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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정골 하르방, 추사관과 추사유배지 (서귀포시 대정읍)여행방/제주도 2017. 3. 27. 21:53
대정골 하르방, 추사관과 추사유배지
2017. 3. 27.
2017. 3. 27. 제주 한달살기 14일째 날이 시작된다...
오늘 계획은 서귀포시의 마라도를 보고 모슬포항, 대정해변(하모해수욕장), 대정골 하르방. 추사관과 추사유적지, 제주 곶자왈을 여행할 계획이다..
제주 한달살기 14일째날 여행지 네번째로 대정해변을 지나 대정골 하르방, 추사관과 추사유배지를 보기로 한다...
제주대학교 스토리텔링 연구개발센터에서는 “제주 유배문화의 녹색 관광자원화를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사업”의 일환으로 추사 유배길을 비롯한 추사 김정희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추사 유배길은 “제주 유배문화의 녹색 관광자원화를 위한 스토리텔링 콘텐츠 개발 사업”의 1차년도 과제로 추사 김정희가 8년 3개월 동안 유배 생활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대정을 중심으로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져 지역의 공간을 역사 인물 스토리텔링의 매체로 활용하였다.
추사유배 길은 “추사에게 길을 묻다”라는 주제로 기획되어 추사 김정희의 유배지를 중심으로 대정읍과 안덕면에 걸쳐 만들어졌다.
대정은 제주도에서 가장 남쪽에 위치한 마을로 추사가 9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던 유배지로 유명한 곳이다. 대정은 겨울철에도 비교적 따뜻한 편이나 다른 지방에 비해 바람이 많은 편이다.
‘추사체’와 ‘세한도’가 완성된 추사 김정희의 적거지에서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자..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예술세계를 엿볼 수 있는 곳, 제주 추사관이다..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에 있는 제주추사관은 조선 후기 대학자이자 예술가인 추사 김정희 선생의 삶과 학문, 예술세계를 기리기 위해 2010년 5월 건립되었다. 제주 추사관의 전신은 1984년 제주지역 예술인들과 제주사 연구자들의 노력으로 건립된 추사유물 전시관이다. 그러나 전시관이 낡은 데다, 2007년 10월 추사유배지가 국가지정문화재로 승격되면서 그 격에 걸맞게 재건립 되어야 한다는 여론에 따라 새롭게 제주추사관을 완공하였다.
김정희의 글씨와 그림의 복제품을 전시해 놓은 추사기념관은 김정희의 세한도를 모티브로 하여 지어졌다.
제주추사관은 추사기념홀을 비롯해 3개의 전시실과 교육실, 수장고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부국문화재단, 추사동호회 등에서 기증해 주신 ‘예산김정희종가유물일괄’, 추사 현판 글씨, 추사 편지 글씨, 추사 지인의 편지 글씨 등을 전시하고 있다.
어라? 계단 모양이 지그재그로 사선으로 되어 있다. 폭과 경사로 이건 절대로 장애우를 위한 경사길이 아니다.
알고 보니 추사 김정희 선생님께서 제주도로 유배오신 그 고난의 길을 생각하면서 유배의 고단함을 반영해서 설계해서 만든 길이라 한다....
건축가 승효상씨의 말에 따르면 기념관격인 추사관이 실제 머물렀던 집과 주변 성벽보다 너무 튀지 않게 하기 위해 전시실을 지하로 하고 지상으로는 최소한의 형태만 보여지게 했다고 한다.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도 워낙 유명한 작품이지만 추사관도 역시 건축학적으로 높이 평가받는 작품이라 한다
건축기교를 최대한 배제하고 유배지 기념관에 걸맞게 아주 소박하게 설계되었다. 모두 승효상씨의 미리 계획된 건축의도라고 한다.
지하 전시실은 촬영이 금지되어있어 촬영하지 않았지만 직접 가면 다양하고 멋진 추사의 명필을 감상하실 수 있다.
헌종 때 유배된 김정(1786~1856) 또한 대정현, 지금의 서귀포시 대정읍 안성리에서 9년간 유배생활하였다. 김정희는 북학파 박제가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실학의 학문적 기초를 다지고, 중국연경을 직접 방문하여 청나라의 고증학을 받아들임으로써 약관의 나이에 실사구시학파의 거봉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김정희는 안동 김씨의 정치적 모략에 의해 자행된 1840년 윤상도 옥사사건에 연루되어 55세 때 대정현에 유배되어 9년을 지냈다.
김정희의 유배는 제주도 지식인들에게 커다란 학문적 영향을 미쳤는데 그에게 사사한 김구오, 강도순, 박계첨 등은 제주필원으로 추앙받고 있다. 원악 유배지 대정에 머물러 있던 김정희는 제자인 역관 이상적을 통하여 많은 서적을 구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학문적 업적을 계속 이어갈 수 있었다. 이런 제자의 정성에 감동한 김정희는 송백 4그루가 서 있는 적거의 풍경을 그려 '세한도(완당세한도'국보 제180호)' 라고 칭하고 제자에게 보내기도 하였다. 이처럼 김정희는 유배지에서의 울분을 누르고 서도(書道)에 정진하였고, 그 결과 완성을 본 것이 추사체이다. 추사체는 결국 제주도 유배의 결정체라고 할 수 있다.
임옥상이 무쇠를 소재로 제작한 추사의 흉상이다..
추사관 입구 지하로 들어가서 1층으로 나온다. 밖으로 나오면 추사 김정희 선생님 적거지가 마련되어 있다.
유허비
추사적거지는 추사 김정희의 예술혼이 남아 있는 곳이다..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추사적거지'는 조선 헌종 6년에 권력싸움에서 밀려나 제주도로 유배된 추사 김정희가 9년 동안 적거하던 곳이다.2 007년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87호로 지정되었다.김정희가 머물러 살던 초가도 있는데, 이는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버리고 빈터만 남았다가 1984년에 복원된 것이다.
이곳에 머물면서 김정희는 '추사체'를 완성하였고, 국보 제180호인 '완당세한도' 또한 이곳에서 머무르는 동안 나온 서화이다.
제주도의 유생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기도 하는 등 제주에 있으면서 다양한 업적을 남긴 김정희를 기리기 위해 '대정고을 추사문화예술제'도 추사적거지에서 매년 열리고 있다.송죽사 터를 조금 지나 도착하는 넓은 공터 부근은 추사가 대정에 와서 처음 머문 송계순의 집터다. 송계순은 유배인인 추사를 관리하는 첫 번째 보수주인이었다.
위리안치 형벌을 받은 추사가 이곳에 도착하자 집 주변에는 가시울타리가 쳐진다. 제주의 전통 초가집에서 추사의 외로운 유배생활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명문 집안의 후손으로 넓은 집에 살던 그가 초가집 작은 온돌방에서 생활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추사는 이 작은 공간도 자신에게 과분하다고 말한다. 항상 자신만만하던 추사에게 유배는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심경의 변화를 가져오게 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시대를 호령하며 세계와 소통하던 대학자로서 가시덤불 안에 갇힌 답답함을 어떻게 이겨 내었을까? 지금은 초가집도 가시덤불도 남아있지 않고 성벽의 모습만 역사의 증인으로 남아 있다.제주도 대정현(大靜縣)에 남아있는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유배 생활과 관련된 흔적.
대정현성의 동문자리 앞에 위치한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는 제주 유배생활에서 완성된 김정희의 예술과 삶을 살펴 볼 수 있는 장소이다.
2010년 5월에 건립한 제주 추사관을 지나 돌담으로 둘러싸인 추사 유배지로 들어서면, 담장 안쪽에는 탱자나무가 늘어서 있고, 대문간에는 제주만의 독특한 대문인 정낭이 위치해 있다. 마당에는 초가집 3채가 ‘ㄷ’ 자형으로 자리 잡고 안거리 안채와 모커리 별채, 밖거리 사랑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제(부엌)가 딸린 안거리는 주인 강도순의 집이고, 모커리는 김정희가 머물렀으며, 안거리와 마주한 밖거리는 김정희가 배움을 청해오는 청년들에게 학문과 서예를 가르치던 공간이었다.
추사 김정희(1786~1856)선생이 조선 헌종 6년(1840) 10월 1일부터 헌종 14년(1848) 12월 6일까지 9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던 곳이다. 1948년 제주도 4·3사건 때 불타버리고 빈 터만 남았다가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에 따라 다시 지은 것이다.
북학의 대가이며 학예에 출중한 당대의 선구자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곳에 다년간 머무름으로써 제주 인문의 일대 혁신의 계기가 되었다. 선생은 금석문과 서화에 능통 하였으며, 특히, 서체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추사체는 널리 알려져 있다. 특히 여기서 그린 "세한도(국보 제 180호)"는 선생의 서화의 경지를 유감없이 발휘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김정희는 유배 초기에는 포도청의 부장인 송계순의 집에 머물다가 몇 년 뒤에는 현재의 유배지로 지정된, 그의 제자이기도 하였던 대정고을 유생 강도순의 집으로 이사했다.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는 1948년 제주 4․3사건 때 불타버리고 빈 터만 남았다가 1984년 강도순 증손의 고증을 받아 다시 복원한 것이다.
강도순의 증손자는 일제시대 사회주의 항일운동가이며, 해방 직후 남로당 조직부장을 지냈던 강문석이다. 또한 강문석의 사위는 4․3 당시 재산무장대 총사령관을 지냈던 이승진(일명 김달삼)이다. 현재 서귀포 김정희 유배지는 대정골에 유허비와 더불어 잘 보전되어 있다.
추사의 조형물 뒤로 마을을 휘감고 있는 대정골 성이 위풍당당 하다..
제주 추사관 입구 도로 건너편에 자리한 제주도 민속 자료 제 2-45호 대정골 돌하르방이다..
북학의 대가이며 학예에 출중한 당대의 선구자였던 추사 김정희 선생이 이곳에 다년 간 머무름으로써 제주 인문의 일대 혁신의 계기가 되었던 추사유배지를 보고 다음 여행지 제주 곶자왈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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