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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인 영암사지(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와 근래의 영암사사찰여행/경상도 2017. 5. 17. 19:54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인 영암사지와 근래의 영암사
2017. 5. 17.
2017. 5. 14. 산빛어울림 불교산악회와 함께 합천 황매산 산행 후 들러본 영암사지와 근래의 영암사 이다 .........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인 염암사지(사적131호)
경상남도 서부의 가야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절터.
영암사지는 경상남도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황매산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 터로
그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려지지 않으나 고려때 1014년(고려 현종 5년)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로 입적 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절이 세워졌던 것으로 여겨진다고 했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탁본으로 전하는 '적연국사자광탑비(102년 건립)의 비문을 통하여 고려시대에 이곳에 영암사가 있었음을 알수있었다고 한다.
절터에는 금당지, 서금당지, 중문지, 회랑지 등의 건물터와 3층석탑, 쌍사자 석등, 귀부,석조기단 계단 등의 석물이 남아 있고....
1984년 발굴조사때는 통일신라시대 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각종 와편과 토기편, 금동여래입상 등이 발견 되었다고 전한다.
산상 화원으로 변하여 여행객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자연 그대로의 신비함을 느낄 수 있었던 황매산 산행을 마무리하고 인근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화려하게 부상했을 폐사지 영암사지를 찾아 간다...
영암사지 입구에 우뚝 서있는 600년된 느티나무가 길손을 맞아준다...
영암사지는 황매산 남쪽 기슭에서 동-서 축으로 배치된 산지가람이다.
영암사지 서금당지 영역이다...
금당지에서 남서쪽으로 약 50m 지점에 양쪽으로 귀부를 두고 그 사이에 또 하나의 동향한 독립된 건물지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다. 1984년 발굴조사 당시 통일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는 각종 와편(瓦片)과 토기편, 금동여래 입상 등이 발견되었다.
금당이 부처님 모시는 자리였다면 서금당은 아마 영암사를 창건한 개산조사를 모시는 자리였다.....
합천 영암사지 귀부 2기 (보물 제489호)
동쪽 귀부 1.22m, 서쪽 귀부 1.06m. 영암사지(靈巖寺址)는 신라시대의 유적으로, 법당지(法堂地)를 비롯한 건물의 기단들이 그대로 남아 있어 당시 사찰의 광대함을 알 수 있다.
귀부는 법당지의 동서쪽에 각각 위치하고 있는데, 2기의 귀부 모두 탑신석(塔身石)과 이수(螭首)가 소실되었다. 동쪽 귀부가 서쪽 귀부보다 규모가 크지만, 똑바로 뻗은 목과 용두화(龍頭化)된 귀두, 입에 여의주를 물고 있는 점 등은 공통적 특징이다.
영암사지 서금당지 오른쪽 귀부. 옛날에는 이끼 돌옷을 입고 있었으나 지난해인가 문화재청에서 이끼 돌옷을 벗거버려 현대조각 같은 느낌이 난다.
왼쪽 서쪽과 오른쪽 동쪽 거북은 차이가 많다.
오른쪽 거북은 다소곳이 수그린 채로 있고 귀갑문이 아주 뚜렷하고 등뼈 표현이 선명하다. 거북 꼬리가 커다랗고 엄청 생동한다. 그밖에도 오른쪽은 구름을 비롯해 여러 무늬가 아롱져 있다.
오른쪽 귀부에는 물고기도 있었다! 가운데 아래는 여의주인 듯...
귀부 윗부분에는 비신을 꽂아 넣을 수 있도록 홈이 파져 있다. 여기 서금당터 오른쪽 귀부에 나 있는 홈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물고기가 두 마리씩 새겨져 있었다. 쌍어문(雙魚紋)이다. 그 어디 있는 쌍어문보다 멋지고 아름답다.
물고기를 불교에서 어떻게 받아들여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물고기는 눈꺼풀이 없어서 잘 때도 눈을 감지 않는다. 눈을 감지 않으니 잘을 자면서조차 꿈 속에서 용맹정진 수행을 하는 듯이 여겨진다. 물고기가 진리와 대오(大悟)를 향하여 나아가는 상징이 될 수 있었던 원인이다.
여기 있는 물고기도 아마 그런 뜻으로 새겨졌겠지? 빗돌의 주인공 무슨무슨 개산조사 또한 뜬 눈으로 밤을 새는 물고기처럼 쉬임 없이 갈고 닦았을 것이다. 그래서 백척간두에 이르고 다시 진일보하여 남다른 경지를 얻었을 것이다. 이런 큰스님의 큰 뜻을 기리려고 여기 물고기를 새겨넣었을 것이다.
그런데 보아하니 물고기가 한 마리가 아니고 두 마리씩이다. 여기에는 아무 뜻이 없을까? 그냥 보기 좋으라고 예술적 형태미를 위하여 데칼코마니처럼 좌우대칭으로 집어넣었을 따름인 것은 아닐까?
쌍어문 물고기 무늬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여의주를 가운데 두고 입을 맞대어 있다. 다른 하나는 서로 맴을 돌듯이 머리에 꼬리가 이어지고 꼬리에 머리가 이어지는 모양새다.
신독(愼獨)은 힘들다. 혼자서는 게을러지기 십상이고 마음이 흐트러지기 십상이다. 여럿이 함께할수록 조금이나마 더 쉬워진다는 뜻에서 일까?
서쪽 왼쪽 거북은 목을 뻣뻣하게 들고 있는 반면 귀갑문이 희미하지만 등뼈가 거의 표현되어 있지 않고 거북 꼬리가 조그맣고 덜 생동하고 별로 무늬가 새겨져 있지 않다..
영암사지 금당지 동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영암사지 금당지 서쪽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금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인데, 초석이 두 줄로 놓여 있다. 바깥쪽의 낮은 초석이 오래된 것이고, 안쪽의 높은 초석이 후대의 것이라 판단되므로 금당이 두 번 이상 다시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지대석은 8매의 장대석으로 구성되고 표면에 팔부중상이 안상 안에 모각되었다.
불대좌 기단 초석으로 중앙에는 H자형으로 짜여진 불상 지대석이 드러나 있다.
십자로 된 주춧돌이 놓여 있다.
금당지의 기단은 화강석, 지대석, 면석, 갑석을 비교적 잘 갖춘 양호한 모양으로 사방에 계단이 한 개씩 남아 있다.
쌍사자 석등 앞의 금당 남쪽 계단과 기단의 장식으로 정면 계단의 소맷돌에는 용, 좌우측면 계단 소맷돌에는 가릉빈가를 조각하였다.
금당 4면을 둘러 계단을 만들었는데 계단의 소맷돌을 장식한 조각이 가릉빈가이다.
가릉빈가는 얼굴과 팔은 사람의 형상을 하고 날개와 하반신은 새의 모양을 하고 있는데, 아름다운 노래와 춤으로 부처를 공양한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부처를 모시는 금당은 무섭거나 힘센 수호신을 두어 지키는데 비해 이 곳 금당은 특이하게도 가릉빈가가 조각되어 있다. 그 의미도 특별하지만 조각 솜씨 또한 매우 우수하다.
깨어져 나간 모습이 이러한데 온전히 그 모습을 지니고 있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이었을까~
금당지 서쪽면에서 바라본 계단모습과 기단의 장식이다.
금당지 동쪽면에서 바라본 계단모습과 기단의 장식이다..
한편, 기단 4면에는 금당을 수호하는 사나운 동물의 형상이 둘러져 있다. 뒷면을 제외한 삼면의 기단 면석에는 계단을 중심으로 하여 좌우에 사자상을 조각하였다.
엎드린 사자
뒤를 돌아보는 사자
나머지 기단 면석에는 안상(眼象) 문양을 새겨 놓았다. .
영암사지의 건물터는 일반 사찰 건물과 다른 몇가지 특징이 있다고 한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무지개 모양의 계단이 있는 점, 금당 기단 면석 위에 얼굴 모양이 조각 되었고, 뒷면을 제외한 3면에 신비스런 동물 모양을 돌을 새김한 점, 서남쪽 건물 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이 특이하다.
쌍사자 석등(보물 제353호)
높이 2,31m이며 , 시대는 통일신라시대이고 , 재료는 화강암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쌍사자 석등은 모두 5기가 있는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 국립 광주 박물관에 있는 광양 증흥산성 쌍사자 석등,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은 통일신라 작품으로 손꼽힌다.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은 꼬리가 아름다운 사자 2마리가 마주보면서 화사석을 받치고 있다.
영암사터에 세워진 통일신라시대의 석등으로, 1933년경 일본인들이 불법으로 가져가려는 것을 마을 사람들이 막아 면사무소에 보관하였다가 1959년 절터에 암자를 세우고 원래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의 간석인 사자상 사이로 바라본 영암사지 삼층석탑..
석등은 일반적으로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하여, 아래로는 이를 받치기 위한 3단의 받침을 두고, 위로는 지붕돌을 얹었다. 이 석등은 사자를 배치한 가운데받침돌을 제외한 각 부분이 모두 통일신라시대의 기본형태인 8각으로 이루어져 있다.
사자의 뒷발은 아래받침돌을 딛고 있으며, 앞발은 들어서 윗받침돌을 받들었다. 머리는 위로 향하고 갈퀴와 꼬리, 근육 등의 표현이 사실적이다.
아래받침돌에는 연꽃모양이 조각되었고 그 위로 사자 두 마리가 가슴을 맞대고 서 있다.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의 상대석, 화사석과 옥개석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었다.
박기백 법사님이 불교문화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화사석은 4면에 창이 있고 다른 4면에는 사천왕상(四天王像)이 조각되었다. 사천왕은 불교의 법을 지키는 신으로 당시 호국사상의 목적아래 많이 나타나게 되었다. 지붕돌은 8각으로 얇고 평평하며, 여덟 곳의 귀퉁이마다 자그마한 꽃조각이 솟아있다. 각 부분의 양식이나 조각으로 보아 통일신라 전성기에 비해 다소 형식화된 면을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지며, 보은 법주사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과 견줄 수 있는 걸작이라 할 수 있다
금당 터 앞의 축대는 한 가운데를 성벽의 치(雉)처럼 전면으로 튀어 나와 있고 그 위에 합천 영암사지 쌍사자 석등(보물 제353호)이 놓여 있다.
이 축대 좌우에는 금당에 이르는 돌계단이 있는데, 통돌을 밖으로 휘어지게 깎은 무지개 다리 모양이며, 6단을 파냈다.
사찰건축의 아름다움의 극치인 무지개다리
금당지보다 한 단 낮은 마당에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보물 제480호)이 있다.
이 탑은 탑신부가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금당 앞에 새로 세운 두 채의 건물사이에 서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박기백 법사님이 불교문화에 대해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편이며 2·3층은 크게 줄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씩이고, 처마 밑이 수평이며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 있다.
위층 기단과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느낌은 있으나, 전체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며 각 부재의 짜임새 또한 간결하다. 신라석탑의 양식을 잘 이어받고 있으나, 기둥 표현이 섬약하고 지붕돌 받침수가 줄어든 점으로 보아 건립시기는 9세기경으로 짐작된다.
마주한 합천 영암사지 삼층석탑과 쌍사자 석등
2차 금당지에서 바라본 좌측의 동화랑지, 탑뒤의 남회랑지 그리고 3층석탑과 쌍사자 석등...
금당 오른쪽 큰 나무 뒤로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
야트막한 언덕건물지 7동에서 바라 본 전경이다..
야트막한 언덕 축대 에서 바라 본 전경이다..
건물지 7동 터에 건물이 있었던 듯 주츳돌이 흩어져 있고, 아주 잘 생긴 커다란 석조가 누워있다.
금당 오른쪽 야트막한 언덕을 오르면 돌기둥이 하나 서 있다. 당연히 당간지주이려니 했는데 다시 보니 뭔가 석연치 않다.
당간지주라면 하나만 서 있는 것도 그렇고, 지주에 구멍이 없고, 위치가 절의 입구가 아닌 것 등~
따로 알아본 결과, 역시 당간지주가 아니고 문을 고정시켰던 돌기둥이라고 한다.
반대편에도 있어야 할 일이지만 하나만 남았다는 얘기다.
건물지 7동 위의 축대
삼층석탑에서 바라다본 화랑식건물지와 부속건물지이다..
크게 보면 3곳의 축대가 남아 있는데 중문터에서 회랑 터로 이어지는 곳과 금당 터 앞의 긴 축대, 금당 터 옆과 뒤를 두르고 있는 낮은 석축으로 화강암을 장방형으로 다듬어 쌓은 모양이다.
건물지의 초석이나 축대 등이 대부분 파손되어 원상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드물지만 일반사찰에서는 보긴 힘든 것이고 경남지방에서는 보기 드문 대찰(大刹)이자 통일신라 말 고려 초 산지가람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석축에 돌이 빠지지 않도록 단단하게 쌓아 놓은 모습이 신비스럽다.
쐐기돌(돌못)이 박힌 석축에는 일정한 간격으로 독특한 돌이 박혔는데 경주 석굴암에 있는 쐐기돌 처럼 석축이 무너지지 않게 만든 것이 대단해 보인다.
석축 아래에서 바라보는 모산재와 영암사지의 풍경은 속이 후련할 만큼의 멋진 배경이다.
부처님이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이루기 전 6년간 고행한 인도의 전정각산이 삭막하고 칼 진 돌산이듯 황매산(黃梅山) 역시 한 그루 나무조차 자라기 힘든 산이었다. 마치 화강암으로 산 전체를 도배라도 해 놓은 것처럼, 황매산은 먼발치에서 바라보면 민둥산을 연상케 했다. 그러면서도 부처님이 정각을 이루기 위해 사사로운 번뇌를 단 칼에 배어내 듯 명쾌한 산세를 보이는 전정각산과 같이 황매산은 깎아지른 자태도 뽐냈다. 아마도 인도 성지 순례를 다녀온 불자가 황매산을 들른다면 ‘이 땅에 부처님이 나투신다면 합천의 황매산 자락 어딘가에 자리를 잡겠구나’하는 생각이 절로 들것이다.
황매산의 이름만을 놓고 본다면 이 곳은 중국 선종의 오조 홍인 선사와 홍인 선사의 선맥을 이은 육조 혜능 선사가 만난 곳이 아닌가. ‘황매’라는 이름은 중국 황매산 동선원에 있었던 오조의 별칭이기도 하다. 오조와 육조가 처음으로 만나 나눈 대화 내용을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다.
“너는 어디서 오느냐”고 오조가 묻자, 육조는 “영남에서 옵니다”라고 답했다.
이에 오조는 “영남사람은 불성이 없느니라”라고 받아쳤고 육조는 “사람은 남과 북의 구분이 있으나 불성이 어찌 그렇겠사옵니까”라고 되 받아쳤다. 오조가 제자로 받아들이기 전 육조의 근기를 떠보기 위해 나눈 대화이다.
황매는 오조 홍인의 별칭
이만하면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껴야만 불심을 돈독하게(?) 할 수 있다고 믿는 여느 불자들에게 황매산은 적어도 불심을 다질 수 있는 마음 끌리는 도량일 것이다.
황매산을 비롯한 남부 지방의 어지간한 지역에는 봄기운이 역력하다. 돌아오는 주말 자녀의 손을 잡고 황매산을 오르다 부처님처럼 바위에 앉아 명상의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영암사터 석축- 석굴암 지붕구조와 같은 쐐기돌 ; 석축을 단단하게 고정시키는 역할
기암 괴석이 병풍처럼 둘러쳐진 모산재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영암사지가 지금 까지 남아 있는 천년고찰 '영암사'라면,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합천의 또하나의 고찰이었을텐데, 바라볼수록 아쉬움 뿐이다.
부속건물지 축대
영암사지 옆에 '영암사'라는 최근에 지어진 절이 있었다.
최근에 많은 불사로 참 단아한 사찰로 자리하고 있었다..
1998년 영암사 회주 성범 스님과 주지 효정 스님 등이 경상도권 불자들과 힘을 모아 영암사를 중건하기 시작했다..
영암사 회주 성범 스님과 주지 효정 스님 등이 경상도권 불자들과 힘을 모아 지난 2003년 11월 만 5년만에 극락보전을 완공했다.
법당 바라보며 좌측의 전각이다..
극락보전 바라보며 좌측에는 대불도 자리하고 잇었다..
대불 뒤로 조각된 산신도 보인다..
영암사의 최고걸작은 법당의 문살인 것 같다...
다른 사찰엔 일정한 패턴의 문양... 아름답게 색을 입힌 꽃문살...들이 주를 이루는데.. 영암사의 문살은 한장의 그림이다... 산수화 같기도하고...
물과 바위... 새와 구름... 그리고 곧게 쭉...... 뻣어 있는 대나무.... 정말 예술이다...
너무 아름다운 문살이라... 한동안 말없이 바라봤다...
법당기단엔 연꽃문양을 화강암에 세겨 놓았다.. 그리고 모서리 네곳에는 모두 거북과 연꽃을 만들어놓았다.. 그 석조외에 석등과 탑... 그리고 정면엔 용도 네마리 있는데 아주 멋들어지게 한자리 차지하고 있다..
법당 바라보며 우측의 전각이다..
영암사의 삼층 석탑이다..
극락보전 내부의 부처님 모습이다..
신중단
영가단
발을 옮겨 종각쪽으로 향했다...
종각에서 나무울타리처럼 서있는 나무들 앞에서 법당을 바라보면 아주 장관이다..
뒷산을 배경으로 법당이 자리하는데.. 아주 웅장하고 멋있다.. 이 자리 역시 발걸음을 잡아두는 영암사의 명당자리인것 같다.
사람들은 마음이 복잡할 때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불자들 역시 성지순례를 할 때에는 마음의 때를 벗겨 내거나 속내 깊숙하게 가라앉아 움틀줄 모르는 불심(佛心)을 들춰내고 확인하고자 하는 욕심이 들 때 부처님의 자취가 배어 있는 곳으로 향한다. 도량 주위의 산세나 생태환경이 빼어나다면 그 보다 더 좋은 불교성지는 없을 터....
왕복 버스에 시달린 시간이 6시간, 황매산이 나에게 준 시간은 6시간 이지만 이 시간에 황매산은 나에게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주었다.
주차장에서 하산먹거리 후 17:00에 포항으로 출발 한다....오늘도 부처님 품안에 있을수 있음이 크나큰 행운이었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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