의 족대 전면에는 비룡과 익룡을, 측면에는 지물을 입에 문 귀면이 조각되었다. 여기서 왼쪽 1~2칸 안상 속에 부조된 귀면상은 왼새끼를 입에 물고 있는데 이는 악귀를 쫓는 벽사의 금줄이다. 부처님을 악귀로 부터 지키기 위함일리라. 이 밖에도 12칸 마다 게의 눈 같은 안상을 만들고 그 안이 온갖 꽃들과 동물을 새겨 한 폭 한 폭 투각한 민화를 만들고 있다. 연잎 아래서 물고기가 노니는가 하면, 날개 달린 사람이 두 팔을 위로 모아 덩굴진 연꽃을 붙잡고 있는 등 끌질을 한 장인의 상상력과 솜씨가 다채롭기 그지없다.
전면의 12폭이 <본생경>의 부처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면, 불단 좌우 측면에 각각 4폭씩 베푼 장면. 연결하면 8폭의 민화병풍에 손색없다. 좌우 측면을 합한 8폭 병풍은 보주, 꽃 등 불전에 올리는 세세생생의 공양헌공(供養獻供)을 주요한 소재로 삼았다.
사각형의 세계를 들고 있거나 오색의 빛이 흐르는 보주를 공양헌공하는 나찰이 인상적이고, 기단부의 두팔 뻗친 용의 자세에서 익살과 해학이 넘친다.
특히 눈길을 끄는 장면은 귀갑을 두른 직립보행의 두 나찰이 신령한 오색기운이 흐르는 보주를 쟁반에 담아 이고 가는 대목이다. 이토록 신비한 장면은 일본 대덕사 소장 고려불화 수월관음도 등에서 간혹 접하던 제재다. 또 그 옆의 화면은 조선후기 민화의 어해도(魚蟹圖) 속에 나올 법한 물고기 도상이다. 고려불화에 흐르는 전통의 면면과 당대의 민화화풍을 동시적으로 수용하고 있어 반갑고도 놀랍다.
전면 12폭 중 향좌측의 4폭. <본생경>의 부처님 전생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전면 12칸에 부처님 전생 이야기
12칸 모두의 무대는 초록의 푸르름이 넘치는 숲 속 나무다. 생명의 숲에서 부처님께서 전생에 무수히 쌓아온 자비의 선근과 공덕의 우화가 풀어진다. 화면에 등장하는 우화의 주체는 모두 동물이다. 물론 가릉빈가를 연상케 하는 날개 갖춘 사람형상도 있다. 그를 제외한 모든 주체들은 코끼리, 말, 원숭이, 사슴, 오리, 공작, 앵무새 등의 동물로 보이는데, 그 동물들은 <쟈타카>. 즉 <본생경>에 등장하는 부처님 전생의 몸이다. <본생경>에서 부처님은 때론 원숭이, 토끼, 사슴, 코끼리였고, 때로는 비둘기나 공작새, 앵무새였으며, 나무신, 혹은 용이 되기도 하셨다. 그 동물들의 몸을 빌려 ‘앵무새의 숲’, ‘왕을 깨우친 원숭이’, ‘황금빛 공작’, ‘행운을 불어오는 명마’ 등의 주인공이 되어 장래의 세존이 되시는 선근을 쌓고 지혜를 발휘하셨다.
화면의 공통적인 무대인 푸르름의 숲은 <본생경> 429편에 등장하는 ‘앵무새의 숲’을 모티프로 해석해도 좋을 듯하다. 갠지스강 언덕의 우담바라 숲에 살고 있던 앵무새들은 과욕을 부리지 않고 화목하게 지낸다. 숲이 가뭄에 메마르거나 시들어도 자신들의 거처를 다른 곳으로 옮겨 가지 않는다. 먹을 열매도 없는데 말이지. 그를 가상히 여긴 제석천이 물었다. 그대들은 어찌하여 이 숲을 떠나지 않는가? 앵무새의 왕이 말했다. 이 나무는 우리들의 벗이며 피를 나눈 형제라고 할 수 있다. 진실한 사이란 생사고락을 함께 하는 것이다. 나무가 말라 죽었다고 해서 어찌 이 숲을 떠나갈 수 있단 말인가? 그 앵무새의 왕이 부처님의 전생이시다고 <본생경>은 전한다. 부처님도 영원히 우리 중생 곁에 머무심을 일깨운다. 화면 저마다가 <이솝우화>처럼 교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컷의 화면 속에 부처님의 오래된 인연 이야기가 담겨 있다. 영화 포스터의 스틸컷 한 컷 속에 스토리 전체를 담고 있는 이치다. 이 점이 환성사 대웅전 불단이 지닌 불교미술사적인 중요한 가치다.
세로 틀에 배첩한 표구작품 같은 화면
팔공산 환성사 대웅전 불단은 그런 보편적인 특성에다 칸칸이 화폭의 성격을 가진 회화적인 독창성으로 인해 주목을 끈다. 다른 불단장엄이 가로 지향의 화면이라면, 환성사 대웅전의 불단은 세로 지향적이어서 저만의 고유한 독자성을 가진다. 또한 화면 한 칸의 크기가 한 화면의 독립성을 일정하게 보장할 만큼 충분히 크다. 칸칸이 안감을 대고 배첩 손길로 마름질한 표구작품 같다.
전면 12폭 중 향우측의 4폭. 코끼리, 원숭이, 공작 등은 부처님 전생의 몸이다.
전면 12칸 화면에 펼쳐진 세계는 생명과 자비의 기운이 흐르는 숲의 세계다. 화폭 칸칸은 우아한 반자틀을 갖춘 후, 조형화면의 청판을 덧댄 형식이다. 봉긋봉긋한 반자틀은 대단히 인상적이다. 독립된 반자틀을 갖추고 있다는 것은 저마다 화면이 갖춘 독자적인 사연을 시사한다. 한 칸 한 칸마다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담은 까닭이다. 틀 좌우로 오채의 빛을 지닌 생명력의 새싹 촉이 뻗쳐 화면공간에 신성의 힘을 불어 넣는다. 마치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그 오채의 촉을 따라 들려주는 듯한 미묘한 모티프다. 붉은 기운이 도는 촉은 본질적으로 인과의 연기법을 강하게 암시하며, 부처님이 갖추신 자비의 본원력을 상징하는 심벌에 가깝다. 단순함 속에 고귀함을 담고 있다.
환성사 불단은 한 시대의 특성을 창조적으로 재해석 했다.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소목장 장인의 창조적 정신이 숭고한 승화를 이룩한 예술적 성과라 하겠는데, 그 역시 둘도 없는 그 절집의 빛이다.
대웅전 내부의 장엄한 보궁형 닫집과 천정의 화려한 금단청
대웅전 닫집 용의 모습
대웅전 내부 공포
대웅전의 향 불상 왼쪽 천정에는 용 모양의 종이 달려있는데, 이 종의 용도는 서양의 파이프 오르간과 비슷하다. 종에 줄을 달아 예불할 때 당기면 위에서 신비한 소리가 울려 퍼진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점차 그 기능을 상실해 스님들조차도 용도를 아는 이가 드물다 한다.
고찰에 가면 간혹 이 종을 볼 수 있는데 그나마도 종은 사라지고 용만 남아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환성사 대웅전에는 한 두 개의 종이 빠져있는 것을 제외하면 거의 완벽하게 그 모습이 남아 있다.
처마는 기둥 높이에 비해 길게 나와 모자를 깊이 눌러쓴 분위기다.
대웅전의 무거운 처마는 활주를 이용해서 받치고 있다.
앞면은 칸마다 2단의 궁판을 받침 정자살 쌍여닫이를 달았다.
환성사 대웅전에서 바라본 석탑과 수월관
대웅전 옆면에는 첫 칸만 외여닫이를 달았는데 오른쪽 문은 철판으로 막아놨다..
환성사 명부전과 심검당 뒤에 있는 잘 생긴 굴뚝이다.
1982년 조성한 단아한 맞배지붕의 명부전
명부전 법당에는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좌우에 도명존자(道明尊者)와 무독귀왕(無毒鬼王)을 협시(脇侍)로 봉안하고 있다.
그리고 그 좌우에 명부시왕상을 안치하며, 시왕상 앞에는 시봉을 드는 동자상 10구를 안치한다. 이 밖에도 판관(判官) 2구, 녹사(錄事) 2구, 문 입구에 장군(將軍) 2구 등 모두 29개의 존상(尊像)을 갖추게 된다.
향 지장보살 좌측의 전경
향 지장보살 좌측의 전경
명부전 측면 모습
명부전이 있는 마당에서 바라본 환성사 전경
환성사 대웅전과 명부전 사이에서 한발짝 물러나 있는 산령각. 천태각
산령각. 천태각의 내부의 독성탱과 산신탱
산령각. 천태각 앞에서 바라본 심검당과 종무소가 있는 감로당 요사
명부전 앞의 종무소가 있는 감로당 요사
1995년 요사인 감로당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뒤에서 본 감로당 요사
명부전에서 바라본 환성사 마당이 멋진 기와 담과 잘 어울린다.
명부전 앞 마당에서 바라본 명부전 처마와 산령각.대웅전. 심검당.요사 수월관이 차례로 이어진다..
명부전 앞 마당에서 바라본 대웅전 영역
환성사에도 가을이 머물고 있었다...
환성사 주형 석조(경상북도 문화재 자료 제592호)
환성사의 서쪽 끝에 새로이 조성한 탬플스테이 공간(?) 같은 느낌...
환성사의 서쪽 끝에 새로이 조성한 전각 앞의 많은 석조부재들...
한켠에 쉼터도 있다..
환성사를 꼼꼼이 둘러본 후 11:34 환성사 사찰 좌측 끝에서 370m 올라가면 된다고 하는 성전암으로 향해본다.
환성사의 북쪽 산내암자 16나한 기도도량 성전암으로 향한다. 소나무들이 울창이 있어 피톤치드 뿜뿜 나는 길을 따라 걷기에 넘 좋다. 가을 따라 가는 길이 정말 좋다.
성전암은 1897년 긍월(亘月)대사가 환성사를 다시 세울 때 조성하였던 암자로 환성사의 북쪽 팔공산 산록 8부 능선에 자리잡고 있다.
고운 단풍과 수북이 쌓인 낙엽과 겨울철을 대비한 장작 그리고 산과 어우러진 주변 경관은 장관 그 자체다.
성전암은 환성사 스님의 기도도량으로 평상시에는 아무도 없는 한적한 곳이다.
가서 보지 않고는 정말 후회하는 환성사의 산내암자 성전암을 내려오니 환성사 전각들이 보인다.
참 좋다. 산사를 다니는 그 길은...
성전암에서 환성사로 오가는 왕복 도보시간과 성진암에 머무는 시간을 포함한 50여분이 걸려 다시 환성사의 서쪽 끝 성전암 표지판으로 다시 돌아오니 12:24 이다....
일요일인데도 간간이 사람이 보일뿐 너무 조용한 환성사이다...
대웅전 영역의 수월관 아래로 내려가지 않고 감로당 옆길로 해서 부도밭 옆길로 내려 간다...
너무 짧아 많이 아쉬운 계절 가을이 환성사에서 머물고 있다.
부도를 보며 내려서다가...
다시금 환성사를 돌아본다...
너른 터에 겨울이 오고 가을이 가고 다시 쉼 없는 계절이 순환하노라면 환성사는 다시 흥망성쇠의 한 꼭지점, 흥과 성에 이르게 되리라.
그렇게 한참을 온전히 환성사와 성전암에 빠져 있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환성사 극락교를 지나
다시 중생들의 사바 세계로 나간다...
인연 다으면 와 보고 싶었던 천년고찰 환성사에서 높은 하늘과 살랑이는 바람에 시간을 거슬러가 봤다.
가까이 은해사와 동화사 큰절 못지않은 팔공산 고찰로 포근한 산세와 절터에서 마음한 자락에 그 옛날의 영화를 품고 왔다.
내 기억에 가능한 오래 기억하고픈 사찰이다...
환성사와 환성사 산내암자 성전암을 나와 하양 들머리에서 지나왔던 대한불교조계종 은해사 하양포교당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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