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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주 한옥마을
    여행방/전라도 2017. 4. 18. 07:30

    전주 한옥마을 

      

      

    2017.   4.    18. 

     

      

    2017.  4.  14.   '제주에서 한 달 살기‘를 끝내고 육지로 나와서 2일째 여행는 전북 부안의 새만금 홍보관과 방조제를 보고 김제의 금산사,  전주의 맛집 고궁에서 점심 식사 후 전주 덕진공원을 들러보고 마지막으로 전주 한옥마을을 둘러 보고 포항으로 향하는 일정이다..


    전주로 들어와서 전주의 맛집 '고궁' 전주 본점에 점심 식사 후 인근의 덕진공원을 보고  오늘의 마지막 여행지인 전주 한옥마을을 다섯번째여행지로  향해본다...






    벗꽃 길을 달려 전주 한옥마을로 이동이다..









    한옥마을 공영주차장 ( 전북 전주시 완산구 남노송동 100 ) 도착이다..




    전주한옥마을은 전주시 풍남동과 교동에 위치해 있다이곳에는 한국의 전통 건물인 한옥(韓屋)800여 채나 밀집되어 있다빠르게 변화는 도시 속에 옛 것을 그대로 간직한 전주한옥마을은 한국의 옛 전통을 맛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한옥마을 입구는 여러 곳이 있는데 우리는 한옥마을 공영주차장에서 내려와서 이곳으로 입장..





    전주한옥마을은 전주시 완산구 교동(校洞)과 풍남동(豊南洞)일대에 있는 700여채의 전통 한옥 지역으로 을사조약 이후 이곳 전주에도 많은 일본인들이 들어와 살았는데 처음에는 성 외곽에서 살다가 일본인들이 물자수송을 위하여 전주~군산간 도로 개설로 성을 허물고 도로를 내었는데 이 후로 성내로 들어온 일본인들이 위세 높은 집들을 많이 짓게 되어 한국인들이 전통 한옥을 지어 이에 대항하였는데 이것이 오늘날 전주의 명물 한옥마을로 남아 진 것이다.





    전주한옥마을에서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려고 찾는다면 조금 실망 할 수 있다.

    한복을 차려 입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웃음소리와 전기오토바이가 질주하고,   먹거리 놀거리로 가득한 골목들,   그리고 이러저리 미로같은 길들을 걸어 다녀야 하고..

     




    전주는 후백제의 도읍이었으며조선 태조의 본향으로 왕조의 뿌리다.   또 한식과 한복, 한지 등 우리 문화의 참맛이 살아 있는 고장이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 전주한옥마을은 그 중심이다일제강점기 일본 상인들에 대항해 조성한 한옥촌으로세월이 흘러 전주를 상징하는 마을로 자리매김했다.


    태조의 어진을 모신 경기전, 천주교의 성지 전동성당, 한류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지 전주향교 등에서 우리 문화의 면면을 만날 수 있다. 한지 공예, 부채 만들기 등 다양한 전통 공예 체험도 가능하다.





    하지만 분명 뭔가 매력이 있는 곳이다.

    다양한 행사가 끊임없이 이어지고 다양한 문화공간과 전시관, 체험관등이 여러곳 있어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즐거움을 주고 있기도 한다.

    한옥마을은 여러가지 추천관광코스가 있는데 이런 것 무시하고 이리저리 빙빙 돌아 다녀도 무방하다.   시간이 된다면 한옥에서 숙박체험을 하는 것도 참 좋을 것 같다.





    근래 들어서는 한복데이가 생기며 한복 차림으로 한옥마을에 오가는 젊은이가 많다.   전통 공연 역시 각광받는다.   공연만 보는 게 아니라 식사나 체험 등을 결합해 한옥마을을 한층 풍성하게 누리도록 돕는다. 비빔밥오모가리탕콩나물국밥 등 먹거리도 빠질 수 없다. 전주한옥마을은 전통과 문화활기 넘치는 사람들의 슬로시티다.





    풍남동과 교동 일대 한옥을 아우르는 전주한옥마을은 2010년 슬로시티로 지정됐다전주의 역사에 비하면 그리 오래되지 않았지만, 한옥마을에는 전주의 꼿꼿한 정신이 담겼다시간은 193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강점기 양곡을 수송하기 위해 전군가도가 개설됨에 따라 전주부성은 풍남문을 제외하고 자취를 잃었다그러면서 성 밖에 머물던 일본인이 성안으로 진출해 상권을 확장했다이에 반발한 전주 사람들이 풍남동과 교동에 조성한 한옥촌이 지금의 한옥마을이다오늘날 한옥 600여 채가 어깨를 맞대고 있어, 오목대에 올라 전경을 보면 실로 장관이다.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한옥마을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한복은 지금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통 체험이다.


    자유분방한 한옥마을은 젊은이들이 오래된 이 마을을 아주 생기 있게 만들고 있는 느낌이다.

     

    최근 전주한옥마을에서 가장 각광받는 전통 체험은 뜻밖에도 한복 체험이다한옥마을에서 한복을 입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 게 놀이처럼 자리 잡았다.

     

    생활한복에서 기생 한복커플 한복까지 젊은 층을 사로잡는 고운 한복이 많다.   한옥마을 거리는 한복 패션쇼를 방불케 한다전주향교에서 시작한 한복 대여소도 한옥마을에만 20여 곳으로 늘었다.  1시간에 5000,  3~4시간에 1만원 선으로 대여 비용도 큰 부담이 없다매달 마지막 주 토요일 한복데이에는 흥미로운 행사들이 여행객을 맞이한다.





    한복을 입은 젊은이들은 전주한옥마을에 새로운 생기다...





    한복대여점은 셀 수 없이 많고..   한복 입은 복장을 제일 많이 볼 수 있는 장소 전주한옥마을.   한복 디자인도 나날이 화려해지고 예뻐지는 듯하다.





    돌담길이 참 예쁜 ...





    슬로시티 전주한옥마을 여행은 태조로를 걷는 데서 시작한다.   태조로는 풍남문에서 오목대 방면 약 550m 도로다.   한옥마을의 가장 큰 길이자, 경기전과 전동성당이 조선의 시간을 잇는다태조로로 들어서면 경기전이 먼저 반긴다.





    경기전은 전주의 중심이 되는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사스런 터에 지은 궁궐이라는 뜻으로, 태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건물이다.   전주 이씨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조선의 실록을 보관하던 전주사고 등으로 구성된다.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저녁 7시까지. 삼천원의 관람 요금이 있다. 어린이는 천원.



     









    경기전 앞 정원이다..  꽤 넓어서 산책하듯 둘러보기 좋다..





    어전 박물관 안내표지판 뒤로 전주사고가 보인다..





    주 이씨 시조인 이한과 그 부인의 위패를 모신 조경묘,  전주 이씨의 시조(이성계의 조상)들을 모신 사당이다.   묘(廟) 자는 사당(祠堂)을 뜻한다.  조경묘 입구 왼쪽 아래에 하마비(下馬碑)가 있다.


    경기전 하마비(慶基殿 下馬碑)-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제222


    경기전 하마비는 임진왜란 후 경기전이 중건되던 1614(광해군 6)에 처음 세워졌으며, 1856(철종 7)에 중각(重刻)되었다.

     

    비석에는 지차개하마 잡인무득입(至此皆下馬 雜人毋得入)’이라고 새겨 계급의 높고 낮음, 신분의 귀천을 떠나 모두 말에서 내리고, 잡인들의 출입을 금한다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경기전 하마비는 여느 하마비와는 다르게 판석위에 비를 올리고 그 판석을 두 마리의 사자(혹은 해태)가 등으로 받치고 있는 특이한 형태로, 단지 하마(下馬)의 의미로서만이 아닌 경기전 수호의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러한 비석의 형태는 다른 곳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형태여서 조형적인 가치 뿐만 아니라 내용적인 측면에서도 경기전이 어떤 곳인가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상징물이기도 하다.











    경기전은 전주의 중심이 되는 문화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사스런 터에 지은 궁궐이라는 뜻이다..

    홍살문을 지나 문을 들어서면 정전이 보이는데 저 정전 안에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 초상화가 모셔져 있다.





    전주 경기전(사적 제339호)은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풍남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묘사(廟祠)로 경기전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 입구에는  '정숙'이라는 문구가 있다.





    궁궐같은 분위기 이다..


    1442(세종 24)에는 그 소재지마다 이름을 달리하여 전주는 경기전,   경주는 집경전(集慶殿),   평양은 영종전이라 불렀다. 경기전은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1614(광해군 6)에 중건하였다.

     

    건물의 구성은 본전,  본전 가운데에서 달아낸 헌(),  본전 양 옆 익랑(翼廊)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이를 두르고 있는 내삼문(內三門외삼문(外三門) 등으로 공간을 분할하고 있다본전은 남향한 다포식(多包式) 맞배집 건물로높게 돋우어 쌓은 석축 위에 앞면 3, 옆면 3칸으로 세웠는데 건물 안의 세번째 기둥렬柱列에 고주(高柱)를 세우고 그 가운데에 단()을 놓았다.

     




    경기전 정문에는 사람이 들어가는 곳과 나가는 문이 따로 따로 있. 사람은 양쪽 끝으로 다니고 가운데 문으로는 들어갈 수 없는데 이는 신문(神門)이라고 하여 사당에 모신 영혼만이 다니는 문이기 때문이.


    이 단 양 옆에는 일산(日傘)과 천개(天蓋)를 세웠다. 본전 앞에 내단 헌은 본전보다 한 단 낮게 쌓은 석축 기단 위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2익공식(二翼工式) 포작(包作)을 짜올린 맞배지붕 건물이다.

     

    본전과 헌이 이루는 구성은 왕릉에 제사를 지내려고 세운 정자각(丁字閣)의 구성과 같다. 또한, 본전 양 옆에는 익랑(翼廊: 문의 좌우편에 잇대어 지은 행랑) 2, (: 전각 주위에 세운 행랑) 4칸이 있다. 내삼문은 앞면 3, 옆면 2칸으로 된 3문으로 그 양 옆에 익랑 2칸을 두었다.

     

    외삼문은 앞면 3, 옆면 1칸인 맞배지붕 건물로 익랑을 두지 않았으며, 옆면 가운데에 사이기둥을 세워 삼문을 달았다. 현재 이곳에 있는 태조 어진은 1442년에 그린 것을 1872(고종 9)에 고쳐 그린 것이다. 경기전은 그 주변 일대와 더불어 사적으로 지정된 외에 경기전 정전은 보물 제1578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전에 모셔져 있는 태조 이성계 초상화인 조선 태조어진(국보 제 317호)


    전주 경기전 정전 내부(全州 慶基殿) 정전은 감실을 마련하여 어진을 봉안하고 제례를 지내는 공간이다정전 내부에는 바닥전을 깔고 제상(祭床)을 비롯한 각종 산선(繖扇)과 청개(靑蓋), 홍개(紅蓋) 등의 의장물을 진열하였다.

    1410(태종 10)어용전(御容殿)이라는 이름으로 완산· 계림· 평양 등 세 곳에 창건하여 부왕인 태조의 어진(御眞)을 모셨다.


    경기전(慶基殿)에 봉안된 어용(御容)은 경주 집경전본을 모사한 것이었는데, 세종 24(1442) 7월에 집경전의 어용과 함께 개화하여 동년 10월에 봉안했다.

     

    현재 경기전 어진(御眞)은 고종 9(1872) 9월에 개화한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재빨리 내장산에 피난하였다가 정읍, 태인, 익산, 용안, 임천, 은산, 정산, 온양, 아산을 거친 다음 강화도 안주를 경유하여 묘향산 별전(別殿)에 봉안되었다. 그후 어용은 여러번의 수난을 겪었는데 즉 인조 14(1636)병자호란 때는 무주 적상산성에 피난했다가 돌아온 일이 있었으며 영조 43(1767) 이른바 정해대재 때는 전주향교 명륜당에 긴급 피난한 일이 있으며 고종 31(1894)에는 동학군의 전주입성으로 한때 위봉산성에 피난하기도 했다.





    포토존으로 인기 있는 경기전 내 사고 가는 길의 대나무 숲





    경기전 안에 위치한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건물,  전주사고





    전주사고의 실록은 임진왜란을 거치며 유일하게 지켜졌다. 내부는 전시관으로 개방한다.





    사고 입구의 대나무 숲이 아름다워 포토 존으로 인기다.


    경기전은  영화 '광해'와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촬영장소로 더 유명해진 곳이다대나무 숲이 참 멋지고 사진 찍기에 좋았던 곳이라 기억에 남는다.





    경기전 북쪽에는 태조 어진 봉안 600주년을 맞아 지난 2010년에 지은 어진박물관이 있다 태조의 어진(초상화)을 모신 건물이다.





    어진박물관도 흥미로운 볼거리 중에 하나인데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어진을 비롯해 역대 왕들의 어진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경기전 태조어진이 현존하는 유일한 것이다.





    어진제작





    이 그림이 바로 현존하는 유일한 태조 어진이.

    어진은 왕의 초상화를 뜻하는 말인데 태조어진은 국보 317호이자 건국자의 초상이라는 점에서 조선왕조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태조 어진을 가지고 있는 전주 어진박물관도 자부심을 가지고 있어도 될 것 같다...





     태조어진 2016년 권오창 모사



    태조어진(준원전) 2016년 권오창 모사





    2011 년 권오창 모사





    태조어진





    태조관련 유물

















    전주 어진박물관의 1층 어진실을 다 둘러보고 나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있다.

    계단으로 내려가면 어진실 2와 역사실가마실, 기획전시실을 더 볼 수 있는 곳이 있으니 내려 가면 된다.





    지하 상품점 바로 옆에는 역사실이 있.

    이 곳은 경기전 건립, 태조어진 봉안, 태조어진의 수난과 보존, 관리, 경기전 제례, 전주의 조선왕조 관련 유적지 등 태조어진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해 놓은 곳이.





    경기전 연표





    조선왕조의 발상지 전주





     태조어진의 전주 봉안





    영정모사도감의궤


    창덕궁 선원전에 태조어진을 봉안하기 위한 영흥 준원전의 태조어진 모사과정을 기록한 의궤이다. 책 뒤편에 어진을 이안하는 행렬도를 그린 빈차도가 있다.





    영정이봉등록


    1778년(정조2)에 선원전 제2실의 영전을 영화전 제5실로 이봉하는 과정을 기록한 책이다.





      흑장통

     

    비상시 어진을 긴급히 대피하기 위하여 만든 원형통이다.  오동나무를 길이 방향으로 반분한 후 속을 파내어 다시 맞대 어 대나무통 모양으로 만들었다.





     위봉사기실현판


    위봉사 경산스님은 동학농민군이 전주를 점령하자 태조어진과 조경묘의 위판을 법당안에 안치시키고 지켰다. 그후 전라감사는 그 노고를 칭찬하여 전라도총섭의 작위를 내리기로했었으나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이에 김성규는 고금천하에 공 있는자가 누락되어 묻혀버리는 일이 허다하니 몇 마디 적어 절간 벽에 걸어두려 한다'라는 내용의 현판을 써서 위봉사에 남겼다.





    경기전








    경기전 건립과 중건





    경기전의


    경기전의 연혁,  건축,  의례등 제반사항을 수록해 놓은 책이다.  일제강점기에 원본을 베껴놓은 사본이다.





    뚜껑단지


    땅의 기운을 누르고 건물의 안녕을 비는 진단구로 추정한다. 경기전 서편에서 출토 되었다.





    용문암막새


    경기전 서편에서 용의 발톱이 5개,  3개인 와당 조각이 발굴 되었다.





    오경흥을 경기전 참봉에 임명하는 문서





     경기전 건축구조와 각 건물 기능





    이시영을 경기전 시위유사에 임명한 문서





    경기전관이 이시영을 직위에서 제외 시키라고 지시한 문서





    조선왕조실록의 과학적인 보관방법. 이 방법으로 오늘날 왕조실록이 온전히 전해졌다.





    경기전 제례





    경기전 중양대제





    아가상





     진전 태조어진 봉안과 의장물








     경기전, 조경묘 관리일지





    경기전 관리





    경기전 축식


    고종때 만들어진 축문형식으로 경기전,  준원전,  조경묘,  조경단,  춘경묘 등의 제사에 활용하기 위해 제작된 것이다.





    조경묘와 조경단. 오목대와 이목대





    류관현을 조경묘 참봉에 임명한 문서





    조경단준경묘영경묘영건청의궤,     조경묘의





     조경단 비각재실도형





     정전,  내.외신문





    조선왕조실록과 전주사고








    태조실록





     태종실록





    세종대왕실록





    풍남문과 풍패관








    명견루 현판


    경기전 어진 박물관에 가면 명견루 현판을 볼 수 있다. 유리 속에 갇혀 있는 현판 아래에 '명견루 현판'이라는 제목의 작은 설명이 놓여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명견루 현판의 크기는 325× 105cm이다.

    '1734(영조 10) 전라 감사 조현명이 전주부성을 수축하면서 성문 위 3층 문루를 "明見樓(명견루)"라 이름 하였다. 조현명이 전주성을 수축할 때 백성들이 이를 반대하고 불평하자 조정에서 논란이 일어 공사가 중단되었는데, 축성 재원의 출처와 농민들의 유료 사역(노동)을 자세히 적어 보고함으로써 영조의 특명으로 공사가 지속될 수 있었다그래서 현군(賢君)인 영조의 명견(밝은 생각)이 있었기에 축성 공사가 가능했다는 뜻으로 "명견루"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 - 전주를 지나며





    역사실을 둘러보고 옆의  가마실에 들어가 보았는데 태조 어진 봉안 행렬이.

    이는 닥종이 인형으로 재현을 한 태조어진 봉안행렬로 300 여명이 태조어진 봉안행렬에 참여 하였으며, 한양에서 전주로 태조 어진을 모셔 오는데  78일이 소요되는 중요한 행렬이었다 한다.












































    이 가마는 조선시대 고관의 행차 때 사용하던 가마로 1872에 태조어진을 봉안할 때 어진 봉안 책임자인 배왕대신이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고 이름은 가교라고 부른.









    태조 이성계의 실제 모습이라 한다..

    실물크기로 재형한 태조 이성계의 밀랍인형이 디테일하고 오른편 이마에 작은 혹이 인상적이다.





    일월오봉도 포토존 앞에서 인증샷도 하고..


    이 그림은 일월오봉도 라고 한다.

    궁궐 정전의 어좌 뒤에나 왕의 초상인 어진 주변, 임금이 잠깐이라도 머무르는 곳에 펼친 것인데 왕권상징과 왕실번영을 기원했던 그림 병풍이.

    보면 산봉우리시내,  소나무와 같은 자연물을 파노라마형식으로 보여지게 놓았는데이는 영원성을 지닌 소재들을 사용하여 화려하고평면성과 장식성을 부각시켜서그림으로 왕의권위를 직접적이고 명확하게 이미지로 표현하였다.

    위치는 태조 어진 바로 옆에 위치에 있다..





    어진실2 인데 이곳에는 조선시대 임금의 초상화 6점과 설명이 전시되어 있다전주 어진박물관에 전시 되어 있는 조선시대 임금은 세종, 영조, 정조, 철종, 고종, 순종 이다.





    세종 어진





    임금노릇을 가장 오래하고 세종만큼 치적이 많은 영조의 어진이다.  금으로 용상,  용포,  눈동자를 칠했다는게 신기해서 올려 본다.








    정조 어진





    강화도에서 농사를 짓다가 졸지에 궁으로 들어와 임금이 된 철종의 어진이다.

    말년에 안동김씨의 세도에 눌려 이고생 저고생 하다가 33세에 병사하였다위 어진의 모습은 31세때라고  한다.





    고종 어진




    순종 어진








    지하 1층에 왜적(倭敵)과의 전투장면이 있다.












    전시를 다 본 후 다시 나와 보니 옛 건물이 많다제사 음식 보관하는 곳임금의 음식을 만드는 곳 등등 다양한 건물들이라고 한다..



    어진박물관에서 보면 경기전의 담장과 전동성당이 시간을 넘나들며 조우한다.


    박물관을 돌아보고 경기전 서문 쪽으로 나오면경기전 담장과 전동성당이 어우러진 풍경에서 조선의 600년 시간이 한 프레임에 담긴 느낌이 든다.





    경기전을 걷다보면 전동성당이 보일만큼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같이 둘러보기 좋다..





    전주 전동성당(사적 제 288호)


    전주한옥마을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필수 코스 전동성당.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기도 하지만 오래전 영화 '약속'의 촬영장소로 더 알려진 성당이다.


    전동성당은 로마네스크와 비잔틴 양식이 돋보이며, 1914년에 완공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 천주교의 성지다.  1791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순교지 위에 세웠다..


    1889년 초대 주임신부인 프랑스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선교사 보두네(한국명 尹沙物) 신부가 성당 부지를 매입하고, 1908년 푸아넬(한국명 朴道行) 신부의 설계로 본당 건물이 완공되었다.








    호남지역의 서양식 근대 건출몰로도 가장 오래되었다는 전동성당내부도 고풍스럽고 웅장한 느낌이 든다.














    곡선미를 최대로 살린 로마네스크 및 비잔틴 양식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동양에서 제일가는 성당건물 중의 하나이다.





    한옥마을 초입에 있는 전동성당은 소박하고 아담하다. 전동성당은 한국 천주교회 최초의 순교자인 윤지충과 권상연이 1791년 신해박해 때에 처형당한 풍남문(豊南門)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건립됐다.


     






    1907년부터 1914년에 걸쳐 세워진 전동성당은 순교지를 보존하고 있는 신앙의 요람이다처형지인 풍남문 성벽을 헐어 낸 돌로 성당 주춧돌을 세웠다고 한다호남 최초의 로마네스크 양식의 서양식 건물로, 순교지를 알리는 머릿돌과 순교자 권상연과 윤지충유중철·이순이 동정 부부를 채색화한 스테인드글라스가 눈길을 끈다











    종전의 전통 체험도 변함없이 진행된다. 전주부채문화관은 부채를 생산하던 조선 시대 선자청의 맥을 잇는다. 여러 가지 부채를 전시하고, 상설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현장에서 부채를 구입해 그림을 그리는 방식이다. 전주공예품전시관에서는 한지 공예를, 전주전통술박물관에서는 모주 거르기 등을 체험할 수 있다.

     

    근래 들어 공연 관람이 전주한옥마을을 즐기는 방법으로 자리매김했다. 전주전통문화관 혼례마당에서는 전주문화재단의 마당창극<천하 맹인이 눈을 뜬다>1017일까지 흥을 돋운다. <심청전>을 현대적으로 각색한 작품으로, 전통 판소리와 현대적 선율이 세대를 초월해 큰 웃음과 감동을 안긴다. 단순히 공연을 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굳이 식사를 거하게 하지않아도 거리 먹거리가 워낙 많고 맛있는 것도 많아서 군것질 하는 재미도 쏠쏠한 전주한옥마을어디서나 줄을 서야한다는 번거로움은 감수해야 하지만....

     






    전주한옥마을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예쁜 카페도 보이고곳곳에 상점과 카페들이 해가 거듭할수록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다.

     

    당일이나 12일 코스로 떠나기 좋은 전주한옥마을.   사람이 항상 너무 많아서 식당이나 먹기리 등을 먹을때 거의 줄을 서야하지만 볼거리도 많고 체험거리도 많아 아이들과 가족나들이 코스나 커플 데이트 코스로도 괜찮을 것 같다.


    제주 1달 살기를 마치고 육지로 나와서 이틀을 더 여행하고 이제 우리의 보금 자리 포항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여행은 얻기 위해서 떠나는 것이 아니고 버리고 오기 위해 돌아오는 것이다.

    여행을 자판기처럼 뽑아내기만 한다면 추억없는 설레임으로만 그칠 뿐이다.   발길이 닫는 다른 삶의 자리에서 나를 바꿔보고 나의 일상을 무너뜨려 보자.    그것이 나의 여행지고 그 시간이 나에게 여행이 될 것이다.


    여행을 마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보면 흐리멍텅하게 보이던 내 삶이 어느새 반짝 반짝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는 잘 살고 있고 잘 살아 갈 거라는 희망의 새싹을 마음 밭에 심고 다독여 본다.


    긴 여행 함께해준 옆 지기님...  많이 고맙고 감사해요 ^^

    살면서 많은 힘이되고 도움이 될거 같은 여행이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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