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대구광역시 중구 동인동2가)여행방/대구 2016. 7. 24. 10:25
국채보상운동기념 공원
2016. 7. 24.
2016. 7. 14. 대구 경북대학병원 건강 검진하러 갔다가 오전 10시에 검사하고 14:00에 검사 결과 나올때 까지 기다리며 둘러본 국채보상 운동 기념공원 이다 .........
경북대학병원 이다.
건강 검진하러 왔다가 오전 10시에 검사하고 14:00에 검사 결과 나올때 까지 기다리며 인근의 국채보상기념공원으로 향해 본다.
경북대학 병원쪽이 아닌 공평로에 있는 공원입구 이다.
대한제국 말기에 일어난 항일독립운동의 하나인 국채보상운동의 구국 정신을 계승하기 위하여 조성된 이 공원은 중앙도서관과 동인 지하 주차장 사이에 펼쳐진다.
공원입구의 안내도 이다.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1907년 일제 강점기 대구에서 시작된 대표적 민족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을 기념하는 공원으로 공원 동쪽은 공평로, 북쪽은 국채보상로, 서쪽은 동덕로로 둘러 싸여 있다.
화합의 광장에 있는 파고라에는 정수된 물을 고압으로 분무시켜 주변온도를 낮추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는데 쿨링포그시스템 이라고 한다.
대구광역시 중구 국채보상로 670 도로명주소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대구광역시 도시개발공사가 창사 10주년 기념사업으로 1998년 1월부터 170억 원의 공사비를 들여 옛 대구여자고등학교와 대구시 경찰서 자리에 4만 3000㎡ 규모의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조성하였고, 1999년 12월 21일 준공식을 갖고 모든 시설물을 개방하였다.
1907년 대구에서 비롯된 국채보상운동의 시민정신을 기념하고 제2의 국채보상운동 전개로 IMF 경제난 극복과 도심지내 녹지공간 확보 및 시민의 안락한 휴식공간 제공을 위하여 명칭 또한 『국채보상 운동 기념 공원』으로 정하여 중구 동인동에 조성된 공원이다.
넓은 광장이 있으며 명칭은 화합의 광장이라 한다.
광장에 있는 벽천분수
국채보상운동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고 많은 시민들에게 휴식공간을 제공하기 위하여 조성한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은 42,509㎡(12,859평)의 면적에 달구벌 대종, 종각, 녹도, 편의시설 등이 있다.
국채 1300만원 보상운동 취지문 이다.
민족시인 이육사· 박목월· 조지훈· 이호우· 윤동주의 시비와 대형 영상시설물 등이 분수와 석조물 등 조경물과 어우러져 있다.
향토 서예가들이 쓴 이육사· 박목월· 조지훈· 이호우· 윤동주의 시비가 있는 시상의 오솔길 이다..
지하에 3층 규모의 동인 지하 주차장이 마련되어 있어 시민들의 주차공간 확보를 돕고 있으며, 중앙도서관을 끼고 있어 청소년들이 많이 모인다. 시내가 가까워 연인들에겐 데이트 장소로 인기가 높다.
가장 최근에 조성된 공원으로 넓은 잔디광장과 주위로 천여그루의 수목이 심겨져 있으며, 벤치도 넉넉하게 마련되어 휴식을 즐기기에 적당하다.
공원 중간쯤에 오니 국채보상 기념관의 후문이 나왔다.
입장해서 관림을 시작했다.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제국주의 일본의 '부추김과 꼬심'으로 진 나라빚을 일반 국민들이 대신 갚겠다고 일어나 '외채갚기 운동' 이다
이 운동은 전국민이 참여한 '한국 최초의 시민운동' 이다.
이 운동은 '한극 최초의 여성운동' 이며
'한국 최초의 언론 캠페인 운동' 이고
'한국 최초의 금연. 절약운동' 이며,
'한국 최초의 학생운동' 이다.
기념관을 들어서면 국채보상운동의 내용을 개략적으로 확인할수 있는 내용이 안내되어 있다.
국민스스로가 자발적으로 돈과 노래게, 비녀, 가락지 등을 가져오고, 금연으로 돈을 모아 나라 빚을 갚자고 일어난 운동이라 한다.
IMF때 '금 모으기 운동'을 많이 했는데 그운동의 시초라고 보면 될듯하다.
때는 1905년. 열강의 이권 침탈이 절정을 이루는 시기였다. 이 때부터 일본은 본격적으로 우리나라의 권리를 하나씩 빼앗아 가게 된다.
외교권을 강탈한 상태에서 강제적으로 차관을 쓰게 한다. 또 일본은 재정고문 '메가타' 를 대한제국으로 보내 화폐정리 사업을 실시 한다. 백동화를 제일은행권으로 바꾸는 것이다. 이로 인해 상업자본과 은행자본이 몰락하게 된다.
결국 빚이 눈덩이 처럼 불어나자 더 이상 지켜볼 수만은 없었던 우리의 선조들은 이 국채를 갚기 위한 운동을 준비 한다. 1907년 2월 대구에서 서상돈님, 김광제님, 윤필오님에 의해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된다.
신분과 관계없이 모든 사람들이 나라의 빚을 갚기위해 돈을 모았다고 하는데 1997년 외환위기때 금 모우기 운동을 생각나게 하는 모습이었다.
지난 2011년에 문을 연 기념관은 구한말 고종 황제로부터 천민에 이르기까지 담배를 끊고 금가락지를 모아 '일본에 진 빚을 갚자'며 벌인 국채보상운동의 정신을 기리고 있다.
또 IMF(국제통화기금)라는 외환위기를 맞아 신국채보상운동으로 이를 극복하자는 뜻도 담고 있다. 학생뿐만 아니라 대구시민들에게 역사의 혼을 느낄 수 있는 아주 중요한 곳이다.
당시 국채보상운동은 언론사에서도 많은 관심을 가졌다. 특히 대한매일신보은 1907년 국채보상운동을 참여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실었다. 계몽적 활동과 직접 모금운동이라는 의미를 강조했는데 이를 통해 국민들은 자발적으로 운동에 참가했다고 한다.
여느 활동들과 비슷하게 결과만 놓고 본다면 국채보상운동 역시 성공적인 결과를 만들지는 못했다. 하지만 이런 활동을 통해서 당시 국민들의 의지와 역량을 확인할 수 있었고 훗날 교육 활동이나 시민운동의 계기를 마련했던 사건으로 의미를 찾을 수 있다고 한다.
대구에서 시작된 국채보상운동은 배워서 잘 알듯이 일본에 진 채무를 보상해서 주권을 찾자는 의도에서 시작한 것인데 현실적인 한계에 부딪혀서 실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운동을 통해 나라를 생각하고 위했던 선조들의 결연한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국채보상운동기념관과 기념공원은 국채보상운동이 시작되었다는 자부심을 느끼기 충분한 장소였던것 같다.
이렇게 국채보상운동 기념관을 돌아 보았다.
대한민국 최초의 근대적 학생운동인 국채보상운동은 우리나라의 위대한 역사적 유산이자 오늘날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현명한 선조들의 지혜였다. 한번쯤은 기념관을 들러보는 것이 어떨까?
국채보상운동 기념관 옆에는 12지신을 12개의 기둥에 새겨 놓았다.
공원 곳곳에는 낙락장송 및 이팝나무·산벚나무 등 30종 1만 2300여 그루의 수목과 원추리·은방울꽃 등 5종 3만여 본의 꽃이 심어져 있다.
교통도 좋아 대구시민의 도심 속 휴식공간으로 이용되며, 각종 전시회와 공연장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수목터널을 거쳐 나오면 분수대가 보인다.
또 다시 수목터널 이다.
공원 한켠에 국채보상운동의 주역인 대구 출신 서상돈 선생과 김광제 선생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다.
선현들의 명언비로 꾸민 명언의 오솔길도 갖추어져 있다. 예전의 대구여자고등학교와 대구시경찰서 자리였다고 한다.
명언의 오솔길 옆에는 이런 멋스런 담장과 바람개비도 있다.
명언의 오솔길에서 바라본 공원 전경이다.
공원내 달구벌 대종은 향토의 얼과 정서가 담긴 맑고 밝은 소리가 울려 만인의 기상을 일깨우고, 화합과 번영을 염원하는 대구시민들의 뜻을 온세상, 온누리에 알리고자 1998년 12월 22일 동인동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내에 건조 설치하였다.
‘달구벌 대종’은 매년 1월 1일 ‘제야의 종' 타종식을 거행하며 매주 토. 일요일도 달구벌대종 타종의식 행사를 시행함으로써 많은 관광객들이 공원을 찾고 있다
다시 한 번 고생했던 선조들께 감사드리며...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을 나선다.
.
.
.
.
'여행방 > 대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팔공산의 가을 (대구시 동구) (0) 2016.11.15 대구의 이색 박물관! '한국은행 화폐전시관' (0) 2016.07.25 대구 근대화 거리 2코스 둘러보기(대구시 중구) (0) 2016.04.27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 걸어 보기 (대구시 수성구 대봉동) (0) 2016.04.25 대구수목원 (대구직할시 달서구 대곡동 284번지) (0) 2015.07.28