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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의 공원- 경북 군위군 군위읍 군위금성로 270 (군위읍 용대리 238-7)
    여행방/경상도 2018. 6. 26. 19:18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의 공원




    2017.     6.    26.

      

      

    2017.   6.   23.   형제들과 이맘때 엄마생신 즈음이면 친정엄마 산소에  와서 산소도 들러 보고 산소 근처의 정자에서 맛난 고기도 구워 먹으면서 친정엄마를 기념한다.


    친정 엄마 산소 갔다가 포항으로 나오면서 군위의 지보사를 보고 지보사 입구의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의 공원'도 함께 본다 ......

      





     지보사로 들어가는 도로변에 있는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의 공원입구에는 환하게 웃고 있는 추기경님의 모습이 담긴 대형 사진이 우리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공원은 김 추기경 생가를 중심으로 그 일대 17282에 추모기념관경당,  추모정원잔디광장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 등으로 조성됐다.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에는 추모기념관, 생가, 옹기가마, 추모정원, 잔디광장, 십자가의 길, 평화의 숲이 있다.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의 공원 안내도








    이 세상에는 옹기 같은 사람이 필요합니다.'옹기'로 꾸며진 중앙광장이 나온다. 





    김수환 추기경 추모 기념관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추모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마자 반갑게 맞이하는 추기경의 실물 크기의 상징 조형물이.


    기념관 입구에는 실물 크기의 김 추기경 동상이 설치돼 눈길을 끈다특히 동상 뒤편에 적힌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는 김수환 추기경을 껴안아 보세요라는 안내 문구를 따라 동상에 다가가면 김 추기경을 안은 듯 온기를 느낄 수 있다.





    추기경님의 상에 열선을 넣어서 따스한 체온을 느낄 수 있게 조성해 놓았다.  만지면 온기가 느껴지게 만들어서 따뜻함을 바로 느낄 수 있었지만 보는 것 만해도 따뜻했다.





    추모기념관에는 김 추기경의 유품과 영상 자료 등 볼거리가 다양하다.





    김수환 추기경 기념공원은 2010년 타당성 분석 연구용역을 시작으로 20155월 착공해 201712월 완공했다.





    창호문 뒤에서 기도하거나 성서를 읽어주는 어머니와 김 추기경의  어린 시절 모습을 실루엣 쉐도우스크린 백라이트 영상으로 연출하였다.


     김수환 추기경 가족사


    옹기장수의 아들 김수환 추기경
    "유복자로 태어난 아버지 김영석은 다른 신자들처럼 옹기를 팔며 이곳저곳 떠돌면서도 부모의 독실한 순교 신앙심을 이어나갔다. 김 추기경의 외가도 신앙심이 매우 깊었다. 외할아버지 역시 을해박해와 정해박해를 거치면서 꿋꿋하게 대구 지역에 신앙을 전파한 분으로 대구 교회 창립의 밑거름이 된 인물이었다. 외삼촌 또한 수도자도 아니면서 신앙을 위해 평생 동정으로 살아 '서동정'이라 불렸다."





    너는 커서 신부가 되거라

    옹기장수로 떠돌면서도 깊은 신앙심을 지켜나갔던 김수환 추기경의 아버지 김영석요셉이 돌아가신 뒤 어머니 서중하마르티나는 포목 행상과 옹기를 팔며 집안의 생계를 꾸려 나갔다등에 짊어진 옹기의 무게 만큼 고단하고 힘든 삶을 산 아버지와 홀로 8남매를 키우며 세상사의 어려움을 겪어야 했던 어머니의 삶을 보면서  어린 김수환의 가슴엔 부모들이 힘든 삶 속에서도 끝끝내 지키고자 했던 신앙심이 깊게 뿌리 내리고 있었다어머니는 어린 꼬마 수환에게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너는 커서 신부가 되거라."





    1993년 대구 성 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 입학
    19413월 동성상업학교 을조(소신학교) 졸업
    19414  일본 상지(조오찌)대학 문학부 철학과 입학
    1944년 학병 강제징집
    1947년 성신대학(카톨릭대학의 전신) 편입 
    사제의 길로 들어서는 삶을 살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의 최고 지위에 오르다.





    김수환 추기경 께서는 1922년 대구 남산동에서 태어나 네살무렵 아버지와 함께 군위군 용대리927번지로 와서 소학교 5년 과정을 졸업 하고 대구 성유스티노 신학교 예비과에 진학할때 까지 군위에서 유년 생활을 보냈던 곳이다.





    5살 무렵에 구미와 가까운 군위로 이사했다.

    선산에서 군위로 이사 가느라 큰 고개를 넘은 기억이 선명하다.

    군위에서 석양이 지는 고갯마루를 볼 때면 '저 너머에 고향이 있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 유년기의 추억 중에서





    소외 당한 철거민을 찾아 발을 씻기고 그 발에 입맞추는 추기경의 감동스런 모습을 디오라마로 연출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에는 직접 사용했던 물품 등이 전시되어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87세의 일기로 선종하면서 자신의 각막을 기증하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물, 생명나눔을 실천하였다.




    스테파노 경당으로 오르다 뒤돌아본 추모관과 중앙광장





    김수환 추기경 세례명을 딴 스테파노 경당




















    잔디광장





    십자가의 길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했던  '김수환 추기경'의  삶을 표현한  십자가의 길






    공원 전역에 조성된 십자가의 길로 가 본다...






    예수님 상과 십자가 계단


    평화의 숲에는 십자가를 상징하는 계단이 만들어졌는데 김수환 추기경의 연세와 같은 86계단이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을 따라  생가로 내려선다.






    13평의 이 집은 사용하지 않아서 허물어 가는 것을 천주교 대구교구가 사들여 김 추기경 생가는 1920 ~ 1930년대 옛 모습대로 2006년 본래의 모습으로 재단장 했다방두칸에 부엌 하나가 있는 소박한 집으로  김수환 추기경의 평소 검소했던 삶이 전해진다.















    복원한 추기경 생가의 2칸짜리 방을 보노라니 8남매 키운다고 고생하신 옹기장수 아버지와 어머니가난의 어려움을 같이 겼었던 추기경의 숨결도 느껴졌다.










    생가 앞쪽에는 우물과 옹기장수였던 김 추기경의 아버지 김영석(요셉)을 떠올려 옹기가마를 재현했다.





    생가에서 올려다본 아까 지나왔던 십자가의 길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의 공원' 곳곳에는 솔선수범하며 나눔을 실천하고 사랑을 전한 김 추기경을 떠올릴 수 있는 공간으로 꾸며졌다.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의 공원'을 다 보고 나와서 한눈에 들어오는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를 담은 환하게 웃고 있는 김수환 추기경의 모습이 담긴 조형 간판을 바라보며...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의 공원을 나온다..





    이제 군위 시내를 지나...






    군위 IC에서 고속도로를 거쳐 포항으로 돌아 왔다.


    매일 같은 길을 걷고 같은 골목을 지나도 매일 같은 길은 아니었다.
    어느 날은 햇빛이 가득차 눈이 부시고 어느 날엔 비가 내려 흐려도 투명하거나 어느 날엔 바람에 눈이 내려 바람 속을 걷는 것인지 길을 걷는 것인지 모를 것 같던 날들도 있었다.

    골목 어귀 한 그루 나무조차 어느 날은 꽃을 피우고 어느 날은 잎을 틔우고 무성한 나뭇잎에 바람을 달고 빗물을 담고 그렇게 계절을 지나고 빛이 바래고 낙엽이 되고 자꾸 비어가는 빈 가지가 되고 늘 같은 모습의 나무도 아니었다.

    문 밖의 세상도 그랬다. 매일 아침 집을 나서고 저녁이면 돌아오는 하루를 살아도 늘 어제 같은 오늘이 아니고 또 오늘 같은 내일은 아니었다.
    슬프고 힘든 날 뒤에는 비 온 뒤 개인 하늘처럼 웃을 날이 있었고행복하다 느끼는 순간 뒤에도 조금씩 비켜갈 수 없는 아픔도 있었다. 느려지면서 둘러야 하는 이유가 생기고 주저앉고 싶으면 일어서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매일 같은 날을 살아도 매일 같은 길을 지나도 하루하루 삶의 이유가 다른 것처럼 언제나 같은 하루가 아니고 계절마다 햇빛의 크기가 다른 것처럼 언제나 같은 길은 아니었다.

    돌아보니 나는 그리 위험한 지류를 밟고 살아오진 않은 모양이다.
    남들보다 빠르게 꿈에 다다르는 길은 알지 못하고 살았지만 내 삶을 겉돌만큼 먼길을 돌아오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아직도 가끔씩 다른 문 밖의 세상들이 유혹한다.
    조금 더 쉬운 길도 있다고 조금 더 즐기며 갈 수 있는 길도 있다고 조금 더 다른 세상도 있다고 어쩌면 나라는 사람은 우둔하고 어리석어서 고집처럼 힘들고 험한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돌아보고 잘못된 길을 왔다고 후회한 적 없으니 그것으로도 족하다.

    이젠 내가 가지지 못한 많은 것들과 내가 가지 않은 길들에 대하여 욕심처럼 꿈꾸지 않기로 한다.
    이젠 더 가져야 할 것보다 지키고 잃지 말아야 하는 것들이 더 많다.
    어느새 내 나이 한 가지를 더 가지려다 보면 한 가지를 손에서 놓아야 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으니까....

    내가 행복이라 여기는 세상의 모든 것들 이젠 더 많이 더 오래 지키고 잃지 않는 날이 남았다.
    세상으로 발을 내디디는 하루하루 이직도 어딘가 엉뚱한 길로 이끄는 지류가 위험처럼 도사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삶도 남아 있어서 아직도 세상 속으로 문을 나서는 일이 위험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길은 결국 선택하는 사람의 것이라는 걸 행복은 결국 지키는 사람의 것이라는 걸....


    오늘도 그 행복을 찾고 돌아오는 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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